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스러미

Namibie_carte.png
나미비아 동북쪽의 땅거스러미. 땅거미와는 다르다 땅거미와는!

1 개요

돌출지(突出地), 돌미지(突尾地)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1], 두입지(斗入地)[2]라고도 했다. 행정구역이나 영토의 일부가 좁고 긴 꼬리 모양으로 다른 지역으로 파고 든 모습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지 않은 육지의 반도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는 핑거(finger) 혹은 '팬핸들(panhandle)'이라고 하는데, 땅의 모습이 마치 손가락 혹은 프라이팬 손잡이를 연상시키는 데서 유래했다. 거스러미는 손톱 주변에서 거슬거슬 일어나는 살갗 또는 얇게 벗겨져서 일어난 나뭇살을 뜻하는데 보면 뜯어내 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는 공통점[3]이 있다.

조선 시대의 경우 주로 부(府)·목(牧) 단위의 큰 고을들이 이런 형태의 행정구역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대동여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견아상입지들은 대부분 1906년 대한제국월경지 정리령에 의해 대대적으로 정리되었다.

2 땅거스러미의 예

2.1 국내

2.2 해외

2.2.1 영토

2.2.2 행정구역

추가바람
  1. 행정구역 경계가 마치 이빨처럼 지그재그 형태로 어긋나 있다는 의미.
  2. 행정구역 영역이 국자의 손잡이(斗)처럼 길게 뻗어나왔다는 의미. 참고로 월경지는 비입지(飛入地) 또는 비지(飛地)라고도 불렀다.
  3. 그런데 이것을 마구 뜯어내면 아프거나 염증이 생긴다. 땅거스러미도 특정 국가의 주권이나 특정 지자체의 관할권이 합법적으로 미치는 지역이므로 한쪽 맘대로 쉽게 떼어내거나 갖다붙이려했다간 큰일나는 것은 물론이다.
  4. 신원동 자체가 땅거스러미이기도 하다. 모두 구 과천군 땅이 아니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서초구에서는 이런 땅 모양을 가지고 나비에 빗대 홍보하기도 한다.
  5. 이 지역의 생활권은 덕양구의 중심지인 화정, 원당, 능곡 일대가 아닌, 서울특별시 은평구(구파발, 연신내 일대)에 엮여 있다. 조선 시대에도 효자동 일대는 한성부 은평방에 속해 있었다.
  6. 원래는 땅거스러미가 아니었으나, 1995년 김포 서부의 검단이 인천광역시로 넘어가면서 돌출지가 되었다.
  7. 1994년 용인군 기흥읍 영덕리 일부가 수원으로 넘어가면서 돌출지가 되었다. 영덕리 중 정확히 영통지구 개발구역 경계선을 따라 수원시에 편입하였기에, 해당 부분만 쏙 튀어나온 형태가 되었다.
  8. 그렇다보니 황골마을에서 매탄동 등으로 택시 타고 가면 분명 수원에서 수원으로 가는건데도 시계외할증이 붙는다. 이동경로상 용인시를 밟고 지나가기 때문.
  9. 이 곳 역시 용인시에 둘러쌓여있는 형태, 덕분에 생활권이 용인시쪽에 종속되어있다.
  10. 구 금성군→김화군 지역이다.
  11. 여기는 생활구역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판운리 수계가 그대로 주천면소재지로 내려오며, 주천면소재지는 수주면소재지와 지척에 있기 때문. 둘은 같은 생활권으로 묶이며 오히려 주천, 수주면 전체가 영월생활권보단 제천생활권과 엮여서 문제.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 넓은 판운리의 인구수는 2015년 현재 400명이 위태롭다.
  12. 신림터널 동쪽 지역이다.
  13. 1954년 춘성군에서 화천군으로 이관되었다.
  14. 근데 강림면은 지도상으로만 땅거스러미지, 실제로는 치악산 동편인지라 가장 가까운 곳이 횡성읍이라는 걸 감안하자(...).
  15. 1963년 괴산군에서 중원군으로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