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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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180px-Mitsubishi logo.svg.png
정식 명칭三菱グループ
영문 명칭Mitsubishi Group
설립일1870년
창업주이와사키 야타로
종업원57만명

三菱
Mitsubishi

1 개요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집단

WW2 이후로 망해가던 일본의 경제성장의 주력기업

일본 3대 재벌 기업 집단 중 하나이며(나머지 두 회사는 스미토모, 미쓰이) 셋 중에 가장 대외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기도 하다. 나머지 기업들은 스미토모나 미쓰이가 소비재 계열사에 그룹명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 반면, 미쓰비시에 소속된 기업들은 공통된 3가지 강령[1]을 공유하고 미쓰비시에 속함을 강하게 어필하는 등 유대관계가 일본의 타 기업집단에 비해 상당히 깊은 편이기 떄문.[2] 일본 중공업의 역사이자 상징격인 기업이기도 하다.

로고는 3개의 마름모로 미쓰비시의 한자 석삼(三), 마름 릉(菱)을 그대로 로고로 만들어놨다.

참고로 미쓰비시 연필과는 관련이 없다. 뭐라고?! [3]

2 창업

창업자는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郞)다. 2010년 NHK 대하 드라마 료마전은 이 사람의 나레이션(카가와 테루유키가 담당)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사카모토 료마의 친구로써 극 초반부터 등장하는데 그 때 그의 젊은 시절 집안형편을 묘사해놓고 있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가 여러 봉건영지들을 해체하자, 1871년 오사카에서 자신이 경영을 맡아오던 정부 운영의 작은 선박회사와 상점을 인수하여 도사 가이세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사카모토 료마의 해원대가 가지고 있던 회사들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후 츠쿠모(九十九) 상회, 미쓰카와 상회를 거쳐 1873년부터 미쓰비시 상회로 사명을 바꾸며 사세를 확장했다. 이후의 역사는 미쓰비시 상사 문서 참조. 참고로 이와사키 야타로는 토사번의 하급 사무라이였는데, 지하낭인이라고 해서 사무라이였지만 수준은 일반 백성이었으며 어릴 적에는 아버지 야지로와 새장을 팔았지만 형편이 좋지 않았다. 20대에는 목재를 팔아 장사에 성공하였다.

또한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정권 하에서 사가의 난, 대만정벌, 서남전쟁 등에 적극적으로 메이지 신정부를 지원하고 이에 따른 지속적이고 엄청난 양의 떡고물을 통한 해운 운수업의 확장으로 ‘해운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를 들어 13척의 관유선 무상불하, 5년간 약 250만엔의 준비금 대부, 미쓰비시 소유의 선박 17척 정부매입 후 무상불하(약 62만엔) 등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한편 정경유착 관계를 바탕으로 급성장하던 와중에 언론으로부터 특혜를 받는다는 비난이 일었고, 특히 미쓰비시 상회의 후원자였던 오쿠보 도시미치의 암살과 오쿠마 시게노부의 실각으로 잠깐 사세가 휘청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1882년에는 (막신으로 활동하였던 사업자들로도 포함하는) 반 미쓰비시 사업자들이 정부의 출자를 획득하고 교도운수회사(共同運輸会社) 설립으로 미쓰비시 상회를 견제하기도 했으나, 결국 미쓰비시가 경쟁에서 이겼고 다음 문단에 나오듯이 그 회사를 합병시켰다.

3 확장

1885년에는 경쟁관계에 있던 교도운수회사를 합병, 닛폰유센(日本郵船)(일본계 해운회사중 NYK Lines)을 설립하여 주력사업이었던 해운업을 여기에 양도하고, 부업이었던 광산 ·탄광, 그 후에 소유하게 된 조선소나 은행업무에 주력함으로써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1893년 미쓰비시 합자회사로 개편하고, 사업회사로서 다각적 사업을 은행 ·광산 ·조선 ·영업의 각부로 편성하여 종합적으로 관리하였다. 그 밖에 방계회사로서 도쿄 해상, 메이지 생명, 미쓰비시 제지, 기린 맥주, 아사히 유리 등이 설립 ·흡수되었다. 1916년 이후 미쓰비시의 각 사업은 조선 ·제철 ·창고 ·광업 ·상사 ·은행 등의 주식회사로 조직되어, 미쓰비시 합자가 지주회사로서 총사령탑 역할을 하는 콘체른이 성립하였다.

미쓰비시 재벌의 다각적 사업망 확충 중에서도 특히 조선 ·광업 부문을 토대로 전기(電機) ·항공기 ·화학 ·석유 등 중화학 공업 부문에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일본의 군용기중 가장 유명한 A6M 제로센을 미쓰비시에서 만들었다.[4]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점령군의 명령에 의하여 재벌이 해체되었다가 한국전쟁으로 일본 경제가 부흥하자 해체되었던 회사들이 재결합을 시도, 1954년 종합상사로서 미쓰비시 상사가 부활하였으며, 중화학 공업 및 항공 ·군사 산업 부문도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되살아났다. 2차대전 이후로 자본 관계는 상당히 끊어졌으나, 1954년 미쓰비시 금요회,[5] 1964년 미쓰비시 홍보위원회 등의 협력 기구가 구성되어 있다.

4 한국인 징용에 대한 배상&사과 논란

대표적인 전범기업으로, 한국인 강제 징용 문제를 언급할 때 그 예시로 거의 반드시 언급되는 기업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악명 높은 하시마 섬이 바로 미쓰비시의 소유. 그래서 미쓰비시그룹에 대한 징용피해자들의 배상과 사과 요구가 99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다만 피해자 측에서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배상과 사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배상의 경우 도의적으로 기업 측에서 보상을 진행하지 않는 이상 법리적 해석에 따라야 하지만 사죄의 경우 도의적 책임이 명백한 이 건에 대해서 사죄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미츠비시의 명백한 잘못이다.

미츠비시가 어떤 법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는 과거의 언급과 한일기본조약에 근거해 크게 2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번째로, 미쓰비시의 사외 이사인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는 국가적인 문제에서 봤을 때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것은 원죄라는 것을 인정하였지만, 기본적으로 1910년 이후 조선인들은 법적으로 일본 국민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 1938년, 국가 총동원법에 의해서 국가가 자국민을 징용한 것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발언을 하였다. 즉 도의적으로 잘못되었으나 법리적으로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발언이다. 당시 교전국이던 미국, 중국, 영국 등의 연합국의 전쟁포로를 강제노역시킨 것과 자국민을 징용한 것은 법적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유럽으로 따지면 유럽의 전쟁 피해국이 아닌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의 지위이며, 이 근거는 일제 패망 후 진행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른다.[6]

2번째로 미쓰비시 그룹에 대한 한국 강제 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이 존재한다 가정하더라도 한일기본조약을 기점으로 소멸되었다는 입장이다. 한국 이외의 국가에 대해 미쓰비시는 중국에 2차대전 기간의 중국인 강제노역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하기도 하고, 이러한 행보를 앞으로도 이어나갈 듯하다. 그러나 한국인 징용 노무자에 대해서는 "법적인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입장의 근거가 되는 것이 한일기본조약. #

한일기본조약 문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설명하자면, 어쨌든 다음과 같은 이유로 청구권이 있는지도 불분명한, 게다가 설사 존재했더라도 이미 소멸되었다는 절망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실제로 양금덕 할머니 등 징용피해자 8명이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8년 기본조약을 근거로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았다.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청구권이 소멸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일기본조약으로 이 분들을 대신해 배상금을 받아가 포스코 등에 투자한 한국 정부가 양심이 있었으면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분배해줘야 한다. 심지어 위안부 피해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진행된 소송에서 비록 위안부 피해자들이 패소하기는 했지만 판결문에서 이례적으로 포스코가 법적으로 이들에게 배상해야 할 책임은 없지만 어느정도 도의적 책임을 지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판결문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다.[7]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일본만이 법리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국민은 둘째치더라도 한국 정부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봐도 된다.

현재의 한일관계박정희의 흑역사를 역사 교육에서 배제하려는 한국 정부의 의향에 따라 한일기본조약이 조명받지 않은 탓이 크다. 설사 법원에서 미쓰비시가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형태로 판결이 나오더라도 미쓰비시는 한국이 한일기본조약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이를 ICJ에 제소할 것이며 국제법상 한국은 100% 패배할 것이다. 때문에 한국 정부도 이를 알고 일본을 외교적으로 압박하여 일본 스스로 추가 배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도 대충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기에 자신들도 피해 당사자임에도 일본을 어느정도 두둔하는 것이다. 물론 이만큼 상황을 알고 있는 한국인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또 일본이 까이는 이유가 된다.

결국 과거에 이미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배상금을 지불했던 일본이 돈이 부족했다고 말하면 또 몰라도 아예 한일기본조약 자체를 언급하지도 않으면서 배상 및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최근 박근혜 정부아베 신조 정권이 극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타결하였는데 물론 국민정서상 고작 10억엔 받아오려고 그 난리를 피웠냐는 의견이 매우 많지만 이렇듯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배상금을 받아올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일본 측의 사죄와 10억엔이라는 위안부 기금을 마련한 것은 성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그 뒤 아베 정권의 행보를 보면 사죄에 진정성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미국중국을 상대로 고개를 숙이던 일본이 일단 한국에도 고개를 숙였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고 이젠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다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법적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것을 면죄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총동원 사태에서 기업 차원에서 이러한 상황에 저항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점이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조차 전시와 같은 국가비상사태에는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데, 하물며 민주주의 국가에 비교하면 실례인 일제가 국가총동원을 선포한 상황에서 '난 협조할 수 없소' 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시마 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쓰비시 그룹에게는 전쟁기간 동안 한국인 징용피해자들을 가혹한 노동환경 및 인권침해 상황으로 몰아넣으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한 원죄가 있다. 법적 배상 의무는 한일 조약으로 없어졌다고 해도,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타국에 대해서는 2015년에 미군 포로 900명을 미쓰비시 탄광 등 4곳에서 강제노역을 시킨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거나 중국에도 대규모 인명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설사 배상 책임이 없더라도 원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미 고령인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기업 차원에서의 진심어린 사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8]

5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

위의 논란과는 별개로 미쓰비시 그룹은 한국 경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일 무역 교류는 정식 수교하기 전부터 상당히 활발했으며 미쓰비시 그룹 역시 예외는 아니다.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당연히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은 일본제를 수입하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고 일본 자본의 한국시장 진출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 자본이 일본에서 제작법을 베껴서전수받아 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팔아먹었다. 한국의 대기업 중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계획적으로 육성되었고 이것이 사실상의 일본 전범기업, 재벌 그리고 관료의 트라이앵글이었다.[9]

때문에 한국 기업 중에서도 한일기본조약으로 얻은 배상금을 통해 중공업을 비롯한 국책사업을 진행하면서 미츠비시를 벤치마킹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어쨌든 미쓰비시는 일본 중공업의 상징이기 때문. 대표적인 예로 [10] 현대자동차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이자 대한민국 자동차공업 자립화의 신호탄인 포니미쓰비시 랜서FR 플랫폼 및 구동계를 갖고 와서 스킨 체인지해서 만든 것. 또한 현대차 이외에도 거의 모든 한국의 대기업이 미쓰비시를 비롯한 소위 '전범기업'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하는 대기업 삼성그룹의 사명(三星) 또한 미쓰비시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

결론은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의 대기업들은 한일감정과는 별개로 한국의 산업 발전사에서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맨땅에 해딩해서 대한민국이 뚝딱 일어선 줄 아는 노년 세대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만...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일본 대기업이 잃어버린 10년을 기점으로 옛날같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이러한 기술 종속은 상당부분 해소되었으나, 여전히 한국 기업이 미쓰비시에 의존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면 한국 대기업 대부분이 미쓰비시전기오토메이션의 FA(Factory Automation, 공장자동화)시스템과 장비 위주로 세팅되어 있기도 하고, 사실 산업 전반에 걸쳐 미국, 독일 그리고 일본이 미친 영향력은 말하면 입 아픈 수준이기 때문.

여담으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동수역 근처)이 흔히 '삼릉'이라 불리는 이유가, 일제강점기 때 부평에 미쓰비시의 군수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三菱 : 삼릉(=みつびし, 세마름)).[11] 이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삼릉이라 불리는지, "왕릉이 세 곳 있어서 '삼릉(三陵)'"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해방 후 세대 중 나이가 든 몇몇 지역 유지마저 저렇게 막연히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6 히타치와의 합병

2011년 8월 초 미쓰비시 중공업은 히타치 제작소와 발전사업통합을 모색한 바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하여 2010년 매출로 30% 이상을 차지하는 발전 사업에 심대한 타격이 온데다, 3.11 대지진 쇼크 이후로 엔고사태로 인하여 2번째 매출을 차지하는 해외 플랜트 사업도 상당한 타격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만약 합치게 되면 GE - 지멘스 - 미쓰비시에 이은 세계 인프라스트럭쳐 업계 3위에서 단숨에 1위로 제치게 된다.

그런데 양사는 이 합병에서 어느정도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데, 히타치에서는 되도록이면 '경영을 통합하기 바라는' 입장이고 미쓰비시는 그래도 (제로 전투기에서 시작하여 H2B 로켓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있는 회사 간판을 내주기 싫으니 그냥 '필요한 사업만 떼어내서 합치자'라고 뻗대고 있다. 아사히 신문의 인터뷰에 익명으로 대고 "우리 회사가 규모는 작지만 (2010년 매출기준으로 약 3.2배 가량 히타치가 큼) 미쓰비시의 한 축인데 그래도 히타치의 군문에 머리를 꿇을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일단 히타치의 포트폴리오가 매우 다양하므로문어발 비교적 고루고루 매출이 나오고 있어 통합을 통해 포트폴리오의 확장을 꾀하려는 히타치와 반면, 미츠비시는 히타치와 합치면 미츠비시 중공업의 우주항공이나 해양외에는 살포시 주요 매출 영역이 중복되어서 마켓쉐어 확장밖에 안 되는데 경영권만 위협당하고 간판까지 바뀌는 것은 히타치에게 너무 유리한 게임이라는 것.

결국 '업계가 환영한다', '일본의 산업이 재편된다', '엔진이 다시 켜진다' 내지는 '이러저러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등의 사설까지 나오면서 일본 언론이 대서특필하던 합병 소식은 이렇듯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단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2012년 하반기, 원자력을 제외한 발전소 사업 전체를 통합해서 지멘스와 GE에 이어 세계 3위로 부상하게 되었다.#

7 계열사

어디까지나 비공식 조직인 만큼 정의에 따라 크게 오가지만, 총 계열사 수는 1,000여개에 이른다. 이 중 '금요회' 회원사(○로 표기. 그 중 주요 13개사는 ◎로 표기) 29개, 또는 홍보위원회 회원사가 40개가 주축 계열사이며, 각 회원사가 거느린 자회사를 합치면 그 수가 크게 불어난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된 기업의 경우 기린처럼 지주회사가 참여하는 경우나 미쓰비시화학, 미쓰비시UFJ 금융사처럼 사업회사가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각각 존재한다.

한편 기존 미쓰비시 계열사가 외부 자본에 인수되거나 (미쓰비시 후소 등. ☆로 표기) 타 그룹 기업과 합병한 경우 (미쓰비시도쿄UFJ 등. ★로 표기) 에도 일단 금요회와 홍보위원회 활동은 계속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룹 계열사로 인식되는 편. 이 때문에 미쓰비시의 계열사가 타 그룹 계열사를 겸하기도 한다.

이하 목록은 홍보위원회 회원사이며 ('금요회' 회원사는 모두 홍보위원회에도 포함), 유명 자회사는 별도 표기.

  • 기린 홀딩스[12]
  • 니콘
  • 닛폰 유센◎[13]
    • 유센 로지스틱스○
  • 다이니혼도료
  • 도쿄카이조 홀딩스 계열 (지주회사는 비회원)
    • 도쿄카이조니치도 화재보험◎★[14]
  • 메이지 야스다 생명보험◎★
  • 미쓰비시 가스화학○
  • 미쓰비시 광석운송
  • 미쓰비시 머티리얼◎
    • 미쓰비시 알루미늄○
    • P.S. 미쓰비시○
  • 미쓰비시 상사[15]
  • 미쓰비시 오토리스[16]
  • 미쓰비시 자동차○☆[17]
  • 미쓰비시 전기(電機)◎[18] [19] [20]
    • 미쓰비시 스페이스 소프트웨어
    • 미쓰비시 프리시전
  • 미쓰비시 제강○
  • 미쓰비시 제지○
  • 미쓰비시 종합연구소○
  • 미쓰비시 중공업[21] [22]
  • 미쓰비시 지소◎[23]
  • 미쓰비시 창고○
  • 미쓰비시 케미컬 홀딩스 계열 (지주회사는 비회원)
    • 미쓰비시 화학◎[24]
    • 미쓰비시 레이온○
    • 미쓰비시 수지○
  • 미쓰비시 후소 트럭-버스○☆[25]
  • 미쓰비시 화공기○
  • 미쓰비시UFJ 파이낸셜그룹 계열 (지주회사는 비회원)
  • 아사히 글래스◎[26]
  • 아스모스토스 에너지[27]
  • 일본 타타 컨설턴시 서비시즈[28]
  • JX홀딩스○[29]

7.1 미쓰비시의 항공산업

일본 제국주의 시절 각종 전투기를 개발, 제작했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항공산업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었으며, 2007년 드디어 본격적인 제트 여객기 개발에 나선다. MRJ (Mitsubishi Regional Jet)가 그것. 2014년 10월 18일, 그 동안 개발 중이던 MRJ 를 일반에 공개했으며, 2015년 초도 비행, 2017년 상용 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이건 예상대로 계획이 진행되지 않아 밀린 일정이다. 우선 수정된 일정 기준으로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2016년 하반기 기준으로 ANA 도장을 마친 MRJ 시리즈가 계속 시험비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국내 항덕 커뮤니티는 이를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중.[30]

항공기 분야에서는 이렇게 고전하고 있으나 우주발사체에서는 또 다르다. 총 103회를 발사하여 현역 기준 97.2%까지 성공적으로 쏘아올리는 굴지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 달 탐사선 카구야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 등을 싣은 발사체는 모두 미쓰비시에서 제작하였다. 일본 항공우주 개발의 중심에 있는 기업. [31]

7.2 2차대전 당시 주요 생산기

7.3 스포츠단

미쓰비시그룹 산하 스포츠단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남자 축구)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레이디스
(여자 축구)
미쓰비시 중공업 다이나보어스
(럭비)
미쓰비시 전기 다이아몬드 돌핀스 나고야
(남자 농구)
미쓰비시 전기 코알라스
(여자 농구)
미쓰비시 전기 라이온스
(미식축구)
미쓰비시 전기 팰컨스
(테니스)
미쓰비시 전기 다이아몬드윙스
(배드민턴)
랠리아트
(모터스포츠)

8 현재 계열사/자회사가 아닌 기업

상기하였다시피 심지어 외국 기업에 90% 가까이 지분이 넘어간 경우 (미쓰비시 후소) 조차 그룹 협의체에는 남아있다시피 할 정도로 결속이 강하다. 다만 이탈한 케이스가 없지는 않다.

  • 캐터필러 저팬 : 과거 미쓰비시 중공업과 합작 법인이었으나 2012년 합작관계 철폐.
  1. 소기 봉공 / 処事 광명 / 立業 무역
  2. 다만 그룹 내의 개개의 면면을 보면 미쓰이 계열 또한 그 유명한 도요타와 도레이, 후지필름, 미쓰코시 등이 포함되는 등 절대 미쓰비시에게 꿀리는 수준은 아니다.
  3. 하도 그것때문에 문의가 많았는지 미쓰비시 연필은 홈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저희 회사는 미쓰비시그룹과 관계가 없습니다 라고 하기도 하고, 회사명 중간에 하이픈을 넣는다던가, 아예 uni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미는 듯 완전히 다른 회사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4. 애초에 A6M이란 기종명 자체가 미쓰비시 설계의 여섯번째 모델인 전투기라는 뜻이다. 제로센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이 기종이 해군의 주력 함상기로 채택된 해가 일본의 황기 기준 2600년이었기 때문에 '영(0)식함상전투기'라는 제식명에서 온 것이다.
  5. 월 1회 개최되는 경영진 친목회를 자칭하고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 유사한 경영진 회의체는 타 그룹도 운영하고 있다.
  6. 이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닌 것이,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포스코를 비롯한 한국 주요 대기업을 육성한 자금을 한일기본조약으로 받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7. 실제로 일본은 한국에 독재정권이 들어서 민주주의가 파괴된 상황을 보고 실제로 돈이 피해자들에게 갈지에 대해 염려했기에 피해자에게 직접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으나, 박정희 정부는 그건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책임지고 지급하겠다며 맞섰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돈은 고작 5%, 그 중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돌아간 돈은 더더욱 적다. 일본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고 일본은 돈 줘놓고 반일정서는 청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8. 하지만 기본적으로 법적 배상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미쓰비시그룹이 도의적 차원에서의 사과를 하겠느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해석은 개인의 자유...
  9. 물론 한국의 정경유착은 계획경제를 통해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나라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는 하다. 덕분에 한국은 지금도 계획적으로 육성된 대기업 위주의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중이지만...
  10. 2009년에 이르러서야 미쓰비시와 종속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었다는
  11. 현재 공장터는 신축된 빌라들로 원래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공장노동자들의 숙소라고 여겨지던 '미쯔비시 구락부 건물터'는 슬레이트 지붕에 금방이라도 무너질것처럼 보이는 60-70년대 지은 판자촌 건물이 운집해있는 곳으로 남아있다. (부평2동 주민센터 부근과 부평공원과 연결된 육교 근처) 현재도 형편이 어려운 차상위계층 중 일부가 근처에 살고있으며, 현재 역사적 가치로 인해 보존계획이 논의되고 있다고 하나 눈에 보이는 진행상황은 없다.
  12. 사업회사 기린맥주, 기린베버리지 등은 중간지주회사 기린주식회사를 거친 손자회사이다. 고이와이유업은 자회사.
  13. 일본 1위 해운사. 해외에선 흔히 NYK라 불리는 회사다. 하기 2사 이외에 자회사로 일본화물항공 등이 있다.
  14. 일본 손보업계 1위.
  15. 일본 서열1위 상사. 하기 2사 이외 일본KFC, 이토햄 등의 자회사가 있다.
  16. 미쓰비시상사 및 미쓰비시UFJ리스 합작사.
  17. 2016년 5월 부로 닛산자동차가 지분 34%를 취득하면서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산하기업이 됨.
  18. 주로 정부/기업용 전기제품을 만드는 회사이다. 매출의 80%는 BtoB제품에서 나온다
  19. 제품 포트폴리오도 '전기로 움직이는 중공업 제품'이 대부분. 미쓰비시중공업과의 차이점은, 중공업제품 중 전기가 필요없는건 중공업이, 전기로 움직이는건 전기가 만드는 식이다
  20. 미쓰미시중공업의 전기제작소가 분리독립하는 형태로 1921년에 설립되었으나, 지금은 매출액과 시가총액 모두 역전하였다. 발전사업이나 F-35라이센스생산에서 공동입찰을 하는 등, 미쓰비시중공업과는 일부 사업분야에서 협업관계이다
  21. 일본 중공업계 1위회사. 자회사로 미쓰비시 항공기 등이 있으며, 히타치제작소와의 합작사로 미쓰비시 히타치 파워시스템즈가 있다.
  22. 여기서 분리독립한 회사로 미쓰비시전기와 미쓰비시자동차가 있는데, 미쓰비시전기는 이미 규모면에서 중공업을 뛰어넘었고, 미쓰비시자동차는 모두 아시다시피…
  23. 부동산 기업으로 마루노우치 빌딩, 프리미엄 아웃렛, 선샤인시티,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등 유명 상업시설을 보유했다.
  24. 버바팀 브랜드 미디어를 제조하는 미쓰비시 화학 미디어는 자회사.
  25. 2005년 이후 다임러 벤츠 그룹 산하로 편입되었다.
  26. 각종 유리제품을 만드는 회사이며, 세계적으로 점유율 상위권을 자랑한다.
  27. 미쓰비시상사-이데미쓰코산의 합작사.
  28. 미쓰비시상사-인도 타타 그룹의 합작사.
  29. 주로 에너지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 일본에서 흔히 보이는 주요소인 ENEOS가 JX홀딩스 소속이다
  30. 한일 노선에는 투입하지 말아달라느니 하는데 사실 ANA는 애초부터 신형 기재를 한국에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이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을 듯하다. 애초에 리저널이라 한일노선같이 항상 미어터지는 노선에 넣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기도 하고.
  31. 여담으로 H2B 이외의 20톤급 발사체는 러시아의 흐루니체프 프로톤, 미국 보잉의 델타 IV, 유럽우주국의 아리안 5 정도 뿐이다.
  32. 기종명이 A6M이면서 제로센인 이유는 영식함상전투기를 줄였기 때문. 미쓰비시의 여섯번째 모델인 전투기라고 A6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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