믈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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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aka (Darul Azim)[1]

Melaka Negeri Bersejarah

역사적인 주 믈라카

지금은 다소 밀렸지만 그래도 한때는 말레이시아의 No. 1이자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던 주

말레이시아 서부에 위치한 주. 동남쪽으로 조호르와 경계를 맞대고 있고 나머지는 느그리슴빌란이 둘러싸고 있다. 주도는 동명의 도시인데 이에 대해서는 믈라카 시를 참조.

1 개요

말레이시아 서남부에 위치한 주의 하나이며, 크기는 퍼를리스, 풀라우피낭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작은 주여서 안습이다. 물론 이것만 보면 별 존재감 없으려니 하겠지만...

말레이시아의 전통적인 도읍이자 지금의 이슬람 말레이시아의 시조 국가이며 말레이시아 문명 발상지의 하나. 말레이시아인은 자신이 태어난 곳 외에 다른 주조차 몰라도 안 되는 판에, 그것도 여기를 모르면 간첩이다. 특히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외국인도 사실상 꼭 알아야 하는 주.

왜냐하면 지금의 이슬람 말레이시아 시대가 열린 근본인데다가 지금의 믈라카 시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수도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말레이시아 수도법에 "정통성"이 들어가면 당장 쿠알라룸푸르푸트라자야를 두고 여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이 과거 수도였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Melaka"라고 한다. 공식적인 별명은 "Negeri Bersejarah"로 뜻은 "역사적인 주 믈라카". 술탄제의 기원이다보니 가끔 "귀족의 집"이라는 뜻의 "Darul Azim"으로도 불리지만 안습하게도 술탄제가 폐지된 오늘날에는 그리 사용되는 별칭은 아니다. 이 이름의 기원은 믈라카 나무이다. 드물지만 "Negeri Hang Tuah"(항 투아의 집)이라는 별칭도 사용된다고.

헌데 영어로는 "Malacca"라고 하는데 당장 영어 위키백과를 봐도 "Malacca"라고 되어 있다. 남한에서는 말레이어 명칭인 "믈라카"와 "말라카"가 둘 다 사용되는데 북한에서는 후자만을 사용하며 정확한 문화어 표기도 "말라까"이다. 여하튼 진짜 말레이 명칭은 "믈라카"이므로 이 문서도 "믈라카"로 하겠다. 그렇지만 말라카말라까로도 여기로 들어올 수는 있다.

한국으로 따지만 부여와 유사한 위상인데 일단 위치도 그렇고, 정통성이 있는 역사적 수도라는 점이 일치한다.물론 세부적으로 걸어온 길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2 역사

원래 믈라카는 현지 말레이인이나 "해지인"(Orang Laut)으로 불리는 이들이 살던 한적한 어촌이었다. 비록 대단한 편은 아니었지만 바다가 접해 있고 그렇다 보니 옛날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지리적으로 중요했다.

이 한적한 어촌이 말레이시아의 상징으로 뜬 이유는 파라메스와라 때문. 오늘날의 싱가포르에 위치하던 테마섹 왕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그가 본국을 배신하고 이 곳에 나라를 세우는데 힌두교를 믿는 인도계 왕조 출신이었지만 말레이인이었다. 당시 아랍 상인들과의 교류 중 이슬람이 전파되었는데 그는 이슬람으로 즉시 개종하고 페르시아어식 호칭인 "이스칸다르 샤"를 자기 호칭으로 하고 술탄으로 즉위한다. 오늘날 이슬람 말레이시아의 근본이 되는 믈라카 술탄국을 세우는데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믈라카"라는 이름은 믈라카 나무에서 유래한 것이다.어째 그게 생각난다[2]

그런데 시대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바도 그렇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대게는 15세기 초반이라고 나오지만, 근래 발표된 또다른 논문에 따르면 13세기 후반이라고 하여 머리카락 빠질 일이다. 때문에 언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떠들거나 하지는 말자.

예전부터 믈라카는 지리적인 이점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는데 파라메스와라는 이를 노렸다. 오랫동안 인도아랍과의 교류가 잦았는데 다소 이의 영향이 짙긴 했다. 그러나 이게 크게 문제가 될 줄은 누가 알았나? 파라메스와라가 죽은 지 한참 후 서구열강의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식민지화가 시작되고, 이 때 포르투갈이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1511년 믈라카를 함락시킨다. 결국 믈라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고 술탄국은 처참하게 망했어요.

다행이도 포르투갈의 식민통치는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는데 당시 오늘날의 필리핀에 해당되는 지역을 차지했던 스페인도 겪었던 문제였다. 기독교를 전도하려는 이들에게 있어 하필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이 무슬림이었다는 점. 민다나오의 경우는 주민들의 과격한 저항으로 스페인마저도 포기했을 정도였지만 포르투갈은 어찌 쉽게 이를 진압했다. 그런데 솔직히 진압한 것은 아니고, 대신에 선교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으로 불만을 잠재운 것일 뿐. 물론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포르투갈의 입장에서는 식민지화에 실패했으니 뭔가 씹은듯 한 기분이다.[3]

결국 식민지화에 실패한 포르투갈은 누그러지기만 했고 얼마 못가 믈라카 술탄국의 후예들이 세운 조호르 술탄국을 강제로 무너뜨리고 세력을 확장한 네덜란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곧바로 네덜란드는 믈라카를 자기 영토로 삼고 바타비아(오늘날의 자카르타)를 수도로 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편입시켰는데 한편으로는 믈라카의 발전에 도움이 되긴 했다. 왜냐하면 크고 아름다운 네덜란드령 동인도간의 정말로 크고 아름다운 무역이 경제 성장에 한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수도였던 바타비아는 물론 말루쿠(몰루카)까지도 이어지는 길고 긴 무역. 한마디로 믈라카에서는 경제 성장이 식민지화했다.

물론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한 꼬락서니를 볼 때 민족말살과 폭정을 하지 않았나 했겠지만, 그래도 일제강점기보다는 낫다!!! 네덜란드도 오히려 이 쪽 문화를 존중하여 말레이어를 사용하며 민족말살을 하지는 않았다.

이 네덜란드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앞에서는 당연히 무릎을 꿇었고 이제는 본격적인 영국령이 되었다. 문제는 영국의 세력이 커지자 네덜란드와 분쟁이 발생했는데 결국 1824년 영화협정을 통해 시원하게 해결했다. 싱가포르를 기점으로 북쪽은 영국이, 남쪽은 네덜란드가 차지하는 것. 그러나 영국이 싫어할 만한 이유가, 북보르네오(오늘날의 사바)의 남부 지역의 경우는 많은 지역이 싱가포르보다 북쪽에 있었는데도 네덜란드로 넘어간 것이었다. 수마트라 섬에 있던 벤쿨렌도 울며 겨자먹기로 네덜란드에게 넘겨주고 결국 인도네시아만 대빵 커지는 결과가 되었다.[4]

이로써 믈라카는 풀라우피낭싱가포르와 더불어 신설 해협 식민지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는 믈라카 술탄제의 폐지를 불러왔다. 왜냐하면 이쪽 출신들은 총독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영국령 동인도 회사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왕령식민지로 개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잠시 일제의 지배를 받았으나일제강점기? 1945년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해방이 되었...는 줄 알았는데 다시 영국이 돌아왔다. 다시 해협 식민지로 복귀했으나 1년만에 해체되고, 싱가포르를 제외한 상태로 말라야 연합에 편입된다.[5] 그런데 영국이 말레이인의 상징인 술탄제를 폐지했는데 이것은 주민들의 반감을 샀다.감히 어디서 우리 최고존엄을 모독하고 지랄이야! 2년만에 말라야 연합은 붕괴되었고[6] 말라야 연방이 신설되었는데 이 때 술탄제도 부활했다. 그런데 정작 술탄제의 근원인 믈라카는 이를 적용받지 못하였고 결국 믈라카 술탄이라던 그 최고존엄의 기상은 영원히 무너지고 만다. 젠장.

1955년 첫 총선과 함께 독립이 기정사실화 되고 1957년 8월 31일을 기점으로 말라야는 독립을 쟁취하지만, 정작 후에도 술탄제는 부활하지 못했다. 1963년 9월 16일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을 때도 그냥 풀라우피낭,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와 더불어 총독제가 시행되는 주의 하나가 되었고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1989년 말레이시아의 역사유적지로 지정되었고 이어 200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만... 술탄제는 결국 부활되지 못하...ㄹ 줄 알았지?

2013년 믈라카는 "복종의 집"이라는 뜻의 "Darul Islam"이라는 별칭과 함께 술탄제로 복귀하였으며 누르 잔이 술탄으로 추대되면서 드디어 술탄제가 복귀했단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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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사실 헛소리다. 1511년 믈라카 술탄국이 무너진 후 술탄제가 부활한 적 단 한 번도 없으며 애초에 술탄제를 부활하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누르 잔이라는 사람은 보니깐 페락 왕실 출신인데 당초 아즐란 샤의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나 나즈린 샤가 떠오르면서 밀렸던 모양. 이에 대한 홧김으로 아버지를 거역하고 술탄을 자처했으나 끝내 내려왔다고 한다. 뭐 이것도 주변에 널리 퍼진 소리일 뿐이며 진담인 지는 모른다. 당장 생긴 꼬라지를 봐도 왕족 출신이 아니라 걍 사이코패스인 거 같다. 페락 왕족 출신이라는 소리도 헛소리인 듯.

그런데 본인이 이렇게 스스로를 믈라카 술탄으로 추대했다는 것은 어쩌면은 본인이 믈라카 술탄의 후손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긴 했으나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진실은 저 너머에. 여하튼 이듬해 경찰에 생포되었고 신성한 왕실 타이틀을 가지고 지랄했으니 처벌을 받겠지만, 당장 이 사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봐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것 같다. 왜 저렇게 발광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천하의 개쌍놈.

3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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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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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총독 모하마드 할릴 야콥.

위에서 말했다시피 술탄제가 부활했다는 건 개소리이다. 걍 저 사람이 환장하는 것이며 헛소리일 뿐이니 저딴 삐라 따위에 속아 넘어가지는 말자. 물론 옛날에는 있었지만...

1824년 영국해협 식민지로 편입된 것이 술탄제를 폐지하게끔 했던 발단이 되었는데 영국은 이 지역에 총독제를 도입했다. 이것은 1957년 말라야의 독립에서 1963년 말레이시아 신설 당시에 새로 가입한 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중이다.[7][8] 다만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게 있자면 과거에는 홍콩 총독처럼 총독이 실권자였는데 지금은 캐나다 총독처럼 총독은 무의미하다. 실권자는 총리이다. 현 총독은 모하마드 할릴 야콥이며 2004년에 취임했고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소속. 총리는 이드리스 하론으로 2013년 취임. 총독과 동일한 정당 소속이다.

주가 작다 보니 상대적으로 선거구의 수도 적은 편이고, 의회는 총 28석이다.[9] 근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금 현재 집권당은 말레이시아 전역의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며 21석을 확보하여 의석의 총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단독 개헌도 가능한 수준. 야당으로는 민주행동당(DAP)이 6석,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이 겨우 1석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 술탄국의 영향 때문인지 수도와 행정 수도가 다르다. 이러한 일은 술탄제를 시행하고 있는 주에서만 존재하고 총독제를 시행하는 주에서는 전무한 사례. 일단 수도는 믈라카 시이지만, 행정 수도는 아예르크로이다. 이것은 술탄제의 영향인 지 모르겠으나 지금 술탄제를 시행하고 있는 주에서는 전형적인 현상. 당장 슬랑오르를 봐도 수도는 샤알람, 행정 수도는 클랑. 이웃한 느그리슴빌란스름반(수도) - 스리므난티(행정 수도). 크다알로르스타르(수도) - 아낙부킷(행정 수도). 반면 총독제를 시행하고 있는 경우를 보면 풀라우피낭조지타운 단 하나, 사라왁쿠칭 단 하나, 사바 또한 코타키나발루 단 하나. 어쩌면은 마지막 술탄이 마지막으로 남겨둔 유산일지도 모른다.

이 주가 진짜 술탄제로 부활할 것이냐는 논란이 많지만, 아무튼 술탄제의 근원지라는 점 때문에 주민들도 술탄제에 대해 의외로 호의를 보이기도 한다. 오죽하면 위의 어느 미치광이처럼 자기가 신임 술탄이니 뭐니 하며 발광하는 놈까지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10]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술탄과 총독이 맡는 역할은 비슷하더라도 그 위상은 완전히 다르다. 일단 총독은 사실상 임기제한이 있는 데 반해 술탄은 걍 종신직. 또한 군주의 일종으로 세습되는 술탄과는 달리 총독은 그런 게 불가능하다.만약에 가능하다면은 그걸로도 문제 때문에 정 술탄을 추대하려면 과거 믈라카 술탄국의 대를 봐야 하는데 지금 그 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지 알 바 없다. 설상 끊겼다고 다른 사람을 아무나 내세우는 건 아닌데다가 그러면 난리가 날 수도.

4 사회

총독제를 시행하고 있는 주 중에서는 유일하게 무슬림이 대다수인 주...는 아니다.[11] 이미 두개 있으니깐. 그렇지만 그러한 주 중에서는 말레이인이 대다수인 유일한 주이다. 풀라우피낭중국인 중심이고 사라왁사바보르네오 원주민 중심인 데 반해 믈라카는 말레이인이 63%다. 참고로 무슬림은 66.1%. 2013년 통계에서는 25.3%가 중국인인데 동화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수하는 전형적인 차이니스 말레이시안과 현지화되어 중국인이라는 감각이 희미할 듯 한 퍼르아나칸(Peranakan)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퍼르아나칸은 "바바와 뇨냐"라는 말레이-중국의 혼합된 문화를 남겼는데 여기에 이를 기리는 박물관이 있다. 인도인은 6%인데 여기 외에는 싱가포르에서밖에 볼 수 없는 치티그 뜻이 아니다!가 있다. 치티란 말레이화된 독특한 인도인들을 말한다.

타 지역에서는 존재조차 불분명하나 여기서만큼은 뿌리가 되는 크리스탕족이라는 특이한 인종집단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15세기 첫 식민지 개척자였던 포르투갈인들의 후손으로 현지 말레이인 및 원주민들과 혼혈이 이루어져 지금까지 내려져오고 있는 일종의 크리올 집단이다. 치티와 마찬가지로 믈라카 외에는 싱가포르에서나 그나마 볼 수 있는 집단. 이 세상에서 통틀어 봐도 총 37,000명 뿐인 소수 민족이다.크리스탕을 보존하자 말레이시아의 음악인 로이스턴 스타 마리아가 크리스탕 출신. 이들은 말레이화로 변형된 포르투갈어 방언을 사용한다.

오랑아슬리 계열의 트무안족도 극히 소수 거주한다.

5 언어

말레이어가 당근 국어이자 제1언어로 사용되고, 그 뒤로는 중국어, 타밀어 등이 사용되는데 이들도 소통할 때는 영어를 사용한다. 물론 이는 말레이시아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믈라카의 위상 등을 볼 때는 이 지역 방언한국어로 따지면 충청도 방언 정도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믈라카 방언한국어로 따지면 서울말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오늘날 말레이시아 표준어의 근본이 믈라카-조호르 방언이기 때문인데 당연히 믈라카와 조호르가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수도권이었으니 그렇게 지정된 것 같다. 정작 각 지역의 독특한 방언들을 들어봐도 그 유명한 클란탄 방언이나 사라왁 방언은 설명이 필요 없고 다소 쉬운 사바 방언이나 느그리슴빌란 방언을 들어봐도 확실히 방언의 느낌이 크게 와 닿지만, 믈라카 방언은 들어봐도 표준어와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조호르 방언 역시 동일하며, 때문에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 보니 타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른다. 대표적인 믈라카 방언의 예는 'ekau'. 뜻은 '너(you)'이며 표준어로는 'engkau'이다. 근래에는 쿠알라룸푸르가 수도가 되고 그 쪽 말의 영향이 짙어지면서 이 방언은 무시되고 점차 사라져 가고 있지만, 단지 알아둬야 할 것은 말레이시아 표준어란 곧 믈라카의 유산이라는 것이다.[12]

6 관광

Melawat Melaka Bererti Melawati Malaysia

믈라카를 방문하는 것은 곧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믈라카를 가고 싶지 않다면 말레이시아를 오는 의미가 없다는 것. 그만큼 믈라카는 관광 산업이 발달해 있다. 아무리 쿠알라룸푸르그 일대가 수도권으로 발달하고 멋지게 변화되어도 관광해 봤자 어디까지나 마천루 구경이나 하고 다니는 것일 뿐이지, 진정으로 말레이시아에 대해 배우는 데에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럴 만 한게, 원래 허허벌판 정글이었던 곳이 처음에는 탄광촌이 되었다가 갑자기 수도로 뜨게 되었으니 볼 거리가 별로 없는 건 사실.

이에 반해 믈라카는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오늘날 말레이시아의 근본이 되는 과거의 문명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곳이니 관광산업이 발달하는 건 당연지사. 말레이시아의 관광지들을 쭉 봐도 믈라카만큼 관광지가 발달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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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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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 아 파모사

구글에서 다른 주에 대해 검색해 봐도 국기, 국장, 지도 위주로 나오는 데 반해 믈라카에 대해서 검색하면 관광지 위주로 나온다. 이는 그만큼 믈라카의 관광산업이 얼마나 발달해 있나를 보여주는 것. 주로 식민지의 유산인데 믈라카를 처음으로 지배한 포르투갈의 색이 강하게 남아있다. 건축물도 그렇고, 앞의 운하도 보면 유럽적인 색이 강하다. 풀라우피낭이 영국적이라면 여기는 포르투갈적이다. 여하튼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데 고풍스럽다.이것을 보면 YS정부가 주도했던 어떤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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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카사 쿠바. 뜻은 "쿠바의 집"이라는 뜻인데 쿠바에 있는 게 아니라 믈라카에 있다. 물론 쿠바와는 어떠한 관련도 없고(...) 과거 영국 관리가 살았던 곳이다.

7 교통

바투브른담에 위치한 믈라카 국제공항이 유일한 관문이다. 이 공항은 믈라카뿐 아니라 조호르 북부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해 중요하긴 하지만... 정작 이 공항으로는 갈 데 없다. 대게 한국인들이 쿠알라룸푸르 외 다른 지역을 갈 때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거치면 될 것 같지만... 정작 쿠알라룸푸르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 공항을 할 필요 자체가 없다. 이건 마치 서울에서 청주를 비행기 타고 가는 꼴이니깐...

한국에서는 당연히 직항이 없기 때문에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아니, 피낭 국제공항을 거쳐서 가는 게 그나마 낫다. 그나마 유일한 노선이기 때문에... 이거 말고도 인도네시아 프칸바루술탄 샤리프 카심 2세 국제공항을 거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한국에서 직항이 없어,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을 거쳐야만 한다. 물론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거쳐서 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 3번씩이나 갈아타면서 그딴 시간낭비에 돈낭비에 에너지낭비 할 필요 없다. 그냥 피낭 국제공항을 거치거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또, 그것도 국제선을 거치지 말고 차라리 차 타고 가자! 공항에서 1시간 30분이면 땡이다.

옛날에는 공항이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바투브른담 국제공항"이라고 했는데 흔히 불리고 더 알릴 수 있는 이름인 "믈라카 국제공항"으로 개명했다. 최근에 터미널을 신축하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이렇게 유명한 관광지에 저렇게 공항이 작아서 어쩔련지... 차라리 신공항 짓는 게 나을듯.[14]

8 출신 인물

  1. 잘 사용되지는 않으며 공식 별칭도 아니다.
  2. "브라질"이라는 이름이 생긴 과정도 비슷했다. 브라사 나무가 그 기원.그거 말고
  3. 브라질의 경우는 현지 원주민 문화를 거의 말살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믈라카의 경우는 반발도 심하고 의외로 이쪽 문화에는 그 아름다움(?)에 나름 감명받은 듯 오히려 현지 문화를 존중했다. 당시 브라질에서는 행정어로 당연히 포르투갈어를 사용했지만 여기서는 말레이어를 사용했다. 어쩌면은 식민지화에 실패했으니 기분이 영 좋을 리 없지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애초에 현지 문화를 말살시키는 행동 자체가 매우 잘못된 행동이니깐.
  4. 어쩌면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한국이나 예멘처럼 서구 열강에 의해 원치 않은 분단을 당한 걸 수도.
  5. 싱가포르가 제외된 이유는 자유무역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나중에 말레이시아에 가입하여 잠시나마 한 몸이 되었지만 얼마 못 가 쫓겨났다.
  6. 물론 붕괴의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영국이 말라야 연합을 미국처럼 이민의 나라로 만들려 했는데 결국 말레이인들이 반발하고 인종분쟁이 빚어지면서 연합 폐기를 요구했던 게 더 큰 원인.
  7. 후에 탈퇴한 싱가포르가 이를 다소 개정하여 공화정으로 전환했다.
  8. 물론 앞으로도 말레이시아에 가입할 주들은 총독제를 시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단 싱가포르리콴유가 생전에 종종 언급했듯이 말레이시아로 복귀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데 혹시나 복귀하더라도 총독제로 복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브루나이는 술탄제이므로 술탄제를 유지하되 권력은 총리대신에게 빼앗기는 식(...)으로. 당연히 가능성은 사실상 0%이지만 만약에 대한민국이 말레이시아에 가입한다면 총독제가 시행될 것이 확실하다.
  9. 참고로 가장 큰 주인 사라왁은 총 71석이고, 가장 작은 주인 퍼를리스는 15석.
  10. 현재까지 풀라우피낭, 사라왁, 사바에서는 이런 사건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은 원래부터 술탄제가 아니었기 때문. 누르 잔 말고도 술탄을 자처하며 발광했던 또다른 놈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매우 극단적인 통일주의자마필린도라는 가상의 국가의 술탄을 자처했었다. 물론 이 사람도 경찰의 제지 앞에서 무릎 꿇은 듯.
  11. 그렇지만 66.1%로 비중이 가장 높긴 하다. 그 다음은 사바로 65.4%.
  12. 조호르 방언도 근래에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그나마 고립된 동부 지역의 방언들이나 크다, 퍼를리스 쪽 방언들만 거의 보존될 뿐이다. 느그리슴빌란 방언도 수도권 방언과의 차이를 보면 경기 방언-충청 방언 정도의 차이로 다르지만 비슷한 정도라 그리 존속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이고, 페락 방언과는 경기 방언-황해 방언 정도의 차이라 그런지 존재감 자체가 없고 나름 비슷해서 소멸위기 상태이다. 사라왁이나 사바의 방언은 그 특유성과 고도의 자치 때문에 보존이 쉬울 것 같지만, 근래에는 본토화가 빨라짐에 따라 소멸위기 상태. 이미 많이 동화된 3세대 이후 부터는 표준어를 구사하지 방언에는 많이 취약하다.
  13. 그래도 사라왁, 사바에는 원주민 문화 체험이나 산투봉 산키나발루 산을 트레킹하는 것도 있지만 정통적인 말레이시아의 문화는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진짜 말레이시아와는 연관이 없었으니깐. 그러한 진짜 말레이시아의 색은 말라야 쪽에서만 볼 수 있는데 믈라카 외에는 크다랑카위에서 마수리 전설에 대해서나 배울까, 별 볼 거 없다. 파항겐팅 하이랜드부터 카메론 하이랜드, 쿠안탄 일대에서 물놀이나 하는 게 전부라 관광일 지는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관광은 아니고, 조호르 역시도 조호르바루 쪽에서 쇼핑하는 것 뿐...
  14. 하지만 믈라카는 고층 건물들도 없고 왠만한 건물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 재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해 지금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적어도 개떡은 아니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