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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혜훈 (李惠薰) |
출생일 | 1964년 6월 15일 |
출생지 | 경상남도 마산시 |
최종 학력 | UCLA 경제학 박사 |
정당 | 새누리당 |
지역구 | 서울 서초구 갑 |
의원 선수 | 3 |
의원 대수 | 17, 18, 20 |
소속 위원회 | 기획재정위원회 |
현직 | 제20대 국회의원 |
약력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교수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새누리당 최고위원 |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며, 경제학자 출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종교는 개신교이다.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과 4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故 김태호 전 장관이 시아버지이다. 남편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김영세 교수.
1964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미국 UCLA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졸업하였다. 박사는 계량경제학을 전공해서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영국 레스터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KDI 연구원,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경제학자로 활동하였다. KDI 연구원 시절 사수가 유승민 의원이었다. 그래서인지 유승민 의원이 유력한 정치인으로 떠오르고, 이혜훈 의원도 친박계에서 비박계로 변한 다음부터는 줄곧 유승민계로 분류되고 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에서 제3정책조정위원장, 제4정책조정위원장, 여의도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박계로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1년 한나라당 사무부총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회선에 밀려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어 2014년까지 역임하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로 친박에서 벗어나 비박(멀박)이 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몽준 국회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새누리당의 서울특별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정몽준에게 패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윤선을 불과 13표차이로 제치고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에 다시 출마하여, 54,117표(57.0%)를 얻어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총선 패배의 주된 책임은 친박계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2016년 5월 15일 새누리당 비대위원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나, 당내 친박계의 반발로 전국위원회에서 추인을 받지 못함으로써 무산되었다. 2016년 6월 2일 출범한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회에서는 제외되었다.
2 정치노선
재벌에 대해서 비판적이며 새누리당에서도 대표적인 경제민주화론자다. 새누리당이 친기업적 성향이 강하다는 인식을 감안하면 특이한 부분이기도 하다.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 등을 친재벌 정책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판해왔다. 2010년 이혜훈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이유는 도덕성 시비가 있어도 경제만큼은 살릴 거라는 ‘경제대통령’에 대한 기대였지만, 그 결과는 경제 박탈감, 반MB, 반한나라로 몰렸다"고 비판하였다.기사링크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07년 한나라당의 제17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MB의 BBK 논란과 4대강 사업, 경제 정책 등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이명박 정부 임기 중에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주장을 하여 주목받았다. 고환율 - 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또한 비밀 기록 폐기 실정법 위반을 비판했고 제2롯데월드 건설에 대한 정권 차원의 특혜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서울특별시 서초구 甲 지역구 후보에 혼자 공천 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천탈락하였다.[1]
2013년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있으면서 "4대강 사업 담합 의혹 조사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해 일벌백계와 엄벌할 것을 부탁한다"고 주장했다.기사링크
2012년 18대 대선 전후한 시기까지만 해도 분명한 친박계, 그것도 원조 친박계 인사였지만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점점 정부로부터 멀어져갔다. 19대 총선에서도 그녀는 공천을 받지 못하였고, 박근혜정부 출범 후에도 기용되지 못하였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추정컨대 이혜훈 의원의 입장에서는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를 더 이상 지키지 않는 모습 보이고 정부의 여러 실정과 계파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결별한 것으로 보여진다.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이자 박근혜 대선 캠프의 일원이었으나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온 김종인 대표나 국민의당의 이상돈 의원과 비슷한 케이스다.
그렇게 박근혜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 줄곧 비판적인 논조를 제시해왔으며, 그녀도 자연스럽게 비박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기사링크 대선 당시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의 실천을 강조했으며,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을 비판하였다. 또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초이노믹스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했다. 기사링크
특히 재벌과 대기업 총수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경제 사범 특별 사면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다. 이혜훈 의원은 "재벌 총수들이 풀려나 경제가 살아난 적이 없으며, 재벌 총수들을 자꾸 그렇게 사면해주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기사링크 20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정되었으며, 재벌 총수나 임원도 법을 어기면 특경경제범죄로 처벌을 강화하고 사면을 금지 하는 법안을 제1호로 제출할 것임을 예고하였다. 기사링크
이렇게까지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2]을 혹독하게 내뱉었는데도 20대 총선에서 친박계 주요 인사인 조윤선 후보와의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받고 강남권의 다른 선거구의 같은 당 출신 후보들이 예전과 달리 접전 끝에 겨우겨우 신승을 했거나, 아예 낙선을 하는 와중에 혼자서 당연한 듯 압승을 했다는 점에서 지역조직이 꽤나 탄탄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2015년 JTBC 한국 사회 4인 논객 토론의 패널로 출연하였다. [3] 당시 정부의 경제사범 특별사면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노회찬曰 "정의당에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ㄷㄷ
3 논란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이슬람과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4]기사참고
2016년 퀴어문화축제에서 호모포비아들의 맞불집회인 동성애 반대 대국민집회에 참석하여 연단에까지 섰다.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믿음 위에서 이루는 가정이 정상적이라고 주장하여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다.
근 세 번 동안 차별금지법을 입법한 것이 정부이며 점점 그 강도가 강해지고 있다면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입법 금지에 나서야 한다고 하거나 이슬람 할랄 단지에 관해 이슬람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등 특정 종교의 교리에 기반하여 헌법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침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차별금지법을 굳이 법제화할 필요가 있느냐 등 반론들도 존재하며 이슬람 할랄단지 조성은 어느 지역구 주민들이나 자기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강한 편이기도 하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 한나라당 | 54,103표 (56.4%) | 당선 (1위)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 한나라당 | 48,682표 (75.0%) | 당선 (1위)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 새누리당 | 54,117표 (57.0%) | 당선 (1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