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 열도 분쟁

(북방 영토에서 넘어옴)
쿠릴 열도와 국경선 변화
  • 러시아어 - Проблема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южных Курильских островов
  • 일본어 - 北方領土問題
  • 영어 - The Kuril Islands dispute

1 개요

일본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소련과 그 후신인 러시아를 상대로 줄기차게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쿠릴 열도(Кури́льские острова́, 일본명 千島列島) 남단의 4개 섬에 관련된 분쟁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북방 4도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쿠나시르(Кунашир, 일본명 구나시리 国後), 이투루프(Итуруп, 일본명 에토로후 択捉), 시코탄(Шикотан, 일본명 시코탄 色丹), 하보마이(Хабомай, 일본명 하보마이 歯舞) 제도의 네 섬들이 속해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보마이 제도는 실제로 하나의 섬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자잘한 섬들이므로 북방영토라 일컫는 섬의 숫자가 정확히 네 개는 아니다. 다만 하보마이 전체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편의상 네 개 섬이라 할뿐이다. 이 섬들은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 사이에 위치에 펼쳐져 있으며, 네무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쿠나시르 섬과 하보마이 제도가 마주보고 있다.

이 섬들의 원래 주민은 아이누였으나 아이누족이 국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론 최초에 양자 중 어느 쪽의 영토로 상호 인식하고 있었는지 애매했지만,[1] 1855년 러일 화친조약(시모다 조약)에서 일본의 북방 국경이 이투루프-우루프 섬사이로 정해지고 사할린은 양국의 공동 거주지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1875년 사할린에서 손을 떼는 대가로 쿠릴 열도(일본명 치시마 제도) 전체를 교환하자고 제안했으며, 이것이 성사되어 사할린-치시마 교환조약(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은 사할린을, 러시아는 쿠릴 열도를 포기했다.

그후 1905년 러일전쟁(과 포츠머스 조약)의 결과에 따라 일본은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을 수중에 넣었으나, 1945년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무효가 되었다. 이 때 소련은 쿠릴 열도도 함께 수중에 넣었는데, 당초 이오시프 스탈린미국에 소련군의 홋카이도 점령을 타진했으나 트루먼이 이를 거부하자 결국 1945년 8월 18일 시무슈 섬 전투를 시작으로 9월 3일까지 쿠릴 열도만 점령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후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서 평화조약 체결 후 하보마이와 시코탄은 반환하기로 합의했으나, 1960년 일본이 미국과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자 소련은 거세게 반발했고 반환 약속을 취소했다. 결국 소련이 평화조약 체결-영토 반환을 거부하자 교섭은 결렬되었다. 이후 일본에서도 사회-정치의 우경화가 심화됨에 따라 섬 두 개를 받을 게 아니라 아예 북방 4도를 전부 돌려받자는 여론이 커졌으며, 결국 이것이 정론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 공산당은 쿠릴 열도 전체를 돌려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인 즉, 1875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사할린을 포기하는 대가로 쿠릴 열도 전체의 일본영유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소련, 그리고 그 이후의 러시아는 일본의 영토 반환 요구를 무시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당시 반환 문제가 거론되었는데, 블라디미르 푸틴을 주축으로 하는 강경파/우파들의 결사 반대와 현지 거주민/어민들의 강한 반발로 없던 일이 되었다. 사실 푸틴도 처음부터 결사반대하던 건 아니고 1990년대 후반 및 2001년 가진 러일 정상회담에서 2개 정도 돌려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가 거주민들 및 강경 극우[2]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듣으면서 강경책으로 돌아섰다. 또 푸틴 집권 후의 러시아도 점차 우경화되면서 밍숭맹숭했던 태도를 버리고 네 개중 하나도 못 돌려준다는 맞대응으로 강경하게 나왔고, 결국 네 개 섬의 반환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1.1 행정구역

러시아의 현행 행정구역일본이 주장하는 행정구역
(전체 네무로 진흥국 관할)
하보마이 군도유즈노쿠릴스키 군(郡) 관할 (마을 없음)네무로 시 관할
시코탄 섬유즈노쿠릴스키 군(郡) 예하 2개 마을[3]시코탄 군(色丹郡) 시코탄 촌(色丹村)
쿠나시르 섬유즈노쿠릴스키 군(郡) 예하 1개 시, 7개 마을[4]구나시리 군(国後郡) 도마리 촌(泊村), 루요베쓰 촌(留夜別村)
이투루프 섬쿠릴스키 군(郡) 예하 1개 시, 6개 마을[5]에토로후 군(択捉郡) 루베쓰 촌(留別村)
샤나 군(紗那郡) 샤나 촌(紗那村)
시베토로 군(蘂取郡) 시베토로 촌(蘂取村)

참고로 일본이 주장하는 해당 지역은 내각부 설치법 제 14조 제 1항 제 3호에 규정하는 해당 범위를 정하는 정령(1959년 정령 제33호)에 따라 홋포지역(北方地域)이라고 불리고 있다.

2 최근 상황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는 러시아와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이 경기를 이김으로서 북방 영토를 반환하는 토대로 삼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 경기는 일본이 이겼지만, 러시아에서는 토요타를 비롯한 일제 차량에 대한 방화 사건이 일어났고 러시아 극우파들의 기존 주장을 오히려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역효과까지 부르고 말았다.

대한민국에서는 꽁치잡이 원양어선들이 이 해역에서 조업하는 것을 두고 러시아 정부와 합의를 본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왜 자기들을 마다하느냐며 분노한 적이 있다. 또 2011년 5월 22일부터 독도영토수호대책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독도 문제와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이 지역을 방문하자 일본에서는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이다.관련 기사

그리고 저 섬들에 조상의 무덤이 있는 일본인들이 성묘할 때 여권을 가지고 이 섬에 간 적도 있는데, 일본에서 이를 두고 큰 논란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일본 땅에 가는데 웬 여권이냐며 반발하던 극우들과, '그럼 조상님들 무덤을 그대로 놔두라는 거냐?'라면서 분노하던 일본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일본 측은 러시아에 이런 사정이 있는 일본인들을 특별히 여권없이 입국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했지만, 러시아 측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시했다. 결국 저 섬에 조상을 모시고 있는 일본인들은 지금까지도 성묘 때마다 여권으로 입국하는 절차를 밟아가면서 방문하고 있다.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소련-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로서는 처음으로 쿠릴 열도를 방문해 트위터에 감상까지 남기는 등, 센카쿠 열도(중국어로는 댜오위다오) 문제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던 일본을 곤혹스럽게 했다. 같은 해 12월 8일에는 동해에서 미일 합동 해상 훈련을 진행하던 중에 러시아 초계기가 나타나는 등, 이 지역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은 사실상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11년 2월 9일에 메드베데프는 한발 더 나가 이 섬들에 최신 대함대공 미사일을 비롯하여 공격용 헬기 등 신형 무기들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이러한 결정을 비난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1년 7월 일본 극우 국회의원들이 난데없이 한국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쿠릴 열도를 방문한 것을 문제 삼아 자기네들도 울릉도를 방문한다고 해서 논란을 빚었다. 결국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8월 1일 입국하려다가 김포공항에서 입국 거부를 당해 들어오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항공 A380 독도 시범비행을 참조하자.

2012년 7월에는 메드베데프가 쿠릴 열도를 재차 방문했다. 이번에도 일본 측에서는 학을 떼고 난리를 피웠지만, 메드베데프는 홋카이도가 보이는 바위 언덕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등의 행동을 하며 그딴 거 신경 안쓴다는 모습을 보였다.

2012년 8월에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군함들이 쿠릴열도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며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2차세계대전 때 사망한 전몰 수병 추모 항해차원으로 쿠릴열도와 하바롭스크 지역등을 24일동안 항해할 예정이라고 하며 5년 동안 계속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는 실효지배 강화 전략이라고 한다.

2013년 1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3개섬(이투루프 제외)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을 제안했다. 기사. 물론 러시아는 듣는 척도 안했다.

2013년 4월 아베 신조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하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쿠릴 열도 반환 협상 재개를 선언하였다. 아베 총리는 이전에 모리 전 총리를 특사로 파견하였었는데 모리 전 총리는 제한적 반환론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본도 4개 섬 반환을 포기하였다고 할수 있으며 현재 2개섬 반환내지는 3개섬 반환의 조건으로 일본이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3+1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고 일본 홀로 설레발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 극우파들이 조금도 포기할 생각없다는 반발을 보이고 있기에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서 말한대로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2개 돌려준다고 할때도 현지인들이 결사반대하고 극우파들이 모스크바에서 반발시위를 벌였으며 당시 러시아 여론도 엄청 지지하던 걸 생각하면 높게 점쳐질 것도 아니다. 돈으로 가능하다고? 러시아에선 쿠릴 열도를 일본에게 준다면 연해주 지역도 중국의 막대한 돈을 받고 돌려줄꺼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기에 제아무리 푸틴이라고 해도 이런 반발을 무릅쓰면서 쿠릴 열도를 돌려줄지 의문이다.

결국 이에 대한 답변인지 2014년 4월, 러시아 정부는 2016년까지 쿠릴 열도 남단의 섬 두 곳, 즉 이투루프와 쿠나시르에 150개 이상의 군사 시설을 신축하거나 재정비해 '완전한 군사 도시'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위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4개의 주요 섬들 중 가장 큰 두 섬이다. 이곳에 강력한 군사거점을 구축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은 센카쿠 문제로 중국을 견제해 전력 재배치를 계획하는 일본에도 상당한 압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1] 2015년 7월, 러시아 올렉 코제먀코 사할린주 주지사 대행은 쿠릴 열도 개발사업에 일본이 참여하지 않으면 한국 등 다른 나라에 제의하겠다고 밝혔다.] 총 700억 루블(1조 4천 105억 원) 규모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 참여하면 러시아의 쿠릴 열도 점유권을 인정하는 셈이니 일본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2015년 8월에는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가 쿠릴방문에 항의하는 일본인들에게 할복하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 # # 그리고 일본의 반발에 사과 성명은 커녕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2016년 3월 25일에 러시아 정부는 쿠릴 열도에 태평양 함대기지 배치 가능성을 검토중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러시아 정부는 쿠릴 열도를 일부라도 일본에 넘겨줄 생각이 1%도 없어 보인다.#.

2016년에 러시아와 일본사이에서 회담이 있었고 일본은 쿠릴 열도의 2개섬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러시아와 대규모 경제협력을 추진할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베 신조는 2016년 10월 3일에 있었던 연설에서 쿠릴 4개섬 반환은 변함없다고 밝힘으로써 2개를 먼저 반환한다는 것은 부인했다.# 러시아측도 2016년 10월 5일에 일본은 쿠릴 열도 4개섬이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쿠릴 열도 4개섬을 이들 섬 출신자와 가족의 성묘를 위한 방문, 학자 및 언론인들의 방문 등에 한해 무비자 방문이 허용했던 것을 자유방문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예정. 다만 기사에선 당장 러일 협력이 이뤄진다는 듯이 썼지만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겨우 며칠전까지 서로 영토 분쟁으로 갈등하다가 무비자 방문 허용으로 경제협력이 이뤄진다면 일본 극우들부터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일본과 러시아가 쿠릴 열도 4개 섬의 공동 통치 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3 일본의 주장

일본은 이 4개 섬이 앞에서 부속설명에서 말한 것처럼 에도 후기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 이후로 홋카이도에 부속된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1945년 소련에게 빼앗긴 이 섬들을 러시아가 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1950년대에는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에 대해서만 '홋카이도의 일부로,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영유권을 주장하다가, 1960년대 이후에는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에 대해서도 쿠릴 열도(일본명: 千島列島, 지시마 열도)란 말 대신 "북방 영토"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4 일본의 반환 요구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이미 포기했고,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은 일본이 영유권을 포기한 쿠릴 열도에 포함된다.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참전이나 전후의 쿠릴 열도 할양은 연합국에 의해 사전에 승낙되었다. 도쿄 재판 확정 판결은 “일소 중립 조약은 성의 없이 체결된 조약이며 소련에 대한 일본의 침략 기도를 진행시키려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5 끝나지 않은 논란

쿠릴 열도는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일본도 러시아도 아닌 아이누족의 땅이라고 해야 옳다. 아이누족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나 일본이나 다 그 놈이 그 놈이고 원래 자기네 땅인 것을 도둑놈 둘이서 빼앗가 놓고는 장물을 놓고 다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 영토지 맞지 않나 청일전쟁? 아니 러일전쟁? 참고 기사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1855년과 1875년의 조약은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킴에 따라서 폐기되었다.[6] 러시아와 일본 양국이 영토에 관한 문제로 전쟁을 일으켰고, 게다가 전쟁을 먼저 일으킨 것은 일본이므로 스스로 조약을 파기한 셈이다.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에 따라 일본에게 유리한 조약이 맺어진 것이다. 반대로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국이며 승리를 거둔 이상 당연히 일본에게 불리한 조약이 맺어질 수 있다.

쿠릴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경우, 일본에서는 2008년에서야 아이누족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게다가 이 주장대로 가면 일본은 이전까지 아이누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채 일본은 단일민족이라는 프로파간다나 반복하다가 쿠릴 열도의 원주민 문제가 불거지자 황급하게 인정한다는 말이 되는데 진정성이 없다고 스스로 밝히는 꼴인 셈.

하지만 러시아도 딱히 잘한 것은 없는 것이, 소련시절부터 자국의 국민으로 인정했다지만 소련 치하에서는 언론통제와 억압이 상존하였으며 강제 이주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강제로 땅 뺏기고 이주당한 아이누가 존재하며 일본인 첩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도 제국시절에는 언론통제와 억압이 상존했다.[7]

이 때문에 일본 측에서 만약 쿠릴 열도를 반환받을 경우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거주권 등을 보장하고 각종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해봐야 객관적으로 봐도 일본을 신뢰하기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부 국제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후 프랑스, 러시아에게 영유권이 넘어간 알자스-로렌, 칼리, 동프로이센등의 이전 독일 영토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 독일처럼 일본도 쿠릴열도 4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느니 포기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차피 러시아의 실효지배가 오래되었고 일본 자체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인걸 감안하면 포기는 못할 망정 일본이 쿠릴 열도를 가지고 영토 반환을 하라고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유발하는 행태는 비난 받을 여지가 높다.

사실 일본과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황을 비교할 때 전쟁을 일으킨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청산등만 비교되지, 영토 문제 관련으로 일본이 독일과 비교되며 비난 받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최근에는 쿠릴열도와 독도, 센카쿠 열도 등을 앞세우며 일본을 칼리닌그라드동프로이센등 옛 독일 영토들을 완전히 포기한 독일 정부와 대입시키며 비난하는 경향도 어느 정도나마 늘고 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현재 쿠릴 열도는 러시아의 땅이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과반수가 러시아 잔류를 희망하는 상황이라면 러시아의 땅이라고 하는 게 옳다.[8] 물론 일본 측에서는 결코 자기네들의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려 들지 않는다.

중일전쟁 당시 난징대학살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일본이 하보마이, 시코탄, 이루투프, 쿠나시르 등 쿠릴열도 섬 4개에 대한 영유권 분쟁 도발을 문제 삼아 강경하게 반대하는데 러시아가 일본과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이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독일은 일본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유대인 학살등 전쟁 당시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잘못을 깨끗이 시인, 사과하는데다 전후 독일의 태도 자체가 일본과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데에 기인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러시아,폴란드,프랑스등 연합국에게 영유권이 넘어간 알자스-로렌, 칼리닌그라드, 동프로이센등 옛 영토들에 대한 영유권 주장도 깔끔히 포기했다.

여담으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까지는 남쿠릴 4개섬을 일본 영토로 표시한 지도가 많았다. 참고로 쿠릴 열도 전체의 일본측 명칭은 치시마(千島)열도. 북방 영토는 항목의 상단에 나와있는,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쿠릴 열도 남단의 4개 섬을 말한다. 당시의 소련은 미수교국에 적성국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본의 입장을 반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쿠릴 열도 분쟁에 대한 현재 한국 언론들의 표기를 보면 예전에는 일본측 표기를 받아들여 북방 영토 분쟁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쿠릴 열도로 표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일본에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계속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이며, 또한 영토 분쟁 중인 지역의 경우 현재 실효 지배하고 있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독도 영유권 주장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쿠릴 열도라는 표기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그러니 꼭 독도 문제 때문이 아니라 국제 표기를 따라간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 언론의 반일감정 조장이 반중감정보다 더 심함에도 불구하고 댜오위다오보단 센카쿠 열도 표기가 많은 것도 이런 관점.

중국이야 당연히 쿠릴 열도는 러시아 땅이라고 지지하며 센카쿠 열도에 대한 러시아 지지를 끌어들이고 있다. 러시아야 당연히 센카쿠는 중국 땅이라는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도 러시아 땅임을 인정하거나 나몰라라한다...행여나 일본 편을 들어준다고 해도 그렇다고 러시아에게 땅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꾸 일본 편만 들고 쿠릴열도를 일본에게 반환하라고 하면 푸틴이 수틀려서 어떤 지역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 어느 국가를 적극적으로 군사지원할 수도 있다.[9] 이렇게 된다면...[10]

한편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무르만스크라는 두 부동항을 보유하고 있지만 블라디보스토크도 흑해/발트해보다 그나마 나은 정도이지 다른 나라 영해에 가까이 붙어 있는 좁은 해협을 거쳐야 더 큰 바다로 갈 수 있는 상황은 비슷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우 동해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태평양으로 빠져나오려면 대한해협 이나 쓰가루 해협, 라페루즈 해협(소야 해협) 등을 거쳐야 한다. 무르만스크의 경우에도 노르웨이 북쪽바다에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사이의 노르웨이해를 지나,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사이를 거쳐야 대서양으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쿠릴 열도의 경우는 다른 나라의 영해 근처나 좁은 해협을 거칠 필요 없이 바로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부동항 및 안정적인 대양 진출 경로 확보 측면에서도 러시아는 쿠릴 열도를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11] 러시아 극우파가 결사반대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6 쿠릴 열도에 배치된 러시아군 전력

러시아 육군에서 유일한 사단 편제인 18포병사단이 주둔중인데, 사실상 육지로 이어지다시피 해서 섬이지만 육군이 들어갔다. 물론 해안경계는 여단급 해군 보병대(해병대)가 맡는다. 그 외 해양경찰(FSB소속)부대도 주둔한다.

  • 지상장비
    • 전차
      • T-80 : 대대급 단위로 배치 예정이다.
      • T-55 : 현대화로 개량하여 94대를 운용 중이다.
      • IS-2,IS-8,IS-3 : 개량형인 IS-2M 해안 방어포로 운용되다가 1995년 전량 퇴역하였다. IS-3M 역시 해안 방어포로 운용되다가 IS-2M보다 2년 먼저 전량 퇴역했다는 소리가 있는데, 정확한 것이 아니다. T-10M또한 해안 방어포로 운영되다가 전량 퇴역했다.
      • 장갑차
  • 포병장비
  • 항공장비
    • Mi-28공격헬기: 배치 예정
  • 해상장비
    • 프랑스제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 :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프랑스가 對러시아 군사제재에 동참하면서 매각 취소
진짜 러시아가 작정을 했다. 올테면 와보시지
  1. 일본인 입장에서는 적어도 에도 바쿠후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때부터 자기 땅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긴 하다만...
  2. 알래스카를 러시아 땅이라고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 정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은 이 당시 푸틴을 매국노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시위를 벌였다. 푸틴도 이가 갈리겠지만 당시 여론이 압도적으로 이런 극우파들을 옹호하니 결국 푸틴이 물러섰는데 극우단체들도 푸틴이 순순히 물러나고 일본에게 물러서던 일을 없던 일로 하자 푸틴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지지하였고 푸틴도 이런 극우들이랑 우호적 관계를 맺게 된다.
  3. 말로쿠릴스코예(Малокурильское)·크라보자보츠코예(Крабозаводское) 마을.
  4. 유즈노쿠릴스크(Южно-Курильск) 시와 골로브니노(Головнино)·두보보예(Дубовое)·멘델레예보(Менделеево)·오트라다(Отрада) 마을. 마야크 롭초바(Маяк Ловцова)·부로바야 루드니(Буровая Рудный)·자스타바 도쿠차예바(Застава Докучаева)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5. 쿠릴스크(Курильск) 시와 고랴치예 클류치(Горячие Ключи)·고르노예(Горное)·레이도보(Рейдово)·리바키(Рыбаки)·부레베스트니크(Буревестник)·키토보예(Китовое) 마을.
  6. 자동으로 폐기된다기 보다는 승전국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일본이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으므로 그 당시에는 러시아 및 소련이 조약 폐기라느니 뭐니 하는 주장을 하기 어려웠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둘의 입장이 뒤바뀌어서 역관광이 가능했던 것이다. 알자스-로렌의 경우 참조.
  7. 아이누족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아무래도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먼저 강하게 미친 일본이 압도적으로 길다. 쇼군의 정식 명칭인 정이대장군은 아이누족 같은 이족을 토벌하는 장군이었을 정도로 일본의 역사는 꽤 오랬동안 아이누족을 토벌하는 것으로 점철되어있다. 또한 에도막부시절에도 홋카이도의 아이누인들의 반란을 두번이나(마지막은 1789년) 진압했을 정도로 그 탄압은 유구하고 길었다. 다만 혼슈의 아이누 부족과 홋카이도의 아이누 부족이 민족적 동질체로서의 의식이 있었는가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8. 문제는 여기 살던 아이누인들은 거의 다 혼혈화하거나 강제로 캄차카 등지로 이주당했다. 그러나 아이누인들이 캄차카 최남부에 러시아 도래 이전부터 산 경우도 있다.
  9. 해당 링크에 의하면 2015년 1월 러시아가 어떤 국가에 전투기를 빌려줬다.
  10. 이건 "자꾸 쿠릴 열도 문제라던가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에게 시비걸면 재미없다."는 메시지를 서방세계에 보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11. 부동항 문서 참조. 러시아가 무르만스크 말고 쿠릴열도 방향으로 태평양으로 나가면 미국에서 호주, 뉴질랜드 사이는 멀기 때문에 무르만스크에서 서방 국가들 사이(미국, 영국, 프랑스 사이의 북대서양)를 거치지 않고 멕시코,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과 교류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