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삼국지)

1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무장

위서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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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洪
(? ~ 232)

天下可無洪(천하가무홍) : "천하에 이 조홍은 없어도 되나

不可無曹公(불가무조공) : 조공께서 없으면 아니 됩니다."
子廉忠與勇(자렴충여용) : 자렴은 충성되고 용맹했으니
千古更誰同(천고갱수동) : 천고에 또 누가 이와 같으리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무장. 좌절자렴(子廉). 일명 좌절감의 사나이.

조조의 종제(사촌 혹은 육촌)이다. 조홍의 딸은 순욱의 아들인 순찬과 혼인하였기에 순욱과는 사돈 관계이다.

1.1 정사

1.1.1 조조의 개국공신

젊은 시절 삼촌 빽으로 기춘현 현장을 지냈다. 동탁 토벌군이 일어나면서 종형 조조에게 합류해 조인과 함께 장군이 된다. 동탁장안으로 천도하고 낙양은 불태우며 반동탁 연합군에 저항하였다. 조조는 형양 방면으로 서진하다가 서영에게 대패하고 추격당했다. 말까지 잃어버린 조조에게 조홍이 자신의 말을 내주며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귀공은 없으면 안 됩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이 일화는 연의에도 수록되었다.

왕자년습유기에 따르면 조조의 육촌 동생 조홍은 막대한 재산과 준마 여러 필을 가지고 있었다. 반동탁 연합군 당시 조조가 한밤 중에 길을 가다가 말 한 필을 잃어버렸다. 조홍이 즉시 자기가 타고 가던 준마 백학을 조조에게 줬는데 그 말이 달리자 마치 허공을 나는 것과 같았으며 수백리를 달리고 나서 보니 조조는 땀으로 범벅이었으나, 백학은 땀 하나 흘리지 않아 주위 사람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였으며, '허공을 나는 것이 조씨의 백학과 같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말 안해도 안다 습유기 자체가 전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이후 친구였던 양주자사 진온의 도움을 받아 여강과 단양에서 4천 명을 모아왔다.

1.1.2 여러 전투

194년, 역적 착융을 도운 점, 한제의 칙명을 거스른 점 등을 들어 조조는 도겸을 공격한다. 그런데 이때 장막여포를 바지로 앉혀 조조의 뒤를 공격한다. 견, 범, 동아 3성을 제외한 연주의 모든 군현이 장막과 상의하는 등 조조에게 크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조홍은 동평국을 점거하는데 성공하고 군량을 징발해 군에 공급한다. 이듬해 여름, 조조가 정도 전투에서 여포를 대파하면서 전세가 반전되자 별도로 군을 이끌고 제음, 산양, 중모, 양무를 비롯한 10여개의 현을 쓸어담았다. 앞 뒤의 공적으로 응양교위를 거쳐 양무중랑장이 되었다.

196년, 장안을 탈출해 낙양에 머무르던 헌제를 모셔오는 임무를 맡았다. 원술도 부장 장노 등을 보내 천자를 모셔오려 했다. 헌제의 측근세력인 동승이 원술과 손을 잡았기 때문에 조홍은 천자를 모셔오는 데 실패했다. 이에 조조가 직접 나서서 천자를 모셔왔다. 허현으로 천도한 후에는 간의대부에 임명되었다.

만총전에 따르면 조조가 대장군이 되자 만총이 허현령이 되었다. 만총이 허현령일 무렵 조홍의 빈객이 조홍의 종실 지위를 빙자하여 수차례 법을 어기므로 만총이 그 빈객을 체포하였다. 조홍이 만총에게 편지를 써 봐주기를 바랐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조조에게 알리니 조조가 관계자들을 호출하였다. 만총은 외압이 더 심해지리라 생각해 냉큼 사형을 집행했고 조조는 만총을 칭찬하였다.

양패전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 장사현령(長社―, 지금의 허난성 창거 시)으로 있던 양패도 조홍의 빈객이 저지르던 불법 징수행위를 적발하여 다리를 꺾어 죽였다. 역시 조조에게 칭찬받았다. 이후 양패가 업현령으로 발령을 받자 권세가였던 조홍과 유훈 등은 자제들에게 몸가짐을 조심히 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197년 조조가 원술과의 전투를 재개한 사이 유표장수가 남양에서 세력을 확대했다. 조홍이 무음, 섭, 박망, 자양 등 남양군 북부에서 맞섰지만 섭현까지 밀려났다. 진국으로 쳐들어왔었던 원술을 격퇴한 조조가 다시 형주로 내려가 장수·유표 연합군과 싸우자 조홍도 공을 세우고 여봉장군, 국명정후에 올랐다.

관도 대전에서는 조조가 오소의 순우경을 공격하는 사이 본진의 수비를 맡아, 장합고람의 공격을 막아냈다.

218년, 한중 공방전에선 참군 조휴의 진언에 힘입어 촉장 세트메뉴 오란뇌동을 물리쳤다. 이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는데 얇은 비단옷을 입은 무희들이 발로 북을 밟으며 춤을 추는 음란한 연회였다. 그 자리에 있던 양부가 걸주 같다고 질책하자 연회를 그만두고 조홍이 사과했다.

1.1.3 엄청난 부자

조홍은 거물급 부자였다. 조조가 사공으로 재직할 때 고향인 초현 사람들의 재산을 조사했는데 조홍의 재산은 조조 본가와 동급으로 평가되었다. 조조는 이에 대해 "우리 집이 어찌 자렴(조홍)의 재산과 같단 말인가."라고 불평했다. 이 말은 조홍의 재산이 나랑 비슷하다는 걸 비꼬았다기보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기로서니 조홍과 동급 취급될 정도로 많겠냐 이런 의미에 가깝다. 조홍전에 따르면 성정이 인색하였다 한다.

조비 즉위 후 위장군에 임명되었다가 표기장군으로 승진했다. 224년 조비가 총애하는 오질이 연회에서 조진을 뚱뚱하다며 놀리자 왕충과 함께 오질 편을 들기도 했다.

조비가 태자 시절에 조홍에게 비단 백 필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거절한 적이 있었다. 226년 이걸 기억하고 있던 조비가 조홍이 거느리던 빈객의 죄를 트집잡아 조홍을 죽이려 했다. 당연히 모든 군신이 반대했다. 조홍이 아무리 개인적인 흠이 있더라도 일단은 조조의 혈육으로 조비에게 아저씨뻘이고, 위에 서술한 것처럼 목숨 걸고 조조를 구한 일화까지 있는 데다가, 군에 복무한 최고참 개국공신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이 처분을 원망한 이들도 많았다 하며 조진 역시 "지금 조홍을 주살하시면 조홍은 필시 저 조진이 참소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말렸지만 조비는, "내가 직접 징벌하는 것인데 경이 어찌 염려하시오?"라고 그냥 씹고 밀어부쳤다.

결국 그간 정치에는 일절 관여한 일이 없던 조조의 부인 무선황후 변씨마저 정색하고 "양국과 패국에서 자렴이 아니었다면 오늘도 없었다"며 질책하고 조비의 황후 곽여왕에게까지 "오늘 조홍이 죽는다면 내일 황제에게 조칙을 내려 너를 황후에서 폐하겠노라"라고 강경하게 나선 덕분에 간신히 제명으로 끝났다. 처음에는 조홍을 석방한 대신 재산을 몰수했는데, 변씨가 다시 조비를 꾸짖자 재산도 돌려 줬다. 조홍은 억울하게 죽을 뻔 했다가 관직과 작위 박탈로 끝나자 매우 기뻐하며 조비의 덕을 찬양하는 매우 비굴한 내용의 글을 써서 바쳤다. 매우 큰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라 카더라

이 해에 조비가 죽고 조예가 즉위하였다. 복직되어 후장군을 거쳐 다시 표기장군이 되었고 특진까지 받았다. 232년에 죽어서 야왕후 작위는 자식이 물려 받았다.

1.2 평가

조조의 인척이며 충성심은 확실한지 초중반 조조가 부재한 주요 전선에서 자주 조조의 대리역을 맡았고 다양한 활약을 하였다. 다만 패전이 더러 있고 무엇보다 임팩트 강한 군공이 별로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관도 본진의 수비를 맡으면서 강화된 원소의 공세를 막아낸 것이 큰 공훈 중 하나인데 오소의 순우경 군이 조조에게 하룻밤 사이에 전멸하면서 계산이 전부 꼬여버린 원소군 지휘부가 책임 소재를 두고 내분을 일으킨 덕분도 있었다.

1.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은근히 일기토에서 활약이 많다. 여남에서는 하만을 타도배감(拖刀背砍)[1]으로 벤다든가 남피에서는 원담을 베어 죽이고 마초를 상대로 오래 버티는 등 조조 휘하의 용장으로 묘사된다.

예형이 조조의 부하들을 싸잡아 놀릴 때 '조자효는 인색하니 요전태수라고 부르자'라고 말했는데, 요전태수는 '돈에 환장한 태수'라는 뜻이다. 조자효는 조인인데, 실제로 돈을 밝히던 조홍 대신 잘못 욕을 먹었다. 다만, 예형 항목에 나와있듯 조인의 검소함을 인색하다고 조롱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돈을 밝히고 긁어모으던 조홍이면 몰라도 그냥 검소한 조인은 욕하지 말고 칭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원래 예형은 아무나 까대는 인간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유명한 일화로는 동관을 10일간 지키라는 조조의 명을 받고 서황과 함께 주둔 중 마초의 지속적인 도발에 넘어가 9일만에 전투를 벌였다가 패배, 동관을 뺏기는 이야기가 있다. 이에 조조가 서황에게도 책임을 묻자 서황은 사실대로 대답했고, 이에 조조는 화가 나서 조홍의 목을 베려다 부하들의 만류로 관뒀다. 이후 조조가 마초를 정벌하러 나섰다가 패하여 마초에게 죽을 위기에 놓이자 조홍은 마초와 40합을 겨루는 기염을 토하며[2] 시간을 벌고 조조의 목숨을 구한다. 물론 조홍이 밀리는 상황이라 계속 싸우면 끔살당했을 것이지만 앞서 장합이 단 20합만에 캐발린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조조는 "어제 내가 조홍의 목을 베었더라면 오늘 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조홍을 칭찬한다.

한중 공방전 즈음에선 침착한 숙장이 되어 마초와 장비를 상대로 무턱대고 싸우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오란의 정찰대를 쳐부수고 임기도 참하지만 더 이상 덤비지 않고 남정으로 돌아온다. 반면에 장합은 장비를 업신여기며 자꾸 출전하려고 하기에 조홍이 말린다. 하지만 결국 장합이 나가서는 소소하게 뇌동만 잡았을 뿐 처절하게 관광당한다. 조홍이 그런 장합에게 열불낸다. 좌절감을 전파시켰다.

1.4 미디어 믹스

2 후한 말의 황건적

趙弘
(? ~ 184년)

후한 말의 황건적으로 장만성진힐의 공격으로 사망하자 무리들 중에서 두목이 되어 완성(하남성 남양)을 점거하면서 주준과 형주자사 서구의 공격을 6월부터 2달 간 막았지만 주준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다. 1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한충, 손하와 함께 장보의 원수를 갚겠다면서 완성 일대를 약탈하다가 완성을 점거했으며, 유비, 주준이 이끄는 토벌군의 공격을 받자 한충을 보내 싸우게 하였다가 완성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토벌군이 완성을 포위했다가 군사를 물리는 척 하면서 공격해 한충이 전사할 때 손하와 함께 토벌군을 기습하여 완성을 되찾는다. 그러나 이후 손견이 가세하여 완성을 공격하면서 맞서 싸웠지만 손견에게 죽는다.

2.1 미디어 믹스

박봉성 삼국지에서는 손견이 싸우면서 졸개들은 비키라고 하자 조홍은 "이 애송이 놈, 내가 조홍이다."라고 외치면서 달려들지만 손견에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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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회춘 좌절감

삼국지 시리즈에선 당연히 좌절감이 키우는 사나이에 비하면 능력치가 휠씬 낮다. 황건적 출신답게 무력에만 특화된 능력치. 일러스트가 쥐를 닮아서 낮은 능력치에 비해 캐릭터성은 확실한 편. 잘보면 원피스의 네즈미 닮았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59/73/35/26. 분전을 가지고 있긴 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7/71/30/25/11에 특기는 보수, 삼단. 그래도 무력이 71이니 보수 셔틀로 쓸 수는 있겠지만 전방이 아닌이상 보수 특기는 의외로 별로 쓸 일이 없는 특기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66/72/28/22/19으로 무력 70은 넘겼지만 적성 A가 없어 애매하다. 일러스트가 바뀌어 수염이 없어지며 특징이 많이 죽었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66/72/28/22에 전법은 마공격강화. 전법이 같은 변희보다 지력이 많이 낮아 전법을 발동할 일이 없다.
  1. 약칭 '타도계'로 불리는 싸움의 기술. 일부러 도망치는 척 하다가 베어버리는 기술이다. 한중 정벌에서 하후연도 양임을 상대로 써먹었고 관우의 경우 황충을 상대로 쓰려 했으나 황충의 말이 엎어지면서 무마. 형주 공방전에서 방덕도 관우를 상대로 시전, 관우도 모를 리 없어서 "타도계 따위를 내가 두려워 할 것 같으냐"라고 하였지만 방덕은 화살을 날렸다(...).
  2. 위급한 순간에 하후연이 대군을 이끌고 나타나 마초를 쫓아버려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