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FIFA 월드컵 | ||||
2회 | → | 3회 | → | 4회 |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 |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
목차
1 개괄
1938년 6월 4일부터 6월 19일까지 프랑스에서 열린 3번째 월드컵.
지역 예선에는 34개의 팀이 참가하여 14개의 팀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대회의 방식은 이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조별 리그 없이 녹아웃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렸다. 이탈리아가 결승전에서헝가리를 4대 2로 물리치고 지난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리고 이 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열리기 전에 개최된 마지막 대회이다.
2 개최지 선정
1936년 8월 13일 베를린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프랑스는 독일과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투표에서 승리하여 3번째 월드컵의 개최권을 따낸다. 이 결과는 남미 국가들의 큰 불만을 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저저번에는 남미에서 개최했고 저번에는 유럽에서 개최했으니 이번엔 우리차례잖아. 우리 차례라고!! 내놔! 아니면 다른 대륙[1]을 주든지.. 였다. 하지만 씹혔다. 당연하지. 쥘 리메가 어디 사람인데[2]
3 지역예선
이 대회 지역 예선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있었다.
- 개최국 프랑스는 전 대회의 개최국인 이탈리아와 달리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부터 편하게 축구를 했다. 그리고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도 역시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져오다 2006 독일 월드컵부터는 우승팀의 자동출전 자격이 폐지되었다.
이게 다 2002 월드컵에서 무득점 예선탈락한 프랑스 때문이다[3] -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영국의 홈네이션 팀들은 이번에도 출전을 거부했다. FA컵이 월드컵보다 수준이 높다는 이유였다.
MLB 포스트시즌과 WBC의 관계와 유사하다. - 프랑스는 열악한 경기장 시절 등으로 인해 개최권을 박탈당할 뻔 했다. 하지만 쥘 리메의 노력에 힘입어 대규모 경기장 확장 및 신축 공사에 착수한 프랑스는 대회 개막 직전까지 밤샘 작업을 반복한 끝에 제대로 된 시설을 완비할 수 있었다.
8년 전에도 비슷한 짓을 했었는데 또 이런 짓을 하다니하지만 아마 쥘 리메가 나서서 이것을 추진하지 않았으면 아마 다른 나라에게 빼앗겼을 것이다. - 독일은 대회 직전에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소리는 즉, 1930년대 초반에 잘 나가던 ‘분더팀’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모두 흡수했다는 소리. 결국 이 대회는 당초 계획되어 있던 16개 팀이 아닌 15개 팀으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퓨전의 결과는? 그리고 독일이 극초반에 광탈한 유일한 월드컵이다.
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
1938년 대회 포스터
마스코트와 공인구는 이번에도 없었다.
5 경기장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
(수도 파리를 제외하면 가나다순)
- 파리 / 스타드 올랭피크 입-두-마누아르[4], 파르크 데 프랑스[5]
- 랭스 / 스타드 오귀스트 델로누
- 르 아브르 / 스타드 카베 베르트
- 리옹 / 스타드 제를랑
- 릴 / 스타드 빅토르 부케이
- 마르세유 / 스타드 벨로드롬[6]
- 보르도 / 스타드 두 파르크 레스퀴르[7]
- 스트라스부르 / 스타드 드 라 메이노
- 앙티브 / 스타드 포르 까레
- 툴루즈 / 스타드 샤푸
6 대회 진행
6.1 1라운드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8강 진출국.
1라운드 | |
이탈리아 | 노르웨이 |
프랑스 | 벨기에 |
브라질 | 폴란드 |
체코슬로바키아 | 네덜란드 |
헝가리 | 네덜란드령 동인도[8] |
스위스 | 독일 |
스웨덴[9] | 오스트리아 |
쿠바 | 루마니아 |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6.2 8강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4강 진출국.
8강 | |
이탈리아 | 프랑스 |
브라질 | 체코슬로바키아 |
헝가리 | 스위스 |
스웨덴 | 쿠바 |
6.3 4강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진출국.
4강 | |
이탈리아 | 브라질 |
헝가리 | 스웨덴 |
8강부터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A | 1라운드 1경기 이탈리아 2:1 노르웨이 | I | 8강전 1경기 이탈리아 3:1 프랑스 | M | 4강전 1경기 이탈리아 2:1 브라질 | P | 결승전 이탈리아 4:2 헝가리 |
B | 1라운드 2경기 프랑스 3:1 벨기에 | ||||||
C | 1라운드 6경기 브라질 6:5 폴란드 | J | 8강전 2경기(5경기)[10] 브라질 1:1(2:1) 체코슬로바키아 | ||||
D | 1라운드 7경기 체코슬로바키아 3:0 네덜란드 | ||||||
- | |||||||
E | 1라운드 3경기 헝가리 6:0 네덜란드령 동인도 | K | 8강전 3경기 헝가리 2:0 스위스 | N | 4강전 2경기 헝가리 5:1 스웨덴 | ||
F | 1라운드 4경기(9경기)[11] 독일 1:1(2:4) 스위스 | ||||||
G | 1라운드 8경기 스웨덴 부전승:기권 오스트리아 | L | 8강전 4경기 스웨덴 8:0 쿠바 | ||||
H | 1라운드 5경기(10경기)[12] 쿠바 3:3(2:1) 루마니아 | O | 3/4위전 브라질 4:2 스웨덴 |
- 이 표에서 1라운드의 경기에 붙어있는 번호의 순서는 팀의 성적이 아닌 경기 시작 순서에 따랐다.
1938 FIFA 월드컵 우승 |
이탈리아 |
두 번째 우승 (★★) |
7 기록실
- 최초 득점 – 에밀 베낭트(프랑스), vs (벨기에), 1분(1라운드)[13]
- 최초 퇴장 – 한스 페서(독일), vs 스위스, 연장 6분(1라운드)
- 최초 페널티 킥 – 프리데리크 셰르프케(폴란드). vs 브라질, 23분(1라운드)
- 최초 멀티골 – 장 니콜라(프랑스). vs 벨기에, 16분&69분(1라운드)
- 해트트릭
- 최다 득점 경기 - 브라질 6 vs 5 폴란드, (1라운드)
- 최다 득점차 경기 – 스웨덴 8 vs 0 쿠바(8강)
- 최초 역전승 - 쿠바 2 vs 1 루마니아(1라운드 재경기)[14]
- 자책골
- 무득점팀
본국과 식민지의 동반 무득점
18경기에 84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67골을 기록했다.
8 결과
1위 - 이탈리아
2위 - 헝가리
3위 - 브라질
4위 - 스웨덴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1 | 이탈리아 | 4 | 4 | 0 | 0 | 11 | 5 | +6 | 8 | 우승 |
2 | 헝가리 | 4 | 3 | 0 | 1 | 15 | 5 | +10 | 6 | 준우승 |
3 | 브라질 | 5 | 3 | 1 | 1 | 14 | 11 | +3 | 7 | 3위 |
4 | 스웨덴 | 3 | 1 | 0 | 2 | 11 | 9 | +2 | 2 | 4위 |
5 | 체코슬로바키아 | 3 | 1 | 1 | 1 | 5 | 3 | +2 | 3 | 8강 |
6 | 프랑스 | 2 | 1 | 0 | 1 | 4 | 4 | 0 | 2 | 8강 |
7 | 스위스 | 3 | 1 | 1 | 1 | 5 | 5 | 0 | 3 | 8강 |
8 | 쿠바 | 3 | 1 | 1 | 1 | 5 | 12 | -7 | 3 | 8강 |
9 | 루마니아 | 2 | 0 | 1 | 1 | 4 | 5 | -1 | 1 | 1라운드 |
10 | 독일 | 2 | 0 | 1 | 1 | 3 | 5 | -2 | 1 | 1라운드 |
11 | 폴란드 | 1 | 0 | 0 | 1 | 5 | 6 | -1 | 0 | 1라운드 |
12 | 노르웨이 | 1 | 0 | 0 | 1 | 1 | 2 | -1 | 0 | 1라운드 |
13 | 벨기에 | 1 | 0 | 0 | 1 | 1 | 3 | -2 | 0 | 1라운드 |
14 | 네덜란드 | 1 | 0 | 0 | 1 | 0 | 3 | -3 | 0 | 1라운드 |
15 | 네덜란드 령 동인도 | 1 | 0 | 0 | 1 | 0 | 6 | -6 | 0 | 1라운드 |
- 재경기 승패 결과는 순위에 반영하지 않는다.45페이지 참조
8.1 수상
레오니다스
2위 – 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16]
3위 – 기오르기 사로시(헝가리)
득점왕
1위(7골) - 레오니다스(브라질)
2위(6골) - 귤라 쳉겔레르(헝가리)
3위(5골) - 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 기오르기 사로시(헝가리)
1938년 프랑스 월드컵 베스트 11
골키퍼: 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체코슬로바키아).
풀백: 피에트로 라바, 알프레도 포니(이상 이탈리아), 도밍구스 다 기아(브라질).
하프백: 미첼레 안드레올로, 우고 로카텔리(이상 이탈리아)
공격수: 실비오 피올라, 지노 콜라우시(이상 이탈리아), 기오르기 사로시, 귤라 쳉겔레르(이상 헝가리), 레오니다스(브라질).
9 뒷 이야기
- 독일은 ‘분더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여 의욕적으로 1938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시드 배정국으로서 유일하게 16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 사실에 분노한 히틀러는 귀국한 독일 대표팀 선수들 전원을 구속해버렸다.
코로 소세지와 맥주를 먹는 히틀러식 만찬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한다파울 야네스와 에른스트 레너는 1934년때 구속당했다가 출소해서 그 다음 월드컵에 나갔는데 또 구속당했다 -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8강전은 내용적으로 명승부였을 뿐 아니라, 양 팀 선수들이 보여준 페어플레이 정신에 힘입어 월드컵 역사에 긍정적인 기록을 남겼다.[17] 프랑스 선수들은 승리한 이탈리아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며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홈 관중들 역시 프랑스 국기와 이탈리아 국기를 양 손에 들고 흔들며 38년 대회를 '평화의 제전' 분위기로 몰고 갔다.
10 대회 이후
이탈리아가 우승하고 난 1년 후. 세계는 대대적인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로 인해 월드컵이고 뭐고 전부 중단되었고 다음 대회의 개최까지는 12년이 걸리게 된다.- ↑ 하지만 교통도 교통이지만 아프리카는 현존하는 대부분 국가들이 식민지였고, 아시아는 축구 인프라와 수준이 너무 떨어지긴했다
- ↑ 쥘 리메가 직접 FIFA를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FIFA 위원들이 쥘 리메의 노고를 생각하는 뜻에서 23표 중 19표를 주었다
- ↑ 사실 우승팀 자동출전 폐지는 2002년에 결정되었다.
- ↑ 또 다른 이름은 스타드 올랭피크 드 콜롱브. 파리에는 월드컵을 개최한 구장이 2개가 있다. 이곳은 1924년 올림픽 당시 메인 스타디움이었다. 또한 1938년 월드컵의 결승전도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 ↑ 1897년에 개장된 매우 역사 깊은 구장이다. 1932년과 1972년에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쳤으며, 1972년엔 거의 새로 짓다시피한 대공사를 거쳤다.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구장이다
-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홈구장. 1998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에게 떡실신당했던 구장이 바로 이 곳이고, 베르캄프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유명한 쓰리터치 결승골을 성공시켰던 곳도 이 곳이다
- ↑ 지롱댕 보르도의 홈구장. 현재의 이름은 스타드 샤방-델마. 자크 샤방-델마는 1947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48년간이나 보르도 시의 시장을 지낸 정치인으로 이 사람이 사망한지 1년 후 이 사람의 이름이 구장에 헌정되어 현재의 스타드 샤방-델마가 되었다
- ↑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본선 출전국
- ↑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어 아예 없어졌기 때문에 스웨덴은 자동으로 2라운드에 진출
- ↑ 5경기는 2경기의 재경기
- ↑ 9경기는 4경기의 재경기
- ↑ 10경기는 5경기의 재경기
- ↑ 경기 시작 후 35초 만에 당시 월드컵 역사상 가장 빠른 골 기록으로 이름을 올렸다
- ↑ 같은 시간에 치러졌던 다른 1라운드 재경기인 스위스와 독일의 경기에서도 역전승이 나왔지만 이 경기가 시간상으로 역전이 더 빨리되었다
- ↑ 풀네임은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역사에 제대로 이름을 남긴 레전드. 체격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탄력을 이용하여 공중전에 매우 강한 선수였으며 별명이 흑진주, 고무인간이었다. 오버헤드킥으로 대표되는 바이시클 킥을 전 세계에 알린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 ↑ 이탈리아의 1938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자 역대 세리에 A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진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다
- ↑ 사실 이런 일들을 포함하여 월드컵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에 쥘 리메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 대회에서 반도의 어떤 대머리 독재자가 월드컵을 파시즘 선전에 악용하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