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三
1878 ~ 1937
구한말 독립운동가. 1878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긍식(肯植)이고 호는 일송(一松)이다. 동삼(東三)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 당시 만주로 건너가게 된 후 개명하였다.
1878년 경상북도 안동 임하면에서 천전리에서 태어나 긍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한학와 유학을 공부하였지만 문명의 개화로 신학문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신교육의 중요성을 보게 되었으며 1907년 안동에 협동중학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교감직을 맡았다.
1909년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힘썼고 이듬해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 되자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1911년 남만주 삼원보에 머물게 되었고 만주 한인단체인 부민단을 결성하여 한인들의 단결을 강조하였고 1914년 백두산에 있는 백서농장을 운영하였는데 사실은 독립운동가들의 집결지로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농장으로 가장하고 비밀적으로 독립운동과 독립투사 양성에 힘써왔으나 열악한 환경으로 4년 후 폐지되었다.
1918년에는 김좌진, 서일 등 독립운동가들과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1919년 독립운동 군정부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정 휘하로 편입하여 서로군정서 참모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김좌진의 청산리 대첩 당시 이를 지원하였다.
1927년 김좌진, 지청천 등과 민족유일당촉진회를 결성하여 위원장이 되었다가 1931년 만주사변 때 일본군에 체포되어 강제송환되었고 평양형무소를 거쳐 서대문형무소(현재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이감되었다가 1937년 끝내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감옥 안에서 순국하였다.이 당시 시신을 찾아가라고 형무소 측이 유족이나 지인들에게 통보하였지만 일제 감시를 받을까봐 누구도 나서지 못했으나 바로 만해 한용운 선생이 소식을 듣고 와서 정중히 시신을 모셔가 장례를 치뤘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현재 안동시 안동댐 공원에는 김동삼 선생의 유언이 새겨진 비가 세워져 있다. 선생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