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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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António de Oliveira Salazar)
생몰년1889년 4월 28일 ~ 1970년 7월 27일
출생지포르투갈 산타콩바당
사망지포르투갈 리스본
정당국가연합
종교가톨릭
배우자없음

1 개요

포르투갈의 역사
História de Portugal

선사 - 로마 - 게르만족의 대이동 - 헤콩키스타 - 포르투갈 제국 - 현대
헤콩키스타포르투갈 제국현대



아스투리아스
왕국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
포르투갈 왕국포르투갈 왕국이베리아 연합포르투갈 왕국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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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백작령
우마이야후우마이야무라비트
무와히드
포르투갈독재자.

처음에는 가톨릭 신학대학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마음을 바꾸어 코임브라 대학에서 법학을 배우고 1916년 동 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1926년 장군 카르모나의 쿠데타가 성공하여 재무장관으로 기용된 후 1932년 총리가 되었고, 국민통일당을 조직하여 일당독재를 추진하였다. <Estado Novo(이슈타두 노부, 새로운 국가)> 운동을 <Deus, Pátria e Familia(하느님, 조국, 그리고 가족)> 이란 슬로건으로 진행했다.

2 우민 저개발 독재

경제학 교수라는 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인 독재자와는 달리 경제학자 출신으로 군사정권의 재무장관이 된 인물이었다. 재임기간 동안 세계 대공황의 파고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포르투갈의 경제를 되살리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드높아지는 권세 앞에 1930년대 후반 쯤 되면 군사정권의 실력자들조차 꼭두각시로 전락, 사실상 포르투갈을 한손에 쥐었다. 자신의 정책을 유지하지 위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를 했으며 3F 정책이라 불리는 우민화 정책을 펼쳤다.(축구 (Futebol), 종교(가톨릭, Fatima) 그리고 파두(Fado -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민속 음악).

게다가 경제학 교수라는 이력과 어울리지 않게 산업화근대화에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보여 포르투갈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았다. 20세기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낭만적 목가주의자의 감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을 공업화 된 강력한 패권국가로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근대산업혁명의 광풍으로부터 벗어난 안전한 농촌국가로 만드는 것을 추구하였다. 그것이 30여 년 장기집권의 비결이었다.

먹물들이 많아지면 정권 유지가 힘들다면서 노골적인 우민화 정책을 실시했다. 사실 초등교육은 기본 교육이라며 더 늘렸다. 지원을 별로 안해서 문제였지. 그래서 결국 포르투갈을 문맹률 40%로 만들었다.[1] 또 내수 산업 개발보다는 해외 식민지 경영에 집중해 포르투갈의 산업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심지어 2차 대전 당시 전 유럽이 쑥대밭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중립을 지키면서 추축국연합국 모두에 물건을 팔아먹었을 정도.

그러나 더딘 산업화로 인해 6,70년대 많은 포르투갈 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전후 호황을 누리고 있던 다른 유럽 국가들로 유출되었으며, 덕분에 포르투갈의 최대 수출품은 포르투갈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현재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단지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 등 일부를 빼면 막장이다 보니 이민 대상이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등 번영하는 옛 식민지로 바뀐 정도다.[2] 대항해시대에 신이 포르투갈 인들에게 요람으로 작은 포르투갈을 주고, 무덤으로 세계를 주었다는 말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3 외교 정책

제2차 세계대전의 독재체제였지만 살라자르 본인은 파시즘의 열광적 대중동원이나 대외적 팽창주의를 혐오하며 안빈낙도(...)를 추구했다. 그럼에도 살라자르 치하의 전체주의 체제였다. 어쨌든 포르투갈에 전체주의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에는 포르투갈 파시즘 운동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재체제임에도 연합국측에 호의적이었고 아조레스 제도 등의 군사기지를 영국미국에 제공하기도 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냉전기 미국,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해 나가면서 OECD, NATO 등 국제기구 창설에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4 사망

말년인 1968년에는 해먹에 앉아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뇌출혈로 쓰러졌다. 당시 포르투갈의 대통령직은 의례적인 존재일 뿐이었고 그가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다른 정치가들의 모략으로 총리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렇게 모든 권력을 상실했으며 마르셀로 카에타노가 후임 총리가 되었다. 살라자르는 몇 달 뒤 의식을 되찾았으나 이미 완전히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측근들은 건강이 나빠진 살라자르가 이 사실에 충격을 받기를 바라지 않았고,이런 부하들을 둬야 한다 조작된 신문을 바쳐서 여전히 살라자르가 권력을 잡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살라자르는 아무 의미도 없는 명령서에 사인이나 하면서 죽을 때까지 진실을 모르고 있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망했다. 아무래도 TV나 라디오는 잘 안본 모양이다

실사판 굿바이 레닌아니 굿바이 살라자르, 또는 트루먼 쇼를 찍다가 간 사람(…). 그가 죽은 뒤 1974년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으로 포르투갈은 결국 식민지였던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상투메프린시페의 독립을 승인하는 등 그때까지 보유하고 있던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마카오만 제외하고 모조리 포기한다. 사실 마카오도 반환하려고 했는데 중국 정부가 서방에 대한 창구로 써먹으려고 거부했다(...) [3]

살라자르 사후 포르투갈의 민주화는 젊은 장교들이 주축이 된 군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살라자르 생전에 미발달된 경제로 인해 장교들에게 봉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자 그 해법으로 젊은 장교들에게 부르주아 가문의 여성과 결혼하라고 권한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인듯.

5 대중매체

한때 포르투갈에 살았던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은 이 사람의 성을 따서 "악명높은 기숙사" 슬리데린의 창립자 '살라자르 슬리데린'을 만들었다. 역시 작명의 달인 롤링 여사.

캡콤의 바이오하자드 4에 등장하는 라몬 살라자르의 이름이 그의 이름에서 따왔을 것이라 추측된다. 독재자/사이코 영주 기믹이라는 것과 라틴 계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공통점. 근데 바이오하자드 4의 가나도들은 스페인어를 쓴다(...)

5.1 재평가(?)

파시즘의 영향을 깊게 받은 독재자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살아 남았다는 점에서 이웃나라 스페인프란시스코 프랑코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프랑코와 살라자르는 서로 친구이기도 하였다. 유유상종 스페인 내전 당시에 살라자르가 프랑코를 지지했던 것도 있고, 내전이 끝나고 2차대전이 벌어지자마자 추축국 편을 드는 듯 안 드는 듯 간보는 프랑코와 마찬가지로 중립을 고수하였으며 중남미의 콘도르 작전을 지원해 망명 온 중남미인들을 송환시켰던 것도...

그러나 내전기와 내전 이후에도 독일천조국의 암묵적 지원 하에 자국민 수십 만명을 처형하였으며 탈출한 사람들을 체포하여 처형시켜 탈출을 법으로 금지하고 연좌제를 시행하는 등 스페인 전역을 피비린내로 물들인 프랑코와는 달리, 살라자르의 독재정은 권위주의적이고 고압적이긴 했지만 훨씬 더 현실적이고 온건했다. 기본적으로 반대 세력도 프랑코처럼 묻지마 처형이 아니라 감옥에 처넣고 썩히는 걸로 대응했고, 연좌제를 시행하지 않았다. 또한 국외 추방 및 국적 소멸 차원에서 타국 망명을 허용하였다. 실제로 반 살라자르 야권의 거두였던 포르투갈 공산당 당수 알바루 쿠냘만 하더라도 콩밥은 오래 먹었지만 사형은 당하지 않았고, 2차대전 이후에는 해빙 무드를 타 비록 손발은 꽁꽁 묶어 두었지만 제대로 된 야당의 형성 또한 허락했다.

스페인은 경우 실제로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사형을 프랑코 정권 말엽까지 지속했지만, 살라자르의 경우 대충 주동자 몇명만 사형 시키고, 그 나머지는 적당히 틈틈히 때리기만 하지 대대적으로 탄압 하지는 않는 수준에서 그쳤다. 1930년대1950년대 두차례 걸쳐 유럽을 순방하며 당대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Inside Europe 시리즈로 이름을 날린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군터는 1950년대 후반에 두 나라를 방문하며 "포르투갈에서는 택시 운전사들이나 카페에서나 살라자르를 씹는게 일상적이고 데모를 하다 잡혀가도 훈방 조치로 끝나지만, 스페인에서는 정치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는건 꿈도 꾸지 못한다"라 평했다. 살라자르 슬리데린보다는 프랑코 슬리데린이 더 나은 작명이었을 것 같다

그 외에 민주화 이후에 대도시와 해안가에 모든게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지역불균형 문제가 심해진터라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촌지역에서는 그나마 농촌에 신경을 썼던 살라자르 시기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듯 하다. 사실 스페인의 프랑코 같은 강력한 억압 통치를 한 것도 아니면서 반세기 가까이 장기 집권을 해온 것 자체가 천조국의 지지는 물론 어느 정도 광범위한 지지기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심지어 2007년 포르투갈 국영방송사 RTP가 시행한 위대한 포르투갈인 설문조사에서 항해왕자 엔히크, 바르톨로뮤 디아스, 바스쿠 다 가마대항해시대를 연 세계사적 위인들이 포함된 20명의 최종 후보들 중 41%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을 정도. 아이러니컬한 점은 2등을 한 인물은 살라자르 정권 내내 반정부 인사 중 최대 거물이었던 포르투갈 공산당 당수 알바루 쿠냘이었다. 그리고 라이벌 민간 방송사 SIC의 최악의 포르투갈인 설문조사에서도 여전히 둘은 사이좋게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다.(...) 한국에서도 개발독재의 박정희와 민주화운동의 김대중이 대통령 선호도에서 1,2위를 차지할 때가 많고, 둘다 욕을 엄청 먹기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할지도... 살라자르 정권 당시 수혜자였던 가톨릭 교회에서는 당연히 좋게 보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 이들에게는 동성결혼조차 허용하는 오늘날의 포르투갈은 그야말로 말세

경제 문제로 프랑코를 살라자르보다 고평가하는 일각의 의견도 있는 모양인데, 애초에 두 나라의 국력을 대비해 보자. 아무리 엉망이던 시절이라도 나름 열강으로 인정해 줬고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도 상당했기에 2류 국가라는 비아냥은 들어도 실제 국력은 그렇지 않았던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가 끝나자마자 진짜 2류 국가, 중진국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오히려 살라자르가 권력을 잡고 나서 경제 상황이 크게 나아졌을 정도. 역설적으로 보면 그러고도 2류 국가였으니 그 이전에는 얼마나 답이 없었나를 짐작할 수 있다. 리즈 시절 이후로 하도 이류 국가 취급 받아 국가 브랜드가 안 좋아서 그렇지, 바스크 지방의 조선업아스투리아스철광업, 바르셀로나금융업은 그 스페인이 삼류 국가 소리 듣던 20세기 초반에도 유럽에서 알아 주었을 정도였다. 스페인은 원래 잠재력은 충분했는데 정치적인 문제로 포텐셜이 워낙 늦게, 그리고 급격하게 터졌던 것이다. 오히려 장기적인 성장률은 살라자르 치하 포르투갈이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프랑코와 달리 살라자르는 대규모 내전을 일으켜 자국민 수만명을 노예로 만들고 이들을 강제 수용소에 처넣어 강제노역으로 댐이나 공장, 도로를 짓는 일 따윈 안 했다.

다만 비판도 있긴 한데 워낙 1, 3차 산업에 치중하다 보니까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살라자르도 바보는 아니니 상당한 규모의 철강, 기계 제조업 기업들이 있긴 했지만, 상당수가 국영기업이었던 이 기업들이 1980년대 민영화되면서 상당수 외국계 다국적 회사에 팔려나갔고, 오래 지나지 않아 글로벌 생산 차원에서 비중이 미미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포르투갈 내 생산시설을 폐쇄하면서 제조업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게 유로화 사태 당시 포르투갈에 치명타를 입혔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비해서도 회복이 지지부진한 결과를 낳았으니 틀린 주장은 아니다. 다만 청년실업률만 봐도 스페인보다 양호한 수준이다. 당장 유로존에서 PIGS라고 해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까지만 실질적으로 구제를 포기한 건 그리스고, 포르투갈은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개혁의 의지가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다만 포르투갈의 청년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건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 국내보다는 같은 유럽연합 안에서 일자리가 있는 영국, 독일, 룩셈부르크 등지나, 말도 통하고 한참 고도성장중인 과거 식민지인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등지의 해외로 나간 결과다보니 국내 경기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고급인력이 부족한[4] 앙골라 같은 곳으로의 이주민은 불과 10년 전 몇백명 수준이었던게 최근에는 만 단위를 넘고 있는 상황일 정도.

물론, 그래봤자 'A보다 B가 덜하다고 해서 B가 온당하다'는 증명이 되진 못한다. 독재자는 독재자. 영화이자 소설인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면 그 시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반대세력을 당장 공개처형하지 않아도 인생 조지는 방법은 참 다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옆동네 프랑코가 하도 피비린내 나게 굴어서(...) 주목을 덜 받는 것 뿐이다. 오늘날 포르투갈이 겪고 있는 개고생의 대부분은 이 사람이 뿌려놓은 씨앗에서 시작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암군이란 점에서는 프랑코랑 별반 차이 없다.
  1. 1980년대 초중반이 되어서야 문맹률이 줄기 시작했다.
  2. 카네이션 혁명 직후 앙골라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등이 독립했을 때 그 곳에 이미 살고 있던 포르투갈인들이 대거 본토로 돌아오게 되면서 헬게이트가 열렸고 이들을 본토에서조차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하는 바람에 달동네마냥 귀환자들로 구성된 빈민촌이 생긴 적도 있었다.(출처: 이원복 교수의 진짜 유럽이야기)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다시 그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단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반복이 따로 없는 셈.
  3. 다들 알다시피 결국은 1999년에 반환된다.
  4. 앙골라같은 경우 식민지 시절부터 포르투갈 본토보다 나았던 적도 있었지만 독립 직후 오랜 내전과 쿠데타로 인해 각종 산업시설들과 현지 자체 인력들이 거진 갈려나간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