조 본프레레

(본프레레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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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엘류호
(2003 ~ 2004)
본프레레호
(2004 ~ 2005)
아드보카트호
(2005 ~ 2006)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움베르투 코엘류
(2003~2004)
박성화
(2004 / 감독대행)
조 본프레레
(2004 ~ 2005)
딕 아드보카트
(2005 ~ 2006)

이름조 본프레러 (Jo Bonfrère) [1]
생년월일1946년 6월 15일
국적네덜란드
출신지림뷔르흐주 마스트리흐트
포지션스트라이커
소속팀MVV 마스트리흐트 (1963~1985)
지도자MVV 마스트리흐트 (1983)
MVV 마스트리흐트 (1985)
KFC 겔 (1988~1990)
나이지리아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1991)
KFC 겔 (1992~1993)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95~1996)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1996~1997)
알 와흐다 FC (1998)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99~2001)
알 와흐다 FC (2001~2002)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2001~2002)
알 아흘리 SC (200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4~2005)
다롄 스더 (2007)
알 와흐다 FC (2007~2008)
허난 젠예 (2011)
도파르 SCSC (2013~ )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출신의 축구 감독.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한 바 있다. 성인 본프레레는 프랑스어로 좋은 형제(good brothers)를 뜻한다고 스스로 말했다. 따라서 옛날에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한 위그노의 후손으로 보인다.

1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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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엔 MVV에서 원클럽맨으로 뛰었다.
청소년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라고 하는데 마틴 욜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말로는 윙백으로도 뛴 것 같다. 이 때 마틴 욜 감독이 본프레레 감독에게 선수 시절 최고의 윙백이었다고 평가했기 때문. 립서비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가 MVV에서 뛸 때 본프레레는 그의 선배였고 감독으로도 그를 지도하기도 했다.

2 감독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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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V 감독 시절
1980년대 두차례나 (1983년, 1985년) 친정팀인 MVV 감독을 했었고 1991년에는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아 여자 월드컵에 진출시켰다. 참고로 이 당시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 선수였던 치오마 아준와는 이후 육상으로 전향하여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 아프리카 최초의 여자 육상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건 나이지리아의 유일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로 남아있기도 하다. 아래 언급될 본프레레와 나이지리아 남자 축구대표팀의 일을 생각하면 묘한 인연이다.

2.1 나이지리아 국가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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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도 그렇고 감독 생활 초반에도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생긴다.
나이지리아 국가대표팀에서 수석코치를 맡던 199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나이지리아의 우승에 일조하였다. 그리고 2년 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을 앞두고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이 사퇴하자, 수석코치였던 본프레레가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직을 승계한다. 올림픽 본선에서 나이지리아는 준결승과 결승에서 만난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잇달아 격침시키며 아프리카 사상 최초로 국제축구대회 우승이자 올림픽 축구에서의 금메달을 차지하는 파란을 연출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임 감독이 만들어놓은 팀이고 당시 카누, 바방기다, 바바야로[2], 올리세 등 스타 선수들이 제몫을 했을 뿐 별로 본프레레가 한 일은 없다고 폄하하지만 아무리 선수들이 잘 뛴다 해도 감독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면 폭삭 무너지는게 축구에서는 비일비재하며 당시 브라질팀에는 호나우두, 베베토, 히바우두, 주니뉴 파울리스타,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있었고 아르헨티나팀에는 에르난 크레스포, 클라우디오 로페스, 하비에르 사네티 등의 나이지리아보다 더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팀 모두 격파했다는 점에서 본프레레의 업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궤변이다.

2.2 카타르 감독 시절

그렇게 일약 세계적인 명장급으로 올라선 그를 중동의 부국 카타르가 주목했다.
최초로 월드컵 진출을 노리는 카타르는 1996년 그를 감독으로 임명하는데......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에서 무실점 전승으로 최종예선에 합류했을때까지만 해도 그 전망은 밝았다. 하지만 최종예선 초반 무승행진을 달리며 최하위로 추락하자 급해진 카타르는 그를 경질했다.

물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당시 넬로 빙가다가 감독이었다.), 이란, 중국(!), 쿠웨이트라는 강호들이 같은 조여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카타르는 그를 경질한 이후 쿠웨이트와 중국 원정에서 이기고 홈에선 이란를 물리치며 급상승세를 탔다는 것..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경기에서 패하며 월드컵 진출에 아깝게 실패했다.[3]

2.3 나이지리아로의 복귀,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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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경질되고 쉬고 있다가 나이지리아에서 연락이 와서 1999년 다시 감독을 맡는다.

2000년 홈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승부차기에서 카누의 실축 등의 불운이 따르며 라이벌 카메룬에게 홈에서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 땐 세계적인 아프리카 출신의 축구 선수 조지 웨아가 월드컵 나가보겠다라는 각오로 나온 라이베리아와 모하메드 칼론이 이끄는 시에라리온에게 지며 탈락위기에 몰려 카타르에서처럼 또 경질되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는 연승행진을 달렸고 마침 가나가 라이베리아에 2-1로 이기는 덕분에 극적인 승점 단 1점 차이로 마지막으로 남은 아프리카 할당 월드컵 티켓을 획득한다.

사실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와 불화가 있었다고 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평가전을 갖기도 했다. 당시 한국팀 감독은 허정무. 두차례 평가전을 가졌는데 5-1로 한국에게 진 경기에서 야쿠부[4]페널티킥을 넣기도...

2.4 UAE와 알 알리 감독 시절

2001년부터 아랍 에미리트 감독을 맡아 이번에는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지만 이란에 패하며 월드컵에 또 참가하지 못한다.[5]

이어서 2002년 이집트 리그의 명문팀 알 알리 감독을 맡지만 준우승에 머무며[6] 경질된다.

2.5 대한민국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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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고 입국한 날 사진

그렇게 야인으로 지내다가 2004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경질된 후 후임 감독을 물색하던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는다. 당시 코엘류호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베트남오만에 연패하며 이른바 오만 쇼크를 겪었으며,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몰디브와 비김으로써 부진의 정점을 찍었다.

사실 한일 월드컵 당시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 KBS 해설위원에 따르면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가 허정무 감독의 사퇴 후 후임감독, 즉 외국인 명장감독을 물색할때 1순위가 프랑스를 1998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에메 자케, 2순위가 거스 히딩크, 그리고 3순위가 조 본프레레, 4순위가 크로아티아를 1998 프랑스 월드컵 3위로 이끈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였다고 한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 이후 눈이 높아진 팬들에겐 그저 듣보잡으로 보인데다가,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 감독 시절 이후엔 성공한 적이 없어 불신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 스태프로 활동한 얀 룰프스가 대놓고 '3류 감독'으로 디스했고 히딩크 감독 역시 대놓고 폄하하지는 않았으나, 영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 취임하기도 전부터 불신이 팽배했다.[7] 본인도 이러한 논란을 의식했는지, 같은 나라 출신인 히딩크처럼 성공할 것을 자신하며 히딩크 방식 그대로 가겠다고 언론 앞에서 호언장담했다.

특히 언론에게 공개된 아시안컵 대비 훈련에서는 이관우에게 "그런 식으로 할거면 나가라"는 식으로 호통을 치며 피지컬 중심으로 고강도 훈련을 했다. 이관우는 결국 아시안컵 명단에서 제외.

아시안컵에 대비한 부임 첫 경기 바레인과의 경기에서는 2003년 한일전 이후 1년 4개월만에 재발탁한 이동국최진철의 연속골로 2-0 승리를 거둬 그럭저럭 괜찮은 출발을 보이지만[8] 이어진 트리니다드 토바고전에서는 김태영의 어시스트를 받은 차두리의 선취골에도 불구, 제이슨 스코틀랜드에게 일격을 맞고 수면축구를 보여주다가 1-1로 무승부로 데뷔 두 번째 경기를 마감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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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부터 보면 된다.

아무튼 아시안컵 본선에서는 공격축구를 다짐하며 위의 짤방과 같은 말을 했다.
단, 네이버 영상 링크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저 발언 자체는 1년 후인 2005년 6월 시점에서 나온 말이다.

여담으로 저 발언이 워낙 임팩트있다보니 인터넷상에서 꽤 오랫동안 짤방으로 돌아다니는데, 특히 2014년 대한민국 어느 야구팀염프레레 감독과 이 위 말을 그대로 실천중. "우리 투수라인에서 9점을 먹으면 공격진이 10점을 뽑으면 됩니다."(관련짤)[10] 그리고 위 예언은 11년 후 좋은 의미나쁜 의미에서 둘 다 적중하였다. 그러더니 결국 해외에서도 이를 훌륭히 재평가하는 안필드의 기적이 일어났다 하더라... 2016년 k리그 클래식에서도 어떤 팀이 본프레레의 말을 잘 실천하고 있었다.

다시 아시안컵 본선으로 돌아오자면, 첫 경기 요르단과의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수면축구 & 답답축구의 경지를 보여주며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후반 초반 최진철의 퇴장과,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박지성의 공백이 아쉬웠다. 특히 당시 아시안컵에 승선하지 않았던 이천수를 제외하면 제대로된 프리킥 키커가 없어,[11] 프리킥 상황만 되면 선수가 공을 잡는다 -> 흘려준다 -> 2선 선수가 수비벽 아래로 강하게 때린다라는 공식이 코엘류 시절 말부터 자리잡았는데, 요르단전에서 얻은 프리킥 상황에서도 똑같이 재현되었다. 당시 이동국이 이렇게 때린 슈팅이 수비벽을 아래로 지나 상대 키퍼가 잡아냈는데, 키퍼가 수비수들에게 화를 내던 장면이 이 경기의 백미였다(...). 이미 수 차례 선보인 한국 대표팀의 프리킥 전술인데, 수비들이 그걸 막지 못하며 슈팅을 허용했으니 빡칠 수 밖에... 거기다가 박지성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온 정경호는 결정적인 득점 기회에서 홈런을 날렸다. 다만 이 경기는 본프레레로서는 지휘봉을 잡은지 겨우 세 번째 경기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전임 감독의 전술을 순식간에 모조리 다 털어낼 순 없는 노릇이니... 아무튼 당시 같은 조에 속한 팀들 중 그나마 제일 쉽게 여겨지던 상대인 요르단에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자 비난의 여론이 빗발쳤다.

아랍에미리트와의 2차전. 본프레레가 이전에 맡았던 팀이기도 하고, 상대팀 감독인 아드 데 모스가 본프레레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이라서 네덜란드 출신 감독들끼리의 대결이라는 것도 볼 거리였다.[12]
이 때 아드 데 모스 감독은 한국이 앞으로 월드컵 4강에 다시 진출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래서 그게 저주가 되어서 아직 한국이 월드컵 4강에 다시 못가나
역시 요르단전처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서 고전하나 싶었으나... 전반 이동국의 선취골로 수월하게 앞서갔다. 그러나 수비수 박재홍의 퇴장 이후 경기가 꼬여버렸는데, 프리킥 등 위기 상황에서 이운재의 결정적인 선방으로 위기를 넘기고 인저리타임 교체로 들어온 안정환의 추가골로 2-0 승리를 거두었다.[13]

문제는 쿠웨이트와의 최종전. 일단 앞선 두 경기의 내용이 그리 좋지 않기도 했거니와 쿠웨이트는 바로 직전 아시안컵에서도 0-1로 패배한 상대이기도 했고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에서 번번이 한국팀의 발목을 잡은 전례가 있었던지라 무승부만 해도 다행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본프레레의 닥공 전술이 이 경기에서만큼은 제대로 적중하면서 이동국의 연속골과 차두리, 안정환의 골까지 보태 4-0으로 모처럼 시원한 승리를 거뒀다.

그런데 8강에서 만난건 이란이었다. 1996년과 2000년에 이어 3개 대회 연속으로 똑같은 시점에 만난 것.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한국과 이란은 아시안컵에서 누가 이기든지 간에, 피말리는 혈투를 벌이는 탓에 다음 경기에 꼭 패배하고 우승컵은 멀거니 지켜봐야 하는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의 징크스를 안고 있었다.[14]

전반적인 경기 양상은 바로 위의 인터뷰 짤방대로 흘러갔는데, 먼저 실점 후 동점골로 만회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말 그대로 난타전을 벌였다. 국제무대 경험이 적은 당시로서는 젊은 피 김진규가 이란의 베테랑 알리 카리미메흐디 마다비키아[15]에 털렸고 박진섭은 자책골까지 넣는 등[16] 그야말로 정신없이 경기가 흘렀다. 전반은 2-2로 마쳤으나 후반에 또 실점과 동점이 반복되다가 결국 이란의 4번째 골이 터진 뒤 끝내 만회골을 넣지 못한 채 3-4로 분패. 결과적으론 인터뷰 때 본프레레의 호언장담과는 반대로 가버렸다. (...) 한 대 맞고 한 대 치고 또 한 대 맞고 한 대 치다가 결국 마지막에 한 대 맞은거를 돌려주지 못했다

경기 후 영상을 판독하자, 박진섭의 자책골 말고도 2골이 모두 우리 선수의 발에 맞고 들어갔음이 드러났다. 이뭐병(...)

경기 외적으로도 참 볼게 많았는데, 김진규는 이란 벤치에다가 부적절한 제스쳐을 날렸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카메라가 김진규를 정면으로 잡는 그 타이밍에서 하필(...) 다만 김진규의 해명으로는 이란 벤치가 먼저 그 짓을 해서 똑같이 해준건데 자신만 카메라에 포착된거라고. (...) 또한 이 날 발매된 스포츠토토 매치의 경우 전반 2-2, 최종 3-4 패배를 정확히 맞춘게 달랑 30명만 나와서 배당률이 무려 2975배나 나왔다.

어찌됐든 아시안컵 결과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허정무가 이끌었던 지난 대회에서 3위에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8강에 머무른 결과는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했고...... 하지만 부임하자마자 곧장 아시안컵을 치른지라 애초에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월드컵 예선도 앞둔지라 교체를 논하긴 이르다고 판단되어 일단 유임되었다.

아시안컵 본선을 마감하고, 그해 9월 베트남과 월드컵 2차예선 원정 경기가 잡혔다. 베트남은 1년 전 코엘류 시절, 중립지역에서 한국을 격파해본 탓에 기가 살아 있었다. 게다가 전력의 핵심인 박지성도 부상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베트남의 탄탄한 수비와 역습에 고전하던 중 전반전 차두리가 팔꿈치 가격으로 퇴장당하고, 후반전 초반에는 수비수 박재홍이 자책골까지 넣었다. 수적 열세 속에 0-1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나... 이천수의 크로스에 이은 이동국의 헤딩으로 동점을 만들고, 이어 이천수의 프리킥골로 2-1 역전승. 수적 열세 탓에 이천수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있던 촌극도 있었다.

10월에는 역시 월드컵 2차 예선 레바논과의 원정경기가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2차 예선에서 1위를 해야만 최종 예선에 진출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과 레바논은 승점 1점차로 1, 2위를 마크하고 있었다. 코엘류 시절 몰디브 원정에서 0-0으로 비겨버린 참사가 뼈아팠다. 때문에 양팀 모두 무조건 이기는 게 좋은 경기이자 지면 사실상 끝장나는 게임(...) 객관적 전력상으론 분명 레바논에 앞서 있으나, 원체 최근 분위기가 어수선한지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운명의 킥 오프 후 서로 탐색을 하던 전반 초반, 대한민국은 수비수 최진철의 절묘한 슈팅으로 선취골을 뽑아냈다. 우측 구석에서 최진철이 공을 잡았는데 이를 패스할 것으로 예상한 골키퍼가 반대편으로 치우쳐 있었고 이를 노려 골문 구석으로 때린 중거리슛이 그대로 들어간 것. 뒤늦게 상대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공 구석을 약간 건드렸을뿐이었다. 예상보다 선제골이 일찍 터져 쉬운 경기가 예상된 상황.

그러나 전반 중반에 이운재 골키퍼와 유상철의 사인 미스로 어이없이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으며, 이후 답답한 경기를 보여주다가 결국 1-1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후반전 중반에 안정환이 1:1 찬스를 맞이했으나, 바로 때리지 않고 곁에 있던 선수에게 뜬금없이 흘려주다가 상대 수비수가 잡아채 걷어내버린 상황이 아쉬웠다.

이날 경기 도중 레바논의 한 팬이 난입했다.#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이 단체로 난입하기도.

그리고 11월, 홈에서 열린 몰디브와의 월드컵 2차예선 최종전.[17] 우리로서는 치욕을 안겨준 몰디브에게 복수의 날을 선사할 기회이기도 했다. 반면 상대가 전원 철벽수비 모드로 돌입하여 홈경기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상대 수비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전반에 슛을 무더기로 날리고도 상대 수비와 키퍼의 선방에 막혀 골이 터지지 않았고, 후반 중반까지 골을 넣지 못했다. 만약 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경우 레바논이 한수 아래인 베트남을 잡아 승점 1점차로 역전되어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이 좌절될 수 있는 불안한 상황. 아시아에서 월드컵 본선 최다 진출국이, 2차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고비였다.

다행스럽게도 후반 중반에 이르러 김두현이 벼락같이 때린 중거리골로 선취득점을 하고, 이어 상대 수비가 실점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이동국이 쐐기골을 박아넣으며 2-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렇게도 어렵게,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몰디브전 무승부 하나로, 월드컵 본선 1라운드도 아니고 아시아지역 최종예선도 아닌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서 애를 먹은 전무후무한 사태였다.[18] 경기가 끝난 후 본프레레 감독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행복하다. 1차전 0-0 무승부의 아쉬움도 덜었고 월드컵 최종예선에도 진출했다."라는 말로 소감을 전했다.

이후 수석코치를 맡던 허정무가 사퇴했다. 전남 드래곤즈 감독 자리가 공석이자 그 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한 듯. 사실 허정무가 수석코치가 된 것도, 오만 쇼크 등으로 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코엘류 감독이 경질되자 높으신 분들이 일종의 군기반장 역으로 떠맡긴 것이었다. 본프레레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선 허정무가 하등 미련을 품을 자리가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19]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독일을 3-1 로 격파했다!! 한국이 베스트 멤버를 총동원했어도 이변으로 받아들여질 마당에, 독일 최정예 1군 VS 한국 2군 + 유망주가 붙어서 한국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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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_ 승리가_불가능한_멤버.jpg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20]
디시위키에서는 강령술로 이탈리아 국대를 뒤집어씌워 경기했다 카더라
대한민국 선발 라인업에 나온 얼굴은 신경쓰지 말자.

당시 SBS 중계 하이라이트

독일의 경우 해외파없이 전원 국내파로 구성되었으나 애초에 독일의 국내리그는 바로 분데스리가(...). 분데스리가 올스타 = 독일 국대로 봐도 무방할 판에, 그들은 정말로 분데스리가 올스타를 끌고 왔다. 그렇다. 바로 독일의 최정예 1군이었다. 골문을 막아선 골키퍼 역시 2년 전 월드컵 골든볼-야신상의 주인공 올리버 칸이었다. 그 외에 미하엘 발락 등의 끗발 날리는 선수들이 즐비했던 것.긴말 할 것 없이 위 사진의 독일 선발 라인을 한 번 훑어보자. 반면 대한민국 대표팀은 차두리를 제외하고는 전원 국내파 위주인데다,[21] 이운재이동국을 제외하면 K리그에서 성장 중인 루키가 대부분인 2군 수준이었기에 그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독일의 최정예 선수들을 대한민국의 루키+국내파들이 격파한, 말 그대로 기적의 승리를 기록한 것. 게다가 더 쇼킹한 것은 바로 이 경기가 독일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에 패배한 기록이자[22]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독일전 승리 기록이라는 점. 2002년 월드컵 4강전 때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경기 내용면에서도 우연 혹은 운빨로 이긴게 아니었다. 전반 초반, 이동국이 독일 문전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크로스한 것을 독일 수비가 걷어내자 김동진이 논스톱으로 중거리슛을 때렸고, 이것이 골문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 박재홍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을 발락이 차 넣으며 전반을 1-1로 마쳤다.[23] 그리고 후반 중반 무렵 독일 진영에 공이 떨어진 것을 이동국이 골대 방향을 등지고 잡아 방향을 돌리며 한 발리슛[24]이 그대로 들어갔다! 올리버 칸은 이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손도 쓰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며 막아내지 못했고, 이 골 하나로 이동국은 본프레레호의 황태자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박재홍이 또 한 번 핸들링 파울로 PK를 내주었고, 키커로는 앞서 동점골을 성공시킨 발락이 나섰다. 그리고 발락이 때린 슈팅을...PK 마스터 이운재가 쳐내버렸다. 2년 전 월드컵에서 발락에게 아쉽게 결승골을 내주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던 이운재로서는 발락에게 완벽한 복수를 한 셈. 2-1로 한국이 앞서나가기 시작하자 당황한 독일은 제대로 공세를 펴지 못했다. 그리고 후반 막판, 역습 상황에서 차두리가 수비수 사이로 크로스한 것을 조재진이 가볍게 득점으로 성공시키며 3-1 완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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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거의 평가절하의 제왕급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독일은 아시아 투어 일정상 일본과 먼저 평가전을 치르고 온 상태였는데, 이 때 주전을 대거 뺀 2진급을 내보내 일본을 상대로 3-0의 대승을 거뒀다. 당연히 한국전에 출전한 멤버들은 시차적응도 되었고 충분한 휴식으로 체력이 엄청난 상황이었는데 그걸 한국 2군이 개발살을 내버린 격이다보니 일본의 네티즌들은 열폭했다.

그리고 경기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이 경기 이후 독일 선수들의 굴욕(?) 짤방이 퍼지기도 했다. 경기 전 독일 대표팀 선수들은 부산 시내를 산책하며 휴식을 취했는데, 독일 선수들을 알아본 사람이 없어서 해운대에서 화보급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방해를 받지 않았을 정도. # 그저 덩치 큰 외국인 관광객이었을 뿐

해가 바뀐 2005년 1월, 대표팀은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잡았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앞두고 마련된 훈련이었다. 콜롬비아, 파라과이, 스웨덴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중견강호들과의 3연전이었다. 어쩌면 조편성에 따라, 월드컵 본선에서도 비슷한 전력의 국가들과 3연전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상당히 내실있는 평가전이었다. 3연전의 결과는 2무 1패를 기록한다. 콜롬비아와의 첫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가나 했는데 페널티킥 동점골을 내주고, 신예 수비수 김진규의 패스미스로 역전골을 내주며 아쉽게 1-2 패배. 두 번째 파라과이전에서는 먼저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준 후 김진규가 헤딩 동점골을 기록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압권은 스웨덴과의 3차전이었다. 대한민국은 그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1승을 거둔 적이 없었지만 정경호의 선제골이 터지며 앞서가기 시작한 것. 다만 선취득점 이후 얼마 못가 동점골을 내줘 1-1로 무승부를 거두며 미국 전지훈련을 마무리 지었다. 순수 국내파로만 구성된 멤버였음에도 경기 내용면에서 그리 나쁘지 않았던데다가, 중견 강호들을 상대로 상당한 선전을 거뒀기에 월드컵 최종예선 준비는 순조로웠다.

그리고 귀국해 벌어진 2월 4일 이집트와의 새해 첫 평가전에서 뜬금없이 0-1로 패했다. 냄비축구팬들의 비난이 빗발쳤으나...[25] 2월 9일 열린 쿠웨이트와의 최종예선 홈경기에서는 2-0으로 깔끔하게 승리를 거둔다.[26]

그러나 한달 뒤인 3월 26일에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서 0-2로 완패했다. 사실 지금이야 중동의 강호로 이란을 꼽지만, 정작 이때까지 우리에게 가장 힘든 상대는 사우디였다.[27] 이날 경기에 박지성 등 유럽파가 모두 차출되었으나 경기 결과는 2골 차의 충격적인 패배였고 경기 직후 본프레레가 "선수들이 지능적으로 플레이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며 여론이 꼬여버렸다.[28]

이런 상황에서 이어진 우즈베키스탄과의 홈경기. 전반전을 무득점으로 마치며 정말 꼬여가는듯 했지만, 후반 이영표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감각적인 발리슛이 터진 후 막판에 우즈베키스탄에 만회골을 내주어 2-1로 승리하며 일단 한숨 돌렸다.

이후 당시 떠오르던 샛별 박주영을 발탁하고 6월 우즈베키스탄 원정경기에 임했다. 후반전 박동혁의 수비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며 패배를 기록하나 했는데...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바로 박주영이 기록하며 1-1로 비기게 된다. 데뷔전에서 터진 데뷔골.[29]그리고 10년 뒤 이정협이 똑같이 데뷔전 데뷔골을 기록하며 박주영을 밀어냈다 더구나 같은 날 쿠웨이트가 사우디에 0-3 으로 대패하면서 대한민국에 유리해졌는데, 쿠웨이트와 무승부를 기록하게 될 경우 나머지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전패하고 쿠웨이트가 전승을 해도 승점이 서로 같아지게 되며 이 때 처음으로 따지는 상대전적에서 대한민국이 1승 1무로 앞서 최소한 조2위가 확정되는 것. 쉽게 말해서 쿠웨이트한테 지지만 않으면 월드컵 본선진출이 확정되는 상황.

그리고 며칠 후 쿠웨이트 원정경기. 사실 전년도 아시안컵 이전까지만 해도 쿠웨이트에는 역대전적 5승 3무 8패로 열세였고, 실제로 아시안컵 외에 월드컵 지역예선 등에서 쿠웨이트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었기 때문에 이번 원정경기는 결코 결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끝에 박주영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페널티킥 추가골로 2-0 으로 앞서가기 시작했고, 이에 흥분한 쿠웨이트 관중들의 물병투척 등으로 인한 경기중단 등의 해프닝이 있었다. 후반 들어 정경호와 박지성의 추가골로 4-0 대승을 거두었다. 경우의 수를 따질 것도 없이, 승점에서 앞서며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때까지 거둔 성적만 보자면 감독으로서 본프레레의 자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시안컵 본선에서 8강에 그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부임하자마자 임한 대회였던 만큼 책임을 논하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언론에 그리 유화적이지 않은 본프레레의 대언론관이었는데, 언론이야 발행부수 증가와 트래픽 유도를 위해 자극적으로 기사를 뽑게 마련이었고 이는 기업으로서 언론의 숙명이다. 따라서 언론의 태도를 갖고 피하거나 적대시하며, 틈을 주어선 안되지만 본프레레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 당장 본프레레에게 호의적으로 서술된 기사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두 번째로는 본프레레 부임 2년 전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룩하며, 한없이 높아진 국민들의 기대감이었다. 비록 전임 코엘류 시절 오만 쇼크를 경험하며 현시창의 상황을 직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아시아 최강자는 지난 월드컵 4강의 우리라는 자부심까지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안그래도 대부분 국민의 눈높이가 하늘을 찌를 수준인데, 인선에서부터 전임 코엘류보다도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듣보잡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니 본프레레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았다. 결과적으로 이때까지, 본프레레가 거둔 성적은 오히려 좋다면 좋은 수준이었으나 당장 훗날 조광래호홍명보호를 비교해봐도... 시작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며 삐걱댄 것은 그의 개인적 비극이나 다름없었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여론의 불신은 이후 홈에서 열린 동아시아 연맹컵에서 기어코 한껏 꼬이기 시작한다. 앞서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선보였으나, 동아시아연맹컵에서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진들이 마구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첫 경기였던 중국과의 개막전. 전반 초반 강력하게 상대 문전을 유린하며 분위기에서 앞서나갔으나, 과감한 슈팅이 없이 슬슬 밀린다 싶더니... 리웨이펑 등 비매너 플레이를 펼친 중국이 무려 3명이 퇴장당하며, 9명이 싸우는 중국을 상대로 0-1로 뒤지기 시작한다. 후반전 김진규가 낮게 깔아찬 대포알 프리킥으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기록한다. 그때까지 공한증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다보니, 여론은 말그대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30]

이어진 북한전에서도 답답한 경기가 지속되었다. 안그래도 3명이 퇴장당한 중국을 상대로 비겨버려 여론이 심히 좋지 않았는데, 당시 몇 수 아래로 여겨지던 북한을 상대로도 속터지는 골결정력을 선보이며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일본전. 본프레레 본인도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을 매우 잘 알았고[31] 경기 자체가 단두대 매치나 다름없었다. 이날 수비라인에서 개편이 있었다. 그 전까지 한국은 3백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코엘류 시절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급하게 투입되었던 유상철이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줘 3백의 중심에 유상철을 박아두고 있었다.[32] 멀티 플레이어이자 노장인 유상철의 능력에 기댄 셈인데, 나이가 있다보니 언제까지 유상철에게 마냥 기댈 수는 없었다. 본프레레호가 출범하며 그 대체자로 발탁한 것이 유경렬이었고, 나쁘잖은 수비조율을 보이며 유상철의 빈 자리를 메웠다. 유상철이 빠졌을 때 유경렬이 맡던 그 자리에, 역시 노련한 노장이었으나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멀던 김영철을 발탁한 것.[33] 그리고 이 때 신인 수비자원으로 이정수도 발탁했으나 하필 부상을 입어 최종명단에 들지 못했다.

경기 초반부터 한국은 일본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일본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으나 템포를 읽고 거둬내는 김영철의 솜씨는 기대 이상이었고, 무엇보다 미드필드에서 전방으로 찔러주는 김두현의 크로스와 패스도 일품이었다. 김두현이 직접 때린 중거리 슈팅이 일본 골대를 강하게 때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전방의 골 결정력... 90분 내내 애무축구를 하던 한국은 끝내 후반 막판 코너킥 경합상황에서 일본에게 헤딩 결승골을 내주며, 압도적 경기를 펼치고도 패배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연맹컵 초대 우승국으로서 홈에서 열린 2회대회에서 2무 1패(9명이 뛴 중국에 1-1 무승부, 북한과 0-0 무승부,일본에게 0-1 패)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34] 거기다 공한증이 깨질 뻔한데다, 한일전 패배라는 빅 이벤트까지 겹쳤으니 여론은 말그대로 폭발 직전이었다.

북한과 우호적이던 노무현정권 시절이라, 동아시아 연맹컵이 끝난 직후 북한 대표팀과 통일축구라는 명목으로 다시 한 번 리바이벌 매치를 벌였다. 다행히 이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감독 본인으로서는 한숨 돌렸다 생각했겠지만... 저때의 북한은 어디까지나 아시아 최약체였고, 북한의 요청으로 A매치로 인정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불신 속에 시작했던 여론은 동아시아 연맹컵에서 수면 위로 솟구쳤고, 진정될 기미조차 없었다.

이에 본프레레는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사우디와의 홈경기를 반드시 이겨 분위기 반전을 꾀하려 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더운날, 그것도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양복 정장까지 입고 나왔지만...[35] 전반 3분에 맥없이 내준 상대의 헤딩 선취골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0-1 패배를 당하며[36] 여론은 폭발해버렸다. 심지어 경기 종료 후 월드컵 6회 연속 본선진출 기념식 및 출정식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37]
그래도 한국 축구에 대해 애정과 열의가 있었는지 며칠 뒤 K리그 올스타전도 찾아와서 관전했으나 심지어 이 날도 관중들에게 야유를 들었다. #

결과적으로 6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는 성공했으나, 곳곳에서 야유를 듣고 축구협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어지는 등 폭발해버린 비난 여론과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 물론 말이 자진사퇴지 바로 그 며칠전까지는 자진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처음에는 경질이라고 보도되기도 한 것으로 봐서 축구협회에서 퇴진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 1, 2], 3 마침 이 때는 본프레레의 친아들이 여자친구와 직접 한국으로 여행 왔을 때였다. #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기감독 자리에는 네덜란드 출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앉게된다. 히딩크 - 본프레레 - 아드보카트, 그리고 마지막 핌 베어백으로 이어지던 이른바 '더치 커넥션'이었다.

재임기간 동안 본프레레는 코엘류에게 등용되지 않던 이동국을 재발탁, 주전으로 기용하며 월드컵 예선전의 주축으로 삼았다. 이동국은 아드보카트호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기용되었으나 본선을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했다. 훗날 독일 월드컵에서 원톱 자리를 맡은 조재진은 이동국이 정상 컨디션으로 본선에 나왔다면 결과는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었다.[38]

또한 조재진과 정경호 등 전반적으로 피지컬이 좋거나 발이 빠른 선수들을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나온 독일전 엔트리도 김두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 체격하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당시 청소년 대표팀이나 K리그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던 박주영은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이유로 벤치 신세. 그리고 이건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당시 박주영은 유럽이나 남미선수들의 강력한 피지컬과 압박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2.6 본프레레호 경기 결과

상대팀경기결과스코어비고
바레인2 : 0친선경기
트리니다드 토바고1 : 1친선경기
요르단0 : 02004년 AFC 아시안컵
UAE2 : 02004년 AFC 아시안컵
쿠웨이트4 : 02004년 AFC 아시안컵
이란3 : 42004년 AFC 아시안컵
베트남2 : 1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2차예선
레바논1 : 1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2차예선
몰디브2 : 0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2차예선
독일3 : 1친선경기
콜롬비아1 : 2친선경기
파라과이1 : 1친선경기
스웨덴1 : 1친선경기
이집트0 : 1친선경기
쿠웨이트2 : 0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부르키나파소1 : 0친선경기
사우디아라비아0 : 2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2 : 1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1 : 1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쿠웨이트4 : 0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중국1 : 1동아시아연맹컵
북한0 : 0동아시아연맹컵
일본0 : 1동아시아연맹컵
북한3 : 0친선경기
사우디아라비아0 : 1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총 25전 11승 8무 6패

2.7 사퇴 이후

아드보카트가 히딩크와 동급의 명장이 왔다는 등의 본프레레와 다른 호의적인 여론 속에서 화려하게 출발하면서 본프레레보다는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자 발끈해서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짜놓은 팀을 쓰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 예로 조원희는 아드보카트호에 A매치 데뷔전을 뛰긴 했지만 실제로는 본프레레가 먼저 발탁한 선수다. 2006년 초에는 본프레레도 2-0으로 이겼던 UAE와의 경기에서 아드보카트호가 첫 패를 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아드보카트를 비난했다. 이제 와서 보면 솔직히 틀린 말 한 거 같지 않다.
본인의 주장으로는 축구협회 고위층과 선수선발을 가지고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

2006 월드컵을 앞둔 당시 전지훈련을 하던 한국 대표팀의 경기에 여러번 나타나서 친분이 있는 오토 피스터 감독이 맡고 있는 토고팀에 정보를 제공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도. 심지어 토고 선수단 불화가 심해질때 본프레레가 감독에 부임했다는 소문까지도 돌았다.

이후 중국의 다롄 스더와 아랍 에미리트의 알와다 감독을 하기도 했으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쉬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부진한 샤이부 아모두 감독을 경질하자 자신에게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맡기면 결승에 갈수 있다고 주장하며 감독직 지원을 했다. # 그러나 씹혔다.(...) 그러고는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을 선임하자 디스를 했다.# 결과적으론 나이지리아가 한국에 밀려 탈락해서 맞는 말이 되었다.(...) 노스트라다무스[39][40]

그러다가 2011년 7월 중국의 허난 젠예 감독으로 복귀했다. 묘하게도 경질된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것이어서, 한국 축구과 간접적인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오만 국내리그 팀 도파르 SCSC로 이적하여 현재까지도 팀을 지휘하는 중이다...라고 하는데 자세한 정보인지는 알 수 없다. 자세히 알고 있는 분 수정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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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아프리카 쪽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모습. 많이 늙으셨다.

진짜인지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이지리아 인터넷 언론에 따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루이스 반 할에 대해 그는 자기가 뭘하는지도 모른다라는 말과' 멍청한 감독이라고 말하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2016년 알랭 페랭 감독의 경질로 공석이 된 중국 대표팀 감독 자리에 지원을 했으나 공한증을 최초로 깬 가오 홍보 감독에게 밀렸다. #

3 기타

대한민국 국대를 맡은 감독들이 으레 그렇듯 이 감독도 한국화(?)된 별명이 존재했는데 조 본프레레라는 이름때문인지 어감이 비슷한 조봉래(...)라는 별명이 생겨났다.[41]하지만 JBL이라는 프로레슬러의 별명에 먼저 리다이렉트가 걸려있어서 조봉래로는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조봉래의 후임으로 감독에 오른 딕 아드보카트는 아동복(...)

네덜란드 출신답게(?) 여러 언어에 능했다. 보통은 영어를 썼지만 앞서 말한 독일전 때는 독일어로도 인터뷰를 했고 그 외에 프랑스어, 아랍어 등 총 4개의 외국어를 구사한다고.

앞서 자주 언급했지만, 언론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아니,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는 자체를 상당히 싫어했다. 일례로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사우디 원정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전 코칭스태프들을 카메라가 비추다가 자신을 찍자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으며 카메라를 쫓아냈고 (...) 쿠웨이트와의 원정경기에서는 경기 중반 물을 마시다가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보자마자 화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카메라를 돌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보통 스포츠 감독들이 카메라가 오거나 말거나 의식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본프레레의 성향이 다소 특이하다.

또한 환갑을 앞둔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떡대가 장난아니었다. 애초에 워낙 체격이 큰 것도 있었지만 평상시에 체력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역대 한국 감독들과 비교해봐도 넘사벽에 가까운 수준. 실제로 부임 초기에는 엄청난 지옥훈련을 하면서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카메라 혐오증으로 미뤄볼 수 있다시피 성격이 매우 불같았다. 일단 부임하자마자 지옥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온갖 불호령을 내리는가 하면 당시 찍힌 사진들만 봐도 뭔가 화난 듯한 표정이 대부분. 게다가 경기에서 골이 터져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특이한 모습도 보였는데, 가끔은 기뻐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줬다. 바로 위에서 말한 독일전 때 그랬지 허나 축구팬들의 싸인 요청에는 일일이 응해줄 정도로 나름 친절했다고.[42]

파일:Attachment/조 본프레레/bonfrere.jpg
'본프레레의 5대 예언'이란 제목의 이런 짤방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모택동?

2014년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저 5대 예언중 무려 4개가 비슷하게 들어맞았다.

  1. 박주영AS 모나코에서 잘 나가나 싶더니 뒤통수를 시전하며 아스날로 이적, 이적 후에는 액받이 무녀, 토템형 스트라이커, 버프형 스트라이커 등 존재감이 없는 걸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의 활약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3] 그러나 다시 15, 16 시즌에는 FC서울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의 위용을 뽐내고 있어서 1번 항목은 반만 적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 이동국은 K리그에서 30대 중반의 고령에도 노익장을 발휘하며 다시 전성기를 보내더니 2014년 9월 평가전부터 다시 국가대표팀에 승선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그리고 해당 경기인 베네수엘라 전에서 멀티골을 집어넣었다.
3. 이 부분은 실제랑은 차이가 있다. 김진규는 본프레레가 가장 신임하던 선수였다.[44]
4. 토고는 실제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훌륭한 승점자판기 노릇을 했다.
5.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토고를 이기고 프랑스와 비겼지만 스위스에게 져서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감독 사퇴 이후 오랜 기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기술고문 및 코치자리에 있었던 허정무는 '그동안 거쳐간 외국인 감독들에게는 제각각 배울 점이 있었지만, 본프레레 감독에게만은 본받을만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허정무나 본프레레나 악의적인 까들이 많기 때문에 이래저래 왜곡당하기 좋은 발언인데, 사실 허정무 입장에선 맞는 말이고 본프레레 입장에선 억울한 말이다.

본 프레레 이전 거쳐간 외국인 감독이라고 해봤자, 데트마르 크라머(1991~1992), 아나톨리 비쇼베츠(1994~1996) 거스 히딩크(2001~2002) 움베르토 코엘류(2003~2004) 4명이 고작인데다, 이들은 태생부터 완전히 다르다. 크라머 감독은 과거 한국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축구 말하자면 본가의 적장자였고, 비쇼베츠는 구 소련 축구의 계승자이다. 히딩크 감독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플 토탈 풋볼 네덜란드, 코엘류 감독은 포르투갈이였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던 대한민국 축구계로선 연속성은 없었지만 감독이 외국인으로 바뀔 때마다 신세계를 경험했던 셈이다.

특히 크라머 감독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팀에 동메달을, 비쇼베츠 감독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 축구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강, 코엘류 감독은 유로 2000 4강을 달성한만큼 모두 '확실한 성과'로 검증받은 인물이었다. 반면 본프레레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나이지리아팀으로 금메달 땄는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전반전에서 2:0으로 지고 있었으나 후반들어 1골을 더 먹고 4골을 몰아 넣어 동메달을 따게 되면서[45] "사실 본프레레는 시대를 앞서간 명장이다" 라는 설이 나오고 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차예선부터 레바논에게 역사상 처음 패하면서 경우의 수를 따지며 고전하는 조광래호를 보면서 조봉래 감독이 차라리 낫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밑에는 더 밑이 있기 마련이다 우습게도 요 본프레레를 마구 까던 게 그 조광래라서 곱배기로 까임 역습 중.

그리고 홍명보호가 조별예선에서 꼴찌로 탈락하면서 다시 거론되었으며, 본프레레에게는 본받을만한 게 없다던 허정무는 축협 부회장직에서 잘렸다(...) 브라질이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침몰하자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본프레레의 업적이 다시금 추앙받기도 했다.

앞으로도 한국 대표팀이 형편없는 성적을 거둘 때마다 또는 독일 대표팀이 어마어마한 점수차로 상대팀을 이길 때마다 혹은 지고 있던 팀이 3점을 내준 후 4점을 내고 역전승할 때마다 종목 상관없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영원히 재평가/재조명받는 조 본프레레 감독

4 평가

요약하자면 까이는 거에 비해서 꽤 괜찮은 감독이다. 이미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감독 생활을 많이 해서인지 몰라도 본인 스스로가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일례로 식당에서 김치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이거보다 더 매운 것도 먹어봤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축구협회 인사들과 등산도 함께했으며 무엇보다 K리그 경기를 꾸준히 관전했다. 중계를 안해주니 어쩔 수 없기도 했다. 게다가 이 때는 식사를 김밥으로 해결하는 등, 다른 외국인 감독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 (음식 적응을 굉장히 잘한 편이었다.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해삼만은 보고 개깜놀한 뒤에 백기를 들었다고...)

다만 올 때부터 히딩크로 인해 눈이 높은 대중들에겐 저 듣보잡 감독은 누구냐는 편견이 자리잡았다. 하필 전임자인 히딩크와 코엘류가 모두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 둘은 최근의 실책으로 인해 몸값이 떨어졌을 때 낚아채온 인물들이었다. 그러다 한껏 높아진 눈은 슈틸리케 감독 선임에 들어서야 국내 축구 예산의 녹록치 못한 현실을 알게되면서 다소 누그러졌다. 게다가 직전 감독이 나락의 끝을 보여주기도 했고(...)

언론을 상대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심한 행태를 보였으며, 이렇게 비롯된 언론과 불화가 심한것도 부정적 평가에 한몫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해줄 강력한 인맥도 없었다. 히딩크는 부임 당시 기세가 좀 꺾이긴 했지만 이미 세계적인 감독이었고[46] 그와 한배를 탄 정몽준 회장과 이용수 기술위원장[47]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었다. 하지만 본프레레는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감독 경력 대부분도 비주류였기 때문에 그와 친분이 있는 축구계 인물들 중에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나이지리아의 은완코 카누제이제이 오코차 정도가 그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이 분명히 유럽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아프리카 선수가 맞긴 하지만 아무래도 디디에 드록바사무엘 에투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압도적으로 높다고도 할 수 없다.[48]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와 인연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엔 판 마르베이크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기 전이었기에 한국에서는 페예노르트 시절 UEFA컵에서 우승하고 송종국을 지도했던 감독이라는 건 외엔 인지도가 높은 건 아니었고 당시 재정난으로 암흑기에 시달리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본프레레 본인 스스로가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감독으로는 그리 유명하지는 않으나 선수 시절엔 레알 마드리드와 서독 국가대표팀에 뛸 정도로 본프레레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선수였기 때문에 인맥이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이렇게 감독의 국제적 인맥이 부족하면 월드컵 본선 준비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49] 이래저래 운이 좀 심각하게 많이 안 따라줬다.

본프레레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노력하는 3류 감독(...)으로 평하기도...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일 본프레레가 월드컵 본선까지 맡고 이동국이 부상으로 엔트리 낙마하지 않았더라면 한국 팀의 성적은 최하 16강이었을거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본프레레호의 성적을 자세히 보면 아시아팀을 상대로 고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스웨덴, 콜롬비아, 독일, 파라과이 등의 강팀 혹은 강호급 팀에게 1승 2무 1패상당한 선전을 펼쳤다. 특히 독일을 상대로 3:1 완승을 거둔 것과 스웨덴, 콜롬비아에 선제골을 넣은 것은 2016년 현재까지 전무후무한 기록.

  1. 본명은 요하너스 프란시스퀴스 본프레러 (Johannes Franciscus Bonfrere)이다.
  2. 3B의 그분 맞다.
  3. 4위를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란과는 불과 승점 2점 차. 1위로 올라온 사우디아라비아와는 4점차. 그러니깐 초반 부진만 아니었으면 본선 진출이 가능했단 말.
  4.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니가가라 16강 슛을 시전한 그 분이 맞다.
  5. 결국엔 이란도 아일랜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득실차로 밀리며 탈락했다.
  6. 라이벌 자말렉도 만만찮은 강팀이지만 알 알리는 이집트 국가대표가 다수 있는 과장되어서 말하면 우승은 밥먹듯이 하는 팀이다. 물론 본프레레 시절뿐 아니라 이 무렵은 한동안 암흑기였다.
  7. 2005년 피스컵 참가를 위해 PSV 감독으로 내한한 히딩크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이 만난 적이 있는데 사진을 보면 어째 처음 만난 사이처럼 영 어색한 분위기다.(...)
  8. 워낙 코엘류 감독 체제에서 골 결정력이 시망이다보니 네이버 문자중계는 대부분 "코엘류보단 나아보인다."는 의견이 많았다.
  9. 참고로 이 때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태국에도 지고 고려대와의 연습경기에서도 진 팀이었다.(...) 태국 >= 고려대 > 트리니다드토바고 = 한국?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2006 독일 월드컵에 진출했었는데 월드컵 명단에 이 날 경기 멤버는 골을 넣은 제이슨 스코틀랜드켄와인 존스, 그리고 골키퍼 캘빈 잭 단 세명 뿐이었고, 그것도 켄와인 존스를 제외하면 후보였다. 원래 캘빈 잭이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이 유력했으나 부상을 당해 샤카 히슬롭이 스웨덴전에 선발로 나섰다가 선방을 보여주며 0-0 무승부를 이끌어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2차전 잉글랜드전에서도 히슬롭에게 밀렸다. 비록 3차전 파라과이전 때는 선발로 나왔다가 두 골을 헌납하며 탈락했지만. 사실 샤카 히슬롭이 EPL경험도 있고 더 유명한 선수다.
  10. 2014년 4월 22일7월 3일 목동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 결과.
  11. 이천수유상철올림픽 와일드 카드로 차출된 상태였다.
  12. 이 때 당시 같은 아시아 팀을 이끌고 있었고 아랍 에미레이트가 한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팀이다 보니 아드 데 모스 감독이 흔한 듣보잡 출신 유럽 감독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아드 데 모스 감독은 본프레레에 비하면 유럽에서도 주류에 속하는 감독이다. 1980년대 초반 아약스 감독으로 세 차례나 리그에서 우승 경력이 있고 PSV에서도 감독을 했으며 네덜란드 밖인 RSC 안더레흐트, MV 메켈런, 스탕다르 리에주, 베르더 브레멘, 스포르팅 히혼, 우라와 레즈, 알 힐랄에서도 감독을 했었다. 2010년 이후엔 감독을 하지 않고 네덜란드 방송에서 축구 분석을 하는데 박지성을 만나 그가 무릎 때문에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 말했으나 정작 박지성에게는 누구냐고 듣보잡 취급 당하는 굴욕도 당했고(그러나 정말로 이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독설가인지 히딩크를 여러 차례 비난을 하곤 했다. 그러나 첼시 감독을 맡을 땐 히딩크에게 호평한 걸 봐선 딱히 개인적인 감정이 있지는 않은 듯 하다.
  13. 이 경기부터 이동국 선발 -> 안정환 후반 조커의 스트라이커 전술을 구사했는데, 꽤 재미를 봤다.
  14. 그리고 이 징크스는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장 이란과 격돌했던 2007 아시안컵, 2011년 AFC 아시안컵만 봐도...
  15. 사실 마다비키아는 오른쪽 윙/윙백인데, 김진규 뿐만 아니라 이 때 왼쪽 윙백을 맡은 이영표도 그를 제대로 막지 못한 책임이 있긴 하다. 사실 이 때 마다비키아는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에서 잘 나가던 시절이라 이영표라고 해도 막기가 쉽지 않은 선수이긴 했지만. 2007년 아시안컵 때는 이란의 주장으로 나왔으나 부상으로 빠진 이영표 대신 나온 김치우를 잘 공략하지 못하고 승부차기에서 이운재에게 슛이 막혀 이란의 패배에 일조했다.
  16. 사실 이란의 빠른 패스를 박진섭이 걷어내려다가 골문으로 잘못 들어간 것이었다.
  17. 참고로 이날은 다름아닌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18. 당시 이 경기를 해설했던 김주성 MBC 해설위원은 김두현의 골이 터지는 순간 괴성에 가까운 환호를 질렀다. 게다가 김두현의 골은 2004년 당시 가장 값진 골로 회자될 정도로 몰디브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축구의 운명을 가른 경기였다. 한동안 몰디브의 골망을 가른 김두현의 중거리슛이 스포츠뉴스 오프닝에 나올 정도였다. 지속적으로 언급하지만 몰디브와의 1차전 무승부 때문에, 레바논에 쫓기는 신세가 된지라(...)
  19. 이 수석코치 자리는 본프레레호 마지막 순간에도 맡을 사람이 오지 않고 공석으로 쭉 남았다. 본프레레가 나중에 수석코치의 영입을 부탁했고 후보까지 제안했다고 하나 이뤄지지 않았다. 본프레레의 인맥과 영향력, 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부족했다는 뜻. 협회에서는 핌 베어백을 추천하여 영입제의를 했다고 밝혔으나 이미 본프레레가 감독직을 그만 뒀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베어백이 본프레레와 함께 일하는 것을 과연 수락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상 수석코치 역할까지 맡은 건 이춘석 코치(FC 서울로부터 영입한 코치)였고 본프레레와 궁합이 잘 맞았는지 통역보다도 본프레레와 가까이 있었고 본프레레가 사퇴하여 한국을 떠날 때 출국장에서 포옹까지 했는데 정기동 골키퍼 코치와는 달리 아드보카트호에는 잔류하지 못하고 아드보카트가 직접 경질했고 그 이후로는 무슨 이유인지 성인 축구지도자로 활동하지 않고 중학교 감독, 고등학교 감독, 유소년 클럽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 아닌게 아니라 이 날 경기에 대한 스포츠토토 적중자가 682명에 불과했고 배당률도 205배나 되었다.
  21. 차두리는 앞선 월드컵 2차예선 베트남전의 퇴장으로 출장이 불가능했으나, FIFA에서 월드컵 예선전 퇴장의 출전금지는 예선전으로만 한하는 것으로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서 친선경기인 독일전에는 출장할 수 있었다.
  22. 이후 AFC 소속의 호주 대표팀이 독일을 격파하긴 했으나, 호주의 경우 소속만 AFC일뿐 실질적으론 아시아라고 보기 어렵다.
  23. 이 시기 코엘류가 발탁했던 수비수 박재홍은 잔실수를 연발했다. 앞서 베트남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자책골을 기록, 독일전에서도 또 프리킥 헌납... 프리킥 상황에서도 수비벽이 헐겁자 이운재가 다그치는 장면이 잡혔는데, 하필이면 박재홍이 서 있던 방향에서 공간이 생겼고 그 공간을 통해 발락의 프리킥 슈팅이 날아들어오며 한 골을 먹여주었다(...)
  24. 일명 육군병장슛, 혹은 점호열외슛(...), 혹은 이동국의 한풀이. 당시 이동국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25. 이때 오프사이드 상황에서 정경호가 상대 골망을 갈랐다. 주심은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며 골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걸 못본 정경호는 홀로 관중석을 향해 뛰어가며 골 세레머니를 벌였다. 정경호 개인에게는 안습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상황을 편집해 인터넷에 올라온 화질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후로 한동안 화질이 극히 좋은 편집본을 두고 정경호급 화질이라는 관용어가 널리 쓰였다.
  26. 당시 송종국의 기량이 저하된 뒤, 오른쪽 풀백에는 우수한 자원이 없었다. 이 경기부터 본프레레는 이영표가 왼쪽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뛸 수 있음에 착안, 왼쪽에서 뛰던 이영표를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시킨다. 이영표가 뛰던 오른쪽 풀백에는 김동진을 투입했다. 제1회 동아시아 연맹컵에서 3경기 모두 출전하며 첫 우승에 기여했던 김동진의 기량은 매우 준수했으며, 독일을 아시아 최초로 격침시켰던 바로 그 친선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동진 역시 풀백은 물론 중앙수비수도 가능한 자원이었으나 왼발잡이(...)인 탓에 왼쪽 풀백만을 맡아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는데, 이영표는 최종예선에서 득점까지 기록하며 우수한 활약을 뽐냈다.
  27. 한때 번번히 우리의 발목을 잡던 쿠웨이트는 본프레레 시절부터 연승행진을 거듭하며 만만한 상대로 추락해버렸다.
  28. 그러나 실제 인터뷰는 자신의 전술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지극히 정상적인 수준이었다. # 뿐만 아니라 5개월 전의 레바논 원정 경기 때도 "적어도 우리는 오늘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6~7차례 결정적인 기회에서 골로 연결을 못했을뿐인데 지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나?"라는 말로 답답함을 토로했을뿐, 선수 탓을 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피하는 무능한 감독은 결코 아니었다.
  29. 이 골은 사실 오프사이드로 볼 여지가 있다. 워낙 정신없던 상황이라서인지 우즈벡 선수들이 별로 항의를 안했지만...
  30. 6년 뒤 똑같이 동아시아연맹컵에서 중국에 0-3으로 패했던 허정무도, 뒤이은 한일전에서 3-1 대승을 거두지 않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에 뺨맞고 일본에 화풀이
  31. 또한 한일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동아시안컵 직전 인터뷰에서 "중국은 한 번도 진 적 없으니 이겨야하고, 북한은 같은 민족이니까 이겨야 하고,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고 강조했을 정도.(...)
  32. 아시안컵보다 올림픽을 중시하던 풍토상, 유상철이 와일드 카드로 올림픽에 선발되어버리자 앞서 아시안컵에선 이민성을 같은 자리에 투입했었다.
  33. 본프레레 시절 붙박이 수비였던 유경렬은 정작 아드보카트호에서는 외면받았다. 4백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나... 반면 김영철은 독일 월드컵까지 승선, 월드컵 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
  34. 여담이지만 동아시아연맹컵은 홈 개최국은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생겼다. 일본에서 열린 1회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한 것부터가 시발점이었다.
  35. 당시 한국 대표팀 경기를 보면 본프레레는 항상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선수들을 지휘했다. 그런데 앞서 말한 통일축구 당시 특별한 날이니 정장을 입었다가 3-0으로 승리하자, 사우디전에서도 꼭 이기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정장으로 표현한 것. 그만큼 본프레레가 한국 대표팀에 열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는 일화.
  36. 이 경기만큼은 본프레레의 전술이 완전히 실패했다. 사우디가 수비에 중점을 둘거라 예상하고 초반에 공격적으로 나갔는데, 오히려 사우디가 맞불을 놓으며 생긴 틈에 실점한 것. 물론 그 뒤로 사우디는 침대축구를 시전했고 결국...
  37.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최종전에서 이란에게 패배한 뒤 맞은, 월드컵 출정식을 기억하는가? 물론 간신히 본선에 진출한 상황은 그때가 더 안좋았지만, 분위기는 본프레레의 월드컵 출정식이 훨씬 더 나빴다.
  38. 실제로 월드컵 최종예선과 동아시안컵을 제외한 유럽/남미팀과의 경기들을 종합해봤을 때 본프레레 체제가 월드컵 본선까지 갔다면 충분히 해볼만 했다. 독일, 스웨덴,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모두 선제골을 넣었던 한국 대표팀은 이 시기가 유일했다.
  39. 참고로 당시 나이지리아가 한국과 같은 조에 추첨되었는데, 본프레레 본인으로선 전임 담당 팀을 적으로 만날뻔할 수도 있었다.
  40. 한편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은 스웨덴 감독으로 2010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나이지리아 감독으로 16강 진출도 못하고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완전히 한물 감독으로 여겨졌으나... 아이슬란드를 유로 2016에 진출시키는 예상을 뒤엎는 쾌거를 일으키면서 부활했다. 게다가 히딩크 감독이 맡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탈락시켜 히딩크는 물론 본프레레에게도 충격을 줬을 듯.(...) 참고로 2005년 연초 평가전에서 본프레레와 만나 악수를 할 때는 그냥 의례적으로 떨떠름하게 악수를 하는데 이후 연말 평가전 때 아드보카트와 만나 악수를 할 때는 유로 2004 때 상대팀 감독으로 만나 안면이 있는 탓도 있고 원래부터 아드보카트가 유명한 감독이라서 그런지 반갑게 악수한다.(...)
  41. 사실 조봉래라는 이름은 조광래 감독과 비슷하다. 참고로 이 무렵 조광래 감독은 윙백괴담으로 굉장히 까이고 있었다.(...)
  42. 본프레레가 숙소로 쓰던 그랜드 호텔을 방문한 축구팬이 본프레레를 발견했지만 워낙 표정이 무섭다보니(...) 고민을 하다가 조심스레 싸인을 요청했는데, 별 말 없이 싸인을 해주고는 갈 길을 갔다고.
  43. 당시 박주영은 지금의 이승우 급의 끗발날리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위에 써져있는대로 "훅 불면 날아갈것 같다"라며 피지컬 문제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네티즌 축알못 들은 왜 기용하지 않나며 비난에 열을 올렸고, 결국 반강제적으로 대표팀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그리곤 당장은 괜찮은 성적을 거두며 자리잡는가 싶었지만...
  44. 본프레레가 한국을 떠날때 자기가 발탁한 어린 선수가 월드컵 무대에 설거라고 말했는데, 정황상 김진규가 확실하다. 실제로 미국전 훈련 당시 콜롬비아와의 경기 때 김진규의 패스미스로 실점으로 이어지며 패했는데, 월드컵 예선전에 실수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옹호했다.
  45. 정확하게 표현하면 구자철의 골로 2:1이 되자마자 곧바로 실점해 3:1 상황에서 내리 세 골을 넣어 3:4로 역전한 것이다. 이 중 한 골은 박주영, 두 골은 지동원이 넣었다.
  46. 2002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와 평가전을 할 때 에릭손 감독이 히딩크와 반갑게 악수를 하고 그 다음에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이 히딩크 감독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참고로 당시 잉글랜드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과 유니폼 교환을 거부하는 등 한국 선수들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으로 잠깐 인터넷에서 말이 많기도 했다.
  47. 조별리그 통과못한 최초의 개최국이 되지 않기위해 이들이 내놓은 특별대책이 외국인 감독이었다. 히딩크가 낙마하면 그를 영입한 이용수와 정몽준의 입지도 흔들리게 되있었다.
  48. 오코챠의 경우 전성기 때 검은 지단으로 불렸고 일각에서는 지단의 재능을 어떤 부분에서는 초월했다고 일컬어지기도 했기 때문에 실력적인 면은 문제 없다. 하지만 클럽 커리어는 그저 그런 편이다.
  49. 사실 2013년 선임되었던 홍명보도 당시 국내파 감독들과(전임 감독들인 조광래, 최강희차범근, 홍명보에 비하면 세계적으로 명성이 알려지고 해외 인맥이 있는 편은 아니다.) 비교하면 해외 인맥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