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이 참 인상적이다.
梁起鐸
1871년 04월 02일 ~ 1938년 04월 19일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1904년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과의 합작하에 영자(英字)신문 코리아타임즈를 발간했고 국한문 신문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주필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이 되었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며 호는 우강(雩岡).
2 생애 및 활동
1871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아명(兒名)은 의종(宜種)이었다가 후에 기탁으로 개명했고 한학(漢學)을 수학 중 한양으로 올라가 한성외국어학교에 입학하여 영어를 이수했다.
1897년 독립협회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영국인 선교사 J.S 게일이 저술한 한영자전(韓英字典) 편찬을 도왔고 같은 국적의 언론기자인 E.T 베셀과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즈를 발간했고, 궁궐에서 영어에 능통함을 인정받아 궁내부 영어 통역사로 활동했다.
1904년 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발행을 중단한 독립신문을 대신해 순한글과 영문판으로 발행, 주필로 활동하여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07년 대구에서 처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대한매일신보를 이용해 전국으로 확산시켰으며, 안창호와 신민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1918년 중국 톈진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전라남도 고흥에 유배되었다가 1920년 동아일보 창간 주역으로 참여하여 편집고문에 취임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21년 미국 의회의원단이 방문했을 때 조선의 독립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가출옥 되었고 만주로 건너가 의성단을 결성했다.
1933년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국무령에 선출되어 1935년까지 재임하였다가 1938년 중국 장쑤 성에서 와병(臥病)을 앓다가 순국(殉國)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1993년 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문민정부 때 중국 장쑤 성에 매장되었다는 유해를 발굴함에 따라 그 해 유해가 서울특별시로 운구되어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