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가수 활동

1 가수 데뷔 직전 활동

1.1 게임의 법칙

1999년 3월 12일 발매 : 구피의 3집 후속곡 게임의 법칙

뮤직비디오에서 메인 보컬인 이승광의 파트를 대역하는 컨셉으로 립싱크하는 형태로 출연하였는데 뮤직비디오 속에서의 첫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이정현이 직접 부른 거라 착각하는 이들도 꽤 많았을 정도였다. 훗날 구피의 멤버들은 당시 이정현을 회상하며 신들린 포스였다고 회상하며 본인들의 뮤직비디오인데 분량이 이정현에게 모두 묻혀 속상했었다고 한다

당시 이정현이 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이정현이 말하길 당시 이정현은 클럽에서 춤을 아주 특이하게 췄었다고 한다.(아마 게임의 법칙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예사롭지 않은 춤사위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춤을 추는 봤던 당시 구피의 제작자 신철이 이정현에게 우리 뮤직비디오에게 출연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뮤직비디오가 빵 터지고 난 후 이정현은 여러 가수 제작자들에게 러브콜을 받으며 이정현의 가수 데뷔는 급물쌀을 타게 된다. 당시 이정현은 계약내용을 선택할 수 있었고 제작자들이 이정현을 앉혀두고 서로 말다툼하며 싸웠을 정도라고 한다.

2016년 2월 16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구피가 출연해 오랫만에 해당 뮤직비디오의 뒷이야기가 TV에서 잠깐 방송되었다. 이정현이 촬영 당일 이승광 파트를 전부 다 외워온데다가 한 번 연기를 시켜보니 너무 잘해서 결국 이승광의 분량은 다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1.2 조PDFever

1999년 8월 20일 : 조PD의 2집 타이틀곡 Fever

이 곡에서 피쳐링으로도 참여하였다. 이후 이정현이 가수로 데뷔하면서 이 곡도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지만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대부분의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노래이기 때문에 묻혀있다가 재발견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정현이 처음 나왔을 때 '조PD fever에서 노래한 가수'라는 식으로 홍보했다.

2 가수 활동

2.1 1집

1999년 10월 2일 발매 <Let's go to my Star> - 와

[1]

공전의 히트곡
새끼손가락 마이크와 외눈박이 부채
이분 덕분에 꼬깔콘 엄청 팔렸다고.... 뭐?

대중들의 이목이 점차 수그러들 때쯤 정규 음악 프로그램에 복귀한다. 테크노 음악에 국악가 이태백의 아쟁 연주를 접목시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였으며 단조로운 테크노 리듬 속에 을 접목시켜 흥을 돋구는 등 음악적 시도가 돋보이는 앨범. 흔히 말하는 외눈박이 부채와 손가락 마이크로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시기엔 남녀노소 이정현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클럽 음악은 모조리 테크노가 접수. 지금도 이정현 하면 1집 때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 한국의 유행하고 있었던 도리도리 테크노 댄스와 맞물려 수 많은 아류 테크노 가수들을 물리치고 단숨에 전국에 테크노 댄스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지금까지도 이정현의 닉네임으로 사용되는 테크노 여전사 이미지를 얻었다. 또한 당시 혼란스러운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IT보급의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보여줬던 사이버틱한 이미지 등 이정현은 "새 천년" "21세기" " 뉴 밀레니엄" 등으로 대변되던 사회분위기에 혼합되어 세기말을 상징하는 신세대 N세대의 스타가 되었었다.

당시 '와'를 첫 선을 보이는 자리에서 저 퍼포먼스를 직접 본 관객들은 얼어붙었다. 저런 걸 본 적이 없으니까(...). [2] 하지만 2주, 3주 지날 때마다 '와'는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기 시작했고 결국 노래를 선보인 지 한 달이 되지도 않아 1위를 싹쓸이해갔다. 당시의 영상 자료를 찾아보면 중간에 절을 하는 퍼포먼스가 나오는데 이는 자신을 1위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뜻의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이정현은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방송 3사를 전부 석권한 뒤에 무대마다 전부 절을 해야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또한 이 곡이 히트를 치면서 이정현 '와' 춤을 패러디하는 연예인들이나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해 신인왕까지 차지하게 된다.
2010년대 기준으로 보자면 미래 사이버 세계를 넘어서 그냥 다른 차원의 노래로 보인다

참고로 영상에서 보이는 부채의 초록색 눈동자는 지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대 당시 소품 중 비녀는 본인이 주운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직접 손질하여 사용한 것을 토토가에서 밝히기도 했다. 직접 깎고 칠하고 말리는 장인정신

그 뒤 이 곡을 이탈리아의 Bandido라는 클럽 DJ가 표절했는데 'Vamos Amigos'란 이 곡 역시 유럽 차트에서 1위를 할 만큼 굉장히 히트를 쳤지만 주요 멜로디며 코러스며 랩 등 대놓고 누가 봐도 표절인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다 베꼈다. 이에 PD수첩에서 직접 이탈리아로 찾아가 Bandido와 인터뷰를 했는데 뻔뻔스럽게도 사과는 커녕 오히려 '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 당신 곡을 왜 베끼겠냐'란 태도를 보이더니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제시하자 '와'가 대한민국민요인 줄 알았다는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늘어놓고 취재진이 영어를 못하는 것을 알고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도중에도 Bandido와 매니저로 보이는 동행인이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하며 한국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3] 게다가 곡의 작곡가인 최준영에게 유럽 등지에서 '와'와 똑같은 노래가 잘 나가던데 혹시 와가 이 노래를 표절한 거 아니냐는 역표절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이 곡은 국내에서 발매된 팝 컴필레이션 앨범에 버젓이 수록되어 관계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후 국제 변호사를 선임해 엄청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을 세우자 그제서야 이탈리아 음반사가 표절 사실을 시인했으며 2009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이야기가 잘 되어 Bandido 측이 이정현 곡의 저작권을 구입해 문제가 해결된 모양.

또한 조PD, 그리고 정식 데뷔 전이었던 싸이가 프로듀서 겸 랩으로 참여했으며, 본 앨범의 수록곡 중 I Love X는 싸이 정규 1집 앨범에 리믹스되어 재수록되기도. 인트로, 아웃트로에 해당하는 -00001, -00002는 이탈리아어한국어를 반반씩 섞어서 만든 것이라고, 굳이 이탈리아어를 고른 이유는 발음이 예뻐서였다고 한다. 속표지에 이정현 본인이 직접 밝힌 내용.

한편 이정현은 1집을 처음 만들 당시 프로듀서 최준영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이정현 본인은 진정한 테크노 가수를 표방하며 유럽에서 들었었던 정통 테크노 사운드를 하고 싶었는데 정작 들려주는 데모곡들은 한국적인 리듬. 이 말은 즉슨 뽕끼를 끼얹은 한국식 변형 테크노를 하자고하니 하기 싫어서 울었다고 한다. (정통 테크노 느낌이 나는 노래들은 1집의 수록곡에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최준영이 이정현에게 '그럴꺼면 그냥 언더에서 니 음악이나 하지 뭐하러 음반을 내냐'라고 따끔하게 혼을 내 이정현은 한 발 물러서서 프로듀서의 의견을 수용하였다고 한다. 이정현은 대중성을 고려해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테크노를 선보이기도 하지만 항상 앨범엔 오리지널 테크노 냄새가 나는 곡들도 꼭 수록한다고 한다.

당시 앨범 발매 전 이정현이 내놓은 하늘거리는 무협의상과 새끼손가락 마이크 비녀와 외눈박이 부채에 대해서 소속사는 아주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으며 사무실에서 CD가 날아다닐 정도였다고....당시 소속사 사장은 "우리 회사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냐!"라며 이정현에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 정도로 당시 이정현의 컨셉은 파격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주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고나갔고 [4] 첫 방송 이후 3일동안은 완전히 망한 줄 알고 칩거했으나 3일 후에 빵 터지면서 성공궤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이 노래는 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스의 3루수였던 이마에 토시아키[5]의 응원가로도 쓰였다. 해당링크

대만프로야구라미고 몽키스에서도 응원가로 쓰는 듯.
[1]

2.1.1 바꿔

'와'의 열기를 그대로 가져간 그야말로 퍼포먼스의 퀸 다운 노래다.
레이디 오브 체인지 칼날여왕님 현실 재림

'와' 만큼이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당시 활동하던 H.O.T.god의 인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당시 이정현은 이 "바꿔"라는 곡으로 KBS 9시 뉴스 메인과 SBS뉴스에 메인으로 등장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었다. 또한 그 해 연말 2000년도를 뒤흔든 최고의 히트곡으로 꼽히기도 하였는데 제목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당시의 한국 사회상+정치상을 바꾸고 싶어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인기곡(...)이기도 했으며 초등학생들도 따라했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바꿔의 인기요인은 한국의 썩어빠진 정치판과 사회적 제도, 관습 모든 걸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라는 상당히 급진적이고 선동적이면서도 아주 직설적이면서도 포인트가 아주 명확한 가사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또 앙칼진 고음을 쏟아내는 이정현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렬한 테크노 멜로디 더불어 결정적으로 이 노래의 활동시기가 바로 선거철이였다는 것이다. 정치판을 바꾸자라는 "바꿔"는 당시 선거와 맞몰려 정치인들이 인기가요를 개사하여 선거홍보에 사용하게 되는 시초가 된 노래이다.

마침 바꿔가 활동한 시절은 2000년 1~2월 사이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임박한 시점이다. 즉 선거철이라는 소리. 이로 인해 선거에 출마한 수많은 국회의원 후보들이 이 곡을 이용하기 위해 최준영을 직접 찾아가는 해프닝을 빚었다(...). 거기다가 16대 총선은 대규모 낙천, 낙선운동이 있던 선거였기 때문에 후보들은 이 곡으로 홍보를, 반대로 시민단체는 그런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 곡으로 비난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이정현 측에는 여러 정당에게서 러브콜이 와 "우리 정당과 함께 손을 잡고 해보자, 저희 정당과 함께 손을 잡고 해보자" 라는 등의 러브콜 전화가 빗발쳤으나 이정현은 본인의 노래가 어느 정당에 치우쳐 쓰여지는 것을 원치 않아 당시 그 러브콜들을 모두 피해다녔다고 한다. 고맙게도 당시 이정현의 소속사 사장 [6] 역시도 이정현을 숨겨주어 이정현은 2002년도 엠넷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감사함을 표현하였었다.



또한 이 곡의 활동 초기때의 무대 의상은 날개가 달린 뭔가 기계틱한 의상이 많은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용가리를 제작 중이던 심형래의 영구아트가 제작해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저 날개는 한 쪽당 무게가 8kg 정도였고, 어깨, 등 팔, 다리 등에도 의상을 부착해 총 무게는 약 20kg 씩이나 되어 작은 체구[7]에 체중도 40kg 안팎이었던 이정현으로서 소화하기엔 상당히 무거운 의상이었다. 위의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날개까지 풀쎄트로 장착한 이정현의 움직임은 매우 둔해 보이며 얼굴 표정에서도 상당히 힘겨움을 느낄 수 있다.[8] 결국 활동 중반기 부터는 머리와 팔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부위에 부착된 의상들을 모두 제거하고 심플한 스타일로 활동하게 되면서 그녀의 퍼포먼스도 좀 더 살아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정현 본인도 말하길 무대 뒤에서 올라가기 전에 대기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활동 초기에 의상입을 때는 거의 1시간 30분~2시간 정도가 걸리기도 하고 온 몸에 이 들었었다고 한다. 신발같은 경우엔 체구가 작은 이정현에게 맞지가 않아 따로 촛불같은 것으로 용접해 붙혀입을 정도.... 훗날 이정현은 당시 '바꿔'의 의상이 너무 과했었다고 회고했다.

데뷔 앨범에서 연달아 대박을 거두면서 1집 앨범 역시 초반부터 불티나게 팔리며 큰 성과를 거두었다. 최종 판매량은 53만장으로, 이정현 역대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아있다.

2.2 2집

이 외에도 2집 평화의 <평화>라는 곡에서는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근대 유럽풍 장교복으로 등장했다.[9]

지난 앨범의 조PD, 싸이에 이어, 양현석 Perry 등의 YG 소속 인물들, 이현도 등의 힙합 뮤지션들이 프로듀서로 모습을 드러냈다. 1집의 대성공으로 이전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게 앨범이 제작되었는데, 아마 이정현 역대 앨범을 통틀어도 이만큼의 투자를 한 앨범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앨범에 공을 많이 들였다. 2집의 특징이라면 앨범 내에서 테크노, 팝댄스 뿐만 아니라 일렉트로니카, 힙합, 심지어 락(!)까지 상당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1집보다 더 대중적이면서도 다채로운 구성을 갖춘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정현 1집의 경우 그렇게 크게 히트했음에도 바꿔 이후 삼속곡이 왜 나오지 않았는지 의아해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앨범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너무 실험적인 노선에 치중해 딱히 활동할 만한 곡이 없었던 것(...). 이정현 = 테크노 전사로 만들어준 와, 바꿔 두 곡만이 대중적인 테크노 곡이었고 나머지는 일렉트로니카 색채가 많이 섞인 형언할 수 없는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들어도 굉장히 이질적인데 당시에는 더욱 생소하게 느꼈을 장르들이었던 반면 2집은 대중성도 잡고 실험적인 성격을 오히려 강화시키며 더욱 다양한 장르를 한 앨범에 담아 이정현의 역대 앨범 중 넘사벽급으로 완성도가 높은 앨범으로 평가된다. 제작비 추산 10억여원의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 YG와 이현도 참여 등등이 그 흔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활동곡도 유일하게 네 곡씩이나 되는 앨범이다(너, 평화, 줄래, 잘먹고 잘살아라).
또 뮤직비디오가 4~5개가 된다. (Feel Me!까지 합쳤을 때의 수.)

앨범 발매 직전까지 '너'와 '평화'가 타이틀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다가 결국 전작의 테크노를 그대로 따라간 '너'가 타이틀로 결정되었다. 1집 활동이 공식 종료된 2000년 2월 이후 불과 4개월만에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머쥐며 신드림을 이어나갔다. 당시 라이벌 구도로 엮었던 것은 백지영의 Dash였고 활동시기가 엇비슷하여 여러 음악프로에서 경합했다. 앨범 판매량 추이가 비슷했던 음반은 박지윤의 성인식이었지만, 박지윤의 앨범 판매량이 41만장으로 근소하게 더 많았고 후속곡 줄래 이후부터 활동시기가 겹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라이벌 구도는 딱히 없었다. 오히려 김현정 3집 '멍'과 더 많이 비교되었다.

타이틀곡 '너'는 이집트 여신을 컨셉으로 잡아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겼다. 앨범 부클릿/뮤직비디오를 이집트로 날아가 직접 촬영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정현이 최초로 이집트 신전 내에서 영상물을 찍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10] 종교적인 이유로 이집트 신전 내에서 영상을 찍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클레오파트라 풀세트로 장착했던 이정현을 보고 동양에서 온 신비한 소녀가 클레오파트라와 닮았다며 촬영을 잠깐 허락해주겠다고 한다.
활동 당시 이정현이 손에 끼고 불렀던 짹짹이가 유행했었으며 활동 중반기 부터는 테크노 버전의 너로 활동을 이어갔었다.

후속곡 '줄래'에서는 본인에게 너무 강한 카리스마, 여전사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깜찍한 바비인형 컨셉으로 나왔었다고 한다. 당시 1집의 신들린 이미지가 너무 강해 대중들은 물론 연예계 안에서까지 이정현이 무당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고, 이 때문에 본인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 이를 의식하여 줄래에서 바비인형으로 깜짝 변신을 했다고 한다. 이미 2집 작업 당시부터 생각을 해놓았는지, 녹음 당시 이정현은 이 노래를 만들어준 작곡가 윤일상에게 이 노래는 후속곡이 될꺼고 컨셉은 어쩌구 저쩌구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았다고 한다. 윤일상은 훗날 회고하길 그런 가수는 첨 봤었다며 참 신선했었다고 한다. 활동당시 무대마다 달라지는 각양각색의 인형 같은 모습은 이미지 체인지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었다. 인형 안무도 파격적이어었지만 푸콘 가족을 연상케 하는 가면을 쓴 백댄서들도 매우 압박적이었다고. 이 역시 어색하다는 평과 참신하다는 평이 있었다. 줄래는 이후에도 수 많은 연예인들이 패러디를 했던 이정현의 히트곡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가요프로그램에서 10위 권에 안에 드는 등 준수한 활동성적을 기록했다.

삼속곡 평화는 사실상 이정현 커리어를 통틀어 최초이자 마지막 삼속곡인 곡이다. 당시 이정현은 이 노래의 뮤비를 타이틀 곡 '너'의 뮤직비디오 일정에 맞춰 러시아에서 아주 대규모로 같이 찍었다. 소문에 따르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수 많은 탱크와 헬기, 러시아군 의장대 역을 한 출연자 등은 어디서 섭외한 수준이 아니라, 러시아의 마피아에서 협찬을 해준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 평화는 이정현의 2집 앨범발표 당시조성되었었던 남북화해분위기와 맞몰려 히트할 뻔! 했으나 큰 히트는 치지 못 했다.

이정현은 평화에서 지휘봉을 들고 군대를 지휘하는 안무를 선보이는데 당시 이정현의 코디였던 그녀의 친언니는 "반전 메세지를 노래하는데 니가 지휘봉을 들고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 마치 칼을 들고 전쟁하자고 하는 것 같다"라며 지휘봉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또한 동방신기유노윤호가 SM오디션 당시 바로 이 노래로 오디션에서 춤을 춰 합격하여 훗날 강심장에서 이정현에게 고마움을 표하였다.

2000년 가을쯤 '잘먹고 잘살아라'로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당시 '잘먹고 잘 살아라'[11] 는 이정현에게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던 라이브 무대를 여러 번 보여줬었다.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당시 인디밴드계에서 아주 이름을 날리던 닥터코어911과 협연을 했던 노래였는데 이 노래의 원곡은 사실 닥터코어911의 1집 수록곡 MAX이다. 활동 끝 무렵 서태지가 가요계 복귀를 했었는데 당시 닥터코어 911의 멤버가 서태지의 립싱크를 비판하는 듯한 말을 하여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12]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아주 잠깐 활동한 만큼 별 화제는 되지 못 하고 활동이 끝났다. 이처럼 장르와 컨셉을 넘나들며 활동하다 10월 말쯤 최종 5개월 간의 활동을 접었다.

최종 판매량은 38만장으로 상당히 많이 팔리기는 했지만, 투자가 워낙 많이 된 탓에 그리 큰 수익을 얻은 앨범은 아니었다. 전작에 비해 15만장이 감소할 정도로 크게 임팩트를 주지 못했으며,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해외 로케이션만 두 나라를 그 것도 대규모로 갔다와 음반 제작비용만 상술했듯이 15억원이 들었지만 2000년 당시 제작비 15억원이면 음반이 100만장 팔려야 손익분기점을 달성한다고 이정현 측이 직접 보도했었다(...). 음악적으로도 워낙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다보니 정말 한 앨범에서 이것저것 다 해본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게 양날의 검과 같아서 변신의 귀재, 퍼포먼스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확실하게 붙였지만 한 편으론 이정현의 변신을 너무 한 앨범에서 몰아서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었고, 결국 이미지 소모가 너무 빨리되어 다음 앨범부터 본격적인 컨셉 고갈과 인기 하락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2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중간에 2.5집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의 촬영 스케줄과 녹음 일정이 많이 겹쳐 퀄리티 저하로 인해 발매를 취소했다. 해당 앨범에는 윤일상 작곡의 신곡과[13] 2집 앨범에 참여한 지한파 뮤지션 피터 라펠슨의 신곡과 그가 직접 리믹스한 음원등을 합쳐 1-2집들의 히트곡,리믹스와 신곡 4~5개 정도를 합친 CD 디스크, 그리고 그동안의 뮤직비디오와 미공개 처리된 'Feel Me'의 뮤직비디오, 2집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다큐 등이 수록된 VCD까지 합쳐 4월 말 출반 예정이었다.

2.3 3집

3집은 2집이 발매되고 1년 5개월이 지난 2001년 11월에 발표했는데 타이틀곡 <미쳐>에서는 마술사 컨셉으로 등장했다. 1,2집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최준영에서 줄래 작곡가인 윤일상으로 프로듀서가 교체되었고, 음악적 노선이 약간 달라져 사상 최초로 테크노가 아닌 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했다. 미쳐는 이정현의 리즈시절 앨범 타이틀 곡 중 유일하게 테크노 뽕짝 느낌이 나지 않는 완전한 아메리칸 팝 댄스 스타일의 곡이였다. 이전까지 이정현의 타이틀 곡들과는 상당히 다른 유독튀는 곡인데 슬프게 시작되는 가성보컬위에 깔리는 현악반주와 이내 비트가 강렬하게 바뀌며 아주 파워풀하게 진행된다.
보컬적으로는 이정현의 발성법의 발전을 느낄 수 있는 노래인데 2집에서 이정현의 발성은 사실상쌩목으로 듣기 불편할 정도로 빽빽-내지르는 창법이였으나 미쳐에선 높은 고음역대의 노래를 비교적 편안한 발성으로 소화하는 이정현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정현의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를 아주 최대치로 끌어올린 노래인데 버림받은 한 맺힌 표독스런 여자를 제대로 표현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정현의 명곡으로 꼽는 곡.

하지만 이 노래의 당시 상업적 성공도는 전작들의 타이틀 곡의 임팩트에 비해 부족했다. 이 해에는 대부분의 댄스 가수들이 R&B 가수들한테 밀려 전반적으로 하락세였는데 이정현도 피해갈 순 없어서 <미쳐>는 공중파 음악방송 TOP 5에 겨우 걸쳤다(...). 사실 하락세의 원인은 테크노를 버린 이유도 있었지만, 타이틀곡의 컨셉에도 있었다. 원래 타이틀곡으로 예정되었던 <수리수리 마수리>를 급하게 접고 <미쳐>로 타이틀을 잡았다고 하는데 의상만 마술사 컨셉이지 이정현 특유의 퍼포먼스가 거의 소멸되고 그냥 흔한 섹시 여가수의 무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전보다 임팩트가 떨어졌었다. 거기다가 1년 반이라는 긴 공백기 동안 브라운아이즈, 왁스라는 혜성이 등장하면서 가요계의 판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고 발라드가 점점 강세를 띠는 기간에 컴백, 특히 온갖 차트를 씹어먹던 리즈시절의 god와 활동이 완전히 겹치면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원래 '수리수리 마수리'를 타이틀곡으로 하려고 했지만 앨범 발매를 앞두고 급히 '미쳐'를 타이틀로 정했는데, 컨셉은 수리수리 마수리때의 마술사 컨셉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바람에 곡과 컨셉이 따로 논다는 평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쳐'는 이정현하면 떠올리는 이정현의 클래식 히트곡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미쳐의 뮤직비디오는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동성애의 소재는 이정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라고 한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정현이 창밖으로 보이는 두 남자의 스킨쉽을 목격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이를 알아차린 남자는 이정현을 불에 태워 죽이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후유증인지 휠체어에 탄 이정현에게 사랑의 표식인 목걸이를 넘겨주고 결국 슬픔을 견디지 못한 여주인공은 자살..을 한다라는 파격적인 스토리다. 이 대 방안에서 우는 눈물연기를 촬영할 당시 무려 28시간 동안 촬영을 했다고 하며 또한 몇 미터에 달하는 조명기구가 이정현 쪽으로 쓰러져 사고가 날 뻔했다고.. (당시 카메라 스텝분이 팔로 막아주셨다고 한다)


또 미쳐는 이정현이 말하길 안무가 가장 격렬하고 힘들어서 라이브 하기가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쳐의 안무는 이정현이 당시 여타 노래들에서 보여주던 안무들에 비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안무였는데 춤동작도 춤동작이지만 높은 음역대 역시 라이브의 걸림돌이다.(몇 안 되는 라이브 영상들을 들어보면 고음역대는 무리없이 올리긴 한다. 다만 너무 헉헉대서 후렴구를 CD를 틀어놓는 수준으로 라이브 하는 것이 문제)이것 때문인지 2001년 9월 1일부터 필수 라이브로 활동해야 했던 MBC 음악캠프에서는 잔잔한 음악으로 리믹스해서 활동했다고 한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의상비가 많이 들었다고 알려진다. 의상에서 노출된 가슴 부위가 도드러져보여 섹슈얼한 이미지를 형성했고, 포니테일로 길게 묶은 검은 머리까지 더해져 고혹적인 매력을 선보여 남녀팬 할 것 없이 미쳐란 곡을 각인시켰기에 이미지 컨셉은 매우 성공한 편. 의외로 이정현의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어필된 경우. 당시 이정현이 미쳐 뮤직비디오를 처음 공개했을 당시 가슴성형의혹이 있었다. 또 포니테일로 길게 묶은 가발머리가 춤 출 때 너무 무거워 자꾸 몸이 뒤로 쏠렸다고 한다. (실제로 KBS컴백 무대를 보면 중간 랩부분에서 이정현이 머리를 잡고 살짝 휘청거린다.) 그래서 활동 중반기 부터는 짧게 자른 단발머리로 활동을 했었다.

위 영상은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청할 때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타이틀곡이 예상보다 저조한 인기를 얻고 2002년으로 넘어가면서 후속곡 <>을 들고 나온다. 흥겨운 멜로디에 중독성 강한 댄스로 다시 인기를 회복했고 본래 1월까지 활동하려던 계획을 늘려 3월까지 활동하며 성공을 거둔다. '반' 뮤직비디오나 의상컨셉은 80년대 고고장 복고 컨셉이다. 음악적으로는 1,2집 활동곡의 연장선에 있는 테크노. 매우 빠른 박자의 테크노 리듬에 복고적 분위기를 입어 상당히 중독성 있는 신나는 곡이었고 덕분에 나이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오랫동안 인기를 얻으면서 노래의 안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한방에 확 터뜨렸던 인기가 아니여서 1위는 하지 못했다. 음반판매량도 20만장에 턱걸이하면서 전작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타이틀곡으로 망할 뻔하던 것을 반으로 회복하면서 다음 앨범의 음악적 방향은 '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반은 이정현의 대표적인 클래식 히트곡 중 하나로 자리잡히게 되는데 훗날 많은 연예인들이 이정현을 소개 할 때 '와'도 '바꿔'도 아닌 이 반 노래와 반 춤을 추며 소개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방송가에서 당시 목장갑을 끼고 반 춤을 따라추며 응원하는 이정현 팬들의 응원이 화제였는데 레전드 영상으로 SBS인기가요 영상이 있다. 훗날 이정현이 말하길 아직도 음악방송 PD들이 이정현에게 안부를 물을 때 "팬들은 잘 있어?"라고 물을 정도라고... 밑의 팬덤 항목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2.4 4집

이정현은 대학 생활을 병행하며 4집 준비에 들어가는데 8개월의 공백기 끝에 2002년 11월 야생녀 컨셉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후크송의 시초라고 할 만한 타이틀곡 <아리아리>는 무대에서 백댄서들과 밀가루를 얼굴에 바르는 참신한 퍼포먼스로 꽤 많은 인기를 누렸고 1위 후보까지 올랐다. 다만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에 밀렸다 후속곡 <달아달아>에서는 전통 무예로 변신하여 무대에 대형 붓을 가지고 나오기도 했고 4집으로 전작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부터 동안과 꿀피부가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한다. 야생녀, 전통무예를 하긴 하는데 꽃다운 10대 소녀의 포스가 풍기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기와는 달리 앨범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테크노를 탈출했던 3집 타이틀곡 '미쳐'가 반응이 저조하고 테크노 리듬으로 도배된 '반'이 뒤늦게 순풍을 달고 히트하면서 당시 복고적 분위기의 클럽풍 노래였던 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앨범 전반적으로 나이트에서 나올 테크노 리듬이 도배되어 있는데 당시 발라드, R&B가 강세를 보이던 가요시장에선 한물간 사운드 취급받는 장르였다. 그런데 파격을 상징하는 이정현이 이미 진부해져버린 테크노로 도배하며 싸구려 나이트풍또는 고속도로 휴게소/관광버스풍의 노래들을 주 무기로 사용했으니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활동곡 '아리아리'와 '달아달아' 모두 각각 야생녀, 전통 무예라는 컨셉이었지만 음악적으로는 다른 가수들이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흔한 테크노 사운드였다. 음반판매량은 17만장으로 전작에 비해 소폭 감소했고, 더이상 테크노로는 앞으로의 활동을 할 수 없을거란 판단을 했는지 이후 앨범에서 테크노는 완전히 지워지면서 그녀의 아이덴티티였던 테크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앨범이자 후속곡 활동을 했던 마지막 앨범이다. (더블 타이틀이었던 2009년 미니앨범은 예외)

그런 이정현 4집에 숨겨진 명곡이 있는데 토와 테이가 작곡한 <Brighter Than Sunshine>이다. 또한

2.5 4.5집

4집 활동을 마치고 그 해 여름(2003. 07)에 'Summer Dance'라는 곡으로 컴백했다. 기존의 강렬하게 쎄 보이는 컨셉과는 달리 상큼하고 발랄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미지 변신을 했는데, 강렬한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곡이었다. 다만 스페셜 앨범이어서 그랬는지 쿨이라는 경쟁자가 있어서였는지 반응은 뜨뜻미지근한 편으로, 망했다고 하는 미쳐보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음악방송에서 7위 안에 들어가는 정도로 나름대로 괜찮은 인기를 이어갔었고, 현재까지는 이정현의 음악 커리어에서 마지막 히트곡이라고 할 정도는 된다. 이 이후의 곡들 반응이 워낙 시망(...)이었으므로...
앨범 판매량은 5만 5천여장. 4집의 1/3 수준에 그쳤지만, 5집보다는 많다...

2.6 5집

다음 해인 2004년에 발표한 5집 <따라해봐>에서는 2집 때 시도하려던 라틴 컨셉을 시도했는데 결과물은 세뇨리따 컨셉이다(...). 하지만 문제는 노래가 너무 뽕삘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노출이나 섹시한 안무, 퍼포먼스 등을 선보였지만 노래가 너무 뽕삘이었기에 너무 안 어울렸다. 그래도 대중적으로는 괜찮은 멜로디를 지녔기에 소소하게 인기를 누리긴 했다. 하지만 활동을 시작한 지 1달 정도 되었을때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되어 후속곡도 없이 5집을 급하게 마쳐버린다. 5집은 이정현의 랩이 들어간 마지막 앨범이다

소속사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와중에 일본 진출을 하면서 활동은 겨우 한 달밖에 못한 비운의 앨범.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싱글이 없었고 앨범 위주였기에 보통 컴백하면 후속곡까지 포함해서 3~4개월 동안, 타이틀곡은 두 달 가량 활동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지금처럼 5주 활동 후 후속곡 없이 종료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 덕분에 홍보조차 제대로 안 되어 인기를 누릴 여건을 못 만들었다.

그러나 계약 탓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컨셉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 라틴 댄스는 이미 4~5년 전에 백지영, 홍경민이 같은 컨셉으로 재미를 봤고 박미경, 소찬휘도 시도했던 컨셉이었다. 참신하기는 커녕 오히려 한물간 유행을 뒤늦게 따라한 듯한 인상만 주었고, 결과적으로 진부하다는 혹평을 듣게 되었다. 기대 이하라는 말은 3집부터 조금씩 흘러나오던 이야기였지만 이 앨범에서 더욱 그런 경향이 심했는데, 이 무렵부터 이정현이 컨셉 고갈이 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초반부의 강렬함을 원했던 팬들에게 전혀 만족을 주지 못했던 앨범. 그리고 이 기우는 다음 앨범에서 제대로 비수를 꽂는다(...). 앨범 판매량은 2만 8천여장이 나왔는데, 집계 첫 달에 저 판매량을 찍고 2004 최종결산에 등장하지 못한 것을 보면(당시 마지막 순위인 100위가 2만장이었다.) 실제 판매량은 2만장 내외에 그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터차트에서도 2만 5천여장에 그쳤다.

2.7 6집

소속사를 바꾼 후 2년 만에 발표한 정규 6집 타이틀곡 <철수야 사랑해>는 지금까지의 이정현 음악 활동 커리어에서 빼내고 싶을 정도로 정말 무미건조한 컨셉과 노래였다. 사실 본래 6집의 타이틀 곡은 인도풍의 "나만봐"라는 곡으로 아주 강하고 파격적인 컨셉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일 앨범 발매 후 Ystar에서 방송됐던 다큐멘터리에서 말하길 "월드컵 때 국내에 들어와보니 일단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시는 거에요. IMF때보다 더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저까지 막 쎄게 나오면 대중분들이 못 받아들이실 것 같아서 일부러 힘을 싹 다 빼고 귀엽고 발랄한 철수야 사랑해를 타이틀 곡으로 선택했어요" 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 생각은 이정현의 커리어 사상 가장 큰 실수였다. 결과적으로 가수로써의 제대로 된 입지하락에 결정적으로 기여..)

그래도 아무 화제 없이 조용히 흘러갔던 5집에 비하면 대중적으로 화제와 호기심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철수야 사랑해'라는 특이한 타이틀, 병맛 넘치는 가사와 뮤직비디오 때문에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당시 비슷한 인기를 누렸던 곡으로는 마골피의 비행소녀와 바나나걸의 초콜렛 배슬기의 말괄량이 등이 있다.) 이 병맛넘치는 가사에 대해서 이정현은 본인 스스로도 녹음실에서 처음 가사를 받고 "이게 뭐야!"라면서 웃었었다고 회고했다.(철수야 사랑해의 작사가는 본인의 공전의 히트곡 와를 만들어준 최준영 그리고 또 다른 최고의 히트곡 반을 작곡해준 유타가 만들어준 노래다...)

이정현은 철수야 사랑해를 가사를 빼놓고 반주만 들어보면 듣기가 편하지만은 않은 무거운 기계음으로 가득찬 일렉곡이여서 가사를 일부러 쉽고 편안하게 갔어야 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철수야 사랑해를 타이틀로 내세운 것이 어떻게보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던 일이였다고 말하였다. 한편으론 화제성과 대중적인 관심도만 보면 5집보다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정작 수입과 직결되는 음원, 음반 성과는 뛰어나지 못 했다. 그래도 첫 음반이 나왔던 10월 달에는 여가수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었고 첫 달 벅스뮤직 음원순위에서는 7위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미적지근~했던 반응이였던 것이 사실이다.

2.8 해외 진출

이정현은 한류 1세대로 통할 정도로 2000년부터 해외 활동을 시작했는데 시작점이 중국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진출한 베이비복스H.O.T.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이때까지는 중국에서 정식으로 활동하는 건 아니고 그냥 한국 가수가 중국에서 자주 공연을 하는 정도였다. 공식적으로 중국어로 된 앨범을 낸 건 2008년이었는데 타이틀곡 <Love Me Love Me>가 중국 내에서 <와>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각종 CF, 콘서트, 영화 등으로도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중국엔 이정현 폰과 이정현 냉장고 등이 나올 정도. 하지만 이런 바쁜 활동으로 인한 성대결절로 대왕 세종의 주요 배역에서도 내려와 하차를 해야했다. 오프닝만 봐도 이정현은 주요 인물인 궁녀에서 빈이 된 신빈 김씨로 나오지만 불과 3개월 만에 하차.
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08/06/30/htm_200806301644040201000002010700ed6-001.jpg(신빈 김씨로 출연하였던 이정현)[14]

2004년에는 일본에도 진출했는데, <와>를 일본어 버전으로 편곡하고 재녹음해서 발표했다.[15] 그렇게 싱글만 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나 싶더니 데뷔 무대를 무려 홍백가합전에서 치룬다.[16] 그렇게 첫 싱글은 일명 홍백 버프를 받아 꽤 화제가 되었으나(비슷한 시기 일본에 진출했던 화요비, 박정현, 왁스와 비교했을 땐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였었다.) 오리콘 차트 26위에 그쳤고 그 다음 싱글은 70위대로 떨어졌다. 결국 한 세 달 정도 활동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일본 오리지널 곡인 <Heavy World>는 팬들에게 사랑받는다.

트리비아로 홍백가합전 당시 이정현은 붉은색의 한복을 입고 출연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홍백가합전은 연말 행사라는 성격상 일본 가수들이 기모노를 입고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현이 한복을 입은 것과 연결시켜서 '일본 방송사에서 기모노를 입으라고 강요하였으나 이정현이 이를 거부하고 한복 착용을 강행했다'는 루머가 있다. 이정현 본인은 '일본 방송에 한복을 입고 나오는게 두렵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와는 별도로 정말 일본 방송사에서 기모노를 강요했는지는 미지수. 이정현의 저 발언도 실제 일본 방송사의 압박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적인 고민에서 비롯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당시 일본에서 이정현의 한복 착용에 대한 논란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홍백가합전이라고 해도 젊은 가수들은 기모노가 아닌 그냥 자기 무대 의상 입고 나오는 경우도 많고 하마사키 아유미 같은 경우 길다란 서양식 드레스를 매년마다 입고 나온 걸 보면 방송사에서 기모노를 입으라고 강요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정현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해도 개인적인 단순한 설레발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드레스 코드를 기모노로 맞추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걸 무시하고 한복을 입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결례이자, 타협을 안하는 사람로 보일 수도 있다. 꼭 좋게 생각할 일만은 아닌 듯.[2]

2.9 한국 복귀 이후

2009년 새 앨범을 들고 복귀했다. 복귀 전부터 2009년도에는 흔하지 않았던 미국 헐리우드의 여러 유수 제작자들이 참여하여 만들었다는 미니앨범에 많은 관심이 쏠렸고 티저사진들 역시 연일 화제가 되었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이 안무를 맡았는데 그에 걸맞게 멋진 안무가 나왔었다. 뮤직비디오에는 돌체앤가바나의 젊은 모델들로 도배가 되었었고 미국에서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뽑힌 자넷 잭슨과 팀버레이크의 투어 댄서들을 대동하여 비디오를 찍었다.
또한 당시 이효리의 유고걸과 소녀시대의 gee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이트라이브가 만들어준 카리스마 컨셉의 타이틀곡 'Crazy(E-TRIBE)'그리고 귀여운 콘셉트의 서브 타이틀곡 'Vogue Girl (It Girl)[17](김이나 작사, 이민수 작곡)' 위주로 활동했다. 마릴린 먼로, 오드리 햅번 등의 코스프레를 한 적도 있다. 'Crazy'는 과연 퍼포먼스의 여왕다운 무대를 펼치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이정현의 복귀의 상당한 화제를 끄는데는 성공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이정현은 본래의 뮤직비디오까지 찍었던 타이틀 곡 크레이지가 보그걸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크레이지는 매주 음악방송에서 보여주기에는 부담스럽다고 판단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보그걸을 선택했다고 한다.

2009년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가요제에서 전진과 듀엣 카리스마로 출연 당시 심사위원인 무한도전 에어로빅 특집을 도와(?)준 염정인씨는 그룹명 카리스마를 마음에 들어했다. 성적은 금상. 사실 그룹명 덕을 본 거다. 물론 음악 역시 우수. 작곡은 SG워너비 전담(?)인 안영민씨. 당시 안영민이 샘플곡을 들려주자 3초만에 커트 쳐버렸고 아예 기계를 뻑나가게 했다.

이후 중국에서 대하사극 '공자'에 출연했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정현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공항 X 레이에서 실총과 유사한 물건이 포착되어 세관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도 실총은 아니고 악세사리다. #

2010년 7집 컨셉을 007로 고퀄리티 티져를 공개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타이틀곡 '수상한 남자'가 흥행에 실패했다. 문제의 파격적인 퍼포먼스 7로 승부하려다가(...)

2013년 7월 22일 싱글로 컴백했다 곡명은 V. 놀랍게도 뮤직비디오 감독이 박찬욱이다. [18] 뮤비 티저로 보아선 유령신부 같은 기괴한 느낌일 거라고 예상되었으나 사실은 톡톡 튀는 호러 코미디 컨셉이다. 뮤비에는 2014년에 개봉한인 영화 '명량'에서 호흡을 맞춘 진구가 출연한다.

한편 컴백 바로 전주 뮤직뱅크에서는 뮤비 티저들을 센스 있게 편집하여 컴백 예고를 했으나 음악중심새파랗게 어린 젊은 후배들만 f(x), 비스트의 컴백 예고만 했다. 한편 엠카운트다운의 경우 결방으로 예고를 할 수 없었다. 무대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출연하며 탁한 색의 옷을 입은 백댄서들과 함께 호러하면서도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V' 활동 중 음악중심에서의 대우가 영 좋지 않은데 첫 주에는 야외무대였는데 관중석 표정이 뚱하고 시큰둥한 관중만 잡아서 안타까웠는데, 8월 10일자 방송에서는 기어이 팬들이 뿔났다. 3분 16초 정도밖에 안 되는 노래를 잘라먹었는데 그나마도 당사자인 이정현한테는 사전 예고조차 하지 않은 탓에 2절에서 갑자기 노래가 중간이 끊기고 넘아가자 안무팀도 이정현도 안무를 틀리는 실수를 했고 사전녹화였었기에 다시 부탁했으나 싸가지 밥 말아 처드신 PD는 거절했던 터라 중후반의 무대를 보면 당황한 모습이 드러난다. 팬덤 내에서는 음악중심이 아니라 거의 악의 중심악의 축으로 찍혔다.

그래도 아직 중국에서는 인기가 있는 모양이고 레이디 가가에게 러브콜을 받아 계약도 체결했다고 하니 상황을 두고 보는 게 좋을 듯.

여담이지만 데뷔한 지 20년 가까이 됐는데 정말 안 늙는다. 30대 중반에 들어섰는데도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을 정도다. 절대 동안의 극치. 실제로 담배를 대단히 멀리한다고 한다. 담배 대신 방부제 잡수세여?

활동 기간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은 적은 편이다. 출연해도 단발성 게스트 정도로 출연하는 편. 사실상 데뷔 초기에는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하느라 예능 출현 횟수는 손에 꼽았고, 후에도 잦은 해외활동 및 바쁜 스케줄로 인해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나마도 토크 위주의 프로그램에 출현하게 되면 늘 주제가 한정적이고[19] 버라이어티 계열 예능은 국내 활동 중이 아니면 거의 볼 수 없을 정도...

2014년 12월 20일, 무한도전 토토가에 섭외되었다. 변함 없는 초 절정 동안을 보여주며 무도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게다가 당시 등장한 멤버들이 동갑인 하하를 제외하고 전부 오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빠라고 부르는데 이 말투가 오빵~이라 멤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정신 차려. 당신들 유부남이야 그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았다. 장이 하지만 귀여운 모습만 이슈되지는 않았고 아이디어북[20]을 내놓으면서 무대 설정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는 등 가수로서도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이 날 방송에서는 3,000만 원짜리 에르메스 버킨백을 카페 바닥에 서슴없이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 많은 여성 시청자를 멘붕에 빠뜨렸다. 또한 입고 나온 야상 역시 1000만원 대의 제품[21]이다.(이정현은 에르메스 버킨백을 분홍,초록,주황으로 3개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본공연에서는 소품 하나하나 꼼꼼히 신경 쓰는 공연 장인의 모습을 보여줘 무대에 대한 애착이 큰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여담으로 화면에 잡힌 이정현의 방 거실에는 플레이스테이션 3가, 그것도 참치가 있어 뭇 겜덕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더해서 레고까지, 그것도 테크닉 42009가 방부 처리의 비법은 덕질? 아무리 리마스터링 이라지만 음원조차 방부제 느낌이 난다 시대를 앞서가다못해 초월한 음원 젊게 살면 스트레스가 적어서(...) 살아있는 최종병기 바비인형이자 로리누님의 표본 본방송에서 와의 복장을 입은 모습이 1999년 데뷔 당시 모습이랑 거의 차이가 없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 6월 14일~28일 1박 2일 '여자사람친구 특집'에 정준영의 친구로 출연했다. 작중에선 돈 많은 큰언니+동안 애교 기믹으로 나왔다. 저녁 식사 복불복에서는 백지영, 택연의 '내 귀에 캔디' 무대를 보여줬는데 물을 끼얹는 퍼포먼스를 하며 역시 이정현이라는 반응이 나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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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음 나오는 노래는 1집 인트로곡 -00001
  2. 초반의 반응을 본 소속사 사장은 나오지도 말라면서 화를 약간 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엔 잘 잤냐고 안부도 아침마다 물어보고 오늘도 스케줄 열심히 하라고 응원 메세지도 보내줬다고 한다.
  3. 이때 시기는 2002 한일 월드컵 16강에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꺾은 이후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내에서 한국에 대한 문화 등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4. 이정현의 이런 정신은 후의 노래들을 대박으로 이어지게 한 그 정신이다.
  5. 2016년부로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했다.
  6. 아까 그 소속사 사장님이시다. (....)
  7. 그녀의 체구가 얼마나 작냐면 당시 순풍산부인과미달이 역으로 출연중이던 김성은이 설 특집 이벤트 무대를 위해 이정현 측으로 부터 이 의상을 빌려 입었는데 그대로 맞을 정도였다(...)
  8. 이를 그나마 조금은 고려했는지 백댄서들이 1절 후 간주 중에 날개를 떼어내주는 형태로 안무를 짜기도 했다.
  9. 이 시기 남북정상회담 시기와 맞물려 그녀의 무대 퍼포먼스는 한반도기가 펄럭였다.
  10. 무려 전설의 셀린 디온도 촬영에 실패할 정도로 촬영이 무척 엄격했다.
  11. 뮤직뱅크에서 활동할 때는 'Hey little tought'라는 제목으로 활동했다.
  12. 사실 여기엔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이 밴드의 본래 멤버가 현재 서태지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안성훈다. 당시에는 답십리안이란 예명을 사용했는데 이들의 음악을 들은 서태지가 안성훈에게 같이 활동하자고 제의했고 닥터코어 911 측에서도 동의했으나 컴백 첫 방송은 방송 시스탬 문제로 녹음된 반주를 틀었다. 이 때문에 그럴 거면 뭐하러 나갔나며 반감을 표시한 것. 그런데 사실 이는 생방송 가요 프로의 약점 때문이었다. 악기 세팅에 시간이 걸리는 밴드 음악 특성상 이런 식으로 방송을 진행한 밴드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이후엔 서태지 본인이 자기 돈 들여 방송을 녹화하는 사전 녹화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방송국 측에선 주도권을 뺏긴다고 생각해 서태지가 갑질을 한다고 몰아간다(...)
  13. 공식적으로는 3집때 윤일상과 처음 작업을 했지만 애초 기획으론 2.5집때 처음 협업을 할 예정이었다.
  14. 허나 사진에 나와있는 모습으로 드라마에 출연한 적은 없다.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던 성대결절로 인한 빠른 하차를 했기 때문에..
  15. 현재 국내 행사 등에서 이 곡을 부를 때는 원곡의 반주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 싱글에 수록된 반주를 사용한다.
  16. 홍백가합전은 일본 가수들도 쉽게 출연하기 힘든 방송이다. 이병헌최지우가 주연으로 분한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그 덕분에 출연이 가능했다고 한다.
  17. 방송에서는 제목이 'Vogue It Girl'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원래 곡 제목이 특정 잡지 이름과 같아서이다.
  18. 정확히는 박찬욱 감독과 그의 동생 박찬경 미술작가의 공동연출이다. 영화 파란만장에 노개런티로 출연해 준 답례였다고.
  19. 어머니 무당설이 가장 유명한데, 이는 데뷔작이었던 영화 '꽃잎'에서 보여준 신들린 듯한 연기와 더불어, 1집 앨범의 한복 무대의상, 비녀머리, 파격적인 무대와 대비되는 일상에서의 신비주의 컨셉, 그리고 개인적으로 즐겨 피우던 향초 등이 겹쳐지면서 와전되었다. 당시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캐릭터였으니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도... 이 외에도 3집 타이틀곡 '미쳐'의 뮤비 백스토리나, 중국의 원조 한류스타, 동안의 비결 등, 하나같이 기사에서 늘상 다뤄 왔던 얘기들이라 팬들 입장에서도 조금은 식상하다는 의견.
  20.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거의 김장훈 콘서트 수준의 무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정현의 설명을 들은 무도 멤버들이 '이걸 어떻게 만들지?' 식의 표정을 지을 정도.
  21. 21드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