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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우주력 745년, 제국력 436년 12월 4일에 시작되어 12월 11일에 마감한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사이의 대규모 회전으로 본편 기준으로는 과거의 이야기이다. 본편에서는 "브루스 애쉬비란 전쟁 영웅과 그런 전투가 있었지." 정도로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에 그치지만 외전 5권 <나선미궁>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형식은 양 웬리가 애쉬비와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난 알프레드 로자스를 통해 구술로 듣는 것이지만 작중에서는 전투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이 전투의 배경 자체는 설명할 내용이 한 줄도 없다. 한 마디로, 이후 수 십년, 수 백년이 지나서도 수 차례 회자되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엄청난 회전의 원인이 어떠한 전략적 목표도 없이 이미 정례화된 제국과 동맹의 무력충돌 중 하나였고, 단지 애쉬비의 천재성과 그의 드라마틱한 생애가 맞물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며 유명해진 것. 게다가 이 회전이 유명한 원인 중 하나는 모순에 있는데, 승자가 이따금 전쟁의 이치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던지라, 훗날의 군사학자들이 승리의 요인을 설명하는 데 곤란을 느꼈다는 언급이 나온다.
2 전투 전 양군의 사정
2.1 동맹군의 사정
이 무렵 동맹군의 최일선 지휘관들은 '730년 마피아'로 대변되는 브루스 애쉬비를 중심으로 한 우주력 730년의 사관학교 졸업생 동기들이었다. 당시 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우주함대 사령장관: 대장, 브루스 애쉬비
- 우주함대 총참모장: 중장, 알프레드 로자스
- 제4함대 사령관: 중장, 프레드릭 재스퍼
- 제5함대 사령관: 중장, 월리스 워릭
- 제8함대 사령관: 중장, 팡 추링
- 제9함대 사령관: 중장, 비토리오 디 베르티니
- 제11함대 사령관: 중장, 존 드링커 코프
- 후방근무부장: 중장, 킹스턴
이러한 진용은 동맹군의 필승 패턴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으로 인해 비판의 소지가 되었다. 주로 다음과 같은 비판이었다.
이것은 회전이 아니다. 730 마피아의 군사 피크닉이다. 수많은 병사를 잃고 그들이 무훈을 과시할 뿐이 아닌가. 국가 내부에 군부가 존재하고, 나아가 그 속에 사적인 집단이 있다는 것은 군벌화의 우려가 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동맹 내에서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정치인들은 애쉬비가 무훈과 명성을 등에 업고 정계나 재계에 진출하는 것이 아닌가 경계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애쉬비는 전투를 앞두고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전투에 이기면 다음에는 원수지. 하지만 그러면 나에게는 더 이상 올라갈 계단이 없어지겠군. 링 파오나 유수프 토패롤의 전철을 밟고 싶진 않은데.
애쉬비 본인은 대선배들이 큰 전공을 세워 원수까지 승진하였지만 결국 나중에는 명예직 수준에 머무르며 큰 기여를 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자신은 그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발언한 것이라 하였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큰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애쉬비 본인에게는 '730년 마피아'를 정치적으로 세력화할 의도가 없었고, 따라서 정치인들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동맹군의 상태는 최상. 강력한 함대와 훈련된 강병들, 그리고 유능한 지휘관들. 승리를 위한 요인들이 빼곡하게 모여있었다.
문제는, 그 유능한 지휘관들이 모인 동맹군 수뇌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애쉬비는 지금까지 동료 지휘관들에게 고압적으로 나서기는 했으나 그래도 어느정도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여 불만을 부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구체적인 설명도 전혀 없이 "내 명령대로만 따르면 이긴다"라는 식의 도가 지나친 고압적인 태도로 휘하 지휘관들을 누르려 들었고, 이에 코프 중장이 발끈하여 애쉬비와 말다툼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3] 결국 이 두 유능한 지휘관의 말다툼 끝에 말을 들으려 하지않는 애쉬비에 분노하여 코프 중장이 "자넨 변했어, 애쉬비. 아니면 내가 보는 눈이 없었던 건가?"라는 발언까지 남기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고 동료들이 나서서 코프 중장을 회의실로 돌려놓는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같은 회의장에 앉아있는데도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는 막장 상황이 전개되는걸 막지는 못했다.
코프 중장과의 사이는 최악, 여기에 베르티니 중장은 출전 직전 집에서 키우던 열대어 수족관의 수온 조절 시스템이 잘못되어 열대어들이 폐사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아내와 대판 싸웠다. 나중에 자신의 옹졸한 행위를 후회하고 사과하려 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그가 행성 하이네센을 떠나고 있었으므로 나중에 돌아온 후에 사과하기로 하고사망 플래그를 세우고 회의에 참석한 상황이라 입을 꾹 다문 채로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이런 지휘부의 막장 분위기는 그대로 아래로 전해져 병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고 병사들 사이에서는 "이래 가지고 무슨 전쟁을 하겠냐!" 란 말이 오가며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더구나 이미 수 십년이상 지속된 전쟁에 지친 병사들에겐 싸워야 할 의무나 승리에 대한 신념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2.2 제국군의 사정
은하제국군은 총 630만 내지 650만, 함정수는 5만 5천 척에서 5만 6천 척을 동원하였다. 다만 이는 동맹군 자료에 의한 수치이므로 다소 오차가 있을 것이란 언급이 있다. 총사령관은 애쉬비보다 20년이나 연장자인 우주함대 사령장관 치텐 원수였고 그 외 제국군에서도 일급 지휘관들이 줄줄이 참여한 대규모 원정군이었다.
제국군도 동맹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군을 일구어냈다. 애쉬비에게 줄곧 패배하기는 했으나 제국함대 전체에 치명상을 입을 정도의 패배는 없었고 수 백년에 걸쳐 일구어낸 강력한 함대와 오랜 기간 군대에 몸 담으며 반란이나 동맹군과의 전쟁으로 경험을 착착 쌓은 연륜있는 지휘관들이 자리잡음으로써 제국군도 동맹군과 비교하여 전혀 밀리지 않는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애쉬비는 전투가 끝난 후에 제국군을 상대로 심각한 어그로를 끄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는 점이고, 이 전투에 참여한 지휘관들 대부분 애쉬비에게 최소한 직간접적으로 한 번 이상 농락당한 적이 있는 인물들이란 점이었다. 당연히 어그로에 휘말린 지휘관들은 애쉬비에게 도발당한 상태였고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상태였다. 게다가 군무상서 켈트링 원수가 회전을 앞두고 애쉬비를 저주하며 분사했을 정도였으니 다른 장군들의 분위기는 굳이 안 봐도 비디오 수준. 특히 치텐 원수를 보좌하는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중장은 켈트링 원수의 임종을 지켜보며 유조까지 받은 상태라 "적도의 장수 애쉬비의 목을 베어 군무상서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한다. 결코 목숨을 아끼지 마라!"라며 병사들을 독려할 정도로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애쉬비의 탁월한 도발 능력이 한 몫하긴 했으나 전통있는 무인 귀족측이 자리잡은 은하제국 지휘관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런 제국군 지휘부에 짙게 깔린 타도 애쉬비 분위기에 그나마 제국군 내에서도 개념 박힌 지휘관이었던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중장은 제국군의 결함에 대해 비판했다.
제국군의 고급장교는 전장을 개인의 무훈을 세우는 곳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군과의 협조성이 부족하고, 병사에 대한 애정도 적다. 우려해야 한다.
또한 그는 뮈켄베르거의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마치 사전(私戰)을 선동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애쉬비라는 적도의 장수 하나만 쓰러뜨리면 그만이라니, 제국군의 권위를 의심받을 것이다.
이렇다보니 총합 약 10만척에 달하는 제국군과 동맹군 모두 애쉬비 단 한 사람에게 신경이 집중된 기묘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른바 동맹군은 "애쉬비가 무너지면 우리 모두 좆망"이라는 생각, 제국군에서는 "저 X같은 애쉬비의 목을 따고 결판을 내겠다는!"란 생각으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3 전투의 진행 과정
12월 5일 9시 50분, 최초의 포화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오픈 게임을 통해 전력을 간 본 직후 애쉬비가 먼저 선수를 쳤다. 베르티니의 9함대와 코프의 11함대가 전진을 시작하여 제국군에게 공세를 전개하였다. 제국군은 이 전격 돌진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크게 당황하였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다행히 제국군의 포화에 휘말린 베르티니의 공세가 둔화되고 이에 반사이익으로 제국군 전면까지 진출한 코프가 서로 분리되어 연계작전이 물거품이 되어 얻어 터지게 될 상태에 처하였다. 다만 애쉬비가 위기의 타이밍을 포착하고 월리스 워릭의 5함대를 파견하여 구원하게 하면서 다행히 제국군에게 포위당하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애쉬비의 지휘는 대체로 주어진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특이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제국군의 기본 전술을 꿰뚫어보고 더 나아가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하여 제국군의 의도를 좌절시키는 스타일이었다. 12월 5일의 전투에서도 이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지만 사실 이는 전략가적 식견으로 보기는 어려웠는데, 실제 전장 이외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시야가 좁고 처리능력이 부족한 점이 있었다. 다만 이를 커버하는 것이 애쉬비의 만렙 찍은 전술적 능력이었다.
전투가 계속되던 와중인 12월 6일 14시 30분, 최초로 지휘관 전사자가 나왔다. 제국군의 뮈켄베르거 중장이 기함 쿠르마르크 호를 돌출시켰을 때, 코프 중장의 11함대가 해당 함정에 집중 포화를 퍼부어 동강 내버린 것이다.[4] 뮈켄베르거 중장의 전사는 함대 지휘체계의 붕괴로 이어졌고 코프는 그 사이 병력을 이동하여 아군과의 연계작전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동맹군은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하여 월리스 워릭 중장의 5함대가 제국군의 왼쪽 전방에 진출하여 분열시키려 하였다. 다만 슈타이어마르크가 이를 간파하고 행동에 나서면서 오히려 동맹군이 측방 공격을 받는 상황으로 반전되었다.
이 무렵 슈타이어마르크는 전황 전체를 분석하여 동맹군 전선이 특이하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당시 제국군은 동맹군을 양분한 다음 배후를 차단하고 섬멸하려는 작전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는데, 동맹군이 이를 간파하고 부대 재배치 및 이동을 통해 주력부대를 모아 전력을 굳히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 즉시 사령부에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정보가 누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락선을 이용하여 전달하려 하였으나 이 셔틀이 격침된 아군 순양함 잔해와 충돌하는 바람에 전달되지 못했다.애니에서는 연락 셔틀이 파괴되었다는 보고에 혀를 찬 슈타이어마르크였는데 참모가 "다른 셔틀을 계속 보낼까요?" 라고 말하자 "아니, 이제 시간도 없다. 이제와서 보내도 작전 변경하자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그저, 치텐 사령관이 이걸 알아차리고 대비하길 바랄 수 밖에."라는 말을 한다.
12월 7일,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부의 내부분열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이전 애쉬비와 크게 한판 벌인 코프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침묵하고 있었고, 애쉬비는 그런 코프를 여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워릭까지 "우리가 무슨 바지사장이냐!"란 식의 발언을 하며 권리 주장을 하고 나섰다. 여기에 애쉬비가 팡 추링에게 앞뒤 설명 다 잘라먹고 8함대 휘하 전력 3,000척을 총사령부 예하로 돌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3,000척을 내주면 8함대 담당 전선이 붕괴된다는 팡과 그 병력이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애쉬비가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입씨름을 벌였고 결국 강압적인 명령으로 애쉬비가 팡을 굴복시켰다.
내부에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어도 동맹군은 일선에선 잘 싸우고 있었다. '행진곡' 재스퍼는 15분간의 접근전을 벌여 제국군의 밀집대형을 나이프로 치즈를 자르듯이[5] 깨끗하게 잘라냈다. 이에 제국군은 돌출하는 동맹군을 좌우협공을 가하여 상황을 모면하려 하였으나 워릭이 병렬전진하여 압박하는 바람에 결국 제국군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전황은 각 지역에서 아군이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상태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재스퍼와 워릭의 연계작전으로 제국군 카이트 중장의 함대가 그야말로 개발살나서 사령관이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 부사령관 파르크비츠 소장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계속된 전투로 지쳐 있고 누적된 피해가 컸던 동맹군 역시 지휘부를 잃고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제국군을 추격하지 못하고 멀뚱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계기로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양쪽 모두 수색과 보급에 전념하였다. 다만 양쪽 모두 필사적으로 적의 위치를 탐색한 것에 비해서는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 무렵 애쉬비는 팡에게 그랬던 것처럼 각 함대에서 차출한 전력으로 혼성부대를 통합 편성한 다음 결전부대를 구성하여 새로운 주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업이 마무리되자 이들을 통솔하여 다시 전장으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보여준 지휘솜씨는 애쉬비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요소이며 동시에 후세의 역사가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애쉬비의 진격과 함께 시작된 전투는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일진일퇴의 양상을 보이며 교착상태에 빠졌다. 결국 인내심이 먼저 바닥난 제국군의 칼텐보른 중장의 함대가 신경질적인 반격을 취하였다. 재스퍼는 이 공격을 받아내면서 행동한계점을 계산하고 있었고 제국군의 진격이 멈추자 바로 반격에 나서서 칼텐보른을 관광태웠다. 소설판에서는 슈타이어마르크가 구원에 나서서 칼텐보른이 그 자리에서 영원히 잠드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애니판에서는 영원히 거기서 잠들게 되었다.
제국군은 40여 개의 소집단으로 나뉘어 유기적인 원호와 반전, 후퇴를 계속하면서 동맹군의 공세를 피하였다. 하지만 공세를 피했다고 생각한 그곳에는 팡 추링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팡이 지휘하는 8함대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제국군은 2,000척 가량을 손실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철수하였다.
16시 40분, 제국군은 간신히 동맹군 5함대와 8함대의 배후로 돌아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한 공격이었고 워릭과 팡은 제국군에게 돌파당하면 동맹군의 전선이 붕괴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여기에 재스퍼까지 가담하여 제국군을 저지하려 하였지만 워낙 제국군의 병력이 강대해 완전히 저지하고 있지 못하였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모든 지휘관들이 애쉬비의 이름을 부르짖을 무렵, 당사자가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혼성부대를 이끌고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결과 제국군은 좌우 협공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였고 재스퍼는 제국군의 중앙을 돌파하여 혼란의 늪 속으로 밀어붙였다.
호전된 전황에 다소 느긋해진 애쉬비는 갑자기 함흥차사가 된 베르티니의 소식을 물어보았는데, 로자스는 소장 중의 최고 선임자인 카퍼필드 제독으로부터 입전된 베르티니의 전사소식을 전달했다. 애쉬비는 "그래. 베르티니 자식이 나보다 한발 먼저 원수 자리에 올랐군."이란 발언과 함께 9함대의 재편을 명령하였다.
뜻하지 않은 1급 지휘관의 손실이 동맹군에 있었지만 제국군은 그보다 더한 손실을 입고 있었다. 애쉬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불과 40분 동안의 교전 동안 제국군은 그야말로 1급 지휘관의 떼죽음을 목격했다. 40분 동안 무려 60명의 장군이 전사하였는데 여기에는 슐리터 대장, 코젤 대장 등 역전의 명장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전황은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이라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악될 수 있다. 제국군은 이 40분간 잃은 손실을 회복하느라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것도 질적 회복이 아니라 겨우겨우 모양새만 갖춘 양적 회복으로.
12월 11일 18시 50분, 브루스 애쉬비의 함정으로 인해 붕괴된 제국군은 필사적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일부 세력이 반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이들 모두 제대로 대항하기도 전에 동맹군의 포화에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슈타이어마르크 중장이 질서를 유지하면서 제국군의 전선이탈을 엄호하고 있었으나 중과부적이었기에 곧 저항을 단념하고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때가 18시 52분이었다.
애쉬비의 기함 하드럭은 이때 3척의 순양함과 6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추격의 선두에 서 있었다. 고립된 제국군의 산발적인 포격이 있었지만 동맹군의 우세인 상황에서 부질없는 저항에 불과하였다. 그렇게 동맹군의 승리가 기정사실화된 순간 어디서 날아온 유탄이 전함 하드럭의 함체를 강타하였다. 이에 갑판이 갈라지고, 함교요원 앳킨스 대위와 스퍼리어 소위가 그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렬한 진동에 몸을 가누지 못한 작전참모 히스 소령이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19시 7분, 애쉬비는 연기 속에 우뚝 서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순간 2차 폭발이 일어났다. 함교에서 애쉬비는 고목처럼 쓰러졌다. 이때 포탄의 파편이 애쉬비의 배를 갈랐다.
이때 누군가가 "흥, 요즘 전투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질이 나빠졌군."이란 낮은 목소리의 발언을 하였는데 그게 애쉬비의 음성이었는지, 작전주임참모 페르난데스 소장의 음성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6] 둘의 목소리가 워낙 비슷한 것이 원인이었는데 그 다음에는 애쉬비가 남긴 말이었다.
이봐, 로자스. 미안하지만 군의관을 좀 불러주게. 이대로 상처를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이 내 시커먼 속을 다 알 거 아냐.
로자스가 군의관을 불렀지만 군의관이 도착한 시점에는 이미 애쉬비가 사망한 직후였다. 사인은 출혈성 쇼크, 사망시각은 12월 11일 19시 9분이었다.
4 결과
동맹군은 대승을 거두었지만 애쉬비의 전사소식에 비탄에 잠겼고 결국 무겁고 괴로운 침묵 속에서 행성 하이네센으로 조용히 철수하였다. 반면 제국군은 대패를 하였지만 애쉬비의 전사소식에 기뻐하였다. 어떤 지휘관은 모든 병사들에게 샴페인 축배를 돌린다고 막대한 빚을 지기도 하였고, 오딘의 이름을 부르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인물들도 있었다. 오직 슈타이어마르크만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조의를 표하였지만 곧 동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출세길이 막혔다. 이후 슈타이어마르크는 계급이 상급대장에 그치면서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제국 원수 진급은 물론 제국군 3장관의 직책도 맡지 못했다.
다만 이기기는 동맹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동맹군은 함대 피해는 적고 총사령관 애쉬비 대장과 함대 사령관 베르티니 중장을 잃었지만 제국군은 함대 대부분이 우주의 먼지로 날아가버렸고 함대 사령관 중 슐리터 대장, 코젤 대장,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중장, 칼텐보른 중장까지 전사만 4명에 카이트 중장은 중상, 게다가 대장 둘에 중장 둘이 전사하면서 휘하 참모진들도 대부분 같이 몰살되었다. 부상당한 카이트 중장은 살았지만 부사령관 및 다른 참모진들도 마찬가지로 싸그리 전사했으니 제국군 지휘부에서 살아남은 것은 총사령관 치텐 원수와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중장뿐이었다.[7]
4.1 동맹군의 여파
애쉬비의 전사와 함께 구심점이 사라진 '730년 마피아'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다만 애쉬비와 베르티니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은 살아남았기에 동맹군에 남아 차례로 최고위직에 오르내리며 명성을 누렸으나 구심점이 사라진 뒤 다시는 뭉치지 못해 '730년 마피아' 시기만큼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대(對)제국 전선에서 여전히 제국군이 먼저 침공하고 동맹군이 이에 반격을 가하는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4.2 제국군의 여파
일명 군무성이 피눈물을 흘린 40분. 이 40분 동안 제국군 장성 60명이 목숨을 잃었다.[8]
게다가 장성만 사망했을리는 없고 대령, 중령, 소령 같은 영관급 참모 및 분함대 지휘관에, 대위, 중위, 소위들까지 모조리 사망했거나 포로로 잡혔음을 감안하면 장성 60명에 영관, 위관급 장교만 적어도 세 자리 수에서 많으면 거의 네 자리수까지 몰살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제국군은 인적자원면에서만 최소 3개 함대, 최대 5개 함대를 빵빵하게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을 단번에 잃어버렸다고 어림짐작된다. 암릿처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이 입은 손실에 버금가는 정도. 작중에서 이런 인적손실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최소 10년이란 묘사가 등장한다. 실제 양적으로 복구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가능하지만 질적인 복구는 최소 10년도 너무 짧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은영전 본편에서 동맹군의 지휘관들도 소수를 제외하면 그 역량이 변변치 못했고, 제국군 지휘관들도 소수를 제외하면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제2차 티아마트 성역 회전의 결과가 꽤 오랜 기간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전투에서 제국군 측이 입은 손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전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제국군은 이제르론 회랑의 동맹 쪽 출구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었고, 동맹군은 제국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역공을 가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는 동맹군에서 전략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뒤집을 만한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국군 측에서는 그때까지의 전투들을 교훈삼아 대(對)동맹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그 수정된 전략의 가시적인 실례가 바로 이제르론 요새의 건설이다. 약화된 제국군은 이제르론 회랑에 요새 행성을 건설함으로써 동맹 측의 제국령 침입 기도를 차단하였다. 제2차 티아마트 성역 회전으로 말미암은 동맹과 제국의 대치는 양 웬리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활약하게 되는 은영전 본편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5 그 외의 이야기
본편에서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다곤 성역 회전처럼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당시 참전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물론 당시의 주요인물들은 대부분 고인이 된 상태였지만 그 당시 10대 후반 ~ 20대 초반이었던 말단에 불과한 인물들이 다수 생존해 있다. 외전 5권 <나선미궁>의 등장인물로 한정 지을 경우 주요인물로는 그 때까지 생존해 있었던 '730년 마피아'의 마지막 생존자 알프레드 로자스 장군이 있었으며,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소장이었던 버나비 코스테아 대령과 수용소 근무 당시 양의 당번병으로 배속되었던 창 타오 일병이 있다. 더불어 제국군 참전자이면서 동시에 동맹군의 포로로 잡혀서 그때까지 송환을 거부하고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던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 대령도 있었다.
본편까지 확대하면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가 당시 중사 계급을 달고 참전한 인물이다. 그는 월리스 워릭 중장의 제5함대 소속 전함 샤 압바스의 B04 포탑에서 포술담당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그가 남긴 체험기는 동맹군 공식 전쟁사에 수록되었다. 우주력 799년 12월에 전사하게 되는 뷰코크 제독은 이 전투에 참여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인물로 짐작된다.
- ↑ 킹스턴 중장은 동맹 편제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아마 후방 근거지에서 보급을 담당하거나 하이네센에 남아있었다고 추측된다.
- ↑ 4,5,8,9,11 함대가 참여하지만 애쉬비와 로자스가 지휘하는 함대가 하나 더 있다.
- ↑ 휘하 지휘관들도 중장급의 함대 지휘관들. 더구나 모두 지금까지 애쉬비의 지휘 아래 자신들의 함대를 지휘하여 730 마피아의 승리에 큰 공헌을 했던 사람들인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도박과 같은 작전 계획이 내려오더니 잔말말고 따르라는 총사령관의 말에 발끈하지 않을리가 없다.
- ↑ 당시 뮈켄베르거 중장에게는 일곱 살 난 아들인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가 있었는데, 훗날 이 아이도 역시 군인이 되어 제국군 원수가 된다. 그가 군인이 된 것은 집안내력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전사가 그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다.
- ↑ 실제 동맹군 전사에 기록된 문구.
- ↑ 이 발언을 들은 사람은 히스 소령이다.
- ↑ 이들이 살아서 받은 수모를 생각하면 차라리 전장에서 같이 전사한게 더 좋았을 수 있다. 슈타이어마르크 제독은 동맹군에게 발송한 조의때문에 평생 도외시 당하다 최고위직에 오르지 못하고 퇴역해야만 했고 치텐 원수는 이후 언급이 없지만 이런 엄청난 참패를 당했으니 누군가 당연히 책임을 질 것이고 휘하 지휘관들이 쓸려나갔는데 총사령관 혼자 살아남았다는 점을 볼 때...
- ↑ 작중 묘사에서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 함대가 함대가 중장 1명, 소장 4명, 준장 17명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계산해보면 최소 함대 3개를 구성할 장관급 지휘관이 사라졌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