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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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 무너지며 일어난 인명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돈부터 걱정한 최악의 인간 말종, 대량살인마, 황금만능주의자.
자기 회사 재산과 자기 목숨때문에 자기 며느리도 무너지는 백화점에 버리고 왔던 막장 시아버지.

1 기본 정보

이름 이준(李鐏)
출생 1922년 10월 22일, 경기도 양주시
사망 2003년 10월 4일
본관 전의 이씨전의 이씨에겐 수치
직업 기업인

2 일생

한국의 기업인이자 범죄자.
1922년 경기도 양주시 출생. 본관은 전의(全義).

2.1 백화점 건설 이전

삼풍백화점 회장 이준은 경기도 양주 태생으로 젊은 시절에는 뛰어난 사교술을 바탕[1]으로 군[2]과 당시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으로 근무하면서 고위층 권력자들과 인맥을 쌓았고 향후 사업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41세가 되던 1963년 미군 군납건설과 전기공사업을 주로 하는 동경산업을 설립했고 1967년엔 동경산업을 삼풍건설사업으로 상호를 바꾸고 건설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2.2 백화점 건설 이후

그는 군과 중정 근무시절 쌓아온 인맥들을 활용, 당시로서는 굵직한 공사였던 서울 중구 을지로 삼풍상가, 여의도 순복음교회, 청계천 평화시장 공사를 따내고 70년대에는 부동산 투자에 눈을 돌려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3] 이러한 재정적 바탕에 정계 인맥들까지 활용하여 이후 강남 개발로 눈을 돌려 1974년 서울특별시 성동구[4] 서초동에 5만 7천평의 부지를 사들여 외인주택단지를 조성, 더욱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고 1980년대 후반 외인주택단지를 철거하고 그 부지에 삼풍백화점삼풍아파트를 함께 건설해서 떼돈을 벌기 시작한다.이딴 새끼가 성공했다는게 의아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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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이 광고 23초쯤에 나오는 어린이가 배우 김민정.

1990년 당시의 광고(CF)에 쓰인 음악은 존 윌리엄스의 "올림픽 정신(The Olympic Spirit)" 으로 1988 서울 올림픽의 주제곡으로 쓰였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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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은 1987년 5월 착공하여 1989년 12월 개장한 백화점으로, 당시 전국 2위 규모를 가진 단일매장으로 기록될 정도로[5] 현재 롯데월드 건물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규모인 단일 쇼핑몰로서는 초대형 건축물이었으며 하얀색 바탕의 기존 백화점 건물 디자인을 탈피하여 외형 색상을 분홍색으로 채택하였고[6] 콘크리트와 유리의 조화로 디자인된 건물 외관은 당시에는 엄청나게 파격적이었다. 게다가 초호화 쇼핑몰의 컨셉으로 출발한 삼풍백화점은 당시로서는 각종 고급 수입품과 명품들을 주로 진열 및 판매함으로서 1980년대 신흥 부촌으로 명성을 날리던 강남구서초구 지역 고객들을 쓸어모으게 된다.[7]

백화점과 함께 지어진 삼풍아파트 역시 1986년 분양 당시 최고 10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당시로는 국내 최고 분양가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뿌렸으며 삼풍백화점 붕괴 전까지 압구정 현대아파트압구정 한양아파트 다음으로 강남구/서초구 지역에서 최고로 인기 좋고 집값도 높은 아파트 단지였다. 숲을 연상시키는 나무가 가득한 단지 내 도로와 명문 강남 8학군 소재, 주변에 고급백화점인 삼풍백화점을 비롯해 법원/검찰청,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등 당시 서울의 주요 랜드마크들이 즐비한데다, 32평, 45평, 46평, 56평, 57평, 58평 등 중대형 평수로만 구성된 대단지로 당시로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것이었다.[8] 참고로 삼풍아파트는 정상적으로 건축이 되었는지라, 2016년인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비교를 한다면 지금의 도곡동 타워팰리스삼성동 아이파크의 폭발적인 인기와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

아파트와 백화점으로 돈을 쓸어모으며 모기업인 삼풍그룹도 그 규모 또한 대단하여 당당히 대기업 순위에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실제 삼풍그룹의 총 자산 규모는 당시 액수로 4,000억원대[9]로 추정될 정도로 대단했으며 만약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지 않고 계속 사업을 했었다면 현재 롯데나 신세계와 견줄만한 쇼핑 재벌 기업으로 성장했을 거란 의견까지 있을 정도이다.[10]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재벌 수장의 반열로 성장하게 된 그는 더욱더 황금만능주의자로 변했다. 이는 참사 발생 이틀 후에 그가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때 책임을 추궁하는 기자들에게 해명이라 쓰고 역정이라 읽는다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백화점은 무너져버린다.

2.3 백화점 붕괴 이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7년 6개월을 복역한 뒤 2003년 4월에 출소했지만, 원래 있던 지병인 당뇨병고혈압이 심해진데다가 감옥에서 신장병까지 얻어 출소하자마자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도 신장투석기를 달고 살았는데, 나중에는 신장 기능이 약해져 거의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태로 출소한 지 6개월만인 2003년 10월에 지옥으로 소환되었다. 만 80세, 한국 나이로 82세였다. 재산은 모두 압류되었고 지인은 모두 떠나갔기에, 가난한 말년을 보내며 가족[11]만이 주변에 남은 채 매우 비참하게 사망.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아라

3 비판

무너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 피해도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저 말을 하기 직전에 '(만약에) 공공장소에서 사고가 나고 (건물이) 무너진다 하면 그걸 가만둬서야 되겠어요? (기자들에게) 내 한번 반문을 하고 싶어요' 라고 한 뒤 저 말을 하였다. '여보쇼'는 다른데서 편집 해 따온 것. 언뜻 보면 '나는 그런 걸 알기 때문에 건물을 무너지게 지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뉘앙스의 반론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자신은 건물이 무너지기 전 도망쳤고 불법 증축을 일삼은데다 설사 자신의 말대로 사장이 부실공사를 주도하고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해도 최고 경영자로서 피해자들에게 일말의 동정심이나 도의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은 전혀 없이 자기는 잘못 없고 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도 회장으로서도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런 대답에서 앵커들은 감정에 휘말려서는 안되는 직업인데 크게 분노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자신의 재산을 등치시킬 정도로 그가 금전만능주의에 얼마나 깊이 빠져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사실 저 정도 말을 할 정도라면 저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위의 MBC 취재 동영상을 보면 다리를 꼬고 앉고서 촬영 중인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해대는 등 반성이나 사죄의 모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당당했으며 기자들의 취재 세례가 짜증이 났는지 "내가 조사받으러 온 거지 사진을 찍으라고 온 거에유?"하며 조사 담당 형사에게 도리어 역정까지 내기도 하는 뻔뻔스런 행동을 보여준다.

더불어서, 기자들이 명색이 최고 책임자인데 할 말이 없느냐고 힐난하자 "아유~ 그런 걸 알고 싶거든 그건 사장에게 물어보셔~(영상 1분 14초)라는 회피 행위를 보였다.[12]

이러한 후안무치한 어깃장에 전국민은 격노했고 심지어 뉴스아나운서들까지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이례적인 분노를 드러내며 보도를 했을 정도였다.[13]

이준 회장의 발언은 전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았고 기자들 앞에서 큰소리를 하는 그의 행패는 전 세계로 중계되어 나라망신 한번 제대로 시켰다. 일본의 주요 언론에선 "우리나라 같으면 설사 회장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었대도 도의적인 책임을 스스로 물었을 것이다" 라고 까댔고[14] 미국, 유럽,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도 저딴 놈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 쳐박아도 모자란다고 가루가 되도록 비판했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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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백화점 A동 지하 1층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다 붕괴사고로 이틀 동안 매몰 뒤 극적으로 구출된 추경영이란 사람이 알고 보니 이준 회장의 큰며느리였던 것. # # 원래 삼풍그룹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던 자신의 남편이자 이준 회장의 큰아들이 1977년 중동 현장에 파견 근무하다 사고로 객사하면서, 과부가 된 그녀에게 이준 회장이 백화점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조그맣게 내주었던 것인데[15] 이준 회장이 사고 당시 백화점 내에 자기 며느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몰래 도망가기 급급했던지라 며느리로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한 것이다.

최초 구조 당시 위기를 극복한 생존자 등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16] 이준 회장의 큰며느리라는 것이 알려지고서는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거부하고 이준 회장 일가의 일원으로서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는데 사실 상기했듯 이준 회장과 그 아들들이 붕괴 직전 고객들을 그대로 버려두고 피신했던 것과는 달리 이 사람은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붕괴 조짐을 전혀 모른 채 백화점에서 매몰되었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케이스이기에 실질적인 여론은 씁쓸한 동정에 가까웠다.
  1.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제의 북경영사관에서 일했다는 주장이 있다. # 당시 일본 북경영사관은 친일 밀정들의 본거지. 일본 정보부에서 일한 것은 사실인 듯 하다.
  2.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로 활약했다. 육군 정보부 창설멤버이기도 했다.
  3. 이런 그의 이력은 전 SBS 대하드라마 '자이언트'의 악당 조필연이라는 캐릭터의 모티프가 되었다.
  4. 그러니까 강남구가 생기기 전.
  5. 단일매장 규모 1위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이었다. 이 롯데 본점의 규모는 90년대 초반 규모 측정 당시 구관 바로 옆에 새 건물로 지어진 신관이 구관과 내부까지 완전히 이어 붙여진 상태에서 파악한 규모다. 따라서 별도의 증축이나 확장 없이 처음부터 완벽히(?) 설계된 단일매장 규모로서는 삼풍백화점이 사실상 1위인 셈이다.
  6. 오픈 당시에는 위 사진처럼 하얀색으로 도색했다가 중간에 분홍색으로 바꿨다.
  7. 요즘 명품 쇼핑몰로 유명한 강남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본점이나 갤러리아 백화점도 당시에는 규모나 매출면에서 삼풍백화점의 상대도 되지 않았을 정도다.
  8. 강남, 서초지역 아파트 중 테헤란로 이북의 아파트들은 이미 81~82년에 분양이 끝났다. 당시 강남 최고의 아파트로 인정받았던 압구정 현대아파트압구정 한양아파트도 1980년대 후반에는 지은지 1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런 고로 서초동에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은 대단한 인기몰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지금은 상당한 부촌이며 인기 거주지인 대치동도곡동 일대(즉 테헤란로 이남)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압구정동, 서초동 일대보다 한수 아래로 취급받는 분위기였다.
  9. 1995년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1,500원 전후였으니, 오늘날 액수로 환산하면 최소 1조원 이상으로 이 정도 규모면 백화점 기업으로서는 신세계, 현대백화점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규모이다.
  10. 원래 백화점 장사는 현금 결제가 많은지라 잘 나가는 백화점들은 비상시 현금동원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고 당시 삼풍백화점 매출이 하루에 수억 원일 정도로 재정 상태가 좋아서 백화점 붕괴사고 직후에 돌아온 억대 어음들도 모두 결제했을 정도다. 결국 이듬해 1996년에 삼풍그룹이 도산했으나 4,000억원대의 자산을 서울시가 몰수해 경매로 모두 처분하여 삼풍그룹 부채 탕감과 희생자, 부상자들 및 백화점 입점주들의 피해 보상금으로 썼다.
  11. 놀랍게도 큰며느리도 참석했다.
  12. 그래서 어떤 형사지존파도 이러지는 않았다라고 경악했었을 정도다.
  13. 2012년도 이후의 방송계라면 그간 분위기가 많이 유순해져서 앵커들이 종종 사견을 내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방송계는 매우 엄격한 분위기를 자랑하여 앵커의 사견은 커녕 스타일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던 딱딱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저 정도로 사견이 들어갔다는 건 이준 회장이 보통 내기가 아니라는 뜻.
  14. 실제로 일본에선 기업인이나 임직원이 실패하거나 책임을 지게 될 경우 자살하거나 공개 사과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그 예로 1985년 520명의 사망자를 낸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때는 사고의 책임을 지고 정비 총담당자가 자살했다. 훗날 이준보다 더 미친 짓거리를 저질러놓고도 낯짝만은 두꺼운 놈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15. 이것 때문에 국민들은 더더욱 분개했고 더더욱 욕을 처먹었다. 물론 이 아이스크림 가게는 알짜로 유명했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사나 부사장급의 임원인줄 알았으니 더더욱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16. 이때도 인터뷰 당시 가족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