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항목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
역대 FIFA 월드컵 | ||||
13회 | → | 14회 | → | 15회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 →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 | 1994 FIFA 월드컵 미국 |
목차
1 개괄
1990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월드컵 대회. 이탈리아로서는 1934년 이후 56년 만에 개최하는 2번째 월드컵이다. 냉전의 종식과 동구권의 해체 기운 속에 치뤄진 월드컵에서, 서독이 매우 의미있는 우승을 차지한 대회이다. 이 대회를 끝으로 서독과 동독은 그 해 10월 3일 통일된 독일으로 재탄생했고, 서독의 우승은 조국 통일을 몇 달 앞에 둔 하나의 축포였다.
소련, 체코슬로바키아가 출전한 마지막 경기였고, 유고슬라비아는 유고 내전으로 다음 경기에 출전 기회 조차 박탈당했다. 루마니아는 전년도 크리스마스날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총살당한 다음 해였고..
축구경기적인 차원에서라면 당시 소위 압박축구라 불린 수비위주의 축구가 극에 달한 대회였다. 당시에만 해도 수비수들은 '도살자', '살인마' 같은 별명을 갖게 되는 것을 명예롭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으며, 어지간한 백태클 푹한번 담궈줘도 옐로카드는 커녕 구두 주의만 받고 끝나던 시절이었다. 주요리그에서도 열몇골 넣으면 득점왕 한번 넘볼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최악의 득점난을 가져온 대회가 되었다.
당시 세계축구계는 압박축구로 인한 저조한 득점 현상을 축구계의 위기로 보았고, 이에 FIFA는 파울 규정 강화, 골키퍼에 백패스 등 시간지연행위 규제(이때까지만해도 수비수가 백패스 해준 공을 골키퍼가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오프사이드 규제 완화, 승점제 변화 등 다양한 제도를 강구하게 되었다. 또 공격축구를 유도하기 위해 공인구 제작사인 아디다스사에 높은 반발력을 지닌 공인구를 개발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축구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아프리카 대륙의 카메룬이 돌풍을 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던 대회다. 이 대회에서 카메룬의 활약으로 아프리카 출전국 수가 증가하고 아프리카 선수들의 유럽 리그 진출이 본격화되는 등 큰 변화를 이끌었다.
1990년 월드컵 재미없는 대회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앞서 말한 압박축구로 인한 저조한 득점력 이외에 빅매치가 너무 빨리 성사되어 강팀들이 조기에 나가떨어졌다는 것이다. 16강에서 아르헨티나 vs 브라질, 서독 vs. 네덜란드 빅매치가 성사된 것. 아르헨티나와 서독은 전대회 우승, 준우승국이며, 네덜란드는 1988년 유로대회 우승국이었다. 브라질 또한 상당히 강력한 스쿼드를 가진 팀으로 다음 대회한 1994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루었다. 결국 16강에서 패한 브라질과 네덜란드는 조기에 짐을 싸야 했다.
2 유치과정
유치 의사를 나타낸 것은 총 5개국이었다. 이 중 이란은 1978년 대회에서 자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들떠 유치전에 나섰으나 해당 대회에서 광탈하고 다음 대회 본선 진출에도 실패한데다, 이슬람 혁명 크리까지 겹쳐 자진 포기했다.
나머지 국가들은 잉글랜드, 그리스, 소련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24년만에 도로 월드컵을 개최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에 밀렸고, 그리스는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1] 결국 최종적으로 이탈리아와 소련이 결선투표를 진행했다.
그런데 개최지 투표가 진행되던 1984년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며 전 인류가 핵전쟁과 인류멸망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서방세계 국가가 중심이 되는 기구인 FIFA에서 소련 편을 들어줄 리 없었다. 결국 총 16표 중 이탈리아가 11표를 가져가며 월드컵 개최를 확정. 이탈리아는 그래도 공산당도 있고 공산권 국가랑도 제법 친해서...
만약 이때 소련에서 개최되었다면, 다 망해가던 나라에서 참으로 암울한 대회를 했어야 했으니 결과적으론 다행이었다. 대신,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2018년 대회를 유치했으니까 러시아 입장에서도 1990년 월드컵 개최권을 가져가지 못했던 게 그야말로 새옹지마가 아닐까….
3 개최 장소
- 로마 - 스타디오 올림피코 (72,698명 수용) : 결승전
- 밀라노 - 산 시로 (85,700명 수용) : 개막전
- 나폴리 - 산 파울로 (74,000명 수용)
- 토리노 - 델리 알피 (68,000명 수용)
- 바리 - 산 니콜라 (56,000명 수용)
- 베로나 - 마르크 안토니오 베르고디 (42,000명 수용)
- 피렌체 - 아르테미오 프란키 (41,000명 수용)
- 칼리아리 - 산트 엘리아 (40,000명 수용)
- 볼로냐 - 레나토 델레냐 (39,000명 수용)
- 우디네 - 스타디오 프리우리 (38,000명 수용)
- 팔레르모 - 스타디오 라 파보리타 (36,000명 수용)
- 제노아 - 루이지 페라리스 (36,000명 수용)
1990년 당시 개보수를 통해 수용 규모도 확장하면서 월드컵을 잘 치뤘는데, 문제는 20년 넘게 이 때 지은 것을 별다른 보수 없이 그냥 우려먹었다는 것. 세리에 A의 경기장 노후화 문제가 종종 나오는 것도 이 때 고친 경기장을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2]
4 진출국
● 표시는 개최국 자동진출, ★은 전 대회 우승국 자동진출이다. () 표시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친 팀이다.
- 남미(3.5장) :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콜롬비아)
- 북중미(2장) : 미국, 코스타리카
- 아시아(2장) : 대한민국, 아랍 에미리트
- 아프리카(2장) : 이집트, 카메룬
- 유럽(14장) : 이탈리아●, 루마니아, 스웨덴, 잉글랜드, 소련,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서독, 스코틀랜드, 유고슬라비아, 스페인, 아일랜드,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 오세아니아(0.5장) : 진출 실패[3]
24개국 중 코스타리카, 아랍 에미리트, 아일랜드 3개국이 처녀 출전국이다. 이중 코스타리카는 멕시코가 출전정지 중징계를 받은 덕에 어부지리로 올라왔다.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멕시코 선수 중에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부정선수가 있는 것이 발각되어 FIFA가 멕시코의 1990년 월드컵 출전을 막은 것.
한편, 남미 예선에서 칠레가 실격당해 다음 대회까지 참여가 금지당했다. 칠레는 브라질과의 원정 경기에서 골키퍼가 브라질 홈관중이 던진 폭죽이 근처에서 터지자,[4] 얼굴을 크게 다친 척 하고 미리 준비한 피를 얼굴에 묻혀 나뒹굴었고 칠레는 즉시 경기를 중단하여 선수단 철수. 그러나 이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어 칠레는 1994년 미국 대회까지 월드컵 참가 불가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5 대회 마스코트·공인구·주제곡
마스코트는 챠오(Ciao). 로고처럼 이탈리아 삼색기의 색깔을 사용한 사각형 블럭들을 사람 모양으로 연결시켜 형상화하여 만든 인간형 마스코트. 머리는 그냥 축구공이다. 이탈리아 국기색은 확실히 들어갔는데 그거 외에는 좀…. 혐오스럽다
공인구는 에투르스코 유니코((Etrusco Unico). 내부에 풀리우레탄 품이라는 층을 두어 완전방수가 가능해졌고, 공의 속도가 많이 상승했다. 디자인적으로는 지난 대회에 큰 차이는 없고, 그냥 사자문양을 집어넣은 정도.
주제곡은 우리에게는 88올림픽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의 작곡자로 유명한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한 Un'estate italiana (영어제목은 'To be Number One'). 이전에 작곡한 84, 88올림픽의 주제곡과는 달리 자신의 조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인만큼 가사에서부터 이탈리아를 크게 부각시켰다.....
잘 들어보면 곡 진행이 뭔가 손에 손잡고랑 비슷한 것 같다.
6 대회 진행
6.1 조별 라운드
최좌측이 조 1위, 최우측이 조 4위이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나라가 16강 진출국.
A조 | 이탈리아 | 체코슬로바키아 | 오스트리아 | 미국 |
B조 | 카메룬 | 루마니아 | 아르헨티나 | 소련 |
C조 | 브라질 | 코스타리카 | 스코틀랜드 | 스웨덴 |
D조 | 서독 | 유고슬라비아 | 콜롬비아 | 아랍 에미리트 |
E조 | 스페인 | 벨기에 | 우루과이 | 대한민국 |
F조 | 잉글랜드 | 아일랜드 | 네덜란드 | 이집트 |
A조에서는 별 다른 이변 없이 예상대로 흘러갔다. 개최국이자 최강 이탈리아가 3전승, 동유럽의 강호 체코슬로바키아가 2승 1패로 각각 16강에 진출했다. 오스트리아는 1승 2패, 최약체 동네북 미국은 3전패로 광탈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겐 5:1로 발렸다....그리고 2006년 독일 대회 때 미국은 다시 한 번 체코를 상대로 광탈당한다....
B조는 이번 대회 죽음의 조였다. 첫 경기부터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가 카메룬에게 0:1로 패하며 돌풍이 시작되었다. 카메룬은 동유럽의 다크호스 루마니아까지 격파하여, 결사적이었던 소련에 4:0으로 대패하고도 2승 1패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아르헨티나는 이후 소련에 이기고 루마니아에 비기며 간신히 1승 1무 1패, 루마니아도 소련을 잡으며 같은 1승 1무 1패가 되었으나 다득점에서 루마니아가 2위, 아르헨티나가 3위가 되었다. 무승부만 아니었으면 골득실로 승부를 겨루려던 소련은 마지막 경기에서 카메룬에게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며 4골을 뽑아냈으나 1승 2패, 조 4위로 탈락하며 소련으로서의 마지막 대회를 초라하게 마무리했다. 카메룬 > 루마니아 = 아르헨티나 > 소련 > 카메룬이란 결과.. 가위바위보?
C조에선 브라질이 양민학살을 하며 3전승으로 손쉽게 16강에 합류했다. 대회 첫 출전인 코스타리카는 스웨덴, 스코틀랜드를 연파하고 브라질과도 접전 끝에 0:1로 패하는 강팀의 면모를 보이며 2승 1패 조 2위로 16강에 진출, 멕시코에 가려졌을 뿐 만만치 않은 북중미의 강호임을 인증했다. [5] 매 경기마다 2:1로 패한 3패의 스웨덴은 광탈.[6] 1승 2패의 스코틀랜드도 다르지 않았다.
D조도 서독이 유고슬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를 각각 4:1, 5:1로 완파하는 독주를 보였고, 유고슬라비아는 아랍 에미리트를 4:1로 이기고 16강 진출의 명운이 걸린 콜롬비아전에서 1:0 신승, 2승 1패로 2위가 되었다. 콜롬비아는 서독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며 조 3위 자리를 따 냈다. 이 때 승점자판기 아랍 에미리트는 첫 출전이었는데 조가 너무 안 좋았고, 이후로 다시는 월드컵에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서독은 이 대회의 스타 플레이어 로타어 마테우스와 루디 푈러가 3골, 위르겐 클린스만이 2골을 넣었다. [7]
E조도 D조와 매우 흡사했다. 스페인이 2승 1무, 벨기에가 2승 1패를 거두며 1, 2위를 차지했고, 펠레가 우승후보로 지목한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무승부를 거뒀으나, 벨기에에게 3:1로 대패했다. 1무 1패로 탈락 위기에서 대한민국과의 마지막 3차전 후반 45분에 어느정도 오심 덕을 본 극적인 결승골(0:1)로 1승 1무 1패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8강도 가능하다는 언플을 하다가 3전패로 떡실신.(…) 미드필더 황보관이 스페인전에서 114km/h 대포알 슛으로 1골만을 넣는 데 성공했다.[8] 스페인의 미첼[9] 은 무려 4골을 뽑아냈는데, 그중 3골이 한국전에서의 해트트릭이었다.
여담인데 86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상대팀 분석이란 것도 없었고 현지 적응도 거의 되지 않았다. 너무 압도적으로 지역예선을 통과한 것도 외려 발목을 잡은 셈이 되었는데, 최종예선 1실점(그나마 마지막 경기 주전들을 상당히 뺀 상태에서의 경기였다) 3승 2무 무패로 잉글랜드와 함께 유이한 무패 진출국이였기에 외신들부터 엄청난 복병으로 지목하기 시작했고, 이에 스스로도 문제없다고 월드컵을 무시하며 쉽게 16이니 8강에 간다느니 1승 설레발을 언론이 신나게 퍼부었다. 이회택 당시 국대감독이나 김호곤 코치도 세월이 지나 그때 준비가 미흡하던 걸 이야기하며 아쉬워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한국 국대감독은 무보수로 일하는 명예직이었다! 물론 식비나 교통비나 일부 승리수당이나 대회 상금을 얼마정도 주는 보너스가 있었지만 정식 계약도 없고 그저 국대 감독이란 명예로만 연봉이니 그런 거 없이 일하던 시절이었다. 1990 월드컵 전패 여파로 국대 감독도 정당한 계약을 맺자는 여론이 생겼고 결국 1992년부터 정식연봉 및 추가 수당을 주며 김호 감독이 처음으로 정식계약으로 국대 감독이 되었다. [10] 그런데 더 웃긴건 이 당시 한국을 3전 전패로 몰아간 스페인, 우루과이, 벨기에는 나란히 16강에서 광탈했다는 사실이다;;
F조는 상당히 특이한 결과가 나왔다. 잉글랜드가 이집트에 1:0로 이기며 1승 2무로 1위를 했다. 즉, 잉글랜드와 이집트간의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경기가 다 무재배였다.(…) 1패를 떠안은 이집트는 광탈, 남은 네덜란드와 아일랜드는 똑같은 3무에 2득점 2실점으로 골득실과 다득점까지 같고, 서로 비겨서 승자승 원칙도 무의미했다. 결국 양국은 동전 던지기로 순위를 가려 아일랜드가 2위로 16강에 진출, 네덜란드가 3위가 되었다. F조는 정말 골이 안터졌으니, 그나마 무승부들도 모두 1:1 아니면 0:0이었다. 비록 이집트는 탈락했어도 선전했다는 평을 받았으며 당시 이집트 독재자이던 무바라크도 격찬했다.[11] 그리고 카메룬의 8강 진출 및 이집트의 선전을 이야기하며 아프리카 축구연맹은 피파에게 아프리카 참가국 수를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여 피파에서도 긍정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이후 각조 3위 6개국 중 상위 4개팀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네덜란드, 우루과이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이 경쟁에서 밀렸으면 진짜 억울하게 탈락할 뻔 했다.(…)
6.2 결선 토너먼트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A | 16강 1경기 이탈리아 2:0 우루과이 | I | 8강 1경기 이탈리아 1:0 아일랜드 | M | 4강 1경기 이탈리아 1:1(3:4) 아르헨티나 | P | 결승 서독 1:0 아르헨티나 |
B | 16강 2경기 루마니아 0:0(4:5) 아일랜드 | ||||||
C | 16강 3경기 스페인 1:2 유고슬라비아 | J | 8강 2경기 유고슬라비아 0:0(2:3) 아르헨티나 | ||||
D | 16강 4경기 브라질 0:1 아르헨티나 | ||||||
- | |||||||
E | 16강 5경기 서독 2:1 네덜란드 | K | 8강 3경기 서독 1:0 체코슬로바키아 | N | 4강 2경기 서독 1:1(4:3) 잉글랜드 | ||
F | 16강 6경기 체코슬로바키아 4:1 코스타리카 | ||||||
G | 16강 7경기 잉글랜드 1:0 벨기에 | L | 8강 4경기 잉글랜드 3:2 카메룬 | ||||
H | 16강 8경기 카메룬 2:1 콜롬비아 | O | 3/4위전 이탈리아 2:1 잉글랜드 |
1990 FIFA 월드컵 우승 |
서독 |
세번째 우승 |
16강에서도 검은 돌풍이 계속되었다. 카메룬이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에 연장접전 끝에 2:1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진출한 것. 이탈리아는 우루과이에 2:0 승리를 했고, 아일랜드는 루마니아와 0:0으로 승부차기에서 5:4 승리를 거두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연장 끝에 스페인이라는 대어를 잡았고(2:1), 서독과 잉글랜드는 각각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승리했으며베네룩스 안습, 체코슬로바키아는 코스타리카에 4:1 압승을 거두었다. (스쿠라비의 해트트릭) 아르헨티나는 영원한 라이벌 브라질에 1:0 승리를 거두며 8강 대진을 완성시켰다. 웃기는 건 E조에서 한국을 3전 전패로 몰아넣고 사이좋게 16강에 올라간 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는 각각 유고슬라비아, 잉글랜드, 이탈리아에게 패해 모조리 광탈했다는 사실.(..)
8강 첫 경기에서 이탈리아가 아일랜드에 이기고, 아르헨티나는 유고슬라비아에 승부차기로 승리했다. (지난 경기에서 2골을 넣었던 스토이코비치 등이 실축. 하기야 마라도나도 실축..) 서독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이겼다. (마테우스의 4번째 골) 가장 치열했던 8강전인 잉글랜드 대 카메룬의 경기에선 잉글랜드가 선취골을 넣고도 카메룬에 61분 패널티킥에 이어 65분 역전을 허용하여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 38분 천금같은 리네커의 동점골에 이어 연장 전반 15분 또 리네커의 재역전골이 작렬하며 간신히 이겼다. 노장 게리 리네커의 마지막 활약이 돋보인 경기. 펠레 스코어가 난 이 경기에서 카메룬의 동점골, 잉글랜드의 동점골 및 역전골은 모두 PK골(패널티킥)이었다.
나폴리에서 벌어진 4강 제1경기. 자기를 응원하라는 교주 마라도나의 도발에 '우린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탈리아인입니다'로 응수한 나폴리 팬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초반 우세한 경기를 이끌어나가다 1:1 동점골을 허용하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 2명이 연달아 실축해 4:3으로 탈락했다. 이탈리아 승부차기 징크스의 시작이 된 대회. 제2경기에서는 서독과 잉글랜드가 1:1로 비긴 후 역시 승부차기, 똑같이 잉글랜드의 마지막 키커 2명이 실축하여 서독이 승리했다. 리네커의 월드컵 마지막 골이기도 했다.
4강의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결과가 결정되었는데 여기서 승리한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맞붙었고 패배한 이탈리아와 잉글랜드가 3/4위전에서 맞붙었다.
3·4위전에서 이탈리아가 잉글랜드에 후반 41분 패널티킥으로 이겨 개최국 체면을 살렸고, 결승전에서 서독은 후반 40분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PK골을 결승골로 가져가며 자국 역사상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이탈리아는 살바토레 스킬라치가 6골로 다득점왕과 MVP를 모두 차지하면서 체면을 확실히 살렸다. 로베르트 바조가 활약하기도 했고.
7 화제의 팀들
- 카메룬 :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카메룬의 선전을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부터가 디펜딩챔프 아르헨티나, 동유럽의 절대강자 소련, 만만찮은 동유럽의 다크호스 루마니아였으니 광탈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로제 밀러라는 위대한 스트라이커를 앞세운 카메룬은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당시 감독이 발레리 니폼니시였다.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잡더니, 뒤이어 루마니아에 2:1 승리를 거두는 대이변을 일으키자 축구관계자들은 카메룬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록 수비력 불안과 결사적이었던 소련의 공세로 마지막 경기에서 소련에 0:4 참패를 당했지만 순위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카메룬은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16강 콜롬비아전. 전후반 90분 내내 득점없이 연장전을 맞이한 카메룬은 맹렬한 공세를 펼치며 조제 밀라가 연장후반 1분과 4분에 연속골을 터트리는 괴력을 선사했다. 콜롬비아가 연장후반 15분에 1골을 간신히 만회했으나 이미 시간은 거의 다 흐른 뒤. 이로서 카메룬은 24개국 체제가 확고해진 이후에 처음으로 非유럽·중남미팀으로서 8강에 합류하는 신화를 썼다. 8강 상대는 축구종가 잉글랜드. 비록 선제골은 내줬으나 카메룬의 공격력은 막강했고, 후반 16분 PK골과 20분의 역전골로 유럽의 강호이자 축구종가인 잉글랜드마저 격침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내달았다. 이제 8강이 아니라 4강이 문제였다. 그러나 카메룬의 수비불안은 결국 발목을 잡아, 리네커에게 후반 38분 PK를 내주며 연장까지 흘러갔다. 결국 연장전반 15분 역시 리네커에게 PK로 통한의 역전골을 허용하며 카메룬은 8강에서 신화를 멈췄다. 비록 카메룬은 8강에서 탈락했으나, FIFA와 세계 축구계는 아프리카 축구의 잠재성을 목격했다. 이후 FIFA는 미국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티겟 수를 늘리는 것으로 화답했으며, 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이에 화답하여, 94년 대회와 98년 대회 나이지리아의 2연속 16강, 02년 대회 세네갈의 8강, 06년 대회와 10년 대회 가나의 16강, 8강, 14년 대회 나이지리아, 알제리 2개 국가의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아프리카 검은 돌풍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근데 정작 카메룬은 그 이후로 단 한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해 본 적이 없다.(…)
- 아르헨티나 : 전대회 우승팀인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는 개막전 부터 카메룬에 지는 등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마라도나가 건재했지만 전반적인 팀 전력은 약해졌는데 16강 브라질전 부터 서독과의 결승전 까지 모두 경기 내용에서 밀리는 경기를 했다. 그러나 마라도나의 천재적 패스와 카니지아[12]의 엄청난 스피드로 한 두번 되는 역습 상황을 살려 무승부를 이끌고, 승부차기에서 고이고체아 골키퍼의 선방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공식을 이어갔다. 실제 8강 유고슬라비아전(0-0 무승부)과 이탈리아전(1-1무승부)에 밀리는 경기를 하면서도 가까스로 실점을 막거나 동점을 이끌어내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였다. 이탈리아는 카니지아에게 골을 허용하기전 까지 이 대회 예선 부터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첫 실점후 멘붕 탓에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승전에서도 서독에게 일방적으로 밀렸음에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서독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나[13]후반 43분 통한의 패널티킥을 허용해 0-1로 패하고 만다. 마라도나는 이 패널티킥 판정이 부당했으며, 월드컵을 도둑 맞았다는 주장을 하는 듯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며, 시상식 내내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마라도나의 모습이 전세계에 중계되었다. 하지만 이 대회는 86년 대회와 더불어 마라도나의 천재성이 번뜩였던 대회로 평가되며 오직 마라도나라는 한명의 천재 선수가 11명의 상대방과 경기하여 아르헨티나를 결승까지 올린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 이탈리아 :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가장 더럽고 추악한 월드컵 양대산맥이다. 이탈리아는 그 좋은 실력으로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에게 고전하며 쩔쩔매다가 열폭해서 자기들이 4강에 못올라간 걸 서독에게 편파판정으로 밀어줘서 화풀이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레드카드 2장을 아르헨티나에게 내렸고 그래도 11명의 서독이 9명의 아르헨티나에게 고전하자 패널티킥까지 내려 기어이 서독을 우승시키고야 말았다.
- 서독 : 대회 뚜껑을 열어보니 이 대회 명실상부한 최강팀은 서독과 이탈리아[14]였고, 서독은 마테우스를 중원 사령관으로 하여 당대 최고의 레프트윙 브레메, 88서울 올림픽 득점왕 출신의 신예 클린스만 등을 갖춘 막강 멤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서독이 가장 고전한 경기는 4강 잉글랜드 전. 당시 잉글랜드는 조예선 성적도 시원잖았고 8강전은 심판의 과도한 패널티킥 남발로 카메룬을 운으로 이겼다는 평도 있어 서독의 우세가 예상되었으나 막상 뚜껑을 여니 서독을 엄청나게 압박하며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여 이 대회 최고의 명승부를 만들어 냈다[15]. 연장전에서도 서로 공격을 늦추지 않고 두팀이 한번씩 골대를 맞춘 끝에 결국 승부를 내지 못하자 전문가들은 피터 쉴튼이란 노련한 골키퍼를 보유한 잉글랜드의 승리를 점쳤으나, 결과는 서독의 신예 보도 일그너 골키퍼의 선방[16]으로 서독의 결승 진출.[17] 하지만 이 경기는 대회 최고 시청률을 보였으며, 바비 롭슨이라는 명 잉글랜드 감독의 국제대회 최고 성적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압박축구의 대세로 골흉년이던 대회기조와는 달리 서독은 조별예선 부터 4-1,5-1 승부를 하며 대회 최다 골을 넣었고 16강에서 숙적 네덜란드와 치고받으며 2-1승부를 하는등 미드필더 5인방의 톱니바퀴 조직력을 앞세운 가장 화끈한 축구를 한 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히려 결승전이 현격한 실력차로 맥빠진 경기가 되었다는게 흠이라면 흠....당시 아르헨티나는 16강전에서 카레카의 브라질에게 일방적으로 쳐맞다가 마라도나의 스루패스 한방으로 극적으로 8강에 오르는등 소위 경기력에서 발려도 마라도나에 의존해 꾸역꾸역 결승에 올라온, 강력하던 4년 전과는 전혀 다른 약팀이었다[18]. 결국 결승전에서 10백을 시전하며 서독을 상대로 시작하자마자 1명 퇴장, 그 이후 클린스만에게 거친 태클로 퇴장했으나 이래도 서독이 8백의 아르헨티나를 뚫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절대로 아르헨티나의 우승만은 막아야만 한다며 열폭한 이탈리아 조직위원회가 루디 펠러에게 태클하다 페널티킥 헌납을 이유로 오심을 때렸다. 패널티킥을 받은 서독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승리할 수 있는 기회라서 그냥 암소리 안했다. 서독은 보통 페널티 킥은 주장 로타르 마테우스나 '킥의 달인'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번갈아 찼는데, 후일담으론 이때 마테우스가 축구화를 바로 갈아 신어 감각을 염려해 브레메에게 킥을 맡겼다는 썰이 있다. 이 선택이 적중하여 브레메는 페널티킥 방어의 신 고이고체아도 막지 못할 골대 끝 구석 으로 공을 차넣어[19]서독이 우승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못가 독일은 통일했다. 정말 독일의 입장에서 1990년은 독일 역사상 최고로 축복받은 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통일도 하고 월드컵 우승도 하고.
- 아일랜드 : '더티 리즈' 시절 리즈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이자 잉글랜드 국대 출신인 잭 찰튼 감독의 지휘 하에 프랭크 스테이플턴, 크리스 휴튼, 로니 웰란, 믹 매카시, 존 올드리지, 나이얼 퀸 등의 우수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견실하고 단순한 축구를 선보이며 조별 예선 3경기와 16강전을 통해 8강에 진출할 때 까지 4경기를 무재배했다. 허정무식 축구의 원조라 할 수 있다.
8 기록실
- 최다 득점 : 살바토레 스킬라치, 이탈리아. 6골.
- 최초 득점 : 살바토레 스킬라치, 이탈리아. 6월 9일 개막전, 對 오스트리아, 후반 33분.
- 최초 퇴장 : 에릭 위날다, 미국. 6월 10일 對 체코슬로바키아, 후반 7분.
- 최초 완전 무득점 경기 : 6월 13일 우루과이 對 스페인.
- 최초 승리 국가 : 이탈리아. 6월 9일 개막전, 對 오스트리아, 1:0 승.
- 최초 다득점 국가 :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5골.
- 최초 패널티킥 : 미할 빌레크,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전반 39분.
- 최초 멀티골 : 토마시 스쿠라비,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전반 25분 및 후반 33분.
- 해트트릭
- 호세 미겔 곤살레스 마르틴 델 캄포, 스페인. 6월 17일 對 한국.
- 토마시 스쿠라비, 체코슬로바키아. 6월 23일 對 코스타리카.
- 최다 득점 경기 - 이 2경기는 최다득점차 경기 3개 중 하나이기도 하다.
- 6월 10일 체코슬로바키아 對 미국, 5 : 1.
- 6월 15일, 서독 對 아랍 에미리트, 5 : 1.
- 최다 득점차 경기 - 최다 득점 경기에 포함된 2경기 제외
- 6월 18일, 소련 對 카메룬, 4 : 0.
- 자책골 : 드물게도 자책골이 기록되지 않은 월드컵이다.
- 최초 역전승 : 6월 20일 코스타리카 對 스웨덴. 코스타리카 2 : 1 승.
총 115골이 터졌고, 경기당 2.21골로 엄청난 골가뭄에 시달렸던 대회이다. 이를 반영하여 다음 대회부터는 공인구를 공격적으로 바꾸고, 승리의 승점을 2점에서 3점으로 올려 무재배를 막았으며, 경기지연행위에 대해선 과감하게 반칙을 선언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9 결과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1 | 서독[20] | 7 | 5 | 2 | 0 | 15 | 5 | +10 | 12 | 우승 |
2 | 아르헨티나 | 7 | 2 | 3 | 2 | 5 | 4 | +1 | 7 | 준우승 |
3 | 이탈리아[21] | 7 | 6 | 1 | 0 | 10 | 2 | +8 | 13 | 3위 |
4 | 잉글랜드 | 7 | 3 | 3 | 1 | 8 | 6 | +2 | 9 | 4위 |
5 | 유고슬라비아 | 5 | 3 | 1 | 1 | 8 | 6 | +2 | 7 | 8강 |
6 | 체코슬로바키아 | 5 | 3 | 0 | 2 | 11 | 4 | +7 | 6 | 8강 |
7 | 카메룬 | 5 | 3 | 0 | 2 | 8 | 7 | +1 | 6 | 8강 |
8 | 아일랜드 | 5 | 0 | 4 | 1 | 2 | 3 | -1 | 4 | 8강 |
9 | 브라질 | 4 | 3 | 0 | 1 | 4 | 2 | +2 | 6 | 16강 |
10 | 스페인 | 4 | 2 | 1 | 1 | 6 | 4 | +2 | 5 | 16강 |
11 | 벨기에 | 4 | 2 | 0 | 2 | 6 | 4 | +2 | 4 | 16강 |
12 | 루마니아 | 4 | 1 | 2 | 1 | 4 | 3 | +1 | 4 | 16강 |
13 | 코스타리카 | 4 | 2 | 0 | 2 | 4 | 6 | -2 | 4 | 16강 |
14 | 콜롬비아 | 4 | 1 | 1 | 2 | 4 | 4 | 0 | 3 | 16강 |
15 | 네덜란드 | 4 | 0 | 3 | 1 | 3 | 4 | -1 | 3 | 16강 |
16 | 우루과이 | 4 | 1 | 1 | 2 | 2 | 5 | -3 | 3 | 16강 |
17 | 소련 | 3 | 1 | 0 | 2 | 4 | 4 | 0 | 2 | 1라운드 |
18 | 오스트리아 | 3 | 1 | 0 | 2 | 2 | 3 | -1 | 2 | 1라운드 |
18 | 스코틀랜드 | 3 | 1 | 0 | 2 | 2 | 3 | -1 | 2 | 1라운드 |
20 | 이집트 | 3 | 0 | 2 | 1 | 1 | 2 | -1 | 2 | 1라운드 |
21 | 스웨덴 | 3 | 0 | 0 | 3 | 3 | 6 | -3 | 0 | 1라운드 |
22 | 대한민국 | 3 | 0 | 0 | 3 | 1 | 6 | -5 | 0 | 1라운드 |
23 | 미국 | 3 | 0 | 0 | 3 | 2 | 8 | -6 | 0 | 1라운드 |
24 | 아랍에미리트 | 3 | 0 | 0 | 3 | 2 | 11 | -9 | 0 | 1라운드 |
- 1위 : 서독
- 2위 : 아르헨티나
- 3위 : 이탈리아
- 4위 : 잉글랜드
- 골든슈 :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
- 골든볼 :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
- 실버볼 : 로타어 마테우스(서독)
- 브론즈볼 :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 신인상 :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유고슬라비아)
- 페어플레이상 : 잉글랜드
- 올스타팀
특이하게도 이 월드컵에서는 16강 탈락국 중 1무 2패를 거둔 팀들이 한 팀도 없었다. 20위 이집트의 2무 1패 밑으로 21위부터 24위까지는 죄다 3패(...)
10 여담
- "성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세리에 C 에서 뛰어도 좋으니 축구선수가 되었을것이다."라고 말했을정도로 축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한
이탈리아인 종특이지 뭐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개막식 축하 행사로 또 다른 세계 3대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세계 3대 테너인 이 셋은 평상시 비교 당하기 싫어서 같이 부르는걸 주저했는데,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축하하기위해 파바로티가 불렀다고한다근데 호세 카레라스랑 플라시도 도밍고는 스페인사람이잖아?뭐 플라시도 도밍고도 레알 좋아하는거보면 축구 좋아하는거같긴 하더만이후에도 이 셋은 3Tenors라는 이름으로 1994년, 1998년, 2002년 월드컵 직전에 해당 국가에 가서 공연을 한 바 있다.(모두 지휘는 주빈메타가 담당했다.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왔던 셈인데, 당시 파바로티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고, 레퍼토리 또한 94년 미국때와 완벽하게 똑같아서 욕 좀 먹었다..;;;;;)
- 이 때 세명의 테너가 공연을 한 공연장은 '카라칼라 욕장' 즉, 로마시대에 목욕탕 자리였던 유적지이다. 이 때 이후로 요즘에도 7,8월 여름 오페라 휴무기 때에는
관광객들을 위하여이 유적지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을 한다.
- ↑ 그런데 그리스는 그 다음 월드컵인 미국 월드컵에 처녀출전하게 된다.그리고 동네북...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야 첫 16강에 진출. 2002 월드컵 개최 경쟁(1996년) 당시 일본이 월드컵을 유치할 수 없는 이유로도 거론된 바 있다.
하지만 주앙 아벨란제를 비롯한 브라질 관계자들이 일빠들이라...그리고 일본도 1997년 98 월드컵 진출을 자력으로 해냈다.카타르 : ㅋㅋㅋ - ↑ 실제로 경기장 노후화 논란은 월드컵 이후에도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위에 언급된 델리 알피(유벤투스 홈구장)의 경우 애초부터 설계상의 문제로 스탠드와 경기장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말이 많은 상황에서 노후화까지 나타나 철거 후 지금의 새 구장을 만든 계기를 나타내었고 결승전을 치룬 스타디오 올림피코도 역시 현재 같은 연고지 구단인 AS로마와 SS 라치오가 사용중에 있지만 이 구장 마저도 노후화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어서 몇년 안에는 다른 새 구장으로 갈 것으로 보고있다. 이 외에도 개막전 경기를 펼친 산 시로와 산 파울로 등의 경기장들도 역시 노후화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빗발쳐서 노후화 논란 떡밥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지만 여전히 대다수 구단들이 겪고 있는 재정적인 문제와 개판 행정으로 악명높은 이탈리아 지방 당국의 행정력을 본다면 해결기미는 일부 구단에서나 보여질 듯 싶다. 그나마 새 구장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는 유벤투스와 16-17 시즌 부터 새 구장 스타디오 델라 로마를 사용하는 AS로마의 모습은 가장 큰 위안거리라 하겠다.
- ↑ 이스라엘이 남미 3위 콜롬비아에게 1, 2차전 합계 0:1로 패했다. 이스라엘은 1986년 대회부터 이 대회까지 OFC 소속이었다.
- ↑ 그리고 폭죽을 던진 관중도 칠레에 매수되었다고 한다.
- ↑ 그리고 24년이 지난 2014년에 열린 브라질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는 16강을 넘어 사상 첫 8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업적을 달성하게 된다.
- ↑ 그리고 4년뒤 미국 월드컵에서 작정하고 4강 진출...ㄷㄷㄷ
- ↑ 이 가운데 푈러와 클린스만은 후에 각각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컵의 사령탑을 맡았다.
- ↑ 그래서 한동안 황보관은 이 프리킥 떡밥으로 인해 유명세를 탔고.. 이후에도 그럭저럭 잘갔다,
서울 감독 시절에도 이 떡밥덕에 이미지 포장된거는 함정이지만.. - ↑ 현재 프랑스 리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감독으로 활약중
- ↑ 후에 KBS에서 브라질 월드컵 개막 직전에 방영한 국가대표팀 관련 다큐멘터리인 '2014 브라질 월드컵 특집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 #를 보면 90년 월드컵에 참가한 당시 선수들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였던 전 국가대표 선수인 최순호와 김주성, 박경훈은 대회때 느낀 아쉬움을 여지없이 토로하였는데 그중 박경훈 전 감독의 경우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압박축구로 나타났던 그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게 결정적인 패인' 이라고 말하면서 세계 축구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우리 대표팀의 자세에 커다란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때 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6전 전승에 25득점을 작렬시켜 아시아 무대를 거의 주름 잡았고 상대들도 거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이런 모습때문에 언론들의 설레발은 계속해서 펼쳐지게 되었고 그런 분위기에 적응된 대표팀도 역시 대회에 참여하며 나섰지만 결국 전패 탈락의 아픔을 느끼는 굴욕속에 대회를 마무리 짓게 된다.
- ↑ 하지만 이집트는 90년 대회를 끝으로 더이상 월드컵에 나서지 못하였고 오히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휩쓸며 아프리카 대표로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에 나서기도 하였지만 최근 행보를 본다면 네이션스컵을 휩쓸었던 리즈 시절과는 거리가 멀어서 안습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 ↑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의 원조이다.
- ↑ 실제로 30분경 아르헨티나 선수 하나가 논란성이 있는 퇴장을 당했다. 왜냐 하면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의 우승은 무조건 막고 싶어해서였다. 서독은 이탈리아와 아무런 담합도 없었지만 이 이탈리아의 쓰잘데기 없는 썩어빠진 복수심으로 인하여 되려 큰 혜택을 입능 게 되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에게는 징크스가 하나 있는데 심판이 이탈리아 사람인 경기는 무조건 패했다.
- ↑ 그러나 이탈리아는 4강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역습에 당해 탈락
- ↑ 실제로 데이비드 플래트의 헤딩슛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크리스 워들의 슈팅이 서독 골키퍼의 손에 맞고 골대를 튕기고 나갔으며 또한 서독도 위르겐 클린스만과 루디 푈러가 비슷하게 골찬스를 놓칠 만큼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 ↑ 선방이라기 보단 잉글랜드 키커인 피어스가 가운데로 강하게 찬 것이 일그너의 발에 맞아 튕겨 나왔다. 반면 피터 쉴튼은 한 골도 막아내지 못했다. 피터쉴튼의 탓 보다는 서독 키커가 모두 정교한 킥을 한 탓이 더 크다
- ↑ 잉글랜드 승부차기의 흑역사도 이 대회부터 시작된다.
- ↑ 그나마 카니자가 없었다면 16강도 못 갔을 거라는 것이 중론이다
- ↑ 실제 고이고체아는 정확히 방향을 읽고 빠르게 몸을 뻗었으나 킥이 워낙 구석으로 향해 손이 닫지도 못하고 골이 성공된다
- ↑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에게 우승을 내주고 3위를 했다.
- ↑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우승을 독일에게 내줬으나 16년 후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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