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식

width=50%
건국훈장
대통령장(複章) 수훈자
강기동구춘선권동진권병덕김경천
김동삼김병조김붕준김상옥김성수
김완규김익상김지섭김하락나석주
나용환나인협남상덕남자현노백린
린썬문창범문태수민긍호민종식
박동환박열박승환박용만박은식
박준승백용성신규식신돌석신석구
신채호신홍식쑨커쑹자오런안재홍
양기탁양전백양한묵E. 배설언더우드
여운형여지이연기우오세창오화영
유동열유여대유인석윤기섭위빈
이갑성이동녕이동휘이명룡이범석
이범윤이봉창이상설이상재이승희
이위종이은찬이인영이재명이종일
이종훈이필주임예환장건상장인환
전명운전해산정환직조성환조완구
주자화주시경지청천채상덕천청
최석순최성모탕지야오편강렬홍기조
홍범도홍병기황싱
3대 전투의병
신돌석민종식정용기, 정환직
20140225120604731.jpg
민종식 초상
출생~ 사망: 1861~1917
본관: 여흥 민씨

閔宗植
1861~1917 구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여흥 민씨(驪興 閔氏). 자 윤조(允朝). 호 퇴초자(退樵子). 1882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후 벼슬이 참판(參判)에 이르렀으나 사직하고 충남 정산(定山)에 은거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격분하여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듬해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군에 격파당하고 공주(公州)에 은신 중 체포되었다. 이 싸움에서 의병 83명이 전사하고, 145명이 일군에게 잡혔다. 그 가운데 남규진(南奎振)·유준근(柳濬根)·이칙(李侙)·신현두(申鉉斗)·이상구(李相龜)·문석환(文奭煥)·신보균(申輔均)·최상집(崔相集)·안항식(安恒植) 등 9명은 대마도(對馬島)에 유배되었다.

민종식은 몸을 피해 박창로(朴昌魯)·곽한일(郭漢一)·이용규(李容珪)·이남규(李南珪)와 더불어 다시 의병을 모아 재기를 도모하다, 1906년 11월 일진회원의 밀고로 이남규의 집에서 모두 잡혔다. 이후 이남규 부자는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고, 그는 1907년 7월진도로 유배되었다가 왕실 척족이라는 신분 탓으로 12월에 풀려났다. 그러나 악형의 여독으로 1917년 사망하였다.

1907년 평리원(平里院)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의 주청(奏請)으로 감형, 진도(珍島)에 귀양갔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