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

Philip Kindred Dick
1928년 12월 16일 ~ 1982년 3월 2일

미국SF 작가.

1 설명

만일 그의 작품이 순수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싸구려 표지 대신 거창한 표지를 내세웠더라면
그렇게 비평가들에게 잊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 어슐러 르 귄

생전에는 (비교적) 흔한 다작 작가 정도에 그쳤지만 사후에야 재평가되어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 등과 함께 SF계의 최고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 상기 3인의 SF그랜드 마스터[1]에게도 없는 SF문학상인 필립 K. 딕 기념상(The Philip K. Dick Memorial Award)이 있다는 것이 그의 위상을 증명한다.

다소 특이한 성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다. ''은 남성 성기를 뜻하는 속어이기도 하다. 특히 강하게 발음하면...[2][3]보다시피 필립 딕의 딕은 이름인 리처드의 애칭인 딕이 아니다. 성씨가 아예 딕이다. 스코틀랜드 성이라고.

마약의 영향인지, 아니면 천재성이 지나쳐서 아예 정신분열증이 발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말년의 필립 딕은 이해하기 힘든 언행을 종종 보여 그의 가족들과 그를 존경하던 동료 작가들을 힘들게 하였다. 이는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어, "VALIS" 같은 후기 작품을 읽어보면 당시 딕의 정신세계를 볼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 극구 반대하여 반전 운동에 참여하고 국가 권력, 대기업과 할리우드를 적대했지만(그의 소설들이 사후에야 제대로 영화화 될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공산주의 또한 지독히 혐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작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무정부주의자로 보는 견해가 많다. 여하간 그의 소설을 보다보면 《높은 성의 사나이》처럼 오리엔탈리즘 냄새를 피운다든지, 시장경제를 반대하는 게임을 하는 것이 적국의 침공 도구로 판명나는 단편이라든지 뭐 이런 식의 편견이 제법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반전 운동에 열심이던 시절, 가택침입사건(집을 마구 뒤졌으나 정작 도난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일어나자 CIA의 짓이라며 FBI에 신고하는 일이 있었다. FBI는 그의 반전운동 이력을 알고는 신고를 묵살했다. 이후 정체 불명의 협박 전화가 계속되고 사법당국은 이를 외면하는 사태가 계속되자(보안관서에 신고하자 "이 카운티에는 반전운동가 따위 필요없으니 싫으면 이 땅을 떠나라"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결국 캐나다로 도피한다. 또한 사이버리아드와 솔라리스로 유명한 스타니스와프 렘이 그를 칭찬(사기꾼들에게 둘러싸인 예언자라 칭송했다)했을 때, 생뚱맞게 렘을 KGB 스파이라며 CIA에 신고를 했다는 일화 또한 있다. 이게 어찌보면 당연한 게, 렘이 워낙 남 칭찬을 잘 안하는 독설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의 명문으로 잘 알려진 것은 《죽은 자가 무슨 말을》의 "Don't try to solve serious matters in the middle of the night."(중요한 일을 한밤중에 해결하려 들지 말라.)

2 생애[4]

1928년 12월 16일 미숙아 상태로 태어났다. 본래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던 딕의 어머니는 제대로 된 수유를 하지 못했고 결국 영양실조로 재닛은 1달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필립 딕은 훗날 "누이는 살기 위해, 나는 누이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영원히... 그녀는 나의 전부나 다름없었고 나는 늘 내 죽은 누이와 헤어지는 동시에 함께해야 하는 저주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재닛의 죽음 이후 부모가 이혼하고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실험적으로 운영하는 탁아소에 다녔다. 탁아소에서 실시한 심리 검사에서 '기억력과 언어능력 및 손의 협응력이 높으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10대 초반, 딕의 어머니가 의사의 충고를 받고 천식과 행동장애 치료를 위해서 컨트리데이 기숙학교에 입학시킨다. 그러나 정작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기숙학교에서 구토 공포증, 공황장애, 광장공포증이 생기면서 이후 평생동안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음식을 삼키지도, 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공황장애 때문에 기숙학교를 관두고 집에서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기숙학교에서 나온 직후, 프렌즈 퀘이커 데이 스쿨에 다니다가 2학년 때 공립학교로 전학한다. 하지만 딕은 학교에서 받는 소외감 때문에 무단결석을 자주 하였고 이 때부터 필립 딕은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린 왕자, 호빗, 곰돌이 푸,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를 탐독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후 버클리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독일어를 배우고 칼 구스타프 융의 저서를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곧잘 현기증 발작을 일으켜 앓아 눕곤 했고 결국 1943년, 학교를 휴학하고 음반, 악보, 전자기기를 취급하는 '아트 뮤직'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아트 뮤직의 주인인 허브 홀리스는 카리스마 넘치고 까다로운 인물이었는데, 딕에게는 멘토이자 아버지같은 존재가 되었다. 또한 홀리스는 훗날 딕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제적이지만 따스한 마음을 가진 '보스'의 모델이 된다. 가게에서 일하면서 딕의 불안장애는 많이 나아졌지만 학교에만 가면 재발하는 통에 결국 마지막 1년 과정은 집에서 개인 교습을 받으며 마쳐야 했다.

같은 해 가을이 되자 집에서 나와 로버트 덩컨, 잭 스파이시, 필립 라만티어 같은 작가들과 함께, 창고를 개조한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룸메이트의 대부분은 동성애자로 작가 특유의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즐기던 부류였고 이들의 사상은 딕의 독자적인 지적 성장의 원천이 되었다.

다음 해인 1947년, 딕은 버클리 대학에 철학 전공으로 입학하였지만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ROTC 훈련을 혐오했고 결국 1948년 소총 분해결합 훈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다.

퇴학 당한 직후 딕이 동정(!)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홀리스의 주선으로 아트 뮤직의 지하방에서 젊은 여성들과 잠자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거기에서 딕은 재닛 말란과 알게 되었고 재닛이 임신했다는 거짓 사실을 말하자 서둘러 재닛과 결혼한다. 갈등으로 점찰되었던 딕의 첫번째 결혼 생활은 결국 6개월 만에 이혼으로 끝이난다.

다음 해인 1950년, 6월. 딕은 밀입국자 출신인 클리오 애퍼스털리디스와 재혼, 버클리의 프란시스코 거리에 작은 집을 장만한다. 이 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났다. 직후 작문 교사이자 범죄소설과 SF 분야에서 편집자, 평론가로 활동하던 앤서니 바우처와 조우했고 그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SF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훗날 딕은 바우처를 평하며 "성숙한 어른, 그것도 분별 있고 교육받은 어른도 SF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인물'이라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1951년,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지에 처음으로 단편 <루그>(Roog)로 데뷔한다. 직후 홀리스에 대한 신의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아트 뮤직에서 해고당한다. 잡지 [플래닛 스토리즈]에 단편 <위브가 저기 누워있다 Beyond Lies the Web>를 게재하고 스콧 메러디스 출판 에이전시와 전속 계약을 채결한다. 이 시기 딕은 사실주의적 소설인 <거리에서 들리는 목소리 Voice from the Street, 2007>, <매리와 거인 Marry and the Giant, 1987>도 집필하지만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했다. 훗날 딕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류 문학과 SF를 동시에 쓰는 것이었다'라고 회고했다.

1953년 음반 가게인 '터퍼와 리드'에서 잠시 일하면서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이 재발, 우울증, 폐쇄공포증까지 생기게 되자 공포증과 우울증 치료제로 처방받은 암페타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암페타민의 각성 효과를 원동력으로 54년까지 딕은 자신의 최초 장편 SF소설 <태양계 제비뽑기 Solar Lottery, 1955>와 <존슨이 만든 세계 The World Jones Made, 1956>, 판타지 소설 <우주 꼭두각시 The Cosmic Puppets, 1957> 및 리얼리즘 소설인 <함께 모여라 Gather Yourselves Together, 1994> 등 무려 30편의 작품을 썼고 그중 대다수를 펄프 잡지에 파는 것을 성공한다. 이 시기 딕은 자신의 단편 원고료와 아내가 이런저런 시간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주택 융자금을 갚고 짧은 기간이나마 재정적인 안정을 누렸다. 매리언 이모가 세상을 떠나자 딕의 어머니는 매리언 남편인 조 허드너와 재혼하고 조카인 여덟 살배기 쌍둥이를 입양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광장공포증애 시달리면서도 딕은 난생 처음으로 1954년에 열린 SF 컨벤션에 참가해서 A. E. 밴보트를 만났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주로 썼던 밴보트의 소설은 딕의 초기 SF 소설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딕이 SF 작가 중 가장 다작을 하는 작가로 알려진 직후 갑작스레 FBI 수사관 두 명이 딕을 방문하여 점잖게 심문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평생동안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SF 작가로 이름을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모호한 저항감을 갖게 되었다.

1955년 딕은 <농담을 한 사내 The Man Who Japed, 1956>, <하늘의 눈 Eye in The Sky, 1957>을 집필했다. 같은 해, 장편 데뷔작인 태양계 제비뽑기가 에이스 북스에서 페이퍼백 단행본으로, 첫 번째 단편집 <한 줌의 암흑, A Handful of Darkness>가 리치 & 코원 출판사에 의해 영국에서 간행된다.

이후 1956년에서 57년, 딕은 주류 문단의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으로 일반 소설인 <조지 스티브로스의 시간 (소실됨)>, <언덕 위의 순례자 (소실됨)>, <시스비 홀트의 깨진 거울 (1988)>, <좁은 땅에서 빈둥거리며 (1985)>를 집필하면서 클리오와 아칸소 지방까지 두 번의 자동차 여행을 한다.

1958년 딕은 처음으로 자신이 쓴 일반 소설의 주제에 SF 요소를 접목시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어긋난 시간을 완성시켰다. <어긋난 시간>은 딕의 소설 중에서 처음으로 하드커버로 출간된 소설이었으며 영화 《트루먼 쇼》의 모티브를 제공하였다. 한편 이 때 자신의 단편이 무단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잡지에 실린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소련 과학자 알렉산드르 톱치예프와 편지로 아인슈타인상대성 이론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았고, 이 편지들은 CIA에게 노출되었다[5] 같은 해 9월 클리오와 마린 카운티의 포인트 러예스 스테이션으로 이사한 딕은 앤 루빈스타인이라는 미망인을 만나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고 12월에는 클리오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1959년 클리오는 이혼에 동의했고 이혼 후 버클리로 돌아갔다. 딕은 59년 만우절에 앤과 결혼했고, 앤과 함께 살며 그녀의 새 딸(해티, 제인, 탠디)의 의붓아버지가 되었다. 이들은 가금류와 양을 키우며 아이들의 양육비 명목으로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앤의 전남편 가족들이 보내준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갔으며 딕은 돈을 벌기 위해 초기 중편 중 2편을 장편 SF로 개작하였다. 이들 장편은 1960년에 각각 <미래 의사>, <불카누스의 망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기부터 딕은 앤의 정신과의사에게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는 1971년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클리오와의 이혼, 앤과의 연애에서 영감을 얻어서 일반 소설인 <허풍선이 과학자의 고백 (1975)>을 집필했다.

1960년 딕과 앤의 첫 아이인 로라 아처 딕이 태어났고 가을이 되자 앤이 또 임신을 했지만 경제적으로 더 궁핍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던 앤은 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낙태했다. 딕의 암페타민 복용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1961년 딕은 앤이 개점한 수공예 보석상에서 일을 시작했으나 곧 중단하고 자신이 '움막'이라고 주르던 집필실에 틀어박혀서 주역의 점괘를 참고하여 높은 성의 사나이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1962년 높은 성의 사나이가 발매되지만 판매량은 부진했다. 같은 해 <당신을 합성해드립니다>, <화성의 타임슬립>을 각각 [어메이징]지와 [월드 오브 투모로우]에 연재한다. 훗날 딕은 '<높은 성의 사나이>와 <화성의 타임슬립>을 통해 나는 실험적인 주류 소설과 SF 사이의 간극을 줄였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작가로서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열의에 차서 쓴 10편의 주류 소설들은 계속 반송되고 1963년 딕은 돈이 궁해진 나머지 앤의 집을 담보로 레코드 가게를 시작할 것을 고려했다. 이후 딕과 앤의 결혼 생활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결국 딕은 앤과 오랫동안 부부싸움을 하다가 친구들에게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앤을 정신병원에 보낼려고까지 한다. 두 사람은 결혼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성공회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딕은 자신의 팬이었던 매런 해켓과 그녀의 딸 낸시 해켓을 처음 만나고 딕이 낸시 해켓과 블륜 관계가 되자 이듬해인 1964년 3월 9일 앤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1963년 9월 <높은 성의 사내>가 SF 문학상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을 받자 딕은 암페타민을 연료 삼아 64년까지 초반까지 집필실에 틀어박혀서 <닥터 블러드머니>,<타이탄의 게임 플레이어>, <시뮬라크라>, <작년을 기다리며>, <알파성의 씨족들>,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을 차례로 집필했다.

이혼 소송이 진행되던 중에 딕은 어머니의 집에 살면서 <높은 성의 사내> 후속편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곧 중단하고 <우주의 균열>, <끝에서 두번째의 진실>, <텔레포트 되지 않은 진실> 등의 소설을 탈고하면서 지역의 활기찬 SF 팬덤과 교류하였다.

1964년 7월 운전 도중 차가 전복되어 큰 부상을 입고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면서 집필 의욕을 상실하였으나 오클랜드에서 열린 세계 SF컨벤션에 참석하여 작가들과 교류를 시작하고 (마약이 횡행한 집회였다.) 낸시 해켓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다시 의욕을 되찾았다.

1965년 3월 낸시 해켓과 동거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동시에 고질적인 광장공포증도 재발했다. 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 LSD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캘리포니아의 미국 성공회 주교이자 낸시의 의붓어머니 매런 해켓의 정부 제임스 파이크와 돈둑한 우정을 쌓았다. 딕은 파이크와의 대화를 통해 신학적 고찰과 초기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1966년 <거꾸로 도는 세계>,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1968), 유빅 (1969)을 탈고했다. 그 해 7월 낸시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파이크 주교와 매런 해켓, 낸시와 함께 영매가 주최하는 세앙스 [6]에 참석했다. 이 모임의 목적은 자살한 파이크의 아들인 짐과 접촉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7년 3월 15일에 딸 이사 프레이어 딕이 태어났다. 6월 낸시의 의붓어머니 매런 해켓이 자살했다. IRS가 딕에게 체납된 세금과 벌금 및 이자의 납부를 요구하면서 이미 심각했던 가계 재정난이 한층 더 악화되었고 이러한 딕의 집안 사정을 본 할란 엘리슨, 로저 젤라즈니, 존 레논 등 유명 인사들이 필립 딕을 극찬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필립 딕의 이름이 차츰 알려진다.

그러나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딕의 정신적 멘토였던 파이크 주교가 사망하자[7] 딕은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물 특히 리탈린을 과다복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또다시 결혼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암페타민을 강박적으로 복용한 나머지 췌장염과 초기 신부전증 증세로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1970년 <흘려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를 쓰기 시작하였다. 평소의 집필 습관과는 달리 3월과 8월 사이에 여러번 고쳐썼다. 딕은 환각제인 메스칼린을 복용한 후 '찬란한 사랑의 비전'을 경험하고 해단 소설에 이를 투영했다. 낸시의 동생 마이클 해켓이 아내와의 이혼 소송 중에 딕의 집으로 와서 눌러앉았고 7월에는 당국에 푸드 스템프 [8]을 신청했다. 결귝 9월에 낸시가 딸을 데리고 집을 떠난다.

이후 딕은 거리에서 구입한 불법 약물을 포함한 다량의 약물과 암페타민의 기운을 빌려서 밤샘 토론, 편집증, 보헤미안적 너저분함으로 점철된 친구들과의 공동 생활을 시작하였다. 글은 거의 쓰지 않았고 <흘려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를 가끔 개고하는 정도였다. 결국 이듬해에 젊은 히피폭주족 등이 딕의 집에 드나들기 시작하자 딕은 해당 소설의 미완성 원고를 엉망진창이 된 일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변호사에게 맡기고 스탠포드 대학병원의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3 작품의 특징

작품 세계는 디스토피아적이고 세기말 분위기가 묻어난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성찰을 주제로 삼았던 "3대 그랜드 마스터" SF작가들과는 달리, 딕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SF소재들은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고 낯설며, 거의 불합리할 정도로 인간에게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을 가져다 준다. 기업이나 국가 같은 존재들 역시 그들 자신의 논리로 움직이면서 개인을 파멸적인 상황으로 몰고간다. 어떻게 보면 카프카적이다.

개인은 도구적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기억의 상실 재주입 강탈 같은 소재를 거치면서 자아를 파편적으로 해체당한다. 죽음조차도 안식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의 가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취급당한다.

간혹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인간의 적이거나 인간의 불행을 틈타 이득을 보려는 기회주의자들로 묘사된다. 특히 간간히 언급되는 외계인들의 은하제국은, 이미 오래 전에 화려했던 전성기가 끝나고 지금은 사회 전체가 극도로 퇴폐하고 노쇠하여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정면대결하기엔 버거운 상대로 나온다.

로봇들도 자주 등장하는데, 인간을 증오하는 적대 세력이거나 인간들에게 탄압받다가 탈출하여 복수를 갈망하는 존재, 또는 맹목적 살인무기 따위로 어둡게 그려진다.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즉 자기가 인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로봇들도 종종 나오는데, 적성 외계인들이 파견한 인류 절멸무기부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가짜 기억을 주입한 도망자 안드로이드까지 다양한 종류가 등장한다.

로봇 말고도 인공지능을 가진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이 많이 등장한다. 운전자가 술을 마셨다며 운전을 못하게 하는 자가용차는 양반이고, 사용할 때마다 동전을 넣어줘야 하는 생활용품들(심지어 자기집 현관문도 돈을 넣지 않으면 문을 안 열어준다) 등이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인간 주위를 맴돌며 사사건건 귀찮게 굴거나 돈 뜯어낼 궁리만 한다.

작품의 결말은 허무한 블랙 유머가 많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반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일례가 아시발꿈을 초월하는 "아시발 남의꿈" 결말이다. 작중에서 일어난 온갖 괴현상들이 알고보니 전부 꿈이더라! 그것도 주인공의 꿈도 아니고 작중에서 비중도 거의 없는 조연 캐릭터의 꿈이더라! 하는 식이다.

이런 몽환적인 내러티브 덕분인지, 특이하게도 생전에는 영미권보다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 전쟁 종결 후 미국 안에서 회의론이 득세하고 이념타령이 스러지기 시작할 무렵, SF문학계에서는 하드SF와 뉴 웨이브의 싸움 아닌 싸움이 하드SF의 판정승으로 끝나자 양 진영과 거리를 두고 있던 그의 작품들이 비로소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영화화 의뢰가 들어오고 각국에서 강연 초청이 밀려오는 등 전성기(?)가 도래했지만 얼마 안 되어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딕이 주로 소재로 삼은 자아정체성과 기억의 혼란이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이것이 현실인가?' '나는 내가 맞는가?' '나의 기억은 진짜인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런 점이 개인화된 현대인에게 자아 고찰의 계기를 제공하여, 현대인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적당한 수준의 서스펜스를 주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관객들이 생각할 거리로 삼기에도 좋다.

여담으로, 필립 딕은 위대한 SF 작가이긴 하지만 문학가로서의 소양, 다시 말해 글솜씨 자체는 안타깝게도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되었다. [9] 이는 딕이 생계를 위해 엄청난 다작을 해야 했기 때문인데, 이처럼 시간에 쫓기며 글을 썼음에도 그의 아이디어만은 고갈되는 법이 없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딕의 천재성이 더욱 돋보인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딕의 작품들은 (비교적 공들여 집필한 몇몇 장편을 제외하면) 문장이 난삽한 편이라 읽는 맛이 그리 좋지 않고, 우리말로 번역된 작품들조차 보면 다소 유치하거나 거친 느낌의 글이라는 느낌이다. 번역자의 잘못이 아니라 원작의 특성 때문이니 독자가 아량을 베풀어 주자.

4 미디어믹스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 딕의 작품 가운데 엄청나게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명과 원작 소설이 다른 경우 가운데에 표기하였다.

이 중 《블레이드 러너》와 《스캐너 다클리》가 장편을 영화화했고 비교적 완성도가 높게 영상화된 작품이다. 《토탈 리콜》도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성기의 액션물 정도로 호도되기 쉬우나 폴 버호벤의 폭력 해부 연출과 함께 어우러진 수작.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 중 특히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것들은 주로 단편들인데 할리우드 입맛에 맞는 반전(2번 이상일 때도 있음)이 많아 예상을 하고도 당할 정도라는 평을 받는다. 다만 단편을 장편으로 각색하는 것에 대한 한계와 작가의 사상과 할리우드의 가치관이 대립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영화화된 작품들은 그의 소설에서 기본 아이디어나 반전 정도만 따온 경우가 많다.

한편 "원작 필립 딕" 하고 명시하지 않은 영화들 중에도 딕 팬이 보면 그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음이 뻔히 보이는 작품들도 많다.

일례가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로, 이는 딕이 쓴 <어긋난 시간 Time Out of Joint>의 오마주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전략적으로 귀중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잡아두기 위해 가짜 마을을 만들고 주인공의 기억을 조작하여, 평범한 마을에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인 것으로 속인다는 내용으로, 《트루먼 쇼》의 방송국을 펜타곤으로 바꾸기만 하면 거의 똑같은 얘기가 된다.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토이스토리》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토이즈》 등에 나오는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고 그 장난감의 위력을 어른들이 전쟁, 범죄에 이용하려 하는 것도 딕 소설 <전쟁놀이>의 오마주이다. 물론 딕의 단편은 어두운 내용으로, 어린이가 새로 받은 군인 장난감이 신기하게도 살아 움직이는데, 이놈의 장난감이 어른들이 안 볼 때마다 어린이를 윽박질러 범죄에 이용하려 한다. 하지만 알고보니 아이의 다른 장난감들도 전부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라, 어린이가 안보는 틈에 군인 장난감을 다구리해 순식간에 박살낸다는 이야기.

명작 SF 영화로 각광받는 매트릭스도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을 원류로 두고 만든 영화다.

이외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딕의 소설에서 메멘토, 인셉션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5 주요 작품 목록

6 국내발매

집사재에서 단편 선집을 내놓았다.

  • 마이너리티 리포트 / 이지선 옮김 (2002년 4월 출간)
  • 죽은 자가 무슨 말을 / 유영일 옮김 (2002년 6월 출간)
  • 사기꾼 로봇 / 어윤금.김소연 옮김 (2004년 1월 출간)
  • 페이첵 / 김소연 옮김 (2004년 1월 출간)
  • 넥스트 / 권도희.이지선.김소연.유영일 옮김 (2006년 7월 출간): 기존의 4권에서 영화 원작인 된 단편들을 재수록하고, 영화 넥스트의 원작인 골든맨을 새롭게 번역하여 추가하였다.

폴라북스[16]에서 장편 걸작선을 발행하였다. SF계의 명 번역/기획자인 김상훈이 전집의 기획자이며, 번역은 여러 역자가 나눠서 진행하였다. 출간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장편
    • 화성의 타임슬립 / 김상훈 옮김 (2011년 5월 출간)
    • 죽음의 미로 / 김상훈 옮김 (2011년 5월 출간)
    • 닥터 블러드머니 / 고호관 옮김 (2011년 5월 출간)
    • 높은 성의 사내 / 남명성 옮김 (2011년 9월 출간)
    •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 김상훈 옮김 (2011년 11월 출간)
    • 발리스 / 박중서 옮김 (2012년 1월 출간)
    • 성스러운 침입 / 박중서 옮김 (2012년 3월 출간)
    • 티모시 아처의 환생 / 이은선 옮김 (2012년 4월 출간)
    • 작년을 기다리며 / 김상훈 옮김 (2012년 7월 출간)
    •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 / 박중서 옮김 (2012년 8월 출간)
    • 유빅 / 김상훈 옮김 (2012년 10월 출간)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 박중서 옮김 (2013년 9월 출간)
  • 단편
    •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 조호근 옮김 (2012년 8월 출간): 단편전집(전5권) 5권의 번역본.[17] 영화 토탈 리콜의 원작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가 포함되어 있다.
    • 마이너리티 리포트 / 조호근 옮김 (2015년 7월 출간): 영화 원작 6편이 포함된 선집이다.
  1. SF그랜드 마스터(명인)라는 명칭도 데몬 나이트 기념 그랜드 마스터상(Damon Knight Memorial Grand Master)의 수상자에게 붙여주는 수식이다. 생존 작가에게만 수여되기 때문에 딕은 이 영예를 얻지 못했다.
  2.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자사전인 파워딕이나 애니딕, 리얼딕 같은 것들은 외국인 눈에는 참 야리꾸리한 이름으로 보인다고 한다. 중국에서 王子志 같은 게임이 나온다고 보면 될 듯.
  3. 그런 이름때문에 어느 사이트에서는 필립큰좆이라고 불리는 수모를 당했다(...)
  4. 폴라북스에서 출판한 필립 딕 걸작선의 저자 연보에서 발췌.
  5. 딕은 1970년대에 정보자유법에 의거해 공개 요청을 보낸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6. 교령회. 죽은 사람들의 영혼과 통교하려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
  7. 예수가 역사 인물로서 존재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로 탐사 여행을 떠났으나 유대 사막에서 사망.
  8. 저소득자용 식량 배급권
  9. 심지어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인 SF 작가인 킬고어 트라우트가, 필립 딕을 패러디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는 시어도어 스터전의 패러디.) 그 이유는 킬고어가 "글솜씨는 형편없지만 아이디어만은 정말 뛰어난 작가"라는 묘사가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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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다큐멘터리 형식. 구하기가 쉽지 않음. 구하면 저도 보내주세요
  12. 소설의 원제는 《Imposter》인데, 번역서가 《사기꾼 로봇》으로 나왔다. 영화명은 원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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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해외에서는 《The Adjustment Bureau》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참고로 'Bureau'는 조직의 단위를 뜻하는 '국'을 의미한다. 결국 소설의 원제목인 'Team'이나 같은 말.
  15. 딕의 작품 중 드물게 판타지 계열 작품.
  16. 현대문학 출판사가 1997년에 설립했다. 폴라북스 이전에는 SF 문학하고는 거리가 먼 일반 문학 잡지/출판사였다. 동명의 잡지는 1950년대에 창간되어 한국 문학사에 쟁쟁한 시인과 작가들을 배출해낸 곳이기도 하다.
  17. 나머지 4권은 이 책의 판매량을 보고 번역출간을 추진할 생각이었던 듯 하나... 이후 선집이 나온 걸 보면 나머지 단편전집의 번역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안 돼! 참고로 국내 출간된 SF단편전집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유명한 아서 C. 클라크 전집(전4권)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