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민족의 역사 TÜRKLERİN TARİH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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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 |||||
위구르 제국 | |||||
거란 | 실위 |
괵튀르크 카간국 Göktürk Kağanlığı | |
국기 | |
돌궐 제국 전성기 | |
공식명칭 | 突厥 |
위치 | 현재의 남시베리아, 외몽골 및 내몽골 고원, 중앙아시아 일대 |
인구 | - |
수도 | Ordu-Baliq |
정치체제 | 군주정 |
국가원수 | 大可汗 |
언어 | 고대 튀르크어 |
종족 | 돌궐족, 위구르족, 유고족 |
종교 | 텡그리교 |
존속기간 | 551년 ~ 747년 |
성립 이전 | 유연 |
1 개요
6~8세기에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스텝 지대를 호령했던 북방민족. 몽골에서 쫓겨난 이후 끊임없이 서진하여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족이 되었고 오스만 제국을 세워 현재의 터키(튀르키예) 공화국으로 계승되기에 이른다.라고 알려져있으나 사실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돌궐과 터키는 관계가 희박하다. 현재 터키인의 혈통은 그리스인, 페르시아인들과 유사하고 터키에 이주한 튀르크계 부족들은 돌궐이 아닌 돌궐에 적대적인 토구즈 오구즈에 속한 부족이었다. 물론 현재는 그 토구즈 오구즈의 혈통 역시 희박하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후예라고 칭하기도 애매한 것이 터키는 자신들이 유럽이라고 주장하며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싶어하며, 또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하는 터키의 현실을 보면(...) 돌궐의 계승자는 중앙아시아의 여러 스탄돌림 나라들.[1]
다만 터키가 1,000년전 돌궐의 문화와 혈통을 온전히 간직한 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역사라는 게 그렇게 보면 대한민국조차도 순수하게 1,000년 전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와 혈통을 온전히 승계한 건 아니듯이 오늘날의 중앙아시아및 터키가 튀르크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은 것도 사실이기도 하다.
2 명칭
흔히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인들의 기록(주서)에 의한 음차표기로는 突厥(돌궐).
터키어로는 Göktürk Kağanlığı(괵튀르크 카안르으). 돌궐 비문을 직역하자면 괵튀르크 칸국(汗國) 정도가 된다. 즉, 돌궐인들이 쓰던 명칭은 괵튀르크(Göktürk)이고 돌궐은 튀르크의 가차이다. 괵튀르크는 천상의 튀르크라는 뜻으로, 고대 튀르크 언어에서 Gök 은 하늘,파란색이 기본 의미였고 또한 '동쪽'이라는 의미와도 연결되었다고 보인다. 따라서 괵튀르크는 곧 동돌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참조
흔히들 원어민 발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투르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튀르크'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실제 발음도 '튀르크'가 türk에 훨씬 가깝다. 왜냐면 ü는 실제로 y 발음이고 ㅟ도 또한 과거에는 y발음이었고, 현재도 y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공식적인 'ㅟ'의 표준 발음은 여전히 y 발음이다. wi나 ɥi가 있지만 복수로 인정하는 발음일 뿐이다. 하지만 본 문서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돌궐이란 말을 사용한다.
3 역사
튀르크는 원래 알타이산 동쪽에서 살던 몽골계의 유목민족이었다. 유연 휘하에 속하여 야금업에 종사하던 집단이었는데, 부민 카안(Bumin Kağan) 시절 독립한 후 유연을 멸망시키고 초원의 패자가 되었다.
이후 돌궐은 동,서로 분열되는데 동돌궐은 중원의 왕조들과 대립했고 서돌궐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여 에프탈이나 사산 왕조와 대결했으며 카스피해와 흑해까지 나아가 바다를 접하게 되었다.
동서 돌궐의 영역을 모두 합치면 흑해에서 내몽골에 이르는 실로 광활한 영토였다.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를 쓴 르네 그루세의 말에 의하면 만약 그들이 단결할 수만 있었다면, 돌궐제국은 천하무적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했을 정도.
돌궐의 4대 카간이었던 타스파르 카간(타발가한)은 조공을 바치는 북주와 북제를 두고 '내가 남쪽의 두 아이를 효순하게만 하면 어찌 물자가 없음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2]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다.
돌궐은 중원 제국과 대립하다가 수문제의 이간책으로 인해 동돌궐과 서돌궐이 대립하게 되고 야미 카안(Yami Kağan, 중국명은 계민가한) 치세 때 수나라에 일시적으로 굴복했다. 하지만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성과 없는 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소모하고 내란으로 붕괴되자, 그 틈을 노려 수나라의 복속에서 벗어나 다시 세력을 길러 중원의 쟁패전에 개입하여 군벌들을 후원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한 때, 당나라를 세운 이세민도 돌궐의 도움을 받아 장안으로 진격하기도 했었다.
수말의 혼란 시기에 돌궐은 약 40만의 대군을 거느렸고, 그들의 힘을 빌어 중원의 황제가 되려고 돌궐로 찾아가는 한족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서기 630년, 동돌궐은 당의 명장 이정이 이끄는 10만 대군의 기습을 받아 멸망당했고, 서돌궐도 소정방의 지휘로 657년에 당에 정복당한다.
후에 당에 지배당한 돌궐은 683년 무렵에 쿠틀루크 카안(Kutluk Kağan)(혹은 일테리시 카안(İlteriş Kağan))이 중심이 되어 무장 봉기를 일으켜 독립하는데, 이를 후돌궐 제국 또는 돌궐 제2제국이라고 한다. 이 독립 과정에서 고문간이 지휘하는 고구려 유민들이 돌궐에 협력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을 바탕으로 이인화가 초원의 향기라는 역사소설을 쓴 적이 있다.
부활한 돌궐 제국은 쿠틀루크 카안의 동생 카프간 카안(Kapgan Kağan, 중국명은 묵철가한) 시절에 당나라를 물리치고 다시금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강성했으나, 쿠틀루크의 아들 빌게 카안(Bilge Kağan, 중국명은 비가가한) 시절부터 세력이 다시 약해지더니 747년 복속해있던 위구르족의 반란으로 멸망하고, 수많은 돌궐족들이 위구르족에게 학살당한다. 살아남은 돌궐족의 대부분은 서쪽 중앙아시아로 달아났다. 일부는 당으로 투항했고, 이후 돌궐은 다시 몽골 초원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돌궐의 후손들이 나타나 중공군을 개발랐다고 한다.
4 돌궐 비문
몽골에 괵튀르크 제2제국의 개국공신으로 장군이자 재상인 톤유쿠크(Tonyukuk, 중국명은 아사덕돈욕곡)의 석비가 있다. 비문의 자세한 내용은 아사덕돈욕곡 참조.
돌궐 제2 제국 시대의 비문들이 몇개 남아있어 돌궐의 역사 및 언어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쿠틀루크 카안의 아들이자 제2 제국 4대 카안인 빌게 카안(비가가한)의 비문이나 위에 언급된 톤유쿠크 장군의 비문 등등. 특히 20세기 들어 케말 아타튀르크가 터키어에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서 유입된 어휘를 솎아내고 그 자리를 메꾼 튀르크 어휘의 근거로써 활용되기도 했다. 또 빌게 카안의 동생 퀼 티긴(Kül Tigin, 중국명은 궐특근) 장군의 비문에는 고구려를 뵈퀼리(Böküli)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를 참조
5 동돌궐 역대 가한
대수 | 왕호 | 휘 | 재위기간 |
1대 | 이리가한 | 토문 | 552 ~ 553 |
2대 | 을식기가한/아일가한 | 과라 | 553 |
3대 | 목간가한 | 사근 | 553 ~ 572 |
4대 | 타발가한 | 지두 | 572 ~ 581 |
5대 | 사발략가한 | 섭도 | 581 ~ 587 |
6대 | 막하가한 | 처라후 | 587 ~ 588 |
7대 | 힐가시다나도람가한 | 옹우려 | 588 ~ 599 |
8대 | 계민가한 | 염간 | 599 ~ 614 |
9대 | 시필가한 | 돌길세 | 614 ~ 619 |
10대 | 처라가한 | 사리불설 | 619 ~ 620 |
11대 | 힐리가한 | 막하돌설 | 620 ~ 630 |
6 돌궐 제2제국 역대 가한
대수 | 왕호 | 휘 | 재위기간 |
1대 | 힐질리시가한 | 토둔철, 골돌록 | 682 ~ 691 |
2대 | 묵철가한 | 묵철 | 691 ~ 716 |
3대 | 부구가한 | 복구, 양아지 | 716 |
4대 | 비가가한 | 묵극련, 골출록 | 716 ~ 734 |
5대 | 이연가한 | ? | 734 ~ 741 |
6대 | 등리가한 | 비가골돌록 | 741 ~ 742 |
7대 | 판궐특근 | ? | 742 |
8대 | 오소미시가한 | 오소미시특근 | 742 ~ 745 |
9대 | 백미가한 | 백미특근골롱복 | 745 |
7 기타
터키공화국 수립 초기에 돌궐 건국 N주년 기념식을 열었다는데 확인바람.
터키 정부의 돌궐 유적 발굴 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1735295
무슨 이유에서인지 돌궐과 전혀 관련없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의 사극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한다. 가령 판타지 고증으로 유명한 기황후(드라마)에서는 몽골 제국 변방에서 뜬금없이 돌궐족이 몽골에 대치하는데, 몽골 제국 시기라면 돌궐족은 이미 터키 땅으로 이사를 가고도 남은 시점이다 (...)
뿌리깊은 나무(드라마)에서도 캐먼치킨 개파이가 돌궐 출신이라고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