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1 豪雨

Heavy rain

줄기차게 내리는 큰 를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장마 기간이나 태풍 상륙시 호우가 동반 되기도 한다.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를 집중호우라고 말하는데 12시간 동안 강우량이 80mm에 달하면 호우주의보를 내리고 150mm 이상 비가 내리면 호우경보를 발령한다. 폭염과 함께 대한민국의 여름을 가장 1년 중에서 생지옥으로 각인되게 만드는 원인 0순위. 불쾌지수의 주 원인

많은 비에 관련된 각종 세계기록은 강우 문서를 참고.

1.1 집중호우

다른말로 장대비라 부르기도 한다. 제한된 지역에서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현상인 집중호우는 강한 상승기류의 적란운이 원인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적란운은 수증기가 많은 곳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수증기를 내포한 공기는 산악지형에서 상승하는 일이 잦기때문에 산악지형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에 집중호우가 빈발하고 있다. 물론 위의 조건 말고 다른 조건으로도 집중호우가 발생한다. 커다란 공기가 만나는 전선이나 수렴대가 그것이다.

1.2 대한민국의 호우와 침수

파일:Attachment/호우/2.jpg
<그림> 12년 7월 3일 대륙발 서울 일점사 (십자포화)

1.2.1 1925년 대홍수

1925년 7월 11일~9월 6일까지 2달간 4차례에 걸쳐 태풍이 들이닥친 초유의 사례. 발생한 해의 이름을 따서 흔히 을축년 대홍수라고 불린다.

1차 홍수는 7월 6일 대만 부근에서 발생한 태풍이 11일과 12일에 중부 지방을 거쳐 북쪽으로 빠져나가면서 발생하였다. 그로 인하여 황해도 이남 지방에 300∼500㎜의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한강·금강·만경강·낙동강 등이 범람하였다.[1] 그리고 불과 4일만에 다시 태풍이 중부 지방을 통과함으로서 서울은 완전히 물바다가 되버린다. 최고 600mm의 비를 뿌린 이 태풍으로 인해 한강이 또 범람하면서[2] 인접해 있던 용산·이촌·뚝섬 등은 큰 피해를 입었고, 본래 강북에 붙어있던 잠실·신천 등은 아예 육지와 분리된 섬이 되었다. 심지어 숭례문까지 침수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하지만 이 호우로 인해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땅 속에 묻혀있던 암사동 유적지와 풍납토성 등이 이 때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3차 홍수는 8월 초 중국 장강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관서 지방을 관통하면서 압록, 대동, 청천강 등이 범람했다.

4차 홍수는 8월 말 마리아나 제도에서 발생한 태풍이 9월 6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부 지방을 관통하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낙동, 영산, 섬진강 등이 범람하게 되었다.

종합적인 피해 상황으로는 64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약 6만 여개의 집들이 침수·붕괴·유실되었으며, 약 1만 헥타르 가량의 논밭이 유실되었고, 피해 금액은 약 1억 300만엔[3] 가량으로 집계되었다.

한편 이때의 일을 교훈 삼아 조선총독부는 한강과 그 주변 지류에 대대적인 제방 공사를 단행하게 된다.

1.2.2 1990년 9월 한강 대홍수

1990년 9월 중국에 상륙한 제17호 태풍 '도트'가 서울 상공을 통과하는 저기압과 연결되면서, 9월 9~12일에 걸쳐 한강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이 기간동안 경기도 이천군에는 581mm, 서울특별시에는 486mm의 강우량이 기록되었다. 말 그대로 도트딜

가장 큰 피해는 고양군 일대에서 발생하였는데, 한강의 수위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높아지면서[4]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現 고양시 덕양구 신평동)의 한강 제방이 붕괴, 평야지대에 위치한 능곡과 일산(신도시 개발 이전의 옛 일산) 전체가 물에 잠겨 5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한강 뿐만 아니라 지천에서도 홍수가 발생하여[5], 안양천 쪽의 광명시왕숙천 쪽의 구리시 등 수도권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왕숙천에서 많은 양의 부유물이 떠내려와 당시 건설 중이던 강동대교를 덮쳐, 교량 일부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때 고양군 지역의 한강 제방을 견고하게 복구하면서 고양과 파주 등 경기도 서북지역 개발에 대비하고자 제방 위에 간선도로를 지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자유로다.

1.2.3 1996년 7월 홍수

1996년 7월 26~28일에 걸쳐 경기도 북부(파주시, 연천군 등)와 강원도 북부(철원군, 화천군, 춘천시, 인제군 등)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6]

아무래도 이 일대가 전방지대라 군부대 쪽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특히 군부대가 있는 곳은 대체로 산골짜기 쪽이 많은지라 다수의 군부대 막사가 산사태로 매몰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실종된 군인 수만 60여 명에 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집중호우가 한탄강임진강으로 흘러들었고, 한탄강 하류에 있던 작은 규모의 연천붕괴되면서 임진강 하류의 문산 일대를 직격했다. 저지대에 시가지가 있던 문산은 3m 깊이로 물에 잠겨버렸고, 시가지 전체가 거의 초토화되는 피해를 입었다. 문산 시가지는 이후 1998년과 1999년에도 홍수로 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견디다 못하여 문산역과 시가지 일부를 5m 높이로 올려버렸다.

붕괴된 연천댐은 철거하고, 현재는 그보다 약간 상류에 훨씬 더 큰 규모의 한탄강댐을 건설 중이다(2016년 완공 예정). 다만 댐이 완공될 때가 되니 이번엔 몇 년째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어서(...) 본래 홍수 조절만을 위해 건설되는 댐의 용도를 가뭄 대비도 가능한 다목적댐으로 바꾸어 달라는 요구가 있다.

1.2.4 1998년 8월 집중호우

photo1_kyong.jpg
1998년 7월 31일~8월 1일 사이의 밤중에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최대 300mm에 달하는 기습적인 폭우가 내려 계곡에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 지리산 야영객과 주민 등 10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리산 폭우 참사 참조. 하지만 이 참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8월 18일까지 집중호우는 전국을 돌며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전국적으로 엄청난 비 피해가 발생했다.[7] 서울의 경우 8월 4일 211.4mm, 6일 122.9mm, 8일 332.8mm의 강우량을 기록하는 등[8] 거의 20일간 매일같이 비가 쏟아졌다. 이 해 8월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1237.8mm(...)[9]

전국적으로 사망 및 실종 324명, 재산피해 1조 2487억원을 기록. 이 때의 집중호우는 특히 좁은 지역에 시간당 100mm에 가까운 엄청난 폭우가 단시간 쏟아지는 특징을 보여 게릴라성 집중호우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참고

동일한 시기에 중국 양쯔강 일대도 기록적인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 쪽에 폭우를 쏟아낸 비구름대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까지 이동하며 한국에도 폭우를 뿌린 것(...).

1.2.5 2010년 9월 광화문광장 침수

광화문광장 문서를 참조.

1.2.6 2011년 수도권 폭우 사태

해당 문서 참조.

1.2.7 2014 동남권 폭우 사태

해당 문서 참조.

1.3 해외

1.4 관련 문서

2 감탄사

국어사전엔 없지만 일상에서 안도의 한숨이나 환호성으로 많이 쓰인다.

395d133ec4c38e5a68430f0c51ed6108.gif
특히 축구선수 호날두가 기분 좋으면 자주하는 감탄사. 위 움짤은 2014 발롱도르 수상 당시.

파일:7LYO0xp.gif

4e1d614d74f8831ef430fa36a6cc92f1.gif

파일:QYBlKpV.gif
왜 변신을 해도 하필 2인자로...

또한 한국 한정으로 그의 골 셀레브레이션의 별명이자 아예 그의 별명(...)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에선 "호우" 로 알고있는 사람이 많지만, 호날두가 뛰고 있는 스페인에선 "호우" 가 아닌 "Siuuuu" 이다!

22.gif
진성 호타쿠인 가레스 베일은 심지어 저 유치한 세레머니마저 따라한다!!
따라 할 수도 있지 왜 우리 동생 기를 죽이고 그래욧!

15668215918_6d0513f1d7_o.gif
레알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도 호날두가 골을 넣자 따라한 적이 있다.

20160313105512_ogcxpnyu.gif
디에고 코스타도 시전했다.

파일:Attachment/5917854988.gif
누구처럼 어설프게 따라하면 이렇게 된다...[10]

파일:2oPivhT.gif
이창민도 U-23 알제리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고 따라했다.

782618870_f402f9dd.gif

레알 마드리드 빠인 루세프도 따라했다
  1. 한강 수위가 10m를 돌파하기도 했다.
  2. 이 때 당시 한강 수위가 사상 최고치인 13.59m를 찍었다.
  3. 당시 1년 예산이 1억 800만엔 정도였다.
  4. 을축년 대홍수 이후 최고 기록.
  5. 한강 본류가 불어나면서 지류의 흐름이 본류라 빠져나가지 못하고 범람하였다.
  6. 동일 시기 발생한 북한의 홍수와도 연관이 있다.
  7. 여간해서는 폭우가 내리지 않는 경북 북부지역도 예외가 아니었고, 영동지방 정도만 큰 피해가 없었다.
  8. 이 당시 서울과 2시간 거리인 강화군 일대에 8월 6일 하루에만 무려 619mm의 비가 내렸다. ㅎㄷㄷ
  9. 평년값으로 서울의 1년 강수량과 맞먹는다!
  10. 시기는 고종수의 세레머니가 더 이르다. 일명 좆레머니(...) 이 세레머니를 하고 고종수는 다리에 쥐가 나 실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