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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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성경은 일부 시서와 지혜서를 제외하고는 서書/기記를 붙여 표기하는 것을 표준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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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요한묵시록(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
가톨릭 표기/히브리어 : 코헬렛/קהלת(Qoheleth)[1]

한문 : 傳道書
영어 : Ecclesiastes[2]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 전도서 12장 1절 (공동 번역 성서)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 헛되 헛되 헛되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도서 1장 2절 / 12장 8절(개역한글)[3]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 전도서 9장 3절 (개역한글)

1 개요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책[4]
읽는 사람에게 도를 아십니까?를 시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에 실려있는 책으로, 욥기, 시편, 잠언, 아가와 함께 그리스도교 공통 5대 성문서에 속한다. 잠언 뒤에 오는 책답게 잠언보다도 더욱 난해하고 대관절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심도 깊은 교훈을 주려는 책이다.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용법을 초대형 트럭으로 한 트럭 끼얹고, 거기다가 한국어의 어렵기로 유명한 용언을 도금한 수준의 문장 난이도 때문에 손에 꼽는 고난도 책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개역한글 번역은 간지나는 문체의 향연을 보여주나, 읽는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야

랍비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고, 저자는 익명의 인물로 자신이 솔로몬임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있다. 특이한 점은 1장에서 솔로몬을 지칭하는 문구와 2장에서 솔로몬을 지칭하는 문구가 다르다는 것이다. 참고로, 랍비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이 한창 연애질하던 젊은 시절에는 아가서를 쓰고, 나라 다스리느라 머리 싸매던 장년기에는 잠언을 쓰고, 나이 먹어 허무해진 만년에 전도서를 썼다고 한다. 현대 성서 학계의 연구 결과는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나, 재미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특징

2.1 헛됨의 강조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도서 1장 1절 ~ 2절 (개신교 성경)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다.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 전도서 1장 1절 ~ 2절 (공동 번역 성서)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5]의 말이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 코헬렛 1장 1절 ~ 2절 (가톨릭 성경)
verba Ecclesiastes filii David regis Hierusalem
vanitas vanitatum dixit Ecclesiastes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 (불가타)

점점 번역의 텐션이 올라가고 있다.

본서 도입부의 주제는 한마디로 '인생무상(人生無常)'. 그리고 '하느님을 따르는 것을 제외한 인생사의 허무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본서에서 논하는 인생무상은 정말로 험악하기 그지없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 전도서 1장 3절

사람이 해 아래, 곧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결국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한지를 묻는다. 많은 돈을 모아도, 많은 지식을 얻어도, 많은 자식을 얻어도 그것이 대관절 자신에게 어떤 유익이 되었냐는 것이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여전히 있도다 - 전도서 1장 4절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 전도서 1장 5절
바람은 북으로 불다 이리 불고 저리 불어 그 불던 곳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 전도서 1장 6절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와도 땅은 여전히 있고, 그저 인생을 헛되다 말하며 죽을 뿐, 그 땅이 왜 있는지 모른다.

해가 뜬 어떤 날 태어나고 해가 뜬 어떤 날 죽는다. 해가 빨리 떴다가 지고, 다시 뜨듯이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고 남는 것은 헛됨 뿐이다.

바람이 이리 불고 저리 불다가 빠르게 돌아가 사라지듯이 인생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헛되며, 그 일의 동기와 계기 또한 헛되기 그지없다. [6]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 전도서 2장 2절

사람이 웃고 떠들고 희락하여 무엇을 하겠는가? 필멸할 수밖에 없는 인생은 죽어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죽어있는 자가 웃고 즐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 전도서 2장 12절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 전도서 2장 16절

저자는 심지어 지혜로운 것도 헛되다고 말한다. 자신도, 자신의 뒤에올 자들도 그동안 인생이 해온 동일한 헛된 일을 할 것이란 것이다. 결국 지혜로운 자나 우매한 자나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얻는 교훈 하나 없이 인생은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므로, 지혜자의 죽음과 우매자의 죽음에서 차이를 찾을 수가 없다. 지혜로우나 우매하나 영원한 천국의 삶을 얻지 못하면 그 죽음이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전도서 12장 1절

전도서의 결론. 자기의 의지로 무엇이든지 해보려 하는 젊은 시절에, 때가 늦기 전에, 마음에 쉼이 없고 낙이 없다고 할 때가 오기 전에, 너의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고 "네가 무엇을 위하여 이 길[7]에 들어섰는지를 잊지 말라." 곧, 하나님의 안식을 원하여 교회 - 에클레시아 - 에 들어온 것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2.2 전도서로써의 특징

[8]인생이 가져야 할 소망임을 역설하는 책으로, 문자 그대로 기독교의 전도의 시작이 되는 책이다. 물론 후술하듯이 이 책의 전도자는 현자 혹은 섭리를 전달하는 자라는 뜻이지 포교자는 아니므로 이 책의 저술 목적이 포교를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현실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9] 겉보기엔 인생무상만을 반복하며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12장의 결론에서 말하듯이 헛된 인생을 지내기 위한 지혜를 저자가 여럿 작성하여 잠언에 담았고, 그러한 잠언을 통해 세상을 살며 헛되지 않은 영원함, 즉 천국의 삶을 추구하라는, 헛된 삶을 사는 것이 운명인 인생들에게 소망을 주는 가르침이 들어있는 책이다.

불교 등 다른 이들이 말하는 헛됨과는 다르다. 전도서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 종종 착각하고는 하는데, 전도서의 목적은 이름 그대로 전도를 위한 것이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뜻이 중심이자 핵심이며 그것을 잊고 세상 일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지혜조차도 창조주의 뜻에 따라 사는 삶 앞에서는 헛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2.3 다른 책과의 연관 관계

저자가 잠언의 저자이다 보니 잠언과의 연결이 매우 깊고, 잠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더욱 어렵고 깊은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 가득하다. 대표적으로, 지혜마저도 헛됨을 역설하며 잠언 초반부의 나오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이 근본이다."란 것을 또 한 번 강조한다. 아니, 애초에 12장의 마지막 구절은 솔로몬이 여러 잠언을 썼다는 자랑이 적혀있다. (...)

코헬렛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교만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이것은 잠언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기도 하며, 잠언 전체가 이 교만을 하지 말라는 법과 다름없다. 전도서의 가르침대로라면, 성경을 통해 진리를 깨우쳤다 "믿고" 주장한들, 길에서 죽어가는 이를 모른 체하거나, 권력에 부역하여 양심을 속인다거나 언어가 어쨌건, 실제 행동과 드러나는 결과가 모순적이라면 애써 자기최면으로 얻은 진리조차 헛된 것이다. 그리고 잠언과 전도서 모두가 경고하는 이 교만의 결과는 죽음이다. [10]

3 제목의 번역

코헬렛은 지혜서에 속하는 책으로 잠언 다음에 등장한다.

개신교 성경과 공동 번역 성서에는 '전도서'라고 되어 있으며, 가톨릭 성경에는 원래 뜻을 존중하기 위해 히브리어 '코헬렛'을 그대로 표기했다. 중국어 성경 이름은 전도서傳道書인데 이는 코헬렛을 ‘전도자’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전도자의 뜻에 오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정확히 하기 위해 영어로 중역하면 One who delivers providence, 즉 섭리(도)를 전달하는 자라는 뜻이 된다.

예전의 가톨릭 성경도 ‘전도서’였다. 중국어 성경 이름을 그대로 번역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기독교로 바뀐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최근의 ‘주교회의 판’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을 따라 ‘코헬렛’으로 바꿨다. 이것은 그냥 이름 해석하느라 씨름하지 말고 원어를 때려 박자는 발상이었는데, 예를 들어, '보석'이란 필명의 작가를 후대에서 보배로운 돌, 귀한 돌, 디딤돌, 동시대의 배우 정보석이다, 그게 아니라 감옥에서 보증금으로 풀려난 범죄자다.. 등 쓸데없이 복잡하게 해석하지 말고 그냥 '보석'이라고 읽으면 된다는 식이다. 작가가 코헬렛이라 적은 건 분명하니 그냥 그렇게 읽자는 것이다.

코헬렛의 어원은 카알(모으다)이다. 동사인 ‘카알’의 분사형태가 ‘코헬렛’이다. 직역하면 ‘모으는, 소집하는’ 그런 의미가 되겠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으고 소집하는 것일까? 문맥으로 보아 코헬렛의 목적이 되는 것은 ‘격언’이거나, 지혜를 구하는 ‘청중’이다. 이렇게 코헬렛은 차츰 ‘모으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모임에서 말하는 자’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히브리어 성경 이름이 ‘코헬렛’으로 정착된 것도 그런 이유다. 성경의 내용을 ‘코헬렛의 설교’로 받아들인 것이 바로 전도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인 것.

희랍어 성경인 ‘70인 역’에서는 ‘에끌레시아스테스ecclesiastes’라 했다. 직역하면 ‘불러 모으는’이란 형용사다. 원형은 에끌레시아ecclesia로 ‘소집된 모임’이란 뜻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에서는 민중들의 모임인 ‘민회’를 ‘엑끌레시아’라 했고 민회가 열린 장소를 ‘아고라agora’로 불렀다. 후대에는 장소뿐 아니라 모임 자체도 그렇게 불렀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라는 말 역시 엑끌레시아의 번역이다. ‘부름받고 나온 이들의 모임’이란 의미다.

원어, 그리스어, 한자, 그리고 코헬렛의 각종 해석을 합치면 "섭리를 전달하는 현자(지혜자)가 청중을 에클레시아로 불러 모으는 책" 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가끔 전도서라고 이걸 포교서 (...)로 해석해버리는 황당한 경우가 나오는데, 코헬렛을 전도자 전파자 조언자 현자 도인 설교자 발언자 뭘로 해석하든, 절대 "포교자"라는 뜻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전도라는 말이 사실상 포교와 동일어로 쓰이는 상황이라 전도서를 종종 포교서 (...)로 해석하는 경우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전도서의 내용은 기독교 교리의 뿌리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섭리 전달의 시작과 같은 내용이지만, 이 책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조언할 뿐 기독교나 유대교 같은 "종교"를 믿으라 포교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4 솔로몬이 쓴 책이 아니라는 의견

현대 신학자와 성서비평학자 다수는 전도서의 실제 저자는 솔로몬이 아닌, 솔로몬보다 훨씬 후대에 그의 이름을 빌려 쓴 무명의 인물(현자)이라고 보고있다. 실제로 무명의 저자가 유명한 인물을 일종의 내레이터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고대 근동 지혜문학의 흔한 형식이었다.

첫 번째 근거는 솔로몬이 무슨 이유로 이런 책을 썼겠느냐다. 못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파란만장하게 살았고 팔자 핀 신앙인이자 잘나가는 왕국의 왕으로서의 대표주자가 솔로몬이었는데 무엇이 아쉬워서 그런 사람이 어째서 죽기 전에 허무주의자로 돌변했느냐는 것이다.현자타임 비슷한 게 아닐까.

둘째, 전도서 내부의 구절들은 당대 이스라엘 왕가의 부패를 숨기지 않고 속속들이 비판하는데 역시 왕이 했다기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다. 현자타임에 야동을 지우는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그리고 전도서의 주 내용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당대 그리스를 시작으로 소아시아에 팽배해 있던 쾌락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후를 걱정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쾌락주의인데 결국 그것도 죽을 때가 되면 남는 것이 없으니 허무한 것이라 비판하는 것이다. 전도서에서는 결국 그 해답을 '하느님을 믿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사실 위의 두 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서비평학에서 중요시되는 문헌학적 근거다. 전도서에 사용되는 어휘나 표현 상당수는 솔로몬 시대보다 훨씬 후대의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 (정태현 <성서입문 하> (한님성서연구소, p. 343) 특히 많은 단어는 페르시아어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전도서가 바빌로니아에 의한 유다 정복 이후에 쓰였음을 암시한다. (Seow, C.L. "Ecclesiastes" Coogan, Michael D.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p. 944) 현대의 성서비평학자들은 전도서가 페르시아 시대에 쓰였는지, 헬레니즘 시대에 쓰였는지를 논의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솔로몬 저작설을 내세우는 이들은 거의 없다.

5 대중문화에서

허무주의(?)로 대표되는 해당 내용을 알고 로저 젤라즈니의 중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읽어보면, 주제가 한 방에 이해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카더라.(...)

허무주의적인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내용 때문에 70년대에는 Byrds가 전도서 3장에 곡을 붙인 〈Turn! Turn! Turn!〉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영화 플래툰의 첫머리에는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 전도서 11장 9절

가 자막으로 나온다.

6 기타

바다와 땅에 대한 언급을 보면 용비어천가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다. 특히 용비어천가, 곧 강남짱깨 (...)와 태조 이성계를 비교하며 진행되는 두 줄의 노래의 결론은 결국 본래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전도서와 비슷하다.[11]

  1. 뜻이 애매하지만 전도자라는 뜻과 함께 지혜자, 곧 현자를 의미한다.
  2. (교회로) 불러 모으는 자, 곧 전도자라는 뜻이 된다.
  3. 성경 전체에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이자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와 어깨를 견줄 법한 명문이다. 한국어 용언 사용의 극치를 보여주는 번역이다.
  4. 이 책의 내용을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라 무언가 교훈을 주는 것으로 파악하고 읽으려하면 이보다 어려운 말씀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5. 다윗의 아들이자 예루살렘의 임금이자 위대한 현자라는 말. 이름이 코헬렛이 아니다(...)
  6. 1장 6절은 "바람 불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누군가 바람을 불어넣어 뭔가를 허겁지겁 하다가 그 동기가 어영부영 사라지듯 세상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7. 주의, 여기서 하나님이 인생을 개떡 같이 창조했다는 생각이 들어갔다간 영지주의로 전락한다.
  8. 전도, 즉 섭리를 전한다고 하면 마땅히 따라와야 할 책이 이 전도서이지만, 실상 전도라는 말이 포교로 사용되는 현 시대의 상황에서 전도서가 자칭 "전도"에 사용되는 경우는 단 하나라도 없다 봐도 무방하다.
  9. 이러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교만의 대표적 사례가 성경에 기술되어 있는데, 바로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의 이야기.
  10. 유교적 업적을 많이 세워도 본 목적은 어디에 있으며, 위업을 달성해도 그 본 목적은 어디있느냐가 노래의 핵심이자 결말부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