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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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FIFA 월드컵
1회2회3회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1 개괄

정치와 파시즘으로 얼룩진 역사상 최악의 쓰레기 월드컵.

말 그대로 베니토 무솔리니컵. 월드컵 역사상 막장성으로는 선두에 서는 대회이다. 가장 큰 원인은 2년 후의 베를린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베니토 무솔리니파시즘을 선전하고자 용을 쓴 대회로 악명이 높은 탓이다. 유럽 최초의 월드컵인데 이렇게..... 이와 비견될 정도로 막장성을 자랑했던 대회는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정도. 그러나 적어도 1966년의 잉글랜드나 1978년의 아르헨티나는 상대팀 선수에게 손은 대지 않았지만 이 대회의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을 공갈협박하여 자국 대표팀으로 편입시키고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에 이 월드컵이 앞의 두 월드컵과는 비교도 안되는 막장성을 자랑한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렸던 월드컵이 개최국 우루과이의 우승으로 끝난지 4년 후,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 월드컵이 열리게 되었다. 1934년 5월 27일부터 6월 10일까지 8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이 월드컵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처음으로 지역 예선이 열렸다는 것이다. 지역예선에는 32개의 팀이 참가하여 16개의 팀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대회의 방식은 조별 리그 없이 녹아웃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렸다. 녹아웃 토너먼트제였기 때문에 같은 라운드의 경기는 모두 같은 시간에 열렸다. 처음으로 3,4위전도 열렸으며 이탈리아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2대 1로 제압하고 유럽 국가 중 첫 월드컵 챔피언이 되었다.

2 개최지 선정

1932년에 이탈리아스웨덴과의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여 제 2회 대회의 개최권을 따냈다. 원래 FIFA이탈리아월드컵을 개최하면 파시스트의 나팔을 불어제낄게 안 봐도 블루레이라서 별로 개최권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스웨덴 정부대공황의 여파로 GG를 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에게 개최권을 넘겼다. 이탈리아 정부는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급히 350만 리라예산을 편성하여 개최 준비를 했다. 존나좋군??

3 지역예선

이 대회 지역예선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있었다.

  • 전 대회 챔피언우루과이가 불참했다. 우루과이의 불참 사유는 전 대회를 개최할 때 유럽팀들이 대거 불참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것 때문에 이 대회는 전 대회 우승국이 출전하지 않은 유일한 대회로 남아있다.
  •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영국 홈네이션 팀들도 출전을 거부했다. 쪼렙들과 노는 것보다 FA컵이 더 수준이 높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 이탈리아는 개최국 프리미엄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우리도 예선부터 뛰고 싶다고 FIFA를 졸랐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FIFA가 그 요청을 수락해서 개최국이 자동 출전권을 포기한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그러다 떨어지면 무솔리니한테 뭔 소리를 들으려고.. 걱정마. 상대팀 락커룸에 보병소대 하나만 보내면 끝나 결국 이탈리아밀라노에서 열린 지역예선에서 그리스를 4:0으로 완파했고 그리스가 2차전을 포기하면서 본선에 나갔다. 물론 개최국이 지역예선을 치른 것은 이 사례와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의 사례 두 가지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는 하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을 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탈리아와는 달리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혀서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개최국 버프로 그냥 본선에 진출했는데 이탈리아가 지역예선에서 떨어졌어도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에게 루이스 몬티, 엔리케 과이타, 라이문도 올시 등 선수들을 뭉텅이로 빼앗겨서 쪽도 못쓰는 지경까지 갔다. 적어도 1966년의 잉글랜드나 1978년의 아르헨티나는 상대팀 선수들을 협박해 자국 대표팀에 집어넣는 짓은 안 했다.
  • 지역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있던 미국멕시코는 일정이 많이 늦어진 관계로 아예 개최지인 이탈리아로 건너가 지역예선 최종전을 치렀다. 미국이 승리하여 본선에 나갔고 이 경기는 앞서 열린 이탈리아 vs 그리스전과 함께 월드컵 사상 개최국에서 열린 유이한 지역예선 경기가 되었다.

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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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대회 포스터

포스터의 구성은 간단했다. 앞에 파란 옷을 입은 선수는 개최국인 이탈리아의 선수를 형상화 한것이고 뒤에는 출전국들의 국기가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마스코트와 공인구는 이번에도 없었다.

5 경기장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
(수도 로마를 제외하면 가나다순)

6 대회 진행

6.1 1라운드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8강 진출국.

1라운드
이탈리아미국
스페인브라질
오스트리아프랑스
헝가리이집트
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
스위스네덜란드
독일벨기에
스웨덴아르헨티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6.2 8강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4강 진출국.

8강
이탈리아스페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체코스위스
독일스웨덴

6.3 4강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진출국.

4강
이탈리아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독일

8강부터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경기대진표경기대진표경기대진표경기대진표
A1라운드 1경기
이탈리아 7:1 미국
I8강전 1경기(5경기)[5]
이탈리아 1:1(1:0) 스페인
M4강전 1경기
이탈리아 1:0 오스트리아
P결승전
이탈리아 2:1 체코슬로바키아
B1라운드 2경기
브라질 1:3 스페인
C1라운드 3경기
오스트리아 3:2 프랑스
J8강전 2경기
헝가리 1:2 오스트리아
D1라운드 4경기
헝가리 4:2 이집트
-
E1라운드 5경기
체코슬로바키아 2:1 루마니아
K8강전 3경기
체코슬로바키아 3:2 스위스
N4강전 2경기
체코슬로바키아 3:1 독일
F1라운드 6경기
네덜란드 2:3 스위스
G1라운드 7경기
독일 5:2 벨기에
L8강전 4경기
스웨덴 1:2 독일
H1라운드 8경기
아르헨티나 2:3 스웨덴
O3/4위전
오스트리아 2:3 독일
1934 FIFA 월드컵 우승

이탈리아
첫 번째 우승
(★)

7 기록실

17경기에 70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12골을 기록했다.

8 결과

1위 - 이탈리아
2위 - 체코슬로바키아
3위 - 독일
4위 - 오스트리아

순위국가경기득실승점비고
1이탈리아5410123+99우승
2체코슬로바키아430196+36준우승
3독일4301118+363위
4오스트리아420277044위
5스페인311143+138강
6헝가리210154+128강
7스위스210155028강
8스웨덴210144028강
9아르헨티나100123-101라운드
9프랑스100123-101라운드
9네덜란드100123-101라운드
12루마니아100112-101라운드
13이집트100124-201라운드
14브라질100113-201라운드
15벨기에100125-301라운드
16미국100117-601라운드

9 수상

MVP
1위 - 주세페 메아차(이탈리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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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메아차

2위 - 리카르도 사모라(스페인)
3위 -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득점왕
1위(5골) -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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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리히 네예들리

2위(4골) - 에드문트 코넨(독일),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3위(3골) - 라이문도 오르시(이탈리아), 레오폴트 키엘홀츠(스위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베스트 11
골키퍼: 리카르도 사모라(스페인).
풀백: 하신토 킨코세스(스페인), 에랄도 몬셀리오(이탈리아).
하프백: 루이스 몬티, 아틸로 페라리스(이상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실라우렌(스페인).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 라이문도 오르시, 엔리케 구아이타(이상 이탈리아), 마티아스 진델라(오스트리아),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10 뒷 이야기

월드컵 역사상 가장 더러운 대회였다. 한마디로 오직 베니토 무솔리니 혼자만의 대회라고 보면 매우 정확한 대회였다. 이 월드컵 자체가 철저하고 완벽하게 무솔리니 마음대로 진행된 대회였으며 그야말로 모든 것이 무솔리니 꼴리는 대로 좌우되는 대회였다. 한마디로 비리로 얼룩졌다는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따위는 명함조차 못내밀 만큼 이 월드컵의 부정 부패는 극에 달했다.

  • 이 대회를 아예 베니토 무솔리니가 직접 개입하면서 이탈리아와 맞붙는 상대팀 선수 라커룸에 군병력을 보내서 "무조건 져! 이기면 총살이다!"라며 공갈협박을 했다. 때문에 이탈리아와 맞서는 모든 팀의 선수들은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 조직위원회의 총칼협박으로 인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네예틀리 선수는 "졌지만 살아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 이탈리아가 이 월드컵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루이스 몬티, 엔리케 구아이타, 라이문도 오르시 등에게 역시 총칼로 협박해서 이탈리아 유니폼을 강제로 입혔다. 게다가 심판들을 모두 소집시킨 뒤 이탈리아에게 유리한 판정을 강요했다. 물론 이탈리아가 우승하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저 3명의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는 특별히 귀하게 대우해줬는데 최고급 승용차와 최고급 저택을 하사하고 무솔리니가 죽을 때까지 매년 거액의 연금을 지급했다.
  • 나치 독일이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와 나란히 파쇼끼리 나눠먹기를 시전하려고 둘이서는 아주 쌍으로 편파판정으로 도배했으나 이탈리아가 결승에 오른 반면 나치 독일만 체코슬로비키아가 편파판정을 이겨내고 나치 독일을 제압하는 바람에 나치 독일이 4강에서 탈락하자 아돌프 히틀러는 노발대발하면서 "그것도 못이겨? 심판이 도와주는데 왜 못이겨!"라고 외치며 길길이 날뛰다가 그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 모두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감옥에 때려넣었다.
  • 파쇼끼리 나눠먹기를 시전하는 더러운 대회인 것을 남미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우루과이에서는 아예 불참을 선언했고 아르헨티나는 일부러 못하는 선수들을 보내서 고의로 패하고 일찍 귀국했다.
  • 전 대회에서는 중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선 라디오 중계에 신경을 써서 9개국에 15개의 채널로 전파를 쏘았다. 물론 중간중간 충실하게 파시즘을 선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 독재자 무솔리니국가 전체의 정신적 통합 및 파시즘 선전을 위해 1934년 월드컵을 철저히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배고픔에 굶주린 이탈리아 국민들의 불만과 광기를 축구장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무솔리니는 관중들로 하여금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 라는 응원구호를 외치도록 만들었다. 하여튼 당시 이탈리아에 있어서 만악의 근원이 아닐 수 없다.
  • 이탈리아는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대표 선수들을 귀화시켜 자기네 팀으로 흡수시켰다. 여기에 해당된 선수가 아르헨티나의 도살자 루이스 몬티, 4강전 결승골의 주인공 엔리케 구아이타, 결승전 동점골의 주인공 라이문도 오르시였다. 이렇게 주축 선수들을 홀라당 뺏긴 아르헨티나우루과이의 불참 소식과도 맞물려 대회 참가의 의지를 잃었고 스웨덴에게 3대 2로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후로 아르헨티나는 1954년까지 월드컵에 불참한다.
  • 이탈리아의 또 다른 문제는 지역감정이었다. 남북부간의 선수들끼리는 물론이고 같은 북부라도 유벤투스인터 밀란의 라이벌 의식이 심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주장이자 주전 골키퍼였던 잔피에로 콤비(유벤투스)와 최고 스타플레이어 주세페 메아차(인터 밀란)가 서로 내기[8]를 통해 친해진 관계로 두 팀간의 라이벌 의식은 끈끈한 팀플레이로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 메아차를 은근히 깔보던 콤비메아차를 인정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 미국에 패하여 본의 아니게 로마의 휴일을 찍게 된 멕시코. 하지만 이후 멕시코는 1980년까지 미국에게 단 한 차례도 승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전적은 24전 21승 3무. 이 정도면 공한증 뺨친다.
  • 브라질유럽에서 열린 1934년 대회와 1938년 대회에 모두 참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커피 무역선이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커피 수출을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선박에 몸을 실은 뒤 현지에서 커피를 팔아 경비를 조달함으로써 근근이 대표팀을 꾸려나갔다. 이러한 1930년대 개근에 힘입어 브라질은 아직까지도 유일무이한 월드컵 개근국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9]
  • 이탈리아가 이 대회에서 5경기를 치르면서 3골만을 허용하며 세운 최소실점 우승 기록은 64년을 이어온 엄청난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1998년에서야 프랑스가 2골만을 허용하고 우승하면서 깨졌다.
  • 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에 분포된 8개의 구장을 쓰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이렇게 날조로 우승한 이탈리아는 그래도 성이 안찼는지 뜬금없이 축구의 종주국을 박살내러 간답시고 배에 몸을 싣고 런던으로 갔다. 슈퍼 월드컵 이에 잉글랜드는 무솔리니의 공갈에 못이겨 평가전을 치뤄줬는데 이 경기는 '하이버리의 난투극'이라 불릴 정도로 그 90분의 경기시간 내내 몸싸움으로 도배된 경기였다. 결국 루이스 몬티는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실려갔고 경기 결과는 잉글랜드가 4-3으로 이탈리아를 이겼다. 공갈협박으로 한 월드컵 우승따위 어딜 디밀어? 그리고 루이스 몬티의 선수생명은 그걸로 끝!
  1. Partito Nazionale Fascista의 약자. 국가 파시스트 당의 약자이다
  2. 2차 대전중에 폭격을 맞고 파괴되었다
  3.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산 시로가 맞다. 1926년 개장
  4. 유벤투스토리노 FC가 두 집 살림을 하던 델레 알피 구장의 원래 이름
  5. 5경기는 1경기의 재경기
  6. 인터 밀란의 역대 최고 레전드이자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중 한 명. 골키퍼를 제끼는 트릭을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선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당시에도 이것은 큰 흥미거리였다고 한다. 봤지? 골키퍼는 제끼라고 있는거야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53경기 출전 33득점으로 아직도 역대 득점 순위 2위. 그리고 밀라노에 위치한 5성급 축구 경기장에 그의 이름이 헌정되어 있다.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이 바로 그의 이름이다
  7. 2006년 11월 이전까지의 기록에는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에드문트 코넨(독일),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이렇게 총 3명이 4득점으로 공동 1위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FIFA 측의 자료 검토 결과 네예들리의 1득점이 누락된 것으로 판명, 네예들리의 단독 1위로 기록이 수정됐다
  8. 자신의 기술인 메아차의 설명에 있는 골키퍼 제끼기가 콤비에게 먹히는지였다고 알려져 있다
  9. 브라질은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침체된 1930년 내내 국제대회 때마다 이랬다. 1932년 LA 올림픽 때도 커피를 잔뜩 싣고 와서 '이거 팔아서 참가비용 쓸께요'하다가 거부당해서 재정적 곤란을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