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기 청소년 축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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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실업 야구대회인 백호기에 대해서는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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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이미지를 검색하면 경기 사진보다 응원 사진이 더 많다...
본격 남한에서 북한을 볼 수 있는 곳

<제주도민이 아닌 분들을 위한 항목에 자주 나오는 어휘설명을 하자면 '육지'는 본토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1 개요

제주특별자치도 내 최고 권위의 각급 학원축구 대회이다. 3월~4월 중 수 일간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한 제주 종합 경기장의 주경기장 및 보조경기장 격인 애향운동장에서 개최된다. 제주일보가 제주 내의 축구 활성화를 위해 1971년 10월 30일 창설하였으며, 처음 참가팀은 초등부 5개팀 뿐이었지만, 가장 최근 경기인 2012년 41회 백호기에는 초등부 10개팀, 중등부 6개팀, 고등부 5개팀이 출전할 정도로 활성화 되었다.

사실상 제주특별자치도내 최대의 스포츠 행사이며 현재는 그런 분위기가 약해졌지만 2000년대 전까지만 해도 경기에서 진 학교 학생들은 교복입고 제주시내를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제주 도민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행사이다.

제주일보가 부도상태라 2013년에는 원래 열리던 시기가 아닌 11월에 개최했다. 2014년부터 원상복귀되었다. 이후 2016년에는 제주일보의 노사 대립으로 열리던 시기가 늦어져 각 학교의 공식 응원단이 참여하지 못 했다.덕분에 각학교 학생들은 쾌재를 불렀다

2 응원전

이러한 사실 보다는 다른 것으로 더욱 유명한데



조회수 600만의 위엄
코리안 울트라스라고 소개되어있다. 정작 전세계 정통파 울트라스들에게 까이는중.



오현고(오고) 대기고 서귀포고(서고)의 백호기응원 순간 M고인줄

이 응원장면을 보려고 일부러 제주도까지 내려오는 '육지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예전에는 도민체전, 교육감기 축구대회 등에도 응원전이 벌어졌지만 현재는 백호기에만 응원전한다. 사관학교 응원을 본따서 만들어졌다고 하며 처음 시작은 전통의 명문고인 지역사회를 잡고 있던 오현고등학교와 제주일고라고 알려져 있고, 이에 자극을 받아(...) 엄청난 퀄리티의북한 수준의 대규모 매스게임을 보여준 것은 신흥 남고인 대기고등학교였다. 대기고등학교의 응원이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 널리 알려졌고, 이후 한동안 폐지 혹은 축소된 상태였던 오현고, 제일고를 비롯한 다른 제주시내 남고, 나아가 구 북제주군과 남제주군, 그리고 서귀포시의 남고까지 매스게임이 부활해 버렸다.[1] [2] 애초에 군대문화인지라 여고는 이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그리고 학교홍보 동영상에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위의 영상에서 보는 것과 달리 최근에는 많이 완화되어서 교복 마이가 검은색, 와이셔츠가 하얀색인것을 이용해 단순하게 글자를 파고 한자 파기정도만 하는것이 일반적이다. 학교에 따라 케바케이다. 응원전이 한창일 때는 종합운동장에서 가까운 거리, 심지어 공항 근처에서도 응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015년 백호기 오현고의 모나리자와 대기고의 카운트다운. 위 영상과 비교해 보자. 3년 사이에 상당히 온건온건?해졌다. 오고는학교의 상징인 호랑이를 버렸다! 모 학생회장의 말에 따르면 내년부터 호랑이 그릴거라 카더라 그리고 그렇게 16년 백호기는 연기되고 앞으로의 존속마저 불투명해졌다. 망했어요.
<s>대기고는 색잠바 포기 안했다</s>
<s>대기고 동복 체육복이라 카더라</s>

응원 실력은 학교 성적과는 비례하고 축구 실력과는 반비례라 한다 카더라

응원전 끝나면 뒤풀이를 한다. 시청등 공공장소에서 악을 지르기 때문에 정말 민폐가 된다.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고 있던 시민 왈: 돼지새끼 멱따는 소리

2.1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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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북한 따라하기 프로젝트

이 항목에서 소개하는 선배들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천하의 씹버러지 그 자체이다.

사실상 축구 자체를 본다기보다는 이 응원을 보러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응원 자체로만 본다면 신기하고 재밌어 보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3]

응원 참여는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1,2학년 학생들은 당연히 강제적으로 응원에 참가하여야 하며, 수능을 앞둔 3학년의 경우는 일부만 참여하는 학교도 있고 다 참가는 하지만 병장놀이 설렁설렁 해도 봐주는 학교가 있다. 어차피 응원 3년째 하면 짬밥 먹을만큼 먹어서 대충 해도 안 틀린다. 한 위키러는 졸업한 지 10년이 거의 되었지만 노래방에서 응원곡이었던 갈채라도 누가 부르면 저절로 손이 움직이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게 된다 카더라 오현고 학생들은 모나리자가 들리면 어느새 옷깃을 잡고 여미고 있다 카더라 어느학교든 싸이의 '챔피언'을 들을때도 옷깃을잡고 여미고있다 카더라 약 1주일 혹은 그 이상 단축수업하면서 연습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는 신체적, 언어적 폭행이 수반되며 그것 때문에 싫어하는 학생이 상당히 많다.물론 여느 학교 행사가 그렇듯이 수업을 안 하니 우왕ㅋ굳ㅋ 하며 연습에 임하는 학생 또한 많다. 요즘 들어서는 안 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는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주로 연습했으며 보충수업, 야자까지 전부 했다.덕분에 학생들의 체력을 많이 향상시킨 요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4]

때문에 처음 갓 들어온 1학년 신입생들은 충격과 공포헬게이트를 맛본다. 자율적으로 나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강제적으로 참여하니... 그 전에 하는 선배교육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전에는 연습을 잘못하는 학생들을 운동장에 무릎을 꿇어앉히고 뒤통수를 때렸다는 경우도 있었고, 그냥 선배들이 둘러싸고 낄낄대면서 앞으로 뭐가 될거냐고 병신취급하기도 했다. 이거 군대 식으로 말하자면 가혹행위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빡쎈 군기잡기가 이루어져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 현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것에 대해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않는다. 자신들이 1학년 때는 그나마 조금 강제응원이 짜증난다던가 선배들이 좀 짜증난다던가 해도 2,3학년이 되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다. 정확히는 잘못된 걸 알아도 별 수가 없다. 나서봤자 3학년들은 관심이 없고 입시원서를 선생님들이 써주기에 나서기도 힘들다. 90년대 후반 한 학교의 3학년들이 이런 매스게임식의 응원 폐지를 주장해서 일반 응원으로 바꾼 적이 있었는데 바로 다음해 새로 3학년이 된 후배들에 의해 원상복귀된 적도 있다. 제주 일고의 경우에도 수년간 학생들의 토론 끝에 99년부터 매스게임을 폐지하였으나[5] 응원 도중 절반 가까이 땡땡이치고 도망가는 바람(...)에[6] 학교측에서 2002년에 매스게임을 부활시켰다.[7][8] 당연히 이유는 글씨를 파면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어 도망 못가니까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교사 등 다수가 응원을 자랑스러운 문화로 생각하고 인터넷에서 자랑을 하기에 교사들, 학부모들과 의견이 합치되어 이런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응원은 자발적일때 아름다운 것을...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 그리고 동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습할때는 괴롭기는 해도 막상 경기장에 들어서 타학교와 응원열전을 벌이게 되면 그 순간만큼은 속에서 무엇인가 끓어오름을 느끼고 애교심이 폭발해 너도 나도 목청이 나가도록 응원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하고나서는 잊지못할 추억이 되고 동기들간의 좋은 안주거리로 남는다고 한다. 연상되는 건 기분 탓...이 아니다. 2002년쯤에는 딴지일보에서 전두환 시절스럽다고 대기고 응원을 깠다가 대기고 출신 변호사가 너 고소해서 데꿀멍했다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자랑을 했던 적도 있다. 군생활의 추억

요즘엔 많이 나아져서 연습을 할 때 신체적인 폭행이 동반되면 즉시 응원 연습을 취소하기로 되어있다.몇몇 학교는 선배의 박아!!!!! 라는 말에 자동으로 엎드려 뻗혀를 하던데 그리고 응원 연습이 서투른 학생들은 학생회 임원들이 따로 불러서 1대1로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물론 단체연습 때 틀려서 다시 하겠다는 학생회장의 목소리가 들리면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욕설은 말릴 수가 없다...

강제적이고 비정상적인 응원 연습 문화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일단, 백호기 응원 연습을 해야 하는 3, 4월은 1년 중 일조량이 가장 많은 시기 중 하나다.[9] 운동장에서 응원 연습을 할 때는 대략 3시 에서 6시 전인데, 이 시간은 역시 햇살이 가장 강한 시기다. 이로 인해 가볍게는 얼굴이 타는 것은 기본이고, 심하면 피부가 벗겨지거나 일사병 증세를 호소하는 경우도 생긴다. 선크림을 사용하자니 학생회의 성향에 따라 참 난감한 경우도 많다. 둘째로 이 시기가 황사철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제주에서도 누리끼리한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기다. 이런 날씨에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응원 연습이니 당연히 그 황사 먼지를 듬뿍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인조잔디가 없거나 없던 시절에는 운동장 먼지까지 한 바가지. 결과적으로 시기상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담인데 위 유튜브 동영상에 이걸 겪은 이가 선배 똥군기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더니 뭣도 모른다고 쌍욕이나 하는 이들 반응이 있었다...그걸 겪어서 잘 아는 이가 적은 건데도 뭣도 모른다?

2.2 교사들의 반론

모 고등학교[10]에서 들은 것을 적자면 해당 학교 교사들 사이에 매년 회의가 열리는데 회의는 항상 백호기 폐지하자는 식으로 흘러가다가도 백호기 주최 신문사에서 "올해도 하실거죠?" 내지는 "올해도 하셔야죠?"라는 식의 반강제 권유를 하면 지역 신문사의 힘 때문에 자연스레 "어유, 당연히 해야죠." 라는 식으로 되어버린다고 한다. 각 학교에서 안좋은 일이 있어도 덮고 넘어가주는 등의 장점[11]이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또 서귀포의 모 고등학교[12]의 학생주임은 2016년의 전통교육 마지막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난 후에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95% 이상이 백호기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라는 요지의 훈화를 했다. 2010년대의 도내 고등학교 내에서도 백호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자기합리화.

물론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교사들의, 학교의 이점을 위해 학생들이 갈려나가고, 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두발도 빡빡이 마냥 짧게 잘라야 하고 저들이 80년대에 배운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80년대에 학창생활을 보낸 교사들은 2000년대의 학생 인권 개선에 소극적이고, 그때의 악습을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반복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지 않는 이상 제주도의 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멀다.

3 지역사회적 원인

농일전이라고도 불리우는 강릉 정기전과 흡사하다. 좁은 지역사회와 낙후한 교육문화, 지역 정치인이라고 쓰고 토호라고 읽는들을 대거 배출하는 몇몇 제주시[13] 내 남고들의 강한 연고의식[14], 그리고 이러한 연고의식을 백호기라는 스포츠 더비를 통해 재생산하는 학교, 교사, 그리고 선후배문화가 그렇다.

백호기 기간에는 응원문화에 대한 비판을 입 밖에 내놓을 수 없으며[15]최근에는 선배들이 카톡이나sns 상태메시지를 감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으며 응원전에대한 비판목적이 아닌데도`힘들다`등의 글을 상태메시지로 썼다가는 지옥을 맛보게 될지 모른다. 사실 이러한 응원연습 이전에도 몇몇 남고들의 경우 교사들도 인정하는 준공식적인 절차로서 신입생들에게 학생회가 '전통교육'을 한다. 항목 참조.

4 그 외

축구부끼리의 본경기가 끝나면 응원 마친 학생들끼리 종합경기장 밖에서 2라운드를 했다는 전설도 구전되어 내려온다.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아버지 세대들까지는 실존했던 일로 아버지들에게 물어보면 무용담을 말씀해주시기도 한다(...) 게다가, 교련복을 입고 다닐 시절에는, 교련복에 있는 쇠버클이 달린 벨트로 사람을 때리다 맞아죽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초반까진 학생들끼리 각목 들고 2라운드(...) 붙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씩은 선생님들도 각목들고 같이 가세했다. 바로 옆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도망치는 놈 발견하면 강제로 버스 세우고 끌어내려 다구리하기도 하고(...), 가끔은 버스에 불도 지르고...이거 폭행죄로 고소하고 싶어진다 훌리건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시대 불문, 연령 불문, 성별 불문. 백호기 응원단 사이에 경찰이 배치되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만약의 경우 제압을 위해 배치된 거다.

이건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70-80년대의 폭력적 분위기에서는 흔했던 일. 요새 애들이 거칠고 무개념하다고 인권 그런거 필요없고 패야 한다는 어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요샌 아무리 일진이라도 패싸움 같은걸 하는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대신 그냥 찌질거리며 삥을 뜯겠지? 그냥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자

5 백호기 출신 유명 축구선수

(나무 위키에 등재된 선수만 기재)

  1. 이전 서술엔 대기고의 영향으로 다른 고교들이 따라한 것처럼 서술이 되어 있었으나 90년대 이전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응원문화다. 다만 중간에 폐지되었다가 부활한 경우가 많을 뿐이다. 하단의 비판항목 참조.
  2. 물론 옛날에도 단체응원이긴 해도 매스게임을 하지 않는 학교도 있었다. 다들 죽어라 악쓰는데 유일하게 남녀공학이라 율동도 아기자기하고, 비교적 즐겁게 응원했다는 남녕고 졸업생의 증언이 있다. 남녕고에 축구부가 없다고? 1~3회 졸업생(대학 91~94학번)에게 물어보라. 그땐 있었다.
  3. 매년 수천여명의 학생들이 갈려나간다. 고3은 제외한다 쳐도 4~5개 이상의 고등학교가 참여하기 때문에...
  4. 물론 제주도 최남단 고등학교에서는 백호기고 야영이고 얄짤없이 야자와 보충학습을 여전히 하고 있다.(서귀포고는 현재까지도 최종 연습후 야자, 보충 다시킨다. 연습시간이 3시간 ㅎㄷㄷ) 대기고는 2000년대 중반 기준으로 처음 연습 시작할때부터 경기까지가 한달정도 되었다.
  5. 일부 3학년 학생들의 음주와 폭행이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응원도중 골이 들어갈 경우 거대한 현수막을 펼치는데 그 밑에서 술병을 던지고 후배들을 때리는 등. 이것 외에도 여럿 있었다. 악습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토론 끝에 학생들이 내린 결론이 매스게임 폐지였다. 당시 학생들에겐 매스게임 자체가 쌍팔년도 응원문화이기도 했고, 북한같은 독재국가나 할 법한 응원이라는 시각이 강했다. 그리고 수 년 후 북한의 매스게임 아리랑이 유명해졌다 다만 매스게임은 폐지되었지만 단체응원은 유지되었으므로 율동이나 합창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6. 당시 제주일고 축구부가 암흑기였던 것도 한 몫 했다. 1차전 전반만 봐도 패배 확정인데 누가 흥이 나서 응원 하겠는가. 특히 오장은에게 처절하게 당했다. 그런데 오장은이 없어지자 바로 백호기 3연패 달성하며 다시 중흥기에 들어섰다
  7. 학교 측에선 어쩔 수없는 측면도 있는게 응원이 수업을 대신하는 것이니 도망간 학생이 사고라도 당하면 어찌할 것인가? 다만 그 수단이 매스게임 부활이란게 고약할 따름이지만.
  8. 3년간 매스게임이 폐지되어 노하우가 실전된 상태이기도 하고 부활한 이유도 이유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교적 간소하게 응원곡 시작할때마다 글씨나 마크를 바꾸는 정도로 간소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타교 학생들에겐 그것도 응원이냐고 디스당했고, 졸업한 선배들에겐 그러길래 땡땡이도 적당히 칠 것이지 사서 고생을 자초했다고, 그래 너희들도 한 번 X뺑이 쳐보라고 비웃음 당했다 매스게임 한 번도 안한 45회(02학번)만 승리자 문제는 그 후 시간이 지나며 전광판 수준으로 에스컬레이트 했다는 거지만. 어째 날이 갈수록 거꾸로 가는 느낌
  9. 2015년 제주 일조량파일:제주 일조량.png
  10. 작성 바람
  11. 그렇다 학생 위에 학교 있다. 학교 있고 학생 있다. 적어도 교사들의 말을 해석 해보자면 그렇다.
  12. 엄밀히 따지면 서귀포시에서 백호기에 참가하는 학교는 하나밖에 없다.
  13. 과거에는 자치시였으나 이제는 행정시이다
  14. 혹은 패거리주의
  15. 당연히 교사와 선배의 탄압 때문. 학교 홈페이지에 비판글이 올라왔다가 전교가 난리가 나서 범인(?)을 색출하려고 했다. 2000년대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