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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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국회의장
19대 정의화20대 정세균현직
이름丁世均(정세균)
출생일1950년 11월 5일
출생지전라북도 진안군
본관압해 정씨
최종 학력고려대학교 법학과 학사
소속 정당무소속[1]
지역구서울 종로
의원 선수6
의원 대수15, 16, 17, 18, 19, 20
종교개신교
가족 관계4남 3녀 중 셋째
배우자최혜경
현직국회의장
제20대 국회의원
약력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
열린우리당 의장
산업자원부 장관
민주당 대표
국회의장
별명균블리, 세균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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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4일 선거 유세용 차량인 '소독차'를 타고 당선 사례를 하는 중[2] 좌우 인물들의 표정이 자세히 보면 좌우대칭이다.

트리비아 항목에 언급된 세균맨 인형을 가져다 함께 찍은 사진. 참고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의장실 책상 위에 있다!![3]

1 개요

좋은 세균 정세균.

한국정치인. 1950년 11월 5일 전라북도 진안 출생. 더불어민주당의 중진. 대표적인 관리형(?) 정치인이자 야권 위기상황의 구원투수.

지금까지의 활동을 보면 뚜렷한 개성, 카리스마 등과 같은 화려한 정치적 매력을 갖춘 '스타' 정치인은 아니지만, 조용하게 강력한 정치인임을 알 수 있다. 정치인생 도중 비리에 연루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개인 사생활이나 정치활동 상의 구설수가 단 한번도 없었다. 너무 조용하게 강해서 스타성이 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문자 그대로 신사적인 국회의원에게 시상하는 백봉신사상을 수상했을 정도이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진정한 신사라 불리울 정도니 말 다했다.

내리 4선을 한 전라북도의 무주군-진안군-장수군-임실군 지역구를 떠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출마하여 당선되고, 재선까지 성공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20대 총선에서 만난 상대는 오세훈.[4][5] 현재까지 총 6선을 했다.

개인적인 성품은 적을 만들지 않는, 매우 온화한 성품이라고 한다. 별명이 부처 또는 보살이라고도. 실제로 정세균 의원을 공개적으로 싫어하거나 비난하는 동료 정치인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6]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강단과 엄격함 또한 갖추고 있다는 평이 자자하다. 그 때문에 당 내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의장 후보에 올랐으며, 본회의에서도 역시 압도적인 찬성율로 대한민국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오른다.

1년에 한번 기자들의 투표로 당마다 1명씩 가장 신사적인 의원에게 수여되는 백봉신사상을 7번이나 탔다고 한다.[7]

2 생애

전라북도 진안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엔 전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자 결심하고 전주신흥고등학교로 전학하였다. 이때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일반고 교장에게 대학가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날 장학생으로 입학시켜달라는 배포 큰 편지를 보낸 것.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라(...) 교장이 장학생 대신 매점 일을 맡겼고, 그 알바로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야기가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흠좀무 그리고 고려대 재학 당시엔 고대신문 기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고, 유신 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주재원으로 일했다. 상무이사로 승진해서 수출 업무를 맡았다. 그동안 미국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따 실물과 이론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의 제안을 받고 정치에 입문했다. 1996년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18대 국회까지 그 지역구에서만 내리 4선을 역임하면서 2006년에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쉽게 당선될 수 있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불출마한 뒤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를 제치고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권주자 오세훈 후보를 제치고 종로구에서 재선하였다. 그동안 정세균 의원의 정치적 역량에 의문을 품었던 사람들도 거물급 정치인을 두번이나 압살하는 것을 보고 의심을 모두 버렸다고.

더불어민주당의 원내1당 등극과, 여야 두루 적을 만들지 않는 스타일 덕에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여유롭게 선출되었다. 당시 당내 경쟁상대는 문희상 의원이었다.

3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정치권 입문 후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을 지냈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당의장, 당대표 등을 역임했다. 대기업 근무 경험 및 해외 체류 경험이 어우러져 실물경제에 밝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에 유능한 경제대통령 및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대선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SNL 코리아에 출연하기도 했다. 다만 임팩트는 크지 않았다. 그가 출연한 부분 여기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세균'이란 이름은 '세상을 균형있게 만들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청년실업에 관한 대안을 정책으로서 개발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하며, 실물경제에 밝다는 장점을 십분 이용하여 가계부채를 완화하고자 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중이다. 정세균, 청년세(稅)법 발의…'과표 1억초과 기업에 1% 법인세' 이밖에도 나름대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발쓴 정세균.

3.1 열린우리당 시절

열린우리당에서 정책위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며 주로 경제분야에서 정책역량을 과시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1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당시 사학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 실패로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추스르면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던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는 역할을 맡아 수행하였다.

2005년 3월에는 한나라당의 반대를 뚫고 행정복합도시특별법, 과거사진상규명법을 통과시켰다. 2005년 10.26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한 이후 3개월 동안에는 임시 당의장을 겸임하며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수출 3천억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이 위기에 처하자 각 계파의 합의에 의해 당 의장에 추대되었다. 그 후 6개월 동안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결국 당은 깨진다.

3.2 통합민주당~민주당 시절

2008년 7월 6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대철, 추미애 등과의 경선에서 승리하여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18대 국회가 민주당 최악의 참패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대표를 맡아 원내대표였던 원혜영 의원과 당을 수습했다는 점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시절 첫 선거인 2009년 10.29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수원시 장안구, 안산시 상록을, 충북 증평군에서 승리하며 3:2로 한나라당에 승리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결과를 MB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논평을 냈으며, 한나라당은 패배를 인정한다면서도 참패는 아니라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논평을 냈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 추모바람과 진보야당들과의 선거연대, 의무급식 등 복지공약을 적절히 조합하며 큰 승리를 거두었다. 친노 성향 후보가 출마한 인천, 강원, 충남을 모두 가져왔고, 특히 충북을 가져오며 민심의 바로미터인 충청도의 과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밖에 당선은 되지 못했지만 부산의 김정길 후보가 45%의 득표율을 올리는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8]서울의 경우 시장 자리는 오세훈 후보에게 근소한 차(0.6%)로 패배했지만 의회 의석의 상당수를 점유하였다. 이걸 보고 몇몇 기자들은 그때까지 이른바 관리형 정치인으로 불리우던 정세균을 가리켜 '구원투수'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2010년 7.28 재보선에서는 민주당이 참패한다. 당시 야권은 재보선 대상의석 8석 중 총 6석(민주당 5석+창조한국당 1석)을 점하고 있었으나, 선거 결과 민주당은 단 3석만을 건진 것이 전부였다. 또한 그 중 1석은 텃밭인 광주였으며, 그 광주조차 민주노동당 후보가 40%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진보 3당과 야권연대를 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대표의 지역구였던 서울 은평 을에서도 후보를 워낙 약하게 내서(....) 패배한 것도 꽤 컸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입으로 불렸던 이재오 의원을 재기시켰기 때문. 불행 중 다행으로 강원도 선거구 3개 중 2개를 이기며 소위 '이광재 효과'를 이어가긴 했으나, 각각 충북도지사, 인천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한, 심지어 당선되었던 이시종 지사, 송영길 시장의 지역구에서마저 패배하는 등 당시 나름 잘나가던 민주당으로서는 체면을 구긴 선거. 이후 정세균은 전당대회에서 3위로 낙선, 민주당에는 손학규 체제가 출범한다.

3.3 민주통합당 시절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쉽게 당선될 수 있는 자신의 지역구를 마다하고, 격전지이자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종로구는 역대 대통령만 3명이나 배출한 곳으로서 정치적 상징성이 매우 높은 곳이지만,[9] 199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궐선거 승리를 빼고는 1990년대 이후 모두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됐던 지역이라 야당 의원들에게는 험지(險地)에 속하는 곳이었다. 더욱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민주당에서 손학규 대표가 출마했다가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패해 고배를 마셨으니, 손학규도 못 이긴 곳을 정세균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게다가 상대 후보는 6선 경력의 홍사덕으로서, 워낙 지명도가 높은 데다 당시 새누리당의 차기 당대표로 지목될 만큼 주목을 받는 인물이어서 당연히 패배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5천 표 이상의 압승이었다. 득표율은 52.27%. 승리의 원인으로는 종로의 밑바닥을 거의 훑다시피한 선거운동과 특유의 스킨십이 꼽혔다. 관련 동영상 이로써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 안정적으로 둥지를 틀었고, 5선 고지 등정에 성공했으며, `호남 정치인`에서 벗어나 `전국 정치인`의 위상을 갖게 됐다. 물론 거물급 원로 정치인 홍사덕은 이때의 패배로 사실상 정치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지금 잠이 옵니까?[10]

그렇게 종로에서 압승한 기세로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당내 경선에서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러나 전북에서만 1위를 했을 뿐, 전국적으로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상당한 선전이 기대되었으나, 의외로 경선주자 4인 가운데 꼴찌를 마크하고 말았다. 손학규한테 진 것은 그렇다치고 김두관한테도 진 것은 뭘로 설명하지? --..경선 패배의 원인은 역시 대중성의 부족, 그리고 카리스마의 부족 등으로 평가되었다.

3.4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2013년부터는 문재인 의원과 연대하였고, 새정연 비주류 의원들이 문재인 대표를 흔들자, 문 대표를 옹호하기도 하였다.[11] 2015년 2월의 새정연 당직인선에서는 정세균계 의원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정책위원장은 강기정(정세균계)[12], 사무총장은 최재성(정세균계), 전략홍보본부장은 안규백(정세균계)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또한 2015년 8월에는 정세균계의 김성주의원이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이 되었다.

이후 정세균은 "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고, 정세균계의 다른 활동과 함께 활동을 병행하였다. 여담으로 정세균은 청년정책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자신의 아들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 취준생이여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었다. 청년정책 강연 자리와 인터뷰에서도 스스로 밝혔고 정청래 의원의 개인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말했다.기사

그리고 다음 총선에 당선되면 대권을 노려보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3.5 더불어민주당 시절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뀐 후 그의 당내 세력은 허무할 정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관한 공천심사 2, 3차 컷오프에서 오영식, 전병헌, 강기정을 비롯한 정세균계 의원들이 대거 컷오프 당한 것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최재성 의원까지 포함하면 친노 주류에 이어 당내 다수파를 점하던 정세균계가 사실상 몰락해버렸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르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문재인을 위한 견제라는 설이다. 4월 총선 이후 치를 당내 전당대회에서 정세균이 당 대표로 복귀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뿐 아니라, 2017년 대권 경쟁에서 정세균이 문재인에게 치대거나 박원순과 연대하지 않도록 염두에 둔 비대위의 이중포석이라는 의견. 실제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가까운 임종석, 민병덕 등이 공천에서 모두 탈락한 것과 연결해 이 의견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친노계 내에서 문재인과 최고 좌장 자리를 다투던 이해찬을 날려버리고, 범친노 내에서 문재인계와 경쟁하던 정세균계도 좌장 정세균 의원을 제외한 주변 인물을 모두 낙천시킴으로써 소위 '친문체제'를 구축했다는 주장. 관련 기사 참조

또다른 하나는 문재인에 대한 견제라는 설이다. 비대위를 점하고 있던 박영선 의원 등의 비노 세력이 총선 이후의 당권, 대권 경쟁에서 문재인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문재인 본인의 중심 세력이었던 친노계와 그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정청래 의원, 정세균계 의원들을 컷오프해버렸다는 의견. 실제로 당시 공천권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의 전권을 쥐고 있던 김종인 위원장은 '친노계'에 대해 상당히 불쾌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고, 비대위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대립하였던 위원들은 단수공천을 받았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문재인에 대한 확고한 지지인이 사실상 없어진 상태라 사실상 박영선, 이종걸 의원 같은 비노계가 새로운 결집카드인 김종인 위원장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문재인의 수족을 잘라낸 것이라는 주장.

정세균은 현재 지역구인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다시 공천을 받았고,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대결하게 됐다.

3월 21일의 여론조사에서 ‘오세훈45.1% : 정세균32.6%’로 크게 밀리는 등 당선이 어렵겠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련 기사 참조 3월 23일에는 '오세훈 45.8% : 정세균 28.5%'로 차이가 더 벌어져, 이미 대세는 굳어졌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관련 기사 참조

당연히 이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치인 특유의 흔한 허풍이라면서 코웃음을 쳤다.

선거전에 돌입한 후에는, 오세훈의 플래카드 바로 아래에 걸어놓은 플래카드에서 깨알 같은 디스로 유권자들의 웃음을 자아내었다. 본 사진의 소재지는 혜화동로터리 우리은행 앞이다.

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4/14597635040db8782e85d24dc9b2eaf23331d5464bmn377583w800h450f74997__Ym201604.jpg?width=600
거창한 문구는 아니지만, 오세훈의 아픈 과거를 찌르는, 인상적인 슬로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외에도, 흥부자 유세단을 조직하여 유쾌한 춤판을 벌이는 등 관련 동영상 참조 센스만점의 선거운동을 전개하여, 대어를 낚을 조짐이 보였다.

그 후 4월 7일 발표된 (4월 3~5일 기준) KBS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와의 격차가 불과 1%도 안되는 초박빙의 접전으로 나타났다. 불과 2주일 전, 같은 조사기관에서 집계한 여론조사에서 17% 이상 밀렸던 것을 생각하면, 격차가 급속히 좁혀진 것이다.

그리고 4월 13일 총선당일, 최종적으로 52.6%의 지지를 받아 39.7%에 그친 오세훈 후보를 꺾고 6선(종로구에서는 재선)에 성공했다. 위에서 언급해왔던 지지격차를 생각해본다면 대단한 일이다.

사실, 선거기간 당시 두 후보의 유세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충분히 납득이 될 수 있는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세균은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밑바닥 정서를 폭넓게 파고들었던 반면, 오세훈은 번화가 거리 사거리쪽에 앰프 트럭 크게 쩌렁쩌렁 틀고 유세한 게 전부였다.#. 한편으로 오세훈은 새누리당의 서울시 선거위원장을 맡으면서 인근 동대문구를 비롯한 다른 선거구로도 유세를 나갔는데, 그만큼 종로 내에서의 활동은 뜸했던 게 사실이었다.예시 이를 두고 종로구민들은 "벌써부터 대권 행보냐"며 부정적 시선을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정세균은 "오세훈은 강남 스타일을 하지만, 종로 스타일은 따로 있다."라고 한 마디 했는데,[13] 이 말이 종로구 유권자들에게는 상당히 먹힐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오세훈이 아무래도 예전에 그렇게까지 큰 사안이 아닌 무상급식 건으로 서울시장직을 사퇴하면서 버린 적[14]이 있다보니 신뢰를 그리 많이 못 받기도 했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투표로 선출된 자리를 중간에 박차고 나가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일례로 김두관 전직 경남도지사도 대선 경선에 나서기 위해서 도지사 직을 그만두고 나갔다가 아예 대선 후보군에서 날라가 버린 전례가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시장직을 중간에 그만둬버린데다가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에 집중하지 않고 마치 대선후보라도 된 것 마냥 거만하게 다른 지역 후보들 지원유세를 다니는 행태가 종로 유권자들의 시선이 고깝게 보여서 도저히 좋을 수가 없었다.

종로 선거구 내의 동 별 지지도를 보더라도, 정세균이 오세훈을 얼마나 확실하게 압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은 곳은 평창동과 사직동 뿐이었다. 반면 정세균 후보는 본래 지지율이 높은 지역인 이화동, 창신동[15], 혜화동[16] 등을 모두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접전지로 구분되었던 무악동, 가회동에서도 우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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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만끽하는 정세균과 부인 최혜경 씨.

3.6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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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 : 정 의장, 나 조금만 더 하면 안될까? 정세균 : 자, 이제 나오시고 다음에 만나죠[17]

제20대 국회에서 더민주가 원내 제1당으로서 국회의장을 맡는 것이 확정되면서, 6월 9일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사진에서 정세균에게 의장석을 넘겨주는 인물은 20대 국회 최다선(8선)이면서 표결 당시 임시 의장을 맡았던 새누리당의 서청원 의원이다.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이겼다면 의장이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라서 묘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당시 의장 선출 표결에서는 박영선 의원이 더민주 소속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사실상의)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세균의 최종 단독 후보 찬/반 투표였다. 20대 국회의원이 287명 중 273표가 찬성표가 나왔는데, 이는 새누리당이나 국민의당 의원들도 대부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찬성표를 던졌다는 말인데, 박영선 사실상의 반대표를 행사 했다는 말이다. 참고로 이를 목격한 것은 한겨례 이세영 기자라고 한다. 박영선은 투표를 하자마자 혼자 차 타고 떠났다고...[* 2016.06.10. [언니가 보고 있다] 22회 새누리의 파안대소, 더민주의 쓴웃음 00:37:15쯤에 나온다. 관련 팟캐스트

사실 종로에서 기록한 압도적 승리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해볼만도 하였으나, "대권 도전과 국회의장직중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뒤 결국 대권은 접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국회의장을 지낸 국회의원은 차기 총선에 불출마하고 정계를 은퇴하는 관례로 미루어볼때 매우 명예로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평.[18]

국회의장이 되자마자 의장 직권으로 국회운영위원회를 야당 의원 60% 상임위로 만드는 노련함을 보였다. 참고로 우리 국회에서는 상임위원회 재적 의원의 60% 이상이 찬성할 경우, 특정 안건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게 하는데,[19] 여기서 핵심은 국회 운영위다. 원래는 운영위가 더민주 11명, 국민의당 4명이라 야권 비율이 60%에 미달했으나, 정세균 의장이 운영위에 정의당 노회찬, 야권 성향 무소속 홍의락 의원을 배정해서 야권 비율이 60%를 넘게 하였다. 새누리당도 나름 머리 써서 야당 의원들이 60%를 넘는 상임위를 최소화했는데, 국회의장이 이렇게 비교섭단체 의원을 상임위로 배정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

3.6.1 새누리당과의 반목(反目)

6월 15일에는 국회에서 그간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청소부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한나라당 출신 박희태 국회의장이 처음 공론화한 문제였지만 정작 한나라당 - 새누리당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간 새누리당이 국회 주도권을 장악해 왔기에 이 문제가 지지부진했지만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더불어민주당도 상당한 주도권을 잡게 되자 이 문제가 크게 탄력을 받아 마침내 성사된 것이라고 한다.

9월 1일, 제20대 국회 본의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퇴와 THAAD 국내 도입 논란 등을 언급해 새누리당 의원들의 심한 반발을 사 해당 의원들이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논란이 됐다. 개회사 전문 이 논란이 더욱 불거져서 현재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 앞에서 정세균 의장직 사퇴와 사과, 사회권을 부의장에게 넘기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조응천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국회에서 퇴장할 때 친박계 의원들만 퇴장하고 비박계 의원은 남았다고 한다. #

결국 9월 2일 박주선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기는 것으로 한 발 물러나게 되었다. 5일부터 다시 진행할 예정.

9월 23일에는 야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단독으로라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시키기로 하자, 새누리당박근혜정부는 의원 총회로 고의성 지각을 하고, 국무위원들은 대정부 질의를 할 때 일부러 답변을 길게 하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것도 모자라 국무위원들에게 식사할 시간을 주자고 강하게 요구하는 등#의 시간을 최대한 질질 끌어 본회의를 못 열게 하려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자 정세균 의장은 밤 11시 50분 경 국회법 제77조[20][21]에 따라 국회 일정 차수를 변경해 대정부 질의를 중단시키고 바로 본회의를 개의해 김재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켰다. 물론 새누리당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야당 의원들과 무소속 의원들 170명이 해임 건의안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찬성 160표가 나와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은 가결되었다.

새누리당은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고 9월 25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과 관련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직권 남용으로 형사 고소하기로 했다. #

이에 정 의장 측은 모든 절차가 합법적이었다고 반박했다. #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이정현 새누리당 당대표는 정세균 의원이 국회의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22]

결과적으로 야당 단독으로 최순실 관련 의혹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덕에, 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의 감시를 받는 국가 기관들은 쉴드를 쳐 줄 여당 없이 야당 의원들만 상대하려니 당연히 죽을 맛이다.[23][24]

종편을 비롯한 언론에서는 국정감사 때 떡밥을 던져주는 게 야당 뿐이니 야당이 제시한 의혹만 꾸준히 방송을 태우고 있다.

한편 새누리당정세균 의장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는 건 그렇다 쳐도 국정감사에는 복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쪽과 절대로 가면 안 된다는 쪽끼리의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국감 복귀를 주장하던 대표적인 새누리당 인사인 김영우 국방위원장을 같은 당의 몇몇 의원들이 의원실에 3시간 20분 동안 감금하는 초유의 사건#도 있었고, 이정현 대표가 국감에 복귀하라는 요청을 의원 총회에서 거부하고, 이 문제로 새누리당 의원 총회에서 국감 복귀 반대를 외치는 친박계와 국감 복귀 찬성을 주장하는 비박계가 서로 고성과 욕설을 주고 받는 등# 새누리당도 상처가 많이 나는 듯하다.

4 트리비아

  • 1997년 4월 12일 한보 사태 특별 청문회 당시 전문경영인 이 모 씨가 유력 정치인들에게 불법자금을 다 건넸지만 유일하게 안 받은 인물이라고 발언하였다. 당시 초선이기도 했고 스스로가 금전적 욕심이 없다고 한다. 쌍용그룹 근무 당시 한보그룹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보 쪽 인물과는 아예 상종을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쌍용도 한보만큼은 아니어도 만만찮은 문제 기업이었을텐데. 쌍용 자식 뻘 되는 STX 망한걸 보면[25]
  • 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세균맨. 호빵맨에서 나오는 그 세균맨이다. 본인도 이 별명을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즐기는 듯. 심지어는 인스타 개그왕 정세균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선거유세 중 초등학생에게 세균맨이냐는 질문을 받거나 '세균맨 화이팅!'이라는 쪽지를 받기도 했다. 아예 블로그 닉네임을 좋은세균 정세균으로 해놓았다. 그리고 국회의장이 된 후 한 SNS 이용자로 부터 세균맨 인형을 선물로 받았다.국회대장균 그리고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균블리"라서 언론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26]
  • 안티들은 이름을 비꼬아서 정병균이라 부른다.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 당시엔 트위터를 통해 선거유세차량[27][28] 의 이름을 공모했는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이름은 소독차(....) 그런데 이게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소독차"를 사용했고 당선 후 트위터에 "소독차를 타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를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주었다.
  • 2016년 4월 21일 JTBC '뉴스 현장'의 직격 인터뷰에 출연해서 인터뷰를 하였다. 그런데 손석희와 함께 찍은 사진에 대해 인스타그램 담당자가 '아무리 원근법이라지만.. 스프링의 힘을 빌릴 수 없는 태생적 한계.. 잠시 눈물좀닦고', '#5등신과8등신'이란 평가를 남겼다. 참고로 정세균 의원은 키가 168cm, 손석희는 178cm 정도 된다.
  • 자신을 중심으로 모이는 그룹 내에서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는 김성주 의원 또한 본인처럼 전문성을 갖춘데다 점잖고 신사적인 스타일의 의원이라는 점을 보면 그가 왜 소리없는 강자인지 알 수 있다.
  • 카카오톡도 한다. 친구찾기에서 '종로는 정세균' 이라고 치면 나온다....

5 역대 선거 결과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군·진안군·장수군)
새정치국민회의36,176표 (68.9%)당선 (1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군·진안군·장수군)
새천년민주당34,165표 (65.1%)당선 (1위)재선,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변경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군·진안군·장수군·임실군)
열린우리당45,475표 (78.1%)당선 (1위)3선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무주군·진안군·장수군·임실군)
통합민주당45,566표 (74.6%)당선 (1위)4선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
민주통합당41,732표 (52.3%)당선 (1위)5선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
더불어민주당44,342표(52.6%)당선 (1위)6선,
전반기 국회의장

새천년민주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될 때를 제외하면 정세균 본인이 당적을 옮긴 적이 없지만, 소속 정당인 민주당계 정당이 워낙 개편이 잦은지라 선거마다 이름이 다르다. 이건 민주 & 진보 진영의 현역 의원들을 통틀어 최다선 의원인 이해찬 의원도 똑같다.

총선에 여섯 번 출마하여 모두 당선됐고, 특히 모든 선거에서 득표율 50%를 넘기는 압승을 거뒀다. 4선까지는 텃밭이라 쳐도, 이른바 정치 1번지라고 일컬어지는 서울 종로구에서까지 두 번 연속 완승했다.

이쯤 되면 20대 총선을 통해 7선 고지를 점령한 이해찬 의원이나 떨어진 이인제 전 의원 수준으로 총선 불패의 정치인이다. 이해찬 의원은 탈당 전력이 4.13 총선 때 한 번 생겼지만 정세균 의원은 그런 것도 없다.

그리고 7선에 도전했던 이인제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했으니...
  1. 국회의장 선출로 당적 소멸
  2. 본인의 이름인 '세균'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밑에 좀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3. 2016년 국회의원 선거운동 길거리 유세 중에도 어떤 어린이가 "아저씨가 진짜 세균맨이에요?"라고 묻자, 정세균이 "어 아저씨 세균맨이야"라면서 대답하는 영상이 공개된 적도 있다. 언젠가부터인지 뽀로로의 루피 인형도 나란히 놓여있다. 루피는 정세균의 외모를 닮아서 간택(?)되었다고 한다.
  4. 가뜩이나 새누리당의 거물급 중진들과 잠재적인 대권주자들이 대거 목이 날아간 20대 총선판에 오세훈까지 제대로 만신창이를 만든 셈이다.
  5. 20대 총선은 말 그대로 헌정사상 새누리당과 그 전신 정당을 포함하여 최악의 참패라 볼 수 있다. 단순히 의석 확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인제가 정치신인에게 드디어 날개가 꺾였고,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하기는 했으나 이재오의 목이 달아났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지역인 대구광역시에서마저 의석을 2곳이나 내주었고, 부산은 말할 것도 없다. 수도권은... 더이상 말을 말자(...)
  6. 정치권 내에서는 계파갈등이 극심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그가 흔들리지 않고 건재할 수 있는 이유로, 어지간하면 누구와도 어색한 사이를 만들지 않는 특유의 인자한 성품을 들곤 한다. 실제로도 정세균 의원이 대놓고 화를 내거나 거친 언사를 하는 것을 보기란 매우 힘들며, 과거 한나라당 지금의 새누리당 정치인들과 한때는 같은 당이었으나 갈라져나간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과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지낸다.
  7. 다만, 박근혜도 4년 연속 탄 걸 보면.... 딱히 크게 의미있는 상이라고 생각되긴...
  8. 또한 경남에서는 민주당 소속은 아니지만 친노성향 무소속 후보였던 김두관 후보가 승리하며 한나라당의 텃밭을 점령하기도 했다. 이후 김두관 지사는 민주통합당에 입당, 대선 예비 후보로 경선에 출마하나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한다.
  9. 윤보선 전 대통령은 종로에서 3선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여기서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
  10. 가뜩이나 인물이 부족한 친박 진영 입장에서는 원로급 1명도 아쉬운 판이었는데, 홍사덕이 종로에서 거꾸러짐으로써 더욱 인물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11. 이 때문에 정세균 의원과 정세균 의원을 따르는 국회의원들을 일컬어 무조건 친노라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말하자면 정세균 의원은 친노가 아니다. 정세균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노 대통령을 도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다만 그를 들어 범친노계로 분류하는 경우는 매우 많다. 대체로 친노에 대한 우호 세력으로 보는 편. 뭐 사실 친노라는 범위 자체가 워낙 들쭉날쭉한지라....
  12. 강기정 의원은 정세균 의원이 당 대표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맡은 바 있다. 대표적인 정세균계 의원.
  13. 오세훈의 16대 국회의원 시절의 지역구가 강남이었다.
  14. 이 건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임기 2기 무렵 야당소속이 상당수 점유했던 서울시의회와 구청장 간의 마찰과 갈등과 큰 연관이 있었다. 당시 특히 서울시의회 시의원으로부터 여러번 청문회 및 질의에 소환되면서 그야말로 탈탈 털렸던 적이 많았는데, 오세훈 자신은 이러한 처신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최악의 수가 되었지만...
  15. 창신동과 숭인동 지역의 경우는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강하다. 과거 종로구 숭인동과 창신동에 뉴타운 관련건에 주민들 상대로 사기를 치고 제대로 빅엿을 먹인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세균은 19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비교적 지역구 관리를 잘 처리해왔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아왔었다.
  16. 혜화동을 비롯해 명륜동, 연건동 등 대학로 지역은 성균관대학교, 서울대학교 의대/치대/간호대 등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해서 대체로 야권성향이 더 강하다.
  17. 서청원 의원이 20대 국회 최다선 의원이었기 때문에 임시 국회의장직을 맡았었다. 실제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도 했지만 새누리가 폭망하면서 그 꿈은 사라져버렸다.
  18. 이 관례는 사실 16대 국회 후반기 의장인 박관용 의장이 만들어낸 관례이다. 말 그대로 관례일 뿐 국회의장을 지냈던 국회의원이 차기 총선에서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일례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을 두 번이나 지냈다.
  19.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상시청문회법도 바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가 있음.
  20.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협의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의장은 회기 의사 일정의 일부를 변경·안건 추가·순서변경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1. 말장난 같겠지만, '합의하여'가 아니라 '협의하여'이기 때문에 국회의장이 통보식으로 의사 전달을 해도 국회법 77조에서 말하는 '협의'에 해당이 된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를 여러 번 다루었는데, 그때마다 헌법재판소는 정세균 의장과 비슷한 결정을 내렸던 과거 국회의장들의 손을 들어줬다. JTBC 뉴스룸의 팩트 체크가 이 문제를 다루었다.
  22. 그런데 공개 단식이 아닌 비공개 단식을 하겠다고 해서 비웃음을 샀다. 당대표실 문을 걸어 잠그고 새누리당 의원들이나 기자들만 잠깐 들여보내 주는 식이라 솔직히 단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내부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23. 우리나라 국가 기관들은 국회에 있는 각 상임위원회의 감시를 받는다. 상임위의 위원장 자리는 20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교섭단체끼리 협의하여 나눈다.
  24. 그런데 상임위는 사회권을 가진 상임위원장이 없으면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는 국방위원회를 제외하고 열리지 않고 있었다. 반면 야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는 열렸기 때문에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상태에서 국정감사가 실시되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여당 상임위원장이 갖고 있는 사회권을 야당 간사들이 넘겨받아 국정감사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25. 쌍용은 그래도 외환위기를 겪은 뒤부터 계열사들이 대부분 잘 나가는 대기업으로 존재한다. 쌍용중공업은 STX가 되었다가 망하긴 했지만 나머지 계열사들은 아직 잘 산다. 원래 대부분이 알짜 계열사였다. 외환위기가 도래했는데도 회장은 정치한다고 나설 만큼, 그룹 경영진의 문제 등이 겹쳐 해체된 탓이 크다. 덤으로 쌍용차에 돈을 너무 많이 들였다. 반면 한보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대박이 난 건설사가 마구 사세 확장을 벌인다고 아무거나 사먹고 뇌물을 쏟아부은 회사였다. 즉 내실이 부족했다. 결국 부동산 붐이 끝나고 외환위기로 돈도 거덜나고 아파트도 안 팔리고 투자한 중공업도 좆망테크를 타버리니 그룹도 순식간에 공중분해되었다. 쌍용과 달리 남은 계열사가 거의 없으니 말 다 했다.
  26. 참고로 지금 국회의장실에는 세균맨 말고도 뽀로로의 루피 인형도 있는데, 이 백스토리가 참 특이하다. 처음에 국회의장실에는 세균맨 인형만 선물받은 상태였는데 이를 두고 몇몇 네티즌들과 언론들이 "세균맨은 일본 캐릭터인데, 왜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실에 있냐!!!" 면서 볼멘소리를 한것.맞는 소리긴 한데... 결국 지지자들이 "그러면 한국 캐릭터중에서 정세균의장하고 닮은 걸 찾아서 주면 되지 않냐" 고 해서 찾은게 바로 뽀로로의 루피.서울 어딘가에 에페라는 배다른자매격의 인형이 있다고는 하던데 여기에 몇가지 의미부여를 더하면, 세균맨이 남캐-루피가 여캐다보니 남여 성비가 1:1로 맞는 것도 있고, 세균맨이 일본 캐릭터-루피가 한국 캐릭터다 보니, "어쩌면, 한일간의 여러 문제가 다 해결 된 평화적인 한일간의 상태는 아마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해석을 가진 네티즌들도 존재한다.
  27. 쌍용 뉴 코란도 소프트톱 모델이며, 개조차량이 아닌 정식 발매 모델이다. 희귀한 차량이라 불법튜닝(...) 아니냐고 하기도 하는데 순정 맞다. 희귀한 만큼 현재 중고가도 그냥 뉴 코란도보다는 높다. 국내에 SUV 소프트탑은 지프 랭글러 외에는 사실상 없기 때문. 하나 더 꼽자면 교황이 탔던 지붕 없는 카니발 정도.(?)
  28. 19대 총선 출마 당시에도 같은 차량을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