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東鎭
1861년 2월 15일 ~ 1947년 3월 9일
조선 말기 ~ 대한제국의 개화파 정치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정난교, 우범선, 이두황, 이규완 등 개화파 인사들과 친하게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하였으며 이 때, 정난교와 그의 형 권형진도 가담하였다고 한다. 그는 을미사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을미사변 이후 일본에 오랜 기간 망명해 있던 중 천도교 교주 손병희와 만났다. 천도교에 입교한 그는 손병희, 오세창과 함께 진보회를 조직하여 개화 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손병희, 오세창과 함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에는 민족대표 33인으로 서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