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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503~1775년에 존속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정예 기병부대. 독특한 장식과 간지나는 전장에서의 활약상으로 인해 후세에 길이 길이 회자되는 기병 가운데 하나이다.
파이크 방진을 붕괴하기 위해 5m의 대형 랜스와 날개 장식을 달고 있는데, 서유럽과 동유럽의 특징이 혼합된 독특한 양식의 기병이었다.[2]
2 형성 배경
후사르의 본고장인 발칸 반도가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되면서, 패망한 세르비아, 불가리아, 발라히아 공국, 헝가리 왕국의 후사르들은 국가를 잃고 용병으로 떠돌게 되는데, 이들중 일부는 폴란드에 고용되게 된다. 이때 3개의 부대가 폴란드의 입법부인 '세임'에 의해 고용&신설되어 폴란드식 후사르가 생기게 된다.
이후 신분차별없이 귀족, 평민 모두 받아들이면서 체계화되고 급속도록 성장하게 되면서 윙드 후사르가 생겨나게 된다.
고도로 체계적이고 엄격한 훈련을 받았으며, 초기 근대(early modern)에 활약한 주요 병종으로 손꼽힌다.
3 활약상
스웨덴,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왕조, 모스크바 대공국과의 전쟁에서 대활약했다. 1514년 9월 8일 폴란드와 러시아가 겨룬 오르샤 전투에서는 12,000~30,000여 명의 기병대가 45,000~80,000명의 러시아군 중 10,000~30,000여 명을 전사시키고 3,000~5,000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은 적도 있다.
이후에도 여러 면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폴란드 국왕 스테판 바토리 사후, 막시밀리안 대공 휘하의 오스트리아군이 침공해 오자 이 군대를 비치나(Byczyna)에서 패배시켜 막시밀리안 대공을 포로로 사로잡았으며, 1600년에 스웨덴과 전쟁이 발발하자 역시 활약을 펼쳐, 벤덴(Wenden), 코켄하우젠(Kokenhauzen), 락베레(Rakvere), 비아위 카미엔(Bialy Kamien) 등에서 대승을 이끌었다.
특히 1605년 스웨덴과의 키르홀름(Kircholm) 전투에서는 12,000명의 스웨덴군을 2,500명의 윙드 후사르가 돌격으로 스웨덴군의 전열을 패배시킨 적도 있다. 이 전투에서 스웨덴군은 대략 60~80%가 전사했다. 말 그대로 학살.[3] 그밖에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이 때문에 스웨덴은 윙드 후사르와 평지에서의 전투는 최대한 피했다.[4]
그래서 쿠쉰 전투에서 러시아-스웨덴 연합군은 랜스에 대한 방책을 준비했지만, 이번엔 휠락 머스킷을 들고서 카라콜을 구사한데다가, 러시아군이 뻘짓을 하는바람에 쿠쉰 전투는 폴란드의 대승으로 끝났다.
1620년 체초라 전투에서는 비록 전투 자체는 패배하기는 했으나, 300명의 윙드 후사르가 15,000명의 오스만 투르크군에게 돌격으로 1,000여 명의 피해를 입히고 격퇴시키기도 했으며, 1621년 코침 전투에서도 몰려드는 오스만군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길이를 늘리기 위해 속을 파낸 가벼운 랜스 탓에 스웨덴의 중보병을 상대로 고전하기도 했다. 1620년대 폴란드 후사르와 스웨덴 보병대가 맞부딪힌 전투에 대한 한 기록을 보면 후사르의 랜스가 스웨덴 보병의 판금 갑옷을 관통하지 못해 후사르들이 고전하였다고 한다.[5][6]
또한 후사르들 자체도 갑옷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시기가 있어 "경무장한 폴란드 군인과 중무장한 스웨덴 군인"이라는 비교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 문제는 얀 소비에스키 재위 시기에 가면 많이 해결되었다.
물론, 갑옷으로 중무장하지 않은 경무장한 전력을 상대로는 매우 탁월하다. 1660년 러시아와 치른 한 전투에 대한 기록을 보면 후사르가 랜스로 러시아 보병 6명을 일격에 꿰뚫었다고 하고 코침 전투에서도 오스만 제국의 기병인 시파히 6명을 한번에 꿰뚫었다고 한다[7]. 흠좀무..
그렇게 윙드 후사르는 폴란드의 쑥 재배자로 유럽 전역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우크라이나 헤트만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이끈 코사크 대봉기 당시 있었던 1651년의 베레스테츠코 전투에서는 14만의 코사크-타타르 연합군이 괴멸했다. 이 때 코사크-타타르 연합군의 피해는 전사 3만~7만. 그런데 폴란드 측의 피해는 700명.
1673년 오스만의 폴란드 침공 당시에는 코침 전투에서 오스만 35,000여명 군세를 상대로 승리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17세기 말 당시에는 유럽의 중심 빈을 공성중인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기습 돌격해 승리를 거둔다. 2차 빈 포위 항목 참조.
그러다가 폴란드 분할과 창기병의 쇠퇴. 거기에다가 스웨덴과의 전투에서 한계성이 드러나게 되자, 1775년 윙드 후사르는 정식으로 해체되고 역사속으로 잊혀지게 된다. 이후 창기병의 효용성은 나폴레옹 시대에 다시 재평가되면서 사실상 후손인 울란이 생겨나게 된다. 물론 중기병급 무장이였던 윙드 후사르와 달리 울란은 기동성을 살린 경기병이였다.
4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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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특징인 등에 달린 날개 장식은 몽골 제국이 유럽을 침공할 때, 몽골군이 후사르한테 그물을 던져 낙마시키자 뒤에 철조각들을 날개처럼 붙인데서 유래했다고 한다.[8] 혹은 날개들이 돌진할때 깃털이 진동하면서 위압적인 소리를 낸다고 하는 설도 있다. 그 뒤로도 저 날개 장식이 그냥 장식인지, 아니면 실용성이 있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많다. 군사 서적 전문 출판사인 오스프리에서 펴낸 폴란드 후사르 관련 서적에서는 수 차례의 실험 결과 올가미에 낚이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도 소용이 없고, 전속력으로 돌격해도 위압적인 소리 같은 것도 없었다(아니, 저 장식이 소리를 전혀 내지 않았다고 한다).[9]
그 외에도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 붙였다는 추정도 있다. 사람보다 덩치가 큰 물체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는데다가 등 뒤에 덩치를 더 크게 보이게 만드는 날개 장식까지 붙였으니 그 위압감은 실로 충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깨에 표범이나 호랑이[10] 모피를 망토처럼 걸치기도 했다. 이것 역시 날개장식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장신구 역할과 동시에 혼란을 주기위한 용도로 쓰였다고 하다.
이러한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추측 외에도 상징적인 면에서 이 날개장식의 용도를 추측하는 설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윙드 후사르가 착용하는 날개장식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상징에 대입된다. 본래 우리가 폴란드라고 부르는 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은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던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왕국이 연합해 생겨난 국가인데, 본래 폴란드의 상징은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였었고, 리투아니아 왕국의 상징은 말을 달려나가는 기사이다. 즉, 이 '날개 장식+기병'이란 조합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사실 저렇게 완전무장하고 두터운 모습이지만 원래 후사르는 경기병이었고 윙드 후사르도 원래 경기병에서 출발했다. 중갑을 걸친 경기병
이들이 무장한 장비로는 앞서 사진에 나온 갑옷과 투구, 앞서 언급한 속이 빈 5M의 랜스와 기병도인 '샤블라', 에스터크등으로 무장했으며, 지휘관이나 귀족병사들은 샤블라 대신 철퇴나 도끼로 무장하기도 했다. 또한 초기에는 방패를 사용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방패는 안쓰이게 되었다,
파이크 방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적은 있으나 아쉽게도 제대로 된 파이크 방진을 격파한 적은 없다. 스웨덴의 파이크 병은 1601년 군제 개혁하려고 데려온 요한 반 나사우에게 '"파이크 쓸 줄도 모르는 양민 수준"'이란 평가를 들었을 정도로 형편없는 군대였다. 요한 반 나사우는 군제개혁 하겠다고 스웨덴군 좀 만지작 거리다가 돌아가버렸고, 이 파이크 방진은 고작 4년 후에 키르홀름에 투입되었다가 윙드 후사르의 기동에 반응도 못해보고 박살나버렸다. 또한 키르홀름 전투처럼 기병만으로 파이크 방진을 돌파하는 사례는 폴란드 내에서도 이례적인 경우로 받아들여졌으며 후사르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냈다. 즉 후사르가 먼치킨이라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인, 파이크 방진에 돌격해서 격파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과장된 평가인 셈.
윙드 후사르에 대한 군사적 평가가 과장되었다고 평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점은, 윙드 후사르의 직계 후손이라 할수있는 폴란드 창기병 울란이 그 전투력을 높이 평가 받아 동시대 전 유럽에 보급된 반면, 윙드 후사르가 활약하던 시대에 윙드 후사르와 같은 랜스를 차용하여 이를 모방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말은 곧 그 시대의 군사전문가들이 보기에 윙드 후사르는 군사적 유용성이 크지 않은, 따라할 가치가 없는 병과로 여겼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돌격기병이 다시 대두되기 시작한 기점인 스웨덴의 하카펠 같은 경우도 랜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윙드 후사르는 강력했지만, 시대의 흐름과 그다지 맞아떨어지는 병과는 아니었던 셈.
이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다시 기병돌격의 장점이 재평가 되면서 창기병이 부활하게 된다.[11] 또한 이후의 기병들이 랜스를 사용하지 않은것은 기병 자체의 패러다임이 바뀐것이 크다. 당시 재정비된 기병돌격은 이제 막 생겨나는 전열보병에 의해 정면돌격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고, 이는 기병이 전장의 주력이 아닌 부가적인 역할을 하는 보조병과로 전환되도록 만들었다. 이후의 기병 돌격 또한 기병도를 사용해 측면이나 후면에서 공격해 방진을 흐트려 놓는것으로 바뀌었으며, 기동성을 저지하는 지나치게 긴 랜스는 불필요해졌기 때문.
또한 위에서 비교된 스웨덴의 하카펠이, 다시금 기병돌격의 중요성을 강조시킨 사례긴 했지만, 정작 하카펠은 총기병이였다. 랜스를 사용하던 윙드 후사르와 피스톨을 사용하던 하카펠을 동일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또 다른 중-근대의 상징인 테르시오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래 쇠퇴했다고 보는것이 맞다고 볼수있다.
그래도 270년 동안 밥값은 충분히 했다
4.1 대중매체에서의 윙드 후사르
폴란드에서는 엄청 띄워주고 있다. 밀어주는걸 보면 거의 신병(神兵)의 위치라고 봐도 될 수준. 하긴 저정도로 공적을 세웠는데 안 띄워주는게 이상하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에서 출현한 유닛이며 제국 시대에 가능한 경기병 업그레이드를 할 경우 호위 경기병이 양 쪽에 날개를 달고 있는데 윙드 후사르의 날개에서 따온 것이다.
엠파이어: 토탈 워에서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왕국의 고유 기병유닛으로, 총 10부대 한정 수량으로 생산 가능하다. 중기병의 방어력과 근접 공격력, 창기병의 돌파력과 이동 속도를 모두 보유하고 있어 무적일 것 같지만 스테미너가 부족하고 방향을 전환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워해머 판타지의 가상의 국가인 키슬레프는 윙드 후사르를 모티브로 한 윙드 랜서와 그리폰 리전이란 병과가 존재했으나, 판매량이 매우 저조한 관계로, 결국 워리어 오브 카오스에게 국토가 완전히 파괴되고 군대도 전멸하여 멸망한것으로 설정이 바뀌며, 미니어쳐 모델 또한 절판되어버렸다... 안습 키슬레프의 미니어쳐 모델들
스페이스 마린중 다크 엔젤 챕터의 2중대인 레이븐윙의 모티브가 윙드 후사르인데, 구판 모델일수록 더더욱 비슷하다. 다크엔젤의 컨셉이 중세 무렵의 기사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비슷한 편.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는 폴란드 침공편에서 등장하는데 웹연재판에서는 오스마르 가리토스와 그CCCV(...)들로 등장. 대전차오함마술로 독일군 전차군단을 상대로 승전하는듯 하지만, 결국 히틀러, 괴벨스, 괴링의 공세에 밀려 패배하고 만다. 그런데... 단행본 판에서는 개그 하나 없는 진지한 모습으로 나오며 여기에서는 폴란드 군인들로 나온다. [12]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선에서 은퇴하게 된 군마들과 엮어 시대의 흐름을 읽지못한 퇴물 취급[13]을 받지만, 전투 앞에서 비참하게 죽기보다 창을 들고 말들과 함께 전차로 기병돌진을 하는 그모습은 그야말로 간지폭풍. 폴란드 뽕을 빨으신 화백님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신 짜오의 스킨중 '윙드 후사르 신 짜오'스킨이 이기병을 모티브로 했다. 그렇지만 기마상태는 아니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 With Fire & Sword 에 Polish Commonwealth의 기병으로 등장한다.
문명 5에서는 폴란드의 특수유닛으로 날개 달린 후사르 라는 이름으로 등장. 창기병의 대체유닛으로 나오며 충격과 육중한돌격 진급을 달고 나온다. 일반 창기병보다 전투력이 3, 이동능력이 1 높으며, 특수 진급으로 인해 선봉에 서서 전선을 밀어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운만 좋다면 전차를 이기는것도 가능하다. 어떤 의미론 역사왜곡
문명 6에서는 아직 폴란드가 등장하지 않아서 역시 없긴하지만 오프닝 트레일러에서 아버지가 윙드 후사르가 되어 적진으로 돌격한다.
갓 오브 하이스쿨에 G.O.H 세계대회 폴란드팀으로 등장한다. 바티칸팀처럼 팀 전체가 원래 한 조직이었던 팀으로 바티칸팀을 손쉽게 이기며 한국팀과 붙지만 세 명 모두 휘모리에게 끔살(...)
코사크가 중심이 되는 동유럽계 영화/TV극화의 많은 작품들이 코사크를 중심으로 폴란드에 항쟁하는 줄거리이다보니 심심하면 코사크들에게 발리는 졸개 역할이다. 그래도 중장비를 가진 꽤나 위협적인 상대라서, 코사크들도 야습하는 척 훼이크를 한다던가 하여 수면부족을 유발해서 승리하는 등, 정면에서 싸워 이기는 묘사 보다는 여러가지 요소를 활용하여 이기는 경우가 많다.
반지의 제왕의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에서 로한 기병은 2차 빈 포위당시 윙드 후사르의 포지션을 모티브로 하였다. 다만 외형적인 모티브는 11세기 무렵의 노르만 기병.[14]
폴란드공에서의 역사편에서 폴란드공이 등에 날개장식을 달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2015년 9월 21일자 JTBC의 월요일 예능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 '다시 쓰는 세계사 - 패션의 역사' 코너에서 폴란드 비정상 패널인 프셰므스와브가 이 윙드 후사르를 소개하였다. 덤으로 이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방송에서는 폴란드로 소개)에서는 붉은색 옷이 당시의 패셔니스타(귀족)들만 입던 귀한 옷이란 일화도 소개되었다.
- ↑ 영화의 전투는 1656년의 프로스트키 전투를 다루었다.
- ↑ 검기병이라고도 하는 후사르가 랜스를 쓰는게 특이할수있지만, 서유럽으로 유입된 후사르들과 달리 동유럽 원조(...) 후사르들은 때로는 랜스를 사용하기도 했다.
- ↑ 스웨덴군은 6,000~9,000여 명이 전사한 데 비해, 폴란드-리투아니아 군은 고작 100명 전사하는 경이적인 교환비를 보였다.
이 교환비는 훗날 도미나가 교지가 깬다. 그것도 한 전투에 96~98%가 전사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다만 도미나가 교지의 전투는 원거리로 이루어지는 2차 대전의 전장인데다 일본군 180,00명 대 프랑스군 5,000명의 전투였으며 프랑스군이 작전계획을 미리 파악하여 매복으로 이루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전장환경의 차이는 있다. - ↑ 이때의 안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스웨덴군은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의 군제개혁을 거쳐 강군이 되어 30년 전쟁에서 맹활약한다.
- ↑ 현존 유물을 보면 윙드후사르의 랜스는 길이가 5m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드문데, 이 중에3kg를 넘어가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창이 돌격할 때 한번 찌르고 나면 쉽게 부러졌는데, 이 정도 강도는 거의 토너먼트에 사용한 주스트용 랜스나 다름없는 수준.
- ↑ 물론 본래 돌격용 랜스는 적을 맞춰서 부러지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나, 후사르가 쓴 랜스는 기존의 랜스 들보다도 내구도가 떨어졌다. 그렇다고 창이 부러진 후에는 바로 세이버를 쓰지는 않고 랜스를 주로 쓰던 기사들처럼 적의 방진이 유지 되는 상황이라면 말을 돌려 후방으로 가 새 랜스를 들고 와 다시 돌격을 행했다. 안장에 달고 다니는 서유럽식 롱소드나, 허리에 찬 세이버로 적을 도륙하는건 적의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뿐이였다. 윙드 후사르들은 선두에서 돌격하는 임무탓에 창을 부러뜨리지 못하는걸 불명예로 간주하기도 했다.
- ↑ 다만 당시 시파히들은 일반적으로는 경무장을 했다고 한다.
- ↑ 혹은 오스만 제국의 경기병이였던 아큰즈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큰즈는 등에 독수리 깃털을 단 장식을 차고 다닌다고 한다.
- ↑ 오스프리의 서적에 따르면 축제나, 예식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왜냐면 문에 들어갈 때나 나무 사이로 지나갈 때 저 날개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었기 때문.
- ↑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카프카스 혹은 중동산을 수입한것이라고 추정된다.
- ↑ 총기병은 창기병에 비해 기동성에서나 방진붕괴에서는 좋았으나 대신 양성의 어려움(뛰어난 사수와 빨리 방향을 꺾을수 있었던 군마가 필요했기에 양성 비용과 시간은 배로 늘어났다)과 방진의 돌파할 수단이 없던게 문제였다는게 부각되면서 쇠퇴하게 된다.
- ↑ 이 챕터에서 개그는 말들이 대부분 한다
말들 말장난해요... 히히힝! - ↑ 실제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 기병들은 전부 윙드 후사르의 후손이라고도 하는 울란이였다.
- ↑ 로한의 컨셉도 만일 영국이 대륙국가였다면이라는 가정으로 만들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