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돌

1 특징

한국에서는 아이돌 그룹들을 '가수'로 보는 시각이 주류인 것에 비해,[1] 일본에서는 아이돌 그룹은 '가수'라기보다는 '엔터테이너'로 여겨진다. 즉 가수 활동은 일본 아이돌의 본업이 아니라, 예능, 드라마, 모델 등 다양한 연예계 활동의 일부인 것이다. 또 마찬가지로 어린 배우나 성우 등이 다방면에서 활동하면 '아이돌 배우', '아이돌 성우' 등으로 불린다. 물론 이런 수식어들의 어원은 위에서 설명한 '아이돌 가수'이다. 아이돌 생활을 마치고 나서 본업 가수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나 모델, 버라이어티 탤런트 쪽으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본 아이돌은 가창력이나 춤 실력보다는 개개인의 캐릭터나 컨셉의 매력, 방송에서의 예능감 등을 중심으로 육성된다. 다만 해당 분야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아이돌'이라는 전제 하에서 평가받기 때문에 그 아이돌의 음반이나 예능프로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해서 그 아이돌이 방송인으로서나 뮤지션으로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미성숙한 아이가 노력한다'는게 아이돌의 세일즈포인트이기 때문에 대중과 업계의 평가기준치는 엄청나게 낮다. 때문에 대개의 아이돌돌은 졸업 이후 높아진 프로페셔널로서의 기준치를 넘지 못해 혹평을 받거나 조용히 사라진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지만.[2]

1.1 음악

일단 장르적으로는 다양하고 유행의 변화가 빠르다. 여자 아이돌의 경우 프로듀서 층쿠헬로 프로젝트의 그룹들, 대표적으로 모닝구 무스메훵크(Funk)와 복고적인 댄스음악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후 나타난 것이 여자아이들이 밴드 풍의 노래를 부르는 '걸즈 락'이다. 대표적으로 AKB48이 크게 성공했다. 또 퍼퓸이 인기를 끈 이후 디스코풍의 신스팝이 잠깐 유행하기도했다. AKB48이 예전같지 않은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그룹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한류의 영향으로 힙합댄스를 하는 그룹도 있다.

남자 아이돌의 경우 거의 쟈니스가 장악하고 있다. SMAP발라드나 쉬운 팝을 부르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이어 아라시가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이후 다양한 그룹들을 배출했으나 경쟁력이 없어서 외면당했다. 게다가 한국 아이돌의 일본 진출로 그 수준이 현저히 드러났다. 오히려 아이돌이라 하기 뭐한 댄스 그룹 EXILE이 인기를 끌고 있고 쟈니스는 차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게 현실이다. 사실 쟈니스는 아라시 이후 제대로 된 아이돌 스타를 배출하지 못해서 날이 갈수록 위세가 떨어지는 형국이다.

2 역사

2.1 1970년대

일본에서는 1960년대 이전까지는 가수나 배우를 대상으로 아이돌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미소라 히바리요시나가 사유리처럼 인기가 있는 여성 스타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그냥 '청춘 스타'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1970년대에 젊은층을 대상으로 대중가요를 부르는 청순파 가수를 가리키는 의미로 '아이돌 가수'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일본의 아이돌의 경우. 실적으로 남성을 지칭하는것 보다는 주로 여성을 지칭하는데 쓰였다. 50~60년에 당시 프랑스 영화와 스타들이 일본인들에게 굉장한 붐을 끌었다.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아이돌을 찾아라'(Cherchez Idole!)와 같은 영화들과 영화스타들 그리고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여가수들 ye-ye GIRL들의 붐이 일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앨범도 내고 잠깐동안 활동하기도 하였다. 실제 당시 일본 여가수들은 엔카가수들을 제외한 LP판들은 거의다 YEYE-GIRL (폰트, 디자인, 패션등) LP판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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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바르탕 - (영화 "cherchez idole" 중에서 카메오 출연)

1963년, 프랑스의 Sylvie Vartan(실비바르탕): La Plus Belle Pour Aller Danser (1963, Cherchez l'Idole)

이들은 프랑스에서 "ye-ye GIRL" 불리며 패셔니스타로 지칭되는등 수영복 화보를 찍기도 하였다. 그리고 63년에 데뷔한 "65년 유로비전 컨테스트송" 수상자인 프랑스갈 등이 인기가 많았다.

1970년 일본 여성 아이돌 가수

당시 유럽가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유로비전 컨테스트송" 세트구성과 룰이 비슷한 일본의 "스타탄생" 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게 되는데. 실질적인 여 아이돌 스타들이 이곳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아마추어가수던 데뷔하지 않았던 프로가수던 신곡을 가지고 노래불러서 경쟁하는 룰을 가지고 있다.

1977년에 데뷔한 그룹 LAZY(카게야마 히로노부가 보컬로 있는 밴드)도 데뷔 직후부터 1980년까지 약 3년간 아이돌로 활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그룹은 소속사의 강압에 의거해서 한 활동이었고 현재는 하드록 그룹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1980년의 헤비메탈 선언을 기점으로 하드록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물론 여기에 기존 라이브에서 하드록 커버링이 있었다는 점도 한 몫 했는데 이는 1977년 데뷔 당시 나왔던 프로그램에서 부른 곡이 당시 자주빛 불꽃(紫の炎)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에서 불리던 딥 퍼플의 Burn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는 업계 내에서 엄연히 록 밴드로 분류 중.

2.2 1980년대

아이돌의 황금기.

70~80년대에는 아이돌 산업이 엄창나게 번창하여 수많은 아이돌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아이돌 붐" 현상이 일어났다.거품경제 시절답게 엄청나게 많은 거품아이돌들이 쏟아져나오고 그들 대부분이 거품같이 자취를 감췄다. 이 당시의 대표적인 남자 아이돌은 70년대의 고 히로미, 사이조 히데키, 노구치 고로, 80년대의 타하라 토시히코, 콘도 마사히코, 히카루GENJI 등이며 여자 아이돌로는 70년대의 야마구치 모모에, 아사오카 메구미, 아마치 마리, 핑크 레이디, 80년대의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그리고 2인조 아이돌 wink를 꼽을 수 있다. 특히 80년대는 70년대부터 시작된 아이돌붐이 절정에 달한 시기로 아이돌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80년, 82년, 85년 세 해에 데뷔한 아이돌들에 거물이 많았다. 특히 80년에 마츠다 세이코, 카와이 나오코, 카시와바라 요시에, 타하라 토시히코(가수로서), 콘도 마사히코(12월 가수데뷔) 등이 데뷔한 아이돌 풍작을 기반으로 82년에는 엄청난 수의 아이돌이 데뷔해, 당시 데뷔한 아이돌들을 '꽃의 82년조'라고 불렀다. 나카모리 아키나, 코이즈미 쿄코, 하야미 유, 호리 치에미, 이시카와 히데미, 마츠모토 이요 (신인상 수상이 82년에 행해져 82년 데뷔조로 분류)가 그 중에서도 유명. 그외에도 수많은 아이돌이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후술하는 '아이돌 사대천왕'은 전원 85년도에 데뷔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아이돌판을 생각나게 하는 수준이었다.

이 시절은 야마구치 모모에로 시작해서 마츠다 세이코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야마구치 모모에는 아이돌의 필수덕목(청순함, 가련함, 적당한 가창력, 외모)을 확립했고 마츠다 세이코는 아이돌이 어떻게 롱런 아티스트로 변해갈 수 있는지(그리고 섹스 스캔들이 터져도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면서 후대의 일본 여성 아티스트의 길을 제시했다.

한편, 이 마츠다 세이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라이벌로 나카모리 아키나가 있다. 한편 나카모리 아키나가 정점에 오른 것은 마츠다 세이코가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무기한정지한 와중이었기 때문에, 나카모리 아키나를 모모에-세이코를 잇는 후계자 격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나카모리는 82년에 데뷔한 이래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 마츠다 세이코가 결혼과 출산 등으로 주춤하던 시기에 여성가수 최초로 일본 레코드 대상 2연패(85, 86년)를 달성하고, 가수별 연간 매상 순위에서 총 4회(83, 85, 86, 87)의 1위를 차지해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나카모리는 대세였던 기존 아이돌의 밝고 귀여운 음악에서 탈피, 특유의 가창력을 길러 마츠다와 대적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츠다와 나카모리는 각각 2900여만, 2500여만의 총 판매량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80년대 아이돌 중 최고에 달하는 수치이다. 최근의 아이돌들까지 합해도 SMAPAKB48, 아라시 정도가 이 위에 있다. 애초에 2000만장 이상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7~80년대 아이돌은 이 두 사람이 유일.

80년대 후반에는 포스트 마츠다 세이코 세대로써, 같은 해에 데뷔했던 쿠도 시즈카, 아사카 유이, 나카야마 미호, 미나미노 요코아이돌 4대천왕 이라 불렸다. 음반 총 판매량은 나카야마 미호(1497만)>쿠도 시즈카(1487만)>미나미노 요코(563만)>아사카 유이(297만) 순이었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의 진출까지 하면서 확고한 산업체계가 구축된다. 이 아이돌 4천왕이라는 칭호는 90년대 초반까지 사용되었다.

이 즈음에 인기가 높았던 또 다른 아이돌이 '코이즈미 쿄코'. 쿄코는 사실 '꽃의 82년조'의 일원으로 나카모리 아키나와 데뷔 동기인데, 데뷔 후 점점 인기가 높아져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최전성기를 맞았다. 이 때 그녀는 "CM의 여왕"이라 불리며 '코이즈미 쿄코를 광고에 기용한 상품은 무조건 팔린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냈다. 일설에는 상품의 매상이 10% 가량 올랐다고 한다. 90년대 이후로는 여배우로 사실상 전향. 2010년경 코이즈미 쿄코의 CM 개런티는 무려 4000만엔 정도.

한편 80년대 말에는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후지테레비의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오냥코클럽이 국민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평범한 여고생들이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컨셉을 통해 남자 중고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아이돌 4대천왕의 쿠도 시즈카도 이 그룹 소속이었다. 비록 실력 부족 등으로 인해 오냥코클럽 자체는 3년밖에 가지 못했지만 오냥코클럽의 성공은 현재의 모닝구무스메AKB48같은 아이돌 그룹 체계를 완벽하게 다져놓았다. 그러나, 실력이 없어도 전략과 상술만 좋으면 성공한다는 전례를 남김으로써 아이돌 전체의 품질 저하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또한 이런식의 아이돌은 '성공의 과실'이 본인들이 아닌 '전략가'들이 가져가게 된다는 선례도 남겼다.

그러다가 80년대 말부터 J-ROCK 밴드와 싱어송라이터들의 부상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기존 아이돌의 인기는 저하하고, 90년대의 반 아이돌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2.3 1990년대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초반 JPOP

80년대 말에 이르면서 엑스 재팬이나 LUNA SEA같은 락밴드를 필두로 '밴드 붐'이 크게 유행하며 아이돌 붐이 가라앉아 '아이돌 암흑기'라는 말이 생겨났다. 80년대까지 대형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에 대한 반감은 인디즈 시장의 확장 및 매니아 시장의 확대로 이어지고, 비쥬얼계의 끝물과 함께 GLAY, LUNA SEA 등의 밴드가 강력한 여성팬층(+락음악의 팬인 남성팬들)을 확보하면서 사실상 아이돌의 지분을 침식한다.

대신, 아이돌이라는 말 자체에 '특정한 집단을 대상으로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라는 의미가 붙었다. 그래서 아이돌 여배우, 아이돌 성우, 그라비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라비아 아이돌, CF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CM아이돌 등의 단어가 생겨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이러한 아이돌 마케팅의 히로스에 료코가 국민 여동생급의 인기를 얻으며 80년대 이후 위축되어 있었던 여자 아이돌 시장을 크게 확장하였다. 또한 주로 노래도 부르면서 댄스, 작사, 연기와 예능 등에도 강한, 엔터테이너적인 성향을 중시하는 '1인 아이돌'이 대두되었던 시기기도 하다. 이 때 인기를 얻은 아이돌은 시노하라 료코, 치넨 리나, 우치다 유키, 미즈키 아리사, 마키세 리호 등이 있다.

이렇게 배우, 모델, 그라비아 아이돌 등 여러 형태의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여성 아이돌 가수 시장은 90년대 초반 잠시 위축기(아이돌 빙하기)를 맞았다. 90년대 초반 활약했던 아이돌 중 가수만을 전업으로 하는 것은 CoCo가 유일하다.

90년대 중반에는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스한 솔로 아이돌 가수인 카하라 토모미아무로 나미에가 등장하여 서로 경쟁하였으며,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스즈키 아미하마사키 아유미가 인기를 다투었다. 한편 그룹 아이돌 가수로는 SPEED가 음반 판매량 180만 장을 기록하며 거의 전설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에서 반 아이돌 기류가 가장 팽배했던 시기로, 여자 아이돌의 주고객층인 남성팬들은 애니메이션, 만화, 인디즈 시장의 고객으로 변하게 된다. 반면 남자 아이돌은 쟈니즈계열로 대표되는 특정 회사의 독식이 아주 크게 나타나며 SMAP, kinki kids, TOKIO, V6 등이 주류가 된다.

2.4 2000년대

2001년 모닝구무스메
2002년 마츠우라 아야
2007년 아라시

2000년대에 들어서 솔로 여성 아이돌이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2001년 데뷔한 마츠우라 아야는 히로스에 료코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솔로 여성 아이돌로 평가받는다. 노래 실력도 있고 외모도 출중하며 연예 감각도 뛰어나서 각종 오락 방송과 CM을 독차지하며 소위 '국민 여동생'의 지위에 올랐다. 음악성도 있고 스타성도 뛰어난 정통파 여성 아이돌이 차지하던 시장은 하마사키 아유미, 오오츠카 아이, 코다 쿠미 등 솔로 여성 아티스트가 차지하였다. 이로서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경계선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정통파 여성 아이돌이 사라진 자리를 모닝구 무스메와 같은 헬로! 프로젝트 아이돌이 메웠다. 모닝구 무스메는 친근한 이미지와 방송에서 거침없이 망가지는 모습 등을 통해 기존의 아이돌 팬층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얻으며 국민 아이돌의 자리에 우뚝 선다. 모닝구 무스메의 대성공 이후 여성 아이돌에게는 가수로서의 실력보다 방송인으로서의 센스를 더 많이 요구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국보다 약 10년 정도 빠르게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같은 컨셉의 '과거 아이돌 재데뷔 프로그램'이 나왔으나 역시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미 아이돌의 개념이 많이 바뀐 상황이기 때문에 예전 암흑기에 스러져간 유망주들을 발굴해 봤자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기 쉽지 않기 때문.

한편으로 새로운 아이돌 컨셉을 제창하며 등장한 4인조 밴드형 여성 아이돌 그룹 ZONE이 2000년에 메이저 데뷔하며, 밴드라는, 여성 아이돌계에 새로운 블루오션 영역을 개척하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홋카이도의 사무소에서 결성되어, SPEED를 롤모델로 하는 댄스 그룹을 목표로 연습하던 ZONE은, 인디즈 시절에 발표한 밴드 컨셉의 PV제작을 계기로 아예 밴드 아이돌로 노선을 튼다. 그리고 소니뮤직을 통한 메이저 데뷔 이후 이게 제대로 먹혀서 10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기도 하는 등 크게 성공했다.

활동 당시 소니뮤직은 밀레니엄에 맞춘 아이돌 그룹이라며 밴돌 (밴드 + 아이돌)이라는 컨셉으로 그룹을 소개했었다. 댄스 아이돌로 연습생을 시작했던 탓에 처음에는 악기 포지션만 서로 나누어져있고, 악기를 들고 핸드싱크와 함께 춤을 추는등, 연주력은 없다시피했으나, 본인들의 노력으로 연주력과 음악성을 점차 강화했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댄스 퍼포먼스를 내세우는 순수 댄스곡도 이따금씩 발표하는 등 복합적인 컨셉으로 형태를 유지했다. 아이돌이지만, 아티스트적인 요소를 어느정도 갖추고 있었고, 점차 그러한 실력이 두드러졌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아이유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후 에이벡스비전팩토리 등에서 시도했던 SweetS, dream, Folder5 등의 댄스 걸 그룹들은 인기를 얻지 못했다. 또한 모닝구 무스메도 2002년 이후 판매량이 급감하고, 모닝구 무스메 소속사의 장기의 포석이었던 헬로! 프로젝트도 방송을 통한 대중적인 접근보다는 투어,굿즈 위주의 수익성을 추구하면서 황금기보다는 매상이 떨어지게 된다. 이후 일본 내의 여자 아이돌은 오타쿠 전용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대중적 관심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로 일본 내에서 여성 아이돌이 침체기를 겪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국 여성 그룹의 침체기와 겹친다.

다만 모닝구 무스메 이후 침체기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90년대 이후 계속 침체기가 이어졌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다. 사실 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말까지 계속해서 여성 아이돌 시장은 암흑기였다. 2000년대 초반에 모닝구 무스메가 엄청난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 인기는 여성 아이돌이라는 시장 자체의 부흥이 아니라 모무스라는 그룹 하나의 인기에 지나지 않았던 데다가 그 기간도 매우 짧았기 때문.

2007년을 기점으로 퍼퓸이 7년 무명 끝에 큰 인기를 끌어 50여만 장에 달하는 음반 판매와 무도관 입성을 이루고, 뒤를 이어 모닝구 무스메 이상으로 까이던 AKB48이 연달은 히트, 싱글 20만매 이상 판매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여성 아이돌계 탑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 두 그룹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업계 전반적으로는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이 시기 쟈니스로 대표되는 남성 아이돌은 90년대의 전성기를 이어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데뷔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아라시가 2000년대 중반부터 Love so sweet 등의 곡을 히트시키며 대중과 팬덤 모두에게서 지지를 받고 새롭게 데뷔한 캇툰이 팬덤의 지지에 힘입어 100만 장이나 되는 판매고를 올리는 등의 성과를 올렸고, 이를 통해 쟈니스는 여성 아이돌에 비해 매우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에 맞서 라이징 프로덕션에서는 윈즈, 다 펌프, 리드 등의 남성 아이돌을 데뷔시켰지만 쟈니스의 독점 등으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5 2010년대

2013년 AKB48

2015년 현 시점에서 여성 아이돌 판은 AKB48, Perfume, 모모이로클로버 세 그룹이 확고한 최강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 세 그룹은 모두 아레나 투어는 물론이고 도쿄 돔에서 2일 이상 공연이 가능하다. 모모크로는 닛산 스타디움 2일, 퍼퓸은 도쿄돔 2일+쿄세라돔 2일 콘서트를 매진시켰다. AKB사단의 자매 그룹들과 노기자카46, E-girls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 팀들은 아레나 투어나 작은 돔에서의 단발성 공연이 가능하다. BABYMETAL, 덴파구미.inc, 모모쿠로의 후배 그룹인 사립에비스중학, 팀 샤치호코 또한 아레나 공연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면서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모닝구 무스메, 큐트헬로! 프로젝트 그룹도 요코하마 아리나 공연을 성공시키는 등 탄탄한 팬덤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식으로 말해서 '탑시드 걸그룹'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그룹은 많이 잡아봐야 위의 그룹이 다다.

AKB48의 기세는 2010년에 폭발했다. 단순히 상술과 팬덤에 의존한 싱글 판매량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전성기의 정점을 찍었던 2011년에는 번화가의 광고판마다 AKB 멤버가 한 명씩은 들어가 있어서, 'AKB라면 지긋지긋하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AKB의 성공에 힘입어 2010년대 초반에는 수많은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데뷔하였고, 매스컴들은 '아이돌 전국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성 아이돌 시장에 주목하였다.

2010년대에 등장한 무수한 아이돌 중 가장 큰 성과를 얻은 것은 모모이로클로버로, 기존 아이돌과는 다른 독특한 콘셉트와 관객들을 덩달아 들뜨게 만드는 콘서트 무대 장악력 등으로 다른 아이돌 그룹과는 차별화된 팬덤을 형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모닝구 무스메헬로! 프로젝트 그룹은 상술을 강화하면서 음반 판매량을 부쩍 늘렸다. 또한 미디어 홍보, TV 출연이 늘어나면서 대중 인지도도 높여가려는 모습을 보이며 여전히 안정적인 수익성과 괜찮은 실력 등으로 저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에이벡스에서는 iDOL Street를 데뷔시켰으나 다른 그룹과의 차별화에 실패,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한편으로 장르적인 다양성도 싹텄다. 9nine, 도쿄죠시류, E-girls처럼 보컬과 퍼포먼스를 중시한 그룹 등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E-girls의 경우 여성층을 주 타겟으로 '워너비'상을 구축하는 등 다양한 판로를 개척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조금씩 자신들만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 밖에 정통 메탈 음악을 내세운 BABYMETAL, 모모이로클로버의 후배 그룹인 사립에비스중학교팀 샤치호코, 전파계로 무장한 덴파구미.inc 등의 그룹이 틈새 시장을 노리고 있으며, 방송이나 잡지 등의 대형 매체에 안 드러나서 그렇지, 로컬 아이돌이나 지하 아이돌의 활동과 팬덤은 그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도 훨씬 커졌다.

2010년, 한국의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가 일본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기존의 여성 그룹과는 다른 절도있는 안무와 세련된 곡이 1~2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 이 두 그룹을 시작으로 K-POP에 관심을 가지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한류'의 폭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여러 한국 아이돌 그룹들이 진출하였으나, 마케팅 전략의 부재와 차별화 실패 등으로 인해 카라와 소녀시대 이외에 일본 시장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그룹은 나오지 않았다. 또한 2012년부터 한일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한국 아이돌들이 방송에 나가기가 많이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류 고정 매니아층은 작게나마 유지가 되고 있으며 이들을 기반으로 몇몇 그룹들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남성 아이돌은 쟈니스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아라시가 국민 그룹으로 활동하는 한편 후배 그룹들도 비록 아라시와 같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룹은 아직 없지만 쟈니스라는 기반이 워낙 탄탄하다보니 별 문제 없이 활동을 하고 있다. 기대주였던 캇툰이 멤버 탈퇴 등의 내홍을 겪으며 부진한 가운데, 칸쟈니∞이 선전하고 있으며 Kis-My-Ft2가 신인 중에서는 기대를 받고 있다. LDHEXILE 계열 그룹은 원래는 아이돌이 아니었지만 젊은 멤버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아이돌성이 강화되고 있다. 한편 라이징 프로덕션 남성 아이돌은 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모모이로클로버Z의 스타더스트 프로모션에서 이 시기 남성 아이돌 그룹을 여럿 데뷔시켰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그러나 2010년대의 절반이 지나간 2015년 12월 현재. 일본의 아이돌 시장은 명확한 하락세로 접어든 상황이다. 대중들의 피로도(쉽게 말해 '아이돌 지긋지긋하다'는 의견)때문에 방송가가 전체적으로 '여성 아이돌'의존도를 줄여나가는 추세였는데, 홍백가합전이 거기에 결정타를 날렸다. 걸그룹 삼대장으로 불리던 모모이로클로버Z가 홍백 출전명단에서 탈락했고, SKE48HKT48또한 탈락했다.[3][4][5] 빠져나간 여성 아이돌들의 자리는 솔로여가수들이 채웠다. 미디어 노출 외에도 여성 아이돌 대부분이 상술에도 불구하고 판매량 하락을 겪었으며, 화제성도 이전만은 못한상황. 그리고 AKB48도 싱글판매량 밀리언 라인이 무너지면서 위기가 가시화된 상황이다.[6] 쟈니즈도 마찬가지로, 캇툰의 반복된 멤버탈퇴, Sexy-zone의 멤버차별논란 심화 등 여러모로 내홍을 겪었다. 다만 EXILE사단 쪽은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아이돌적인 세일즈 포인트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일단 이쪽 팀들은 퍼포먼스 유닛/아티스트로 분류되는 상황이라 시장성이 조금 다르다.

3 분석

3.1 컨셉 (여성 아이돌)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여성 아이돌은 소위 '유사 연애대상'이라는 컨셉에 묶여있었다. 이는 연애 경험이 부족한 소년이나 청소년들에게 마치 실제로 아이돌과 연애를 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들게 함으로써 장사를 하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여성 아이돌들이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런 수법은 써먹을 수가 없으므로, 아이돌 기획사들은 아이돌 스타들이 연애를 전혀 모르는 순수한 소녀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했다.정작 팬들은 때 되면 알아서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한다는 게 함정

청순함, 순정과 같은 깨끗한 이미지와, 첫사랑이나 짝사랑 등을 다룬 풋풋한 소재의 노래를 들고 활동하였다. 또한 방송 인터뷰에서도 '애인 같은 거 없어요'라고 대답하며 연애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이미지를 쌓았다. 아예 '연애 금지'를 내건 소속사도 많았다.아이돌 되기전에 스님부터 되라는겨? 물론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처자들이 연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요', '관심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7~80년대 일본인들은 순진했던 건지(…) 이런 상술이 통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지속적으로 아이돌 스캔들이 터져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츠다 세이코의 경우이지만, 마츠다는 이것을 역이용해서 '당찬 여성 스타'의 이미지를 구축, 당대의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물론 안티도 많이 생겼지만... 이때문에 기존의 아이돌 이미지에는 흠집이 갔다. 또한 90년대 들어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욕'이 인지되면서 '순결하고 청순한 소녀'라는 것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반인들도 잘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여성 아이돌이 추구하던 '유사 연애대상' 상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90년대 초반 불어닥친 여성 아이돌 빙하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 한가지 특이사항은 이러한 사건과 로망 포르노등 성적 콘텐츠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여성 아이돌 팬덤을 구축하고 있던 소위 친위대남성들이 대거 다른 콘텐츠의 소비층으로 이동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소위 말하는 초식남계열 오타쿠들이 채우게 되었다. 일본의 락커이자 음악평론가 오키테 포르쉐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언제까지 그런 젖비린내 나는 걸 좋아할거냐'는 분위기가 생긴것이라 표현했다. 기존의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을 자신의 우상이자 지켜줘야할 상징적 여성으로 여기는 외향적인 남성들이 많았다. 당연히 그중심에는 '노는'부류에 들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아이돌에 대한 환상이 깨진 이들이 '현실의 여성'을 소비하러 이탈한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이상적인 순결한 소녀'에 대한 갈망을 가진 오타쿠층이 현실도피의 일환으로 아이돌이라는 허상에 목메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후술되는 '왜곡된 유사연애 모델'의 범람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이돌 빙하기가 끝난 90년대 후반 등장한 모닝구 무스메는 이전의 여성 아이돌과는 달리 친근하고 부담 없는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모닝구 무스메는 우타방 등의 예능 방송에서 거침없이 망가지면서 친한 친구같은 이미지로 다가갔다. 한정된 계층에게만 어필할 수 있는 '상상 속의 연애대상'이라는 컨셉 대신 '재미있고 웃긴 여자애들'이라는 컨셉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덕분에 모닝구 무스메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등장한 여성 아이돌들 역시 성애 감정보다는 친근감으로 승부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퍼퓸이 있다. 퍼퓸은 퍼포먼스의 화려함이나 높은 퀄리티의 곡으로도 인기를 얻었지만, 멤버들이 예능 방송에서 보여준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모습(특히 아~쨩) 역시 퍼퓸이 인기를 얻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렇게 여성 아이돌의 컨셉이 변함에 따라 오늘날에는 일본 여성 아이돌을 단순히 '유사 연애대상'으로만 분석하기는 힘들어졌다. 아이돌이라고 해도 소구방향과 포지셔닝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7] 물론 여성 아이돌의 환상에 그대로 넘어가버리는 극성 오타쿠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안타깝게도 이들이 '아이돌 시장'의 주요 소비자층으로 자리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인기 아이돌 성우였던 히라노 아야의 스캔들때나 토요사키 아키의 스캔들이 대표적인 예. 한국에서 비슷한 예를 찾자면 아이유 스캔들 당시 "나의 아이유는 그렇지 않아"라고 발광하면서 과도할 정도로 아이유를 비난했던 일부 남성 팬들이 있다.

상술된 아이돌 팬덤의 성향 변화와 맞물려, '유사 연애대상'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일본 여성 아이돌 업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유사 연애대상 모델이 일본 여성 아이돌 업계에 남긴 가장 큰 악습으로는 '연애 금지'를 들 수 있다. 과거의 여성 아이돌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그런 관습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7~80년대의 아이돌 팬들은 '나의 아이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인식했다는 것이지만, 2010년대의 아이돌 팬들은 '여자 아이돌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연예계의 오랜 규칙이니까 지켜야 한다'라고 인식한다는 것. AKB48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는 2013년 들어 'AKB48에 연애 금지 룰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고 밝혔다. 원래부터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시하라 리노가 연애 금지 룰이 없어지고 자기 책임제로 바뀌었다고 증언하는 등 연애에 대해 관대해진 것은 사실이다. 팬들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넘기는 분위기. 다만 여기에는 몇가지 큰 논리적 모순이 존재하는데, '아이돌의 연애'가 왜 금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 없이 '아이돌이니까'라는 두루뭉술한 얼버무리기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여성'이 아닌 '순결한 아이돌'이라는 허상 그 자체를 소비하는 기형적 형태로 뒤틀렸음을 의미한다.

일본 아이돌들은 어린 나이에 데뷔하고, 대부분의 노래는 짝사랑이나 상대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혹은 이렇게 부족한 나지만 사랑해달라는 피동적이고 종속적인 형태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는 서툰 노래와 안무와 어우러지면서 철저하게 아이돌을 대등한 인격체나 존경할만한 '우상'의 위치에서 완벽하게 끌어내려버렸다. 이렇다 보니 아이돌들은 스무살이 넘은 성인임에도 교복을 입고 학창시절에 대한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미성숙한 소녀 코스프레를 강요당하고 있다. 애초에 남자들에게 어린 소녀와 손잡고 이야기할 기회(악수회)나, 껴안을 기회(허그회)따위를 돈받고 파는 시점에서 '아이돌은 유사연애가 아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을리가 없다. 실제로 48그룹 내에서도 되려 스캔들을 네타로 쓰는 사시하라 리노는 유사연애가 아닌 주체적인 예능인이자 거의 준 프로듀서의 포지션에 있고, 퍼퓸(일본)멤버들은 되려 스캔들이 없는 멤버에게 팬들이 되려 '가장 예쁠 나이인데 연애도 좀 하고 그래라'고 응원을 하고 있다. 걸즈 퍼포먼스 유닛을 표방하는 이걸즈는 아예 소속사 사장이 나서서 연애를 장려하고 있을정도.[8]

사실 아이돌의 연애를 엄격하게 보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시크릿한선화내가 아이돌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결혼하고 싶다는 속내를 밝힌 적도 있다. 아이유는 '깨끗한 소녀'라는 이미지로 활동하였는데, 그런 그녀가 은혁과 스캔들을 터뜨리자 대다수의 사이트에서는 '아이유 걸레' 등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내뱉었다. 단지 상의 탈의(?)를 한 다른 소속사 연예인[9]과 같이 있는 사진이 공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팬들이 안티로 돌아선 것이다.

AKB48을 비롯한 48사단과 자매그룹인 노기자카46등의 경우 경우 악수회나 투샷회처럼 팬들이 아이돌을 직접 만나 접촉할 수 있는 이벤트를 주력으로 활동하는데, 이는 유사 연애대상 모델의 변종으로 볼 수 있다. AKB48의 멤버들은 악수회에서 팬들에게 대하는 태도에 따라 팬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그 평가에 따라 인기에 영향이 미친다. 와타나베 미유키하타 사와코처럼 악수회에서 오타쿠들에게 웃음을 잘 지어주고 말을 잘 해주는 멤버들은 소위 '神'이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제 아무리 가무가 뛰어나고 미모가 빼어나도 악수회에서 오타쿠들에게 아양을 잘 떨지 못하면 인기를 못 얻는다. 물론 수 백 수 천 명을 상대하는 악수회에서 지치지 않고 연기를 하는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지만, 정작 본업인 가무보다는 이런 부수적인 곳에서 인기가 좌우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07년대 퍼퓸의 브레이크와 곧이어진 한류걸그룹 러쉬로 인해, 기존 여성 아이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유사연애보다는, 가수로서의 능력을 전면에 내세운 아이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큐트, 9nine, DiVA, 페어리즈, 도쿄죠시류, E-Girls(Dream, Happiness, FLOWER, bunny)~~,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아울러 모모이로클로버 Z 도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앞의 케이스에 부합하진 않는다. 이들이 공연 위주로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유사연애 노선을 약간 변형한 쪽에 가깝다. 기본 실력이 부족한데도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

유사연애보다는 가수로서의 능력을 앞세운 이런 그룹들은 자신들이 아이돌임을 자칭하고 아이돌이라 볼 수 있는 속성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긴하다. 10대 초중반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예능활동을 겸업하며, 자신들의 비주얼 또한 적절히 활용한다. 이들은 기존 AKB사단을 비롯한 유사연애를 바탕으로 오타쿠들을 집중적으로 상대하는 아이돌 산업에 염증을 느낀 대중, 혹은 비주얼과 가무를 겸비한 여성 가수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며 비록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차츰차츰 팬층을 확보해 가고 있다. 한일관계의 냉각으로 한류 아이돌들의 인기가 식어가는 중이라 비슷한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이들의 성장이 기대되는 중.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비주얼과 남성팬'vs'가창력과 음악성'을 무기로 한 노선의 대비가, 이미 마츠다 세이코나카모리 아키나때 이미 이뤄진 구도라는 점.

물론 이런 새로운 형태의 컨셉은 한국에서 더 일찍, 그리고 더 뚜렷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돌에게도 일정 이상의 실력을 요구하는 한국에서는 '가수로서 실력'에 비교우위를 가진 걸그룹들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팬덤확보가 약했던' 그룹이나 '가수로 데뷔했지만 아이돌로 어필할 요소를 지녔던'그룹들이 시장의 이점을 위해 하이브리드적 컨셉을 사용하게 되기도 했다. 이런 아이돌과 뮤지션의 특성을 동시에 어필해서 성공한 그룹이 기존 걸그룹 클리셰의 안티테제를 내세운 2NE1이나, 아브라카다브라의 히트를 바탕으로 아이돌 걸그룹의 색채를 가미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 보컬그룹이지만 아이돌스러운 비주얼과 활동을 겸업하는 다비치 등이 있다. 일본의 퍼포먼스형 아이돌들은 한국의 이들처럼 기존 아이돌판의 결점을 가수로서 특성을 차용해 탈피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다만 이러한 퍼포먼스 노선을 타기 위해서는 아티스트에 준하는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컨셉을 쉽사리 선택할 수 있는 그룹도 드물고, 설령 실력이 있다고 해도 콘텐츠가 대중들의 눈높이에 들 정도로 훌륭하지 않다면 애매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큐트가 아직까지 실력파 그룹이라는 이미지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곡과 콘텐츠의 방향성이 대중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며, 페어리즈 역시 그룹만의 특유한 음악성이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문제점이 있다. 결정적으로 일본인들은 아이돌의 실력에 대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말로 일반 대중이 보기에 "얘들 노래 좋네? 무대도 좋고."하는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유사연애대상으로서 오타쿠들에게 소비되는 아이돌과 비교해서 우위를 얻을 수가 없다. 그래도 E-girls는 히트곡도 두세 곡 있고 아이돌성도 괜찮은 편이라 평가를 받고 있다.

3.2 실력

원래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아이돌은 솔로 위주였다. 80년대까지 활동하던 솔로 아이돌들은 오늘날의 아이돌과는 달리 가수로서의 실력을 갖추고 활동했다. 스스로 작사에 참여하는 등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아이돌도 있었다. 쉽게 말하면 재색을 겸비한 가수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시대를 풍미했던 나카모리 아키나는 미모 이전에 뛰어난 음악성 자체가 무기였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야마구치 모모에에 이르면 엔터테이너적 성격보다는 '아름다운 뮤지션'이라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한때 아이유가 일본에서 데뷔를 했을때, 80년대 일본 여성 아이돌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던것은 이러한 당시 아이돌들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오냥코클럽의 데뷔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음악쪽으로 경험이 없는 일반 여중고생들이 전략과 마케팅의 승리로 인기를 얻은 것이다. 오냥코클럽의 성공은 이후 모닝구 무스메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모닝구무스메 1기의 경우에도 락보컬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인재들인만큼 가수로서의 실력은 준수했으나, 인기를 얻는 데에는 ASAYAN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힘, 그리고 친근감을 무기로 내세운 마케팅의 견인이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모닝구무스메는 후기기수를 받아들이면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예능방송활동을 펼친 그룹에 속했다.

이런 형태의 아이돌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실력도 있고 아이돌성도 있는 정통파 여성 아이돌의 계보는 끊어졌다[10]. 하지만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여성 가수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모모에-세이코-아키나로 이어지는 여성 솔로 가수의 계보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오오츠카 아이, 코다 쿠미 등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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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의 개요 문단에도 쓰여있지만 일본의 아이돌은 가수라기보다는 방송가의 모든 예능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는 종합 예능인[11] 두 집합이 비록 온전히 분리된 집합은 아니지만 활동 양태에서 차이점을 지적하는 것은 가능한데, 요컨대 가수로서의 실력(가창력, 춤)과 아이돌로서의 실력(외모,팬 서비스)을 별개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돌과 아티스트는 상하관계가 아닌 일부 영역을 공유하는 완전한 별개의 직업군이 된다. 반면 한국 시장은 아이돌 역시 가수의 일부분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으며, 아이돌에게도 가수로서의 실력을 요구한다. 이 차이를 간과하거나 반대로 너무 집착하면 양국의 아이돌 시장을 올바른 눈으로 볼 수 없다.

흔히 일본의 아이돌을 '성장형 아이돌', 한국의 아이돌을 '완성형 아이돌'로 나누고 일본 아이돌 오타쿠들은 완벽한 모습보다는 부족한 모습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아이돌로 성공하려면 오히려 실력이 부족해야 한다고 분석하지만, 아이돌로서의 성공 여부는 개인의 실력보다는 기획사의 능력과 콘셉트, 곡의 질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12]도쿄죠시류, 9nine, 페어리즈, DiVA 등이 실패한 것은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실력이 높아서 오타쿠들이 감정이입을 못 해서 실패했다'와 같은 시각은 혐오를 담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큐트, 모닝구 무스메 등도 실력과 퍼포먼스성을 내세워 활동하고 있지만 건재한 오타쿠 팬덤을 자랑한다. E-girls페어리즈, 모모이로클로버Z9nine의 차이점은 결정적으로 콘텐츠의 질이 높다는 점 뿐이다. 게다가 일본이 아이돌의 실력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아키모토 야스시쟈니스[13]의 등장 이전에는 일본 아이돌 또한 실력에 큰 비중을 두었었고, 현재도 실력없는 아이돌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14] 2000년대 후반 한류 아이돌 러쉬로 인해 대중들의 눈도 같이 높아졌기 때문에, 소속 아이돌의 트레이닝에 투자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추세다.[15]

한때 트위터 상에서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국민들이 탈력에 빠졌고,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실력이 없는 아이돌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라는 분석이 유행했던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거품이 무너지고 난 후인 90년대 중후반 걸출한 가창력과 댄스 실력을 갖춘 SPEED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였고, 반대로 거품경제의 최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에는 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오냥코클럽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건 경제적 상황이 아닌 연예계의 트렌드에 따른 것으로, 상단의 1990년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오냥코는 80년대 아이돌 호황기의 막차를 탄 격이었고, 스피드는 이이돌이 아닌 90년대 댄스가수 붐에 다리를 걸친 걸그룹이았다. 그리고 그 오냥코 클럽도 결코 음반판매량이 높다거나 콘서트 규모가 큰 그룹도 아니었다[16] 오히려 경제적 지표를 섞어 분석하자면, 오히려 경제 호황기였기에 저런 기획도 소비해줬으나, 불황이 되자 얄짤없었다(?)고 볼 수 있다.[17]

'일본 아이돌은 미숙한 아이돌이 연예인으로서 커나가는 스토리를 중시한다'라는 분석은 초창기 모닝구 무스메나 퍼퓸, 모모이로클로버Z와 같은 몇몇 그룹을 분석하는데는 도움이 되는 설명이지만, 그것으로 일본 아이돌 시장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스토리성은 성공한 아이돌 그룹 일부의 모델일 뿐이고 스토리성이 없어도 성공하는 경우는 많다. 이전 판본에서 예로 들었던 E-girls만 해도 특별히 활동에 스토리성이 있는 그룹이 아니다. 스토리성이 있다면 인기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사실 이건 만국공통 모든 분야에 다 적용되는 사항이다. 다만 일본은 아이돌의 성장에 대한 주목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비해 스토리성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을 수는 있는 편.

스토리적인 그룹의 예를 들어보면, 모모이로클로버Z는 퍼포먼스 이외에는 보통 정도의 비주얼과 부족한 가창력을 갖추었지만, 이것이 오타쿠에게 먹혀 친근감을 형성할 수 게 되었고, 햐다인이라는 든든한 프로듀서를 바탕으로 오타쿠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더군다나 밑바닥부터 고생한 아이돌이라는 이미지 + 홍백가합전에서 탈퇴한 전 멤버를 상징하는 물건들과 가사를 그대로 들고 올라감으로서 스토리성마저 대폭발했다. 바로 푸른색 전구가 들어간 의상과 무대 피날레에서 뿌린 푸른색 리본. 멤버별 이름을 부르는 가사를 탈퇴 전 오리지날 버전으로 부른 것.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한국에도 있다. 카라는 데뷔 초 부족한 실력으로 인해 엄청난 혹평을 받았으나, 멤버들이 근성과 노력으로 실력을 기르고 차츰차츰 위로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팬들을 매료시켰다. 일단 그룹 자체의 인기는 한국에선 안타까운 DSP의 관리능력을 넘어선 한승연소녀가장활약으로 반지하돌 비슷하게 그룹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소수의 팬을 쌓아나가다가 미스터의 히트 + 일본시장 어필 성공으로 물꼬가 터진 케이스지만, 멤버들 개인팬덤은 이쪽 사례에 부합한다. 대표적으로 강지영. 데뷔초에는 연습생 3개월만에 초고속 데뷔해서 5초는 커녕 3초도 제대로 노래를 못하는 음치수준이던 소녀가 필사적인 노력으로 그럴싸한 가수가 되는 과정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노래 실력과는 별개로 일본 아이돌이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어쩌면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영역이 있는데, 바로 문장력이다.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이 팬 조련(?) 의 일환으로 블로그나 구글플러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

3.3 독점 (남성 아이돌)

일본 내 남성 아이돌은 90년대 이래로 쟈니스가 독점하고 있다. 쟈니스가 지금처럼 톱급 기획사가 아니었던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쟈니스에 경쟁할 만한 남성 아이돌 기획사가 있었다. 70년대의 신 고산케라든지 80년대를 풍미한 그룹 체커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의 부활기를 거쳐 SMAP의 히트로 인해 쟈니스는 남성 아이돌계의 1인자로 성장하였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걸쳐 라이징 프로덕션에서는 w-inds., Lead 등의 남성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켰고 w-inds.는 실제로 큰 인기를 얻었으나 언제부턴가 방송 출연이 뜸해지면서 인기가 떨어졌다. 이를 두고 쟈니스의 외압이 들어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설사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쟈니스의 적극적인 외압을 통한 결과인지는 입증할 수 없다.

2000년대 들어서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크게 성공하고, 이에 힘입어 슈퍼주니어, 빅뱅, 샤이니, 2PM 등의 한류 아이돌이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팬덤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이런 쟈니스 중심의 시장에 변화가 오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한류 아이돌의 인기는 어디까지나 '한류 팬'이라는 특정 계층에 한한 것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2012년 들어서 한일간의 정치적 관계가 냉각되었고, 이에 따라 한류 아이돌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응도 사그라들었다. 일본의 음악이나 오락 방송에서 한류 아이돌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음반 판매량도 폭삭 주저 앉았다. 사실 한국 아이돌을 비롯한 상업음악, 상업방송 등의 미디어 산업이 아우르는 지역이 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에 이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심각한 타격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 대신 2012년 무렵부터는 EXILE, J Soul Brothers를 필두로 한 LDH 계열 그룹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그룹은 쟈니스에 비해 남성적인 이미지와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는 곡을 들고 나오면서 기존 쟈니스와는 달리 남성층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이를 두고 기존 한류 아이돌의 수요를 어느 정도 흡수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확하게는 일본 대중이 가지고 있던 '남성미' '강인함'에 대한 수요를 한류 아이돌들이 채워주다가, 자국 그룹인 엑자일, 산다이메 등이 등장하면서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추측으로, 이는 여성 아이돌판에서 역시 LDH소속인 이걸즈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해석. 실제로 한류 아이돌들이 하던 광고를 LDH계열 그룹들이 이어받은 경우가 종종 보인다.

반면 쟈니스는 2000년대 중후반 들어 활력이 떨어졌다. 쟈니스가 데뷔시킨 아이돌 중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1999년 데뷔한 아라시가 사실상 마지막이고, 그 이후 데뷔시킨 NEWS, Kis-My-Ft2, 캇툰, Hey! Say! JUMP 등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싱글 판매량은 팬덤의 힘으로 20만 장씩 나오지만 거의 절반쯤은 그들만의 리그로 들어가 버린 게 아니냐는 평이 있다. 실제로 쟈니스 신규 그룹의 팬덤은 대부분 다른 그룹 팬질을 하다가 치비 주니어 시절부터 곁다리로 봐 온 멤버들이 데뷔했을 때 팬심이 이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지, 비 쟈니스 팬덤이던 사람이 새로 유입된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연기 부문에서도 흥행을 입증받은 20대 남성 연기자들이 두각을 드러내면서, 연기(시청률 + 연기력)에서는 음반보다도 더 저조한 실적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3.4 상술

현 한국/일본 양국의 아이돌 시장을 그들만의 리그로 떨어트린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자, 피지컬 음반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필요악.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 그룹들은 기본적으로 적으면 3가지, 심하면 10여종이 넘는 수많은 사양으로 나누어 음반을 발매한다. 물론 거기까지는 그냥 팬서비스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돌그룹들은 이 음반에 멤버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이벤트권을 집어넣어 엄청난 수의 복수구매를 유도한다. 이러한 접촉상술의 대표주자가 바로 악수회, 하이터치회, 샤메/체키회이다.

악수회는 말 그대로 그룹 멤버와 악수를 할 수 있는 이벤트로, 음반에 이 악수회에 응모할 수 있는 악수회권을 동봉한다. 악수회에 참가하면 그룹 멤버와 짧게는 10초에서 길면 1분정도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악수회 상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것이 바로 AKB48을 비롯한 48사단 자매그룹들로, 이들의 음반판매량의 약 90%는 이런 악수회 참가를 위한 복수구매이다. 오리콘 기준으로 AKB48의 싱글은 100만장이 넘게 팔리지만, 악수회권이 들어있는 극장반이 제외되는 사운드 스캔 기준 판매량은 보통 20만장 내외다. 자매그룹들은 더 심해서 60만장 넘게 나간 싱글이 사운드스캔에선 겨우 6만장 잡히는 수준. 반면 상술을 덜 쓰거나 쓰지 않는 가수들의 경우 사운드스캔 판매량과 오리콘 판매량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개중에는 도리어 사운드스캔이 오리콘보다 높게 나오는 경우까지 있다.

하이터치회는 악수회와 비슷한데, 음반을 구매하면 이벤트장에서 멤버와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 하이터치회권을 음반에 동봉한다. 이쪽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사하는건 쟈니스로, 쟈니스 소속 그룹인 Sexy Zone은 정식 멤버중 음반에 참여하지 않은 두명과 쟈니스 주니어들까지 이 하이파이브회에 동원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체키회, 혹은 샤메회, 투샷회는 악수회나 하이터치회보다 많은 수의 음반을 복수구매했을 때 참가 가능한 이벤트로, 멤버와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티켓을 음반에 동봉해서 판매한다. 사진이라는 물질적인 증거가 남는 이벤트이다보니 인기도 매우 크다. 현장에서 폴라로이드로 찍어주는 경우도 있고, 입회자의 디카나 폰카로 찍어주는 경우도 있다. 보통 발매된 사양 전부를 한데 묶은 박스셋에 동봉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박스셋 하나를 사면 차트에는 시디 여러장 구매로 찍힌다. 이 상술은 48사단, 하로프로 등등 많은 아이돌 집단이 사용하고 있다.

지하 아이돌이나 인디즈 아이돌까지 내려가면 아예 멤버들과 껴안을 수 있는 기회를 파는 '허그(hug)회', 벽치기를 해 주는 '카베동회', 껴안고 귓속말을 해주는 이벤트, 무릎베개 등 캬바쿠라보다도 더 악질적인 이벤트도 매우 많다.[18] 그 외에 EXILE, E-girls 등의 LDH 소속 그룹들이 쓰던 뮤직 커넥팅 카드 상술이나 콘서트 티켓 첨부 상술도 있었는데 오리콘측에서 이러한 상술이 첨부된 음반은 차트에 반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폐지되었다.

이런 상술은 그룹의 멤버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경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AKB48이 밀리언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무려 300여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손을 팔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개개인의 떨어지는 가창력을 떼창을 통해 감추려는 기술적인 의도도 있겠지만 2010년대 이후 현재 일본 아이돌의 인원수는 사운드 보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술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상술을 통해서 음반판매량을 불리다 보니, 음반이 몇십만장 넘게 팔려 오리콘 1위를 해도 일반 대중들은 그 노래, 그 가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오리콘 차트는 이미 '인기의 척도'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였다. 개중에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음반가격을 낮추고 갖가지 상술을 떡칠해서 인지도 없는 아이돌이 차트에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벤트를 계속 추가해서 떨어지는 낙폭을 가리는 눈속임 수법도 나왔다. 반면 퍼퓸이나 모모이로클로버Z처럼 실제 팬덤과 대중 관심도는 훨씬 더 높은데도 상술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음반 판매량은 적게 나오는 가수들도 매우 많다.[19]

때문에 오리콘 차트 이외의 다양한 지표를 사용해야 그 그룹과 곡의 실제 인기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순수한 곡의 인기는 iTunes 다운로드 차트, 레코초쿠 착신음(벨소리) 차트, 노래방 차트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E-girls가 이 부분에서 강세이다. 콘서트 관객 동원력은 대중들의 관심과 팬덤의 규모를 확인하는 새로운 척도로 각광받고 있다. 접촉 이벤트를 통한 중복구매로 눈속임을 하지 못할 뿐더러[20], 일단 규모가 크고 '공연'이라는 가수 본연의 능력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퍼퓸과 모모이로클로버Z는 음반 판매량은 높지 않지만 돔 투어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정도로 인기가 있다. 또한 티켓이 잘 팔리는 지역을 통해 이 가수의 인기가 전국구인지[21]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콘서트 관객동원력이 지표로서 기능하는 또다른 요소가 있는데, 바로 그 가수의 순이익이다. 음반 매출의 경우 실제로 멤버에게 가는 금액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22] 반면 투어의 경우 티켓매출과 굿즈판매 매출, 실황영상물 수익의 상당수가 곧장 가수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가장 큰 돈벌이가 된다. 어마어마한 매출을 자랑하는 AKB48에서도 쉴새없이 개인일을 하는 극소수 초인기 멤버가 되어야 겨우겨우 퍼퓸이나 모모크로 멤버와 엇비슷하게 번다는 소리가 나오는게 이 때문.[23]

또한 비디오리서치, 닛케이 파워 랭킹, 오리콘의 '2만명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순위'등 공신력 있는 설문조사도 인기 척도로서 사용되는 중. 특히 닛케이의 경우 인지도와 호감도를 동시에 조사하기 때문에 그 가수의 유명세가 '악명'인지 여부도 알 수 있다. 때문에 기업의 광고모델 선정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물론 일본 현지에 거주한다면 주변의 분위기나 TV등을 통해 체감인기를 알 수 있으므로[24] 이는 한국에서 팬질을 할 때 신경쓰게되는 부분이다.

다만 오리콘 차트가 지표로서 기능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팬덤의 화력'을 측정하는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 AKB48이나 노기자카46의 판매량이 거의 악수회 티켓으로 판 물량이어도 인정을 받는 것은 그걸 감안해도 현역 걸그룹 중에서는 팬덤이 큰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PASSPO☆가면여자의 사례처럼 극단적으로 상술을 몰빵해서 실제 팬덤의 구매력보다도 판매량을 뻥튀기하는 사례도 있지만 그런 경우 다음 싱글의 판매량이 극단적으로 떨어지는 등 결국 티가 나게 된다.

사실 이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슈퍼주니어의 'Sexy, Free & Single' 앨범이 수십만 장을 팔았는데도 대중들은 그런 노래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른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 한국 아이돌의 경우 이런 상술이 더 심하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팬사인회는 완전 추첨제라서 소위 '샤인비'로 불리는 샤이니-인피니트-비스트 정도만 되도 100장을 사도 당첨이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에 비하면 CD를 사면 반드시 악수회에 갈 수 있는 일본 아이돌은 그나마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 듯.

4 어두운 현실

BBC의 보도를 인용한 연합뉴스의 기사.

5 월급제

일본 아이돌의 특징은 바로 월급제 정산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월급+수당.

한국은 기본 월급이 없어서 데뷔 초기엔 사실상 무급 노동자 취급을 받지만, 어느정도 위치에 오르면 정산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며 이는 수익의 x%를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탑 수준에 오른 아이돌이라면 건물 하나씩은 갖고 있을 정도로 준재벌 반열에 오르지만, 그렇지 못한 무명 아이돌들은 가난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에 반해 일본 아이돌은 월급제라 데뷔 초기에도 어느정도의 생활은 가능하나, 대박을 낸 이후에도 월급쟁이 신세라 본인 통장은 대박이 안 난다는 문제가 있다. 일본 아이돌들이 내는 매출이 한국 아이돌보다 훨씬 크다는 걸 감안할 때 아이돌에게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6 아이돌 목록

7 관련 문서

  1. 물론 한국 역시도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실력 차원에서 아이돌을 디스할 때 하는 말이며, 대부분의 경우 아이돌들의 직업이 일단 가수라는건 인정한다. 때문에 후술할 일본 아이돌의 특성과는 구분되는 특성을 보여주는데, 가수로서의 실력(특히 가창력)에 대한 평가기준치가 일본아이돌보다 훨씬 높다. 때문에 2010년대를 기준으로 할 때, 솔로 아이돌은 물론이고 아이돌 그룹의 경우도 '적어도 가수라는 간판이 부끄럽지 않을 수준의' 가창력을 가진 멤버를 한 명 쯤은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과거보다는 확실히 아이돌들의 라이브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 상태다. 물론 이건 가창력의 이야기이고, 음악의 획일화 논란 등 아이돌의 음악성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한국에서도 많다.
  2. 한국도 아이돌들이 해체 이후 사실상 졸업하면 극소수의 경우만 연기나 예능 쪽으로 전환하고 대부분은 연예계에서 사실상 잊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전 핑클과 HOT, 베이비복스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3. 모모크로의 경우 공연흥행력은 우수하지만, 히트곡 명맥이 끊긴지 오래되었고 NHK쪽 미디어 노출이 없다는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사실 현 시점에서 삼대장중 가장 음원/음반판매량이 떨어지는 게 모모크로인 상황.
  4. 48자매그룹들의 경우 이전부터 본체인 AKB에 끼워팔기로 출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언제 탈락해도 이상하지 않다는게 중론이었다. NMB의 경우에는 그나마 요시모토의 푸시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는 추측이 많다. 노기가 새로 출전하긴 했지만 후년에도 노기가 나올 수 있으리라는 예측은 많지 않다. 2016년에는 AKB48본체+NHK 기여도가 높은 퍼퓸+음원히트곡이 많은 이걸즈 단 세팀 빼고 전멸하는게 아니냐는 비관적인 추측까지 나오는 중.
  5. 러브라이브는 걸그룹TO가 아닌 서브컬쳐 대표 명목으로 미즈키 나나 대신 출연.
  6. AKB48이 백만장을 팔지 못하게 되었다는 건 다른 그룹으로 치면 싱글 판매량 10만장 라인이 무너진 것과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악수회 물량을 계속해서 늘리고 별의 별 이벤트를 추가하는데도 판매량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 게다가 AKB는 정규멤버만 2백명이 넘고 각 싱글마다 뮤직비디오가 4~5개씩은 들어가는 '덩치 큰'그룹이다. 단순한 유지비만 해도 다른 아이돌 그룹의 10배를 가뿐히 넘는 상황에서 투어도 활발하게 못 도는 그룹이 음판까지 무너지면...
  7. 일례로 퍼퓸과 이걸즈는 남녀팬의 성비가 동일하가나 오히려 여성팬의 비중이 더 크다.
  8. 공교롭게도 뒤의 두 그룹들은 팬 연령대와 성비가 균등하거나, 혹은 여초성향을 띄고있다.
  9. 그런데 아이유는 이 일 이후에 다시 잘 나갔지만 은혁은...
  10. 등장하지 않았다는게 아니다. 유사연애 아이돌들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뿐. 단적인 예로 진정한 의미의 '정통파'솔로 아이돌을 지망했던 무토 아야미는 악수회도 하지 않고 방송활동도 거의 하지 않아 인지도가 거의 없다. 이렇게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는 셀 수 없이 많다.
  11. 다만 [프로]는 절대 아니다. 아이돌들은 이것저것 많이 하지만, '아직 서투르지만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세일즈 포인트다. 때문에 실력이 별로라도 다른 방송인들이 웃으면서 귀여워해준다. 그런데 만약 아이돌 졸업하고 혼자 나오면? 그때부터는 부족한 실력과 실수에 대해 가차없는 평가와 비판이 가해진다.
  12. 한국도 이점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일본은 실력이 뛰어나든 못하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고 한국은 기본적인 실력 이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90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을 지나오며 점점 상향평준화가 되어 평균의 수준이 일본보다 높아져 있다. 그렇지만 실력이 뛰어나도 아이돌의 경우 거의 대부분 본인들이 곡을 만들지 못하고 곡에 어느정도의 의견개진을 하는 정도가 최대한의 참여이기 때문에 기획사의 역량에 따라 뜨느냐와 못뜨느냐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실제로 가창력, 춤, 외모가 출중한데도 곡 선정 및 컨셉이 이상하거나 기획사의 능력부족으로 못 뜨는 아이돌이 허다하다.
  13. 그중에서도 특히 SMAP.
  14. 단적인 예로 AKB48과 쟈니즈는 일본에서도 '안무하나 안맞는 립싱크 군단'등 저조한 퍼포먼스에 대해 비판받고 있다.
  15. 이전부터 자체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구축하고 아이돌을 제작하는 회사는 일본에도 있었다. 하로프로는 '에그' '연수생' 이라는 이름으로 연습생제도를 운영했고, 아뮤즈는 실용음악 학원인 액터즈 스쿨과 결연을 맺고 트레이닝된 인재를 데려오거나 사쿠라 학원같은 견습팀을 운영하고 있다.
  16. 데뷔곡은 20만장이 팔렸지만, 해체직전 오냥코 클럽의 싱글은 십만장도 채 안팔렸고 마지막 콘서트도 3만명 규모인 요요기에서 단발성 공연으로 이뤄졌다. 까놓고 말해 86년 말~87년 초까지 일년정도 반짝하고 끝났다.
  17. 실제로 불황인 시기에 기획된 오냥코의 후예들( 체킷코아이돌링!)은 모두 실패했다.
  18. 사실 허그회까지만 가도 캬바쿠라보다 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캬바쿠라는 신체접촉이 금지다. 허그회도 말이 허그회지 대놓고 멤버들을 만지작 거릴 수 있게 풀어놓은 이벤트나 다를바 없다. 물론 개중에는 '음반전달회'라고 매장에서 CD를 구입하면 멤버가 그걸 소비자에게 건네주는 이벤트라던가 시디를 사면 미니 라이브에 초대한다거나 하는 비교적 건전한 이벤트도 있긴 하다.
  19. 모모크로나 아무로나미에의 싱글은 보통 4~5만장 정도 팔리는 정도로, 48사단의 자매그룹의 10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모이로클로버나 아무로 나미에가 '48사단 자매그룹'보다 인기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 일례로 SUPER☆GiRLS는 각종 접촉 이벤트를 통해 싱글을 10만장 가까이 팔기도 했으나, 각종 이벤트와 티켓 떨이판매를 동원했음에도 무도관의 절반정도밖에 채우지 못했다.
  21. 예를 들어 관서지방은 홀 규모 공연장이 모두 매진인데 관동지방은 제프도 어렵다면 그 가수의 인기는 관서지역 한정이라고 볼 수 있다.
  22. 음반의 경우 대부분의 이익을 레이블이 가져가고, 소속사와 작사/작곡/편곡자의 저작권료를 제외한 가수의 가창저작권료는 몇%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마저도 멤버 숫자에 따라 나눠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돌아오는 금액은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 48사단의 경우 악수회 수당을 지급한다고는 하지만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다.
  23. 사실 아무리 난다긴다 하는 아이돌이라 해도 스맙이나 아라시처럼 개인 활동에서 상당한 입지를 쌓은 경우가 아니면 전업 배우나 가수, 유명 게닌보다 게런티가 엄청나게 낮다. 쉽게말해 기업이나 방송국이 '싼맛에 쓰는' 경우가 상당수라 뼈빠지게 일하고 광고를 찍어도 실제 순이익은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반면 공연의 경우 회사 매출/순익으로 직결이 되기 때문에 홀 투어 정도만 할 수 있어도 멤버들 수입걱정 + 그룹 유지 걱정 안해도 된다. 하로프로가 소속 아이돌들을 미디어 노출 없이 투어만 열심히 돌리는데도 잘만 굴러가는게 이때문. 만약 멤버수도 적은데 투어흥행이 빠방한 퍼퓸이나 모모크로쯤 되면? 소속사의 귀빈대접과 함께 엄청난 정산액을 보장받는다.
  24. 길거리에서 노래가 많이 들린다거나, 주변의 대화에서 화제가 된다거나 하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