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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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The Beast" Sapp
Robert Malcolm Sapp Jr.

본명로버트 맬컴 샙(Robert Malcolm Sapp)
생년월일1974년 9월 22일
국적미국
체격196cm, 149kg
링네임"더 비스트"

1 개요

본래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워싱턴 대학교에서 약학사회학복수전공으로 3년만에 졸업 2개 학사학위의 인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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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외로 모에하다... 격투기 영화 많이 시청이라니..
K-1에 데뷔해 막강한 괴력과 야수같은 이미지로 크게 주목받았다. 데뷔 초에는 격투기 문외한에 가까워 시합 전 프로필란에 '격투기 영화 많이 시청'이라고 적히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겼다. 여러 스포츠 중에서도 극한의 피지컬을 요하는 미식축구 선수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마케팅으로, 미식축구 은퇴와 MMA 데뷔 사이에 프로레슬링을 수련한 경력이 있다.

2 미식축구 경력

워싱턴 대학교에서 뛰던 시기에는 워싱턴이 속한 Pac-10 컨퍼런스 최고의 라인맨 유망주였고, 4학년때인 1996년 시즌에는 모리스 트로피라는 그해 최고의 라인맨 선수에게 주는 상을 받을만큼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샙의 전해인 1995년 이 상의 수상자는 前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조나단 오그덴이었으며 1997년의 수상자는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올린 크루츠였는데, 두 선수 모두 NFL에서도 명예의 전당 후보로 언급될만큼 뛰어난 족적을 남긴 선수였다. 그만큼 미식축구 선수로서 밥 샙의 기대치는 대단히 높았었다.

그러나 대학시절 무릎부상 전력과 잦은 팀메이트간 폭력사건 등 불성실한 태도를 넘어 팀케미의 암적 존재라고까지 까이던 태도문제때문에 실제로는 3라운드에 시카고 베어스에 지명되었고 NFL에 들어와서도 그 성격 못고치고 결국은 4년동안 NFL에 등록되었지만 1997년 미네소타 바이킹스에서 공격라인맨으로 1경기 출장한게 전부다. [1] 이때문에 한 국내 격투기 캐스터가 미식축구 선수 명단에 밥 샙의 이름이 없었다는 말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4년간 NFL 선수로 뛰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그만둔 이후에 자기관리 실패로 재산을 탕진해서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NFL 스타중 한명인 워런 샙(Warren Sapp)과 성이 같아 형제 아니냐는 설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3 프로레슬링

2001년에 NWA 계열 지방단체에서 수련을 시작했으며 이후 WCW의 훈련생 양성소인 파워플랜트의 수련 과정을 겪었으나 WCW는 곧 WWE에 매각된다.

격투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종종 프로레슬링 시합에 출전했다. 사실 일본 종합격투기의 모태 자체가 프로레슬링인지라 그 관계가 긴밀하고, 두 무대 모두에서 활동하는 선수들도 제법 있다. 2004년에는 신일본 프로레슬링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벨트를 차지했다. 한국에선 2008년부터 WWA 대회에 수차례 참가해 이왕표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WWA 챔피언에 오른 일이 유명하다.

격투기 무대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IGF에서 프로레슬링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

4 입식타격기

입식격투기 전적28전 11승 17패
9KO, 2판정
11KO, 4판정, 2DQ

4.1 전적

2002년 6월 그는 K-1 Survival 2002에서 당시 일본의 에이스 중 하나였던 나카사코 츠요시를 상대로 입식 격투기 데뷔 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데뷔전은 밥 샙의 난동으로 DQ패로 시작하게 된다. 기자회견때도 책상을 뒤엎고 했다는 후일담이 있었던 걸 보면 데뷔 초에는 경기력을 보여주기 보다는 이미지 확립에 신경을 쓴 듯하다.

그는 2002년 9월 가진 경기에서 '마르세이유의 악동' 시릴 아비디를 상대로 경기를 가졌다. (리벤지 당하긴 했으나) 피터 아츠, 레이 세포 등에게도 승리를 거둔 아비디를 상대로 펀치러쉬로 1분 남짓한 경기 끝에 TKO승리를 거둔다. 물론 당시 MMA 파이터인 퀸튼 잭슨에게도 패배하는 등 하락세를 겪기 시작하긴 했으나,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아비디는 이길 경기는 지고 질 경기는 이기는 역대급 기복을 자랑하기로 유명했던 파이터이다. 오죽했으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도덕책 파이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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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는 2002년 토너먼트 개막전에 참전, 당시 피터 아츠 등의 몰락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베테랑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와 대결을 갖게 된다. 후스트가 밥 샙을 적당히 조련하며 승리할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펀치 러쉬로 후스트의 안면에 컷을 만드며 1R TKO승을 거두며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다.

이어 가진 K-1 WGP 결승 토너먼트에서도 후스트와 2차전을 가졌다. 후스트는 로우킥, 바디샷 등을 이용하는 침착한 경기 운영을 선보이며 밥 샙에게 다운을 빼앗았다. 수세에 몰린 밥 샙이 그 커다란 덩치로 위빙을 하거나 하이킥을 시도하면서 무릎을 올리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엽다. 하지만 경기를 다 잡았다고 생각한 후스트가 밥 샙과 갑자기 쓸데없는 난타전을 벌이다 이번에는 밥의 펀치를 맞고 공중에 붕 떠버리며 자신이 다운을 빼앗겨버린다. 이 후로도 후스트는 계속 난타전을 시도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후스트 특유의 자존심 때문인 걸로 추측되고 있다. 1차전에서 펀치 싸움에서 밀려서 패배했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려 우세를 잡은 뒤, 무리하게 난타전을 벌였다는 것. 이에 밥 샙은 우월한 파워와 신장으로 후스트를 몰아붙이며 코너에 몰아넣고 펀치를 날려댄 끝에 레프리스톱 TKO 승리를 거둔다. 후일 샙은 후스트를 다운시킨 그 펀치에 '플라잉 후스트'라는 별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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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밥 샙이 후스트를 패다가 주먹이 부러져 토너먼트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고, 리저브로 대타 출전하는 행운을 갖게 된 후스트는 레이 세포, 제롬 르 밴너를 연파하며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밥 샙의 평가는 더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또한 이후 종합 격투기에서 당시 최강자였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를 고전시키며 일본 격투계에서는 박살내야 할 최종보스격 파이터로 인식되었다.

2003년 3월 K-1 WGP 사이타마에서 미르코 크로캅과의 경기를 가지게 된다. 이 경기에서 밥 샙은 1분 26초만에 크로캅의 왼발 미들킥 - 왼손 스트레이트를 허용하며 KO패. 입식 격투기에서의 (DQ패를 제외한) 첫 패배를 당하게 된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 크로캅은 2006년까지 상승세를 달린 반면, 밥 샙은 벌써부터 하락세에 접어들게 된다.

5달 뒤 이후 키모 레오폴도를 KO로 잡고 K-1 WGP 토너먼트에도 출전, 당시 떠오르는 강자였던 '플라잉 더치맨' 레미 본야스키와 대결을 가졌다. 밥 샙은 레미에게 하이킥을 맞고 다운을 당했고, 이때 너무 아팠는지 우는 듯한 모습을 보여 '크라잉 비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도 얻어맞기만하고 경기가 안 풀리자 스텝이 꼬여 슬립 다운당한 레미에게 파운딩을 날리며 DQ패를 당했다.

2003년 12월 31일 다이너마이트에서 아케보노를 KO로 잡는다. 이 경기는 일본에서 순간 시청률 약 43%를 기록하며 프라이드 남제와의 시청률 대전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데 1등 공신이 되었다. 심지어는 일본 TV시청률의 절대강자인 홍백가합전의 시청률을 4분동안 뛰어넘는 전무후무한 쾌거를 기록했다.[2] 훗날 킴보 슬라이스를 관광시킨 세스 페트루젤리와도 경기를 가져 경기 내내 두들겨맞다가 세스의 부상으로 승리를 거뒀고, K-1 라스베가스 대회에서 스테판 감린을 초살시키며 3연승을 달린다.

2004년 6월 K-1 시즈오카 대회에서는 '남태평양의 흑표범' 레이 세포와 경기를 가져 이렇다 할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라운드내내 농락당하더고 두들겨 맞은 끝에 바디샷을 허용하며 2R KO패를 당하게 된다.

2005년 6월에는 토너먼트 출전권을 갖고 격돌하는 K-1 히로시마 GP에 출전, 나카오 요시히로, 호리 히라쿠, 토미히라 타츠후미 일본파이터 3인방을 연파하며 우승, 토너먼트 출전권을 따게 된다. 이 대회에서 밥 샙은 이 당시 즈음해서 만난 샘 그레코와의 훈련으로 다음 경기를 위해 체력을 안배하는 등 나름대로 노련해진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기대를 갖게 했다.

2005년 8월 K-1 WGP 2005 개막전에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과 '야수 대결'을 펼치며 격투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큰 주목을 받게 된다. 밥 샙은 최홍만과 3라운드 내내 난타전을 펼치며 비등비등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막판 최홍만의 니킥을 허용하며 2-0 판정패를 당하게 된다. 이 경기는 한국에서 TNmS 기준 약 15%라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대박을 쳤다. 이 방송을 중계했던 MBC ESPN이 '케이블 채널'이라는 것과, 격투기가 마이너한 장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초대박이다. 그러나 순간 시청률이며(평균 시청률은 6%인데 이것도 나쁜 수치는 아니다) 조사 기관이 논란이 많은 TNmS라 딱히 큰 의미는 없다. 그리고 밥 샙은 이 경기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나락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사실 그전부터 나락이긴 했지만

2005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는 무사시와 격돌, 1라운드에 다운을 뺏으며 선전했으나. 2라운드에 쓸데없는 후두부 가격으로 감점을 당했고, 후반에는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무사시의 미들킥 난사에 스탠딩 다운을 당하며 또 다시 패배를 당하게 된다. 이때 무사시가 대자로 뻗었기 때문에 '진짜 저러다 죽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6년 6월 K-1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어네스트 후스트의 은퇴 상대로 낙점을 받았으나 아래의 '각종 논란' 항목 참조.

그 후로 2년가까이 경기를 뛰지 않다가 2007년 피터 아츠에게 26초 초살 KO패를 당한 이후에는 이런 저런 선수들과 경기를 가지면서 계속 패가 늘고 있다. 2010년 11월 27일에는 북유럽의 강호 요르겐 크루스와 경기를 가져 1분만에 닥돌 러쉬도 보여주는 등 선전하였으나 1분 남짓한 경기 끝에 크루스의 니킥 한 방에 KO패. 최홍만 전 이후의 전적은 1승 13패로 매우 저조한 전적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1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KO패이며 이 1승마저도 얻어맞다가 상대선수가 밥샵을 차다생긴 다리 부상에 의한 기권 승리다.

마지막 경기는 2013년 11월에 니시지마 요스케의 은퇴전 상대로 낙점되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무난하게 2차례 다운을 뺏기면서 KO패. 요스케의 첫 승이자 은퇴전 승리의 제물이 되었다. 이후 샙이 은퇴하면서 이 경기는 밥 샙의 커리어상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영상 뭔가 경기 전체가 굉장히 엉성해보인다면 기분 탓이다. 근래 밥샙 경기는 다 이랬다

이후 은퇴 선언과 함께 한동안 링을 떠나 있었지만, 2015년 연말 이벤트인 Rizin FF에서 오랜만에 현역으로 복귀, 슛복싱 룰 경기에서 아케보노 타로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비록 상대가 떡밥중에서도 만년 떡밥인 아케보노였지만, 그래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펀치를 뻗는 등 전성기 시절의 공격성을 어느 정도는 보여줬다.내가 얘한테만큼은 질 수 없지

5 종합격투기

종합격투기 전적31전 11승 19패 1무
8KO, 3SUB
10KO, 9SUB

5.1 전적

  • 주요 승 : 야마모토 요시히사, 타무라 키요시, 김민수, 김종왕, 바비 올로건, 다나카 아키히토
  • 주요 무: 제롬르 밴너

MMA에는 2002년 4월 PRIDE 20에서 데뷔했다. 2002년 4월과 6월에 각각 야마모토 요시히사와 타무라 키요시를 초살 KO로 잡아내며 2연승을 거두었다. Pride Shockwave에서 3전째 만난 상대가 바로 주짓수 마스터 '미노타우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2002년 8월에 열린 대결에서 밥 샙은 노게이라의 태클을 막아내며 오히려 노게이라의 허리를 잡고 파일 드라이버를 작렬시킨다. 태클이 들어온 상대에서 허리를 잡고 전신을 통째로 뽑아들고는 머리부터 떨어뜨리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그것도 단발로 그친 것이 아니라 재차 슬램을 시도했지만 2번째부터는 노게이라가 중심을 잡으며 잘 방어했다. 하지만 계속 상위를 잡으며 노게이라를 괴롭혔고 오히려 스윕 후 걸어온 기무라를 한 손으로 뽑아내는 괴력을 보였고 재차 파운딩을 먹이며 승리를 목전에 둔 듯 보였다. 하지만 체력을 지나치게 소모한 탓에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결국 2라운드 4분만에 암바에 걸려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승자인 노게이라가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난타당한 반면 밥 샙은 암바에 걸린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미지가 없었다. 그래서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남자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군."

반면 노게이라는 넌더리를 내며 "다시는 싸우기도 싫다."며 리벤지 오퍼를 거절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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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게이라에 패한 후에 입식격투기에서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를 잡으며 일대파란을 일으켰고 2002년 연말 이노키 봄바예에 나가 초살 암바로 승리를 챙겼고, 1년후 2004년부터는 K-1 산하의 MMA 무대인 HERO's에서 활동해 2연승을 이어나갔다. 첫상대는 초반 스탠딩 초크로 끝내버렸고, 2번째 몽골선수는 내내 파워로 압도하다가 상대방의 발목 부상으로 이겼다.

그러던 그에게 두번째 패배가 찾아온다. 2004년 5월 K-1에서 후지타 카즈유키에게 패배한 것이다. 일본 헤비급 최종보스급을 자랑하는 후지타는 장기린 레슬링으로 태클로 밥 샙을 넘어뜨린 뒤 재빠르게 스탭을 밟으며 사커킥과 파운딩을 날렸고 2분 15초만에 탭을 받아냈다. 밥 샙은 단 한번 넘어진 후 몰린 수세에서 회복하지 못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2004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4'에서는 제롬 르 밴너와 경기를 가졌다. 1라운드씩 입식과 MMA 룰로 번갈아가며 싸우는 괴랄한 매치였고 밴너가 입식, 밥 샙이 MMA 라운드를 가져간 끝에 무승부로 마무리된다(다만 이 경기는 순수 종합 룰이 아니기 내문에 공식 MMA 전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K-1이 거의 손도 대기 힘들 정도로 맛이 가기 시작했다는 증거.

2005년 5월 26일 K-1 HERO's에서 대타왕 김민수를 1분 초살 KO로 잠재우고 7월 6일 러시아출신 스모선수 알란 카라예브를 3분만에 KO승으로 11월 5일 한국의 1세대 파이터 김종왕을 상대로 무지막지한 러시를 보여주며 8초만에 KO승을 거두어 3연승을 이어갔다. 이에 격갤에서는 김종왕 선수에게 8과 관련된 별명(ex : 8종왕, 8만 대장경 등)을 무수히 붙여주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김종왕 선수는 경기 이후 끊임없는 비난에 본인이 운영하던 체육관 문을 닫고 자살 충동까지 겪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007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7'로 복귀해 나이지리아계 일본 개그맨 바비 올로건을 상대로 마운트에서 광폭한 파운딩을 퍼부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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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3일 Strikeforce에서 남아공 출신의 얀 노르키아와 경기를 갖는다. 이는 MMA룰로는 처음으로 고국인 미국에서 경기하게 된 것이라 그의 미국 진출전은 현지 팬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 경기는 샙의 절대우세가 예상된 시합으로 경기 전 배팅 사이트에서도 도박사들의 86%가 샙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밥 샙은 211cm인 얀 노르키아의 강력한 잽을 허용하고 뒷걸음질쳤다. 노르키아는 공세를 늦추지 않고 위축된 샙을 몰아 레프트 훅을 휘둘렀다. 샙은 이에 저항도 못하고 웅크린 채 전의를 상실하며 55초만에 TKO패를 당했다. 다만 이겼는데도 $15,000밖에 못 받은 노르키아에 비해 인지도에서 훨씬 우위인 샙은 파이트머니로 $100,000를 챙겼다.

2008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8'에서는 희대의 떡밥매치 일본 애니메이션 근육맨의 캐릭터인 근육 만타로 기믹으로 출전한 다나카 아키히토와 싸웠다. 라운드 초반엔 아키히토에게 2번이나 테잌다운을 당해 하위에서 약간 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 탈출한 샙은 스탠딩에서 상대를 코너로 몰아넣은 후 펀치 러시와 니킥을 적중시키며 TKO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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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에는 MMA 역사상 최악의 이벤트로 회자되는 'K-1의 슈퍼 헐크 토너먼트'에 출전,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와 맞붙는다. 이 토너먼트는 후일 밝혀진 것처럼 흥행을 위해 결승전으로 '밥 샙 VS 최홍만'의 대결을 만들 의도로 기획했던 대회였다. 그래서 샙이 이길 수 있도록 미들급 파이터인 미노와를 붙여준 것이다(!). 그러나 주최사의 의도와는 달리 본 경기에서 미노와는 자신보다 55㎏이나 무거운 밥 샙에게 아킬레스 홀드를 성공시키며 1분 15초만에 탭을 받아낸다. 이 경기에서 패하면서 밥 샙은 스피드, 밸런스의 부재와 낮은 서브미션 이해도 등 많은 약점을 드러냈다.원래부터 드러났지만. 그런데 막상 아킬레스 홀드에 걸려 진 것으로 되어있는 샙이 실은 발목이 꺾여있지 않아 워크 의혹이 일기도 했으나 조용히 묻혔다. 미노와는 그저 무릎과 허벅지에 압박을 준 정도로 샙이 아프기 싫어서 탭을 그냥 빨리 친 것이었다.

2009년 6월 FFI에서는 WWE 출신의 MMA 파이터 바비 래쉴리에게 태클을 허용하고 사이드 포지션을 빼앗긴 채로 내내 파운딩을 당하다가 광속 탭을 쳤다.

2009년 10월 K-1의 슈퍼 헐크 토너먼트 4강전에서 소쿠주를 상대할 예정이었던 게가드 무사시가 어깨 부상을 당해 대체자로 출전하게 됐다. 사실 이 경기는 8강전에서 미노와에게 지며 탈락한 밥 샙에겐 출전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주최측에서 '밥 샙 VS 최홍만'의 결승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샙은 4강전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주최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밥 샙다운 경기로 소쿠주에게 테잌다운을 당한 후 파운딩만 쳐맞다가 1분 31초만에 TKO패했다.

2010년에 3월 27일 K-1 지역 대회에서 무명 선수 샤차 페인포터를 상대로 평소와는 다르게 무슨 생각인지 전력을다해 있는 힘껏 마운트에서 짓 누른다음 폴암 초크 승리를 거뒀으며, 12월에 키프로스 출신의 스타브 에코노무와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대회 자체가 취소되었다.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 출전, 스모 출신의 프로레슬러 스즈카와 신이치와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었다.

2011년에는 3월 11일 취소됐던 스타브 에코노무와의 경기에서 역시나 밥 샙다운 초살 KO패를 당하는 등 UAE, 크로아티아등 세계 각국의 중소 단체에서 싸웠으나 3전 초살 3패를 기록한다. 3전 경기 총 합시간이 5분정도밖에 안된다.

2012년 2월 11일 ONE FC 2에서 UFC 참전 경력이 있는 홀레스 그레이시와 경기를 가졌다. 초반 기세 좋게 그레이시에게 다가갔으나 바로 테잌다운을 허용, 상위를 내주게 된다. 샙은 하위 포지션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썼으나 계속되는 그레이시의 파운딩을 참지 못하고 1라운드 1분 18초만에 탭을 치고 만다.

2012년 3월 11일 인도의 신생단체인 Super Fight League(SFL) 첫 대회에서 같은 PRIDE 출신이자 괴물 캐릭터인 제임스 톰슨과 맞붙었다. 샙의 체격 조건을 의식한 듯 톰슨은 경기 전 계체량에서 25㎏이나 증량한 150㎏으로 계체를 통과했다. 이는 155㎏으로 통과한 샙과 5㎏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비주얼만큼은 신생단체의 메인이벤트로 내세우기에 충분했다. 경기 시작후 샙은 밥 샙답게 어느 경기와 다름없이 초반 돌진을 감행했으나 톰슨에게 곧바로 원렉을 잡혀 테잌다운을 당하고 사이드까지 내준다. 1분 남짓한 시간동안 톰슨에게 파운딩을 얻어맞으며 경기는 또 허무하게 끝나나 싶던 찰나에 샙은 놀랍게도 스윕을 성공시키며 상위 포지션을 잡는다. 상위에서 승기를 잡고자 크루서픽스까지 시도했으나 탈출을 허용, 톰슨이 일어나려 할 때 가공할 파운딩을 몇 방 성공시킨다. 그러나 이를 버틴 톰슨은 더블렉을 잡으며 밥 샙을 넘어뜨렸고 그 순간 샙은 왼쪽 다리에 부상을 호소하며 탭을 치고 만다. 1라운드 1분 52초만의 서브미션패.

2012년 5월 12일 폴란드의 KSW 19 대회에서는 폴란드 출신의 월드 스트롱맨 우승자 출신인 마리우스 푸치아노스키와 경기했다. 완력에서는 밀리지않던 밥 샙이 완력괴물을 만난 경기였는데, 예상대로 초반 공방전에서 푸지아노스키의 무지막지한 펀치 및 니킥 러쉬에 밀리다가 이윽고 테잌다운을 당했고, 이어진 파운딩에 몸을 웅크린채 가드에만 급급하자 심판은 경기를 중단했다. 39초만의 TKO패. 이 시합을 기점으로 밥 샙의 MMA 전적은 승보다 패가 많아졌다(23전 11승 12패). 네이버의 유명 MMA 블로거인 고우키는 이 경기를 빌어 밥 샙의 현 실태를 재치있게 풍자했다. 물론 본인은 진지하게 말한 거라지만 글쎄?

2012년 5월 18일 호주에서 열린 CFC 21 대회에서는 최무배 선수와의 경기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무쇠 파운딩 소아 파렐레이를 상대했다. 이 시합은 이전 경기인 푸지아노스키전에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의 경기라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경기 시작 후 사우스 포 자세로 돌진했으나 파렐레이에게 오른손 어퍼를 맞은 샙은 펜스 주변에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 때를 놓치지 않은 파렐레이의 테잌다운 후 특유의 무쇠 파운딩 난타에 심판이 경기를 말렸고 샙은 12초만에 TKO패를 당한다.

2012년 6월 8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bushido Lithuania-vol.51에서 무명의 카자흐스탄 선수에게 밥 샙다운 1라운드 1분29초두들겨맞고 탭을 쳐 패했고 8일 후 한국에서 열린 Road FC 8에 참가해 국군정보사령부 예비역 부사관인 前 북파공작원 김종대와 경기를 치렀으나 워크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냥 드러눕고 가만히 있기만 한 채 2라운드 2분 TKO로 졌다. 이에 지난 두 경기 경기를 통해 샙의 무저항 정신을 찬양했던 고우키는 이번에도 찬양을 빙자한 풍자글을 올렸다.

2012년 9월 15일 세르비아에서 Night of the Champions 2012에 참가해 무명의 세르비아 선수에게 펀치를 맞다가 1라운드 1분28초만에 탭을 치면서 10연패를 했다. 이로써 2012년 한해에만 7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13년 5월 25일 러시아에서 열린 Legend Fighting Show에서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의 복귀전 상대가 되어 1라운드 1분 18초만에 펀치에 의한 TKO패를 당하며 11연패를 기록했다.

2013년 8월 8일 브라질에서 열린 OX MMA에서 에드슨 프란카와 대결해 경기 시작 35초만에 RNC로 탭을 치면서 12연패를 찍었다.

이후 별다른 경기를 갖지 않다가 2014년 5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선언을 하였다. 통장 잔고가 100억이나 있다는 발언은 덤.

2016년 7월 Road FC 32 대회에서 아오르꺼러와의 경기가 잡히며 종합격투기 복귀가 확정되었다.

...결과는 너무 오랜만에 한 것도 있고, Road FC의 띄워주기버프를 한창 극렬하게 받고있는 아오르꺼러인지라 결국 밥샙이 졌다. 경기내용이 워낙 엉망이여서 경기 후 조작의혹도 많았다. 1R 39초만에 KO로 허무하게 패배.

5.2 파이팅 스타일

장점은 힘. 신장 196㎝, 체중 149㎏, 리치 210㎝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괴력이 그가 가진 무기이다. 이 파워를 바탕으로 초반 거친 쇄도를 한다. 이것을 버틸만한 힘이나 기술이 없는 상대를 그대로 초살시킬 정도의 힘이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이나 스피드에서는 한참 떨어지고 밸런스가 좋지 않기 때문에 정면으로 힘대결을 하지 않고 좌우로 중심을 흔들면 의외로 잘 넘어간다. 포지셔닝에서도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어이없이 스윕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서브미션에 대해서는 공격과 방어 양쪽 모두 미흡하다. 가끔 터지는 서브미션은 '힘으로' 우겨 넣는 경우. 노게이라가 관광당한 것은 정면으로 태클을 들어갔기 때문이다. 소쿠주는 라이트헤비급의 체격으로 클린치 상황에서 밥 샙을 넘어뜨렸다.

또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은 한 번 수세에 몰리면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맷집 자체는 단 한번도 (TKO가 아닌) KO패를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좋다. 문제는 멘탈과 관련된 것인데, 다른 파이터들이라면 버틸 수 있는 데미지를 버티지 못한다. 쉽게 말하자면 아픈걸 잘 못 참는다. 항상 탭이 빠른 것과도 연관이 있다. 서브미션 패배가 2013년 기준으로 총 9패가 있는데 그 중 5패가 맞다가 탭 친 경기이다.

입식이나 종합이나 파이터로서 정상권과는 당연히 거리가 있다. 지명도나 흥행성에 비해서 파이터로서의 실력은 높지 않다는 평가. 2008년 얀 노르키아 전 이후 은퇴까지 2승 16패라는 처참한 전적을 기록했다. 그 2승마저도 제대로 된 승리라고 봐주기에는 좀.

6 기타

밥 샙의 웨이트 트레이닝 측면에서의 신체능력은 미국의 피트니스 전문지 《INFINITY FITNESS》, 《MUSCLE & FITNESS》 등에서 소개된 바 있다. INFINITY FITNESS 기사 MUSCLE & FITNESS 기사 이 기사들에 따르면 밥 샙은 대학 미식축구 선수 시절 벤치 프레스 585lb(266㎏), 스쿼트 800lb(363㎏), 데드리프트 800lb(363㎏)를 기록했다고 한다. 또한 프로레슬러 밥 샙에 대한 소개에서 그의 가슴둘레는 153㎝라고. Bob Sapp 프로필 2010년 1월 3일 방영된 KBS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했을 때 그의 발 크기는 350㎜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합뉴스 기사 참고로 종합격투기 선수로서의 밥 샙을 거론할 때 자주 언급되는 브록 레스너는 1996년 만 19세일 때 벤치 프레스 475lb(215㎏), 스쿼트 695lb(315㎏), 데드리프트 720lb(326㎏)를 기록했으며 2004년 NFL 입단 테스트 전에 받은 신체검사에서 가슴둘레가 56in(142㎝)였고 벤치 프레스 102㎏을 49회 왕복했다. 기사 자료

K-1은 초기에 가라데 VS 킥복싱 선수들의 대결양상으로 시합이 전개되었으나, 그딴거 없이 근육량과 힘으로 상대 선수를 마구 때려잡는 밥 샙의 등장은 격투기 팬들에게 큰 이슈거리가 되었고, 스스로도 야수 이미지를 적절히 만들어내 K-1에서 확실한 캐릭터를 만들며 성공한 파이터가 된다. 특유의 쇼맨쉽과 이미지로 일본의 각종 쇼프로에도 출연했고 시청률 견인차 노릇을 했다. 역대 K-1 경기 시청률 순위를 보면 상위 10개 경기중 절반은 밥 샙의 경기일 정도. 그야말로 K-1의 기무라 타쿠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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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런 승리 퍼포먼스

K-1의 아이콘으로 확실하게 자리잡기는 했으나 순수한 경기력은 뛰어난 편이 못되고 캐릭터성으로 K-1에 버티는 감이 있어 팬들은 그가 K-1의 서커스화를 부추긴다고 평가했고 그것이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다. K-1의 메인 프로듀서도 방송국 출신인 타니가와로 바뀌게 되었고, 그는 K-1의 인기를 올리기위해 밥 샙과 같이 격투기 경험이 전무한 엔터테인먼트성을 가진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 링위에 올리게 된다. 또한 격투기 실력보단 거구와 힘으로 어드밴티지를 얻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게임이 많아져 수준높은 격투기 시합을 기대한 팬들이 실망케되는 계기도 된다.

이후 최홍만같이 밥 샙 보다 더 크고 더 힘센 선수가 나오고, 세미 슐트같이 크면서 실력까지 겸비한 로봇선수까지 나오자 K-1에서 더이상 독보적인 입지를 지킬수 없게 되었고 나이도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전성기는 지나게 되자 격투기 보다는 주로 엔터테이너 활동을 집중하고 있다.

2005년 최홍만과의 대결로 한국에도 이름을 알린 것을 시작, 2009년 이왕표와 두 차례 경기를 가진 것을 발판 삼아 국내 활동도 많아지고 있다. 국내 프로레슬링 단체인 WWA에서는 아예 챔피언으로 등극.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리벤지 당한 적이 있다.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시와스노 오키나상업지정장추남저에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은 아니고 주인공의 죽은 아버지가 밥 샙과 똑같은 얼굴이라 영정 사진으로 쓰였다.

미국에서는 일본&한국에서의 연예계 활동시의 귀여운 이미지와는 달리 지독한 악역의 이미지로 통한다. 생긴 것만 봐도 딱 덩치 큰 악역 A 그 예로, UFC 초창기 악역 포지션에 있는 선수 중 하나인 키모 레오폴도와의 대결에서도 관중들이 죄다 키모만 응원했다. 또한 경기 후 마이크 타이슨과 난투극이 벌어졌을때도 관중들은 전부 타이슨만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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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0일 인도의 Super Fight League(SFL) 1회 대회의 계체량 측정중 체중계 위에서 손을 드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그만 대회 관계자의 얼굴을 가격하고 말았다. 한 번 흘깃 쳐다보고 포즈에 집중하는 쿨함

경기 외적인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 그의 이름을 '밥 샵'이라고도 발음했는데, 사실 정확한 발음은 '밥 샙'이 맞다. '밥 샵' 이라는 명칭은 이동기 해설위원의 번역 실수라고 한다. 당시 이동기 해설위원이 일본 잡지를 직접 봤는데 거기에 이름이 "보브 사프"(ボブ・サップ를 그대로 읽은 것)라고 적혀있어서 본래 명칭이 '밥 샵'인 줄 알고은 아닌것 같고 그대로 격투 잡지에 실은게 이렇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이 이 일이 밝혀진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뉴스 등의 공식 선상에서 '밥 샵'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을 보기 힘들어졌다. 해당 발언이 나온 시기는 2006년 경으로 이동기 해설이 K-1 방송 도중 본인이 직접 말한 것이다. 트위터에서도 본인이 한 거라고 RT해달라고 하고 계신다 그러나 CJ계열 방송사에서는 여전히 '밥 샵'이라는 명칭을 쓴다. 그러나 상술된대로 완전히 틀린 표현으로, 밥샙의 활동지인 일본의 사람들조차 '보브 사프'라고 부르지 '밥 샵'이라는 발음으로 부르지 않으니 주의하자[3]. 밥 샙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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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샙을 흉내내는 퀸튼 잭슨

일반인들의 편견과는 달리 워싱턴 대학에서 약학과 사회학을 전공으로 3년만에 졸업한 엘리트이다. 국내 미디어와 가진 인터뷰의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이며 개념찬 발언들을 보면, 밥 샙이 겉보기와는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외에도 심리치료 관련 자격증을 갖고있다고 하며, 충격요법을 주로 쓸거 같다 여러 가지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스마트함을 자랑한다. 또한 영화에도 여러 편 출연하는 등 이제는 굳이 격투기에 몸담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쯤되면 이 사람도 확실한 엄친아.

그가 벌어들인 재산과 관련해서는 2011년 10월 15일 일본의 한 방송에 출연, 본인의 전성기 시절 가운데 2004년 2월에는 월수입으로 1억2600만엔(한화 약 18억원)을 벌었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또한 예금으로만 400만 달러를 저축하고 있으며 전재산은 1000만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기사

2015년 4월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인 Road FC의 부대표에 취임했다.

6.1 연예 활동

일본 연예계로 진출. 야수같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행동으로 흥미를 끌며 CF, 영화 등에 출연했다. 그중에서는 데빌맨/영화같은 괴작도 종종 있었지만 그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영화계로도 진출. 역시나 귀여운 이미지다. <빅 스탠>[4]에선, 무차별 강간범같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여성적인 게이로 출연하기까지. 실제로 야수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겁이 많고 여린 성격이라고 한다.

스타킹에서 카라의 열성팬으로 나와서 어필한 적도 있다. 국내의 수제 햄버거 전문업체인 Bob's Burger & Shake의 모델이기도 하다.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그의 사진이 들어 있는 플래카드로 광고하고 있다. 2010년 중순에 그 가게는 망해 떡볶이 가게로 바뀌었지만 바뀐 떡볶이 가게가 원래 있던 가게의 밥 샙 마네킹을 활용하고 있다.

2009년에는 개그우먼 김미연과 함께 하땅사에 출연해 커플 댄스를 추었다. 춤을 추는 김미연을 두 손으로만(!) 들어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깨에 얹고 피날레 포즈를 취하는 것이 포인트. 자신의 괴력을 선보이면서 김미연의 가냘픔 역시 강조되는 앵글이었는데 상완이 김미연의 허리보다 굵었다.

2010년 2월 관광 비자로 입국해서 광고를 두 차례 찍은 것 때문에 국내에 입국하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어떻게 좋게 해결된 듯 하다. 이러더니, 자상한 아빠가 가족 통신비가 너무 많이 나와 화가 나서 밥 샙이 되어 버린다는 KT광고(목소리 더빙은 시영준 씨가 담당)와, 밥 샙이 아기로 분장한(!) 시보가 나왔다. 이것은 예전에 진짜 아기가 나왔던 QOOK 시보의 리메이크. 게다가 닉툰에서 녹색 페인트를 맞는 광고도 나왔다.

김진태의 만화 와일드 와일드 워커스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밥은 누가 봐도 밥 샙을 모델로 했다.

2010년 11월 18일 마비노기 영웅전의 새 캐릭터인 카록 프로모션 모델로 등장. 지스타에서 그 끼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fripSide의 8번째 싱글이자 애니메이션 블랙 불릿의 오프닝 테마인 Black Bullet 싱글 PV에 특별출연 하였다. #

2015년 5월 3일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 작업의 정석에 깜짝 출연하였다.

6.2 각종 논란

이런 '괴물 캐릭터' 부류의 빨리 뜬 선수들이 다 그렇듯이 논란이 꽤 있다.

첫 격투기 데뷔전을 프라이드에서 치뤘는데, 이 과정에서 K-1과 계약을 해놓고 프라이드에서 먼저 데뷔하는 병크를 터트려 K-1에 욕을 먹었다. -장대한 시작- 데뷔 초창기에 던져준 선수들도 미들급의 타무라 키요시처럼 체중차가 많이 나거나, 시릴 아비디처럼 3~4일전 에 오퍼를 보내 급구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잘 포장시켜 최종보스격 캐릭터로 만들려고 계획해놓았던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이 논란은 당시 최강자였던 후스트를 실력으로 잡으며 잠잠해졌다.

경기가 안 풀리면 반칙이 자주 나오는것도 문제였다. 데뷔전인 나카사코 츠요시와의 경기는 아예 대놓고 시작부터 MMA경기인지 입식경기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태클시도 및 파운딩을 날려대서 DQ패를 당하고, 경기 종료 후 분노한 나카사코와 난투극을 벌이기도 하였다. 2003년 레미 본야스키와의 경기에서는 쓰러진 레미에게 펀치를 날려서 실신시켜 DQ로 패배는 일이 있었고, 2004년 레이 세포와의 경기에서는 노골적으로 후두부 가격을 했으며(빡친 세포는 로블로로 화답) 2005년 무사시와의 경기에서는 클린치를 하는 무사시의 후두부를 "퍽!"소리 나게 쳐서 쓰러뜨린 일이 있었다. 이런 비신사적인 행동들 때문에 한동안 안티를 양성하느라 고생했다. 다만 요즘엔 반칙을 쓰는 일이 없다. 대신 광속 탭아웃을 하는게 문제지

밥 샙의 역대 최악의 행동은 2006년 K-1 WGP 암스테르담에서 어네스트 후스트의 은퇴전 경기 직전 경기장을 무단 이탈하는 초대형 병크를 터트린 짓이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일본 격투기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야쿠자 개입설이나 K-1의 워크 요청설 등 수많은 의혹들이 있었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일단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밥 샙이 경기장 이탈 전 주최측에게 납득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 이후 밥 샙은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경기 2시간 전 세미 슐트의 경기복을 빌려 입고 나와 대타를 뛰어준 피터 아츠에게 엄청난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아츠는 대회 해설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갔다.

이후 밥 샙은 K-1으로부터 무기한 출장정지를 받고 자숙하다가 2007년 K-1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복귀하였다. 그러나 정작 경기에서는 한심한 기량을 보여 또 다시 까였다. 시작 26초만에 복부에 니킥을 맞고 쓰러져 KO패를 당했다. 아무리 봐도 한 방에 KO될 만한 파워가 아니었기 때문에 태업 의혹을 샀고, FEG 대표 다니가와 사다하루는 "이번에 밥 샙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그것 마자 날려버렸다"며 밥 샙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다만 이 이후로는 크게 말썽을 일으킨 일이 없으며, 위에 언급된 인터뷰를 통해 호감형 이미지로 바뀌어가며 안티가 많이 줄었다. 다만 이 때부터 후술할 셀프 워크 행위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2007년 Cage Rage에 영입되기도 했었으나 여기서도 1주일 전에 경기를 파토내버리는 바람에 또 욕을 얻어먹었다. 게다가 그 대회는 같은 날 열렸던 UFC 70과 경쟁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인이벤터이자 대회의 가장 큰 축이었던 밥 샙이 이탈하면서 망해버렸다. 참고로 해당 대회는 MBC ESPN에서 밥 샙이 나온다는 이유로 중계권 계약을 맺었으나 밥샙이 또 파토를 냈다.망했어요. 때문에 당시 캐스터인 정우영은 "밥 샙은 우리가 생중계를 해주려고 하면 도망간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당시 K-1 계약사는 MBC ESPN이었다).

2010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 출전, 스모 출신의 프로레슬러 스즈카와 신이치와 프로레슬링 룰로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대회측에서 경기 당일 경기 룰을 MMA 룰로 바꾸는 초특급 병크를 터트리자 밥 샙도 병크로 맞대응 대기실 문을 닫고 안 나오는 등 여러모로 한심한 상황이 펼쳐진 끝에 무산되었다. 게다가 밥 샙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 받기로 했던 파이트머니도 대폭 삭감했다고 한다.

사실 2004 ~ 2005년쯤 프로 파이터로서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각종 예능과 CF, 영화, TV 등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 것이다. 실제로 샙은 2000년대 후반기부터는 부상 위험이 높고 이기기 힘든 상대와의 대결은 피했으며 만만하다 싶은 하류단체에서 주로 파이트를 벌여왔다. 2010년대 이후 밥 샙의 파이트 일정은 어느 1류 파이터보다도 빡빡하게 잡혀있고 심지어 시도 때도 없이 져주는 행위(이른바 '셀프 워크')도 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에 밥 샙의 상대들은 해당 대회가 열리는 지역의 네임드 파이터들이 대부분이었고, 경기 자체도 밥 샙이 져야 모양새가 나는 경기들이었다. 한 마디로 2, 3류 무대에 가서 일부러 흥행 보증 수표 + 상대 띄워주기용 떡밥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 2008년 즈음해서는 아예 대형 격투기 무대에서도 대전료만 받고 대충 져줘버리는 먹튀 짓을 하고 있다. 당연 보통 선수가 이런짓을 하면 격투기 무대에서 안 받아 주지만, 흥행력이 있으므로 표를 팔아야 한다는 목적 아래 밥 샙을 다시 고용하곤 하는 것. 즉, 모든 것은 계획대로 였던 것이다.

물론 위에 열거된 병크가 죄다 전략적이라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병크 중 하나인 후스트 은퇴전 파토를 저런 의도로 한 것이었다면 자기 욕심을 챙기려 수많은 사람에게 빅엿을 날린 천하의 개쌍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2007년 이후로는 진짜 돈 벌러 나오는게 목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충 맞다가 탭치는 OME스러운 경기를 자주 보여주면서 이전에 한국에 자주 방한하며 쌓아올렸던 좋은 이미지를 다 깎아 먹었다. 때문에 '대충 쳐맞고 명성빨로 돈만 챙겨가는 놈'이라는 이미지가 박히면서 안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ROAD FC에서 밥 샙과 김종대의 대결을 추진했을때 "또 처맞다 탭칠게 뻔한 놈 꼴도보기 싫다"며 반대 의견이 크게 일기도 했다.

그래도 여유가 있는 자신과 다르게 은퇴 이후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개리 굿리지, 알렉세이 이그나쇼프)을 돕기 위해 스폰서를 모아 은퇴모금을 마련하며 지원도 아끼지 않는 등 좋은 일도 하고 있다. 파이터로서는 최악이지만 인생에서는 나름 승리자라는 것을 부정하긴 어려울 듯. 그런데 후원을 해줬다는 파이터 중 하나인 굿리지가 이를 부인했다. 허나 재단 설립 자체는 거짓이 아닌것으로 보이며, 또한 이것이 밥 샙 측의 언플은 아니고 기자들의 보도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듯 하다.
  1.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에 나와서 농담삼아 말하길 당시 포지션이 'ass-back' 이었다고 한다. 뛰려고만 하면 감독이 'put your ass back!'이라고 해서(...)
  2.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겨우 4분? 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TV 시청률이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로 역사상 최초의 사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 시간에 홍백가합전에 출연중이었던 게 일본의 국민가수인 나가부치 쯔요시.
  3.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도 밥 샙을 어쩌다가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들 보브사프나 바브사프라고 부른다.
  4. 국내 개봉명은 쿵푸 프리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