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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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신양(朴新陽)
출생1968년 11월 1일,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동
본관반남 박씨[1]
신체177cm, 68kg, B형
학력동국대학교 연극학
쉐푸킨, 슈킨연극대학교(중퇴)
데뷔1996년 영화 '유리'
가족배우자 백혜진, 딸 박승채[2]
소속사씨너지인터네셔널(이사)
링크공식 홈페이지
60 연기대상 대상
이병헌
(2003)
박신양/김정은
(2004)
전도연
(2005)
한혜숙
(2006)
박신양/김희애
(2007)
문근영
(2008)
100 TV 남자 최우수연기상
김명민
(2007)
박신양
(2008)
김명민
(2009)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한석규
(1997)
박신양
(1998)
이정재
(1999)
춘사영화상 남우주연상
[3]박신양
(1999)
설경구
(2000)

1 소개

대한민국배우.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이며, 동기로는 영화감독 양윤호와 배우 최준용 등이 있다.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러시아 유학길에 올라 쉐프킨 연극대학교와 슈킨 연극대학교에서 공부했다.[4]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이유는 "연기론"의 발원지가 러시아여서 결심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보디가드 알바도 해 보았다고. 유학 경험 때문인지 러시아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5] 미국조지아주립대학에서 강연을 할 정도로 영어실력도 굉장하다.

데뷔는 1996년작 영화 '유리'[6]에서였고, 이 작품을 통해 '대형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충무로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연이어 MBC 드라마 '사과꽃향기'와 '사랑한다면'으로 대중들에게 서서히 얼굴을 알리면서, 1997년과 1998년 멜로 영화 '편지'와 '약속'을 연속 히트시켜 1990년대 멜로 영화의 히어로로 우뚝 섰고 한석규의 대를 이을 멜로배우로 부상한다.

그러나 1999년 동기인 양윤호가 메가폰을 잡고 전지현과 함께 출연한 멜로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이 흥행에 실패했다. 2000년에는 영화 '킬리만자로'도 흥행에 참패하여 잠시 주춤한다.

곧 2001년 영화 '달마야 놀자'와 2004년 영화 '범죄의 재구성'을 성공시키며 다시 한번 흥행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또한 그 해 출연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연기력과 스타성을 동시에 인정 받는다.

긴 공백기 이후 2007년 드라마 '쩐의 전쟁'을 통해 쏟아지는 호평과 함께 드라마판에서의 입지를 굳히지만, 2008년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끝으로 출연 정지 논란[7]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1년 드라마 '싸인'으로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건재함을 보여줬고, 2013년 영화 '박수건달' 역시 흥행에 성공한다. 박수건달7번방의 선물보다 조금 더 일찍 개봉하긴 했지만 이후 7번방의 선물의 돌풍에 주춤하면서도 300만을 돌파, 389만을 기록한걸 보면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이다.

그후 3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2016년 초 발연기 학생을 상대로 연기 트레이닝을 시킨다는 개념의 tvN 예능 '배우학교'에 출연을 확정지었다. 백승룡피디는 연기공부를 시작한 후 날마다 발성연습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선생님은 무조건 박신양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8] 또, 이원종은 캐릭터를 분석해서 재창조해 나타내는 능력이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예능에만 집중하고 연기는 안할 것처럼 보였으나 15년 12월 23일 2016년에 방영될 KBS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출연을 확정지었다. 싸인 이후 5년만의 TV복귀작이자 박수건달 이후 3년만의 연기 복귀작[9]이기도 하며 데뷔 이후 최초 KBS 출연작이다.

2016년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 조들호로 출연, 믿고보는 배우, 국민배우의 수식어가 왜 붙어있는 배우인지 보여주며, 장르가 박신양이라는 말까지 탄생시켰다.


과거 리허설 대역을 써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리허설을 대역이 진행하는 동안 자신은 휴식을 취하고 녹화가 시작되면 배우가 연기를 하는 방식. 그 과정에서 리허설대역을 쓴건 조명위치나 카메라각도등을 잡는 과정에서 쓴건데 그 과정이 굳이 배우가 필요없는 과정이기도 해 제작진과 의논하에 이루어졌으며 싸인 촬영현장 제작진의 말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 현장 사정과는 맞지 않긴 했지만 덕분에 두 주연배우인 김아중과 박신양이 쉴 수 있는 시간과 대본을 좀 더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쩐의전쟁 현장에선 연이은 밤샘촬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으며 촬영대기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직접 해명한 바 있었다. 상대역이었던 박진희는 다들 그렇게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 뿐이라며 감싸기도 했다.

사실, 박신양은 바람의 화원을 제외한 모든 드라마에서 분량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몇배로 많기도 하고, 외국에선 주연배우들이 리허설대역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선 그런 경우가 없어 매우 생소한 경우이기도 하다.

액션씬같이 몸을 쓰는 씬을 대역없이 촬영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파리의 연인에서 아이스하키장면도 허리부상 회복 후 직접 촬영했으며, 쩐의 전쟁에서도 박진희와 함께 계단을 구르는 장면도 직접 박진희가 다치지 않게 여러번 연습해서 촬영했다. 바람의 화원에서 호랑이에게 쫓기는 장면도 절벽에서 뛰다가 넘어져 잠시 기절하기도 했으나 정신이 든 후, 다음에 하자는 제작진의 만류에 여길 또 언제 오겠냐며 다시 해내 제작진의 박수를 받았다고 장태유감독이 직접 밝힌 바 있다. 최근에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옥상투신장면도 대역이 대기했으나, 직접 촬영해서 슬로우장면도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연기를 위해 발레, 기계체조, 아이스하키 등 여러 운동을 섭렵하고 있는 배우다. 또, 법의관으로 출연했던 싸인 촬영전에는 부검참관을 100건이상을 하며 배역을 위해 공부했다고 한다. 장항준감독에게 날마다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장문의 메시지로 보고(?) 하고, A4용지로 160장 이상이 될 정도로 두껍게 공부한 것을 레포트처럼 김은희작가와 장항준감독에게 보냈다고 한다. 범죄의 재구성 촬영전에는 3달간 하루 9시간이상씩을 여관방을 잡아 최동훈감독과 영화얘기를 했다고 한다. 바람의 화원에서 김홍도역을 위해 서예, 대금등을 직접 배웠으며, 실제로 드라마에서 몇초컷으로 나온 대금부는 씬은 직접 연주했다고 한다. 또, 상투머리의 머리 뒷부분연출을 위해 머리를 기르기도 했다.

일본에서의 전담 성우는 토치 히로키.

여담 으로 몇 안되는 서울토박이다.[10] 조부 세대때부터 쭉 서울에 살았다고(...).

2 출연 작품

2.1 영화

개봉 연도제목배역
2013년박수건달광호
2012년미쓰GO백봉남(특별출연)
2007년눈부신 날에종대
2004년달마야 서울가자재규(특별출연)
범죄의 재구성창혁/창호
2003년4인용 식탁정원
2001년달마야 놀자재규
인디안 썸머서준하
2000년킬리만자로이해식/이해철
1999년화이트 발렌타인현준
1998년약속공상두
1997년편지조환유
모텔 선인장석태
쁘아종정일
1996년유리유리

2.2 드라마

방영 연도방송사제목배역
2016년KBS동네변호사 조들호조들호
2011년SBS싸인윤지훈
2008년SBS바람의 화원김홍도
2007년SBS쩐의 전쟁금나라
2004년SBS파리의 연인한기주
1998년SBS내 마음을 뺏어 봐윤석찬#s-2
1996년MBC사랑한다면문동휘
사과꽃 향기백성덕

2.3 예능

출연 연도방송사제목비고
2016년tvN배우학교고정
2013년SBS강심장게스트
런닝맨
2012년KBS개그콘서트-생활의 발견게스트
유희열의 스케치북
MBC한가위 특집 시간을 달리는 TV
tvN스타특강쇼
2011년KBS이야기쇼 두드림게스트
SBS달콤한 고향 나들이 달고나
강심장
2010년SBS강심장게스트
KBS희망로드 대장정-시에라리온
2007년SBS야심만만게스트
MBC놀러와
2004년SBS일요일이 좋다게스트
야심만만
2001년SBS이홍렬 쇼게스트
1998년SBS기분 좋은 만남게스트
김혜수의 플러스 유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1997년KBS이소라의 프로포즈게스트
체험 삶의 현장
SBS아이 러브 코미디
이홍렬 쇼
1996년MBC만나고 싶습니다게스트

3 수상

연도시상식수상
2014년대한법의학회도상 법의문화상
2008년백상예술대상TV부문 최우수상
2007년SBS 연기대상대상, 10대스타상, 네티즌 최고인기상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 스완 어워즈베스트 드레서상
2004년SBS 연기대상대상, 10대스타상
대한민국 영상대전탤런트부문 포토제닉상
1999년이천 춘사영화제남우주연상
1998년백상예술대상영화부문 인기상
청룡영화제남우주연상, 인기스타상
황금촬영상최우수인기남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신인상, 인기배우상
1997년기독교문화대상문화인 대상
백상예술대상영화부문 신인상
1996년청룡영화제신인남우상
  1. 23세 '양(陽)'자 항렬로, 현재 세대에서는 꽤 높은 항렬에 속한다.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온건개화파인 박정양과 같은 항렬이라는 뜻이다(!!!) 더 쇼킹한 건 갑신정변의 주동자 그 박영효의 아버지 뻘이라는 것(!!!) 흠좀무.
  2. 앞서 말했듯이 박영효의 동생 뻘이 된다.(...) 반남 박씨에서 갑신정변으로 박영효가 역적으로 몰리자 박영효 세대 항렬을 '영'에서 '승'으로 바꾸었다. 즉 갑신정변 아니었으면 이름이 박영채가 되었을 것이다.
  3. 재정난으로 중단되었다 3년만인 1999년 다시 열렸다.
  4. 평생 연극만 하다가 죽겠다고 생각했던 때. 어느 날 보게 된 매우 훌륭한 연극의 관객이 겨우 10명 남짓이라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껴, 많은 사람들에게 연기를 보여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영화와 드라마 매체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
  5.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러시아어를 한것을 볼수있다.
  6. 난해한 박상륭의 원작 소설인 '죽음의 한 연구'를 워낙 좋아해서, 러시아에 있는 동안 끼고 살았을 정도였다고 밝힌 바 있음. 영화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귀국했다고 한다.
  7. '쩐의 전쟁' 제작사 이김 프로덕션의 출연료 미지급으로 말미암은 소송에서 시작돼서, 드라마 제작사 협회까지 가세해 언론몰이를 했지만, 대법원까지 거친 소송에서 승소한 것으로 일단락 됐다..
  8.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서 처음 연극무대에 섰을때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화장실로 뛰어가 토했다고..어디서나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안민수선생님의 지도하에 발성연습의 중요성을 깨닫고 날마다 발성연습을 해서 힘없고 닝닝거리던 목소리를 바꿨다고 한다..
  9. 정확히 말하면 박수건달 촬영 자체는 12년 7월에 종료되었다. 거의 3년 7개월만의 복귀인 셈.
  10. 서울토박이의 정확한 의미는 본인 뿐만 아니라 정확히 조상 대대로, 즉 3대 이상이 서울에 거주하는 경우를 뜻하며 2010년 기준으로 서울 전체 거주민의 3%정도로 꽤 적은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