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전함
제2차 세계대전기의 크릭스마리네 함선 | |||||||||||||||||||||||||||||||||||||||||||||||||||||||||||||||||||||||||||||||||||||||||||||||||||
구축함 | 구축함 1934, 구축함 1934A, 구축함 1936, 구축함 1936A "나르비크", 구축함 1936A (모프), 구축함 1936B, 구축함 1936C, | ||||||||||||||||||||||||||||||||||||||||||||||||||||||||||||||||||||||||||||||||||||||||||||||||||
잠수함 | 1급, 2급, 7급, 9급, 10급, 14급, 16급, 21급, 23급 | ||||||||||||||||||||||||||||||||||||||||||||||||||||||||||||||||||||||||||||||||||||||||||||||||||
경순양함 | 엠덴급, 쾨니히스베르크급, 라이프치히급, | ||||||||||||||||||||||||||||||||||||||||||||||||||||||||||||||||||||||||||||||||||||||||||||||||||
중순양함 | |||||||||||||||||||||||||||||||||||||||||||||||||||||||||||||||||||||||||||||||||||||||||||||||||||
경/개장/정규 항공모함 | |||||||||||||||||||||||||||||||||||||||||||||||||||||||||||||||||||||||||||||||||||||||||||||||||||
항공순양함 | |||||||||||||||||||||||||||||||||||||||||||||||||||||||||||||||||||||||||||||||||||||||||||||||||||
순양전함 | |||||||||||||||||||||||||||||||||||||||||||||||||||||||||||||||||||||||||||||||||||||||||||||||||||
전함 | 도이칠란트급, 샤른호르스트급, 비스마르크급, | ||||||||||||||||||||||||||||||||||||||||||||||||||||||||||||||||||||||||||||||||||||||||||||||||||
대형 어뢰정 | 어뢰정 1923, 어뢰정 1924, 어뢰정 1935, 어뢰정 1937, 어뢰정 1939(엘빙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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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 |||
미국 | 독일 제국 | ||
러시아 제국 | 영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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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
목차
1 개요
제2차 세계대전때 등장한 나치 독일 국방군 해군(크릭스마리네)의 전함이다.
등장 시점에 영국 해군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순양전함 후드의 배수량을 뛰어넘어 미합중국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과 일본군 해군의 야마토급 전함의 등장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전함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했으며 건조되었던 2척 모두 영국 해군의 신경을 많이 긁었고 중후한 디자인과 함께 특히 1번함 비스마르크의 활약과 최후가 매우 드라마틱하고 장렬했기에 밀리터리 덕후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많은 떡밥을 양산했다. 하지만 활약상과 달리 상당히 부풀려진 면이 많았고 성능의 진실이 어느정도 알려지기 전까지 한때는 최강 전함 떡밥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 전함이었다.
1번함인 비스마르크의 어원은 철혈재상으로도 유명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서 따왔으며 2번함인 티르피츠의 어원은 1차 세계대전당시 독일해군 원수인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의 이름에서 따왔다. 두 함선 모두 기원이 된 인물들의 이름에서 성만 따왔다.
2 함급의 함선
1번함 | 비스마르크 |
2번함 | 티르피츠 |
3 제원
1번함이자 네임쉽인 비스마르크의 제원은 비스마르크(전함)문서에 해당 문단 참조.
2번함인 티르피츠의 제원은 티르피츠(전함)문서에 해당 문단 참조.
4 계획 비화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재무장이 시작되기 직전인 1933년, 독일 해군의 처지는 매우 참담했다.
한때, 영국 해군과 해군 군비경쟁을 하며 더 나아가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겠다는 카이저의 함대는 전쟁에 패배한 후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인해 쓸만한 함선 대부분이 고철이 되었으며, 그나마 남은 함선도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승전국에게 배상함으로 빼앗기는 바람에 허용된 전력이라곤 구식 전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약간의 보조함 전력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현실을 말하자면 자국 해역의 제해권도 보장못할 3류 해군의 처지였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독일 해군의 발목을 잡아끌던 베르사유 조약은 점점 붕괴를 눈앞에 두고있었다.
당시 베르사유 체제의 실질적인 주도국은 독일이 주로 두들겨 패던 프랑스였지만 이에 협조하는 당사국중 하나인 영국이 손을 떼어버릴 경우 프랑스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없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정신승리법에 가까운 엘랑 비탈이라는 군사사상 덕분에 1 ~ 1.5세대 남성 인구가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20년이 경과한 시점에서도 그 후유증이 차마 회복이 되지 못한 상태였기에, 인구부족으로 인해 최소 30년간은 유럽에서 산업, 군사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는 갑갑한 미래가 있었다.
1927년. 베르사유 조약 감시단이 독일을 떠나자 1933년 집권한 히틀러는 군비증강을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했다[1]. 비록 독일의 통제권 밖인 라인란트 지방에서 군수품을 생산하고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잠수함 기술등을 연구했지만 프랑스와 영국은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예로 1936년의 라인란트 지방을 주민투표로 점거하고 군대를 주둔시켰음에도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이 자신의 앞마당에 걸어 들어간 것이라고 자위하며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에 프랑스는 마지노선을 보수하고 영국은 독일을 공습할 계획을 승인했으나 네빌 체임벌린이 수상이 되면서 전부 무산되었다. 체임벌린은 폴란드전 발발 직전까지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런 절호의 호기를 맞아 나치 독일 해군은 야심찬 건함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비스마르크급 전함인 것이다.
5 건조계획
비스마르크급에 대해 논하기 전에, 비스마르크급을 만들고 운용한 그리고 말아먹을 독일 해군의 의중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독일 해군의 사령관은 에리히 레더 제독이었는데 이 사람 역시 지금은 거함거포에 정줄놓은 해군 장교 취급이라도 당시에 흔하디 흔했던 거함거포주의 신봉자였으며 당시로는 독일 해군 내에선 해상전의 최고 권위자인 셈이었다.
당시 레더 제독은 '영국 해군은 식민지 유지를 위해 3대양에 순양함들을 한가득 배치해놓은 상태고 본거지에는 속력이 느린 전함들 뿐이니 우리 독일 해군은 중순양함과 순양전함, 고속전함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편성해 적당하게 영국 해군 전함이나 순양함 한두척 잡아내고 본 함대가 몰려오기전에 튄 다음 통상파괴전을 실시해야 한다' 라는 의중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레더의 의견을 들어본 아돌프 히틀러는 쬐끄만한 유보트갖고 강력한 독일 해군이라고 광고할수 없는 노릇이니 이 견해를 적극 채용하여 영국 해군에 대응할 수상함대 건설을 지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 초창기 비스마르크급의 스펙은 미국과 영국과 마찬가지로 본래는 런던 해군조약 범주내에 속하는 전함이었으나, 당시 독일 해군이 의식하고 있던 프랑스 해군의 리슐리외급 전함이 등장하므로써 비스마르크급에게 요구되는 제원도 변경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프랑스 해군의 15인치포를 방어하기 위하면 기존의 360mm급 측면장갑으로는 무리라는 것이 현실이었고 또한 리슐리외급의 31노트라는 속력을 견제하려면 이와 비슷하거나 더 좋은 속력을 내야한다는 결론 등등 각종 요구능력과 제약사항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후, 기술 및 건조사상을 도입/채용할 길이 없던 독일 해군이 런던 해군조약에 맞춘 3만5천톤급 선체에 이 모든 것을 적용시킬 능력이 독일 기술진에겐 없었으나 이럴땐 불법이라도 제법 단순한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선체의 크기를 대폭 키우는 것으로 세계에는 3만5천톤이라고 발표했으나 현실은 4만톤급의 거함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비스마르크급은 아이오와급 전함과 야마토급 전함이 등장하기 전에 세계 최대의 전함이라는 비공식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일본만도 못한짓을 했다.[2] 비슷한 시간, 일본군 해군은 돈이 없는 관계로 오만가지 불법 마개[3]조[4]를 하고 있었으며 영국과 미국은 조약 내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골머리를 싸맨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각 열강의 해군은 과도한 건함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군함의 배수량과 무장에 제한을 두기 위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체결했고 이 조약 내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뽑아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서술했듯이 독일은 영국과 미국처럼 이 조약 내에서 성능을 뽑아낼정도로 기술력과 건함사상이 뛰어나지 못했고 원하는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배수량을 잡아늘려버렸다. 사실 크기가 커지게 되면 요구되는 예산이 엄청나지는데, 총통의 입장에선 태클걸 의회도 없고, 설령 태클이 들어온다 해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들이밀어버리면 예산문제는 미/영에 비해 상당히 해결하기 쉬웠을 것이다. 결국 원하는대로 만들었는데.. 결과물이... 음;;
이렇게 해서 불법적으로나마 넉넉한 배수량을 보유할 수 있게 되자 구식기술로도 성능향상을 달성할 수준의 용적이 주어졌고 독일 기술진은 방어력 향상을 위해 터틀백 형식의 선체방어구조와 과거 1차 세계대전 시기에 전함 바이에른급 전함의 3샤프트식 설계를, 공격력 향상을 위해 비교적 경량의 고속탄을 선택했다. 알고보면 결국 2차대전형 전함이 아닌 1차대전형 전함인 것이다.[5]
기본적인 배의 디자인은 샤른호르스트급 순양전함을 답습하고 있으나 배수량과 용적, 덩치가 커지고 11인치 함포 대신 빠른 장전속도와 포구초속을 가진 14.96인치 함포를 탑재했다. 또한 6.75인치부포 및 4.1인치 대공포의 숫자도 증가되어 제1차 세계대전후 물경 20년만에 만들어진 전함치고 스펙상으로는 상당한 전력을 자랑했다.
6 장점
비스마르크의 기동력은 동시대의 전함중 가장 뛰어난 수준이었다. 당시 비스마르크급을 추격할 수 있는 전함은 샤른호르스트급 순양전함정도인데 어차피 같은 국가의 함선이니 논외로 한다면 전함중에는 없었다.[6] 미국의 표준전함들은 21노트 전후의 느린 속력이었고 영국 또한 리벤지급 전함이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같은 구식전함이나 넬슨급 전함같이 공방능력은 우수하지만 속력은 느린 전함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나마 빠른편인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도 다른 전함에 비해서 빠를뿐 비스마르크의 속력에는 못미쳤다. 물론 영국이 보유한 순양전함들은 추격이 가능하지만 전면에서 포화를 주고받기는 여러모로 무리이고 비스마르크의 공방에 문제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함은 전함인 만큼 상당히 위협적일 수 있는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이건 비스마르크급 까지 갈 필요도 없이 샤른호르스트급만 되도 충분한 수준이지만.
7 문제점
하지만 비스마르크급은 결론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형 설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내놓기에 만족스러운 전함은 아니었다.
등장 초기부터 온갖 화제를 몰고 오며 당시 독일 기술의 정수가 든 집합체였으나 사상이나 개념적으로 1년 늦게 건조된 미국과 영국 해군의 신형 전함들과 비교를 할 경우 "결론은 옛날 잔재" 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7.1 화력
비스마르크에 탑재된 14.96인치 52구경장 SKC/34 함포는 경량 고속탄이란 개념하에 크루프 사에서 개발한 주포이며 보고서에 의하면 전함용 거포중에서는 가장 빠른 속사능력을 가진 주포라고 평가받았다. 또한 크루프 사의 공식문서에 따르면 탄체와 장약을 장입하고 4도 고각까지 주포를 고정하는데 26초가 걸렸으며 훈련 잘된 포병들이 다룰 경우 분당 3발을 사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시기 타국 16인치 전함들이 분당 2발 수준이란걸 감안하면 빠른 장전속도를 가졌다.[7]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타국 거포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르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호이스트 설계의 문제 및 독일 해군 수병의 대표적 문제인 낮은 훈련도 때문에 실제로는 분당 2.3발의 사격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주포의 성능의 경우 전함이 가진 주포의 파괴력은 운동 에너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주포의 파괴력은 결론적으로 포탄의 중량을 늘리고 초구탄속을 늘리는 것으로 증가가 된다. 그런데 비스마르크 주포탄의 무게는 800kg으로 885kg의 이탈리아 해군의 15인치 함포나 884kg의 중량을 가진 프랑스의 15인치는 물론이고 영국 15인치의 879kg과 비교해도 가벼운 편이다.포구 초속 역시도 초속 820m이므로 영국 해군의 주력 함포인 15인치 42구경장 Mark 1 함포의 슈퍼차지 모드 상태에서 초속 804m와 비교해도 빠르긴 빠르다. 그러나 이탈리아 15인치 함포는 초속 850m에 달하며 프랑스의 15인치도 830m/s의 속력을 가지는것을 감안하면 타국 15인치급 전함과 비교해서 그렇게 빠른 탄속을 가졌다고 볼 수 없는 물건이다. 게다가 포탄의 중량까지 가볍다는 점을 고려하면 타국의 동급 주포와 비교했을때 이렇다할 장점이 없다. 추가적으로 비스마르크의 주포는 가벼운 포탄 무게때문에 상대적으로 살포계가 불량해지고 자연현상에 많은 영향을 받아 장거리에서는 제대로 된 명중률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이 화력은 어디까지나 전간기 일부 전함들과 그 이전 전함들에게나 손색 없는 화력이었지 16인치 함포를 탑재한 조약형전함이나 대전중 건조된 신형 전함에 비하면 처참한 화력이었으며 스펙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결함 등의 이유로 동급 15인치 탑재 전함들에 대해서 특별히 우위를 가지는 함포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로 유틀란트 해전 이후의 전함 대 전함간 포격전의 대세는 '상대의 갑판이나 상부구조물을 타격하여 전투불능에 빠트리는 것' 이었으나 비스마르크의 주포는 낙각이 크지 않은 저각 함포였기 때문에 갑판을 명중시켜서 적 전함을 무력화시키기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단 점이다. 간단히 말해 2차세계대전의 전함들은 방어구조의 발전과 전함 자체의 엄청난 배수량과 맷집 때문에 아무리 측면과 흘수선을 타격해서 물구멍을 내도 트림 조절이나 데미지 컨트롤 등의 이유로 쉽사리 침몰할리가 없기에 갑판에 있는 주포나 상부 구조물, 사격통제장치 등을 조져서 상대 전함을 전투불능에 빠트리는 능력이 타국 전함에 비해 부족하다는 뜻이다. 기술 단절이란 무섭다. 실제로 2만m 구역에서의 낙각은 16.4~23.8도 사이로 영국의 22.2도~29.9도와 비교하자면 2만m 이상의 구역에서는 갑판보다는 측면장갑을 타격할 확률이 영국 함포보다 높았다. 또한 위에 서술한 가벼운 포탄은 장거리에서 에너지 손실률이 상당해서 관통력 자체가 떨어진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또한 포신의 내구력도 문제가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실탄 훈련마저 머뭇거리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었기에 크루프 사에선 이탈리아 15인치 주포처럼 중량탄을 고속발사해서 위력을 증대시킨 대신 130여발 내외의 엄청나게 짧은 포신수명을 자랑(?)하는 것처럼 막나가면 곤란하다는 것 때문에 성능과 포신수명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했고, 결국 210발내외의 포신수명을 가졌다. 이 수명은 영국 해군의 15인치 포는 330발을 쏴갈겨도 문제없었던 것에 비하면 짧지만 의외긴 하지만 독일 해군이 바라는 요소를 어느정도는 찾았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환경은 다르기 때문에 무작정 위력만 생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우선 레더 제독의 의중 자체가 영국 해군의 주력이 모이기 전에 전과를 거두고 통상파괴전을 실시하여야 하는데 전쟁이 날 경우, 독일 해군이 비좁은 북해와 발트해를 넘어서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영국 해군의 해상봉쇄 때문에 루트 자체가 단순해지고 그에 따라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당장 전쟁이 벌어진다면 영국-프랑스 사이의 도버 해협은 완전히 막혀버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독일 해군이 대서양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북해 루트를 이용해 영국을 뱅 돌아서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형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니 나가기 힘든만큼 무조건 밥값은 하고 와야 남는 장사라는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술 더떠서 영국 해군 입장에서 보자면 북해나 발트해를 잘 뒤져보면 어딘가에 반드시 독일 해군 수상함대가 짱박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독일 해군은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 이에 따라 이탈리아처럼 막 나가다간 통상전투 몇번에 포신이 맛이 가면 곤란하다는 명제가 있었다. 그 당시의 이탈리아 해군의 15인치 함포는 측면 관통능력만 16인치급과 비슷할 정도로 가공할 관통력을 자랑했지만, 상당히 무게가 나가는 포탄을 빠른 탄속으로 날려보내는 이유 때문에 포신에 상당히 무리가 가기 시작했고, 꼴랑 130여발만 쏴도 항구로 돌아가서 포신을 교체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비좁은 지중해에서야 포신 교체문제는 덜했겠지만, 부담이 되는건 사실이다. 당장 실전 포격훈련만 해도 포신의 내구력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데다 긴급한 상황에선... 답이 없다.
- 2. 또한 독일 해군의 홈그라운드인 북해의 환경은 지중해와는 달리 기상상태가 영 좋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근접 조우전이 다발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타국 전함 주포보다 쥐꼬리만큼 빠른 장전속도를 가진 비스마르크의 함포 역시 어느정도 위력 발휘가 가능하다는 점이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스마르크급 전함은 당시 세계 최대급 전함에 걸맞지 않은 약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위의 예시는 15인치급 전함을 예로 든 것이며 16인치급 전함과의 화력을 비교하면 매우 처참하다. 당장 미 해군 아이오와급 전함의 16인치 50구경장 Mk.7 주포에서 발사하는 초중량탄(Super Heavy Shell, SHS)의 무게만 1,224kg에 달했다... 뭐야 이거 무서워 비록 운동 에너지 효율은 나빴으나 고각으로 발사되는 미해군의 초중량탄은 질량 에너지와 낙하 에너지의 버프로 2만m 이상에서 25도에 달하는 흉악한 낙각을 자랑했다. 당장 2만m 내외의 위력은 아이오와급 전함 16인치의 292메가줄, 비스마르크급의 208메가줄, 관통력은 0거리에서 아이오와급 전함 16인치가 측면 32.64인치(829mm), 최대 사거리에서 갑판 14.06인치(357mm), 비스마르크급은 0거리에서 20.08인치, 최대 사거리에서 갑판 6.69인치...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물론 여기서 비교대상인 초중량탄은 미국만 쓴 특수탄으로 일부 거리에선 18인치 주포에 필적하는 위력을 보였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이 특수탄을 쓰는 실제 건조된 모든 전함은 대응방어가 불가능했고, 그럼에도 아이오와급은 비스마르크급보다도 배수량이 컸다.[8] 그러니까 15인치 포 따위와 비교하기엔 너무 강한 포탄이다. 다른 16인치 포 보다도 우위을 점하는데.. 그리고 건조시기와 취역시기도 차이가 나서 아이오와급이 취역하기도 전에 이미 비스마르크는 차가운 바다속에 가라앉아있었다. 전쟁중 취역한 최신함과 성능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문제는 비슷한 시기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도 초중량탄을 펑펑 쏴대는 16인치 45구경장 Mk.6로 무장했다는 점이지만. 노스캐롤라이나급의 45구경장은 아이오와급의 50구경장보다 사거리는 좀 짧을지언정 대낙각은 더 컸다. 노스캐롤라이나급의 0거리 측면 관통력은 755밀리로 대강 29.72인치 정도 된다. 최대사거리 갑판 관통력은 10.55인치 정도 되고. 배수량도 기준배수량은 물론이고[9] 만재시 비스마르크보다 가볍다.
7.2 방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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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급 전함의 장갑구조 |
한때 말이 굉장히 많았던 요소이다.
장갑재의 수준만은 당대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하지만 설계는 여전히 1차 세계대전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고 비효율적인 방어구조 덕분에 비스마르크를 포함한 독일 전함은 타국 전함과 동일한 방어력을 내기 위해 타국 전함보다 장갑에 할애되는 용적과 중량이 훨씬 많았다. 이는 10년이 넘도록 대형군함을 설계조차 못했던 기술단절에 의해 당장 대형전함을 제조하려면 과거의 도면을 거의 카피수준으로 참고해야 했던 속사정 때문이었다.
비스마르크의 방어구조는 1차대전때의 터틀백 + 다층 방어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방어구조는 10도 내외의 낙각을 가지는 즉, 저각으로 날아오는 포탄을 막아내는 데에는 상당히 유리한 구조지만, 15도 이상까지 올라가는 낙각을 가지는 포탄을 방어하기에는 무리가 많은 구조이다. 실제로 영국 해군의 15인치포가 2만m에서 22.2도 이상의 낙각을 가지고 있으며 미 해군의 16인치 초중량탄은 같은 거리에서 25도라는 흉악한(...)낙각을 자랑한다.그리고 우리는 이 고각이라는 장점이 월드 오브 워쉽에서 미국의 단점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또한 측면장갑도 문제가 되는데, 360mm의 샤른호스트급 순양전함의 측면장갑보다도 얇은 320mm 측면장갑도 문제이며 괜히 이중분배를 해놔서 320mm 주장갑은 하부에 위치하고 상부측면장갑은 15인치급을 방어하기 불가능한 145mm 장갑이다(...) 이것도 모자라 하부측면장갑의 절반은 흘수선 아래, 즉 물 밑에 가라앉아있는 구조다. 적의 주포탄을 막기 위해 설치한 장갑이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어이없게도 이 구조 덕분에 어뢰공격에 대응한 방어체계가 부실했지만 어뢰공격을 어느정도 버틸 수 있었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막으라는 포탄은 안막고 어뢰를 막는 장갑 하지만 실전에선 방향타에 핀 포인트로 항공어뢰가 명중당하는 바람에... 결국 종합적으로는 무쓸모 그자체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포탄이 측면장갑에 명중한다 해도 이중분배된 145mm 측면장갑을 뚫고 나면 남는 장갑은 30밀리 내부수직장갑과 80mm 다층식 2층 갑판장갑, 220mm 포탑 바벳장갑만이 남게 된다. 측면은 끽해야 250mm급이기에 15인치급 포탄이 상부측면장갑에 착탄하면... 답이 없다. 무려 기준배수량 4만5천톤급 전함이 장갑을 여러장 쳐놓고도 이런 방어력을 가지게 된다면 당연하게도 문제가 된다. 거기다 터틀백+다층 장갑설계이기 때문에 중량 대비 방어효율도 상당히 나쁘다.
또한 바벳 앞부분에까지 측면장갑을 할당시키는 등 필요없는 부분에까지 장갑을 붙여놓아서 용적/무게 낭비도 심한편이었다. 당장 2차대전기 전함들의 방어구조는 속칭 포스트 유틀란트라고 부르는 방어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 방어구조는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에 장갑을 올인 & 필요없는 부분에는 장갑을 붙이지 않는다는 개념을 갖추어 실질적인 방어력을 증가시키고 용적/무게 낭비를 억제했다. 비스마르크는 이 점에서 상당히 부족한 전함이었다.
갑판장갑도 방어력이 높다고 말하기 힘들다. 갑판장갑은 50mm+80mm(총합 5.1인치)의 다층식이며 미국의 21노트짜리 구전함들과 다를바 없거나 방어효율은 더 떨어지며 포스트 유틀란트 방어구조가 이루어져있는 신전함들의 6인치~8인치급 갑판장갑과 비교해서 대낙각탄에 대한 방어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당장 약한 화력으로 괄시당하는 영국의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경우 '막으려면 밖에서 확실히 막자' 라는 개념하에 단일 갑판장갑이 5.8인치에다가 최상부에 1.25인치의 봄덱으로 구성 되어 대낙각탄 방어력을 보유했으며 미 해군의 사우스 다코타, 아이오와급의 경우 '밖에서 막는것도 막는 것이지만 관통이후의 2차 피해를 줄여보자' 라는 개념하에 최상부에 1.5인치 봄덱에 갑판장갑과 탄편방어장갑을 적층하여 7인치급의 갑판방어력을 보유했다. 일본의 경우 나가토급 역시 다층 방식이긴 하나 총합이 7인치의 갑판장갑을, 야마토급에 이르러선 8인치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갑판장갑을 보유하고 있었다. 타국에 비해 갑판 방어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뿐 아니라 다층방어 시스템의 특성상 포탄을 방어한다고 하더라도 다층 방어체계 특성상 내부에서 막아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함체 자체에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더더욱 나쁜점은 나름대로는 중장갑을 쳐놓고서도 주포의 화력보존에 대해 매우 성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근접 저각 난타전을 상정하고 만든 전함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포탑 바벳장갑의 두께는 220mm다. 물론 주장갑 위로 솟아오른 2,3번 바벳의 특정부위는 340mm이나.. 약간 뒤늦은 시기에 등장한 노스캐롤라이나조차도 최소 292mm, 주장갑 밖으로 튀어나온 장갑은 374mm... 답이 없다. 더군다나 노스캐롤라이나급은 측면장갑만 406mm에 달해 측면장갑+바벳까지 다 합쳐도 넘사벽이다.
덤으로 주포탑에 경사장갑을 잘못 적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원래 타국의 전함이 가진 주포탑은 측면장갑과 상면장갑이 거의 90도로 연결되므로 측면에서 날아오는 포탄은 측면장갑으로, 공중에서 낙하하는 폭탄은 상면장갑으로 막지만, 독일의 경우는 측면장갑 위에 45도 각도의 경사장갑이 있고, 이 장갑 다음에 상면장갑이 있는 구조다. 따라서 포탑 측면에 명중하는 포탄의 절반이 얇은 상부경사장갑에 명중한다. 문제는 아무리 경사장갑이라도 일부 측면은 측면장갑의 두께인 220mm도 아니고 150mm라는 엽기적인 두께를 자랑했다는 것으로, 이런 장갑은 아무리 경사장갑을 사용해도 전함의 주포탄에는 일격에 관통되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전면장갑 상부의 상부경사장갑은 180mm라서 전면장갑보다 약간 위로 날아오는 전함의 주포탄을 만나면 역시 일격에 관통되어버린다. 게다가 경사장갑의 효과도 앞서 언급한 대낙각포탄의 경우에는 오히려 직각에 가깝게 적용되므로 안그래도 약한 방어력이 더 약해진다. 한마디로 말해서 주포탑 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결국 실전에서 이 문제는 드러나서 1,2번 주포탑 2기가 영국 전함이 쏜 주포 일제사격 1번에 침묵해버리는 문제가 생겼다. 전함의 일제사격이 말과는 달리 실제로는 목표에 1-2발 맞으면 다행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비스마르크급의 주포가 2연장 주포탑 4기로 총 8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주포탄 1-2발 맞았다고 순식간에 화력이 절반으로 떨어진 셈이다. 덕분에 적의 일제사격을 맞기 전에 애써서 영국 전함을 먼저 협차했는데도 불구하고 명중탄을 내지 못했다. 당장 이런 문제는 영국 해군이 비스마르크의 포탑을 치즈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다라고 비판할 지경이었다. 결국 영국 함대는 비스마르크의 주포가 침묵하자 초근접거리까지 다가와서 포탄을 쏘고, 심지어 전함이 근접해서 어뢰까지 발사할 정도였다.
이미 2차대전 시기의 전함 대 전함간 포격전이 '상대를 침몰시키는 것이 아닌 전투불능에 빠트리는 것'이라는 개념만 봐도 간단하게 주포가 침묵해버린건 이미 사망선고가 찍힌 상태였다는 뜻이다. 결국 비스마르크 불침전함 설도 '엄청난 만재배수량에서 나오는' 전함의 기본적 맷집과, 부력에 손상을 입히지못하고 상부구조물만 집중적으로 타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아무 것도 모르고 보기에는 비스마르크의 방어력이 강해보인다는 착각인 것이다. 설령 그 상태에서 영국 해군이 공격을 잠시 멈춰도 만신창이가 된 비스마르크가 혼자서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스마르크의 방어력은 뛰어나지도, 효율성이 높지도 않았다.
이렇게 방어력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 엄청난 포격을 맞고도 당장 침몰하지 않고 오래 버텼으니 비스마르크의 방어력은 세계최강이다 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상당히 많았으며 이로 인해 밀리터리 계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던 적이 있었다. 사실 잘 생각해봐도 방어력에 큰 문제가 있는 공고급 순양전함이 미 해군의 16인치 포격을 정통으로 9발이나 맞고 불타면서 전투능력을 완전상실한 상태에서도 표류하면서 3시간 반이 경과한 후에나 겨우 침몰했다.
그리고 데미지 컨트롤이란 면에서도 이게 어떻다 라고 추측할만한 근거는 없다. 사실 독일 수상함대는 영국 해군과 교전이 벌어졌다 하면 높은 확률로 귀환하지 않는 배가 되어버린 문제도 있었지만 다층장갑 특질을 공유한 독일제 군함의 예를 보면 수많은 다층 장갑격벽을 이용해 화재나 파공을 보수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지 않았겠는가?하는 추정을 했을 때 승조원들의 훈련도나 데미지 컨트롤에서도 문제가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7.3 옹호?
물론 독일이 금속이나 기계에 관련한 기술은 최고수준이었기에 비스마르크의 장갑판은 니켈 크롬 몰리브덴 강판이라는 당시에선 손에 꼽히는 최첨단 철판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이 판을 적용하고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1932년 기준 최신식 정보가 없던 독일해군은 당시 건조중인 프랑스의 전함이 15인치 미만의 주포를 올릴것으로 판단했었다. 15인치 수준의 함포를 막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배에게 그 이상을 바란다는 건 문제가 있다.
라인연습작전당시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후드와의 교전에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하지만 15인치 대응방어를 갖춘 전함이 14인치포를 장착한 전함한테 큰 피해를 입으면 그거야말로 망신거리인거고 후드는 프린츠 오이겐을 먼저 공격하다가 비스마르크는 제대로 공격하지도 못하고 격침되었으니 비스마르크의 방어력을 논하기는 애매하다. 게다가 장갑재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시대에 뛰떨어진 방어구조가 더 문제기도 하고.
1935년 독일 재무장 선언 당시에도 16인치까지 주포 제한이 풀렸으나 톤수 제한은 그대로 35,000톤이었기 때문에 조약 안쪽에서 꾸역꾸역 전함을 만드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조약을 맞춰가며 공격과 방어의 벨런스가 맞는 배를 만드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같은 제약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전함의 특성이 달라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킹 조지 5세급 전함을 비교하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불법으로 배수량을 늘려서 아이오와급(45,000톤)보다 3,000톤정도 가볍게 만들었음에도 속력을 제외하면 노스캐롤라이나급에 대해서 내세울만한게 전혀 없다.
물론 위에 나와있듯 독일 해군의 모토는 통상파괴작전이었다. 그 때문에 긴 항속거리와 30노트의 타국 고속전함들과 속력 만큼은 동급으로 만든것. 통상파괴작전은 적의 주력함과의 교전이 아니라 만만한 수송선단등을 습격하는 작전이므로 전함끼리의 직접적인 함포전을 염두에 두고 만든 배들에 비해서 전함에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동급의 병기과의 싸움에서 열세한 성능을 보인것은 변명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혼자서 조약을 위반해서 더 유리한 조건임에도 열세하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부분이다.
7.4 기타
대공과 대보조함용 보조포에 있어서도 비스마르크는 불리했다.
당장 당면한 적인 영국 해군이 비록 문제는 있었어도 5.25인치 대공/대수상 양용포를 도입했고, 이 대포는 상당한 고위력을 자랑하는 양용포였으나, 고각에 문제가 있었고 장전속도도 느렸으며 터렛의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다. 하지만 미국에게서 받은 VT신관을 적용하고 RP시스템을 이용하여 레이더와의 연동을 꾀했으며 뱅가드에 이르러서는 CRBF(단거리 무시야 사격)능력을 보유하여 262식 레이더의 통제 하에 모든 대공포문이 자동으로 조준(!)되는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미 해군의 경우는 말 안해도 알 정도인 레전드급 5인치 양용포가 있다. 이 대포는 VT신관을 적용하여 강력한 화력과 뛰어난 대공 명중률, 분당 26발의 빠른 연사속도와 빠른 회전속도를 보유했으며 현재까지도 5인치 함포가 명맥을 유지하게 만든 원인이 된 명품 양용포다. 거기다 MK37 대공지휘/조준레이더와 각종 조준레이더의 지휘 하에 무시무시한 예측사격능력까지 보유했다. 당장 필리핀 해 해전에서 보듯이 VT신관과 이 대공지휘 시스템의 연동으로 미 해군은 공포적인 대공능력을 발휘했다.[10]
하지만 비스마르크급은 수상용 부포와 대공포를 따로 장비했다. 이 문제 때문에 공간은 물론 중량에서도 동시기 미국/영국 해군 전함과 비교해 많은 점이 불리했다. 당장 터렛 무게만으로 미국 전함과 비슷한 대공화력을 뿜어내기 위해 400톤~500톤을 더 소모해야 했고 그에 필요한 탄약고도 따로 장비해야 했기 때문에 용적/무게 분배 효율이 나쁜편이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문제 외에도 사용하는 포탄들의 종류가 여러가지이기 때문에 보급 면에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11]
주력 대공포인 105mm 대공포의 경우 탄도 자체는 딱히 나무랄데 없는 대공포였으나 날이 갈수록 빨라지는 항공기에 대응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포탑 회전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미 해군 5인치 양용포처럼 전기 모터 구동식이 아닌 유압 구동식이기 때문에 피탄을 당할경우 화재가 발생할 확률도 높았다. 심지어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인다는 일본군 해군과 비교해도 딱히 나은점이 없었는데 일본의 주력 대공포인 89식 대공포는 상하각이 초당 16도, 좌우로는 초당 16도를 움직이는 반면에 비스마르크의 대공포는 상하각이 초당 10~12도 좌우로는 초당 8~10도로 일본 해군보다 못한 수준이다. 물론 분당 발사속도는 15발로 14발인 일본 해군보다 1발 앞서기는 한다.[12]
심지어 소구경 대공포로서 장비한 SK C/30 37mm 2연장 대공포는 단발이다. 운용인원만 쳐도 일본제 25mm 3연장 대공포보다 많은데다가 분당 30발이라는 처참한 발사속도를 지녀서 소드피시 같은 허접한 뇌격기조차도 격추시키기 힘들었는데다, 이게 여기저기 고슴도치처럼 많이 박혀있던 것도 아니고 고작 16문만 장비되었다. 조약형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에도 보포스 40mm 56구경장 기관포를 60문이나 탑재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말로 답이 없는 대공능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3.7cm Flak 37은 어따 팔아먹고 이딴 쓰레기를 집어넣었냐
거기다 대공/대수상용 포들을 따로따로 장비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포의 개수는 늘어났고 부포 탄약의 유폭에 따른 데미지 컨트롤 능력에도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자칫 잘못하면 중앙부 갑판에 화재가 번지고 유폭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격통제능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은 우수한 광학측거의로 높은 포격정밀도를 자랑했지만 반대로 그 우수한 광학측거의 때문에 사격방위반 등의 사격 시스템 개선은 상대국 영국에 뒤쳐져 있었다. 이 무렵 영국은 광학측거의에 대한 개선보단 사격방위반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고 타이거급 순양전함에 탑재된 사격방위반 시스템은 기존의 인력계산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자동으로 사격제원이 송출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따라서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사격제원을 송출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통합된 사격제원을 각 함포의 관제장교에게 넘겨 목표로 설정한 타겟에 대해 함이 보유한 전체 화력을 통합적으로, 신속하게 운용할 수 있었다. 이런 균일한 트리거 타이밍으로 인해 영국 전함의 전체 포문은 발포간격이 동일함은 물론 동일 사격제원이기 때문에 탄착확인이 훨씬 간단했다. 이러한 이유로 탄착수정이 훨씬 정확했고 개별 전함의 화력은 더욱 효과적으로 발휘되기 쉬웠다. 반대로 독일 해군은 사격제원 계산에 실패해서 짝포(...)가 나거나 일부 포문은 아예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있는등(......) 많은 문제를 도출했다. 설상가상으로 충격에도 약해서 비스마르크의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는 자신의 주포가 처음으로 포격을 시작했을 때 고장이 나버렸고 침몰 직전때까지 제대로 수리되지 못했다.
물론 독일 해군 역시도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사격방위반 개발을 시도했지만 타이밍도 좋게 종전이 되어버렸고 전간기에 부활한 독일 해군은 여전히 이 사격방위반을 개발하지 못해 화력통제시스템에서 적국인 영국에게 뒤쳐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으며 결국 비스마르크급에까지 와서도 이 문제는 끝끝내 해결되지 못했다. 물론 후드를 일격에 잡기는 했지만 그 원인은 영국 내/외부의 문제도 있었고 후드 자체가 워낙 강력한 함선이라 일선에서 빼내어 현대화 개장작업에 착수하지 못했던 점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약점에 명중당한 것은 비스마르크의 사격통제장치가 좋아서도, 승조원들의 훈련도가 높아서도 아닌 순전한 운이었다. 게다가 후드는 비스마르크가 최신예 전함답게 대응방어가 된 고속전함인 것으로 착각하고 근접격투를 노리고 급속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스마르크가 포탄을 명중시키기 편했다.
이외에도 비스마르크는 14.96인치 2연장 함포를 선수, 선미에 각각 포탑 2기씩 총 8문을 운용하는 설계였는데 이미 타국에서는 16인치 이상의 함포를 3연장화해 3연장 3기씩 총 9문의 함포를 운용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 해군은 14인치급 이상의 포탑을 3연장화할 기술이 전무했고 비스마르크급은 물론 이후에 진행하게 될 H플랜에 필요한 16인치 주포를 개발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이 함포마저도 2연장화가 끝이었다. 타국의 신형전함들은 3연장 함포를 이용해 비스마르크급에 비해 화력은 강화가 되어 주포탑 하나를 없애서 주포탑에 할당되는 용적 및 무게를 절약할 수 있었고 부가적으로 위험한 피격구획인 주포탑 1기를 줄인 덕에 상대적으로도 피격에 안전했다. 그리고 주포탑을 줄이지 않는 선택을 한다면 3연장 주포탑을 4기 탑재해서 주포를 12문 탑재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2연장 주포탑 4기를 탑재한 전함보다 총합화력이 33% 늘어난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도 비스마르크는 문제점을 도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러가지 면에서도 비스마르크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전함이었다.
8 총평
나치 독일의 그릇된 현시욕과 단절된 건함 기술의 결합이 낳은 약체 전함
웹상에서는 비만전함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비스마르크는 비만해서 비스마르크(...).
이런 처참한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시대에 맞지도 않고 뒤떨어진 기술과 사상들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미 14.96인치 주포의 위력 부족은 현실화된 문제였다. 당장 이 함포만으로 대서양 건너 미 해군의 21노트짜리 구형전함들을 상대로도 장거리에서 위력발휘가 힘들었다. 미 해군 구형 전함들은 아무리 못해도 13.5인치 측면장갑에 5인치 갑판장갑을 갖춘 중장갑 전함들이었으며 네바다급이나 펜실베이니아급의 경우 아예 포스트 유틀란트 방어체계를 가진 전함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타국 해군이 전함간 포격전 거리를 최소 20Km대로 잡고 있던 상황에서도 독일은 근접전 및 수선부 타격능력에 특화된 14.96인치 주포를 비스마르크에 탑재해 세계 해군 포격전술의 최신사조와도 멀어져 있었으며 방어구조는 1차세계대전 수준에 정체되어 있었고 사격통제능력, 대공능력에 대해서도 정체되어 있거나 심각한 문제점을 도출해냈다.
독일 해군의 낮은 승조원 훈련도도 문제가 되었는데 당장 적국인 영국 해군은 비록 돈에 쪼들려도 매년마다 실탄 포격훈련을 철저히 하고 있었는데 독일 해군은 이조차도 하지 않거나 게을리했다. 이 훈련 부족문제는 페어리 소드피시 뇌격기의 공격이나 티르피츠 격침작전의 몇 가지 예에서 보듯 효율적인 대공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를 만들어냈고 데미지 컨트롤에 대해서는 아예 이것이 어떻다 라고 추정할만한 근거조차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이 시도할 함대 결전을 회피하고 통상파괴전 및 통상파괴 전력 구축을 위해 마구마구 달려들 영국 해군 순양함 세력을 견제할 전력을 구축하나 노르웨이에서의 치명적인 해군 전력 손실로 인해 한때 상시운용전력이 구축함 3~4척에 순양함 2~3척까지 줄어든 전력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영국 전함 및 주력 함대와의 조우를 극도로 회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원래부터 해군강국이거나 나름대로 컨셉을 잡고 지속적인 발전과 여러가지 시도를 계속했던 당대 3대 해군국인 영국, 미국, 일본의 신전함들과의 비교는 말할 것도 없고, 1차대전 당시에만 해도 독일보다 해군력으로서는 뒤떨어졌던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베네토, 프랑스의 리슐리외급 전함과 비교해도 비스마르크는 야마토 등장 이전에는 최대급이었다는 배수량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다. 근접전에 특화된 화력은 16인치에 근접하는 현측타격 화력을 지닌(물론 그 현측타격 능력 하나를 위해 희생한 것이 너무 많지만) 비토리오 베네토보다 못하고, 공-방-주의 균형성은 리슐리외급 전함을 따라잡지 못한다.
심지어 열강 신전함 중 최약체 화력이었다는 영국의 킹 조지 5세급 전함과 비교하더라도 열세한 점이 많다. 최소한 킹 조지 5세급은 주포 발사 한번에 사격통제장비 고장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방어력 면에서 절대로 허술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았다. 다만 킹 조지 5세급의 경우에는 비스마르크 못지 않게 상당한 약점이 있었는데, 사격통제장치의 신뢰성은 확실히 비스마르크급보다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주포인 14인치 4연장 함포는 희대의 괴작이었다. 제한된 배수량 내에서 최대한의 화력 투사능력을 보유하기위해 기존 3연장을 넘어 4연장의 포탑을 설치하기로 계획되었으나, 배수량 초과로 2번 함포의 경우 어쩔 수 없이 2연장 함포를 탑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1,3번의 4연장 함포는 무게가 무식하도록 무거웠고 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이것저것 떼어내서 중량을 감소시켰으나 무게 경량화에도 단단히 실패했으며 주포의 신뢰성은 바닥을 기었다. 당장 비스마르크와의 실전에서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사례나, 네임쉽인 킹 조지 5세도 이 문제가 터져서 10문의 주포중 8문이 동작불가라서 14인치 2연장포로 싸워야 했다. 더 놀라운건,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영국 해군은 명중탄을 냈을만큼 압도적인 숙련도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스마르크, 나아가 독일 해군만 더 초라해지는 꼴이 된다.
지나친 혹평일 수도 있겠지만, 아래에서도 나오듯, 그저 '노령의 순양전함 후드 하나 운좋게 잡은 걸로 최강전함 자리를 거저 먹은 결함품', 비스마르크에는 이 이상의 평가는 불가능할 것이다.그래도 어디의 수상호텔과는 달리 그 이미지는 잘 활용했다.
그나마 자매함 티르피츠가 그 운좋게 얻었던 최강전함 이미지를 백분 활용하여 연합군에게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지속적인 압박을 주었고 그렇게 하여 북해에 해군전력 일부가 묶일 수 밖에 없었다. 항공모함이 해전의 주축이 되었던 2차대전에서 전함을 잘 이용한 사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약체 전함이지만 지휘부의 한심한 운용 덕분에 아무것도 못했던 야마토와는 달리 비스마르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적과 전투를 벌여서 싸웠고 자매함 2척을 전부 포함해도 아무런 전적도 쌓지 못한 야마토급 자매들과는 달리 비스마르크는 어쨌든 적함 하나를 격침시키고 한척을 중파시키는 전과[13]를 보유했고, 티르피츠는 언니 덕분에 항구를 돌아다니는것 만으로도 영국 해군의 신경을 마구 긁었을 정도였으니[14] 아무리 형편없는 전함이라도 적절한 운과 활용이 받쳐준다면 나름대로 활약할 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기는 했다.사실 한 일은 야마토랑 차이가 없는게 함정
9 여담
비스마르크의 침몰에 대해 영국 측은 '격침'을 주장한 반면 독일 측은 '자침'을 주장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비스마르크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15]에서도 생존한 승조원들의 증언을 통해 은근슬쩍 자폭설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자폭설을 따르더라도 방어구조가 '최대한 격침당하지 않기' 컨셉이라 격침을 안당했을뿐 최후의 전투에서 영국의 전함 '킹 조지 5세'와 '로드니'에게 얻어맞고 44분의 교전만에 앞서 언급한 상식을 깨는 얇은 장갑을 가진 주포탑과 바벳이 박살나면서 모든 포탑이 파괴되었으므로 사실상 전투불능이었다. 이후로는 그냥 두들겨맞았는데 후드때와 마찬가지로 비스마르크를 너무 과대평가한 영국전함 두 척이 근접거리로 너무 접근한 탓에 현측만 죽어라 두들겨댄게 큰 이유였다. 2만m 이상의 거리에서 갑판을 두들겼으면 비스마르크가 저렇게 전설로 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격침기록은 후드 하나뿐이지만 그 하나가 탑 오브 탑이다 보니 그 때문에 네임밸류만은 엄청나게 높다. 배치시점에서 세계최대의 거함이라는 그 상징성에다 첫 출격에서 영국의 후드(비스마르크 건조전까지는 세계최대의 거함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를 격침시켰고 비스마르크를 잡기위해 영국 해군이 투입한 전력도 엄청나다. 롬멜처럼 영국이 일부러 띄웠던 사정도 있다고... 첫전투에서 영국 해군 최대의 거함인 후드가 별다른 타격도 주지못하고 격침당하고 신예전함이었던 프린스 오브 웨일즈 역시 두드려 맞고 도주해야 했으니... 게다가 2차 대전중 전함 간의 고전적 포격전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대서양에는 사실상 이 전투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샤른호르스트 추격전 당시 샤른호르스트와 듀크 오브 요크는 아무래도 체급이 다르다. 이외에 2차 대전 전기간을 따져봐도 전함이 포격전만으로 격침된 기록은 영국의 후드, 일본의 기리시마, 독일의 샤른호르스트 셋 뿐이고 이 셋은 모두 순양전함이다. 공교롭게도 3척 모두 정규전함에게 격침당했다. 전함:이게 장갑도 없는게 까불어![16]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에서는 기관공학의 발전으로 두터운 장갑을 두른 정규전함이 순양전함에 버금가는 속도를 낼 수 있었으므로, 순양전함의 쇠퇴는 예견되어있었는데,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전투가 기리시마와 워싱턴의 포격전이었다. 워싱턴의 경우 단 7분간의 일제포격으로 16인치 주포탄을 최소 9발을 명중시켜 기리시마를 완전히 뭉게버렸다. 야간에 대략 8,400~12,560 야드에서 레이더 조준 일제사격 8회 75발을 사격하여 기록한 것으로, 명중률은 12%다. 1930년대에 미국의 전함 사격훈련에서의 성적이 일본군의 3분의 1 정도인 10%대였다는 점에서 레이더가 미국 전함들의 주포 명중률을 매우 개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7]한편 워싱턴이 기리시마를 향해서 발사한 5인치 부포탄은 107발이고 그 중 40발이 명중하였다.[18]
여담으로 샤른호르스트는 나중에 킹 조지 5세급인 듀크 오브 요크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으므로 앙갚음은 한 셈이다. 덧붙여 기리시마는 미군 전함 워싱턴에 의해 격침되었다.
개전 당시 영국 해군 최대급의 함선이며, 나름 불침함으로 이름 날리던 순양전함 후드가 럭키샷[19]에 당한게 꽤나 뼈아팠던 모양인지 영국이 무척 띄워주고있으며, 무엇보다도 당시 영국 수상인 처칠이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노이로제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그래서 2번함 티르피츠를 초중량 항공폭격으로 항구에서 앉은채로 뒤집어버리는데 성공했다.
사실 야마토급 전함이 나오기 전까진 최대급의 전함이었고 독일의 전함건조능력을 너무나 과대평가한건 미국도 마찬가지였기때문에 사실여부는 불명이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비스마르크가 미국 동부 해안까지 와서 포격을 퍼부을까 두려워했다는 얘기도 있다.
10 대중매체
- 디스커버리 채널의 세계 톱10 군함편에서 7위를 차지하였다. 위협성과 화력에선 높게 평가를 받았으나 방어력, 혁신성, 운용기간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도 방영이 되었다.
- Naval Front-Line의 나치독일트리의 레벨50급 전함이다.
- 네이비필드2의 독일 전함 트리의 9티어와 10티어 함선으로 등장한다. 왜 둘로 나뉘나면 하나는 1941년 개장형이라는 이름을 달았기 때문이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독일 전함 8티어로 비스마르크가 등장 했고, 8티어 프리미엄으로 티르피츠가 등장한다. 이 게임에서는 미국의 고낙각이 미국 최악이 단점인데다가(...)[20], 터틀백식 장갑 덕분에 집중 방호 구획이 잘 관통 당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취급을 받는다. 거기다 어차피 어뢰 유폭 확률이랑 탄약고 유폭 확률은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방뢰와 선회가 그리 좋지 않아서 어뢰에 약하다.[21]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야마토급 전함과 더불어 추축국 진영의 대형 중장갑 타겟으로 등장한다. 파괴 시 전술점수 32점을 획득하며, 상대방은 제공권의 최대 32%를 잃는다.
- 함대 컬렉션에 모에화되어 등장한다. 비스마르크(함대 컬렉션) 참고
- 전함소녀에서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개장을 하면 비스마르크 Mk.2가 되면서 406mm짜리 독일의 페이퍼쉽인 H39의 무장을 들고 나온다. 개장 후 스킬은 기함 도살자로 적 기함에 대한 명중률을 대폭 늘린다.
- 워쉽배틀:2차세계대전에서 등장한다. 역시나 고증오류를 일으켜 함선 설명에 방어력이 강한 함선이라는 문장이 있다.
11 관련항목
- ↑ 히틀러 집권 이전에도 베르사유 조약 이상의 군사증강은 있었으나, 히틀러 집권 후에 그 기세는 더욱 빨라졌다.
- ↑ 야마토급 전함은 조약을 탈퇴한 다음 만들었기에 조약위반이 아니다. 모가미급 중순양함에서 꼼수를 쓰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조약의 허점을 이용한거고 비스마르크는 명백한 조약 위반이다.
- ↑ 개선보다 오히려 최악의 개악에 가깝다.
- ↑ 속도의 하락이 문제. 여담이지만 2번함 무츠는 비스마르크 격침에 기여했다. 무츠를 얻기 위해 일본은 미국에게 콜로라도급 전함 3척을 영국에게 넬슨급 전함 2척을 주는데 넬슨급 2번함 로드니는 비스마르크 격침의 일등공신이다.자세한건 무츠(전함)참고.-무츠를 인정하는 반대급부로 미국이 보유를 인정받은 콜로라도급 전함은 2척이다. 콜로라도급 2번함 메릴랜드는 무츠와 상관없이 나가토처럼 완성되어 있었기에 이미 보유가 인정되었다.
- ↑ 이 배가 상대한 후드 역시 1차대전형 전함. 1차대전때 참호전으로 각국의 한 세대가 날아가버린 결과 전간기에는 전쟁혐오와 군축 분위기가 강해서, 오랜 세월이 필요한 신형 전함 개발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드만 해도 영국해군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전함을 위해 그나마 건조시기가 늦어 신형인 후드를 굴리다 보니 개량시기를 놓쳤다.
- ↑ 게다가 이쪽도 비스마르크에게 공방은 밀린다. 특히 주포가 11인치라는 빈약한 주포라서.
- ↑ 물론 교범상 미해군의 16인치 주포 재장전 속도는 30초당 1발이지만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번함 워싱턴의 경우 14초당 1발로 끊을 정도로 승무원들의 숙련도가 뛰어났다. 즉, 훈련도에 따라 3발 쏘는 건 그리 대단한 장점도 아니다.
- ↑ 그러나 그 배수량차이는 3000톤 정도로 다른 조약형 전함과 비스마르크와의 차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조약형 전함들 중에도
느리긴 하지만16인치 대응방어를 갖춘 전함이 있음을 생각하면 아이오와가 비스마르크보다 무겁다고해도 비스마크르의 공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 ↑ 당연하다면 당연한게 노스캐롤라이나는 조약을 준수해서 만들어진 조약형 전함이다. 조약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비스마르크보다 가벼운게 당연하다.
- ↑ 물론 이건 1944년의 이야기이고 VT신관의 도입도 43년의 이야기이므로 공정한 비교는 아니기는 하지만 5인치 양용포 자체는 1934년부터 운용하기 시작한 물건이므로 포 자체는 비교해볼 가치가 있다.
- ↑ 이 뒤에 미해군은 부포체계를 통일했다고 서술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류다. 전쟁 전에 미해군과 영국 해군 역시 독일 해군과 비슷해서 다양한 부포와 대공포를 혼용했다. 예를 들어 미해군이 전투함의 함포를 20밀리 오리콘, 40밀리 보포스, 127밀리 38구경장 양용포로 일원화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발발한 이후다. 태평양함대 전함군은 진주만과 본토에서 수리하면서 교체했고, 상대적으로 대공위협이 적은 대서양함대의 전함군은 거의 개선없이 종전을 맞기도 했다.
물론 주력함은 거의 태평양으로 몰려가기는 했다 - ↑ 일본의 대공포중 3식 대공포는 진짜로 인력으로 돌리는 물건이라 비스마르크의 대공포보다 못한 물건이지만 주력함에 사용된 대공포는 89식이므로 89식과 비교함.
- ↑ 순양전함 1척 격파. 전함 1척 중파, 전함 2척 소파. 중순양과 구축함 각각 1척 소파시킨 전과를 보유했다라고 하지만 보통은 소파는 고려하지 않으니 실질적인 전과는 순양전함 1척 격침, 전함 1척 중파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상당한 전과를 올린건 사실이지만 특출나다고 할 수준은 아니다.
- ↑ 이것 때문에 영국은 결국 지진폭탄을 동원해서 티르피츠를
언니와 재회격침시킨다. - ↑ 카메론 감독 작품답지 않게, 작중 독일 해군복 재현 수준이 개판이다.
- ↑ 사실 샤른호르스트의 장갑은 방어구조가 막장일지언정 두께는 상당했던 비스마르크보다도 일부분에선 더 두꺼웠다. 다만 화력이 고자(...)
- ↑ 얼핏 보면 차이가 없는데, 뭐가 개선이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보통 사격훈련은 목표에 명중하기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서 한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주간, 맑은 하늘에 잔잔한 바다 등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하는 것이다. 당연히 실전보다 명중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워싱턴의 실전 명중률은 오히려 그 당시보다 높다. 그리고, 시야 확보가 잘 안 되는 야간이다. 이를 고려하면 단순한 명중률 상승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에 영향을 적게 받는 안정성도 확보했단 소리다.
- ↑ 여기에 대해서 그 전 11,000야드 떨어진 경순양함을 상대로 16인치 42발을 쐈는데 전부 빗나갔고, 12%의 명중률은 8,400야드라는 초근접거리까지 다가간 덕이라고 봐야 하므로 결국 117발 중 9발이 명중한 셈이라는 헛소리가 있는데, 명중률은 단일 목표에 대한 명중률을 계산하므로 목표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 애초에 전함의 주포는 작고 빠른 경순양함 이하 함급에 대한 적절한 무기가 아니며, 이를 위해 부포가 따로 장비된다. 따라서 이런 것을 무시하고 명중률을 계산하면 이 세상에 명중률 높은 무기는 하나도 없는 셈이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키리시마를 향해 75발의 16인치 포탄을 발사해서 9발 명중이라 되어 있지만 침몰한 키리시마 선체의 조사 결과 16인치 포탄이 20발 정도 명중했다는 설이 있다. #
- ↑ 탄약고 엘리베이터를 통한 유폭에 의한 피해로, 이 부분은 침몰 이전부터 문제시되어 있었다.
- ↑ 저각포일수록 탄착시각과 집탄이 좋기에 고각포는 그리 좋지 않다.
저각포가 걍 조준이 쉽다 - ↑ 하지만 비스마르크에는 소나가 있어서 어뢰를 피하기는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