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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소재 | 경성제국대학 | 대북제국대학 |
京都大学 Kyoto University | |
분류 | 국립 |
개교 | 1897년 (메이지 30년) |
설립자 | 기노시타 히로지 (木下廣次) |
총장 | 제26대 야마기와 주이치 (山極壽一) |
국가 | 일본 |
소재 | 요시다(吉田) 캠퍼스 교토부 교토시 사쿄구 요시다혼초 우지(宇治) 캠퍼스 교토부 우지시 고카쇼 카츠라(桂) 캠퍼스 교토부 교토시 니시쿄구 교토다이가쿠카츠라 |
재학생 수 | 학부생 13,374명[1] (2016) |
교직원 수 | 5,505명 (2016) |
교색 | 짙은청색(濃青) |
웹 사이트 | 교토대학 홈페이지 |
목차
1 개요
일본 교토부 교토시 사쿄(左京)구에 있는 국립대학이다. 통칭 쿄다이(京大). 위의 사진은 교토대의 상징인 그리고 유일한 셔터 포인트인 시계탑. 1897년 개교한 두 번째 제국대학 출신. 구제 제3고등학교를 전신으로 둔다. 제국대학령으로 법학부를 먼저 설립할 예정이었으나, 이공학도들의 급증에 응해 이공학부를 먼저 설립, 이후 10년간 법학부와 의학부, 문학부가 추가되었다. 1947년 제국대학령의 폐지와 49년 학제 개혁, 92년 종합인간학부 설치와 93년 교양학부 폐지, 그리고 2004년의 국립대학 법인화 등을 거쳐 지금에 이른다.
2 캠퍼스
본 캠퍼스라 할 수 있는 요시다(吉田) 캠퍼스와 우지(宇治) 캠퍼스, 그리고 카츠라(桂) 캠퍼스로 나뉘어 있다. 다만 도쿄대학처럼 각 캠퍼스가 각각의 기능을 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요시다 캠퍼스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지 캠퍼스나 카츠라 캠퍼스는 연구소 중심.[2] 공학부는 4년차에 각 전공에 따라 우지나 카츠라로 전출된다. 각 캠퍼스의 이동은 정기 셔틀버스가 담당. 각 캠퍼스로 버스로 약 1시간이 걸리는 환상의 트라이앵글(...)을 만들고 있다.
요시다 캠퍼스는 다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본부, 북부, 서부, 남(미나미)으로 나뉜다. 본부는 공학부, 법학부, 문학부, 교육학부, 경제학부 등의 학부 건물과 유학생 센터, 시계탑 등 여러 기관과 시설이 갖춰진 메인 역할이고, 북부은 이학부, 농학부의 건물이 주로 위치하며 그라운드가 있고, 서부에는 각종 운동부의 부실이 있는 종합체육관과 吉田泉殿 [3], 학생회관 비슷한 르네, 문화계 서클들의 부실이 있는 BOX, 그리고 2012년 노벨상을 배출한 기관인 iCeMS의 건물이 위치한다. 요시다 미나미에는 종합인간학부와 각종 교양 과목 수업을 듣는 공동 건물, 11월 축제(NF)에 주로 사용되는 그라운드와 공동 컴퓨터 이용시설 등이 있다. 본부 캠퍼스의 학생식당은 북고남저의 경향이 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맛이 없다. 같은 메뉴를 같은 재료로 정해진 레시피 대로 만들 뿐인데 대체 왜...?
북부의 농학부, 이학부 캠퍼스는 중앙과는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교수나 학생들 간의 교류도 적고, 이쪽에 속한 학생들도 1~2학년 때는 교양 과목 수업 들을 때는 남쪽으로 내려가지만 이후에는 발길을 끊게 되며 별도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4] 이학부 정문에서 북쪽까지 관통하는 길은 밤 시간에도 개방되어 있어 자전거로 편하게 지나갈 수 있으며, 좌우로 은행 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어 11월 무렵이 되면[5] 멋진 단풍길이 조성된다. 물론 냄새는 감수해야 한다(...).
우지 캠퍼스는 케이한 전기철도의 우지선, JR 나라선 오바쿠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역에서 멀진 않지만 캠퍼스 자체가 넓어서 걸어다니면 좀 고생하게 된다. 본래 때묻은 콘크리트 건물에 각종 장비에서 나오는 파이프 등이 외벽에 노출되어 있는 공장 같은 느낌을 주는 캠퍼스였다. 하지만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은 꽤 괜찮은 외관을 갖추었으며 입구 쪽에 편의점도 하나 생겼다. 학생식당 시설은 요시다 캠퍼스보다 더 좋다. 물컵 크기도 다른 식당의 2배 크기이며(사실 이건 다른 식당들이 비정상적으로 작은 것이겠지만), 식당 가운데에 피아노도 놓여 있다. 누가 어느 때 연주하는지는 모르지만
카츠라 캠퍼스는 가장 최근에 완성된 캠퍼스.[6] 덕분에 시설은 상당히 좋다. 캠퍼스 자체가 산 위에 얹혀 있는 형태여서 자전거를 탄다면 이 캠퍼스에서 트레이닝도 겸할 수 있게 된다(...). 캠퍼스가 완성되고 많은 공학부 연구실들이 이쪽으로 이전을 하게 되어 이 시기 즈음에 입학한 많은 학부생들은 푸념을 하게 되었다. 특히 학교 들어와서 요시다 캠퍼스 근처에 하숙할 곳을 잡은 학생들은 2년 내지는 3년 다니고 다시 카츠라 캠퍼스 근처의 방을 알아봐야 하는 슬픈 상황도 나온다. 뭐 그쪽이 시세가 조금 더 싸니까 옮기는 참에 좀 더 좋은 방을 얻을 수 있을지도.
학생자치와 지저분함(...)으로 유명한 구 기숙사로는 요시다료와 쿠마노료가 있다. 특히 요시다료는 1914년에 지어진 100년이 넘은 건물인데 매우 지저분하다. 학생자치와 학생운동의 오랜 역사를 품은 명소이며, 외부인 숙박도 가능해서(하루 숙박비 200엔왜케 싸) 관광객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다. 학교는 안전을 이유로 철거하려 하고 학생들은 놔 두라고 시위하는데, 아직까지 무너지는 일 없이 멀쩡하게 그 자리에 있다. 오히려 철거는 고사하고 2013년에는 요시다료의 신동(신관)이 착공되어 2015년에 준공되었으며 조금 더 깨끗한(?) 시설과 편의성을 가지고 새롭게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학교 측에서는 건축된 지 100년이 넘어가는 요시다료 본관 건물에서 신관으로 이주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7] 여담으로 요시다료 바로 옆에 신동과 함께 새로 지어진 외국인 전용 남녀공용 기숙사가 있는데, 기숙사비가 더럽게 비싸서[8] 원성이 자자하다. 싸서 놔두라는건가
그리고 기숙사 특성상(?) 야밤과 새벽에 활동하는 학생들 때문에 마당의 닭응?들의 라이프 사이클이 엉망이 되어서 새벽 3시에 울어제끼는 경우도 있다. 여러모로 평범한 멘탈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관광명소(?)로는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이 요시다료를 포함한 교토 여행을 마친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 어디냐고 하면 금각사, 청수사를 제치고 요시다료를 뽑을 정도(...). 다만 어디까지나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므로 복도에서 떠든다거나 비명을 지른다거나 대놓고 사진을 찍는 일은 없도록 하자.
참고로 한국의 하드코어 펑크밴드 밤섬해적단이 일본투어 중 교토대학 기숙사에 머물렀는데, 엄청나게 더러웠다고(...).
3 학부 소개
종합인간학부, 문학부, 교육학부, 법학부, 경제학부, 이학부, 의학부, 약학부, 공학부, 농학부의 10개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의학부 외에는 모두 요시다 캠퍼스에 본거지를 두고 있고, 의학부는 별도의 부속병원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교육학부는... 어디에 있었지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학부를 부르는 속칭을 소개한다.
- 종합인간학부 総合人間学部(そうごうにんげんがくぶ;종합인간학부) → ひま総人(ひまそうじん)
종합인간학부는 ひま総人(히마소우진)이라고 부르는데, 히마는 한가함을 의미한다. 이는 한가하게 4년 내내 딱히 정해진 전문과목 없이 교양과목 비스무리한 것만 공부해서 한가하다는 데에서 유래. 사실 커리큘럼 자체가 교양학부에서 온 게 많아서 정해진 것이 거의 없다. 다만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자유전공학부'가 초기에 설정한 목표와 비슷한 개념.
- 문학부 文学部(ぶんがくぶ) → あそ文学部(あそぶんがくぶ)
문학부는 あそ文学部(아소분가쿠부)라고 불린다. 아소부는 논다는 의미. 문학부의 전문과목은 시험이나 레포트가 쉽기로 유명하다. 교수만 잘 걸리면 CCCV로 A도 받을 수 있는 모양(...) 기본적으로 서클에도 3~4학년이 현역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5학년 6학년이 존재한다...
- 교육학부 教育学部(きょういくがくぶ) → 発狂育学部(はっきょういくがくぶ)
교육학부는 発狂育学部(핫쿄우이쿠가쿠부)라고 불린다. 핫쿄우는 발광이라는 뜻. 사실 교육학부는 총인원이 적은터라 학교에서도 레어캐릭이다. 어쩌면 한명도 못 만나보고 졸업할 수도 있다(!). 교육학부생이 발광하는 일은 없지만 그냥 다른 학부들은 별명이 있고, 어로도 괜찮아서 붙은 별명. 불명예스럽다.
- 법학부 法学部(ほうがくぶ) → あ法学部(あほうがくぶ)
법학부는 あ法学部(아호우가쿠부)라고 불린다. 아호우(아호)는 바보, 멍청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법학부 학생들이 멍청이라서 붙은 이름은 아니다. 사실 교토대 인문계열에서 가장 편차치[9]가 높고 공부량이 많다. 바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도서관 같은 데 틀어박혀 바보처럼 공부하는 생활상 때문. 어느 정도냐면 학교 부속 도서관에 돌을 던지면 8할의 확률로 법대생이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 법학부가 빡센것은 여타 학부도 알아주는데 특히 학점 기준이 엄격해서 평균 84점 이상이 몇년에 1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라고 한다(교수가 점수를 일정 이상 후하게 주면 교수회의가 열려서 답안지가 그 점수에 걸맞는지 회의할 정도다. 단 주요 육법계에 한한다. 정치계는 90점 가까이도 나오는 모양).
- 경제학부 経済学部(けいざいがくぶ) → パラダイス経済学部(パラ経)ぱらだいすけいざいがくぶ(ぱらけい)
경제학부는 パラダイス経済学部(パラ経)라고 불린다.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천국). 대충 다녀도 학점은 내려오는 데다 졸업논문이 없어서 졸업도 쉽고 학점 따기도 쉬운 모양이다. [10] 개중에는 マジ経(제대로 공부하는 경제학도)라고 불리우는 학도들도 있는데, 이들은 수업도 성실히 나가며 열심히 공부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CPA 등의 자격을 공부하고 있다.
- 이학부 理学部(りがくぶ) → 就職無理学部(しゅうしょくむりがくぶ) or 恋愛無理学部(れんあいむりがくぶ)
이학부는 就職無理学部(슈쇼쿠무리가쿠부;취직무리학부) 또는 恋愛無理学部(렌아이무리가쿠부;연애무리학부)라고 부른다. 경제학부와는 상반되게 오덕률이 제일 높은 학부중의 하나인데 학부 졸업만으로는 취업이 힘들어 대부분이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또 이들은 2차원 여성에게 관심이 풍부하며 상태도(...) 연애도 무리인 모양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이학부에서는 특히 물리학과랑 수학과가 투톱으로 달리는 중인데 물리학과는 노벨상 수상자 3명, 수학과는 필즈상을 2명 배출하였다. 생물물리학부에서는 노벨 생리의학상, 화학상의 관문이라고[11] 여겨지는 래스커상 수상자를 최근에 배출하였다. 생물물리학부는 '유니크한' 연구에서 일본 국내 탑을 달리는 분야가 많은 편.
- 의학부 医学部(いがくぶ) → 怪し医学部(あやしいがくぶ)or変態学部(へんたいがくぶ)
의학부(의학과만)는 怪し医学部(아야시이가쿠부) 또는 変態学部(헨타이가쿠부) 라고 불린다. 아야시이는 수상하다는 뜻이고 헨타이는 변태라는 뜻. 센터시험 점수가 보통 90%를 넘으며, 정말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2차시험을 통과한 괴물들이 의학부 의학과에 모인다. 변태처럼 머리가 좋고, 의학부 캠퍼스는 부속병원에 붙어 있어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보낸다면 이들과 상종할 일이 거의 없어서 무슨 짓을 하는지 수상하다는 점에서 경의를 담아 이렇게 부른다. [12] 의학과 이외의 학부, 즉 인간건강과학과(간호학 등)는 교토대에서 상대적으로 편차치가 낮은 편이고 수업하는 지역도 의학부 건물이 아닌 서남쪽의 인간건강과학과 건물에서 진행되므로 그다지 관심이 적은 모양이다. 의학부에서 1960년까지 731 부대 관련자들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이 2014년 1월 뒤늦게 밝혀졌다. 뉴스 뉴스2
iPS 세포를 만들어 노벨상을 수상한 케이스나 세포에서 면역반응에 의한 세포자살을 자세히 밝혀낸 사례, 그리고 인간의 생식시원세포를 유도해 만들어내는 등 각종 세계적인 성과가 수도 없이 창출되고 있다.[13] 연구뿐만 아니라 지원도 학교 내에서 가장 엄청나서, 시설 면에서는 2010년에 8층짜리 병동이 기부에 의해 세워졌고, 2015년에도 8층짜리 '생활습관병 전문' 남쪽 병동이 세워진 상태에서 1,100병상을 돌파하였다.[14] 심지어는 2019년에 완공 될 8층짜리 병동을 현재 또 짓고 있는 중이다. iPS 세포 연구에 있어서는 담당 기관인 CiRA(iPS세포연구센터)의 2호관 건물이 2015년에 세워졌고 잇달아 3호관을 착공하여 2017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하고 있다. 제약회사와 함께 콜라보 연구를 하는 의학 연구 프로젝트인 'MIC(의료혁신센터)' 건물이 2014년에 CiRA 본관 뒤에 준공되기도 했다. 서남쪽에 몰려있는 병원 지구는 그야말로 공사판. 당연히 투입되는 세간 및 정부 재정도 어마어마하다.
- 약학부 薬学部(やくがくぶ) → 脇薬学部(わきやくがくぶ)
약학부는 脇薬学部(와키야쿠가쿠부)라고 불린다. 와키야쿠는 조연이라는 뜻. 의학부 캠퍼스와 병원 그리고 재생의학계 캠퍼스 사이에 말 그대로 끼어있다. 물론 일본에서는 약대가 상대적으로 들어가기 쉬움에도 불구하고[15] 교토대 버프를 받고 있어 입학 난이도를 보여준다. 따라서 의학부에 버금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으나 건물 수도 본관과 종합연구동으로 적고 실적도 많지 않았던 편이라 많이 가려져 있던 학부. 하지만 최근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속 건물 공사를 착공하였다.
- 공학부 工学部(こうがくぶ) → おと工学部(おとこうがくぶ)
공학부는 おと工学部(오토코우가쿠부). 남자(오토코)에서 따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대에는 여학생이 별로 없다. 사실 이건 어느 나라나 그래요 한 반에 1~2명 꼴로 있는 모양.
공학도들의 대부분은 4년차에 연구를 위해 카츠라나 우지캠퍼스로 전출된다.(드물게 요시다 본캠퍼스에 남는 학생도 있다) 우지는 우주공학계열이라 대부분은 카츠라로 되는데, 카츠라캠퍼스의 이상한 남학생 밀도에 아연실색한 학생들이 카츠라남자공업대학(桂男子工業大学)이라는 멋진 속칭을 붙여놨다.(눈물난다)
- 농학부 農学部(のうがくぶ) → 無能学部(むのうがくぶ)
농학부는 無能学部(무노우가쿠부)라고 불린다. 무노우는 무능하다는 뜻. 이공계에서 딱히 특출난 느낌이 없고 농학부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붙은 모양이다.[16] 이에 분개하는 농학부생들은 有能学部(ゆうのうがくぶ; 유능학부)라는 이름으로 대항하고 있지만 메이저한 별칭은 아닌 모양. 여담으로 地域環境工学科(ちいきかんきょうこうがくか;지역환경공학과) 학생들은 학과의 앞머리를 따서 ちかん(치한)이라고 불린다.
- ■ 연구시설
- ○ 기초 물리학연구소(혹은 "유카와 이론물리연구소")
- ○ 시라하마 해양수족관
- ○ 영장류연구소
- ○ 수리해석연구소
- ○ iPS 세포연구소
4 총장
4.1 마츠모토 총장과 대학 개혁
2008년에 취임한 제 25대 총장인 마츠모토 히로시 (松本 紘) 총장은 같은 대학 공학부 출신으로서 교토대학의 법인화에 따른 최근의 침체에 대항하기 위해 구조개혁을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국립대학들이 2004년에 법인화 되면서 정부가 국립대 들에게 주는 교부금이 매년 1%씩 삭감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교수들에게 줄 월급이 부족하게 되었고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게 되자 총장이 2011년 즈음부터 갑자기 '기능강화 플랜'을 발표하면서 교토대학 자체를 개혁해야한다는 소리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012년 11월, 급기야 학부 중에 가장 최근에 신설되었으며(1992년) 뚜렷한 학문적인 스텐스가 없다고 평가되는(그렇게 주장하는) 종합인간학부를 해체하고 '국제고등교육원'을 신설한 후 기존의 교수들은 그곳에서 간단한 기초 교양 강의를 맡게 하고, 소속을 변경하며, 거기에 추가로 전체 교양강의 중 절반을 영어로 실시하며, 이를 2013년 4월부터 바로 시행토록 실시한다는 안을 발표했다.
이에 소속 교수들은 엄청나게 반발했다.
강한 반발 덕분에 일단은 그러한 제안 자체는 각하되었지만(실제로도 입시요강을 확인해보면 향후 3년간은 바뀔 일이 없어보인다), 애초에 문학부 쪽에 대해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어 비판이 많았던 와중에 이러한 밀어붙이기 식의 개혁을 강행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공학부 출신의 총장이 문과계의 학부를 말살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외의 개혁으로는 9월 학기로 변경하도록 실시하려는 것을 추진하고 있고(9월 학기제), 실제로도 2020년 안에 실시하기로 계획을 잡고 있다.
4.2 신임 야마기와 총장
2014년 10월 제 26대 총장으로 야마기와 쥬이치(山極寿一) 이학부 교수가 선출되었다. [17] 그가 총장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이학부와 이학연구과의 학장 (2011년-2013년)을 한 이력이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26대 총장 선출 투표가 한창이던 2014년 여름, 다음과 같은 벽보가 캠퍼스 곳곳에 붙여졌다. 요약하면, "고릴라 연구의 권위적인 연구자, 연구리더로서 그를 총장으로 선출한다면 영장류계의 저명한 리더를 한 명 잃게 되는 것이니 그에게 투표를 하지 말아 달라." 야후 뉴스와 공중파 뉴스에 이 사건이 보도가 되고 이슈가 된 후 결국 야마기와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18]
야마기와 쥬이치는 '교토대학의 본성을 되찾고 이어간다'는 취지를 내 걸고, 2020년까지 6년간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는 먼저 문부과학성의 인문계열 학부 축소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동문 호소노 고시 민주당 정책조사회장의 글 이 지시를 내린 시모무라 하쿠분 장관은 기미가요 제창 요구와 더불어 국립대학 총장들, 일반 대중에게 엄청나게 까이고 있는 중.[19] 전임 마츠모토 총장과는 정반대로 학생과의 소통을 중시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교토대학의 강점인 '뛰어난 연구'를 기치로 내걸고 직무를 시작하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대학 홈페이지의 메인화면인데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것은 총장의 얼굴도, 학교 시설도 아닌 학생들과 각 연구실에서 발표한 연구실적이다.
5 위상과 학풍
교토대학은 예부터 자유로운 학풍으로 알려져있다. 매년 동상이 바뀌는 비운의 오리타선생님(折田先生像)[20]이나 코스프레 졸업식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학풍의 자유로움에 취해 유급율이 높은 것(...)이 특징. 종합인간학부의 경우 전공을 못 찾고 갈팡질팡하다가 유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이런 학풍 덕분인지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 박사[21]를 비롯해 줄기세포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까지[22]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 아시아 지역 대학에서는 도쿄대학과 더불어 2016년 기준 각각 10명씩의,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냈다.
그렇기에 "에이, 설마 노벨상 수상자도 그렇게 많이 배출한 학교에서 폐인이 그렇게 쏟아지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폐인 많다. '100명의 우수한 학생을 입학시켜, 1명의 천재와 99명의 폐인을 양성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당장 요시다 기숙사에만 가 봐도 1년 내내 마작에 미쳐사는 인간들이 "졸업? 그거 먹는건가염?"하며 마작 테이블을 점령하고 있다.(...) 신만이 아는 세계로 히트친 작가 와카키 타미키도 이 대학 입학자. 참고로 이 인간은 30대 중반까지 니트질했다. 여기엔 교토대 특유의 자유분방한 학풍의 영향이 크다. 즉, 실패를 허용해줘 크게 성공하는 대기만성형 인재도 나오지만 걍 실패로 끝나는 인간도 많다는게 함정. 간섭안할테니 책임은 니가 지는걸로
관서에 있는 대학 중에선 제일 학점을 따기 쉬운 대학에 속한다. 교토대학의 유급률은 엄청날 정도이다. 다만 여기서 '학점을 따기 쉽다' 라는 것은 최소 합격 평점인 '可'(수우미양가의 그 가 맞다)는 웬만하면 준다는 뜻이며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준다는 可를 거부하는 놈들이 넘쳐나서 문제지 점수 나쁠 거 아는데 不受験 받고 말지
하지만 일본 내에서 알아줄만한 연구 환경을 갖춘 학교임에는 틀림없다. 국립대에 할당되는 국가 1년 예산 중 대부분을 도쿄대와 교토대에서 가져가며, 교토대는 당장 그 효과를 알 수 없는 기초 과학 연구가 중심이지만 꾸준한 홍보와 노벨상 수상 버프로 여기저기서 연구 자금을 모아온다. 덕분에 돈 없어서 실험 장비를 못 갖추거나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공대생이라면 알 것이다. 실험이 얼마나 돈이 드는 일인지!
학교 자체는 여전히 좌익적인 성향이 강하다. 문과계의 경우, 법학부는 전체적으로 우익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이것은 동경대 법학부가 좌익적인 성향이 있어서라카더라), 다른 학부들은 좌익적인 성향을 띤다. 2000년대에도 혁명마르크스파 학생이 중핵파 학생에게 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단 2010년대 들어선 유혈사태나 과격사태는 없지만 여전히 전국학생연합이 정력적으로 활동 중이다. 매일 점심 시간마다 요시다 캠퍼스 남부에서 시끄럽게 연설도 하고, 가끔 강의 시작하기 전에 강의실에 들어와서 연설하다가 강의하러 들어온 교수와 마찰을 빚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운동에 관심 없는 학생들은 우이독경(...)식으로 흘려보낸다.한국대학이랑 비슷하군 쩝 교토가 아무리 일본공산당이 나름 선전하는 곳이라고는 해도 그 파워가 어디서 나오는지 의문일 정도. 좌파 성향의 교수들을 등에 업고 있어서 학생회 등에서도 함부로 배제를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사실은 불투명하다.
6 한국에서의 지명도 및 유학 관련
사실 일본내 위상에 비해선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중 하나이다. 한국에선 인서울대학지상주의 때문인지, 도쿄대만 유명하고 그외엔 와세다대, 게이오기주쿠대학 정도가 한국 대중들에겐 그나마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겐 그냥 지잡대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나고야 대학에서 노벨상이 나왔을때 "지방대에서 노벨상이 나왔다!"며 난리를 치던 것만 봐도 알만하다. 도쿄대 다음, '소케이'가 공식 서열인 줄로 알고 있는 경우도 대다수.[23] 다만 학계(특히 문학과 자연과학)에서는 한국에서도 상당히 알아주는 대학으로, 교토대학에서 문학박사나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은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이러한 저인지도의 내면엔 경제학부, 약학부, 공학부 그리고 농학부만이 외국인 유학생 특별전형[24]으로 외국인을 우대선발하고, 나머지 학부, 학과는 센터시험과 본고사로만 학생을 받기 때문인 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토에 있는 다른 대학인 리츠메이칸 대학 혹은 도시샤 대학과 같은 사립대들이 유학생을 끌어오려고 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이는 라이벌인 도쿄대가 전 학부를 외국인 유학생 특별전형으로 모집하는 것과도 대조된다.
일본 국적자가 아닌 경우에도 센터시험을 치거나 교수회 특례로 입학하는 방법은 있지만, 외국인으로서 센터시험과 본고사를 통과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입학하는 사람은 희소하다. 외국인을 잘 받지 않는 법학부의 경우 매년 5명 전후로 외국인 입학자가 있다.[25]
공학부와 농학부만이 매년 100명씩 추천하는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에 응시해서 6~15등 정도의 성적[26]을 거두면 입학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 지원인원 감소와 합격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수준의 상대적 저하로 인해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에 합격해도 EJU나 자체 수학 시험을 통과해야지 입학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인문계, 상경계 학부등의 문과 계열이나, 의학부, 약학부 그리고 이학부 등의 나머지 이공계열 학부들은 이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을 통해 입학할 수 없다.
다만 유학생 자체는 많은 학교다. 한국인도 찾아보면 도처에 숨어있으며 중국인은 그 압도적인 수와 뭉치는 성향으로 군단을 이루고 다닌다. 그 외에도 많은 나라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을 지나다닌다.
대학원 입학에 있어서는, 각 연구과에서 시행하고 있는 '외국인 특별 전형'이 있다면 그 전형으로 비교적 쉽게 입학할 수 있다. 그런 전형이 존재하지 않는 연구과라도 대부분의 경우 석사과정 입학 경쟁률이 1.5:1 수준이거나 미달인 경우가 많고, 박사과정은 지도교수와의 컨택만 잘되면 거의 무조건 입학이 가능하다. 단, 의학연구과 의과학 석사과정의 경우 그러한 우대제도가 없으며, 심지어 경쟁률이 3:1 수준으로[27] 일본인과 동등하게 영어 및 세포생물학, 의학 등 의과학 지식에 대한 시험을 쳐야 입학할 수 있다.
7 창작물 관련
서브컬쳐에서 에로만화가 코우메 케이토[28], 야마모토 유타카, 코우사키 사토루[29] 등을 배출하고 있다. 이것은 교토대에 와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아마도 제일 편차치가 높고 오타쿠가 많은 학교가 아닐까 싶다. 앞서 설명한대로 이학부가 제일 심하다.
애니메이션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30] 등에서 교토대학의 생활이 소개되고, 주류에서는 카모가와 호르모 등 창작계열에서 소재로 다뤄지는 경우는 많지만, 동경대에 비하면 적은 편. 대학 자체가 소재로 나온 작품은 동경대학 이야기 말고는 찾기 힘들거 같다. (드래곤사쿠라이나 러브히나도 있다.) 맛이 나간 천재는 교토대학 출신 설정이 많고, 단정한 엘리트는 동경대학 출신인 설정이 많다.
동방프로젝트 비봉클럽의 우사미 렌코와 마에리베리 한이 교토대 학생이다. 다만 설정이 근미래인지라 렌코가 다니는 물리학부와 메리가 다니는 정신과학부는 현재 교토대학의 학제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마 물리학부는 이학부 물리학·우주물리학계, 정신과학부는 문학부 행동·환경문화학계에 해당한다고 보면 무난할듯 싶다.
탐정 갈릴레오의 드라마판의 유카와 마나부 교수가 있는 제도대학의 무대이기도 하다. 엔딩롤을 보면 교토대학에서 로케했다고 한다.[31] 유카와 교수 이름 자체가 상술된 노벨상을 수상한 이론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에서 따왔다.
8 기괴한 축제 테마
교토대는 학교 축제 테마를 기괴하게 정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역사와 전통은 아래와 같다. 사실 전후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축제 테마는 축제라기보다는 사실상의 대규모 반전평화 집회였으며 상당히 진중했다.
다만 1980년을 기점으로 학내 좌익의 목소리가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축제 테마가 기이해지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맛이 가기 시작한 때는 진지했던 이전까지의 주제와는 달리 피-피-햐라라 피-햐라라 척 봐도 뭔가 이상해진 게 느껴지는 1982년부터.
1959년 제1회 - 전후파의식(戦後派意識)의 해명
1960년 제2회 - 독점자본주의사회에 있어 마조히즘과 사디즘의 의식
1961년 제3회 - 졸음의 계절에 있어 우리의 인사
1962년 제4회 - 고향상실의 시대와 우리들
1963년 제5회 - 뭘 먹을 땐 말을 생각하지 마라
1964년 제6회 - 아아, 자연사(自然死) - 이 내추럴한 것
1965년 제7회 - 새로운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다가오는 폭풍, 해신의 목소리를 뛰어넘어, 진실을 찾는다. 함께 생각하며 전진하자 진정한 학문문화를 추구하며
1966년 제8회 - 청년이여, 그 눈망울로 진실을 보라
1967년 제9회 - 뿌리자, 대학에 새로운 씨앗을. 쌓아가자 인류의 지혜. 울려라 드높은 창조의 뿔피리. 밀려드는 전화(戰火)의 폭풍을 날려버려라 나아가라 다져라 반전자유의 길
1968년 제10회 - 사색에서 연대로! 종장. 영결의 아침 - B52. 그대들의 조국 70년 6월 23일. 벗이여, 그대와 일본해방의 날은 가깝다
1969년 제11회 - 스스로의 손으로 새로운 대학의 창조를, 교토대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그리고 연대를, 일본의 새 아침을 향해……
1970년 제12회 - 역사의 시련에 응하려 하는 우리들. 잃어버린 격류 속에서 과학자의 눈을! 거짓의 고고함에 이별을 고하라. 인민의 연대에 숨을 불어넣자. 그대의 그 날쌔고 사나운 팔로
1971년 제13회 - 어둠을 찢고 불타오르는 봉화. 주시하라! 지금 이 때, 허식에 가득찬 성곽이 모습을 나타냈다. 분쇄하라! 벗이여,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아……
1972년 제14회 - 폭풍우를 뚫고 불타번지는 변혁의 불꽃 역사에 묻고자 하는 우리 갈고 닦아라! 이성의 눈 살아있는 사고, 만들자! 새로운 대학 그리고 새로운 과학
1973년 제15회 - 창조의 불을! 연대의 고리를! 지금이야말로 그대의 손에 반전ㆍ자유의 노래
1974년 제16회 - 지금 모순 속에서 외침이 ─ 자, 자네는 어쩔 것인가. 인류부재의 위기적 현실. 그 근원과 배경
1975년 제17회 - 흐름 속. 움직이지 않는 것을 찾아
1976년 제18회 - 불태우자! 새로운 문화의 불꽃을. 갈고닦자! 젊은 지성을. 학술문화의 격류여 쌓아가라! 젊은이의 미래를!
1977년 제19회 -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 미래를 믿고 돌진하라. 만들어라, 학생의 마을을. 쌓아라, 학생의 문화를
1978년 제20회 - 뒤바꿔라,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자, 청년의 미래를. 되돌리지 마라, 역사의 수레바퀴.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손으로
1979년 제21회 - 지금 새로운 시대를 향하는 동료들이여. 수백 년을 내포한 사상을 가져보지 않겠는가
1980년 제22회 - 벗이여! 이 변혁의 때. 시대의 태동에 귀를 귀울여 함께 연주하자 희망의 교향악을
1981년 제23회 - 지금, 전쟁과 평화의 대립하는 때. 80년대의 갈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우리 손에
1982년 제24회 - 풀뿌리도, 꽃도 피면 무릎꿇고 손마주쳐 기도하며 목메어 운다 사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피-피-햐라라 피-햐라라
1983년 제25회 - 만성일경, 극제색, 시끌벅적 않는 백성에게, 재미없음
1984년 제26회 - 바다를, 거친 바다를 바라보던 그녀는 중얼거렸다 "나는 누구?"
1987년 제29회 - 흰 유방 위의 11월
1988년 제30회 - 뒤에서 들여다보면 보인다.
1989년 제31회 - 타락으로의 유혹.
1990년 제32회 - ....그리고 창조 - 풀뿌리에서 태어나는 르네상스.
1991년 제33회 - 하면 발광, 안 하면 비겁.
1992년 제34회 - 다른 사람들이 오른쪽이라면 나는 왼쪽.
1993년 제35회 - 꽃도 열매도 있다, 뿌리도 잎도 없다
1995년 제37회 - 나는 교토대생이로소다. 이성은 더 이상 없다.[32]
1996년 제38회 - 지성과 우매함의 융합
1997년 제39회 - 미치는 것은 한 때의 수치, 미치지 않는 것은 평생의 수치. [33]
1998년 제40회 - 타락의 길도 한 걸음부터.
1999년 제41회 - 멋진 쓸데없는 에너지.
2000년 제42회 - 무인도 댄스.
2001년 제43회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2002년 제44회 - 총장! 쿄토를 점거했습니다!
2003년 제45회 - 역시 쿄토대.
2004년 제46회 - 넘어질 때는 앞으로.
2005년 제47회 - 모처럼이니까.
2006년 제48회 - 흘러넘치는 재능의 낭비.
2007년 제49회 - 만끽! 모라토리엄
2008년 제50회 - 학점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서
2009년 제51회 - 잃어버린 상식 대신에
2010년 제52회 - 분류할 수 없는 낭비가 있다
2011년 제53회 - 1년에 한번하는 발전계획
2012년 제54회 - NF, 출석점 있나 말입니다?
2013년 제55회 - 교토대를 되찾는다. 대학의 이상,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은, 학생입니다.
2014년 제56회 - 「 」[34]
2015년 제57회 - 이 바보... 내가 옆에 있잖아!
2016년 제58회 - ぽきたw 魔剤ンゴ!? ありえん良さみが深いw 京大からのNFで優勝せえへん? そり!そりすぎてソリになったw や、漏れのモタクと化したことのNASA✋ そりでわ、無限に練りをしまつ ぽやしみ〜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별로 재미는 없다고 한다. 테마만 특이하고 재미는 없다고 소문난 서울대학교 축제와 비슷한 느낌. 진중한 분위기를 걷어내도 안 되다니
9 기타
매년 졸업식 때 학생들이 작정하고 코스프레 복장으로 졸업식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영상을 보면 치타맨과 샤아 아즈나블도 있다! 1996년 졸업식. 역시 비범하다.(...)
또한 학교 문화제때도 작정하고 코스프레 차림으로 단체로 춤을 추기도 한다.[35] 그것도 메인 교정에서!
일본에서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달하던 60년대, 도쿄대학의 야스다 강당 점거사건과 비슷하게 1968년 청년의사연합 교토대 지부가 주도한 의대 대학원 입시 거부에 참여하지 않은 수험생들이 청의련 멤버에게 폭행당한 이른바 청의련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다행히 도쿄대학과 같은 입시중단 사태는 없었다.
2011년 3월 초, 학부 입학 시험을 치루는 수험생이 휴대 전화로 영어 및 수학 시험 문제를 야후 게시판에 질문하고, 누군가 이에 대해 정답을 올려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외에도 여러 대학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했으나, 아무래도 지명도가 높았던 교토 대학이 가장 여론의 뭇매를 많이 맞았다. 시험을 치루는 동안 약 20분마다 한 문제 씩, 2~3개의 오타를 제외하고는 수식까지 정확히 올라왔기 때문에 문제가 사전 유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돌았으나, 대략 1주일 후 잡힌 범인(재수생이었음)을 조사한 결과, 실제로 모든 문제를 핸드폰으로 입력하여 전송하는 능력자였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국립대학 중 최초로 민족학교(조선학교, 화교학교) 졸업생의 입학을 허용했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절 둘밖에 안 되는 일본 학내 조선인 박사인 이태규 선생과 리승기 선생이 교토제국대학 출신이다.
2016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도쿄대학을 제치고 일본 1위에 올랐다.
10 유명 출신인물
10.1 한국인
- 리승기 : 공학부 공업화학과. 교토제대 조교수. 해방 후 귀국하여 서울공대 학장을 지내다가 6.25 전쟁중 월북해서 섬유 연구를 했다.
- 송몽규 : 문학부 사학과. 독립운동가였다. 윤동주 시인의 사촌.
- 양진석 : 대학원 석사 및 박사수료. 러브하우스에 출연했던 건축가 겸 가수(...)
- 이태규 : 이학부 화학과. 교토제대 조교수로 임용되었다가 전쟁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동국대 장경학 교수(법학부 37학번)의 회고록에 보면 그 당시의 학창생활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 최현배 : 교육학부. 호 외솔. 국어학자로 철저한 한글전용론자로 유명하다.
10.2 일본인
- 구로다 가쓰히로 : 경제학부 60학번. 극우파 논객으로 한국에서 알려져 있다. 2012년 주간조선에 자신이 다닌 교토대학을 거하게 빠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 노요리 료지 : 200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 도네가와 스스무 : 이학부 화학과 학사. 198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 모리미 토미히코 : 응용생명과학 학사, 농학연구과 석사 수료. 소설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등의 작가.
- 아카사키 이사무 : 이학부 화학과. 201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야마모토 유타카 : 문학부 학사. 야마칸. 항목참조.
- 와카키 타미키 : 문학부 철학과 학사. 와카키 타미키. 항목참조. 만화가, 신만이 아는 세계.작가
- 우지하라 후미노리 : 법학부 95학번. 유명 코미디언으로, '이상적인 가정교사' 남자 랭킹 1위를 한 개그 콤비 '로잔'에 속해 있다. 1976년생으로 일본 멘사 회원이다. 고등학교도 명문고인 오사카교육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본인이 방송에서 말하길, 코미디언 데뷔 초기에는 가족에게 숨기고 활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월에 아버지가 TV를 보다가 우지하라 본인이 훈도시 한 장 걸치고 방송에 나온 걸 보고 자백했는데, 9년 걸려서 졸업한 끝에 아버지가 코미디언 활동을 허락했다고. 고교 시절 교토대 전국 모의고사 2등을 한 적이 있어서 입시학원 전 수업+모의고사 무료 쿠폰을 받았다고도 하는 인물. 그래서 우지하라는 명색이 코미디언인데 전국 방송에서 코미디 프로그램보다는 교양, 퀴즈 프로그램에 훨씬 많이 나온다(...). 물론 간사이 지방에서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더 많이 나오긴 하지만 콤비로서의 수상실적이 안습한데, 동기들이 다 받는다는 코미디 관련 상은 못 받고 교육 관련 상만 받았다(...).
- 유카와 히데키 : 이학부 물리학과. 194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 이시이 시로 : 의학부 수석졸업.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은 731부대 사령관.
- 이케다 하야토 : 법학부 학사. 58~60대 내각총리대신
- 토모나가 신이치로 : 이학부 물리학과.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후쿠이 겐이치 : 공학부 공업화학과 학사 및 대학원 박사졸업. 198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10.3 가상인물
11 찾아가는 길
- 요시다 캠퍼스 - 케이한 전기철도 오토선(케이한 본선과 직결)&에이잔 전철 에이잔 본선 데마치야나기역, 206계통 버스 쿄다이세이몬마에 정류장, 햐쿠만벤 정류장
- 우지 캠퍼스 - JR 니시니혼 나라선&케이한 전기철도 우지선 오바쿠역
- 카츠라 캠퍼스 - 한큐 교토 본선 카츠라역에서 시내버스로 15분
- ↑ 외국인학생 235명 포함
- ↑ 그러니까 공학계열 연구소가 중심이다. 따라서 성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
- ↑ 2007년에 개설된 각 캠퍼스의 연구소의 미팅 장소. 미팅 장소라고 해도 들어가보면 고풍스러운 일본 가옥의 형태를 띄고 있다.
- ↑ 물론 전혀 안 가는 것은 아니고 교양수업을 위해 3학년 때까지 본부로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4학년에는 취업준비와 함께 졸업연구 과목을 실험실에 소속되어 듣게 되므로 갈 일이 없다. 게다가 5학년이 유달리 많은 이학부 아닌가.
- ↑ 교토는 한국에 비해 단풍이 늦게 드는 편이라 10월 하순~11월 즈음이 단풍 드는 시기다.
- ↑ 리모델링 기준으로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지나 캠퍼스가 생긴 날짜는 카츠라가 가장 최근이다.
- ↑ 이것도 이유가 있는데, 교토대학이 위치한 교토시 사쿄구 자체가 지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활단층 위에 있다는 것이 예전에 밝혀졌기 떄문이다. 물론 교토라서 유감 지진 자체가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 ↑ 기존 외국인 기숙사가 1달 12,000엔 수준이라면, 새로 지은 기숙사는 5만엔 가까이가 다달이 든다.
- ↑ 한국으로 치면 등급 정도 되는 개념이다.
- ↑ 사실 구 제국대 경제학부 중에서 역사가 깊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위상이 밀린다.
- ↑ 수상자의 약 50%가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 ↑ 같은 강의실에 계속 앉아서 여러 교수님이 돌아가면서 가르치는 것은 결국 똑같다. 실습할 때는 다른 건물로 이동하기도 하지만... 이론은 B동의 4층의 대형 강당 혹은 기념강당에서 주로 수업한다.
- ↑ 2016년 기준 교토대학 홈페이지의 메인 페이지에는 학내의 주요 연구성과만을 모아 하나씩 게재하여 주고 있는데, 의학연구과에서 나온 정말 굵직굵직한 게재 논문이 거의 매주 갱신되고 있다.
- ↑ 한국의 주요대형병원, 예를 들어, 서울시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병원의 1,700병상이나 서울성모병원의 1,300병상과 비교해서는 적어보일지 모르나, 교토시는 고작 인구 147만명의 지방도시이다!
- ↑ 약대가 설치된 대학이 너무 많아 약사로서의 메리트가 그다지 많지가 않다.
- ↑ 물론 농학부가 약한 건 아니다. 입결에서 농학부 일부 학과는 웬만한 과를 앞선다.
- ↑ 교토대학 이학부 75학번으로서 고릴라와 영장류 연구의 권위자이다.
- ↑ 참고로 1차 후보자 중 2명만 참가한 결선 투표의 경쟁자는 의학연구과에서 오랫동안 지지를 받아 왔던 미나토 (湊 長博) 학장. 이 분도 꽤 저명한 인사로 PD-1이라는 면역학 계에서 중요한 물질의 역할을 밝혀낸 것으로 유명한 연구자이다.
- ↑ 시모무라 하쿠분은 와세다대학 교육학부 학사 출신이지만, 교육관료가 아니다. 내각제 하에서 전문성 없는 장관들이 보임되고 실무는 내부승진한 차관이 맡다 보니 이런 식으로 현장을 모르는 병크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 ↑ 실제 오리타 선생상은 박물관에 들어가 있다. 2010년에는 포켓몬스터의 타케시였다. 그 참상.
- ↑ 1949년 물리학상. 교토대학에는 유카와 기념관이 있다.
- ↑ 사실 고베대학 의학부 졸업생으로서, 쥐를 이용한 iPS 세포의 유도제작까지는 교토대학과 연관이 없고 NAIST에서 했다. 이후 인간 세포를 이용한 iPS 세포의 유도제작은 교토대학으로 이직한 뒤에 이루어졌다.
- ↑ 물론 21세기 들어서 와세다와 게이오 대학의 입학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간건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은 국립이 대세다. 이과면 더욱...
- ↑ EJU와 면접 등.
- ↑ http://kyodai.jp/shokai/s_kirokuandtoukei_07.html 에서 교토대 법학부 과거 외국인 학생수를 살펴볼 수 있다. 기록은 헤이세이 7년(1995년)부터.
- ↑ 도쿄공업대학과 비슷한 석차
- ↑ iPS 세포연구센터에 소속되려는 학생이 많은데다가, 90년대 신설된 과정으로 입학 정원도 고작 20명이어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그나마 2000년대 후반의 6:1에서 많이 낮아진 상황. 일본인들도 무수히 떨어져 나가는데 외국인 우대 같은게 있을리가.
- ↑ 꽃가루 소녀 주의보
- ↑ 아이돌 마스터 작곡가
- ↑ 애초에 원작자인 모리미 토미히코도 이 학교 출신이고, 작가가 쓴 대부분의 소설의 배경 역시 교토다. 작가가 말하길 아버지가 교토대엔 이상한 놈들이 잔뜩 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이 학교로 가기로 했다고.(...)
- ↑ 근데 사실 다른 지역 찍고 교토대 시계탑만 합성한거다. 교토대에 촬영할 만큼 건물이 예쁜 곳이 별로 없어서.(...)
- ↑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첫 구절의 패러디.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는 교토대와는 라이벌인 도쿄대학 출신이다. 어?
- ↑ 질문하는 것은 잠시의 수치, 질문하지 않는 것(모르는 것)은 평생의 수치라는 말의 패러디.
- ↑ 오타가 아니고 정말로 공백이다.(...)
- ↑ 영상에 나온 캐릭터들은 도검난무-ONLINE-의 캐릭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