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1라운드 이후 8강, 4강, 3&4위전, 결승에 대하여 정리하는 페이지.

1934년 초대 유로 대회월드컵 8강은 1934년 5월 31일부터 시작되었다. 이 당시 경기는 연장을 치르고도 무승부로 끝나면 재경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8강의 이탈리아 vs 스페인의 시합이 그리하였다. 이 경기는 5경기로 서술한다.

1 8강

1.1 1경기 이탈리아 1 vs 1 스페인

경기장스타디오 조반니 베르타
피렌체 - 이탈리아
경기일[1]1934년 5월 31일 16:30
(1934년 5월 31일 23:30)
국 가이탈리아스페인
득 점11
득점자조반니 페라리 (44')루이스 레게이로 (30')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잔피에로 콤비GK 주장선발리카르도 사모라GK 주장
루이지 알레만디시리아코
에랄도 몬첼리오하신토 킨코세스
루이스 몬티루이스 레게이로파일:Attachment/Goal.jpg
마리오 피치올로실라우렌
아르만도 카스텔라치호세 무게르사
라이문도 오르시고로스티사
안젤로 스키아비오라푸엔테
엔리케 구아이타이라라고리
조반니 페라리이시드로 랑가라
주세페 메아차파일:Attachment/Goal.jpg페데
교체귀도 마제티GK교체후안 호세 노게스GK
주세페 카반나GK라몬 사발로
비르지니오 로세타일라리오
움베르토 칼리가리스기예르모 캄파날
루이지 베르톨리니마르쿨레타
마리오 바르글리엔루이스 마린
아틸리오 페라리스마르틴 벤톨라
아틸리오 데마리아솔레
안필로지오 구아리시시몬 레케
펠리체 보렐차초
피에트로 아르카리크리산토 보스


두체[2]의 염원대로 이탈리아는 8강에 안착하였고 다음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당시 유럽에서 자타공인 최강이었던 잉글랜드를 비영연방팀 중 최초로 꺾었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까지 이탈리아와의 전적에서 3승 4무 3패의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무솔리니에게 씨X 니들. 이 대회에서 우승을 못하면 다 X되는거야. 아주 X되는거라고라는 협박이라 쓰고 지상 명령이라 읽는다과 함께 홈팬들의 절대적인 성원을 업고 있는 이탈리아가 더 유리한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경기 시작과 함께 이탈리아는 맹공을 펼쳐 스페인의 문전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홈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탈리아는 전반 30분, 스페인의 레게이로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았고 더욱 약이 올라 공세를 강화했다.

여기서 스타로 떠오른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스페인의 주장이자 주전 골키퍼였던 리카르도 사모라[3]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내로라하는 공격수들인 주세페 메아차, 조반니 페라리, 엔리케 구아이타의 슈팅을 잇달아 선방하여 이탈리아 홈팬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선방에도 불구하고 44분에 페라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여[4] 경기는 연장전에 접어들었고, 결국 1대 1로 끝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그 다음 날 재경기를 치러야 했다.

1.2 2경기 오스트리아 2 vs 1 헝가리

경기장스타디오 리또리알레
볼로냐 - 이탈리아
경기일1934년 5월 31일 16:30
(1934년 5월 31일 23:30)
국 가오스트리아헝가리
득 점21
득점자요한 호르바트 (8')
카를 치셰크 (51')
기오르기 사로시 (60')(PK)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피터 플라처GK선발안탈 사보GK
카를 제스타라슬로 슈테른베르크주장
프란츠 시자요세프 바고
요제프 스미스틱귤라 슈츠
프란츠 바그너안탈 살라이
한스 우르바네크이슈트반 팔로타슈
루디 피에틀기오르기 사로시파일:Attachment/PKGoal.jpg
마티아스 진델라게자 톨디
요세프 바이칸이슈트반 아바르
요한 호르바트주장 파일:Attachment/Goal.jpg임레 마르코슈 63'
카를 치셰크파일:Attachment/Goal.jpg티보르 케미니
교체루돌프 라프틀GK교체요세프 하더GK
프리드리히 프란츨GK귤라 푸토
빌리 슈마우스산도르 비로
안톤 얀다귤라 라자르
레오폴드 호프만귤라 폴가르
게오르그 브라운레슈 숌라이
마티아스 카부레크야노슈 두다슈
요세프 스트로가보르 사보
요세프 하스만예누 빈체
요한 발츠호퍼이슈트반 타마쉬
토니 샬팔 텔레키


오스트리아는 전반 8분만에 주장 호르바트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 나갔다. 그리고 후반 6분 또 다른 공격수 치셰크가 추가골을 넣어 승부를 오스트리아쪽으로 가져가는 듯 했지만 헝가리기오르기 사로시가 후반 15분에 얻은 페널티킥 찬스를 골로 연결하여 승부를 안개 속으로 빠뜨렸다.

하지만 그 안개를 걷어버린 것은 오스트리아가 아닌 헝가리였으니 헝가리의 임레 마르코슈가 페널티킥 골이 터진지 3분만에 퇴장을 당함으로서 헝가리는 그대로 오스트리아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1.3 3경기 체코슬로바키아 3 vs 2 스위스

경기장스타디오 베니토 무솔리니
토리노 - 이탈리아
경기일1934년 5월 31일 16:30
(1934년 5월 31일 23:30)
국 가체코슬로바키아스위스
득 점32
득점자프란티세크 스보보다 (24')
이리 소보트카 (49')
올드리히 네예들리 (82')
레오폴트 키엘홀츠 (12')
빌리 얘기 (78')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GK 주장선발프랑크 세체하예GK
라디슬라프 제니셰크발터 바일러
요세프 쉬티로키세베리노 미넬리주장
루돌프 크르칠빌리 폰 케널
슈테판 참발알베르 갱샤르
요세프 코슈탈레크페르낭 자카르
안토닌 푸치레오폴트 키엘홀츠파일:Attachment/Goal.jpg
올드리히 네예들리파일:Attachment/Goal.jpg빌리 얘기파일:Attachment/Goal.jpg
이리 소보트카파일:Attachment/Goal.jpg알프레드 얘크
프란티세크 스보보다파일:Attachment/Goal.jpg앙드레 아베글렁
프란티세크 유네크에른스트 후프슈미트
교체체스티미르 파츠젤GK교체레나토 비초제로GK
야로슬라프 부르그르빌리 후베르GK
블라스티밀 코페츠키루이 고베
안토닌 보디츄카막스 바일러
야로슬라프 보우체크아르날도 오르텔리
게자 칼로츠사이에드멍 루아쇼
요세프 실니에른스트 프리크
레이몽 파셀료
알베르트 뷔체
에르빈 호흐슈트라사
오토 뷸러
주세페 보시


전력상으로 보면 체코슬로바키아스위스에 비해 앞섰다. 하지만 스위스체코슬로바키아가 갖지 못한 또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응원이었다. 당시 경기를 관람한 관중이 12,000명이었는데 그 중 만 명이 넘는 수가 스위스 원정 응원단이었다.[5]

멀리까지 원정 응원을 와준 스위스 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18분만에 스위스의 키엘홀츠가 선제골을 넣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도 6분 후 스보보다의 골로 응수하였고 후반 4분 만에 소보트카의 역전골로 경기를 뒤집고 말았다. 스위스는 후반 33분, 얘기의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으로 끌고 가서 스위스 팬들의 기대를 높였지만 그 기대는 4분 만에 대회 득점왕 네예들리가 철저히 즈려밟아버렸다. 응원만으로는 실력차를 뒤집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

1.4 4경기 독일 2 vs 1 스웨덴

경기장스타디오 산 시로
밀라노 - 이탈리아
경기일1934년 5월 31일 16:30
(1934년 5월 31일 23:30)
국 가독일스웨덴
득 점21
득점자카를 호만 (60')
카를 호만 (63')
괴스타 둔케르 (82')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빌리발트 크레스GK선발안데르스 리드베리GK
빌리 부시닐스 악셀손
지그문트 하링어스벤 안데르손
루돌프 그람리히닐스 로시엔주장
파울 질린스키루네 칼손
프리츠 스체판주장안슈트 안데르손
스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괴스타 둔케르파일:Attachment/Goal.jpg
에드문트 코넨라그나르 구스타프손
에른스트 레너스벤 요나손
오토 시플링크누트 크룬
카를 호만파일:Attachment/Goal.jpg 파일:Attachment/Goal.jpg토레 셸레르
교체프리츠 부흐로GK교체에이바르 비드룬트GK
한스 야코프GK오토 안데르손
한스 슈바르츠예리크 그라나트
라인홀트 뮌센베르크칼 욘손
에른스트 알브레흐트군나르 얀손
파울 야네스군나르 올슨
루돌프 노아크아르비트 손
마티아스 하이데만
야코프 벤더
요제프 스트렙
프란츠 디네르트


이 경기에서 승부를 가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분이면 충분했다. 독일의 카를 호만이 후반 15분과 18분에 연속으로 골을 넣어 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스웨덴은 후반 37분에서야 괴스타 둔케르가 만회골을 넣어 쫓아가려 했지만 시간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스웨덴의 이변은 1라운드에서 끝나고 말았다.

1.5 5경기[6] 이탈리아 1 vs 0 스페인

경기장스타디오 조반니 베르타
피렌체 - 이탈리아
경기일1934년 6월 1일 16:30
(1934년 6월 1일 23:30)
국 가이탈리아스페인
득 점10
득점자주세페 메아차 (11')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잔피에로 콤비GK 주장선발후안 호세 노게스GK
루이지 알레만디라몬 사발로
에랄도 몬첼리오하신토 킨코세스주장
루이스 몬티루이스 레게이로
루이지 베르톨리니실라우렌
아틸리오 페라리스호세 무게르사
라이문도 오르시마르틴 벤톨라
아틸리오 데마리아시몬 레케
엔리케 구아이타이시드로 랑가라
주세페 메아차파일:Attachment/Goal.jpg차초
펠리체 보렐크리산토 보스
교체귀도 마제티GK교체리카르도 사모라GK
주세페 카반나GK시리아코
비르지니오 로세타일라리오
움베르토 칼리가리스기예르모 캄파날
마리오 피치올로마르쿨레타
마리오 바르글리엔루이스 마린
아르만도 카스텔라치고로스티사
안젤로 스키아비오라푸엔테
안필로지오 구아리시솔레
조반니 페라리이라라고리
피에트로 아르카리페데

스페인의 선발 명단에서 전날 미친 활약을 보였던 리카르도 사모라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상의 악화였는데 그 부상은 전 날의 경기에서 조반니 페라리에게 유일하게 골을 먹던 상황에서 충돌로 인해 입었던 것이었다. 사모라는 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잇단 선방으로 무승부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스페인의 주장 완장은 사모라의 앞에서 1차 방어선 역할을 했던 하신토 킨코세스가 차고 이탈리아와의 재경기를 준비했다.

경기는 주세페 메아차의 골로 1대 0으로 이탈리아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앞서 열린 경기와 함께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된다. 그 이유는 판정 시비 때문인데 이탈리아의 격렬한 플레이에 제동을 걸어야할 심판의 휘슬이 계속 침묵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이탈리아 선수들이 거칠어서 힘든데 관중들은 귀청 따갑게 ‘이탈리아 만세~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 하며 살벌한 응원전을 펼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해야할 심판까지 세트로 이탈리아 버프로 인해위축된 상황이라 스페인이 이 경기에서 이길 확률은 없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결국 이 경기에서 심판을 맡았던 스위스의 르네 메르세는 나중에 스위스 축구 협회로부터 정직 처분을 당한다.[7]

2 4강

2.1 1경기 이탈리아 1 vs 0 오스트리아

경기장스타디오 산 시로
밀라노 - 이탈리아
경기일1934년 6월 3일 16:30
(1934년 6월 3일 23:30)
국 가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득 점10
득점자엔리케 구아이타 (19')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잔피에로 콤비GK 주장선발피터 플라처GK
루이지 알레만디카를 제스타
에랄도 몬첼리오프란츠 시자
루이스 몬티요제프 스미스틱주장
루이지 베르톨리니프란츠 바그너
아틸리오 페라리스한스 우르바네크
라이문도 오르시루디 피에틀
안젤로 스키아비오마티아스 진델라
엔리케 구아이타파일:Attachment/Goal.jpg요세프 바이칸
조반니 페라리카를 치셰크
주세페 메아차토니 샬
교체귀도 마제티GK교체루돌프 라프틀GK
주세페 카반나GK프리드리히 프란츨GK
비르지니오 로세타빌리 슈마우스
움베르토 칼리가리스안톤 얀다
마리오 피치올로레오폴드 호프만
마리오 바르글리엔게오르그 브라운
아르만도 카스텔라치마티아스 카부레크
아틸리오 데마리아요세프 스트로
안필로지오 구아리시요세프 하스만
펠리체 보렐요한 발츠호퍼
피에트로 아르카리요한 호르바트


사실 개최국이었던 이탈리아보다 오스트리아를 우승 1순위로 예상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3달 전의 친선 경기에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를 4대 2로 이겼는데 그 장소가 이탈리아의 홈[8]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경기에서 오스트리아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 마티아스 진델라까지 빠진 상황에서 거둔 승리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자신감은 더욱 컸다. 이탈리아 역시 이 패배로 인한 충격은 매우 커서 이탈리아와 유벤투스의 주전 수비수이자 당시 이탈리아 A매치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던 움베르토 칼리가리스도 이 시합을 끝으로 더 이상 A매치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9]

이런 상황의 시합이라 오스트리아가 다시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올라가겠구나 하는 기대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퍼져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는 역시 베니토 무솔리니의 지상 명령과 이탈리아 팬들의 광적인 응원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을 뒤엎은 이탈리아 선수들의 투지를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귀화시킨 엔리케 구아이타의 결승골을 끝까지 지켜 1대 0의 신승을 거둔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결승골의 주인공 구아이타가 아닌 이탈리아의 센터 하프 루이스 몬티였다. 몬티는 이 경기에서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진델라를 경기장에서 지워버리는 데 성공하여 역시 자신이 세계 최고의 터프 가이이자 수비수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 하지만 오점도 꽤나 분명한 경기임에는 틀림없는데 몬티가 진델라를 막는 과정에서 숱한 파울을 저질렀지만 심판의 휘슬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경기 내용을 대화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1. 평상시
몬티: 파울 좀 하면 어떠냐 진델라만 막으면 그만이지
(퍽)
진델라: 꽥!!

2. 위급한 상황 시
몬티: 안 되겠소. 쏩시다!
(빠각)
진델라: 이보시오, 이보시오! 심판양반!! 이거 파울 아니오? 아이유우!
심판: 안정을 취하세요. 흥분하면 경기에서 퇴장당할 수 있습니다
진델라: 파울이 아니라니, 아니, 이게 파울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파울이 아니라니!! 이게, 이게 파울이 아니라니!! 이게, 앓흐 앓흐 앓흐...
(1과 2의 상황이 90분까지 계속 반복)

2.2 2경기 체코슬로바키아 3 vs 1 독일

경기장스타디오 나치오날레 PNF
로마 - 이탈리아
경기일1934년 6월 3일 16:30
(1934년 6월 3일 23:30)
국 가체코슬로바키아독일
득 점31
득점자올드리히 네예들리 (21')
올드리히 네예들리 (69')
올드리히 네예들리 (80')
루돌프 노아크 (62')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GK 주장선발빌리발트 크레스GK
야로슬라프 부르그르빌리 부시
요세프 쉬티로키지그문트 하링어
루돌프 크르칠루돌프 노아크파일:Attachment/Goal.jpg
슈테판 참발파울 질린스키
요세프 코슈탈레크프리츠 스체판주장
안토닌 푸치스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파일:Attachment/Goal.jpg
올드리히 네예들리파일:Attachment/Goal.jpg 파일:Attachment/Goal.jpg 파일:Attachment/Goal.jpg야코프 벤더파일:Attachment/Goal.jpg
이리 소보트카에드문트 코넨
프란티세크 스보보다에른스트 레너
프란티세크 유네크오토 시플링
교체체스티미르 파츠젤GK교체프리츠 부흐로GK
라디슬라프 제니셰크한스 야코프GK
블라스티밀 코페츠키한스 슈바르츠
안토닌 보디추카라인홀트 뮌센베르크
야로슬라프 보우체크루돌프 그람리히
게자 칼로츠사이에른스트 알브레히트
요세프 실니파울 야네스
마티아스 하이데만
요제프 스트렙
카를 호만
프란츠 디네르트


체코슬로바키아올드리히 네예들리가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이 해트트릭으로 인하여 네예들리는 득점 선두로 올라갔으며 체코슬로바키아는 결승행 티켓도 선물도 받았다.
그리고 히틀러는 이 경기에서 패한 독일 선수들을 구속시켜주었다는환영해주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3 3&4위전

3.1 독일 3 vs 2 오스트리아

경기장스타디오 조르조 아스카렐리
나폴리 - 이탈리아
경기일1934년 6월 7일 18:00
(1934년 6월 8일 01:00)
국 가독일오스트리아[10]
득 점32
득점자에른스트 레너 (1')
에드문트 코넨 (27')
에른스트 레너 (42')
요한 호르바트 (28')
카를 제스타 (54')
라인업 이름 비고 #00000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한스 야코프콥GK선발피터 플라처GK
빌리 부시카를 제스타파일:Attachment/Goal.jpg
파울 야네스프란츠 시자
라인홀트 뮌센베르크요제프 스미스틱
파울 질린스키프란츠 바그너
프리츠 스체판주장한스 우르바네크
마티아스 하이데만게오르그 브라운
에드문트 코넨파일:Attachment/Goal.jpg루디 피에틀
에른스트 레너파일:Attachment/Goal.jpg 파일:Attachment/Goal.jpg요세프 바이칸
오토 시플링요한 호르바트주장 파일:Attachment/Goal.jpg
야코프 벤더카를 치셰크
교체빌리발트 크레스GK교체루돌프 라프틀GK
프리츠 부흐로GK프리드리히 프란츨GK
지그문트 하링어빌리 슈마우스
한스 슈바르츠안톤 얀다
루돌프 그람리히레오폴드 호프만
에른스트 알브레흐트마티아스 진델라
루돌프 노아크마티아스 카부레크
스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요세프 스트로
요제프 스트렙요세프 하스만
카를 호만요한 발츠호퍼
프란츠 디네르트토니 샬

역대 월드컵 최초로 3&4위전이 나폴리의 지오르지오 아스카렐리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시합에서 먼저 기세를 올린 쪽은 독일이었다. 경기를 시작한지 1분 만에 독일의 레너가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팽팽한 경기 속에 전반 27분, 독일의 에드문트 코넨이 추가골을 넣었지만 유럽 최강이라 불리던 오스트리아의 뒷심은 독일을 당황케하기에 충분했다. 코넨이 추가골을 넣은지 1분만에 주장 호르바트가 만회골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패한 것이 후유증이 컸기 때문일까? 독일의 레너가 전반 42분에 골을 추가함으로서 독일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결국 독일오스트리아를 꺾고 3위를 차지하였다.

4 결승

4.1 이탈리아 2 vs 1 체코슬로바키아

경기장스타디오 나치오날레 PNF
로마 - 이탈리아
경기일1934년 6월 10일 17:30
(1934년 6월 11일 00:30)
국 가이탈리아체코슬로바키아
득 점21
득점자라이문도 오르시 (81')
안젤로 스키아비오 (95')
안토닌 푸치 (71')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잔피에로 콤비GK 주장선발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GK 주장
루이지 알레만디라디슬라프 제니셰크
에랄도 몬첼리오요세프 쉬티로키
루이스 몬티슈테판 참발
루이지 베르톨리니요세프 코슈탈레크
아틸리오 페라리스한스 우르바네크
라이문도 오르시파일:Attachment/Goal.jpg안토닌 푸치파일:Attachment/Goal.jpg
안젤로 스키아비오파일:Attachment/Goal.jpg올드리히 네예들리
엔리케 구아이타이리 소보트카
조반니 페라리프란티세크 스보보다
주세페 메아차프란티세크 유네크
교체귀도 마제티GK교체체스티미르 파츠젤GK
주세페 카반나GK프리드리히 프란츨
비르지니오 로세타야로슬라프 부르그르
움베르토 칼리가리스블라스티밀 코페츠키
마리오 피치올로안토닌 보디추카
마리오 바르글리엔야로슬라프 보우체크
아르만도 카스텔라치게자 칼로츠사이
아틸리오 데마리아요세프 실니
안필로지오 구아리시
펠리체 보렐
피에트로 아르카리


이 대회의 결승전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펼쳐졌다. 이탈리아인들은 당시 굶주림 등으로 인한 불만을 축구장에서 선수들에게 풀곤 했다. 매일 응원이라고 하는 게 살벌하게도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였다. 게다가 이 경기는 무솔리니까지 직접 관람을 했다.[11] 이탈리아의 긴장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12]

지면 된다는 절박함과 최강 오스트리아를 꺾었다는 자부심으로 뭉친 이탈리아였지만 역시 리카르도 사모라, 잔피에로 콤비와 함께 유럽에서 최강을 다투던 골키퍼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가 버티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골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시종일관 치열한 공방전이 지속되던 가운데 후반 26분 체코슬로바키아의 푸치가 선제골을 넣었다. 이탈리아의 관중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는지 더욱 흉폭해지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의 얼굴도 같이 굳어졌다. 응원은 광적으로 변해갔다. 응원이 아닌 야유로마의 PNF 스타디움을 가득 메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를 외치던 관중들이 아니었다. 응원 구호도 그냥 '죽어라'로 바뀌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탈리아를 구한 사람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라이문도 오르시였다. 그는 후반 36분, 오른쪽에서 구아이타의 패스를 받아 골대를 등진 채 오른발로 공을 잡은 뒤 그대로 골문을 향하여 왼발로 회심의 터닝 슈팅을 날렸다. 볼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왼쪽으로 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골대 오른쪽을 꿰뚫었다. 이 기적과도 같은 골로 이탈리아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13]

경기는 그대로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이 대회 세 번째 연장전이자 결승전 첫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연장 전반 5분, 체코슬로바키아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주세페 메아차의 패스를 받은 스키아비오가 오른쪽 진영에서 날린 슈팅이 플라니츠카의 방어를 뚫고 골문에 박혔다.

이탈리아는 결국 이 골을 끝까지 지켜 1934년 월드컵의 챔피언이 되었다.

200902112028441.jpg

야! 신난다~ 우승이다. 우리는 살았다
  1. 괄호안은 한국시간
  2. 영도자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무솔리니의 칭호이다
  3. 이 사람이 바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최소 실점을 기록한 골키퍼에게 주는 사모라 상의 모티브가 된 골키퍼이다
  4. 여기에서 넣은 페라리의 골 상황은 사모라에 대한 명백한 파울이었기 때문에 골이 취소되었어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5. 유럽 지도를 보면 이탈리아의 바로 위는 스위스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토리노이탈리아 북부의 도시이고, 당시에는 알프스에 각종 터널들도 뚫려있는 상황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전 당시 마르세유를 오렌지 색 물결로 물들였던 네덜란드 응원단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여기가 스위스야 이탈리아야
  6. 8강 1경기의 재경기
  7. 사실 이 메르세는 스위스 컵 대회 결승 등 굵직한 대회를 많이 경험하였고 이 대회에서 개막전을 맡는 등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던 심판이었다. 게다가 중립국인 스위스 출신이라 당시 첨예했던 국제 정세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껏 판정을 할 인물이라는 평가가 컸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뇌물 수수의 의심도 받는 등 여러모로 체면을 구기게 된다
  8. 토리노에서 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9. 당시 감독이었던 비토리오 포초가 칼리가리스의 플레이에 실망했다는 설이 제일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 월드컵에서 경기에 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명단에 포함은 시킨 걸로 봐서 완전히 기대를 접지는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10. 전통적으로 독일과 유니폼 색깔이 흰색으로 같았기 때문에 인근의 SSC 나폴리의 유니폼을 빌렸다
  11. 사실 무솔리니는 매 경기를 구경했지만 예선과 결승의 긴장감은 당연히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12. 이탈리아가 만약 경기에서 지면 진짜 피바다 될 기세였다. 무솔리니가 나서서 이탈리아 선수들을 총살시키지 않는다 해도 흥분한 관중들에 의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3. 정말 기적 맞다. 오르시가 이 광경을 재현하기 위해 나중에 기자들 앞에서 비슷한 상황을 스무 번 만들었지만 그 때는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