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머스 앤더슨

(폴 토마스 앤더슨에서 넘어옴)
1999년, 톰 크루즈와 함께
감독 커리어 초창기 시절
2014년의 모습. 2010년대에 들어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Paul Thomas Anderson
(1970~ )

토마스 앤더슨이 아니다. 폴 W.S. 앤더슨[1]도 아니다

1 개요

미국의 영화 감독. 팬들은 줄여서 PTA라고 부른다.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감독
현시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영화인 중 한명

1970년생으로 나이가 비슷한 대런 애러노프스키크리스토퍼 놀란이랑 같이 묶여서 언급될때도 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젊은 미국 영화 감독[2]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감독이다.

2 감독 이전 생애

1970년 성우인 어니 앤더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미 어린 시절부터 영화제작에 관심을 보여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화 감독이 되는 것을 응원해주기도 했다. 영화광 시절을 보내면서 주로 1970년대 미국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기수들인 마틴 스코세이지, 로버트 올트먼[3] 시드니 루멧, 조나단 데미,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의 영화들을 보면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레이징 불》과 《좋은 친구들》을 백 번 넘게 봤다고 술회할 정도.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LA의 근교, 샌퍼낸도 밸리로 이후 그의 영화 《부기 나이트》의 배경이 되는 곳이자, 미국에서 유통되는 포르노의 90%가 생산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포르노를 접하게 되었고, 수천 편의 포르노를 섭렵했다고 한다.?!

12살 때부터 베타맥스 비디오 카메라로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으며, 고등학생 때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새장 치우는 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첫 영화를 찍기 위한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18살에 30분 분량의 모큐멘터리인 《덕 디글러 스토리를 만들었으며, 이는 《부기 나이트》의 전신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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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마치고 마틴 스코세이지, 올리버 스톤, 스파이크 리를 배출한 뉴욕 대학 영화과에 진학하지만, 강의를 하루 듣고 실망한다. "터미네이터 2 따위"의 시나리오를 제작하고싶으면 여긴 그런데 아니니 나가라" 라고 교수가 말했다고 한다(...)[4] 그리고 그 다음날, 입학비를 환불받고 뉴욕대를 이틀 만에 자퇴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단편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한다.

3 감독 경력

뉴욕대를 자퇴한 후, LA와 뉴욕을 전전하면서 게임쇼, TV, 광고 제작에 조수로 참여하면서 영화 제작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한다. 1993년, 도박에서 얻은 돈(?), 여자 친구의 신용카드(...)등으로 지원받아 단편 영화를 만든다. 바로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의 제목을 패러디한 <담배와 커피>라는 단편으로, 선댄스 영화제 단편 부문에 초청된다. 그리고 신인 감독들의 신병 훈련소(...)라고 불리는, 선댄스 영화제작 워크숍에 참여한다. [5]

선댄스 영화제작 워크숍에서 교육받는 동안, 감독은 한 제작사로부터 장편 영화 제작 의뢰를 받는다. 그 작품은 그의 데뷔작인 리노의 도박사로, [6] 첫번째 편집본은 2시간 반(...)이었다고 한다. 이에 열받은 제작자는 감독 맘대로 재편집하고, <Sydney>란 제목을 <Hard Eight>으로 제목을 바꾸기도 했다.

제작비도 상승해 출연 배우인 귀네스 팰트로존 C. 라일리가 지원한 20만 달러로 제작비를 메꿨으며, 제작사에서 강요한 <Hard Eight>란 제목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 배급업자를 구하기도 힘들어서 2년 동안 허공에 붕 떠 있었으며, [7] 겨우 자신의 의도대로 만든 편집본이 1996년 칸 영화제 주목한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호평받는다. [8]

<리노의 도박사>는 만 26살에 만든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숙련된 장인이 만든 기품이 있어 보인다. 그와 계속 작업할 촬영감독 로버트 엘스윗과 처음 만난 작품이기도 하며, 제임스 그레이리틀 오데사, 쿠엔틴 타란티노저수지의 개들, 웨스 앤더슨바틀 로켓과 함께 1990년대의 가장 뛰어난 데뷔작으로 평가받는다.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건 두 번째 작품 부기 나이트 때부터였다. 리노의 도박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1995년에 덕 디글러 스토리를 토대로 이미 각본을 완성한 앤더슨은, 뉴 라인 시네마의 사장 마이클 더 루카에게 각본을 보냈다고 한다. 루카는 각본을 읽고 너무 좋아서 이성을 잃을 뻔했다는 후문이(...)

부기 나이트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성난 황소를 모델로, 동시에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들처럼 여러 등장인물들의 여러가지 다층적인 이야기를, 탁월한 연출력으로 한 덩어리로 만들어 평단으로부터 단번에 주목 받았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와 수영장 시퀀스의 복잡한 스테디캠 롱테이크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 스코세이지와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물려받은 듯한 뛰어난 영화적 테크닉과 알트먼 감독에게 물려받은 듯한 많은 인물들을 요리하는 뛰어난 극작술이 제대로 아우러져 27살에 이미 포텐을 터트렸다.

1970년대의 섹시 스타였던 버트 레이놀즈가 많은 비평가 협회 시상식에서 조연상을 수상하며 다시 부활을 알렸으며, 앤더슨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른다. 또한 이후 매그놀리아에서 다시 뭉치게 되는 줄리앤 무어, 필립 시모어 호프먼, 리키 제이, 윌리엄 H. 메이시, 멜로라 워터스, 존 C. 라일리, 루이즈 구즈먼, 필립 베이커 홀 같은 뛰어난 연기파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룬 작품이기도 하다.

앤더슨은 부기 나이트 편집 도중에, 매그놀리아를 구상하는데, 그는 매그놀리아를 the epic, the all-time great San Fernando Valley movie, 즉 거대한 최고의 샌퍼낸도 밸리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부기 나이트의 비평, 상업적 성공에 힘이 붙어 뉴 라인 시네마에서 제작을 추진하기로 결정한다. 앤더슨은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만[9]의 솔로앨범과 또 앞으로 신보를 낼 데모를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10]그리고 부기 나이트의 캐스트의 대부분이 출연했으며, 톰 크루즈제이슨 로바즈가 합류했다.

하지만 제작사측에서는 영화를 편집하고 있는 중에도, 포스터나 예고편을 만들지 않고 태만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앤더슨은 포스터와 예고편, 사운드트랙까지 직접 참여하고 만들었다고 한다.

개봉 후 매그놀리아의 반응은 엇갈렸는데, 대단한 걸작이라는 반응과 과욕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로버트 올트먼숏 컷을 연상시키게 하는 다중 플롯 (그리고 188분 러닝타임까지 오마주함) 을 이용한 묵시록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만난 작품으로, 영화가 러닝타임은 물론 일종의 감정과잉에 부담스러워 하는 반응도 있었다.[11] 그래도 영화의 전반적인 기술적으로 완성도는 완벽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도 훌륭했다. 간혹 데어 윌 비 블러드와 함께 감독의 최고작 떡밥에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영화계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도 아니고, 코엔 형제도 아니고, 바로 폴 토머스 앤더슨이다"라고 칭했다. 매그놀리아는 제작비 3700만불에서 북미기준 2200만불의 수입을 거두고, 흥행에 실패한다. 아카데미에는 남우조연상(톰 크루즈), 주제가상(에이미 만), 각본상(폴 토머스 앤더슨)만 후보에 올랐으며, 무관으로 그쳤다.

하지만 매그놀리아는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황금곰상을 수상한다. 그의 나이 29살이었다. 당시 독일 언론들은 "오스카가 저버린 영화, 우리가 살렸다"라며 수상 결과에 대해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후 펀치 드렁크 러브로 칸 영화제 감독상, 데어 윌 비 블러드로 베를린 은곰상, 마스터(영화)로 베니스 은사자상을 수상하면서 3대 영화제 감독상 트로피를 갈아치운 영화계의 괴물 중 괴물이라 할 수 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감독 최고의 걸작으로 많이 뽑히며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됐지만 하필 상대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여서... 수상은 하지 못했다. 대진운이 안좋았다 할수있다. (하지만 주인공 역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역대급 연기를 펼치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국의 권위있는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에선 2012년 최고의 영화로 마스터(영화)가 꼽혔다.

덧붙이자면, 데어 윌 비 블러드 이후로 영화들이 어째 다 극장 흥행에서 실패한다(...) 마스터는 3천만불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2천 8백만불에 그쳤고,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제작비 2천만불에 북미에서는 1천만불도 벌지 못해 폭망하고 국내는 개봉도 하지 못한 채 바로 iptv로 직행. 평단에 대한 영화 평가는 준수하지만 영화가 점점 난해해지면서 관객의 평이 미묘하다는 얘기도 있다.

2017년 개봉 예정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워너 브라더스의 합작 프로젝트인 피노키오 실사판의 각본가로 정해졌고 감독까지 맡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나 영화를 어떤 방향으로 제작하느냐에서 제작자와 의견이 충돌해 하차했다고 한다.


허나 신작 관련 활동은 당분간 볼수 없을 줄 알았으나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맞췄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신작에서 다시 함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다니엘도 다시 활동을 재개하길 원하고, 감독도 그와 다시 작업하기를 매우 강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새로이 나올 신작의 시놉시스는 1950년대 미국 뉴욕의 패션 업계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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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소문이긴 하지만... 마블(?!)과 DC(?!)가 각각 자신들의 히어로 영화 시리즈에 감독으로 내정시키기 위해서(??!!) 매의 눈으로 노리면서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소문도 계속 나오고 있다.작품의 형태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12]

4 연출 특징

작품마다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몇 가지 있다. 유사 가족 관계, 폐쇄된 집단, 사이비 종교, 깊은 상처를 가진 캐릭터 등. 소재에 있어선 같은 이름을 가진 웨스 앤더슨과 비슷하다. 그런데 화법이 많이 다르다. 웨스 앤더슨은 힙스터 느낌으로 동화 같은 영화를 만드는 반면,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인간의 심원을 깊이 파헤치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이야기, 혹은 난해한 드라마를 만든다.

PTA의 영화는 장면장면마다 완벽한 구도를 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촬영은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사전에 계산이 된 후 이루어지며,이는 PTA의 머릿속에 이미 영화 전체가 장면단위로 구상된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영화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 부기나이트의 유명한 첫 롱테이크 씬의 복잡한 카메라 워킹은 PTA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정작 PTA본인은 "영화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시나리오 이며, 시나리오가 훌륭하면 연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기 힘든 PTA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말이다.

5 평가

"영화계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도 아니고, 코엔 형제도 아니고, 바로 폴 토머스 앤더슨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폴 토마스 앤더슨과 데이비드 핀처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멍청이들을 설득해, 지적이고 도전적인 영화에 투자하도록 만드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인물들이다."

ㅡ 토니 레인즈[13]
"미국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하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폴 토머스 앤더슨 정도랄까."

자크 오디아르[14]

6 트리비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아직 상을 못 탔다. 전세계 영화팬들은 이 젊고 뛰어난 감독이 왜 본토인 미국에선 상을 받지 못했는지 아리송해하고 있는 눈치. 아무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를 추구하는 시상식이다보니, 예술성이 강한 폴 토마스 앤더슨에겐 상 주기를 꺼려하는 듯 하다.[15] 대신 유럽에서 상을 싹쓸이했다. 시상식 관련 기록을 훑다보면 참으로 놀라운 것이, 폴 토마스 앤더슨이 존경하는 로버트 알트만의 행보와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알트만도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감독이기 때문. 꿈을 꾸다보면 꿈을 닮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특출난 흥행작이 없는 것[16]까지 닮아가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투자를 받는데 있어 다소 우려되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건 안 닮아도 되는데..

펀치 드렁크 러브까지는 존 브라이온이 음악에 참여했다. 심지어 존 브라이온이 프로듀싱해준 뮤지션인 피오나 애플과 사귀기도 했지만 [17] 데어 윌 비 블러드부터는 라디오헤드자니 그린우드가 음악에 참여하고 있다. 아무래도 데어 윌 비 블러드를 기점으로 영화 색깔이 확 바뀌어서 그런듯. 지금은 SNL 출신 멤버 마야 루돌프 (어웨이 위 고)랑 살고 있다. 결혼 하지 않고 동거중이지만 아이를 네 명이나 낳는 등 사실혼 관계인듯 하다. 장모님 (그러니깐 마야 루돌프의 어머니)은 마성의 BGM으로 유명한 'Loving You'를 부른 흑인 소울 가수 미니 리퍼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스타크래프트에 영향을 준 것들에도 올라와 있다 (…) 또 영화에 대한 말에 대해 호평을 받는 감독이기도 하다. 17가지 어록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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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니라, 위의 위대한 감독 드립(...)에 웃음 코드로 사용되서 그렇지, 배우도 아닌 감독치곤 정말 굉장히 잘생긴 미남이다. 특히 수염을 기르지 않았던
초창기의 젊은 시절에는 주연 남배우급의 외모를 자랑했다. 천재미남에... 완전 사기다.

7 필모그래피

연도제목역할비고
1993년커피와 담배연출, 각본데뷔작
1996년리노의 도박사연출, 각본
1997년부기 나이트제작, 연출, 각본출세작
1999년매그놀리아제작, 연출, 각본, 단역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2002년펀치 드렁크 러브제작, 연출, 각본칸 영화제 감독상
2007년데어 윌 비 블러드제작, 연출, 각본아카데미 노미네이트
2012년마스터제작, 연출, 각본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2014년인히어런트 바이스제작, 연출, 각본
2015년Junun연출, 각본
  1. 레지던트 이블,이벤트 호라이즌, 에어리언 vs. 프레데터 등을 만든 영화 감독
  2. 웨스 앤더슨, 제임스 그레이, 대런 애러노프스키, 소피아 코폴라, 알렉산더 페인 등.
  3. 영화 매그놀리아는 소위 알트만식 촬영 기법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알트만은 앤더슨을 재능있는 감독으로 인정하고, 그를 매우 아꼈다. 또한, 자신의 유작이 된 <프레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2003) 촬영 당시 자신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여, 앤더슨을 유사시 감독으로 직접 채용하기도 했다. 다행히 직접 영화 촬영을 무사히 끝마쳐서 그럴 일은 없었지만.
  4. 폴 앤더슨의 세대는 터미네이터 2의 센세이션을 극장에서 직격으로 감명받은 세대이다. 실제로 앤더슨 본인은 터미네이터2가 "정말로 멋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당시 헐리우드 영화계는 터미네이터2의 영화의 기술적 진보에 대해 좋은 미래를 환영하였으나 예술성 고집하는 감독들에겐 터미네이터2의 단순한 스토리는 그리 달가워하지않았다.
  5. 그때 그를 가르쳤던 마이클 케이튼 존스 감독은 "재능있고 창의적인 목소리로 가득 차 있지만, 경험이 부족해보였다"고 술회한다.
  6. 1992년에 2주만에 쓴 각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장 피에르 멜빌도박사 밥에 영향받았으며, 3백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었다.
  7. 1994년에 찍은 영화였다.
  8. 그것도 영화제 하루 전에 겨우 의도대로 감독판을 만들었다고 한다
  9. 1980년대에 활동했던 뉴웨이브 밴드 Til Tuesday의 보컬. 부기 나이트의 음악을 맡은 같은 싱어송라이터 마이클 펜의 아내이기도 하다.
  10. 윌리엄 H. 메이시가 가지고 있는 오두막에서 시나리오를 썼다는데, 밖에는 뱀이 우글거렸다고...
  11. 오죽하면 국내 모 잡지에서 부기 나이트는 리듬감이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매그놀리아는 그 과욕의 에너지와 리듬감이 영화를 지치게 하고 만다는 반응까지 짤막하게 넣었다. 그것도 다른 영화를 소개하면서. 또한 케빈 스미스는 이 영화를 엄청나게 싫어해서, 제이와 사일런트 밥의 역습에 '매그놀리아 팬보이'를 사정없이 깠다.
  12. 알다시피 PTA의 영화 화풍이나 스타일이 그런 슈퍼히어로 물이나 액션 SF와는 거리가 많이 멀다. 하지만 배트맨과 같은 작품에서 고뇌를 잘 표현할지도 모른다. 놀란 감독도 히어로 영화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13. 영국의 영화 평론가이자, 한국 영화 전문 연구가. 2008년 씨네21 설문에서
  14. 발언 출처
  15. 매그놀리아로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2000년에는 아메리칸 뷰티(수상작), 존 말코비치 되기, 식스센스 등의 강적들이 있었고,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의 후보에 올랐던 2008년에도 하필 코엔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같은 해에 나오는 바람에...
  16. 알트만을 유명감독으로 올려준 1970년작인 <매쉬> 이후, 알트만은 끝내 <매쉬>의 흥행 성적을 넘는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정도로 흥행과 친한 영화감독은 아니었다. 매쉬 바로 다음 흥행작이 바로 2002년 작인 <고스포드 파크>였을 정도.
  17. 연인 사이일 당시 피오나 애플의 뮤직비디오를 여러 편 연출하였다. 2000년 <Paper Bag>을 마지막으로 끝난 둘의 협력은 2013년 <Hot Knife> 연출로 다시 살아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