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탄10용사

1 개요

1949년 38선 충돌에서 조선인민군 육군 토치카자폭 공격한 대한민국 육군 군인들.
이들 10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부덕 이등상사, 박창근 하사, 박평서·황금재·오제룡·윤옥춘·김종해·이희복·양용순·윤승원 상등병

2 상황

6.25 전쟁 발발 이전인 1948년부터 남북 간의 무력 충돌은 38선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무력 충돌은 남북이 정식으로 국가를 수립한 1948년 후반기 이후부터 그 전보다 격화했으며 개성도 이러한 충돌이 격화하는 곳 중 하나였다.

1949년 5월 3일, 조선인민군 육군은 개성의 송악산 고지와 진지 공사 중이던 대한민국 육군의 여러 진지를 기습하여 함락시켰다. 기습당한 국군의 육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즉시 반격했으나 실패했다. 고지에 북한 육군이 방어 시설로서 구축한 토치카를 제압하지 않고선 반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 전개

5월 4일 낮 12시, 박창근 보병하사(현 육군 상병~병장에 해당)가 먼저 수류탄을 들고 토치카에 접근하여 토치카 하나를 파괴했다.

이와는 별개는 한국 육군은 토치카를 파괴하려는 특별공격대를 조직했고 토치카를 파괴하려고 81mm 박격포 포탄과 수류탄을 연결해 급조한 폭탄을 각자 들고 최대한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접근하여 토치카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즉 자폭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자폭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화력 엄호 없이 보병들만 폭탄을 들고 돌진하여 토치카를 파괴하라는 건 사실상 자폭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제1사단 제11연대 하사관교육대 분대장 서부덕 이등상사가 제일 먼저 자원하고 뒤이어 자원한 특별공격대 8명까지 합해 총 9명은 이 날 오후 14시 토치카로 접근했고 북한 육군의 빗발치는 포화를 뚫고 토치카에 돌격하여 자폭하나, 당시 한국 육군의 관측 기록으로는 4개만 발생한 폭연을 근거로 토치카 4개만 파괴됐으리라 추정된다.

이 자폭 공격으로 북한 육군 토치카 상당수가 무력화했고 한국 육군은 즉시 반격하여 송악산 고지를 탈환했다.

4 이후

그 후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서 당연히 추앙받은 이 군인들은 1950년 12월에 훈장을 추서받으며, 서부덕 이등상사는 중위로, 나머지 9명은 일등상사로 특진했다. 전후에도 국군에서 육공군 안가리고 정훈·정신교육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존재가 되었다. 이 군인들이 소속된 제11연대의 부대명은 아예 '육탄부대'가 되었다.

이 군인들을 다루는 영화 낙동강은 흐르는가가 제작되기도 했고 육탄10용사를 기리는 군가가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매년 이 군인들을 기리는 추모 행사도 열리며 이 군인들의 출신지에는 충혼탑이 세워지기도 했다. 지금도 1사단 예하 부대 상당수는 부대 입구에 육탄10용사 관련 문구를 써 넣는다. 병점역동탄신도시 일대를 잇는 도로 중 하나는 이름부터 10용사로. 물론 이것은 도로가 지나가는 반송동에 있는 육탄10용사기념공원에서 따온 것이지만, 용사 중 한 명인 김종해가 동탄 출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이 군인들이 자폭 공격한 송악산 일대는 휴전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으로 넘어가면서 현재는 미수복 지역이다.

현재 매년 5월 4일마다 파주 통일공원에서 육탄10용사 추도식이 열린다.

5 생존설·귀순설

육탄10용사가 생존해 북한 육군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 육탄10용사 중 단독으로 돌입해 자폭한 박창근 하사 외 9명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머지 9명도 폭연이 확인된 것은 4개이니 최소한 5명은 자폭에 실패했다. 이 군인들은 접근 중 전사했을 수 있으나 포로로 잡혔을 개연성도 있는 데다가 육탄10용사 중 특별공격대장인 서부덕 이등 상사와 오제룡 상등병이 '평양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 군인들은 귀순해 잘산다는 것과 자신들의 교우·친척·인척 관계를 자세히 말했고 목소리도 실제와 비슷했다. 해당 내용을 잘 정리한 포스팅

실제 육탄10용사가 목걸이를 건 사진을 평양에 도착한 군인들이 보고 놀랐다는 말이 있다. 해당 주장 글

휴전 후 10년이 지난 1964년에 채록된 군 관계자의 증언으로는, 육탄10용사의 활약 자체가 거짓말로서 이 군인들은 박격포탄 운반 도중 북한 육군에게 포로로 잡혔고 당시 알려지기론 전사했다는 박 모 소위만 탈출했는데 당시 박 모 소위와 친분이 있던 최경록 중령사단장이 몹시 화나서 박 모 소위를 총살하려고 하자 사실 아까 한 보고는 잘못된 것이고 실제로는 모두 토치카에 장렬하게 자폭했다면서 가짜로 다시 보고했다는 것이다. 군 상부에서는 이러한 것도 모르고 이것을 이용해서 사기를 고취하게 하려고 널리 알리게 되었다는 것. 하필 이 증언이 수록된 도서가 국방부 6.25 참전자 증언록인 터라 이 책자만 가지고는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나중에 증언의 신빙성이 문제가 되었는지 내용이 삭제되었으며, 군 정훈이나 전쟁기념관 측에서는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교육하니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아서 생각할 것. 이것도 통일되고서야 진상이 밝혀질 얘기일 것이다. 최병록 중령은 후에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증언한 김익렬박정희 정권 때 고위직을 역임하게 된다.[1]

6 결론

결론을 말하면, 완전한 왜곡은 아니다. 육탄10용사 중 일부는 실제로 장렬히 자폭한 것이 확인되어 이 군인들이 희생한 덕분에 송악산 고지를 탈환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자폭 공격을 무조건 찬양해야 할지도 논란이 있다. 잘못하면 일본 육군반자이 어택이나 對전차 총검술 같은 삽질로 얽힐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육탄10용사의 행적을 찬양하는 쪽에서도 되도록이면 이 군인들의 '희생 정신'만을 기려야 하지 이 군인들의 자폭 자체는 어디까지나 극도에 도달한 수단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7 기타

한국전쟁 당시 이러한 자폭 돌격과 對전차 오함마術을 행한 일은 육탄10용사들 외에도 꽤 많았으나, 이렇게 분전했는데도 초기 한국 육군의 오래되어 바로잡기 어려운 문제점인 열악한 장비와 북한의 기습 침공의 충격 탓에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전방에 배치된 여러 사단은 대부분 참패하여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육탄10용사와 비슷한 예로 '육탄 11 용사'가 있다. 개전 초기의 춘천-홍천 전투에서 한국 육군 장병 11명이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 육군 기갑부대를 공격해 자주포전차 10대를 파괴하거나 노획했다. 이들은 위의 육탄10용사와는 달리 전원 생존하였다.

이러한 자폭 돌격이 한국전쟁 당시 성행한 이유는 대한민국 육군의 초장기에 미군이 제공해서 개전 전에 보유하던 바주카와 중화기로는 밀려오는 북한 육군의 전차부대를 도저히 방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M3 105mm 견인곡사포가 그나마 조금 유효하긴 했지만 물량이 부족하여 무작정 쏴댈 수가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대전차 지뢰를 직접 가지고 돌격하여 터뜨리는 전술을 최후의 수단으로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연합군이건 추축군이건 대전차병기가 없고 자신이 적 전차를 빨리 막아야 할 상황에서 다들 한 번 정도는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게임 콜 오브 듀티 에서 적 전차를 파괴할 때 다수한 아군이 전차 위로 올라가서 해치를 따고 수류탄을 밀어넣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고스트에선 주인공이 장갑차 위로 직접 올라가서 열린 해치에 수류탄을 집어 넣어서 파괴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그 막장이라던 이탈리아군도 시도한 적 있다.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이탈리아 육군의 폴고레 공수사단은 영국 육군의 전차 부대를 상대로 이와 비슷한 전술을 구사했다. 대전차포로 전차의 발목을 묶고 제1차 방어선의 병력이 전차의 후미와 측면으로 접근하여 대전차지뢰와 화염병을 투척하는 방식으로 공격하였다. 놀랍게도 이 군인들은 이탈리아군의 악명과는 반대로 3일간 전차 110여 대를 격파하는 대단한 업적을 달성한다.


동명의 군가도 있다. 항상 10용사가 아닌 '십'용사라고 쓰인다(...).

육군부사관학교에서는 서부덕 이등상사를 부사관의 모범으로 삼으면서 추모하고 있다.
  1. 그런데 김익렬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한국전쟁 전반기·후반기에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온갖 비난받고 찬밥을 먹었던 사람이었다. 그 이유인즉 4.3 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 명령을 거부하고 실제 원인은 서북청년단에게 있다고 주장했던 것.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개념 있는 육군 장교로 나왔다 끌려나가는 바로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