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의 역대 황제 | |||||
초대 세조 무황제 사마염 | ← | 2대 혜황제 사마충 | → | 비정통 조왕 사마륜 | |
비정통 조왕 사마륜 | ← | (복위) 2대 혜황제 사마충 | → | 3대 회황제 사마치 |
시호 | 효혜황제(孝惠皇帝) |
연호 | 영희(永熙, 290년 4월 ~ 290년 12월) 영평(永平, 291년 1월 ~ 291년 3월) 원강(元康, 291년 3월 ~ 299년) 영강(永康, 300년 ~ 301년 1월) 영령(永寧, 301년 4월 ~ 302년 11월) 태안(太安, 302년 12월 ~ 303년) 영안(永安, 304년 1월 ~ 304년 7월) 건무(建武, 304년 7월 ~ 304년 11월) 영흥(永興, 304년 12월 ~ 306년 6월) 광희(光熙, 306년 6월 ~ 306년 12월) |
성 | 사마(司馬) |
휘 | 충(衷) |
자 | 정도(正度) |
생몰기간 | 259년 2월 13일 ~ 307년 1월 8일 |
재위기간 | 290년 5월 16일 ~ 301년 1월 9일(1차 재위기간) 301년 1월 10일 ~ 301년 3월 6일(태상황)[1] 301년 3월 6일 ~ 307년 1월 8일(2차 재위기간) |
곡식이 없으면 어째서 고기죽을 먹지 않는 것이냐. - 사마충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을 때 사마충이 한 말. 마리 앙투아네트 일은 거짓이지만 이건 사실이다.
1 개요
晉惠帝 司馬衷
(서기 259년 ~ 307년)
예로부터 명문가였던 사마씨에서 드문 바보.
중국 서진의 2대 황제. 시호는 혜제(惠帝). 자는 정도(正度).
사마궤가 요절[2]했기에 사실상 장남으로 265년 1월 18일에 황태자가 되었다. 무원황후의 소생으로 사마염이 죽자 290년에 황제로 즉위한다.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로,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을 군주로 추정된다. 기록 상으로 확인되는 행적을 보았을 때 지적장애 3급 혹은 경계성 지능의 행동과 유사하다. 물론 소수의 사료를 통해 판단하는 것은 우수한 정신과 전문의에게도 어려운 일이기에 사마충이 정말로 지성에 문제가 있었던 인물이라고 확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워낙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행동들을 저지른 탓에 학자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가능성이 꽤 있음을 인정받는 주장으로 이는 중국의 역사만화인 만리 중국사 원제 '漫画中国历史(만화중국역사)'에 반영되어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사마의는 한 시대를 휘어잡은 인물이었으며 증조할머니 장춘화 역시 재녀로 이름난 인물이었다. 사마의의 두 아들인 사마사와 사마소, 혜제의 할머니인 왕원희, 그리고 사마소의 두 아들인 사마염과 사마유에 이르기까지 선대 인물들의 수준 차이가 있지만 최소한의 기본적인 지성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이 없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혜제의 존재는 대단히 이질적이다. 아들인 사마휼이 당대에서도 그 재능을 인정받은 것을 감안하면 혜제의 어리석음은 더욱 특이하다. 실제로 혜제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것이 사실이더라도 지적 장애의 이유가 사마가의 유전자[3]]나 혹은 탄생 과정과 같이 선천적 문제였는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후유증 등 후천적인 문제인지 알 길이 없다.
2 백치 황제
백치였으며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린다는 말을 듣자 "곡식이 없으면 어째서 고기죽을 먹지 않는 것이냐(何不食肉糜)?"라고 했다는 병맛이 넘쳐흐르는 일화가 진서 혜제기와 자치통감에 전해온다.[4] 또 밤에 공부하는데 개구리가 울자 저 개구리들이 공적으로 울까? 사적으로 울까?라고 생각하는 등 엉뚱한 쪽으로 생각을 했다.[5] 이에 옆에 있는 사람이 "사유지의 개구리는 사적으로 울고 공유지의 개구리는 공적으로 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문현답 천재?
이후 가충의 딸인 혜문황후 가씨, 즉 가남풍을 황후로 맞이했다. 외척의 득세와 팔왕의 난까지 겹치며 서진은 멸망을 향한 막장일로를 달리게 된다.
다만 어리석긴 하지만 마음 씀씀이가 나쁜 인간은 아니었던 모양으로, 혜강의 아들 혜소[6]가 난리 통에 사마충을 몸으로 지키다가 죽으면서 그 피가 용포에 묻었는데, 나중에 하인이 피를 닦으려 하자 충신의 피라며 닦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오기는 한다. 사마충이 남긴 것 중에 유일하게 훈훈한 일화다. 에이, 꿀물 황제도 훈훈한 일화 하나 쯤은 있는데 뭘
사마염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 어리석은 아들을 태자에서 폐위시키려고 했다. 노신 위관의 제안에 따라 시험 문제를 줬는데 이를 못된 며느리 가남풍이 조작했고 합격점을 받았다. 게다가 조작방법도 학자들을 매수해서 쓰게 했는데 너무 잘 쓰면 의심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잘 쓰지도, 못 쓰는 것도 아닌 평범한 솜씨로 답을 쓰게 했다. 여기서도 사마충의 재능(?)은 빛이 나는데... 사마충이 여왕님의 명령에 따라 쓰긴 썼는데 자기가 쓰고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고 '잘 썼지?'라는 식으로만 말했다고 전한다.
물론 사마염이 이걸 믿진 않았겠지만 지금 와서 태자를 다시 세우기도 그런데다 주변에 노신들과 황족들 도움을 받아 통치하게 하는 방법도 있고, 무엇보다 손자 사마휼이 총명했기에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어 그냥 태자 자리에 두고 말았다.
3 팔왕의 난 - 안습 황제
그런데 정작 황후 가씨(가남풍)의 전횡으로 그의 외아들이었던 첩 사씨의 소생인 태자 사마휼이 죽었고, 301년 사마의의 9남이자 사마염의 숙부인 조왕 사마륜이 찬탈했을 때는 사마휼의 아들이자 손자였던 사마장이 살해당했으며, 그 동생 사마상은 요절해서 사마충의 대는 확실히 끊겼다(...).[7]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는 사마륜이 방계 황족이라 정통성이 있었던 사마장을 죽인 것인데, 당연히 만천하에 찬탈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그 행동이 사마륜의 생명을 보전해주지 못해서 성도왕 사마영, 장사왕 사마예 등 다른 사마 씨들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후 사마충은 다시 복위되었다.
그가 황제로써 유일하게 자기 뜻대로 명령을 내린 것이 이 직후. 301년 5월에 의양왕 사마위[8]를 주살하게 한 일로 제왕 사마경, 장사왕 사마예,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 등이 사마륜을 몰아내자 사마충이 복위하면서 사마위를 가리켜 "이 사람이 나에게 퇴위하도록 하고 옥새를 탈취했다"라고 말해 죽게 한 것이다. 사마륜이 죽은 지 3개월 만이었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향이 있어서[9]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여하간 황제 본인 사마충도 팔왕의 난 때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황제에서 밀려나기도 하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였는데, 절정은 업성에 사마영에게 끌려갔을 때. 사마영이 다른 왕과 싸우면서 사마충은 풀숲에 숨어 있었다. 사마충은 이때 습격을 받아 옥새를 잃어버리고 얼굴에 화살을 몇 방 맞고 포로가 되기도 했다.
결국 팔왕의 난은 동해왕 사마월이 집권하면서 종식됐다. 그러나 사마월이 올린 떡을 먹고 앓다가 307년 급사하고 태양릉에 안장되었다. 사실 떡을 먹고 앓다가 죽은 대목에서 동해왕 사마월의 독살을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사마충은 이용 가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굳이 죽일 이유가 없었으므로[10] 근거가 없다는 평가가 현재로서는 지배적.[11] 향년 49세로 그의 뒤는 그의 이복동생이자 황태제였던 사마치가 이었다.
4 안습한 사후 후일담
그의 두 번째 황후였던 혜헌황후 양씨(양헌용)는 영가의 난때 흉노족 유총의 친척 유요의 부인이 되었으며 훗날 사마충을 깠다. 하루는 유요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유요 : 나와 사마씨 녀석들 중 누가 낫소? 양씨 : 사마충 그 자는 암군으로 전란 속에서 자신의 처자를 지키지도 못했고 (중략) 이제서야 당신 같은 진짜 남자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
사마충이 바보라는 건 유요도 알고 있었을 테니 아마 이 말을 듣고 비웃기보다는 동정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마충은 삼국지의 원희처럼 아내를 NTR당한 것이다.[12] 안습.
5 가족 관계
- 혜문황후 가씨(가남풍)
- 혜헌황후 양씨(양헌용)
- 사부인(사구) : 사마충의 외아들 사마휼을 낳았으나, 299년 가남풍에게 살해된다.
- 장남(외아들) 민회태자 사마휼(愍懷太子 司馬遹)
- 서의 : 가남풍의 유모
- 자녀 없음
- 궁인 송씨(송단)
- 자녀 없음
6 미디어 믹스
고우영의 십팔사략 만화에서도 바보 황제로서 허수아비로 묘사했다.
만약 이 인간이 삼국지 시리즈에 등장했더라면 십하일인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삼국전투기에서도 등장하는데, 아내가 가남풍이라서 충격을 받아 바보가 되는 것처럼 묘사된다. 캐릭터는 얼렁뚱땅 반쪽이네의 반쪽이(바카본).- ↑ 말이 좋아 태상황이지 사실상 금용성에 유폐된 상태였다.
- ↑ 아기일 때 죽어서 권력 다툼이고 뭐고 없었다.
- ↑ 혜제 이후 약 140여 년 뒤에 중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상태의 황제인 사마덕종이 등장한다. 그나마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영유할 수 있었던 혜제에 비한다면 사마덕종은 누군가의 수발없이는 아예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 ↑ 링크에서도 보이듯 마리 앙투아네트의 병맛 일화와 비교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저 일화는 루머다. 그런데 사마충의 경우 실화라는 게 충격과 공포.
- ↑ 조조나 유비나 손권이 이랬다면 그냥
신하들의 충성심과 지혜를 테스트 하기 위한 무지 복잡하고 심오한 심리전농담 따먹기로 받아들여졌겠지만 얘는 바보란 것을 명심해두자. - ↑ 고사성어 군계일학(群鷄一鶴)에 나오는 인물이기도 하다.
- ↑ 사실 이 직전에 회남왕 사마윤이 막으려고 했는데 사마치는 이때 아무 짓도 못하다가 조서 위서나 당해서 그만(...).
- ↑ 먼 친척뻘. 팔왕의 난을 시작한 사마충의 동생 초왕 사마위(사마충과 8살 터울)와는 동명이인.
- ↑ 물론 100%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 ↑ 숙청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에도 지적장애인은 제외하는 게 원칙이었다. 살인중독자가 아닌 이상에야 굳이 죽일 이유가 없어서다.
- ↑ 실제로 권신 사마월은 정적 사마영과 사마옹의 가족까지 몰살하는 등 정적이나 위험인물들에게 잔인하기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황제 사마치에게도 미움을 받았고 끝내 그로 인해 분사했다. 그러나 그래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옹호론도 있다.
- ↑ 원희도 자신의 아내 진씨(문소황후)를 조비에게 뺏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