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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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大道

큰 길,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 大盜

도둑이라는 뜻. 야구에서는 도루를 잘하는 선수들에게 비유적으로 이런 호칭을 붙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전준호, 리키 핸더슨등이 있다.

3 大刀(朴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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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민혁명군이 사용한 실전용 대도.

Chinese War Sword, Dadao, Podao.

3.1 역사

중국 대부터 중일전쟁 종전시까지 군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크게 사용된 전형적인 중국도.
크기는 다양했는데, 전통적 대도의 경우 작은 것은 1.7m정도로 사람 키만했고 큰것은 3m이하의 길이를 지녔다.
무게도 제각각이라 평균치를 내기 어렵다. 특히 근접전, 난전, 선상전에서는 그 뛰어난 위력을 보여 대까지 대도로 무장한 보병부대가 있을 정도였다. 반장전쟁, 중일전쟁 등의 전쟁이 빈번하던 근대에 들어서는 60cm~150cm 정도로 크기가 줄어들며 휴대성이 뛰어나져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민간에서도 호신용, 무술 수련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청말 태평천국운동에서도 많은 수의 태평천국군이 사용하여 한때 태평도라고도 불렸다.

손잡이가 긴, 장병기 형태의 대도를 따로 박도(朴刀, Podao)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엄밀한 구분이라 하긴 어렵고 혼용에 가깝다. 이런 폴암 형태는 손잡이가 두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길어 쌍수대(双手帶)라고 불리기도. 중국 강남 지방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남파 계열의 대표적인 병장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조선망나니가 장비한 참수용 도 역시 바로 이 대도였다.
중국 강남의 오구도 같은 도를 가지고 술을 뿜으며 춤추는 것은 20세기에 사극에서 타국의 사형 집행 방식을 섞어 창작된 것이며, 조선시대 그림에서 묘사된 대도를 든 망나니의 모습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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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정도첩에 그려진 참수용 대도.

근대에 들어 나라에서 양무 운동이 벌어져 근대 소총과 대포, 전함을 장비하였으나 청일전쟁에서 일부 병&사관이 전통적인 대도를 사용하여 참전한 적이 었었다. 청일전쟁을 묘사한 당대 우키요에 (일본 전통 판화)에서는 아라타 대위와 청국군의 양손 세이버vs대도의 교전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3.1.1 중일전쟁 시기

중일전쟁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기의 국민혁명군 보병장비
개인화기소총볼트액션 소총88식 소총, 24식 소총, Vz.24, Kar98k, 모신나강, 리-엔필드, 스프링필드 M1903, M1914 엔필드
반자동소총ZH-29, 몬드라곤 M1908, SVT-40C, M1 개런드, M1 카빈
기관단총MP18, 스텐 기관단총, 톰슨 기관단총, PPD-40, PPSh-41C, PPS-43C, 유나이티드 디펜스 M42
권총마우저 C96, 루거 P08, FN M1900, 콜트 M1903, FN M1922, 브라우닝 하이파워, TT-30/33
M1911A1, M1917
지원화기기관총경기관총Vz.26/30, 마드센 M1902, DP-28, 호치키스 M1922, 라티-살로란타 M/26, FN M1930, 브렌 경기관총
중기관총PM M1910, 24식 중기관총, 30식 중기관총, MG34, M1919 브라우닝
대전차화기PTRS-41, PTRD-41, 보이즈 대전차 소총
박격포20식 82mm 박격포, 31식 60mm 박격포
냉병기도검대도
※ 윗첨자C : 홍군이 사용
이탤릭체 : 무기대여법에 의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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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를 장비한 국민혁명군의 모습.

세월이 지나 국민당중국의 정권을 잡아 독일의 도움을 받아 군의 근대화에 매진하였으나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군대가 그러하였듯이 군수품의 불충분과 화력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특히 20년대 이후로 주목받은 참호전과 근접전, 그리고 기관단총이라는 분야가 그러하였다. 기관단총이라는 것이 권총탄을 사용하는 소형 기관총으로써 출발하여 참호에 돌입하여 압도적인 화력으로 청소해버린다는 개념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자연히 중국도 MP18 기관단총과 마우저 C96계열 권총을 국산화하여 이러한 세계적 기준에 따라가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실전에서 탄약 휴대량이 많아야 이러한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데 중국은 이러한 개념에 걸맞는 수준의 탄약을 지급할 능력이 되지 못했으며, 자연히 근접전투중 총탄이 떨어질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 근접전 병력은 대도를 휴대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37년 이후의 중일전쟁에서 많은 활약을 하여 항일대도 (抗日大刀), 항전대도 (抗战大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보통은 그냥 대도라고 불리웠으며, 항일대도는 이 시대의 물건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여 호칭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일본군은 청일전쟁 때부터 중국군의 대도를 경험하여 중국군이 청룡도를 사용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중일전쟁이 개전하면서 일본군은 프랑스식 돌격주의를 계승한 총검돌격을 주요 전술로 삼아 중국군을 압도하는 화력, 병력의 질을 바탕으로 오송 크리그에서 1만명 전사의 피해를 내면서도 독일식의 오송 크리그와 상해 요새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한다. 이에 자신을 얻은 일본군은 중일전쟁 내내 총검돌격을 주요 전술로 삼았는데,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일본군과 중국군간의 백병전이 심심찮게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중국군의 C-96 기관권총과 군용 대도의 조합은 높은 실전력을 보여주었다고 하며, 강한 베기 성능과 기세로 일본군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중국군의 전략거점인 무한시가 일본군에게 함락된 이후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중국군이 소규모로 침투하여 백병전을 벌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대도는 중국군 내에서 상당히 많은 숫자가 장비되었다. 주요 산업지대를 모두 빼앗긴 중일전쟁 중반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화력이나 탄약 수급이 더 나빠졌기 때문에 싸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대도의 활용도가 더 늘어난 것. 일본 육군도 그 때문에 호신용 및 권위 상징용으로 장교준사관에게만 소지가 허용되던 도검을, 원래 규정상으로는 소지해서는 안되는 하사관병사들에게까지 도검 소지를 암묵적으로 허용하게 되었다. 이른바 이종군도가 전선에서 유행하게 된 이유였다.

대도 자체는 화력의 강화와 함께 자연히 사라져갈 운명이었지만 일본군 특유의 돌격주의 신봉과 중국군의 보급 사정 화력의 부족과 그에 따라 자주 일어나는 백병전에 필요한 근접전 장비로써의 필요성이 맞물려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일전쟁에서 대도를 최초로 부각시키기 시작한 부대는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중일전쟁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 허베이 지방의 29군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 마이 신(麦新)은 루거우차오 사건 후 군가 대도진행곡(大刀进行曲)을 지어 29군을 기리기도 했다. 그래서 대도진행곡의 부제도 "29군 대도대에게 바친다(獻給二十九軍大刀隊)". (#)중국에서 국민혁명군 29군은 루거우차오 말고도 이 대도대로 유명해서 2007년에 이들을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 "큰 칼로 왜놈들의 머리를 부수자(大刀向鬼子头上砍去)" 가 나오기도 했다.

大刀进行曲대도진행곡
词曲:麦新작곡 : 맥신
大刀向鬼子们的头上砍去,큰칼로 왜놈[1]들의 머리를 부수자
全国武装的弟兄们,온나라의 무장한 형제들아
抗战的一天来到了,항전의 날이 다가왔다
抗战的一天来到了。항전의 날이 다가왔다
前面有东北的义勇军,일선엔 동북(만주)의 의용군
后面有全国的老百姓,후선엔 전국의 국민들
咱们中国军队勇敢前进!우리 중국군대는 용감히 전진!
看准那敌人,적을 보고 겨누자!
把他消灭!그들을 소멸하자!
把他消灭!그들을 소멸하자!
(喊)冲啊!(함성) 돌격!
(唱)大刀向鬼子们的头上砍去!큰칼로 왜놈들의 머리를 부수자!
(喊)杀!(함성) 죽이자!

3.2 상징성과 현대의 대도

실전 투입률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일본군도가 일본군을 상징하는 것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대도 또한 중국에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적인 아이콘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군가 대도진행곡을 비롯하여 중국군 군장 재현자들 중에서 대도를 메지 않는 사람들이 없으며 항일참전용사 중에서도 사용하던 대도를 소장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 도검계에서도 중국을 상징하는 도검 아이콘으로써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우슈의 중국검, 유엽도와 함께 중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해외 도검 업체에서도 대량생산하는 제품 중 하나로써 항상 라인업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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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old Steel社의 대도(Chinese War sword)

3.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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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당시의 군용 대도는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대도의 디자인을 계승했으나 휴대성을 고려하여 길이는 심플하게 규정되었다.
국민당을 비롯하여 군벌들이 제각기 정한 교범마다 조금씩 치수는 달랐으나 대체적으로 칼날은 60cm전후, 손잡이는 30cm정도로 전체길이는 1m를 넘지는 않는 수준을 유지하였다. 국가나 군벌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나온 것도 있고 대장간에서 따로 주문해서 쓰기도 했기 때문에 실제 기록사진들을 보면 길이와 비율이 다 다르다.

미국 Cold steel社에서 제공하는 자사의 Chinese War sword의 성능 홍보 비디오.
방선천리를 주름잡는 절단력을 보시라. 뚱보 사장이 저 칼 들고 있으니까 어울린다. 백정

이러한 대도 말고도 전통적인 중국도, 즉 우미도/유엽도/안모도 등의 도검 계통의 도(刀)를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고 유물도 소수 존재한다.

3.4 대도를 사용하는 검술

중국군용 대도만의 특별한 검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군대에서 사용된 대도술도 민간 무술가를 초빙하여 연구와 교육을 맡기는 방식으로 대도술이 정립되었다. 또 당시의 중국군대가 통합된 국군이 아니라 군벌군대의 연합체에 가까웠으므로 대도술도 독립적으로 따로따로 정립된 경우가 많았다. 가령 1920년 하남의 풍옥상 군벌에 가담한 섬서성 마씨통비문의 마봉도는 명나라 시대의 교범인 단도법선(單刀法選)의 기술을 차용해 파봉팔도(破鋒八刀)로 정립해서 가르쳤다.재현영상 형의권의 한씨 성을 가진 협객을 초빙하여 형의육합도법을 기본으로 8가지의 총검 파훼법을 창안한 것이 파봉팔도로 불리웠다는 이설도 존재하며, 이 역시 풍옥상 군벌의 29사단 서북대도대에 교습되었다고 한다.

소림72예로 유명한 김은충(金恩忠)은 1933년 중국 서북군 29사단의 대도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이 내용을 실용대도술로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응조번자권의 유법맹(劉法孟)은 1933년 광동군 19사단에서 편성된 대도대의 교육을 맡아 이를 대도술(大刀術)로 정립, 출판하기도 했다.영상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는 이들의 체계와는 확연히 다른 또다른 도법을 훈련하는 당시 영상들도 많이 나오므로, 실제로는 대도술의 종류는 사단별, 군벌별로 제각각 다양했다고 볼 수 있다.

근본 내용 자체는 평범한 중국도법이지만 파봉팔도나 실용대도술은 모두 총검을 상대로 한 내용만을 가르친다.[2]
이는 당시 실전에서 가장 쉽게 맞닥뜨리는 것이 일본군의 총검돌격이므로 여기에 대한 대비책을 빨리 교육해야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대도술도 그러했는지는 교범이나 관련 자료를 찾아야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은충 실용대도술을 재현한 영상.)

3.5 창작물

수호지에는 시대배경이 송나라이었기때문에 매우 자주 나오는 무기로 나온다.
무송[3], 양지, 유당, 목홍, 뇌횡, 장횡, 양웅, 석수, 연순, 장경, 목춘, 주통, 추연, 추윤, 고대수, 노준의[4] 등이 박도를 잘 쓴다고 한다.

눈물을 마시는 새괄하이드 규리하가 대도를 사용한다.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도 하후돈의 무기로 나온다.근데 삼국시대에 없는 박도가 있는것은 신경쓰지 말자.

대항해시대 3에서는 좀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청룡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명나라의 북경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살 수 있다.
효과치는 68로, 라이벌인 일본의 명도장광보다 1 높으며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무기 중 두 번째로 강력하다.

드라마 "추노"에서 나오는 송태하의 대도도 엄밀히 보면 대도(박도)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천추태후(드라마)에서 나오는 양규의 대도도 비슷하다.

격투게임블레이블루주인공라그나 더 블러드엣지의 무기인 블러드 사이즈는 대검처럼 보이지만 항일대도(박도)라고 할수있다.

4 원나라의 수도 칸발리크

大都

쿠빌라이 칸은 중국식 왕조라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대륙에 새로운 수도를 만들고자 했다. 이 때 생각난 것이 점령 후 불태웠던 금나라의 수도 중도였다. 다른 도시와는 달리 중도는 중국 내에 있으면서도 몽골 고원과 가까워 수도로서 적합했다. 쿠빌라이는 유병충에게 중도에 성을 쌓고 성 내에 종묘와 궁전을 지을 것을 명한다. 유병충은 쿠빌라이에게 자신이 지은 도시를 대도라고 부를 것을 건의하고 쿠빌라이는 승낙한다. 1267년 쿠빌라이 칸은 카라코룸에서 대도로 천도해 나라 이름을 대원이라고 정하고, 할아버지 칭기즈 칸성조로 추증해 종묘에 모신다. 1368년 원순제가 수도를 버리고 상도로 도망하기까지 101년동안 원나라의 수도로 기능한다.
  1. 鬼子(뀌쯔)는 원래 귀신이란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일본군을 말한다. 그러므로 왜놈이라는 번역이 맞을 듯. 자세한 것은 르번구이쯔 항목 참조.
  2. 파봉팔도의 소스가 된 단도법선 자체가 창을 검으로 격파하는 비법을 담은 책이다. 마봉도가 단도법선을 참고한 것도 총검을 이기는 법을 얻고자 했음으로 볼 수 있다.
  3. 괘할림편 이후에는 쌍계도로 같아탄다.
  4. 대명부편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