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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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연고 도시에 대해서는 묀헨글라트바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016-17 독일 1.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도르트문트라이프치히레버쿠젠
마인츠묀헨글라트바흐바이에른볼프스부르크
브레멘샬케 04아우크스부르크잉골슈타트
쾰른프라이부르크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
헤르타 BSC호펜하임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C조
50px
바르셀로나
(Barcelona)
50px
맨시티
(Man City)
35px
묀헨글라트바흐
(Mönchengladbach)
50px
셀틱
(Cel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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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VfL Borussia Mönchengladbach
정식 명칭Borussia Verein für Leibesübungen 1900 Mönchengladbach e.V.[1]
별칭디 포흘른 (Die Fohlen[2])
창단1900년 8월 1일
소속 리그1. 분데스리가 (Fußball-Bundesliga)
연고지묀헨글라트바흐 (Mönchen-gladbach)
홈 구장보루시아 파르크 (Borussia Park)
(54,067명 수용 가능)
라이벌1.FC 쾰른 - 라인 더비(Rhein Derby)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보루센 더비 (Borussen Derby)[3]
회장롤프 쾨니히스 (Rolf Königs)
감독안드레 슈베르트 (André Schubert)
주장라르스 슈틴들 (Lars Stindl)
부주장토니 얀치케 (Tony Jantschke)
공식 웹 사이트borussia.de (독일어)
우승 기록
1.분데스리가 (1부)
(5회, ★★[4])
1969-70, 1970-71, 1974-75, 1975-76, 1976-77
DFB-포칼
(3회)
1959-60, 1972-73, 1994-95
독일 수퍼 컵
(1회)
1975-76 (비공식)
UEFA 유로파 리그
(2회)[5]
1974-75,1978-79
2016-17 시즌 유니폼
-
HOMEAWAYTHIRDGK
메인 스폰서유니폼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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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

1970년대 중반 분데스리가의 최강자.

1 개요

독일의 프로 축구팀. 독일 1.분데스리가에 소속되어 있다.

연고지는 독일의 대표적인 군수산업 도시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묀헨글라트바흐 시(Mönchengladbach)이며, 경기장은 보루시아 파르크(Borussia Park)이다.

1970년대 중반에 독일유럽을 제패하는 등 정점을 찍은 직후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다. 그러나 2010-11 시즌에 16위를 찍은 직후 5시즌 연속 10위권 안에 들었으며, 특히 12-13 시즌 빼고는 모두 5위권 안의 성적을 거두었다. 더구나 14-15 시즌에는 근래 최고 성적인 '3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꽤나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하고 육성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FC 바이에른 뮌헨과 여타 선두권 팀들에게 때때로 일격을 가하는 강팀으로 돌아왔다.

뮌헨과 헷갈리는 발음 때문에[6] 글라트바흐라고 줄여쓰기도 한다. 발음도 그렇고 철자 역시 어지간히 헷갈리기 때문에 다른 언어권 사용자 입장에선 부를 때나 쓸 때나 꽤나 어려워하는 팀이기도 하다. [7]

독일에서도 유서깊은 명문 클럽으로 유명한 선수들도 많이 배출했지만 안타깝게도 2000년대 접어들면서 몰락의 길을 밟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다행히도 어느 정도 회복세에 접어든 듯. 40년 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 했어도 여전히 인기는 많은 편이라 약 4만명의 회원과 많은 서포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규모는 독일에서 여섯 번째다. 1970년대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 리그를 제패하는 모습과 특유의 공격 축구 때문에 독일에서 진보적인 성격을 가진 중년 팬들이 은근히 좋아하는 클럽이라고. 클럽의 상징은 망아지로, 마스코트의 이름은 Jünter다.

2 역사

2.1 창단 이래

1900년 지역 청년들의 축구 동호회에서 출발해 점차 세를 키우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1960년 처음으로 독일 컵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에는 바로 합류하지는 못했다. 이는 당시 지역 리그에서 성적이 아주 우수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1965-66 시즌부터 합류해 그 뒤로 분데스리가의 강호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팀의 최전성기는 1970년대로 1970년대에만 무려 5번의 우승, 컵 대회 2번 우승, UEFA컵 우승[8] 2회, 그리고 유로피언 컵 결승에까지 오르는 그야말로 리그를 정복하는 수준의 실력을 자랑했다.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우도 라텍과 같은 명 감독과 귄터 네처, 유프 하인케스, 울리 슈틸리케, 베르티 포그츠, 우베 란, 알란 시몬센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앞세워서 그야말로 1970년대 독일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이 시기에 그들의 강대함을 잘 알려주는 기록이 분데스리가 한 경기 최다 골 차이 경기인데, 1978년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무려 12:0으로 박살낸 적이 있었다. 1974-75시즌부터 1976-77시즌까지 기록한 3시즌 연속 우승은 오직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묀헨글라트바흐만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1979년에 유프 하인케스가 감독이 된 이후 1980년대 접어들면서 재정 문제가 겹치고, 점차 축구 리그가 돈의 흐름이 좌우되면서 점점 쇠락기에 접어든다. 인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닌데, 로타어 마테우스나, 올리버 노이빌레, 세바스티안 다이슬러, 마르코 마린, 마르코 로이스와 같은 재능들은 꾸준히 출현했지만, 이들을 붙잡을 돈이 없었다. 잡고는 시픈데 돈이 옵소소 1980년 프랑크푸르트에게 UEFA컵 우승을 내주고[9], 1984년 골득실 차로 아깝게 우승을 놓친 이후,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급기야 1999-2000 시즌 첫 강등을 당한 후, 그 뒤로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했다. 계속해서 강등과 승격, 심지어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까지 드나드는 뚜껑 열어보기 전엔 알기 힘든 팀이었다.

1970년대 유럽 무대에서 지겹게 만나는 리버풀[10] 팬들과 친밀해져서 훗날 1989년 힐스버러 참사 때는 그들을 위해 기금도 마련했다.

2.2 2010-11 시즌

시즌 내내 고전하다가 겨울에 헤르타 베를린에서 답답한 나머지 사임한 감독 루시앙 파브레를 선임. 막판 연승을 달리면서 꼴찌에서는 벗어나 기사회생했다.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인 함부르크와의 경기에서 비기면서 16위를 차지, 2부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 VfL 보훔과 승강 PO를 치루게 되었다. 안방에서 열린 1차전은 막판 90분에 넣은 골로 1:0으로 이겼고 2차전 보훔 원정에서 1:1로 비기면서 겨우 리그 잔류를 결정지었다.

2.3 2011-12 시즌

개막전에서 몇년만에 원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잡아내더니 11월 28일까지 14라운 9승2무3패 승점 29로 1위 도르트문트에 득실차로 밀리는 2위를 달리다가 이후로 2월 13일 21라운드까지 리그 3위로 떨어져있다. 4위인 샬케 04에게 2점 차로 추격 중. 하지만 2위 뮌헨과는 1점 차이며 1위 도르트문트에겐 3점차로 아직 리그 우승 희망은 있었지만 결국 4위로 리그를 마감하였다. 11/12시즌부터는 분데스리가 4위팀도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묀헨글라트바흐는 12/13시즌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2.4 2012-13 시즌

전시즌 분데스리가 4위 자격으로 12/13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디나모 키예프와 격돌하게 되었다. 그러나 1차전 안방경기에서 1:3으로 패배했고 2차전 원정경기에서는 2:1로 승리했지만 득점차때문에 탈락하면서 유로파리그로 떨어졌다.

유로파리그 48강 추첨에선 페네르바흐체 SK, 올랭피크 마르세유, 키프로스 AFL 리마솔과 한 조를 이뤘는데 리마솔 원정에서 0-0으로 비긴 데 이어, 안방에서 페네르바흐체에게 2:4로 패하면서 유로파리그를 아무래도 포기한 느낌을 보여줬으나 5차전까지 2승 2무 1패를 거두면서 조 2위로 32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리그 12차전까진 11위를 지키고 있지만 7위와 승점 차는 1점으로 중상위권 진출 희망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후로 계속 추락하면서 10승 13무 11패로 리그 11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유로파리그 32강에선 SS 라치오와 맞붙어서 1무 1패(3-3,0-2)로 탈락했다.

2.5 2013-14 시즌

13-14 시즌은 33차전까지 승점 55점으로 리그 6위를 기록 중인데 34차전이 바로 5위 볼프스부르크 원정(57점)이다. 유로파리그 진출을 확정짓긴 했지만 7위 마인츠랑 순위는 5점차라서 34차전을 져도 더 떨어지지 않기 때문. 4위 레버쿠젠(58점)과 골득실도 같아서 34차전 여부에 따라 극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린 4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때문에 아주 치열한 경기가 될 듯 했지만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 패하면서 6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 나가게 되었다.

2.6 2014-15 시즌

리그에서는 32라운드까지 2위로 뛰어올랐다. 전번 시즌에 막판 한방을 먹은 볼프스부르크랑 레버쿠젠을 3,4위로 밀쳐낸 상황이다. 다만 승점 1점차인 3위 볼프스부르크가 1경기를 더 남게둔 상황이라 이제 남은 2경기 아우스크부르크와 베르더 브레멘전을 다 이긴 다음, 볼프스부르크의 3경기가 지는 걸 바랄 수 밖에 없다. 어찌됐든 최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은 확정지은 셈. 최종 순위는 3위를 기록했다.

DFB 포칼에서는 8강전에서 2부리그팀인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에게 승부차기로 4-5로 져서 탈락했다.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서는 보스니아의 FK 사라예보 원정에서 3-2로 진땀승을 거뒀지만 홈에서는 7-0으로 뭉개면서 가볍게 48강 플레이오프로 올라가 비야 레알, FC 취리히, 아폴론 라미솔을 상대로 3승 3무를 거두며 32강에 올랐다. 그러나 세비야 FC에게 2-3,0-1로 패하며 일찌기 탈락했다.

유로파리그에서 탈락하고, 포칼에서도 지면서 실패한 시즌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성공한 시즌이었다. 3위를 하면서 요 근래에 가장 좋은 성적으로 챔피언스 리그 직행 티겟을 얻었고, 유망주들의 성장도 보기 좋은 결과다. 감독의 전술도 훌륭하게 안착되었다. 월드 클래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스트라이커 라파엘은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항상 10골 정도는 넣어주던 꾸준한 스트라이커였는데, 이번 시즌에는 평소 보다 좋은 골결을 보여주면서 팀의 완벽한 주포로 성장하였다. 나이도 꽤 많은 스타라이커여서 다른 팀에 빼앗길 우려도 없는지라, 묀헨에서 앞으로 몇년은 꾸준하게 골을 책임질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시즌, 묀헨이 가장 성공적으로 생각하는 분야는 측면 플레이어다. 아주 싼 값에 데리고 온 안드레 한과 그동안 조금 아쉬운 모습만 보여주던 파트릭 헤어만이 말 그대로 대폭발하면서 팀의 주포가 되었다. 안드레 한 같은 경우는 완벽한 주전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팀의 슈퍼 조커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선발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트릭 헤어만은 말 그대로 대 폭발하면서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둘다 90, 91년생이라는 어린 나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팀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다. 단, 둘다 지나치게 좋은 모습을 보여준 탓에 국대로 소집이 되었고, 파트릭은 국대에서도 가끔씩 선발로 나간다는 점에서 팀 스쿼드 관리가 앞으로 많이 어려워 질 전망이다. 최전방에 막스 크루제도 엄청난 골결을 보이면서 팀의 주포가 되었고, 레버쿠젠에서 임대로 데리고 온 크라머도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면서 팀의 큰 도움을 주었다. 라파엘이 가끔씩 버로우를 타는 스트라이커임에도 묀헨이 3위를 수정했던 이유가 바로 크루제의 골결이다. 중거리도 제법 잘 때리고, 문전 앞에서의 연계와 돌파도 아주 못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런 크루제가 다음 시즌에 볼푸스부르크로 팔려간다는 점이고, 팀의 중원을 책임졌던 미친 활동량의 크라머가 레버쿠젠으로 임대 복귀를 한다는 점이다. 묀헨글라트바흐는 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떠나는 둘에게 화환을 전달하면서 앞으로도 좋은 활약을 하라는 격려를 보냈는데, 그 동안 이적 때문에 배신자 취급을 받던 선수들이 넘쳐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아름다운 장면이다.

루시엥 파브르 감독의 전술도 아주 성공적으로 안착했는데, 이번 시즌 묀헨의 특기는 압박, 숏 패스, 역습이다. 잘못 들으면 무슨 티키타카처럼 들리는 전술이지만, 실제로 경기를 보면 절대로 티키타카가 아니다! 오히려 티키타카를 시전하는 팀을 물 먹이기 좋은 전술이다. 중앙에 미드필더를 밀집시켜서 상대의 공격 전개를 최대한 틀러막는데, 어지간해서는 묀헨의 미드 라인을 뚤는 것이 어렵다. 딱히 월드 클래스 수미를 보유하고 있는 구단은 아니지만, 미친 활동량을 자랑하는 크라머가 혼자서 2~3명을 괴롭히는 역할을 했기 때문. 크라머가 수비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닌데 그냥 엄청나게 뛰는지라 중앙에서 패스를 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수비 라인은 전진해서 공격 가듬을 하게 되는데 이 전진한 수비 라인에 크루제와 라페엘이 숨어있다가, 마빈 슐츠와 크라머가 끊어내는 순간 이들에게 연결된다. 크루제나 라파엘이 받는 순간 치달로 라인을 부수면서 골을 넣는 월클 스트라이커는 아닌지라 여기서 바로 골로 연결되는 않고, 대신 이 역습 상황에서 빠른 숏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무조건 골을 넣을 수 있는, 환상의 공격 루트를 창출한다. 대부분은 헤어만이나 한같은 주력이 좋은 윙어에게, 즉 측면쪽으로 빠르게 전달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여기서 부터는 어지간한 수비수는 잡을 수가 없는 엄청난 주력 돌파가 시작된다. 특히 한 같은 경우에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프린터인 아우베메앙과 로벤과 비견될 정도의 주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측면을 장악하면 패스를 주었던 라파엘과 크루제가 바로 박스 안 쪽으로 들어가서 기다리다가 크로스가 올라오면, 수비수가 적은 박스 안에서 손 쉽게 골로 연결하는 것이 이번 시즌 묀헨의 전술이다. 수비 라인이 전진한 상대에게 가하는 역습이기에 박스안에서 크루제와 라파엘을 방해할 수비수가 적은 상태인지라 골로 연결되기가 쉬운 전술이다. 묀헨 경기를 보면 공격을 끊어내고, 전진한 상대 수비 라인 바로 앞에서 숏 패스를 2번 정도 하다가 바로 치고 들어가서 골을 넣는, 정말 간결하고 쉬운 공격을 한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닌데, 일단 역습이라는 것은 최대한 빠른 상황에서 이루어지게 때문에 숏 패스라는 것을 하기가 어렵다. 헤어만이라는 특급 윙어를 보유한 묀헨만 사용 가능한 전술이다. 또한, 이 전술은 어디까지나 자신들 보다 강팀이거나,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대등한 경기를 할 때만, 사용가능한 전술이어서, 약체 팀과의 대결에서는 헤어만의 크로스와 중앙에서의 헤더만 사용하는 답답한 공격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 헤어만은 분명 어린 나이에도 엄청난 스피드와 연계, 드리블 능력을 갖춘 준-월클로 평가 받지만, 망해가는 팀을 혼자서 살리는 임펙트를 보여주지는 못 한다. 마지막으로 크루제와 라파엘이 탈 압박이 아주 훌륭한 수준이 아니여서 집중력이 좋은 수비라인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운 전술이다. 단적인 예로 전반기에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을 때는 제대로 털렸지만, 후반기에는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 뮌헨과의 리턴 매치에서 2:0 승리를 거두었다. 해당 경기는 이번 시즌 묀헨의 전술을 너무나도 잘 설명한 경기여서 묀헨의 팬이라면 꼭 봐야하는 경기다. 마지막으로 크라머와 슐츠가 중앙에서 끊어주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그냥 시종일관 얻어 텨지는 경기를 해야한다. 이미 언급했지만, 둘다 끊어내는 수비 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많이 뛰면서 방해하는 타입이라서, 중앙에서 괴체, 로이스, 데 브리위너와 같은 태크니션을 만나면 답이 없다.

2.7 2015-16 시즌

갓베르트
시즌 첫 경기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전에서 0:4로 완패한 것을 시작으로, 5라운드까지 5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다. 전 시즌 리그 3위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최악의 스타트. 4라운드 홈에서 함부르크 SV에게 3:0으로 털렸다. 5라운드에서는 FC 쾰른에 0:1패배 2011-12 시즌 비야레알의 전철을 밟는 것인가
이 일로 4.5년의 기간동안 글라트바흐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도르트문트의 클롭, 마인츠의 투헬과 더불어 글라트바흐의 대표감독이라 칭해지던 루시앙 파브레 감독이 자진사임을 했다.런동님?

게다가 챔피언스리그도 죽음의 조에 뽑혔고 1차전에서 리그에서 부진한 세비야에게 원정에서 3:0으로 졌는데 이 세 골 중 두 골이 페널티킥.결국 일찌감치 16강에서 탈락했다. 막판에 3위였지만 세비야가 1위를 달리던 유벤투스를 1-0으로 이기며 순위가 올라 보루시아를 승점 1점차로 제치고 3위로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내고 보루시아는 4위로 탈락, 리그에 전념하게 되었다.

루시앙 파브레가 사임한 후 2군 감독 앙드레 슈베르트가 대행감독을 임시로 맡게 되었는데 웬걸, 바인지를의 아우크스부르크를 4:2로 털어버렸다. 분데스리가 시즌 첫승 기록. 파브레와는 다른 공격적이고 활발한 전방압박이 효과를 본 듯하다.[11]
슈베르트 감독대행의 문제가 수비에 있다고는 하지만....파브레가 있던 시점에도 수비는 그말싫 수준이어서 아직은 큰 차이가 안 느껴지는듯 하다. 그래도 14/15시즌이나 11/12시즌 파브레 감독의 묀헨글라트바흐에 비하면 수비가 좀 불안한건 사실. 그리고 헤어만과 슐츠가 다시 부상을 끊어 큰타격이 왔다..

챔스4차전결과 유벤투스와 무승부를 내어서 결국 승점 2점으로 남은 경기결과에 상관없이 광탈을 확정지었다.
결국 2011-12 시즌 비야레알 행 안습..괜찮아. 강등만 안당하면 되.걱정마. 강등은 안당하니까.
그러나 분데스리가에서 초반 5연패 이후 6연승 등 8승2무로 급격한 상승세에 있다. 그리고 12월 5일 15라운드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3:1로 이기며 올시즌 분데스리가 14경기 무패를 깨트렸다. 팀 순위는 3위로 반등.

2.8 2016-17 시즌

팀의 핵심인 그라니트 자카런던으로 날아갔다.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영보이스를 1,2차전 합계 9-2로 이겼다. 분데스리가 1라운드 레버쿠젠과 맞붙어 묀헨글라드바흐가 3백으로 측면으로의 전개에서 강점을 보여주고 크라머도 탈압박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2-1 승리

그렇게 순항하나 했지만 2라운드 프라이부르크 원정에서 후반에 3골을 먹히며 역전패했다.

챔스 조별리그에서는 또 바르샤-맨시티-MG-셀틱이라는 죽음의 조가 걸렸다. 1차전 맨시티 원정에서 4:0으로 대파당하며 원정호구다운 개막전을 치뤘다.

그런데 원정호구 답지 않게 3차전 셀틱 원정에서 2:0으로 이겼다! 9개월간 고수하던 3백을 버리고 4백으로 전환한 것이 효과를 보았다.

3 선수단

2016-2017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군 스쿼드
번호 이름 영문이름 포지션 국적생년월일
1얀 좀머Yann SommerGK30px1988년 12월 17일
3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 첼시 FC에서 임대Andreas ChristensenDF30px1996년 4월 10일
4야닉 베스터가르드Jannik VestergaardDF30px1992년 8월 3일
5토비아스 스트로블Tobias StroblMF30px1990년 5월 12일
6크리스토프 크라머Christoph KramerMF30px1991년 2월 19일
7파트릭 헤어만Patrick HerrmannMF30px1991년 2월 12일
8마흐무드 다후드Mahmoud DahoudMF30px1996년 1월 1일
9요시프 드르미치Josip DrmicFW30px1992년 8월 8일
10토르강 아자르Thorgan HazardMF30px1993년 3월 29일
11라파엘RaffaelFW30px1985년 3월 28일
13라르스 슈틴들 (주장)Lars StindlMF30px1988년 8월 26일
14니코 슐츠Nico SchulzDF30px1993년 4월 1일
15마빈 슐츠Marvin SchulzMF30px1995년 1월 15일
16이브라히마 트라오레Ibrahima TraoréMF1988년 4월 21일
17오스카 벤트Oscar WendtDF30px1985년 10월 24일
19파비안 존슨Fabian JohnsonDF30px1987년 12월 11일
20지브릴 소우Djibril SowMF30px1997년 2월 6일
21토비아스 지펠Tobias SippelGK30px1988년 3월 22일
22라슬로 벤스Lászlo BénesMF30px1997년 9월 9일
23요나스 호프만Jonas HofmannMF30px1997년 2월 6일
24토니 얀치케 (부주장)Tony JantschkeDF30px1990년 4월 7일
25티모테 콜로지에자크Timothée KolodziejczakDF30px1991년 12월 1일
26치 윌리암 은뎅게Tsiy William NdengeMF30px1997년 6월 13일
27줄리안 코브Julian KorbDF30px1992년 3월 21일
28안드레 한André HahnMF30px1990년 8월 13일
29마마두 두쿠레Mamadou DoucouréDF30px1998년 5월 21일
30니코 엘베디Nico ElvediDF30px1996년 9월 30일
33크리스토퍼 하이메로트Christofer HeimerothGK30px1981년 8월 1일
35모리츠 니콜라스Moritz NicolasGK30px1997년 10월 21일
  1. 독일어 독음으로는 '보루시아 페라인 퓌어 라이베쉬붕근 노인첸-훈더러트 묀헨글라트바흐 이-파우-(Eingetragener Verein; 아인게트라게너 페라인)'이다. 한국어영어를 통해 혼합 해석을 해본다면 '보루시아 스포츠클럽 1900 묀헨글라트바흐 (법인)'이란 뜻이다.
  2. 독일어로 '망아지들'이라는 뜻이다.
  3. 2014년 7월 11일에 85번째 보루센 더비 경기가 있었다. 2016년 기준으로는 90회 정도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더비'에 대해서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증한 것으로 봐서 상업적 목적이든 어쨌든 '이 더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 그 외의 내용에 대해서는 '더비 매치' 문서 참조 바람.
  4.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1964년 개편 이후 1~4회 우승 시 별 1개(★), 5~9회 우승 시 별 2개(★★), 10~19회 우승 시에는 별 3개(★★★), 20~29회 우승 시에는 별 4개(★★★★)를 부착할 수 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함께 역대 분데스리가 우승 공동 2위(각 5회)이며, 별 2개를 부착하고 있다. 여담으로 1위는 FC 바이에른 뮌헨이다.
  5. 모두 UEFA 컵 시절에 우승한 기록이다.
  6. 연고지인 묀헨글라트바흐는 원래 '글라트바흐'였다가 같은 주의 베르기슈글라트바흐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뮌헨글라트바흐'로 개명되었고, 이후에는 다시 바이에른 주 뮌헨과도 헷갈린다는 이유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7.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글라트바흐가 셀틱 원정 경기를 치른 날, 스코틀랜드 어느 펍에서 문 앞 안내 게시판에 셀틱과 붙는 팀의 이름을 'Borussia'까지만 적고 나머지 철자가 생각이 안 났는지 A German Team이라고 적어버린 사진이 해외축구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에 올랐다. 글라트바흐 트위터 계정관리자도 재미있었는지, 영어판 계정 이름을 한동안 'A German Team'을 놔뒀다고.
  8. 당시 UEFA컵은 리그 2,3위팀이 나가는 대회로 지금보다 위상이 더 높았다.
  9. 이 때 활약한 프랑크푸르트의 선수가 바로 차범근.
  10. 리버풀 역시 1970년대 최전성기를 맞았다.
  11. 파브레 감독이 부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크루제, 크라머라는 핵심에 가까운 자원들이 이적한데 비해 대체자랍시고 데려온 드르미치, 슈틴들은 이 역할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들을 그렇게 쓰려고 했으니 잘 안먹혔을거란 생각이 든다. 또한 주축 수비수인 알바로 도밍게스 역시 부상크리였다. 아직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 슈베르트 체제에서 슈틴들은 제 옷을 입은 듯 하며, 공격전개가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