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6세

통일 스페인의 역대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펠리페 6세(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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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을 입은 펠리페 6세의 공식 초상화.[1][2]
왕호스페인의 왕 펠리페 6세 (Felipe VI Rey de España)
생년월일1968년 1월 30일 ~ (48세)
출생지스페인 마드리드
재위기간2014년 6월 19일 ~
대관식미정

1 개요

현재 스페인국왕. 왕위를 계승하고 싶은 어떤 섬나라 왕세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인물.

본명은 펠리페 후안 파블로 알폰소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이 그레시아(Felipe Juan Pablo Alfonso de Todos los Santos de Borbón y Grecia)이다. 공식 칭호는 에스파냐의 왕(Rey de España), 카스티야·레온·아라곤·양 시칠리아·예루살렘·나바르·그라나다·톨레도·발렌시아·갈리시아·마요르카·세비야·사르데냐·코르도바·코르시카·무르시아·하엔·알가르브·알헤시라스·지브롤터·카나리아 제도·동인도 및 서인도 제도 그리고 대양의 섬들과 대지의 왕(Rey de Castilla, de León, de Aragón, de las Dos Sicilias, de Jerusalén, de Navarra, de Granada, de Toledo, de Valencia, de Galicia, de Mallorca, de Sevilla, de Cerdeña, de Córdoba, de Córcega, de Murcia, de Jaén, de los Algarves, de Algeciras, de Gibraltar, de las Islas Canarias, de las Indias Orientales y Occidentales, y de las Islas y Tierra Firme del Mar Océano), 오스트리아의 대공(Archiduque de Austria), 부르군트와 브라반트·밀라노·아테네 및 네오파트라의 공작(Duque de Borgoña y de Brabante, de Milán, de Atenas y de Neopatria), 오리스타노의 후작(Marqués de Oristano), 합스부르크·플랑드르·티롤·바르셀로나·루시용·세르다냐 및 고샤노의 백작(Conde de Habsburgo, de Flandes, del Tirol, de Barcelona, del Rosellón, de la Cerdaña y del Gocíano), 비스케이와 몰리나의 영주(Señor de Vizcaya y de Molina)이다. 뭐 이리 길어?[3]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육군, 해군, 공군 사관학교에서 3년 동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모국어스페인어 외에 카탈루냐어[4], 프랑스어, 영어에 능숙하며[5] 그리스어도 좀 할 줄 안다.[6]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건강 악화 및 사치스런 행동에 대한 국민의 비난에 책임을 지고 2014년 6월 18일 퇴위하여, 6월 19일 0시를 기해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제 위기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 축구 대표팀의 조별라운드 탈락 등[7]국가적 악재 때문에, 화려한 축하 행사는 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대관식 등 전통적인 가톨릭 예식도 배제했다 그리고 같은 날, 왕위 승계와 왕정 유지에 반대하는 공화파 시위가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인 솔 관문 광장을 비롯한 스페인 전국에서 터졌고, 이 과정에서 3명이 연행되면서 어쨌든 결과만 보면 즉위 첫날부터 반대파 정치범에 탄압을 가한 왕이 되어 버렸다(…)[8]

단 그럼에도 펠리페를 향한 기대감은 꽤 큰 편이었기에 한 조사에서 국민들로부터 66%의 지지를 얻었다. 추문으로 왕실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입헌군주제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는 와중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지지다. 기본적으로 낡은 왕실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펠리페 자체가 가진 소탈하고 수더분한 매력이 많은 호감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즉위 직후 첫 공식 해외 방문지는 바티칸으로 결정되었으며, 6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다. 이어 다음 달 7일에는 모로코를, 14일에는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등 주변국을 잇달아 찾았다.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스페인의 2015∼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에도 힘을 보탰다.[9]

2 사생활

펠리페는 진작부터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성 중 한 사람이었다. 198㎝의 큰 키에 신뢰감을 풍기는 외모. 스포츠로 다져진 몸매, 거기에 더해지는 대국 ‘스페인의 왕태자’란 타이틀은 그를 스무살 무렵부터 인기남에 꼽히게 했다.

그렇다보니 연애 과정도 늘상 화제였다. 그는 그간 스페인 귀족 출신의 이사벨 사르토리우스(Isabel Sartorius), 미국 조지타운대 유학 시절 만난 여대생 지젤 하워드(Giselle Howard), 노르웨이의 속옷 모델 에바 새넘(Eva Sannum) 등과 차례로 교제했다. 하지만 국적과 귀천을 가리는 왕실과 보수층의 벽에 막혀 결실을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10]. 현재 아내인 4살 연하의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와는 1년 남짓한 연애 끝에 2004년 5월 22일결혼했다.

레티시아는 원래 스페인 국영방송에서 앵커를 했던 언론인으로 펠리페와 결혼하기 전에 나이 많은 고등학교 철학 교사와 결혼했지만 얼마 못 가 이혼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첫남편과 10대 때부터 사귀며 동거했던게 드러나 더 논란이었다. 지위에 치명적인 이혼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인 시절에 미국인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맺는 등 엄청 염문을 뿌리고 다닌데다 낙태마약 복용 같은 좋지 못한 과거가 있다는 주장이 그녀의 친척에 의해 제기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토록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다 보니 왕실쪽에서 언론들 입막음을 단단히 해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레티시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사실 별로 없다. 더군다나 가톨릭 국가에서 이혼에다가 난잡한 사생활 같은게 기사화되면 그렇잖아도 왕실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더 문제가 될 것이 뻔하므로 입막음을 아주 단단히 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들인데도 언론에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떡밥만 던지는 정도여서 안밝혀진 것이 많다. 사실 지금 여기에 적혀있는 것도 빙산의 일각이다.

해외에서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패셔니스타[11]로 유명하지만, 화려한 과거와 잦은 성형수술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얼굴에 지나친 다이어트 등으로 한 때 스페인내에서의 지지율은 상당히 낮았었다. 그래도 언론인 출신인지라 박식한 지식, 정확한 발음과 뛰어난 언어구사 능력이 있어서 수많은 사람과 기자들이 모인 장소에서도 분위기를 능수능란하게 주도하는 매력이 있다. 또 왕세자빈 시절부터 열심히 적극적으로 공무를 수행했던 점은 인정받았다. 이러한 점은 왕비가 되고 나서도 그대로라 현재는 지지율이 점점 나아지는 중.[12]

2004년에 레티시아가 펠리페와 결혼할 때에는 이 결혼이 이혼을 금하는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이 당연히 제기되었다. 다행히(?)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이 교회법에 따른 혼인성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결혼에서 이혼했더라도 가톨릭 교회가 금하는 이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져 왕태자와 결혼이 가능했으나 이 논리가 상당히 억지스럽다는 비판이 있다. 그럼에도 왜 레티시아와의 결혼을 왕실에서 그렇게 밀었냐면 펠리페가 전여친인 에바 새넘을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열렬히 사랑했지만 속옷 모델이었던 새넘을 어머니 소피아 왕비가 극렬하게 반대한 끝에 결국 억지로 헤어져 혼기가 찼는데도 미혼인 어정쩡한 상태였기 때문이다.[13] 그리고 이때 레티시아와의 관계가 거론되자 그나마 언론인 출신인 레티시아가 낫다고 생각한 왕실에서 이참에 과년한 펠리페를 빨리 결혼시킬려고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한 것.

2003년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약혼 발표 때 결혼 이후의 생활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레티시아가 "국영방송 일을 갑자기 그만 두지는 않겠다."고 설명하려던 중에 펠리페가 끼어들려고 하자 그녀가 단호하게 "내가 이야기를 끝내게 기다려요."라고 했고 이장면이 방송을 타며 큰 화제가 되었다. 평민 출신의 여성이 왕태자를 다그치는 모습은 보수적인 장년층 남성들 사이에서는 구설수를 낳았지만, 아내를 위해 차분히 자리를 비켜주는 왕태자의 모습은 오히려 여성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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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와 레티시아는 슬하에 두 을 두고 있다. 장녀는 2005년 10월에 태어난 '레오노르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이며 차녀는 2007년 4월에 태어난 '소피아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이다. 현재 스페인 왕실도 영국 왕실처럼 왕자 우선 왕위승계법을 두고 있지만, 펠리페에게 아들이 없기 때문에 후안 카를로스 1세 재위 시절부터 장녀인 레오노르가 차차기 왕위계승권자였다. 그리고 펠리페가 2014년 6월 19일 펠리페 6세로 즉위함에 따라 레오노르는 아스투리아스 여공 칭호를 받으며 왕태녀가 됐다.

여담이지만 레티시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부모인 후안 카를로스 1세 부부에게 구박받았다는 루머가 있었다. 원래 이혼녀였던 레티시아를 탐탁찮게 여겼거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레티시아가 딸만 낳은 걸로도 열심히 비난했다(…) 아이 성별은 아버지가 결정하는 거 정말 모르나? 역시 여담이지만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펠리페 부부가 아들을 얻기 위해 셋째를 가지려 노력했으나 두 딸들을 모두 제왕절개로 출산한 바 있는 레티시아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해[14] 결국 포기했다는 루머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두 어디까지나 루머일 수밖에 없는 얘기들이다. 사실 이들의 장녀인 레오노르가 태어나던 2005년 10월에도 스페인 국민들은 공주의 탄생 소식에 기뻐하기보다도 왕실에 들어가는 세금이 또 늘어난다는 이유로 염려와 반발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로열 베이비들과 견주어 볼 때 레오노르가 가장 예쁘다는 평을 일반적으로 받았는데도[15] 상당히 험악한 반응이 쏟아진 걸 보면 스페인 왕실 지지도는 전부터 바닥을 치고 있었던 듯.[16] 이런 상황에서 왕세자 부부가 계획하여 셋째를 가진다 해도 아들일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다 또 아이를 낳는 것은 이미 활성화된 왕실 폐지론을 더 격화시키는 무리한 짓일 수밖에 없다. 또 오래 전부터 레오노르가 왕위계승권자로 내정된 상황에서 늦게 아들을 낳으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것이 뻔하다. 어쨌든 2007년 4월에 소피아를 얻은 이후 펠리페 부부는 두 딸들로 만족하고 잘 살아 왔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본인들도 자녀 욕심은 더 없는 듯하다.

3 기타

역대 여느 왕보다 수더분하고 진솔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아이들이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아내와 어머니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린 두 딸과 스스럼 없이 시간을 많이 보내며, 동물원을 함께 가거나 학교에 직접 데려다 주고 그 과정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한다. 딸들이 지나치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도,[17] 사생활이 없어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한 때는 풍성한 턱수염을 기르다가 깎었다. 수염이 없을 때 한정으로 어머니 소피아 왕비와 붕어빵이다. 특히 나이를 먹을 수록 더더욱 닮아가고 있다.

키 크고 훤칠한 체격의 미중년으로 유명하며 소싯적에도 미청년으로 유명해 높은 인기를 누렸었다. 유럽의 남자 왕족 대부분은 장신인데, 그 중에서도 펠리페는 독보적이다. 프로필상 키는 무려 197cm로 실제로 보면 거의 2m에 가깝다.[18] 단 키에 비해 비율은 그저 그렇다. 어깨가 별로 안 넓어서 대두가 아닌데도 은근히 얼굴이 커 보이며(…) 다리 길이도 평범해서 전신 사진을 보면 길쭉해보인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되게 크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펠리페 뿐만 아니라 왕실 가족 전체가 장신이다. 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어머니 소피아 왕태후도 연령을 고려하면 굉장히 큰 편이며,[19] 누나들인 엘레나 공주(178cm로 추정)와 크리스티나 공주(179cm로 추정)도 매우 장신이다. 덤으로 크리스티나 공주의 남편 이나키는 197cm, 엘레나 공주의 전남편 하이메는 196cm이다. 장승 부족 레티시아 왕비도 스페인 성인 여성치고 꽤 큰 편인 170cm[20]이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장신들 사이에 있다보니 은근히 단신 기믹이 있다(…) 특히 부부가 나란히 있는 사진을 보면 레티시아가 진짜 아담해 보여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레티시아의 키가 160cm~163cm 정도밖에 안되는 줄로 오해하기도.

여담이지만 그의 육촌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프랑스식으로는 루이 알퐁스 드 부르봉)은 명목상의 프랑스 국왕 루이 20세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인 후안 카를로스 1세와는 달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이며 명예 회장이기도 하다. 도시 내 더비 경기가 극성으로 유명한 마드리드에서는 마드리드 더비 하는 날 시내에서는 레꼴레또스 대로라는 같은 큰 도로에 있는 시벨레스 동상[21]과 넵튠 동상[22] 사이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경계로 빈 맥주병들이 서로 날아 다닐 사이 시외에 있는 사르수엘라 궁전[23]속에도 전선이 그인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스페인의 자동차 회사인 세아트에 찾아가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타던 이비자를 리스토어 해달라고 했다. # 세아트 직원들이 리스토어 잘못 하면 코로 파에야를 먹을 기세.

  1. 다른 군복을 입은 모습은 링크를 참조할 것. 육군, 해군, 공군 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모두 있다.
  2. 한편으로 계급장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5성 장군의 계급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스페인의 국왕이니까 5성 장군 계급은 당연히 가지고 있는게 맞다.
  3. 거의 대부분은 아버지가 달고 있었던 것들이다.
  4.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공용어이다.
  5. 펠리페 6세가 고등학교 시절 유학한 캐나다는 프랑스 어와 영어가 공용어이다. 미국 생활까지 했으니 영어는 어려움 없이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6. 어머니 소피아 왕후그리스 공주출신이다.
  7. 참고로 스페인 축구 대표팀은 1954 스위스 월드컵, 1958 스웨덴 월드컵1970 멕시코 월드컵, 그리고 1974 서독 월드컵의 4개 대회를 예선탈락으로 나가지 못한 것 외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탈락을 한번만 한적이 있다. 그만큼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조별라운드 탈락은 국가적인 충격이었던 셈.
  8. 사실 치안 문제를 비롯한 스페인의 국가 행정의 대부분은 법적으로 행정부의 책임이지 의 책임은 아니다. 엄연히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 군주정이지 왕정은 아니기 때문. 그러나 현 집권당인 인민당을 비롯하여 군대, 경찰, 사법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스페인 보수 우익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부터 각종 혼맥과 인맥으로 결속되어 있는데 이들의 구심점에 스페인 왕실이 있다. 따라서 왕실에게 책임의 화살이 날아가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어찌 보면 법적으로만 따지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다른 나라와 똑같은 입헌군주국인데, 현실적으로는 애초에 법치주의가 워낙 개판이라 국정의 많은 부분이 사적인 이해 관계로 여전히 움직이는 나라에서 그 사적 이해 집단의 중심에 있으니 군림 뿐만 아니라 그 한계와 범위가 불분명 하지만 어느 정도 분명히 통치도 하는 요상한 기관이 현대 스페인 왕실이다.
  9. 스페인은 뉴질랜드하고 터키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10. 예나 지금이나 왕실이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상징성이 짙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지금은 국민들과 친근함을 주는 행동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 대세이어도 왕실의 위엄과 체통은 지켜져야 하는건 어쩔수 없다.
  11. 레티시아 왕후는 현재 유럽의 왕후&왕태자비 증에서 패션 센스가 좋기로 유명하다. 다만 왕세자빈 시절에 TPO를 무시한 패션을 선보일 때가 종종 있어서 이에 비판이 좀 있었다. 현재 이러한 경향은 없어졌다.
  12. 무엇보다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온갖 병크들과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의 횡령 범죄 등의 문제가 오히려 펠리페-레티시아 부부의 지지도를 올려주는데 꽤 큰 공헌을 했다(…)
  13. 일본천황이었던 히로히토 천황의 부인이었던 나가코 황후가 생전에 며느리이며 현 아키히토 천황의 부인으로 대기업 재벌가의 딸인 미치코 황후를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끝내 인정하지 못하고 지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킨 것만 봐도 왕실에서의 혼인, 특히 왕위 계승권자의은 혼인은 중요한 일임을 다. 앞의 각주에서도 설명한 것이지만 국가적 상징성을 갖고 있는것과 왕가의 혈통과 체통 때문에라도 적당하지 않은 여성을 왕자의 배우자로 들일 수는 없다.
  14. 그도 그럴듯이 또래의 다른 유럽 왕후들 혹은 왕세자비들에 비하면 레티시아가 지나치게 말랐다. 특히 풍채 좋은 네덜란드막시마 왕후노르웨이의 메테-마리트 왕태자비와 같이 있을 때 마른 체형이 특히 더 두드러지곤 했다. 역시 마른 편인 덴마크의 메리 왕태자비나 영국캐서린 왕태손비도 레티시아 옆에 서면 상대적으로 근육이 돋보이는 건강한 몸매로 보이는 효과가 일어난다(…) 어느 정도냐면 팔뚝과 종아리가 너무 가늘어서 거의 뼈밖에 없는 수준이라 민소매 드레스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보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건강 이상설이 종종 제기되어 왔지만, 일각에서는 레티시아가 과도하게 마른 몸매에 집착해 지나치게 다이어트를 한 결과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만만찮게 나오고 있다.
  15. 그러나 성장하면서 친할아버지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판박이가 되어 가고 있다는(역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16. 사실 왕실 지지도는 낮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스페인은 원래 왕국이었다가, 1931년 정재계, 군관민, 카스티야, 카탈루냐, 바스크가 합심하여 왕실을 몰아내서 공화국이 된 국가다. 그 후에 일어난 왕실 복고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자의적으로 내린 결단일 뿐 국민의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 때까지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받은 존경과 경의는 국왕 개인이 과도기의 지도자로서 직접 얻어낸 것이지, 영국이나 북유럽처럼 왕실의 역사적 전통에 기반하여 자연스레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후안 카를로스 개인에게 스페인 사람들이 바친 충성심을 스페인 내부에서는 Juancarlismo(후안카를리스모)라고 부르며, 일반적인 의미에서 근왕주의와 다른 개념으로 취급한다.
  17. 실제로 펠리페는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참석했지만 정작 그는 가지 못했는데, 생일을 맞은 친구의 부모가 왕실에 어떻게 초대장을 보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 그냥 친구가 학교에서 직접 애들한테 초대장을 돌렸으면 되지 않았을까 그 때의 경험 이후 자신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꺼린다고. 그래서 유럽의 명문대학이 아니라 미국의 학교로 유학을 떠난 것도 펠리페가 왕실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18. 실제로 192cm의 키의 어떤 남성이 마드리드의 한 극장에서 펠리페를 포함한 스페인 왕실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192cm인 자기보다 펠리페가 5~6cm는 더 커보인다고.#
  19.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나 후안 카를로스는 185~188cm, 소피아 왕비는 못해도 최소 173~176cm로 추정되고 있다(사진을 보면 소피아가 레티시아보다 약간 더 크다.)
  20. 라틴계 백인들은 평균적으로 키가 작아 동북아시아 황인들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스페인 성인 여성 평균 키는 164cm 정도이고, 레티시아 왕비는 170cm이기 때문에 평균보다 훨씬 큰 거 맞다. 또한 힐을 자주 신고 다니기때문에 단독 사진으로 보면 비율이 좋고 힐로 인해 실제 키보다도 훨씬 커보인다. 2m에 가까운 남편때문에 힐을 신고도 단신 취급...
  21.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
  22. 아틀레티코의 상징
  23. 현 스페인 왕실의 일상 거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