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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 광주제일고등학교 |
한자 | 光州第一高等學校 |
로마자 | Gwangju Jeil High School |
개교일 | 1920년 5월 1일 |
교훈 | 다하라 忠孝 이어라 傳統 길러라 實力 |
교목 | 소나무 |
성별 | 남자고등학교 |
유형 |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
주소 |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237번길 33 |
링크 | [1] |
1 개요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1920년 5월 1일에 개교, 고등학교는 1953년에 1회 졸업생이 입학했다. 1920년은 광주 고보 개교년이고, 이때부터 기준해서 회수를 따진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중학교도 동문회에 포함된다. 물론 기수도 산정된다. 서중학교 병설 광주일고였던 셈.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상지이다. 광주 구 도심에 있는 학교로, 광주에서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한 학교이다. 흔히 광주일고라고 줄여서 부른다.
비평준화 시절 광주고등학교와 함께 호남 지역의 인재들을 쓸어모으다시피 했던 고등학교로, 3부 요인[1]을 모두 배출한 명문고등학교였으나, 학교가 구도심에 위치한 관계로 평준화가 되자 급속도로 평판이 하락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문들의 자부심은 엄청나며,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지정된 이후 명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2]
운동부로는 야구부가 있으며, 현재 KBO에 등록된 광주일고 출신 야구선수는 무려 36명에 달한다.이쯤되면 프로야구씬의 스포닝풀 수많은 전설들이 거쳐간 학교로, 군산상고, 광주진흥고 등과 함께 호남 야구의 산실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메이저리거를 많이 배출한 학교이기도 하며 하키부도 있다. 하키부 그거 먹는건가여
2 역사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교사. 위 그림은 1923년 신축된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현기봉, 김형옥, 유강렬, 윤정현 유지 제씨가 중심이 되어 전남 다수 유지들이 사립 광주고등보통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했다. 이후 인가를 받아 사립 광주고등보통학교(5년제)로 설립했으며, 1922년 관립으로 전환된다.
1929년 11월 3일 촉발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발점이었던 학교로,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 동맹 휴학을 했다. 해방 이후 퇴학 등의 사법처리가 된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 학생들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으며,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다.
1951년 교육법 개정으로 교명이 광주서중학교로 개명되었다.[3] 이때 3년제로 개편, 이시기에는 일고가 생기기 전이라서 해방전에 일본인 학교였던 광주고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광주고의 리즈시절(이때문에 일고와 광고 동문회에 둘다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꽤 있다.) [4]
1947년, 본관 건물이 전소되었다. 이 때 전소된 건물은 위의 1923년에 완공된 본관이다. 이전 건물의 구령대가 있던 자리를 나타내는 작은 기념비가 설치되었는데, 현재는 운동장 가장자리 화단에 방치되어있다.
1952년 6월 9일, 당시 전남대학교 운동장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전남대학교 개교식이 광주서중에서 열렸다.
1953년 광주서중학교 교정. 6.25 전쟁 휴전반대 대회가 열리고 있다.
1953년 광주서중에 병설된 고등학교의 형태로 오늘날의 이름과 같은 광주제일고등학교가 개교했으며, 1954년 6월 10일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들어섰다. 이 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광주제일고등학교에 들어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5]
우리는 피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6]
1972년 중학교 평준화로 인해 광주서중학교가 폐지되었고, 광주제일고등학교만이 살아남았다. 그 이듬해 광주고보와 서중의 연혁탑이 건립되었다.
이어 1974년 고교평준화가 실시됨에 따라 점차 명문 고등학교의 지위를 잃어갔으나, 2010년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지정에 따라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3 시설
본관 건물과 기숙사, 강당,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 급식실이 개별 건물로 있다.
본관 건물은 비틀린 번개 모양 건물에 별관(도서관) 건물이 합쳐진 형태이며, 별관 건물에는 1층에 시청각실, 2층에 진로진학실, 3층에 도서실, 4층에 미술실과 음악실이 위치해 있다. 본관은 비틀린 부분에 1층에는 샤워실이, 2층과 3층에는 수학전용교실이, 4층에는 3학년 교무실이 위치해 있으며, 5층에는 물리실, 화학실, 생명과학실, 지구과학실, 공통과학실이 위치해 있다.
별관 2층이 진학지도실로 바뀌기 전에는 일고 미술관이었다. 수많은 미술작품이 전시되어있는데 모든 미술품 시가 총합 기준으로 40~50억에 육박한다 카더라. 리모델링 이후로 전시되어있던 일부 미술품들은 원주인들에게 돌아가거나 기증, 그렇지 않은 작품들은 전시를 계속하거나 진로진학실 안쪽 방에 보관되었다.
강당 건물은 상당히 큰 편으로, 별관에서 강당까지 가는 길 위에 지붕이 있다. 강당 건물에는 "무등관(無等館)"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으며, 전 학년이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큰 규모의 건물이다. 강당 뒤에는 야구부와 하키부의 숙소가 있다.
운동장은 하키장과 야구 내야, 축구장 사이즈에 잉여 공간을 합친 형태로 굉장히 넓다. 야구부 경기 시 펜스를 외야 모양으로 치는데, 야구부가 사용하지 않을 때에 풋살 골대로도 사용한다. KIA 타이거즈와 경기가 있는 프로 야구팀이나 원정 온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야구팀이 가끔 쓰기도 한다. 그 때마다 쏟아지는 학생들의 원성은 덤.[7] 아침에는 조깅하시는 동네 주민분들과 함께 기숙사생들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숙사는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1학년 교실까지 평균 45초(!!)밖에 걸리지 않는 놀라운 접근성을 보여준다. 1층에는 학습실과 사감실, 사이버실이 있고 2, 3층에는 각각 12개의 호실과 함께 샤워실과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다.
학생독립운동 기념관은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공원에 위치해 있으며, 건물 안에는 거의 모든 광주일고의 역사를 담아놓았다. 기념탑에는 매년 입학식과 11월 3일에 참배한다.
급식실 옆에는 매점이 있으나 2012년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빈 건물이다. 현재는 창고 등의 용도로 쓰이는 모양이지만 건물 이름은 '매점' 그대로다. 급식실은 1층에 위치해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들어가지 못해 배식이 원활하지 못하다. 2층에는 학습관이 있다. 독서실이나 자습실 같은 분위기인데, 휴일에 기숙사생들이나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와서 자습을 하며, 8시 반 등교가 실행된 이후 아침 자습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정문에 위치한 수위실 건물은 담장보다 더 밖으로 튀어나와있다. 체육대회때는 폐지된 매점을 대신하여 학생회에서 운영하는 매점이 들어선다.
후문 나가는 길에는 무려 1958년부터 있던 이발소가 있다. 이곳에서 삭발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4 교가
무등산 아침해같이 눈부신 우리의 이상
극락평강물과 함께 줄기찬 우리의 전통
보아라 높이 올린 정의의 등대
들려라 울려나는 학문의 성종
민족의 혼이 깃든 영원한 이 집
새 역사의 주인공들 자라나는 곳
열렸다 희망의 앞길 큰 포부 가슴에 찼다
일고는 이 나라의 힘 일고는 이 땅의 자랑
5 야구부
호남 야구의 산실
긴 말 필요없이, 광주일고 출신으로만 해도 한국야구의 전설들이 모인다. 선동열, 이종범, 김병현, 최희섭, 이강철, 박재홍, 문희수, 강정호, 서건창 등등... 메이저리거도 4명이나 배출하다 보니 뉴욕 타임즈에서까지 소개할 정도. 기사보기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참조.
6 트리비아
- 이 문서는 광주광역시의 고등학교 목록 중 가장 먼저 작성되었다.
- 오늘날에는 그 명성이 조금은 식었지만, 과거의 영광이 찬란했던 학교라 교사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교사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 광주고등학교와 라이벌 기믹이 있다. 물론 여기서는 광주일고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9]
평준화 이후 도찐개찐이다.역사적 관계도 묘하다. 해방 후 일인 중학인 광주동중학교를 폐교시키고, 서중 1~3학년은 그대로 서중에, 4~6학년은 구 광주동중 자리에 새로 설립한 광주고등학교로 편입시켰다. 즉, 원래는 광주서중-광주고가 전주북중-전주고처럼 동일계고등학교였다. 그러나 50년대 초반, 광주서중 자리에 다시 광주제일고등학교가 설립되고, 광주고등학교 자리에 광주동중이 재설립되면서, 광주서중-광주일고, 광주동중-광주고 체제가 된다. 이 때문에 해방 직후의 광주서중 4-6학년생으로 광주고를 졸업한 졸업생은 광주서중-일고 동문회 소속이면서, 동시에 광주고 동문회 소속인 셈이다. - 엄청나게 큰 운동장이 모두 인조잔디로 바뀌었다. 공사가 2011년에 있었고 2012년 초에 완공되었다.
- 해마다 열리는 광주학생항일운동기념식(11월 3일)에는 광주에 위치한 모든 고등학교에서 교기와 기수를 보낸다. 기수단과 함께 시장과 교육감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한다.
- 축제를 "무등제"라고 부르며, 발간되는 교지의 이름 역시 "무등(無等)"이다. 학교 자체가 무등산을 바라보기 위해 동향으로 설계되어 있거니와, 많은 활동을 무등산에 관련짓는다.
그렇다고 소풍을 무등산으로 가진 않는다.[10] [11] [12] - 2015년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야구 연습장으로 운동장이 사용되었다.
6.1 동문, 장학금 관련
동문들이 빵빵하다 보니 장학금도 빵빵한데, 동문 장학금과 20회 졸업생 동문인 배종국 장학금 등 뿐만 아니라 성적 향상 장학금도 지원된다. 총 동문회 장학금 위탁규모가 2013년 기준으로 37억원(2015년 12월 기준 43억원)이 넘었다. 워낙에 장학금이 빵빵하다보니 연말에는 남는 장학금으로 간식과, 각종 영화티켓 그리고 문화상품권을 뿌려댄다. 문상도 시시하게 5000원짜리가 아니라 1만원 이상 단위이며 가끔 성적향상+동문장학금+간부(반장과 부반장, 대의원, 학생회, 교지편집부등등)+선행상으로 연말에 최대 200가까이 챙겨가는 학생도 있었다.하지만 받는 학생은 한정되어 있다. 동창회는 10월쯤에 열리는데 동창회에서 체육대회와 각종 행사의 사은품은 입이 떡벌어진다. TV와 에어컨 냉장고는 기본이요. 100만원에 육박하는 각종 자전거같은 것도 경품으로 걸린다. 물론 참석자들 또한 입이 벌어지는 각 정-재계인사들이 참석한다.
학교 1층 로비에 6.25전쟁때 참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산화하신 광주서중-일고출신 국군장병 존함이 걸려있다. 가끔 높으신 장군분들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학교를 찾아올경우 학교에 별로 은하수가 놓인다.(진짜로 군 계급으로 별(!!)들이 수명에서~수십명이 모인다.) 물론 높으신분들이 찾아오니 청소할때 죽어나가는것은 학생들이다. 2012년, 31사단장이 일고 동문이었기 때문에 국군의 날이나 6월 25일과 같은 국군과 관련된 날에는 31사단에서 학교에 각종 실제무기를 들고와 안보교육을 실시했다. 무장공비의 탄에 맞아 총열이 파손되고 휜 M16소총이나 칼구스타프 무반동총, 야간투시경, M60, 더미 크레모아, 야전삽, 판초우비, K2소총, K1소총과 같은 물건을 실물(말이 실물이지 모두 고장나서 작동불가능)로 들고와 안보교육을 실시한다.
5층 지구과학실은 공군사관학교 1기 졸업생이시자 6.25 때 참전하셨다가 순국하신 선배의 이름을 따서 불리고 있으며, 2015년부터 그 분의 초상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6.2 단체 관련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고등학교 관현악 동아리가 있는데, 무려 1968년에 설립되었다.
교지편집부도 아주 오래된 동아리다. 과거에는 주로 학생회 멤버들과 문예창작동아리등이 교지를 편집하고 국어교사가 감수하는 전형적인 교지였다. 즉 교지 발간시기에만 모이고 교지발간이 끝나면 해산되는 학생회내부 임시모임과 같았다. 하지만 2012년 신임교장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학생회에서 독립된 새로운 교지편집부가 설립되었으며 담당 선생님과 일반기자, 사진기자로 구성된다. 이때 설립된 교지편집부의 제대로된 교지를 만들자는 취지아래 질적과 양적으로 차원이 다른 교지가 만들어졌다. 우선 동문들이 빵빵하기에 다른 학교 교지에 나오기 힘든 3성장군, 4성장군, 국무총리, 국회의장, 국회의원, 대법관등의 고위공무원이나, 기업회장들이 나온다.
야구부가 대회 결승에 오르면 응원을 가는 전통이 있다.[13] 예외로 2015년에는 준결승 경기에 응원을 갔다. 남행열차만 응원곡으로 틀어대서 기사에 났다.
학생회에서 FBI(Facebook of ilgo)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을 운용한다. 하지만 체육대회때 반티공지를 제외하고는 글 리젠률이 거의 없다.
7 사건사고
7.1 공수부대원 교내 침입 구타 사건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광주제일고등학교는 운동장에서 동문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었고, 교실에서는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의 성인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금남로를 지나던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일고에 난입하자 체육대회가 중지되고 동문들은 군대를 피해 도망쳤다. 조선대학교 의대 4학년생인 한 동문은 일고 교장관사까지 도망쳤으나 구타당하고 연행되었으며, 교내 수업중이던 학생들도 연행되어 수업이 중지되었다. 자세한 전개는 5.18 민주화운동/학살의 광주일고 관련 내용 참조.
2016년, 1980년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서울역 회군을 결정한 국회 부의장 심재철이 모교를 방문했다. 심재철 본인이 서울역 회군으로 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별다른 말 없이 학생들을 상대로 일장 연설을 하고 갔다.
8 출신인물
직업 분야별로 정렬, 현직을 기준으로 분류. 단, 야구부 출신은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를 참조하기 바람.
특기하지 않은 경우 참모총장 등은 전직, 국회의원은 현직. 사망자의 경우 회색으로 처리.
분야 | 성명 | 직업(또는 직책) | 비고 |
정계 | 김동철 | 국회의원 | |
김태홍 | 국회의원 | 전직 | |
김영록 | 국회의원 | 전직 | |
김재위 | 국회의원 | 전직 | |
김황식 | 국무총리 | 전직 | |
김효석 | 국회의원 | 전직 | |
나석호 | 국회의원 | 전직 | |
박흥규 | 국회의원 | 전직 | |
배기선 | 국회의원 | 전직 | |
배기운 | 국회의원 | 전직 | |
신기하 | 국회의원 | 전직 | |
심재철 | 국회의원 | ||
유옥우 | 국회의원 | 전직 | |
윤원중 | 국회의원 | 전직 | |
이낙연 | 전남도지사 | ||
이영일 | 국회의원 | 전직 | |
이종남 | 국회의원 | 전직 | |
이춘희 | 세종특별자치시장 | ||
이형모 | 국회의원 | 전직 | |
임복진 | 국회의원 | 전직 | |
임채정 | 국회의원 | 전직 | |
장휘국 | 광주광역시교육감 | 서중 | |
조순 | 국회의원 | 전직 | |
조영택 | 국회의원 | 전직 | |
조재천 | 국회의원 | 전직 | |
조홍규 | 국회의원 | 전직 | |
주승용 | 국회의원 | ||
최운열 | 국회의원 | ||
최재천 | 국회의원 | 전직 | |
홍기훈 | 국회의원 | 전직 | |
황주홍 | 국회의원 | ||
법조 | 김현웅 | 법무부 장관 | |
박찬주 | 국회의원 변호사 | 전직 현직 | |
이용훈 | 대법원장 | ||
군 | 김동신 | 연합사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 |
김장수 | 연합사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
박선우 | 연합사 부사령관 | ||
이계훈 | 공군참모총장 | ||
이수용 | 해군참모총장 | ||
금융 | 박현주 | 미래에셋 회장 | |
문예 | 김남주 | 시인 | |
이청준 | 소설가 | ||
조정래 | 소설가 | ||
황지우 | 시인 | ||
방송 예능 | 김형준 | 프로게이머 | |
남성우 | KBS 경영본부장 | 전직 | |
차선우 | 연예인 | 전학 |
- ↑ 국무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장
- ↑ 그래도 여전히 광주 최고의 고등학교임에는 변함이 없다.
- ↑ 이 때문에 광주서중학교 당시 졸업생들도 광주일고를 졸업한 것으로 친다.
- ↑ 왜 이시기가 광주고의 리즈시절이냐면 전남권의 인재가 서중-광주고 트리를 탔기 때문이다. 일고가 생긴 후에는 광주고는 그냥 2인자 취급. 일고가 서울대 100여명씩 보낼때 광고는 30명 남짓 보낼정도..
- ↑ 기념탑은 일고 외에도 광주교육대학교, 광주자연과학고등에도 세워진다.
- ↑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에 쓰인 어구로, 광주일고의 제 2의 교훈과도 같다.
- ↑ 2000년 초반대에 다녔을 때에도 야구부가 연습할 경우 운동장을 크게 잘라내서 사용하는 덕분에 가로와 세로로 남은 자투리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기도 했다. 히익.
- ↑ 노산 이은상(1903~1982).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의 탑문을 지으신 분이시다.
- ↑ 평준화 이전에 광주고는 광주일고에 비해서 훨씬 밀렸다. 첫째가 일본인학교였던 동중의 후신인데다, 입학성적또한 낮았다. 물론 진학수준도.. 서울대를 매년 100~120명씩 보내던 일고와 30명 남짓 보내던 광주고
- ↑ 단, 2008~2010년동안 수학을 담당한 한 선생님이 무등산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그 선생님이 담당한 반은 소풍을 무등산으로 갔던건 전설 아닌 레전드
- ↑ 그런데, 2015년 대참사가 벌어졌다 1학년 지리담당선생님이 여름방학 과제로 무등산 정상찍기를 내버렸다
- ↑ 2013년 자공고 1기생(89회졸업)들은 2학년때 한번 3학년때 수능끝나고 한번 총합 2번을 무등산을 등반했다.
- ↑ 일반적으로 경기가 저녁에 있다 보니까, 오전 10시~오후 1시쯤에 버스 수십대가 광주천가를 따라서 쭈욱 늘어서고, 그대로 서울에 올라가서 경기를 관람한 뒤, 저녁 8~10시쯤에 내려오기 때문에 이 날은 사실상 수업이 불가능하고, 다음날은 10시 이후 늦은 등교가 허락되는 편이다. 일단 광주-서울까지 고속도로로 버스를 타고 가면 3시간 반~4시간 반 걸리기 때문에 광주 도착하면 사실상 새벽 1~3시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