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천

건국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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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kouzui.jpg

이름김경천(金擎天)
출생일1888년 6월 5일
출신지함경남도 북청
사망일1942년 1월 2일
사망지소련
본명김광서
별칭조선의 나폴레옹,김응천(金應天),김현충(金顯忠),[백마 탄 김장군],김일성,김장군(金將軍)
활동독립운동
부친김정우(金鼎禹)
자녀김 발레리 비탈리예비치, 1남 3녀
링크[국가보훈처],[네이버 캐스트]
낙엽이 지기 전에 무기를 준비하여 압록강을 건너고 싶다.

1 소개

김경천의 아버지 김정우

김경천(金擎天)은 1888년 6월 5일 함경남도 북청에서 김정우의 막내로 태어났다. 김정우는 일본 유학파로 귀국해서 대한제국 육군군기창장으로 일했다.

김경천은 8살 때 서울로 이주했고 15살에 경성학당을 졸업했다. 17살이 되던 1904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동기로는 독립운동가 지청천, 친일파 홍사익 등이 있었다. 재학중에 경술국치가 일어나고 졸업 후 일본군 장교 임관을 거부하려 했으나 독립전쟁을 위해 일본군에서 정보를 빼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처먹고 임관해 이후 1918년 말까지 기병장교로 복무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기 지청천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하다가 그해 가을 노령 연해주로 건너갔다. 1919년 ~ 1922년, 연해주에서 마적 및 일본군(이 시기 러시아 내전이 한창이던 시절이었으며, 일본군은 대규모로 군대를 시베리아 출병을 했을 당시였다.), 러시아 백군과 싸워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설적인 김장군으로 연해주 일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썼기 때문에 김일성 가짜설의 근거로 인용되기도 했다. 그의 활약상과 위상이 당대 어느정도였는가를 보여주는 대목[#].

러시아 내전이 끝난 뒤에는 한국의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계획이 좌절되어 실의의 날들을 보냈지만 소련 내 한국인들에 대한 교육 등 가능한 독립운동 보조 일을 멈추지 않았다. 1936년 소련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아 체포되었고 1939년에 잠시 석방되었다가 다시 체포되어 8년형을 언도받고 북부 시베리아 수용소로 옮겨져 복역하다가 1942년 1월에 사망했다.

1956년과 1959년에 소련 군사재판소에서 재심되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98년에는 한국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그가 기록한 회고록과 일기형식으로 생애를 기록한 글로 '경천아일기'가 있다.

KBS 역사스페셜 2012년 12월 06일자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 시베리아의 전설이 되다' 에서 그의 삶을 재조명한 바 있다.

어린이동아는 2015년 8월 19일자에서 암살(2015)의 '속사포'가 김경천 장군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뛰어난 총 실력, 사관학교에서 실력을 갖춘 군인 등)

나폴레옹을 존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저서

  • 경천아일록(擎天兒日錄), 부록: 오가세기(吾家世紀), 김해김씨(金海金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