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陽村集. 조선 건국 초의 문신 권근(權近, 1352∼1409)의 문집. 총 40권 10책. 서울대학교 규장각,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성암고서박물관에 초간본 영본(零本)이 소장되어 있고, 1718년에 발행된 삼간본은 규장각과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여말선초의 문인 권근이 평생동안 지은 작품들을 모은 문집으로 권근의 시 980수, 글 305수가 실려 있다.
책 맨 첫번째 장에는 양촌선생연보(陽村先生年譜)와 명 태조고황제 어제시 3수가 실려 있고 이후 권1에는 응제시 31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2에서 권4까지는 55수의 시가 실려있고, 권5는 점마행록으로 권근이 1387년 4월 12일에 서북면에서 말을 점고하라는 왕명을 받고, 다음날 한양을 떠나 평양을 거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지은 시 및 1388년 서도에 종군할 때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권6은 봉사록으로 1389년 중국에 갔을 때 거쳐간 지역과 눈으로 본 일을 시로 읊은 것이고, 권7은 남행록으로 1389년 겨울에 우봉과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1390년 5월에 청주옥에서 석방되고, 이어 대간의 논박으로 또다시 익주에 유배되고 겨울에 석방되어 양촌으로 돌아온 뒤 그 이듬해까지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권8에는 정도전의 시에 차운하여 무산일단운체로 지은 신도팔경 8수를 비롯한 107수의 시가, 권9에는 중국 사신들과 답례하고 전송한 시를 포함하여 98수의 시가 실려 있다. 권10에는 말년에 지은 시 117수가 실려 있다.
권9와 권10은 여러 시들이, 권11에서 권14까지는 기 45편, 권15에서 권20까지는 서 66편, 권21에는 설 13편과 전 3편, 권22에는 발어(跋語) 21편이, 권23에는 명(銘) 7편과 찬(贊) 8편, 제문 13편이 실려 있다. 권24에는 사대표전(事大表箋) 21편과 본조표문(本朝表文) 16편이, 권25에는 본조전문(本朝箋文) 12편과 불윤비답(不允批答) 2편이 실려 있다.
권26에는 사직전(辭職箋) 1편, 불윤비답 1편, 차자 3편, 계본 1편이 수록되어 있고, 권27과 권28에는 소어(疏語) 23편이, 권29에는 청사(靑詞) 14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권30에는 교서 9편이, 권31과 권32에는 상서 12편, 권33에는 잡저 7편, 책제 6편이 실려 있다. 권34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의 사서 가운데에서 28칙을 택하여 저자의 의견을 주로 단 사론인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이, 권35에는 허공(許珙), 김방경(金方慶) 등 고려시대 인물 24인의 행적을 기록한 동현사략(東賢事略)을, 권36에서 권38까지는 비명 8편, 권39와 권40은 비명 1편, 묘지 1편, 행장 1편이 실려 있다.
3 편성
- 양촌집서
- 양촌선생연보
- 명 태조고황제 어제시
- 제1권 응제시(應製詩)
- 응제시(應製詩)
- 왕경작고(王京作古)
- 이씨(李氏) 이거(異居)
- 출사(出使)
- 조선의 명을 받들고 경사(京師)에 오다.
- 서경(西京)을 지나다.
- 압록강(鴨綠江)을 건너다.
- 요동(遼東)을 지나다.
- 내주(萊州) 바다에 항해(航海)하다.
- 상고 시대 개벽(開闢)한 동이왕(東夷王)
- 일본(日本)이 바라보이다.
- 금강산(金剛山)
- 신경(新京)의 지리(地理)
- 진한(辰韓)
- 마한(馬韓)
- 변한(弁韓)
- 신라(新羅)
- 탐라(耽羅)
- 대동강(大同江)
- 내빈(來賓) 에서 고가(高歌)를 듣다.
- 중역(重譯) 에서 영인(伶人)을 구경하다.
- 남시(南市) 에서 잔을 들어 실컷 취해 돌아오다
- 북시(北市) 에서 소회를 말하고 낙탁(落魄)한 채 돌아오다.
- 취선(醉仙) 에서 실컷 마시며 강 언덕을 바라보다
- 학명루(鶴鳴樓)에 두 번째 앉아서 환패(環佩) 소리를 듣다.
- 제진(製進)한 천감(天監)ㆍ화산(華山)ㆍ신묘시(神廟試)
- 제진(製進)한 풍요(風謠)
- 제진한 숭화시(嵩華詩)
- 난죽장(蘭竹章)
- 제2권 시(詩)
- 삼봉 선생(三峯先生)의 학의 노래(鶴歌)에 화답하다.
- 의고(擬古)하여 도시(陶詩)를 화답하다.
- 봄밤에 김익지(金翼之)와 같이 이주도(李周道) 의 관동기행(關東紀行)을 구경하다.
- 수찬(修撰) 조중실(曺仲實) 의 시에 차운하다.
- 동년(同年) 이익신(李益信) 막좌(幕佐)의 전라도 근친(覲親)길을 전송하다.
- 유 박사(劉博士) 와 함께 자다.
- 오 부령(吳部令) 에게 주다.
- 감회(感懷)가 있어
- 성남(城南)에 호종(扈從)하다.
- 전재(全齋) 이 선생(李先生)이 추재(樞齋) 이정윤(李正尹)의 어사미(御賜米) 받은 것을 축하한 시에 차운하다.
- 수찬(修撰) 이주도(李周道) 의 근친(覲親) 길을 전송하다.
- 이양실(李養實)을 보내다.
- 춘만 즉사(春晩卽事)
- 안 교감(安校勘) 의 집에서 취해 돌아오다.
- 정방(正房)에서 소회를 쓰다.
- 안 사관(安史官) 댁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주다.
- 자다 일어나
- 사호(四皓)를 읊으면서 배 동년(裵同年) 의 운자를 사용하다.
- 지관사(止觀寺) 서봉(西峯)에 오르다.
- 정혜사(定慧寺)
- 선월사(禪月寺)에서 묵다.
- 이 통주(李通州) 가 부쳐온 시에 차운하다.
- 차운하여 기우도인(騎牛道人)을 보내다.
- 산마을에서 비에 갇히다.
- 김 직장(金直長) 을 보내면서 겸하여 정삼봉(鄭三峯)에게 부치다.
- 이 지인(李知印)의 운에 차하다.
- 행촌(杏村)의 소루(小樓)에 쓰다.
- 삼봉(三峯)ㆍ도은(陶隱) 제공(諸公)을 그리워하다.
- 야음(夜吟)
- 박 교감(朴校勘) 의 귀근(歸覲)을 전송하다.
- 배 동년(裵同年) 에게 희롱삼아 지어 주다.
- 원일 첩자(元日帖字)
- 원일(元日)에 조회하고 물러나와 김 동년(金同年) 에게 주다.
- 김 동년이 차운하므로 또 한 수를 짓다.
- 신흥(晨興)
- 송 시승(宋寺丞) 과 함께 채 규정(蔡糾正) 을 찾아가서 박면의 시에 차운한 두 수
- 입직(入直)하여 석류꽃을 읊다.
- 소나기에 이 부령(李副令) 이 운자를 부르다.
- 합포(合浦)의 막(幕)에 부임하는 이 사군(李使君) 을 보내다.
- 해인사(海印寺)로 사서(史書)를 포쇄(曝曬)하러 가는 이 사관(李史官) 을 전송하다.
- 궁매(宮梅) 두 수
- 예문관(藝文館) 제공이 관 뜰의 솔을 읊었으므로 그 시에 차운하다.
- 도은(陶隱)의 서한을 얻어 보다.
- 대제(待制) 염민망(廉民望)에게 부치다.
- 양촌(陽村)에 당도하다.
- 예문관 제자(諸子)의 매화시에 차운하다.
- 도은(陶隱) 제공의 신효사(神孝寺)의 포도가(蒲桃架) 시에 차운하다.
- 직려(直廬)에서 소회를 쓰다.
- 빗속에 간재(簡齋)의 시운을 인용하여 김익지(金翼之)를 부르다.
- 차운하여 도은(陶隱)에게 부치다.
- 도은의 시를 부록하다.
- 김 중랑(金中郞) 의 춘우시(春雨詩)에 차운하다.
- 예문관 제공의 시에 차운하다.
- 정사년(丁巳年) 입춘(立春)
- 김 당후(金堂後)를 보내면서 인하여 광소[礦]를 떠난 김 정언(金正言)에게 부치다.
- 중추(仲秋)에 이 정랑(李正郞) 에게 부친 두 수
- 병중에 염 고사(廉庫使) 에게 답하다.
- 우점(牛岾)에 오르다.
- 진사 이해(李海)의 귀녕(歸寧)에
- 경효대왕(敬孝大王) 만장(挽章)
- 유 정신공(柳貞愼公) 만사(挽辭)
- 이 충정공(李忠靖公) 만사
- 성 판서(成判書) 만사
- 전 판서(全判書) 만사 3수
- 민 판서(閔判書) 만사
- 설 감승(偰監丞) 부인(夫人) 만사
- 차운하여 천녕(川寧)으로 돌아가는 김수량(金遂良)을 보내다.
- 취가행(醉歌行)을 지어 김 시승(金寺丞) 에게 주다.
- 고열행(苦熱行)을 지어 김익지(金翼之)에게 주다.
-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본 중 대유(大有)를 전송하다.
- 야당(埜堂) 허 총랑(許摠郞) 의 시에 차운하다.
- 사명을 받들고 일본에 가는 정 대사성(鄭大司成)을 전송하다.
- 좌주(座主) 목은 상국(牧隱相國)이 우리 조부 성재(誠齋) 상국에게 시를 부쳐왔으므로 세 수를 차운하였는데, 한 수는 조부의 대작(代作)으로 목은에게 드린 것이고 한 수는 자신이 목은에게 드린 것이며, 한 수는 조부에게 드린 것이다.
- 이지후(李祗候) 의 시에 차운하다.
- 중암(中庵)이 그린 이 주도(李周道)의 기우도(騎牛圖)
- 이주도(李周道) 의 시에 차운하다.
- 충주(忠州)로 가는 판관(判官) 김대소(金大素) 를 전송하다.
- 조계(曹溪) 분 선사(芬禪師)를 보내다.
- 공주(公主) 만사
- 조 밀직(趙密直) 만사
- 박 첨서(朴簽書) 댁의 모란(牧丹)
- 강 대언(姜代言) 을 축하하다.
- 서녘 이웃 이 사인(李舍人) ㆍ이 규정(李糾正) ㆍ안 주서(安注書) 에게 부치다.
- 전라도 안렴사(全羅道按廉使) 정 총랑(鄭摠郞) 을 보내다.
- 유월 열엿샛날 밤에 이 사인(李舍人) 이 안 주서(安注書) 와 술을 들고 찾아 왔으므로 시로써 감사를 표하다.
- 제3권 시(詩)
- 해바라기를 사랑하여 읊다.
- 해바라기를 슬퍼하여 읊다.
- 중추절(仲秋節)에 법왕사(法王寺)에서 달을 구경하다.
- 십육 일 집에 당도하여 전날 밤에 보내온, 이 사인(李舍人) 제공(諸公)의 소루(小樓)에 와 달구경하고 싶다는 서한을 얻어 보고 앞 시의 운을 다시 사용하다.
- 그날 밤에 강 대언(姜代言) ㆍ이 사인(李舍人) 제공을 모시고 삼현(三峴) 북봉(北峯)에 올라 앞 시의 운을 다시 사용하다.
- 차운하여 안 주서(安注書)에게 답하다.
- 용산(龍山)의 추흥정(秋興亭)에 기제(寄題)하다.
- 현릉(玄陵)에 배알(拜謁)하다.
- 두 번째 현릉을 지나다.
- 박전고(朴全古)를 전송하다.
- 박 평리(朴評理) 만사
- 차운하여 장 판관(張判官) 에게 답하다.
- 성 밀직(成密直) 만사
- 영모정(永慕亭)
- 이 수보(李壽父)의 원중(園中)에 있는 네 가지를 읊다.
- 민망(民望)이 부쳐 준 시에 차운하다.
- 이두점(李斗岾)이 달마(達磨)의 상(像)을 그리고 찬(讚)을 청하므로 희롱삼아 절구 두 수를 짓다.
- 경 정렬공(慶貞烈公) 만사
- 국간(菊澗)에 쓰다.
- 성동(城東)에서 대가(大駕)를 맞아 윤 대제조(尹待制詔) 의 시에 차운하다.
- 남씨(南氏) 댁의 매화를 읊다.
- 남씨 댁에서 매화시 삼절(三絶)을 지었으나 두 집에 모두 종이가 없어서 써 놓지 못한 채 여러 날을 경과했는데, 남공이 종이를 구득하여 나누어 보내면서 함께 매화시를 청하기에 또 이를 지어 감사의 뜻을 표하다.
- 격옹도(擊甕圖)
- 왕명비(王明妃)
- 차운하여 최 시중(崔侍中) 에게 받들어 올리다.
- 이 상국(李相國) 의 인월(引月) 개선(凱旋)에 대한 축하시에 차운하여 두 수를 지었는데, 그 하나는 공의 아들 이랑(二郞) 을 위하여 지었다.
- 강 문경공(姜文敬公) 만사
- 감로사(甘露寺) 벽상시(壁上詩)에 차운하다.
- 벽란도(碧瀾渡) 판상시(板上詩)에 차운하다.
- 양광도 안렴사(楊廣道按廉使) 안 간의(安諫議)를 보내면서 십팔운을 짓다.
- 서봉선자(西峯禪者)에게 주다.
- 배 동년(裵同年)과 함께 박연(朴淵)에 노닐면서 그의 시에 차운하다.
- 박연(朴淵)
- 이두점(李斗岾)의 시에 차운하여 함안(咸安)으로 가는 한 사인(韓舍人)을 전송하다.
- 백정 선사(柏庭禪師)에게 주다.
- 삼한국 대부인(三韓國大夫人) 권씨(權氏) 만사
- 서원(西原)으로 근친(覲親) 가는 진사(進士) 한유문(韓有文)을 전송하다.
- 관동(關東)으로 돌아가는 생원(生員) 김한보(金漢寶)를 전송하다.
- 입직(入直)하여 김 대간(金大諫)의 시에 차운하다.
- 설 양광안렴(薛楊廣按廉) 을 전송하다.
- 성중(省中)의 벽에 제(題)하다.
- 야직(夜直)하면서 소회를 쓰다.
- 강릉도 안렴사(江陵道按廉使) 서 좌랑(徐佐郞)을 전송하면서
- 사국(史局)에 입직하여 좌주(座主) 목은 상국(牧隱相國)의 시에 차운하다.
- 공주 판관(公州判官) 송자호(宋子浩)가 왜적에게 함락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 목암(目菴)의 책자에 제하다.
- 사적을 포쇄(曝曬)하러 칠장사(七長寺)로 가는 배 수찬(裵修撰)을 전송한 시에 차운하다.
- 장단(長湍) 노상에서 이두점(李斗岾)에게 부치다.
- 두점이 차운하여 부쳐 왔으므로 또 그 운자를 사용하다.
- 장단에서 짓다.
- 종 호진(好珍)이 꿩을 사냥하여 찬을 만들었으므로 시를 지어 기록하다.
- 제호조(提壺鳥) 소리를 듣고 느낌이 있어
- 용야(龍野)의 노상에서
- 신륵사(神勒寺) 판상시(板上詩)에 차운하다.
- 현봉 묘상인(玄峯妙上人)의 책자에 쓰다.
- 해선자(海禪者)를 보내면서
- 사월 초파일 장단에서 짓다.
- 김해(金海)로 돌아가는 부령(副令) 김방려(金方礪)를 전송하면서
- 절전상인(絶傳上人)을 전송하면서
- 명 대선(明大選)을 전송하면서
- 입직하여 동사(同舍)의 시에 차운하다.
- 치당(致堂) 시(詩)
- 입직하여 양부(兩府)의 기로(耆老)들이 회의한 사실을 듣고 감탄하여 짓다.
- 안질(眼疾)을 두고 두 편의 시를 지어 이두점(李斗岾)에게 부치다.
- 사국(史局)에 입직하면서 또 목은(牧隱)의 시에 차운하다.
- 제4권 시(詩)
- 계해년 제야(除夜)에 간원(諫院)에 입직하다.
- 즉사(卽事)
- 윤 영평군(尹鈴平君) 만사
- 입직하여 여러 동사(同舍)에게 바치다.
- 장단(長湍) 노상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 동정(東亭) 염 상국(廉相國) 이 전후의 문생(門生)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다.
- 호군(護軍) 권문의(權文毅)가 사직하고 시험에 응하여 마침내 고제(高第)에 발탁되었음을 축하한 시에 차운하다.
- 북풍가(北風歌)
- 앵도를 구하면서
- 유월 십육일에 여러 낭관(郞官)들이 경룡(慶龍)에서 모이는데 나는 종기가 나서 가지 못하다.
- 창곡(昌谷) 성 밀직(成密直)이 조 판사(趙判事)와 창화한 시가 무릇 열 한 편이므로 그 시에 차운하여 조 판사에게 부치다.
- 신정운(新亭韻)
- 자서운(自叙韻)
- 견기운(見寄韻)
- 유감(有感)
- 빗속에 감회가 있어서
- 입경운(入京韻)
- 사향운(思鄕韻)
- 요동곡운(邀東谷韻)
- 영죽운(詠竹韻)
- 고열행(苦熱行)
- 십이도(十二徒)의 피열(避熱)
- 익위군(翊衛軍)의 말을 기록하다.
- 경상도 안렴(慶尙道按廉) 이 사예(李司藝)를 보내는 십사 운(韻)
- 전라도 안렴(全羅道按廉) 진 정랑(陳正郞)을 보내는 십사 운
- 숙위포(宿葦浦)
- 가는 길이 산예서구(狻掜西丘)를 경유하게 되자 지난 일이 생각 나서
- 식암(息庵)의 유방(遊方)을 보내면서
- 촌사(村舍)에 자면서
- 고성군(固城君) 만사(挽辭)
- 각암(覺庵)의 죽월헌(竹月軒)에 쓰다.
- 개성군 댁(開城君宅) 낙성연(落成宴)에서 어자 장인(漁者丈人)에게 올리다
- 초옥가(草屋歌)
- 화월음(華月吟)
- 요사(遼使) 의 시에 차운하다.
- 요사(遼使)를 전송하면서
- 유월 이십이일에 중씨(仲氏)와 아버지를 모시고 경룡사(慶龍寺)에 이르렀는데 종일토록 비가 그치지 않아 시 세 수를 짓다.
- 산속의 외로운 오동을 윤 생원(尹生員)에게 비유한 권 대언(權代言)의 시에 차운하다.
- 자해시(自解詩) 네 편을 지어 이두점(李斗岾)에게 봉정하다
- 동년(同年)이 내연(內宴)에 합석하여 은문(恩門) 목은 상국(牧隱相國)에게 봉정하다.
- 연안부(延安府)의 취경루(聚景樓)에 제(題)하다.
- 어촌(漁村) 의 시권(詩卷)에 쓰다.
- 수(樹)자로 운을 단 옛사람의 시에 차운하여 근친(覲親)가는 생원(生員) 이문화(李文和)를 전송하다.
- 상서(上書)하자마자 바로 윤허를 입었고 이어 다시 전문(全文)을 써서 올리라는 명을 내렸으므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시를 지어 여러 동사(同舍)에게 바치다.
- 진포(鎭浦)에서 왜선을 깨뜨린 최 원수(崔元帥) 를 축하하다.
- 금생사(金生寺)로 돌아가는 침상인(砧上人)을 보내면서
- 강릉리(江陵吏) 전사우(全思祐)가 생선을 선물하므로 시를 지어 보내다.
- 호봉 찬(壺峯贊)
-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는 조서사(詔書使) 국자학록(國子學錄) 장보(張溥)를 전송하면서
-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는 조서부사(詔書副使) 단 행인(段行人) 을 전송하면서
- 남을 대신하여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는 단 행인(段行人)에게 증정하다.
- 남을 대신하여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는 고명사(誥命使) 국자전부(國子典簿) 를 전송하다.
-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는 고명부사(誥命副使) 행인(行人) 낙(雒) 을 전송하면서
- 남을 대신하여 국자전부(國子典簿) 를 전송하면서
- 반 이상(潘二相)에게 사성(賜姓)한 것을 축하한 시
- 성균관(成均館) 석상에서 최 박사(崔博士) 를 전별하면서 근(芹) 자 운을 달다.
- 명비곡(明妃曲)
- 오동가(梧桐歌)를 지어 전 판사(田判事) 에게 주다.
- 흑옹행(黑翁行)
- 제5권 시(詩)
- 점마행록(點馬行錄)
- 용천점(龍泉岾)에 묵으면서
- 자비령(慈悲嶺) 승사(僧舍)
- 평양성(平壤城)에 들어가서
- 대동강(大洞江)에서 원수(元帥) 이공(李公)이 만든 관선(官船)을 보고
- 일찍 떠나 안주(安州)로 향하면서
- 동림(東臨) 노상(路上)에서
- 정주(靜州)를 지나면서
- 의주(義州) 판상(板上)의 시에 차운하다.
- 압록강(鴨綠江)에 배를 띄우고서
- 파사부(婆娑府) 들에서 진공(進貢)하는 초운마(初運馬) 일천 필을 사열하고
- 인주(麟州)의 벽상(壁上)에 걸린 공백공(孔伯共)의 시에 차운하다.
- 동림참(東臨站)에 묵으면서 용주 수(龍州守) 김후(金侯)에게 주다.
- 선주(宣州) 노상(路上)에서 감회가 있어
- 대동강(大洞江)에서 환도(還都)하는 당령(唐令)을 보내면서
- 숙주(肅州)에 묵으면서
- 가주(嘉州) 노상에서 설 밀직(偰密直) 을 만난바 그는 중국에서 돌아오는데 선유(宣諭)를 흠몽(欽蒙)하여 본국의 관복은 모두 화제(華制)를 승습하도록 허가하였다는 것이다.
- 단오날 수주(隨州)에서 점마(點馬)하면서
- 태주(泰州)의 산촌(山村)
- 무주(撫州)에 들어가자 장 만호(張萬戶)가 마중나오다.
- 안주(安州) 들에서 점마하면서
- 가주(嘉州)에서 점마하면서
- 평양(平壤)에 돌아와 부벽루(浮碧樓)에 오르다.
- 대동강에서 배를 띄우다.
- 도평의사(都評議使)의 첩지를 얻어보니 또 오운마(五運馬)의 점검을 다 끝내고 서울에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이튿날 평양을 떠나 또 안주(安州)로 향하면서 노상에서 짓다
- 안주 천왕사(天王寺)에 우거하면서 벽상(壁上)에 쓰다.
- 천왕사(天王寺) 산정에 올라 조 소윤(曹少尹)에게 희증(戲贈)하다
- 청천강(淸川江)에서 안무(安撫) 왕공(王公)과 함께 배를 띄우다.
- 매미 소리를 듣고
- 삼운압마사(三運押馬使) 유공(柳公)이 의주(義州)에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시를 지어 부치다.
-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중화(中和) 고을에 이르러 제공(諸公)의 시에 차운하다. 이때 자사(刺史) 여공(呂公)이 친히 생도 십여 명을 가르치다.
- 황주(黃州) 판상시(板上詩)에 차운하다.
- 또 한 수의 절구를 짓다.
- 노상에서 목백(牧伯)에게 사례하다.
- 서북면(西北面)으로 가는 공 백공(孔伯共) 을 보내는 절구 세 수
- 전 우윤(全右尹)의 중숙(仲叔)이 백씨(伯氏)의 상(喪)에 달려가므로 최 판사(崔判事)의 시에 차운하여 보내면서
- 김 정랑(金正郞)과 함께 누상에서 윤무송(尹茂松) 의 시를 차운하다.
- 칠월 십팔일 감회가 있어서
- 왕 판사(王判事) 댁 밤 잔치에 참여하여 병풍 시의 운자를 인용하다.
- 정 총랑(鄭摠郞)이 서도(西都)에서 읊은 시 두 수가 있어 거기에 차운하다.
- 종군(從軍)
- 이 대제(李待制) 의 시에 차운하다.
- 부벽루(浮碧樓) 시에 차운하다.
- 서도잡영(西都雜詠)
- 오월 초하루 일식
- 이 대제(李待制)의 시에 차운하다.
- 연아(演雅)로 정 총랑(鄭摠郞)의 시에 차운하다.
- 집 생각이 나서 벗의 시운을 인용하다.
- 천(踐)을 생각하다.
- 금동(黔童)을 생각하다.
- 우연히 읊다.
- 단오날 이 대제의 시에 차운하다.
- 또 이 대제에게 기증하다.
- 이날 제공(諸公)과 비를 무릅쓰고 배를 띄우다.
- 박 총랑(朴摠郞)의 시에 차운하여 격구(擊毬)의 일을 기록하다.
- 이 대제(李待制)의 서도즉사시(西都卽事詩)에 차운하다.
- 윤 삼재(尹三宰) 가 유도(留都)하다가 하세(下世)했다는 말을 듣고서
- 노상에서 등(鐙)이 끊어지자 이 대제가 가죽 한 가닥을 주었기에 시로써 사례하다.
- 정 총랑(鄭摠郞)의 시에 차운하다.
- 생선을 보내 준 사람에게 사례하다.
- 종형(宗兄) 개성댁(開城宅)에서 호가(胡歌)를 듣고 즐거워서 그 뜻을 풀이하다.
- 서도잡영(西都雜咏)
- 어가(御駕)가 성주(成州) 온정(溫井)에 거둥하므로 호종하여 노상에서 짓다.
- 노변에서 말 멈추고 쉬다가 고라니 새끼를 잡다.
- 고니성(古泥城)에 머물다.
- 자주탄(慈州灘)을 건너 고씨(高氏)의 산정(山亭)을 바라보면서
- 온정(溫井)에 주필(駐蹕)하다.
- 소견(所見)을 기록하다.
- 이 대제의 시에 차운하다.
- 이 대제가 이 내상(李內相)이 왜선(倭扇) 하사 받은 것을 축하하였으므로 그 시에 차운하다.
- 봄날 성남(城南) 즉사(卽事)
- 무진년(戊辰年) 겨울 시월 이십사일 서북면선위사(西北面宣慰使)의 명을 받고 용주(龍州) 노상에서
- 의주(義州)에 당도하여 은문(恩門) 목은 시중(牧隱侍中)을 뵙다.
- 오천(烏川) 정 상국(鄭相國) 의 시에 차운하여 의주 의순관(義順館) 판상(板上)에 제하다.
- 곽주(郭州) 산촌에 묵다.
- 평양성에 당도하다.
- 좌주(座主) 목은 상국(牧隱相國)이 중국 서울로부터 돌아오므로 흥의(興義)로 마중나가면서 노상에서 짓다.
- 제6권 시(詩) 봉사록(奉使錄)
- 봉사록
- 유월 신축일에 출발하여 금교(金郊)에 묵었는데 이날 비가 몹시 내리다.
- 평양성에 유숙하자 도순문사(都巡問使) 육공 여(陸公麗)가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므로 취하여 소회를 기술하다
- 풍월루(風月樓)에서 연꽃을 구경하면서
- 수주(隨州)를 출발하여 노상에서 감회가 있어서
- 의주(義州)에 묵으면서
- 서한을 부쳐 집에 알리다.
- 우중에 압록강을 건너다.
- 탕참(湯站) 노상에서 문맹(蚊蝱)을 두고 짓다.
- 개주성(開州城) 북쪽에 자면서 옛일을 생각하다.
- 용봉참(龍鳳站)을 지나 시냇가에서 휴식하는데 통사(通事) 오진(吳眞)이 작은 고기 수십 마리를 낚다.
- 도중에서 짓다.
- 연산참(連山站) 북쪽에서 자는데 비로소 파절군(把截軍) 및 여진(女眞) 사람의 집이 보이다.
- 감수참(蚶水站)을 지나자 백호(百戶) 왕예(王禮)가 술을 마련하다.
- 두관참(頭館站) 근교에서 묵다.
- 요동성(遼東城)에 들어가면서
- 요동 고성(古城)의 역에 머물면서 듣자니 도사지휘 동지(都司指揮同知) 주(朱) ㆍ호(胡) 양공(兩公)이 일찍이 부름을 받고 서울에 가서 상사(賞賜)를 흠몽(欽蒙)하고 돌아왔으며 입성하던 때에 또 한 지휘(指揮)가 상사전(賞賜錢)을 싸가지고 요동에 와서 북쪽으로 출정하는 군인들에 나누어 주는데 출정나가는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표준하여 차등을 두었다 한다.
- 도사지휘첨사(都司指揮僉事) 장공 흥(長公興)이 자기 집에 잔치를 베풀고 초청하여 위로하므로 짓다.
- 칠월 초하루 정묘에 도지휘사(都指揮使) 가공(賈公) 이 양(羊)과 술을 보내주고 주(朱)ㆍ호(湖) 양공(兩公)이 모두 술과 안주를 보내주다.
- 안산역(鞍山驛)에 자면서
- 우장역(牛莊驛)에 유숙하다. 옛날 유가장(劉家莊)인데 혹은 여가장(女家莊)이라고도 쓴다. 대개 세 글자의 소리가 서로 근사하므로 통용하는 모양이다.
- 사령역(沙嶺驛)을 지나는데 때마침 총병관(摠兵官)이 해선(海船) 수백 척을 거느리고 상사전(賞賜錢)을 수송하여 요하(遼河)에 정박하다
- 늦게 사령(沙嶺)을 떠나 밤에 구십 리를 달려 이튿날 아침에 판교역(板橋驛)에 당도하니 이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모기가 또한 심하다.
- 판교역에서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아직 당도하지 않은 짐꾼이 있으므로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머물러 있다가 저물녘에야 떠나니 길은 질고 말은 미끄러져 의장이 모두 젖다. 밤에 이십 리를 달려서 노구포(盧溝鋪)에 당도하니 앞 길에 물이 깊어 다시 더 나갈 수는 없고 집이 있어 찾아드니 저습하고 울증하여 몹시 괴롭다. 그 집 지붕이 흙으로 덮여 있어 평탄하기가 대(臺)와 같으므로 거기에 올라가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는데 모기가 덤벼들어 괴로움이 전보다 배나 더하다. 여명(黎明)에 떠나 십삼산역(十三山驛)에 당도하니 윤 평리(尹平里) 이하가 다 길에서 미끄러지다. 길은 질고 말은 피곤한 때문이다.
- 연산도 역에서 유숙하는데 이날이 칠석(七夕)이기에 견우 직녀(牽牛織女)를 부(賦)하다.
- 조가장역(曹家莊驛)을 지나다가 노상에서 석탑(石塔)을 바라보다.
- 동관역(東關驛)을 지나는데 흠차(欽差) 두 사람이 있어 군인에게 겨울 옷을 반사(頒賜)하다.
- 사하역(沙河驛)에 묵으면서
- 서천(瑞川) 고성(古城)을 지나면서
- 산해위(山海衛) 천안역(遷安驛)에 유숙하는데 바로 옛날 장성(長城)의 끝에 해당하는 천문진(遷門鎭)이다.
- 유관(楡關)을 지나 노봉역(蘆峯驛)에서 자다.
- 영평위(永平衛) 난하역(灤河驛)에 당도하자 지휘(指揮)가 와서 초청하여 위사청(衛司廳)에 이르러 잔치에 참여하다.
- 지휘 관동(指揮管童)은 전 원 나라 승상(丞相) 야속(也速)의 아들이요 본국 기 평장(奇平章)의 사위다. 그가 나에게 묵어 갈 것을 청했으나 왕사(王事)가 급하다고 대답하고 달빛을 타서 작고 큰 두 난하(灤河)를 건너 칠가령역(七家嶺驛)에서 자다. 노상에서 허 진무(許鎭撫)가 ‘달이 밝아 길 걷기가 좋다.’는 한 글귀를 외므로 나도 따라 뒷구절을 달아 붙이다.
- 영제역(永濟驛)에 묵으면서 노상의 후자(堠子)를 읊다.
- 계주(薊州) 어양(漁陽)에 묵으면서 고금의 이야기를 기술하다.
- 북쪽 오랑캐 거짓 좌승(左丞) 승길(勝吉)이 가족을 데리고 연부(燕府)에 투항하러 와서 이 역에 자는 것을 보고
- 북평성(北平城)에 들어오니 전의 원 나라 구도(舊都)이다.
- 연대역(燕臺驛)에 당도하여 연부(燕府)에 진현하려고 먼저 전의소(典儀所)에 나아가니 소관(所管)이 들어와 아뢰기를 “이날은 선태후(先太后) 기일(忌日)이라 예를 받지 않는다.” 하며 봉사(奉嗣) 섭홍(葉鴻)에게 명하여 반접(伴接)하여 관에 당도하게 했으니 칠월 십오일이었다.
- 십육일 아침에 전의소의 인도를 받아 단례문(端禮門)으로 들어가니 왕은 승운문(承運門)에 좌정하여 예를 받고 또 봉사에게 명하여 먹을 것을 대접하라 하자 봉사는 인도하여 서원(西園) 전선소(典膳所)에 이르러 먹을 것을 내오다.
- 전의소(典儀所) 관원 장공(張公)이 연산 노인(燕山老人)의 관산행려도(關山行旅圖)에 제를 청하다.
- 십칠일에 연부를 떠나려 하자 왕은 섭 봉사(葉奉嗣)에게 명하여 전과 같이 먹을 것을 주게 하고 만류하여 잔치를 베풀어 주므로
- 십팔일 나아가 하직할 때에 왕은 불사(佛寺)에 가 향을 사르니 선태후(先太后)의 기일이라 병위(兵衛)가 매우 많다. 돌아와서 초(鈔)를 주고 또 봉사에게 명하여 먹을 것을 가져다 주게 하다. 이윽고 또 세 왕자가 말을 타고 나란히 나가니 역시 불사에 가서 향을 사르기 위해서인 모양이다.
- 이날 통주(通州) 통진역(通津驛)에 당도하여 배로 떠나다. 옛날의 상간도(桑乾渡)인데 지금은 백하(白河)라 이르며 노하(潞河)라 이름하기도 한다.
- 십구일 직고리(直沽里)에 당도하였는데 남북의 두 하(河)가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다.
- 유하역(流河驛)을 지나면서
- 창주(滄州) 장로현(長蘆縣)을 지나면서
- 전하역(磚河驛)을 지나면서 물을 데워 몸을 씻다
- 비를 무릅쓰고 오교현(吳橋縣) 연와역(連窩驛)을 지나면서
- 덕주(德洲) 안덕역(安德驛)을 지나는데 배 안에 옛날 부채가 있어 윤 평리(尹評理)가 절구 한 수를 쓰도록 청하므로
- 사녀수(四女樹)
- 고성현(古城縣)을 지나면서
- 무성현(武城縣) 갑마영역(甲馬營驛)을 지나면서
- 주중 기사(舟中記事)
- 선판상(船板上)의 시에 차운하다.
- 위가원(魏家院)을 지나다보니 연(蓮)이 물가에 가득하여 십여 리를 연달다.
- 갑구(閘口)를 지나면서
- 안산호(安山湖)를 지나면서
- 황하(黃河)로 들어가다.
- 황하(黃河)
- 운성현(鄆城縣) 양하구(兩河口)를 지나니 하를 파서 남으로 흘러 사수(泗水)로 통하게 되어 있다. 이로부터 회안(淮安)에 이르기까지는 다 순류(順流)이다.
- 문상현(汶上縣) 관하역(關河驛)을 지나고 또 제령현(濟寧縣) 성남역(城南驛)을 지나다.
- 어대현(魚臺縣) 곡정역(谷亭驛)을 지나면서 선판의 시에 차운하다.
- 패현(沛縣) 사정역(泗亭驛)을 지나면서
- 서주(徐州) 협구역(夾構驛)을 지나는데 음우(陰雨)가 내려 배안에서 소회를 쓰다.
- 형산점(荊山店)을 지나면서
- 밤비에 서주성(徐州城) 아래서 정박하다.
- 방촌역(房村驛)을 지나면서
- 비주(邳州) 하비역(下邳驛)을 지나면서 보니 사수(泗水)는 동으로 흐르고 기수(沂水)는 북에서 와 비주성 서쪽에 이르러 합류하다.
- 팔월 초하룻날 밤에 숙천현(宿遷縣) 종오역(鍾吾驛)을 지나면서
- 청하구역(淸河口驛)을 지나면서
- 회음역(淮陰驛)을 출발하면서
- 백마(白馬)ㆍ범광(范光) 두 호수를 지나면서
- 고우주(高郵州)를 지나면서
- 의진현(儀眞縣)을 지나면서
- 양자강(揚子江)을 건너면서
- 용강역(龍江驛)에서 유숙하는데 강을 누빈 석벽에다 새로 관음전(觀音殿)을 지어 돌을 파서 집을 들어 앉혀 반쯤 공중에 솟아나다.
- 봉천전(奉天殿)에서 조현(朝見)한 뒤에 회동관(會同館)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다.
- 문화전(文華殿)에서 배알하다.
- 초여드렛날 대궐에 나아가 사연(賜宴)에 사은하고 이어 하직을 고하다.
- 십 개국의 친왕(親王)이 모두 경사에 조회왔다는 말을 듣고서
- 초아흐렛날 아침에 회동관(會同館)에 있으면서 어가가 영국공(穎國公) 부우덕(傅友德)의 집에 납시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그의 병을 위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이날 용강(龍江)으로 나와 자는데 황제는 왕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 하여 역시 입조(入朝)를 허락하지 아니하다.
- 의진현(儀眞縣)을 지나다가 배 위에서 그 위(衛) 정낭지석(鄭郎只夕)ㆍ김의(金義) 두 지휘를 만나 서서 담화하고 작별하다.
- 재차 고우성(高郵城)을 지나면서
- 배 안에서 가랑비를 만나다.
- 어부(漁夫)
- 회음역(淮陰驛)에서 비바람에 갇히다.
- 소금성역(小金城驛)에 자면서
- 목양현(沐陽縣) 동양역(僮陽驛)에 자면서 중추월을 읊다.
- 흥국역(興國驛)을 지나면서
- 상림도(上林渡)를 지나는데 노인이 배를 젓다.
- 십육 일 밤에 상장역(上莊驛)에서 자다.
- 부동역(付童驛)에 묵으면서 찬성사 안공(安公) 지밀직 황보공(皇甫公) 과 만나 함께 묵고 작별하다.
- 도림역(桃林驛)에 자면서
- 제성현(諸城縣) 동관역(東關驛)에 자면서
- 구서역(丘西驛)에 자면서
- 제교역(諸橋驛)에 자면서
- 포은(圃隱) 정 찬성(鄭贊成)의 시에 차운하다.
- 황현(黃縣) 용산역(龍山驛)에 자면서 흠차(欽差) 두 사람을 만나 함께 술 마시다.
- 등주(登州) 봉래역(蓬萊驛)에 자면서 고정(古跡)을 영회(詠懷)한 네 절구
- 봉래역에 머물러 바람을 기다리면서 벽상(壁上)의 윤 찬성(尹贊成) 시에 차운하다.
- 이튿날 또 앞의 운을 사용하다.
- 새벽 비에 짓다.
- 지명(地名)을 기록한 시 세 수를 지었는데 머물러 있는 동안에 그 지나온 곳을 헤아린 것이다.
- 봉래각(蓬萊閣)에 올라서
- 용신묘(龍神廟)를 배알하고서
- 구월 초이튿날 발선하여 사문도에 정박하고 바람을 기다리면서
- 섬 안의 마을 집에 묵으면서 이웃 아낙네가 밤에 우는 것을 들으니 대개 왜적이 들어와 침략하여 그 남편을 살해한 때문이었다.
- 초사흗날 새벽에 남풍이 불므로 배를 출발하려다가 하나의 총기선(總旗船)이 당도하지 못해서 머물러 정박하고 기다렸다. 그 배가 저물어서야 당도하고 그날 밤에도 남풍이 심히 빨랐는데 또 총기선이 치제(致祭)를 못하므로 천연되었으며, 초나흗날 오후에 이르러서야 제를 마쳤는데 바람이 서풍으로 바뀌어 발선을 못하고 배 안에서 유숙하다.
- 초나흗날 이경(二更)에 바람을 얻어 배를 출발하면서
- 오호도(嗚呼島)를 지나면서
- 초닷샛날 여순구(旅順口)에 당도하자 바람이 순하여 빠르지 않아서 주행이 매우 편안하다.
- 목장역(木場驛)에 자면서 기사(紀事)한 절구 네 수를 짓다.
- 우중에 금주(金州)를 지나면서 도중에서 짓다.
- 밤에 패란점역(孛蘭店驛)에 당도하다.
- 말이 없어서 패란점역에 머물다.
- 초아흐렛날 수레 한 채를 내어 새벽에 출발하다. 무릇 박괘(剝卦)는 구월의 괘로 군자가 득여(得輿)하는 상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중구일(重九日)에 수레를 얻었으니 복(復)이 장차 태(泰)가 되는 길조(吉兆)이다. 기뻐서 기록하는 바이다.
- 수레가 더디어 복주역(復州驛)에 미치지 못한 까닭에 마하포(麻河鋪)에 자다.
- 일찌감치 출발하여 복주역을 지나면서 수레를 버리고 말을 얻다.
- 개주역(蓋州驛)에 자면서
- 재차 안산현(鞍山縣)을 지나면서
- 은미당(隱微堂) 권(卷)에 제하다.
- 춘휘당(春暉堂)
- 수경당(壽慶堂)
- 요동을 출발하여 철장촌(鐵場村)에서 자다. 여기서부터 도라리(都羅里)까지는 사는 사람들이 모두 본국의 유민이다.
- 압록강을 지나면서
- 철주(鐵州)를 지나다가 지주(知州)의 아내가 절사(節死)했다는 말을 들었다. 왜적이 침략해 들어와 지주의 아내가 사로잡혔는데, 강물에 몸을 던지니 왜적들이 건져내고 공경하고 탄복하면서 감히 접근을 못하고 돈으로써 데려가라고 하자 지주가 사람에게 백금(白金)을 꾸어서 주고 데려와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 그런데 또 적에게 사로잡히자 금이 없어 데려 오지 못하니 아내는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마침내 살해당하였다.
- 제7권 시류(詩類) - 남행록(南行錄)
- 남행록
- 영주 소루시(永州小樓詩)의 운(韻)을 차(次)한다.
- 청도군(淸道郡) 청덕루시(淸德樓詩)의 운을 차한다.
- 밀성(密城) 영남루시(嶺南樓詩)의 운을 차한다.
- 김해(金海) 연자루시(燕子樓詩)의 세 운(韻)을 차한다.
- 암둔(巖遯) 박군(朴君)은 시에 능하고 글씨를 잘 쓰며 나의 오랜 친구인데, 만나지 못한 지가 이미 십여 년이다. 이때에 김해(金海)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서로 만나 구정을 펴고, 인하여 나에게 시 수십 편을 주었다. 그 운을 차하여 응답한다.
- 또 암둔(巖遯)이 준 시에 답한다.
- 김해(金海)는 과거부터 수령이 없었으므로, 지난해에 합포절제사(合浦節制使)로 부사를 겸령(兼領)하게 하였는데, 지위가 높고 직책이 중하여 친히 부(府)의 일을 처리할 수 없어서, 또 판관(判官)을 두어 보좌하게 하였다. 나의 친구 이군 감(李君敢)이 바야흐로 판관이 되었는데, 지금 들으니, 절제사의 겸직을 해임하고 부사가 다시 나오매 이군이 생각하기를 ‘절제사가 겸임하지 않는다면 판관도 혁파해야 될 것이다.’ 하여, 곧 벼슬을 버리고 가자, 여러 의논이 말하기를 ‘부사가 비록 다시 나왔더라도 판관을 갑자기 폐할 수 없는 것이다’ 하고, 또 이군의 정사(政事)를 사모하여 모두 다시 오기를 원하였다 한다. 암둔(巖遯)이 시를 지어 보냈기에 나도 차운하였는데, 곧 앞의 시의 운이다.
- 양주(梁州) 성루시(城樓詩)
- 또 앞의 운(韻)을 써서 암둔(巖遯)에게 화답한다.
- 칠장사(七長寺)로 석장(錫杖)을 옮겨 가는 금양사(金陽寺) 규공(圭公)을 전송하는 시
- 허 수주(許隨州)의 정상시(亭上詩)의 운을 차하다.
- 밀성 수(密城守) 여공(余公)이 은어(銀魚)를 보냈으므로, 삼가 영남루(嶺南樓) 위에 있는 목은(牧隱) 시의 운을 써서 두 절구를 지어, 하나는 여공에게 바치고 하나는 군교수관(郡敎授官) 동년(同年) 박군(朴君)에게 바친다.
- 용궁 객사 판상시(龍宮客舍板上詩)의 운을 차한다.
- 천덕사(天德社) 관공루시(觀空樓詩)의 운을 차한다.
- 차운하여 지신사(知申事) 학사(學士) 권 집경 자통(權執經子通)에게 올린다.
- 보주(甫州) 노상에서 도은 선생(陶隱先生)을 작별한다.
- 안동영호루시(安東映湖樓詩)의 운을 차한다.
- 전(牋)을 받들고 신정(新正)을 하례하러 올라가는 용궁 군수(龍宮郡守)를 전송한다.
- 해인사(海印寺)
- 감로사(甘露寺)에 묵으며
- 병중에, 안렴사 성균사예(按廉使成均司藝) 이공 문화(李公文和)가 명을 받고 길에 오르는 것을 듣고도 미처 전송하지 못하였으므로, 절구 네 수를 지어 좌우(左右)에 바쳐 한 번 웃기를 바란다.
- 우인(友人)의 촌거(村居)에 쓴다.
- 익주(益州)에 이르러
- 회포를 쓴다.
- 달밤에 지주사(知州事)가 보낸 술을 받들어 사례한다.
- 중추(中秋)
- 이날 구름이 꼈다가 늦게 개어 달빛이 맑고 밝으므로 또 절구(絶句) 한 수를 쓴다.
- 산을 바라보고 느낌이 있어
- 전주 쉬(全州倅)가 기생을 보내매 받아들이지 않았더니, 뒤에 또 안주와 술을 보냈으므로 시를 올려 사례한다.
- 구월 초하루의 일식(日蝕)
- 아흐렛날 김공 익정(金公益精)과 이공 사정(李公斯正) 등 제군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다가, 김공이 나의 서회시(書懷詩)의 운(韻)을 차(次)하기에 또 차운하여 화답한다.
- 자야(子埜) 강 선생(康先生)이 역마를 달려 찾아보고 작별한 뒤에 시 두 수를 부쳐 왔는데, 그 한 수는 포은 상국(圃隱相國)이 복직되어 남도(南都)에 호가(扈駕)한 것을 치하한 것이므로 그 운을 차하여 화답한다.
- 강 선생(康先生)이 또 장구 사운(長句四韻)을 부쳐 왔는데 그 운을 차한다.
- 또 한 수를 차한다.
- 겨울 십일월에 은혜를 입어 양촌(陽村)으로 석방되어 돌아와서 보능사(普能師)의 운을 차한다.
- 순곡(盾谷) 이공(李公)의 서실(書室)에 쓴다.
- 천태(天台) 복암 상인(馥庵上人)의 수권도(手卷圖) 뒤에 쓴다.
- 내유 선사(乃乳禪師)가 작별할 때 남겨 준 시의 운을 차한다.
- 경오년(庚午年) 섣달 그믐밤
- 신미(辛未) 원월(元月)
- 참외 보낸 죽주 수(竹州守) 박공(朴公)에게 사례한다.
- 박사(博士) 변계량(卞季良)의 편지를 받고 차한다.
- 순채(蓴菜)를 보낸 관찰사 안경량(安敬良)에게 사례한다.
- 도 대로(陶大老)가 부채를 보내고 겸하여 아름다운 글을 보였는데, 팔순(八旬)이었지만 자획이 대단히 가늘었다. 받들어 여러 번 읽으면서 경탄해 마지않았으며, 삼가 절구 넷에 화답하여 두 절은 부채에 감사하고 두 절은 덕을 기록한다.
- 임 영공 습(林令公濕)의 만사(挽詞)
- 여강연집시(驪江宴集詩)
- 매계 상인(梅谿上人)이 평전(平田)을 전송하는 시권(詩卷) 끝에 쓴다.
- 절간(絶磵)
-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평양백(平壤伯) 조공 준(趙公浚)을 축하한다.
- 양 선화(楊禪和)를 전송한다.
- 여천(呂泉) 권 상국 중화(權相國仲和)에게 올리는 시(詩)
- 신인종(神印宗) 옥명상인(玉明上人)을 전송한다.
- 판문하(判門下) 안종원(安宗源)에 대한 만사(挽詞)
- 변 개성(卞開城) 처씨(妻氏)에 대한 만사
- 중을 전송한다.
- 하 개성(河開城)의 화매권(畫梅卷)에 쓴다.
- 삼봉(三峯)이 납촉(蠟燭) 보낸 것을 사례한다.
- 암둔(巖遁)에게 준다
- 암둔의 시의 운을 차하여 보령 감무(報令監務)에게 부친다.
- 암둔에게 부친다.
- 한식(寒食)에 성동(城東)에서
- 정 대경(鄭大卿)의 운을 차한다.
- 우연히 쓴다.
- 청심당(淸心堂)
- 유암 상인(幽巖上人)을 전송한다.
- 굉 상인(閎上人)에게 준다.
- 굉 상인이 나를 찾으매 내가 또 시를 지어 전송한다.
- 화암(華巖) 제생군(濟生君)을 전송한다.
- 제8권 시류(詩類) - 신도팔경(新都八景)
- 시류(詩類) - 신도팔경(新都八景)
- 기전산하(畿甸山河)
- 도성궁원(都城宮苑)
- 열서성공(列署星拱)
- 제방기포(諸坊碁布)
- 동문교장(東門敎場)
- 서강조박(西江漕泊)
- 남도행인(南渡行人)
- 북교목마(北郊牧馬)
- 삼봉(三峯)의 유진관사시(遊眞觀寺詩)의 운을 차한다.
- 삼봉의 동지영련시(東池詠蓮詩)의 운을 차한다
- 장의사(藏義寺)의 청재(淸齋)에 교명(敎命)을 받들고 정당(政堂) 복재(復齋) 정총(鄭摠)을 따라 가서 초사(醮詞)를 지었는데 그 운을 차한다.
- 복재(復齋)가 안양(安養)에게 준 시의 운을 차한다.
- 삼봉에게 올리는 시
-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나가는 이공(李公)을 전송하면서 담자 운(談字韻)으로 짓는다.
- 균정(筠渟)의 운을 차하여 환영(還營)하는 충청도 도절제사(忠淸道都節制使) 이공을 전송한다.
- 해송(海松)의 권자(卷子)에 쓴다.
- 원평(原平) 현판(懸板)에 쓴다.
- 우연히 쓴다.
- 창녕 시중(昌寧侍中) 성여완(成汝完)이 김 정승 사형(金政丞士衡)에게 축하한 시의 운을 차한다.
- 길상법주(吉祥法主)를 전송하다.
- 유영공 반(柳令公潘)을 조상한다.
- 목은 선생(牧隱先生)의 운을 차하여 문생(門生) 정 통주(鄭通州)의 시축에 쓴다.
- 목은 선생의 운을 차하여 유방(遊方)하는 인산 선자(仁山禪者)를 전송한다.
-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한공 상경(韓公尙敬)을 전송한다.
- 한산백(韓山伯) 목은 선생(牧隱先生) 이 문정공(李文靖公)에 대한 만사(挽詞)
- 사제(舍弟) 우(遇)가 앵시(鶯詩) 두 편을 전해 주는데, 그 글 뜻이 완곡하여 이 세상 인정을 남김없이 말하였으니 받들어 읽는 동안에 감발되었다. 지극한 후의를 보답할 길이 없거니와, 어찌 보배로이 간직해서 스스로 반성하는 자료로 삼지 않으랴. 이제 삼가 원운에 의해서 각각 그 뜻을 화답하여 쌍매당(雙梅堂)의 좌우에 바쳐, 더 교정하여 은덕을 끝내 드리우시기 바란다.
- 풍하(風荷)
- 우하(雨荷)
- 우연히 짓는다.
- 중추(中樞) 함승경(咸承慶)에 대한 만사(挽詞)
- 국초군영진적(國初群英眞跡)에 쓴다.
- 차운하여 계림부(鷄林府) 아전 최좌(崔佐)의 시권에 쓴다.
- 송당(松堂) 조 정승 준(趙政丞浚)의 시의 운을 차한다.
- 유월 초열흘날 나라의 부름을 받고 집현전(集賢殿)에 들어가서 기다리는데 모든 관원들은 헤어지고 오직 박사(博士) 윤발(尹發)만이 있었다.
- 승지방(承旨房)에 들어가서 이 학사(李學士)의 시의 운을 차한다.
- 입직(入直)하면서
- 김 중추(金中樞)의 처씨(妻氏)에 대한 만사(挽詞)
- 차운하여 청천백(淸川伯) 이공 거인(李公居仁)에게 준다.
- 평리(評理) 왕흥(王興)에 대한 만사(挽詞)
- 독곡(獨谷)이 여흥백(驪興伯) 민공 제(閔公齊)에게 준 시의 운을 차하고 그 시체(詩體)도 모방한다.
- 영통 사주(靈通社主)가 성 정승(成政丞)에게 부채에 적어 보낸 시의 운을 차한다.
- 옛사람의 화매시(畫梅詩)의 운을 차하여 학사(學士) 이첨(李詹)과 함께 짓는다.
- 학사 이첨이 부채에 적은 시의 운을 차한다.
- 학사 이첨이 해도 도절제사(海道都節制使) 김공 영렬(金公英烈)이 전함(戰艦)을 영조(營造)한 것을 축하한 시의 운을 차한다.
- 학사 이첨이 국청사(國淸寺)에 묵어서 지은 시의 운을 차한다.
- 부채에 적힌 시의 운을 차한다.
- 홍공 길민(洪公吉旼)이 옛집에 돌아가서 지은 시의 운을 차한다.
- 예전에 삼현(三峴)에서 놀던 것을 추억하여 또 한 수를 짓는다.
- 봉안역정시(奉安驛亭詩)의 운을 차한다.
- 용진(龍津)을 건너다가 느낌이 있어 다시 앞의 운을 쓴다.
- 오빈역(吳濱驛)
- 정당(政堂)에 제배되어 당참(堂參)한 뒤에 여러 동렬(同列)에게 드린다.
- 좌정승(左政丞) 성공 석린(成公石璘)의 희우시(喜雨詩)의 운을 차한다.
- 부흥군(復興君) 조공 반(趙公胖)을 조상한다
- 참찬(參贊) 이거이(李居易)의 시권에 쓰다.
- 금 자 운(禁字韻)을 얻어 맹 선생 희도(孟先生希道)의 시권(詩卷)에 쓴다.
- 밀양(密陽)으로 부임(赴任)하는 시사(侍史) 유두명(柳斗明)을 전송하며 송 자 운(送字韻)으로 짓는다.
- 점마사(點馬使)로 가는 시사(侍史) 권홍(權弘)을 전송한다.
- 강원도 도관찰사(江原道都觀察使) 한공 상경(韓公尙敬)이, 소동파(蘇東坡)가 도연명(陶淵明)에게 화답한 시를 주고 또 자기가 지은 관동잡영(關東雜詠)을 보이므로, 받들어 사례한다.
- 영통사(靈通寺) 누각에 쓴다.
- 밀직(密直) 박영충(朴永忠)을 조상한다.
- 가어(家語)와 옥촉(玉燭)을 보낸 강원도(江原道) 사상(使相) 한 상경(韓尙敬)에게 사례한다.
- 난파(蘭坡) 이거인(李居仁)의 연구(聯句)의 운을 차하여 이 정승 거이(李政丞居易)를 축하한다.
- 또 삼 자 운(三字韻)으로 짓는다.
- 차운하여 종이를 선물한 동년(同年) 이함양 항무(李咸陽恒茂)에게 사례한다.
- 관찰사(觀察使) 함부림(咸傅霖)을 전송한다.
- 조우정(趙雨亭)의 운을 차하여 정춘곡(鄭春谷)에게 답한다.
- 춘곡(春谷)의 운을 차한다.
- 다시 앞의 운을 차한다.
- 다시 앞의 운을 쓴다.
- 경기안부의랑(京畿按部議郞) 김단(金端)을 전송한다.
- 판중추(判中樞) 정홍(鄭洪)의 시의 운을 차하여 동년(同年) 판사(判事) 김지(金摯)를 전송한다.
- 갑산(岬山) 주지(住持) 원공 성원(圓公性圓)을 전송한다.
- 진씨 의귀(陳氏義貴)의 집에 있는 사봉(槎峯)을 읊조리며 차운한다.
- 쌍매당(雙梅堂)의 묘유시(猫乳詩)의 운을 차한다.
- 제9권 시(詩)
- 천사(天使) 회남(淮南) 육백첨 옹(陸伯瞻顒)의 춘연곡(春宴曲)을 차한다.
- 백첨(伯瞻)이 준 시의 운을 차한다.
- 백첨이 준 시의 운에 차한다.
- 어느 봄날 백첨이 보낸 시의 운을 차한다.
- 백첨의 조수도(釣叟圖)에 쓴다.
- 어제 조수도를 보고 그 어부가 태공(太公)인 줄 알고 시를 지었더니, 지금 가작(佳作 남의 시를 가리킴)을 보니 곧 자릉(子陵)으로 지었기에, 또 차운하여 태공과 자릉을 합쳐 지었다.
- 오죽도(梧竹圖)를 보낸 백첨에게 사례한다.
- 백첨의 운을 차한다.
- 사신 왔다 가는 예부(禮部)의 육백첨(陸伯瞻)을 전송한다.
- 또
- 시를 대인(代人)하여 보내서 사신 왔다 가는 백첨을 전송한다.
- 사신 왔다 가는 대조(待詔) 단목례(端木禮)를 전송한다.
- 사신 왔다 가는 시승(寺丞) 장근(章謹)을 전송한다.
- 사신 왔다 가는 임 행인(林行人)을 전송한다.
- 사신 왔다 가는 상 감생(相監生)을 전송한다.
- 수의(獸醫) 왕명중 원(王名仲遠) 끝에 쓴다.
- 수의 주기언 덕(周驥彦德)의 자설 끝에 쓴다.
- 독곡(獨谷)의 운을 차하여 삼도조전 도체찰사(三道漕轉都體察使) 임공 정(林公整)을 전송한다.
- 신사년 시월 구일 태상왕께서 평주(平州)의 온정(溫井)에서 목욕하고 계실 때, 전하께서 문안하러 기탄(岐灘)에 묵었는데, 그날 밤에 눈이 조금 내렸다.
- 미륵당(彌勒堂)에 묵어서
- 온정에서 묵으며 기탄의 운을 써서
- 교명을 받들어 사신(使臣) 소경(少卿) 축맹헌(祝孟獻)의 운을 차하여 지어 바친다.
- 교명에 따라 지어 바칠 때 축 소경(祝少卿)의 동지시(冬至詩)를 차한다.
- 대인(代人)하여 보내어 사신 왔다 가는 축 소경(祝小卿)에게 준다.
- 임청(臨淸)의 조은(釣隱)에게 주어 전송하는 시
- 단목 천사(端木天使)를 전송한다.
- 사신 왔다 가는 주 감생(周監生)을 전송한다.
- 교명을 받들어 지어 바쳐서, 사신 왔다 가는 반 행인(潘行人)을 전송한다.
- 단목 천사(端木天使)의 시의 운을 차하여 사신 왔다 가는 동감생(董監生)을 전송한다.
- 천사(天使) 유사길(兪士吉)이 동팔참(東八站) 노상에서 지은 시의 운을 차하여구호(口號)한다
- 사냥을 구경하면서 천사(天使) 세 대인(大人)에게 드린다.
- 또 앞의 운을 써서 천사 세 대인에게 드린다.
- 천사(天使) 첨도어사(僉都御史) 유공 사길(兪公士吉)의 시의 운을 차한다.
- 사신 왔다 가는 내사(內史) 양공(楊公)을 전송한다.
- 첨도어사 유공 사길이 환국할 때 임금께서 신(臣) 근(近)에게 압록강까지 호송하도록 명하였다.
- 홍무(洪武) 29년 여름에 내사(內使) 온공(溫公)이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의 명을 받들고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왔을 때, 우리 노왕(老王)께서 신(臣) 근(近)에게 명하여 그를 따라 경사(京師)에 가서 고황제의 위유(慰諭)를 받아 오게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35년이 지난 올해 겨울에 온공이 또 새 천자의 조명(詔命)을 받들고 왔으므로 우리 왕께서 또 신 근에게 명하여 압록강까지 호송하도록 하였다.
- 사신 왔다 가는 왕 천사(王天使)를 전송한다.
- 대사헌(大司憲) 성석용(成石瑢)을 조상한다.
- 김제 현령(金堤縣令) 이백찬(李伯撰)을 전송한다.
- 공원(貢院)에서 살구꽃을 보고 병풍에 적혀 있는 시의 운을 써서 제공에게 드린다.
- 교명을 받들어 태상왕(太上王)께서 지은 시의 운을 화답하여 바친다.
- 사절을 받들고 가는 우사(右使) 이직(李稷)을 전송한다.
- 완산 부윤(完山府尹) 윤공 곤(尹公坤)을 전송한다.
- 근친 가는 수재(秀才) 양윤회(梁允悔)를 전송한다.
- 은대(銀臺)의 여러 학사(學士)의 영매시(詠梅詩)의 운을 차한다.
- 완산(完山)에 부임하는 평양군(平陽君) 조공(趙公)을 전송한다.
- 독곡(獨谷)의 운을 차하여 대언(代言) 이승적(李升適)이 성균관의 시관(試官)이 된 것을 축하한다.
- 유 소년 방선(柳少年方善)의 산수도(山水圖)에 쓴다.
- 조 정승 준(趙政丞浚)의 부인의 만사(挽詞)
- 독곡(獨谷) 성 정승 석린(成政丞石璘)이 이 정승 거이(李政丞居易)의 청락당(淸樂堂)에 쓴 시의 운을 차한다.
- 차운하여 우정(雨亭)이 순채국을 대접해 준 데에 사례한다.
- 임소(任所)로 가는 변 문주 처후(邊文州處厚)를 전송한다.
- 계미년 정월 스무사흗날 큰 비가 왔다.
- 전서(典書) 김첨(金瞻)이 다녀갔다.
- 김 동년 지(金同年摯)에게 부쳐 주면서 대나무를 청한다.
- 쌍매당(雙梅堂)이 옛사람의 운을 써서 차한 어부사(漁父辭)
- 공암(孔巖) 허공 주(許公湊)가 술에 취해 말에서 떨어졌기에 희롱 삼아 절구(絶句) 하나를 지어 준다.
- 소격전(昭格殿)에 쓴다.
- 계미년(癸未年) 구월 그믐날 봉향(奉香)의 임명을 띠고 마산역(馬山驛)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는데 그날 밤에는 비가 내렸다. 아침에 벽제역(碧蹄驛)에 이르니 담 밑에 국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 상주 목사(尙州牧使)로 나가는 전 지신사(知申使) 권공 집경(權公執經)을 전송한다.
- 다시 걸죽시(乞竹詩)의 운을 써서 김 동년 지(金同年摯)에게 부친다.
- 관찰사 장자충(張子忠)을 전송한다.
- 병중에 다녀간 김 동년 지(金同年摯)에게 술을 보내어 사례한다.
- 김 거사(金居士)가 눈 속에 소를 타고 추암(皺巖)에서 논다.
- 김 시중(金侍中)이 나귀를 타고 강서(江西)의 혜원 상인(惠袁上人)을 찾았다.
- 서연(書筵)에서 세 절구를 적어 여러분께 드린다.
- 감목(監牧) 여러분에게 부친다.
- 운암 선로(雲巖禪老) 성민(省敏)의 시의 운을 차한다.
- 독곡(獨谷)의 운을 차하여 대언(代言) 김리(金利)를 축하한다.
- 찬성사(贊成事) 남재(南在)의 운을 차하여 직제학(直提學) 설칭(薛偁)에게 준다.
- 독곡(獨谷)의 운을 차하여 참지 의정(參知議政)이 된 대언(代言) 이승적(李升適)을 축하한다.
- 철화 감무(鐵化監務) 김반(金泮)을 전송한다. 일찍이 그가 어버이를 생각한 시문 몇 편이 있었다.
- 제10권 시(詩)
- 독곡(獨谷)의 운(韻)을 차하고 그 시체(詩體)를 본떠서, 대언(代言) 윤사수(尹思修)를 축하한다.
- 쌍매당(雙梅堂)이 보낸 시의 운을 차한다.
- 설씨 삼절당(偰氏三節堂)의 시권(詩卷)에 쓴다.
-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 여공 칭(呂公稱)을 전송한다.
- 이 첨서(李僉書)의 운을 차하여 관찰사(觀察使) 전백영(全伯英)을 전송한다.
- 문생(門生) 장원(壯元) 대간(大諫) 이은(李垠)이 배를 보냈으므로 시로 회답한다.
- 참판(參判) 윤 사평 지(尹司平祗)의 시에 운을 차한다.
- 차운하여 정당(政堂) 정탁(鄭擢)에게 부친다.
- 을유년(乙酉年) 정조(正朝)의 사연(賜宴)에서 독곡의 시운을 차한다.
- 을유년 정월 십사일밤 꿈에 제정 선생(霽亭先生 이달충(李達衷)의 호)을 보고, 깨서 시를 지어 그 손자인 참지(參知) 이승적(李升適)의 좌하에 올린다.
- 도총제(都摠制) 김을귀(金乙貴)에 대한 만사(挽詞)
- 상 자 운(相字韻)으로 이 사군 은(李使君殷)의 시권(詩卷)에 쓴다.
-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문안공(文安公)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을 조상한다.
- 성산군(星山君) 우정(虞庭) 이공 일직(李公一稷)이 윤 칠원 지(尹漆原祗)의 신정(新亭)에 쓴 시의 운을 차한다.
- 설중(雪中)에 오언율시(五言律詩) 한 수와 칠언절구(七言絶句) 두 수를 지어, 학사(學士) 이낙보 내(李樂甫來)의 좌하에 올리니, 이 시를 우정(雨亭) 조박(趙璞)에게 전송(傳誦)하여 함께 교정해 주기를 바란다.
- 가야산(伽倻山)으로 가는 중을 전송한다.
- 먹(烏玉)을 준 충청도 사상(忠淸道使相)에게 사례한다.
- 학령선(鶴翎扇) 두 자루를 보낸 김 감로 대선사(金甘露大禪師)에게 사례한다.
- 내원당(內願堂)의 성민(省敏)이 부채에 적어 보낸 시의 운을 차한다.
- 차운하여 근친(覲親)가는 문 상인(文上人)의 문생(門生)인 주면(周冕)의 아우 중[僧]을 전송한다.
- 동년(同年)인 노곡(魯谷) 이항무(李恒茂)의 시의 운을 차한다.
- 차운하여 길재 선생(吉再先生)의 시권에 쓴다.
- 소감을 적어 지신사(知申事) 박공 석명(朴公錫命)에게 부친다.
- 을유년(1345, 충목왕11) 시월 이십육일 밤 꿈에, 시중(侍中) 철원(鐵原) 최공 영(崔公瑩)이 높은 누각에 올라 손과 함께 술을 마시고, 나는 누각 아래에서 바라보면서 시 한 구를 지어 ‘우뚝 솟은 누각 하늘에 닿았는데[高樓突兀倚靑空]’ 하고는 그 다음을 잇지 못하는데, 공이 사람을 시켜 나를 부르고 내 호상(胡床)을 가져 오라 하였으나, 나는 주춤거리고 오르지 못한 꿈을 꾸었는데, 깨어서야 사운(四韻)을 채워 공의 손주 사위 대언(代言) 맹공(孟公)에게 바쳐 경모하는 뜻을 붙인다.
- 정당(政堂) 이원굉(李元紘)에 대한 만사
- 병중에 관(館)에서 숙직하는 아우 우(遇)에게 부친다.
- 우심(牛心)을 보낸 필선(弼善) 한상덕(韓尙德)에게 사례한다.
- 임정기(林亭記)를 지어 준 데에 사례한 대사성(大司成) 장덕량(張德良)의 시의 운을 차한다.
- 차운하여, 명을 받들고 목은(牧隱)의 묘비를 쓰기 위해 한산(韓山)으로 가는 공 한성 부(孔漢城俯)를 전송한다.
- 우정(雨亭) 조안석(趙安石)이 꿩과 시를 보내 왔기에 그 운을 차하여 사례한다.
- 일구 상인(一漚上人)의 시권에 쓴다.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공 사형(金公士衡)에 대한 만사
- 연성군(延城君) 김공 노(金公輅)의 평양 출진시(平壤出鎭詩)의 운을 차하여 그 시권에 쓴다.
- 귀머거리
- 어약(御藥)을 내리시고 의관(醫官)까지 보내시어 병을 보살피는 은총을 입었다.
- 자견(自遣)
- 우정(雨亭) 조공 박(趙公璞)이 문병하러 와서 율무[薏苡]를 주고 갔다는 말을 듣고서
- 설자화(薛自華)가 왕명을 받들고 와서 뜸질하였다.
- 즉사(卽事)
- 동전(東殿)에서 감귤(柑橘)을 내리신 은혜를 입었다.
- 소감(少監) 김조(金臊)에게 준다.
- 자영(自詠)
- 동양주(東陽酒)를 내리셨다.
- 문생(門生) 정환(鄭還) 등 열한 사람이 찾아왔다.
- 관각(館閣)의 여러 학사(學士)가 예문관(藝文館)에 모였다는 말을 듣고 감회를 쓴다.
- 즉사
- 우연히 쓴다.
- 회포를 쓴다.
- 회포를 쓴다.
- 밤에 누워서
- 나비를 보고
- 병아리
- 스스로 비웃는다.
- 분내(粉乃)가 거문고를 탄다.
- 스스로 칭찬한다.
- 스스로 헐뜯는다.
- 살구꽃
- 도(蹈 권근의 아들)의 춘소대월시(春宵對月詩)의 운을 차한다.
- 판사(判事) 정절(鄭節)에게 부친다.
- 분연(盆蓮)
- 궁주(宮主 후비(后妃))가 음식을 보냈다.
- 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 민공 제(閔公霽)에 대한 만사
- 이가 빠졌다.
- 자영
- 재탕(灰湯)으로 갈증을 그치게 하였다.
- 손이 왔다.
- 수박(西苽)
- 두부(豆腐)
- 김장(蓄菜)
- 오가피(五加皮)
- 오미자(五味子)
- 우연히 쓴다.
- 문생 전 참군(參軍) 김지형(金知逈)을 추천한다.
- 도(蹈)가 음식을 보냈다.
- 배(梨)
- 감(柹)
- 율무(薏苡)
- 생강(薑)
- 선녀(選女)
- 밤에 앉아서
- 산 노루를 보내준 의정부(議政府)에 사례한다.
- 생일 자수(生日自壽)
- 문생(門生) 참찬(參贊) 김과(金科)의 시의 운을 차한다.
- 집의(執義)인 아우 우(遇)의 시의 운을 차한다.
- 집의(執義)인 아우의 시의 운을 차한 시 네 수를 이조(吏曹)의 여러분에게 올린다.
- 친구의 화매시(畫梅詩)의 운을 차한다.
- 병든 학(鶴)
- 아들 길천군(吉川君)이 또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
- 춘곡(春谷)이 내 시를 차운하여 부쳐 왔기에 또 그 운을 써서 화답한다.
- 다시 앞의 운을 써서 춘곡에게 화답한다.
- 유방(遊方)하는 중을 전승한다.
- 다시 사자 운(絲字韻)으로 총제(摠制) 안노생(安魯生)에게 화답한다.
- 알젖(卵醢)과 햇대구(大口魚)를 보낸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철성군(鐵城君) 이공 원(李公原)에게 사례한다.
- 입춘 첩자(立春帖子)
- 문병 왔던 영의정(領議政) 하공(河公)에게 사례한다.
- 차운(次韻)하여……
- 영의정 하공 륜(河公崙)의 감흥시(感興詩)의 운을 차한다.
- 호정(浩亭)의 시를 아울러 기록한다.
- 허 한성 구(許漢城衢)가 눈 읊은 시의 운을 차한다.
- 차운하여 어육(魚肉)을 보낸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 임공 정(林公整)에게 사례한다.
- 제11권 기류(記類)
- 보암기(寶巖記)
- 고간기(古澗記)
- 어촌기(漁村記)
- 백운헌기(白雲軒記)
- 목암기(牧菴記)
- 사불산 미륵암 중창기(四佛山彌勒庵重創記)
- 영해부 서문루기(寧海府西門樓記)
- 흥해군 신성문루기(興海郡新城門樓記)
- 용안성 조전기(龍安城漕轉記)
- 졸재기(拙齋記)
- 회월헌기(淮月軒記)
- 제12권 기류(記類)
- 제13권 기류(記類)
- 농은기(農隱記)
- 청하현 의창 해사기(淸河縣義倉廨舍記)
- 극적루기(克敵樓記)
- 덕방원기(德方院記)
- 광탄원기(廣灘院記)
- 오관산 성등암 중창기(五冠山聖燈庵重創記)
- 독락당기(獨樂堂記)
- 오대산 사자암 중창기(五臺山獅子庵重創記)
- 덕안전기(德安殿記)
- 우정기(雨亭記)
- 대화루기(大和樓記)
- 월파정기(月波亭記)
- 제14권 기류(記類)
- 신재기(信齋記)
- 오대산 관음암 중창기(五臺山觀音庵重創記)
- 식파정기(息波亭記)
- 이천신치향교기(利川新置鄕校記)
- 임정기(林亭記)
- 영흥부 학교기(永興府學校記)
-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五臺山西臺水精庵重創記)
- 법왕사 조사당기(法王寺祖師堂記)
- 금교역루기(金郊驛樓記)
- 남곡기(南谷記)
- 월강기(月江記)
- 상주 풍영루기(尙州風詠樓記)
- 제15권 서류(序類)
- 경상도 안렴사(慶尙道按廉使) 여 전리총랑(呂典理摠郞)을 전송하는 서(序)
- 당후(堂後) 김 이음(金爾音)을 전송하는 서
- 안동(安東)으로 근친 가는 생원(生員) 이문화(李文和)를 전송하는 서
- 양산(陽山)으로 가는 김 소년 자지(金少年自知)를 전송하는 시(詩)의 서
- 이생 반(李生蟠)에게 주는 서
- 화엄종(華嚴宗) 중덕(中德 법계(法階) 중의 하나) 의침(義砧)에게 주는 서
- 교주도 안렴사(交州道按廉使) 임구(林球)를 전송하는 서
- 새 진사(進士) 한유문(韓有紋)을 전송하는 서
- 우야운 상인(玗野雲上人)에게 주는 후서(後序)
- 운설악 상인(雲雪岳上人)을 전송하는 서
- 김 중현 방려(金仲顯方礪)에게 주는 시의 서
기타 40권까지 많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