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中 芳樹 (たなか よしき)
목차
1 개요
대표작은《은하영웅전설》. 작풍은 SF, 판타지, 전기물, 미스테리에 주말 드라마(…)까지 취향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작가. 파격적인 연출을 좋아하기도 하여《창룡전》에서는 연재 개시 세 권만에 도쿄 도청과 레인보우 브릿지, 도쿄 디즈니랜드, 도쿄 돔 등을 박살냈다. 좀 아니 많이 비범하다. 진여신전생인가?
국내에 정식 발매된 것으로 서울문화사에서《은하영웅전설》,《아르슬란 전기》,《창룡전》[1], 대원에서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KLAN》[2] 등이 있다. 덧붙여 이《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시리즈는 현재 집필 중단이 되지 않은 유일한 시리즈이자 집필 기간에서도 최장기를 지키고 있다. 2008년 10월 9일에는 집필작인《타이타니아》가 애니화되었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만큼의 재미가 없기에 타이타니아는 결국 망했어요. 그래서 타이타니아는 완결이 되지 않았는데도 2009년 3월 26일에 조기종영되고 말았다.[3]
무분별한 복붙 때문에 잘못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은하영웅전설은 고려원이 아닌 '을지서적'에서 냈다. 또한 대한민국은 1987년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에 1년 전에 고려원에서 낸 영웅문은 해적판이 아니다.[4] 물론 1991년에 나온 을지서작 은하영웅전설은 얄짤없는 해적판. 복붙 좀 작작하고 제대로 찾아보고 까자
2 작가에 대한 논란
2.1 엘리트주의와 반민주주의
2.1.1 비판
작중에서 우익, 군국주의 등을 싫어하는 발언을 많이 써내지만 일견 엘리트주의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또한 현대 민주주의에 대해 어딘가 부정적인 편견을 보이고도 있다.
일례로《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더 빨리 통일이 되어 평화로웠을 것이라는 후대의 역사가의 서술을 넣기도 하고(물론 이 역사가의 관점이 전부 작가의 페르소나로 이용되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작품 내에서 작가가 양 웬리에 대해 어마어마한 호의를 보내고 있기도 하니, 양 웬리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해석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다. 양 웬리에게 비판적인 역사가의 서술은 작품 내에 등장하는 여러 역사가의 서술 중 하나이며, 이와는 정 반대로 양 웬리를 영웅시하는 역사가의 서술 역시 작중에 등장함을 참고하도록 하자.) 유비에 대해서도 조조에게 저항해 난세를 늘어지게 했다고 쓴 적이 있다.
보통 그의 성향과 관련해서 자주 이야기되는 <은하영웅전설>을 보더라도, 결국 민주주의(자유행성동맹)와 제정(은하제국)의 대립은 양측의 엘리트[5]들의 싸움으로 끝날 뿐 시민 사회의 역할이나 민주주의 사회의 역동성 따위는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자. <은하영웅전설>에서 자유행성동맹 의회 선거라거나 동맹 의회 내 여야간의 갈등, 법안의 논의와 같이 건전한 민주국가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보통의 정치행위들이 조금이라도 제대로 묘사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6]. 민주공화주의 가운데 "공화주의" 정도만이 강조되는 수준이다.[7] 결국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에서 진정한 의미의 대중이나 일반 시민들의 힘은 무대 위로 올라오지조차 못한다. 그저 소요하고 부유하여 결국 지배세력에 의해 진압되거나, 행성 베스타란트처럼 핵무기 등으로 몰살당하며, 이따금 신권위에 맹목적으로 환호하는 수준이며, 제시카 에드워즈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2차 암살미수사건의 암살자를 제외하면 이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조차 없다. 은하영웅전설에선 짧은 시간동안 5.18 민주화운동을 넘어서는 수준의 학살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나지만, "비극"이라는 수준으로만 간단하게 스치고 넘어간다.
이런 정치적인 측면과 더불어 영웅주의적인 인물과 전개(즉 역사관) 때문에 엘리트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상당히 명백하다. 최대한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성향을 호의적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의 작품이 그려내는 역사관이 굉장히 인물 중심적이며 단편적&단면적이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성상 정치가 인물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있는데, 이는 은영전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미숙한 묘사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스타워즈나 스타 트렉 시리즈 등에선 민주적 합의에 따른 정치과정이 잘만 나타난다. 은영전의 장르를 영웅담으로 본다 해도 마찬가지. 사실 영웅담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부터가 요시키의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특히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의 경우 다나카 요시키의 출신 학교인 가쿠슈인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쿠슈인 대학(學習院大學)(#)은 덴노와 귀족 출신들을 위한 대학으로 유명하다. 결국 이 대학에 진학한 그가 비록 엘리트주의나 독재를 비판하는 내용을 써도 결론은 우수한 엘리트라면 괜찮다는 시선이 묻어나는 모순을 범하는 것 아니냐는 것. 시오노 나나미도 같은 대학 출신인데, 종종 비슷한 오류를 저지르는 사례로 볼 때 꽤 그럴듯하다. 뭐 그래도 다나카 요시키는 팬픽을 실제 역사라고 주장하진 않잖어 이 대학 출신의 또 다른 유명인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허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후세대로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또 은근슬쩍 초인론이 많이 나오니 이것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8]
반민주주의적이라는 평가의 예시는 여기에선 은영전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주인공을 조롱하고 전제주의에서 가능성을 찾는다."고 비판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주의나 사상보다는 (그 주의를 몸으로 표방하는) 인간을 따른다"라는, 은하영웅전설 작중에 수 차례 등장한 주장을 다나카의 사상으로 보아 이를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먼치킨, 인재 우월적인 중심으로 이끌어간다는 점도 나온다. 물론 많은 서브컬처 대중매체..소설이니 애니이니 만화에서도 지겹게 나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한국 게임인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에서 주인공 시라노 번스타인이 32살이라는 것에 이걸 일본 발매판으로 한 일본 게이머들이 롤플레잉 게임에 30대 아저씨라니!? 놀랐다는 후문처럼) 10대 나이에 중령이니 대령이니 장군이니....이런 게 허다한 일본 대중매체라는 점도 있지만. 이런 것에 모에적인 걸 내세우지 않음에도 그의 소설을 봐도 엄청 나이 어린 것에 대한 엘리트주의가 노골적이다. 은하영웅전설만 봐도 제국군이고 동맹군이고 주역 상당수가 20~30대가 태반이다. 제국군과 전쟁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오던 링 파오만 해도 고작해야 우주해적 소탕이니 그런 일에 나섰을 뿐일텐데도 30대 초반에 이미 중장이자 함대 사령관이다(....)쩐다
더불어 타이타니아도 그렇고 일곱 도시 이야기도 그렇다. 타이타니아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타이타니아 일족이 우주를 휘어잡아서 어린 나이에 출세 지름길을 간다고 쳐도 저항하는 이들도 20대~30대에 지휘관급이니 말 다했다. 일곱 도시 이야기도 그렇다. 그것도 별다른 공로도 없는데 능력있다고 사령관 맡겨야 한다면 그에 맞게 진급시킨다며 거저로 장군에 올리지 않나, 그것도 한번에 2계급 진급해야 한다느니 그러다가 반발도 크다고 1계급으로 감안한다(...)우주제일의 무책임 남자는 더하지만20대 후반에 이미 장군이요, 32살에 중장이자, 사실상 전군 총사령관급이지 않나....등장 장군들 주역이 거의 나이가 똑같다. 물론 일곱 도시 이야기같은 경우에는 정치적 배경으로 나이많던 장군들이 잘려나가고 처형되어 그렇다든지, 심지어 간부 대다수가 식중독으로 쓰러져 가장 계급높은 대령이 임시 사령관이 되었다든지 이런 상황을 설정하긴 했지만. 그의 소설 대다수가 거의 주역 나이가 그렇다(...)
참고로, 위에 언급된 주인공들의 젊은 나이에 대해서는 한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은하영웅전설이나 일곱도시 이야기를 쓰던 시기의 작가 나이가 주인공들의 연령대인 20~30대 초반이라는 점이다. 등장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작가의 필체 상 주인공을 자신의 나이또래 인물로설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소설을 소비하는 독자층도 30대 이하 젊은 층들이 많기에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그들과 비슷한 연령대로 주인공을 설정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하다.
2.1.2 반론
작품은 민주국가의 양 웬리와 전제국가의 라인하르트라는 2인 주인공 체제에서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양 웬리의 사상을 훨씬 비중있게 나타내고 있으며, 애초에 이 작품의 사상이 곧 양 웬리의 사상이다. 양 웬리는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그것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그것이 중우정치로 변질되는 것을 혐오하는데, 중우정치로 변질될 수 있기에 민주주의를 혐오하는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변질시키기에 중우정치를 혐오하는 것이다. 작중에서 자유행성동맹의 멸망은 바로 양 웬리가 그토록 혐오하던 중우정치의 폐해로 보는 것이 맞지 '이러니까 민주주의는 안 된다'는 관점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눈여겨볼 것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때 삼국지연의적인 요소를 작품에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목을 은하삼국지로 하려고 했을 정도로. 제국을 위(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졌으며 왕위를 찬탈한 새로운 왕조가 최후의 승자가 됨), 동맹을 촉(세력은 앞의 국가보다 약하지만 대의명분(은영전의 경우는 정치체제)에서 앞섬), 페잔을 오(제3의 세력. 실제로 작가는 페잔이라는 설정을 만들때 오나라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인증그래서 듣보잡인가)로 본다면 최후에 동맹이 쓰러진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소설의 주된 갈등을 민주주의나 독재냐와 같은 방법론적 갈등이 아닌 권위와 반권위라는 본질적 요소의 갈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은하영웅전설의 주된 갈등구조를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부패한 정권으로 상징되는 노쇠한 구 권위와 라인하르트로 상징되는 건강한 신 권위, 이에 더하여 양 웬리로 상징되는 반 권위간의 갈등으로 본다면 의회와 입헌제, 세습권력과 같은 신 은하제국의 특성은 신 권위가 스스로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의 모색, 또는 모색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양 웬리라는 인물은 이에 대하여 모든 권위와 그 권위로 인한 권력에 대하여 반대입장을 취하는 일종의 이상론을 상징하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도 살아서 점차 권위가 되고, 죽어서는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권위가 된다[9]. 또 신 권위 역시,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가 황후로서 섭정을 한다고 하지만, 그동안 극구 부정해왔던 "세습이 아닌 실력을 통한 권위"가 훼손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시적으로는 로엔그람 왕조가 동맹을 쓰러트렸어도 이미 내부에서부터 전제주의가 가지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같은 관점에서,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를 본다면 야쿠시지 료코라는 인물은 양 웬리와 같이 이상으로써 제시된 인물은 아니나 이 인물의 행동을 통해 현대 일본이 가지고 있는 자기모순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풍자되고 있는 것이다. 즉, 권위는 현실을 지배하며, 그 현실은 현실적으로 이상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작가의 담론이 현실과 현실권력, 현존하는 권위에 대한 풍자로써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모순을 품지 않은 인간은 돼지만도 못하다."라는 아르슬란 전기의 기술은 작가의 창작 태도 자체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작중의 주인공이 보이는 자기모순에 대한 설명인 동시에 모순과 고민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 대신 일사불란한 질서를 추구하는 기성질서에 대한 공격이기도 한 이 문장이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을 읽어내는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양 웬리나 야쿠시지 료코를 비롯한 '엘리트' 등장인물들은 철저한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전통적인 근면성실한 군인상에 대한 대응으로 양 웬리는 낮잠을 좋아하는 게으름뱅이이며, 승리와 자기 의지의 관철로 상징되는 사회적 성취를 철저하게 비웃는 인물로써 심지어는 작전회의에서 졸다가 좌천당하는 인물이다. 또한 야쿠시지 료코라는 인물은 커리어 관료로써 정부의 핵심구조에 속해 있으나 이 이름을 들을 때 경시총감을 비롯한 경찰 고위간부들이 진저리를 치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에 대응하는 인물로써 전통적 의미의 엘리트, 근면 성실하고 청렴하며 유능한 인물로써 제시되는 인물이 있으나, 이 인물들은 여러 형태로 희화화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청교도적인 경찰질서의 옹호자로 나오는 무로마치 유키코의 경우, 작중에서는 활약보다는 개그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라인하르트군의 기라성 같은 명장들은 위풍당당하고 존경받을만한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부패한 구질서에 대항할만한 대단한 인물들임을 인정받지만, 양 웬리에게 돌아가며 털림으로써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즉, 현실의 방법론(정치체제로서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간주할 때 자기모순에 빠지는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들은 풍자로써 읽을 때 권위에 대한 일관적인 조롱으로 보이게 된다. 물론 위에서 명시된 것처럼 요시키 자신이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에 갇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리고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의 저항 때문에 무익한 피가 흐르고 우주의 통일이 늦어졌다'는 후세 역사가의 서술이 등장한다는 것이 작가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로써 인용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이는 해당 작품을 극히 단편적이고 편향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작중에는 앞의 서술과는 정 반대로 '양 웬리의 노력과 그 뒤를 이은 율리안의 노력으로 겨우 살아남은 민주공화정치의 씨앗이 우주력 800년대 후반에 화려하게 꽃피웠다'는 서술도 나오는데, 굳이 양 웬리에게 비판적인 입장의 서술만을 찍어내서 그것이 곧 작가의 입장이라고 볼 이유가 있는가? 뿐만 아니라, 4권을 보면 은하제국 최고의 명군으로 불리는 막시밀리언 요제프 2세에 대해서 '제국의 내부 붕괴를 막아내고 재건의 초석을 쌓았다' 면서 '대국적 견지에서 보면 이후 1세기에 걸쳐 계속되는 동맹과 제국의 전쟁 책임은 제국을 재건시킨 그에게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 서술이 작가가 명군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암군을 찬양한다는 증거가 되겠는가? 결국, 후세 역사가의 서술이라는 형태로 작중의 사건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소설에서 그 중 하나만을 찍어내서 작가의 역사관이 그렇다고 보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판인 것.
또한, 은하영웅전설을 비롯한 작가의 대표작들이 '라이트노벨'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에 출간되었으니 흥행을 위해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라이트노벨의 특성을 가졌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다소 무리한 주장이다. 일단 은하영웅전설 자체가 라이트노벨 장르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작품임을 감안해야 하고, 대중적 인기를 위해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특성이 라이트노벨만의 특성이 아님 역시 감안해야 한다.(당장, 삼국지를 보자) 이 점에서, 다나카 요시키가 선호하는 작품 스타일은 영웅담, 또는 영웅 중심 서사이고, 이런 영웅 중심 서사 스타일 자체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가능하겠으나 영웅을 중심으로 한 영웅담이니 곧 작가는 반민주주의적 태도로 작품을 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논리라면 진짜 민주적인 작품은 다큐멘터리풍의 작품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다른 작가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항목이 이 작가에 대해서만 존재할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은하영웅전설에서 은하제국이 결국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제정치를 옹호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민주주의를 까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해당 작품에서 작가는 민주정치란 어떤 것이고, 민주정치에서 어떻게 독재가 등장하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민주정치와 독재를 끊임없이 대비시키면서, 독재를 어디까지 올려놓고, 민주정치를 어떻게 떨어뜨려야 비드비등해질 것인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비교한다. 이를 통해서 결국 다시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상적 지도자가 다스리는 독재정치가 마침내는 전제 군주 정치와 손을 잡은[10] 민주주의 국가를 격파하고 승리한다. 이 소설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면 지금같이 생각할 거리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은하영웅전설의 민주주의 vs 독재 부분을, 대중의 인식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면 어느샌가 이상적 독재에 대한 추구가 등장하게 된다 라고 생각해본다면 이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2.2 역사, 전쟁, 정치, 과도한 주인공 보정
역사나 신화를 양념으로 써서 소설을 쓰는 사람[11]치고는, 핏대 세우는 듯한 주의/주장에 비해 각개 현상에 대한 인식이 얕아서 역사 관련 교양이 있는 사람들에게 종종 까인다. 특히 과도한 주인공 보정은 심하게 욕먹는 점이다. 보다보면 말도 안되는 어거지 전개라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아르슬란 전기에서 나타난 이상한 전투방식과 사기캐들을 보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주인공 세력인 파르스에 대한 우대가 심하다. 파르스가 기마민족이라며 주요 적국인 루시타니아와 다른 국가들을 사기적인 수준으로 쳐바른다. 또한 파르스군 개인의 전투력이 다른 나라 병사 6명을 거뜬히 상대한다는 설정은 정말 지나치다. 게다가 주인공의 나라인 파르스는 항상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선한 나라이며 대적하는 세력들은 전부 악당이거나 저능아들이다.파워 디플레[12]
은영전이나 아르슬란 전기나 양 웬리 또는 나르사스 등의 입을 빌려 전투는 충분한 보급과 장비의 개선, 양적인 우위 확보 내지는 극복, 병사들의 충실한 훈련도와 상하 신뢰관계 등을 강조하고 이른바 현란한 기책과 정신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를 거창하게 늘어놓고 전투만 돌입하면 개연성없는 현란한 기책을 마구 펼쳐놓는다. 특히 아르슬란 전기의 전투방식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개사기이다. 또한 무적인 전략은 없는데 나르사스랑 양 웬리가 하는 전략은 무적으로 무조건 성공하며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것이 아무도 없다.[13] 세계 전사 어디를 참조했느니 말은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 전사가 아니다. 특히 아르슬란 전기의 전투는 일본 전국시대 영웅들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방식의 군담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일본 전국시대 군담 느낌이 많이 든다.
가령 작품 내 세계관의 기준에서 보아 중세의 왕족 신분인 아르슬란이, 자신들의 백성에 대해 근대적인 만민평등주의적인 시각[14]을 아무 위화감 없이 보인다든가 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 부분은 후에 아르슬란이 실제로는 왕족도 뭐도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완화되고 여기에 나르사스의 가르침 등 배경설명이 깔리긴 한다. 애초에 맨땅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고, 실제로 노예해방을 한 나르사스가 노예근성이 만렙에 달한 이들로 인하여 겪는 좌절이 작중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럼 또 이번엔 나르사스의 계몽주의적 사상의 출처가 뜬금없어진다.[15] 거기에, 2부 초반 부분에서 노예해방의 후속 대책으로 내놓은 게 실제 노예해방이라기보단 '노예로 떨어진 하층민 구제책'에 가까운 것이었고[16], 노예해방의 영향이라면서 보병 병력을 모으기 힘들어져 기병 중심의 소수정예로 군이 편성되었다고 하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우며 개연성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위의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쌓여왔던 문제들은 물론 분명히 존재했을 여러가지 잡음이나 부작용[17] 일절 언급되지 않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해결시킨 것처럼 - 그것도 '영명한 지도자들[18]의 지도력으로' 이룬듯한 행간으로 - 전개되었기에 더 심한 비판을 받았다.[19]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파악한다는 의심이 드러나는 또 다른 예가 소설 '창룡전'에 나오는 '우종족'의 설정. 이 부분은 해당 항목을 참고하자.
역사에 대해서 나름대로 교양이 있기는 한데, 이 사람이 좋아하는 시대는 금과 남송이 대립하던 시기이다. 실제로 악비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악비전'을 쓴 전적이 있으며, 자신의 소설 상에서 남녀관계가 대부분 '전우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을 두고 이타카판 뒤의 인터뷰에서는 이에 대해 무의식중에 한세충과 양홍옥을 모델로 삼은 게 아닌가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반대로 삼국지는 좋아하지 않으며(어쩌면 자기가 좋아하는 시대보다 이 때가 더 유명하고 인기도 많아서인지도), 그 때문인지 유비나 제갈량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기술하기도 한다. 제갈량에 대해서는 "역사상 중국을 통일한 영응은 많이 존재하지만, 제갈량은 통일에 실패한 인물(歴史上中国を統一した英雄は数多く存在しているが、諸葛亮は統一に失敗した人物である)", "능력은 사마의보다 쳐진다(能力は司馬懿に劣る)"며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한 바 있다.[20][21] 이는 거꾸로 말하면 본인 관심사와 거리가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다소 어둡다는 반증도 된다.
2.3 편협한 여성관 논란
- 여성 인물의 비중이 심각하게 부족하며, 비중이 있을 경우 수동적인 여성상에 머물거나 야쿠시지 료코처럼 남성 판타지의 집약으로만 등장한다. 남성 판타지야 남성향 라노벨에서 당연한 거지만,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처럼 노골적으로 남성층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장르에선 이런 편협한 시각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 배경이 되는 시대에 맞춰 여성의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라는 말은 무의미한 옹호이다. 역사를 소재로 쓰는 소설가 대부분이 시대적 한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성 인물의 존재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를 위해 마련할 수 있는 장치도 수없이 많다. 아무 데서나 끌어와도 요시키의 남성 캐릭터 못지않은 입체적 여성 인물들이 엄청 등장할 수 있다. 이건 PC한 사고가 작가의 머릿속에 있기만 하면 해결될 일이고, 요시키의 소설에서 여성의 모습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그냥 이 사람이 남성 중심적 편협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 반론을 하자면, 비중을 올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로 무엇을 얻을까? 역사물에서 여성 캐릭터가 비중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종횡무진하는 여성영웅을 만들어내거나, 여성이 역시 활약할 수 있는 본문의 전기물이나 활극 외의 다른 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역사를 소재로 사용한 소설에서 여성이 활약한 소설들을 보면 이 둘을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군이 그런 섬세한 심리묘사를 주로 사용한 부류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심리적 갈등과 대인관계보다는 더욱 크게 판을 벌이는 것을 작가의 성향은 편협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여성 캐릭터의 활동범위를 크게 제약시킨다. 장르적 성향은 비난의 소지가 될 수 없다. 판을 크게 벌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나카 요시키의 대부분 작품들을 보면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것이고, 이외 다른 항목과 마찬가지로 이와 비슷한 평가가 같은 장르의 다른 작품들에 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애초에 작가가 이 상황을 피하려고 든다면,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이나 그 동급으로 설정해서 활약하게 하는 방법이 있고 실제로 다나카 요시키 작품군에도 이런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상단과 같이 '성별만 여성인 남성'이나 '남성 판타지'라는 결과이다.
당장 서점에 가서 대중문학, 특히 장르문학 관련 서적으로 가면 이 평가를 벗어날 수 없는 책들이 하나 가득 나올 것이다.그렇다면 후자는? 은하영웅전설의 1/3 혹은 1/4을 러브스토리나 여성들이 활약하거나 그 심리를 알 수 있는 묘사를 채워넣는다고 가정해보자. 그 책들과 원작 가운데서 도대체 어느 쪽이 더 완성도나 대중성이 높을까? 이런 식의 편협한 여성관 이야기는 대중문학 특히 장르문학에서는 어디가 가져다 붙여도 잘 먹힌다. 스페이스 오페라건 기담이건 전기류건 마찬가지다. 해당 항목에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여성 비평가들에게 남성우월주의 소릴들은 적이 있다.
2.4 반종교, 반기독교
근대 계몽주의에 피상적으로 심취된 나머지 작중 대다수가 반종교적 느낌이며 특히 기독교와 엮어서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가 기독교 안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중 은하영웅전설은 상당히 반기독교적인 서술을 넣는데 은하영웅전설의 배경에서는 90년 전쟁으로 기존의 종교가 힘을 잃었으며, 기독교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현존 기독교인들이 분노할 만하다. 또한 작중에서 신설한 자유행성동맹군 제13함대의 함대 숫자를 두고 불길하다는 설명을 할 때, 지구에서 사라진 종교의 교주가 13번째 제자에게 배신당한 것에서 전해오는 인식이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신의 아들을 겨우 교주라고 써놓았으니,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기독교에 대한 비아냥이라든지 미래에는 기독교가 아예 박멸되었다는 설정을 봐도 화날 법하다. 더불어 이름값을 못 하던 크리스찬이라던가 또 다른 인물이 외전 1권 <황금의 날개>에서 아군까지 토르 하머로 날려버리면서 전투는 이겼어도 아군 피해도 엄청나서 결국 모가지당하고 후임으로 슈톡하우젠 대장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으로 나온 크라이스트 대장처럼 기독교적 이름을 지닌 인물들이 병신으로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들에서는 종교를 적대적으로라도 다룬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 기독교 안티 성향이 강한 또다른 작품은 아르슬란 전기이다. 그것도 십자군 전쟁 시기의 기독교를 빼다 박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경우이지만, 사실 현대적 관점에서 볼때 십자군이 떳떳한 전쟁이라고는 어지간한 기독교인도 주장하지 않는다.(...)[22][23] 특히 이 부분의 경우 아무리 주인공 보정이 있다지만, 파르스에 지나치게 많은 버프를 주어서 십자군 전쟁을 유럽인'만'의 일방적인 병크로 보는 일부 편협된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 부분은 아르슬란 전기 항목을 참고하자.
2.5 연중작가
생계형 작가가 돈을 벌면 도달하는 최종형태
연중을 잘 하기로 소문난 인물이기도 하며 제대로 완결을 낸 장편은《은하영웅전설》과 국내 미소개된《마바르 연대기》정도고, 단권으로 끝나는 중편의 경우《일곱 도시 이야기》나《압펠란트 이야기》등의 몇 개의 단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다. 작가 본인도 마감 건망증이라고 밝힐 정도로 완결에 대해선 개념이 희박한 면이 있다. 덕분에 팬들에게는 대차게 까이는 중. 심지어《아르슬란 전기》의 경우 발간 도중 출판사와 판권 계약이 종료되어 타 출판사로 이적하여 간행중이다.
이러한 지금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지만,《은하영웅전설》을 쓸 당시에는 집필 속도가 빠른 작가였다. 당시 대학생이었기에 학비를 벌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 원래 은하영웅전설은 3권 완결 예정이었지만 엄청난 성공으로 장편 시리즈가 되었다.
연중한 작품이 많긴 하지만, 의외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서 매년 2,3권은 출판[24]된다고 한다.
2.6 지나친 폭력성
작품이 전쟁을 주제로 한만큼 너무나 폭력적이다. 특히 은하영웅전설이랑 아르슬란 전기를 보면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매우 폭력적인 묘사를 흔하게 볼수있다. 심지어 전투장면이 아니더라도 각종 폭력과 잔혹행위가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해서 독자에게 혐오감을 준다. 그중에서 아르슬란 전기가 은하영웅전설보다 폭력성이 심각하여 애니나 만화에서 순화를 필수적으로 할정도이다.[25]
다만 아르슬란 전기는 실세 십자군 전쟁을 참고로 쓰여졌으며 십자군들이 벌인 짓이 실제 이 소설에 나오는 루시타니아군(이 나라부터가 중세 유럽 십자군을 보낸 기독교 나라들이 모델)이 벌이던 잔혹한 학살들이 실제로 벌어진 것[26]이며 이들의 학살을 비판하고 있기에 무조건 뭐라고 할 건 아니다.
아무리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해도 독자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폭력적인 묘사를 당연하다고 하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긴 하지만. 또다른 지적되는 문제로 그러한 폭력 일부를 정당화하는 묘사도 나오는 점(강력한 군주에 대하여 지나치게 옹호적인 시선도 있다보니)으로 비판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모든 작품은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폭력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누가 작품과 작가를 좋은 이를 보겠냐는 비판도 있다.
다만 아르슬란 전기에서 비록 너무나도 주인공 보정이 크긴 해도 파르스에서 고문을 하지 않는 점이나 다른 작품 창룡전에서 사람을 실험재료로 보던 미치광이 일본 의사[27]가 주인공이 날린 메스에 찔리자 절규하듯이 비명지르며 아퍼하는 걸 보고 남을 실험재료로 보던 네놈이 실험재료 꼴이 되니 이제 죽어간 이들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겠느냐는 이야기를 넣는 걸 보면 그러한 폭력에 대하여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3 기타
창룡전에서는 자위대 90식 전차에 에어컨이 달려 있는 것을 "무기에 에어컨 같은 거나 달아놓고(…)."라는 느낌으로 까기도 했다.[28]
다나카 요시키의 경우는 평균 연수입 일본내에서 작가 랭킹 1위를 찍는 등 엄청나게 높은 인지도와 기대치로 인해서, 이 정도로 비판이 커진 것도 있다. 특히 특유의 서술이 작가의 주관을 강하게 반영하는 느낌이라 작품에 대한 몰입감은 높아지지만 반면에 개연성을 심하게 떨어뜨리고 지나칠 정도로 많은 주인공 보정 때문에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관련 항목들마다 빠와 까들의 물밑 수정전쟁이 치열한 게 그 증거
4 작품 목록
- ↑ 창룡전은 절판 상태이다.
- ↑ 1권만 이 작가 거고 이후로는 다른 작가가 썼다. 희대의 낚시(...) 2권부터는 필력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지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거다(...)
- ↑ 은하영웅전설이랑 2015년판 아르슬란 전기를 제외하곤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은 애니화에서 하나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 분명히 협약에서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다'고 못박기 때문.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세계적으로 문화 선진국이 합법적으로 자기들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이 극심했다. 특히 저자 사망후 50년 같은 경우도 기간을 놓고 길다 짧다 말이 많았다.
- ↑ 물론 양 웬리의 경우 우리가 일상적으로 '엘리트'하면 생각하는 출세지향적인 인물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군 장성이자 고급 지휘관이며 후반부에 가면 사실상 국가 원수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엘리트 이론으로 따져봐도 확실히 엘리트다. 아르슬란 전기의 개혁가라는 나르사스 역시 서자일뿐이지 귀족 교육을 받았기에 어디까지나 양 웬리처럼 엘리트이다.
- ↑ 물론 동맹 멸망 후에도 동맹령에서 시민집회가 자주 열려서 동맹 시민들의 저항을 보여주지만, 결국 이것이 제국의 통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제국에 입헌주의란 요소를 각인시킬 수 있던 것은 결국 율리안이 이끄는 이젤론 군의 무력 돌파였다.
- ↑ 물론 이 당시의 자유행성동맹 자체가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처럼 워낙에 막장 테크를 걷고 있는 상황인 건 맞지만. 애초에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가 결국엔 막장으로 간다는 걸 잘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 ↑ 단 미야자키의 경우에는 젊은 초인이 등장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평화롭게 섞여 산다는 걸 보면 위 두 작가와는 확실히 다르다.
- ↑ 이를 희극적으로 묘사하는 것 중 하나가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에서 양 웬리 만세를 외치는 구 동맹 시민들이다.
- ↑ 자유행성동맹은 마지막에 은하제국 황제인 요제프 망명정부와 손을 잡는다. 이 시점에서 자유행성 동맹은 민주주의라는 명분도 상실한 것이다. 이건 마치 북한에서 내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국가가 그나마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김정은의 아들이 망명해오자 대한민국 정부와 일반 국민들이 김정은 아들 망명정부를 구성하고 같이 북한을 공격해서 김정은 아들을 4대 세습시켜주려고 하는 꼴이다.
- ↑ 예를 들어, 아르슬란 전기의 관련 설정들은 십자군 원정 시기 역사와 중동 지방 역사, 페르시아 신화를 기반으로 만든 흔적이 많이 보인다.
- ↑ 이러한 시각은 근대 이후로 형성된 서구에서의 과거사(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등) 반성과 그로 인한 중동 지역에 대한 고평가 바람이 작가에게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지금도 국내의 교양 서적에서 '십자군=닥치고 악당'이라는 묘사가 많은데, 이 역시도 아르슬란 전기에서 파르스가 지나치게 선하게 묘사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실제로 십자군 전쟁은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을 마냥 악하다고 몰아가기에는 심히 곤란한 전쟁이다. 자세한 것은 십자군 전쟁 항목을 참조해보자.
- ↑ 작중에서 나르사스와 양 웬리의 전략을 보면 노련한 전략가일 경우 이 둘의 전략에 잘 대처할수 있으며 오히려 적에게 당하기 쉽다.
- ↑ 이런 생각이였다면 노예제 폐지뿐만 아니라 귀족제도 폐지해야 한다. 그런데 아르슬란 전기에선 귀족제는 죽어도 폐지안한다. 또한 나르사스와 그의 어머니가 평민이며 서자로서의 당했던 차별이 나오는데도 이것도 개선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언급이 하나도 없다. 그러고도 만민평등주의적인 시각을 주장한다는게 독자들의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다만, 아르슬란이나 나르사스가 근대적인 의미의 계몽주의자나 평등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노예들의 열악한 처지를 보고 그들을 동정했을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단순한 동정심이라기에는 나르사스의 인권 개념이 '어중간하게' 진취적이다.
- ↑ 이 때문인지, 아라카와 히로무가 코미컬라이즈 중인 아르슬란 전기 만화의 경우, 1화에서 아르슬란과 루시타니아 포로였던 에스텔과의 대화를 통해 파르스 사회가 노예제를 당연시하는 것을 비난하는 장면이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 국교도 이교도는 사람 취급 안 했잖아?다만 에스텔의 대사가 웃긴 것이 사람들은 모두 평등해라고 하고 있는데, 다음 컷에서 '신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 이교도는 차별하고 죽여도 된다'라고 하고 있는 것은 차처하고, 루시타니아는 귀족과 농노가 엄존하는 계급제 사회다. 그런데 그거 안따지는 에스텔은 어디서 튀어나온 혁신파인가.정신가고 횡설수설하는 소년에게서 노예해방 출처를 얻었다고 보면 이건 이것대로 웃긴데(...) - ↑ 고려 광종이 실시했던 노비안검법과 같은 제도이다. 귀족들의 힘을 줄이고 왕권을 강화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법을 시행하는데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기에 광종이 귀족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야 했다. 결국 광종이 죽고나서 성종 때 노비환천법으로 양민이 된 노비들이 다시 노비로 전락함에 따라 광종의 노예해방은 실패한다.
- ↑ 노예해방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했기에 노예해방을 추진한 개혁가들이 이 기득권층과 싸우고 노예해방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 엄청난 개고생을 했다. 더군다나, 노예 해방이란 것은 해당 사회의 '상식'과 '시스템', 혹은 '성장 동력'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하는 대사업으로, 현실에서도 산업혁명 등의 여파로 인해 더 이상 인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생산 방식이 도래하고서야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시행되고 보편화되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 ↑ 이전 각주에서는 타국의 왕들을 들먹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지도자들은 아르슬란을 필두로 한 나르사스 등의 '파르스 내 지배층'을 얘기하는 것.
- ↑ 이것 때문에 엘리트주의뿐만 아니라 전제주의를 찬양한다는 비판도 심하게 받았다.
- ↑ 자신의 저서인 <중국무장열전>에서 언급한 말. 그런데 이 논리대로라면 조조도 통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별 볼일 없는 인물인 셈이다. 물론 언급된대로 다나카 요시키가 삼국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면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는 평가이긴 하다.
- ↑ 아르슬란 전기에서 아르슬란이 유비의 위치이고 그의 부하인 16익장들이 유비의 충신들의 위치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후한 광무제와 운대 28장에 더 가깝다.
- ↑ 다만 당시 기독교를 옹호할 여지가 조금은 있는데, 현대에는 십자군 전쟁을 '종교쟁이들이 일으킨 광신적 전쟁'이라는 논지를 부정한다. 근대에는 중세의 반성과 반가톨릭주의의 영향으로 '암흑시대의 부패한 교황청이 일으킨 유럽인의 병크'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으나, 현대 사학계에서는 '철저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즉 핑계거리를 제공한 교황청 측의 잘못도 있지만, 종교는 핑계였다. 다만 이득에 따라 교황청을 매수하여 벌인 더러운 전쟁이라고는 할 수 있다. 다수 기사들이나 십자군들은 그런 거 모르고 성지 탈환에 이교도는 죄다 죽이며 고문하고
후장털고빼앗기를 당연시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논지랑 어긋나게 상당수 십자군은 이런 광신 및 약탈을 하러 갔기에 전쟁 상당수가 종교 광신전쟁으로 이어져 결과가 광신도 전쟁임은 사실이다. 게다가 기독교 Vs 이슬람이라는 것도 사실과 다르니, 기독교도 가톨릭과 동방정교 및 소수 종파끼리 전쟁(프랑스는 소수 종파인 카타리파를 마구잡이로 학살하였고, 소수종파에게는 십자군이 악마였다.)과 학살을 벌였고 맞서던 이슬람도 시아파와 순니파 및 여러 분파 갈등으로 내전이 났으며 십자군과 손잡는 일도 있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평가는 십자군 전쟁 항목의 평가와 재평가 부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항목을 참고해보자. - ↑ 종종 극단적인 기독교인들이 십자군 전쟁을 성전이라고 찬양하는 쓰레기 짓을 벌이긴 하지만 다수적으로는 개드립으로 무시당한다. 한국에서도 한 성직자가 이런 발언을 했다가 욕을 무지 처먹었고 이에 맞서듯이 한 원로 목사는 기독교 죄악사라는 책으로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를 똥칠한 더러운 전쟁이라고 분노어리게 깠다. 참고로 이 사람은 개신교도 근현대 제국주의 사상에 동조하였기에 십자군 전쟁을 가톨릭같은 기독교 종파가 벌인 짓이니 개신교랑 상관없다는 이들도 십자군 전쟁 못지않은 더러운 과거임을 알라고 호되게 성토했다
- ↑ 단권 작품이 십여권이 넘고, 단편도 그 정도, 에세이 집에 수입되지 않은 시리즈물 등도 꽤 많다. 일본어 위키의 작품목록을 보면 뭐 이렇게 많이 적었나 싶을 정도. 다만 한국내에서는 관심의 대상인 아르슬란 전기의 출간 정지에 창룡전 등 관심되는 책이 제한되어 있어서 더더욱 이런 이미지가 굳어졌다. 작가도 소설 후기에서 자폭을 한 적도 있고.
- ↑ 심지어 아라카와 히로무도 아르슬란 전기를 만화로 그릴때 순화를 했다. 3화에서 잔혹한 장면이 나오지만 원작의 잔혹함에 비하면 그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은하영웅전설 애니메이션조차 전투장면의 잔혹함 때문에 욕을 먹는 판국에 아르슬란 전기 OVA와 201년판이 이것을 표현 못한 것을 보면 아르슬란 전기의 작혹함이 은하영웅전설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 ↑ 그나마 이 소설에선 식인이 나오지 않는데 실제로 십자군은 식량 부족때문에 이슬람인 및 유태인,심지어 현지 거주 기독교인까지 마구잡이로 죽이고 시체를 먹었는데 이교도는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봤기 때문이다!
- ↑ 극중 설명을 보면 2차대전 때 아시아 각지에서 민간인 및 적군 포로를 산채로 해부까지 했다는 점을 보면 천하의 개쌍놈 이시이 시로가 모델인 듯
- ↑ 이 에어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에어콘이 아니다. NBC방호를 위해 장착하는 양압식 공기 조절 체계를 의미한다. 내부의 압력을 일반 대기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기압으로 올림으로서 NBC오염으로 부터 어느 정도 차단하는 효과를 부여하는 장비라고. 이 부분을 정확하게 말하면 90식 전차를 탈취하여 달리는 도중 전차 바닥에서 물이 새는 장면에서 나온다. 하부 장갑이 약하다는 빈정거림인데, '그래도 시원하게 왔잖아'라는 식으로 역시 비꼬는 것이다.
- ↑ 1권만 집필하고 2권부터는 원안으로 물러나 다른 젊은 작가들이 집필을 맡아 완결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