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비/결혼 후

1 결혼 후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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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 황실 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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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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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23일, 장녀 마코 공주를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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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29일, 차녀 카코 공주를 낳고.

결혼 후 곧 임신하여 1991년 첫째 마코 공주를, 1994년 둘째 카코 공주를 낳았다.[1][2] 마코 공주가 태어날 때 나루히토 황태자는 아직 미혼, 카코 공주가 태어날 때 황태자 부부는 결혼한 지 고작 1년이었다. 그 때문에 다카마도노미야 히사코(高円宮久子) 비[3]"큰며느리가 아직 아기를 낳지 않았는데 작은며느리가 계속 임신을 하다니, 황실 내 서열을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랍니다."라며 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카코 공주는 태어난 이후 눈치를 보고 자라서인지, 지금과 달리 어릴 때는 아주 조용한 성격이어서, 그 때문에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게 했다는 소문도 있다.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는 카코 공주를 낳고 계속 셋째를 낳고 싶어 했다고 한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역시 아들이 없어서 단절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아직 나루히토 황태자 내외가 아이를 못 낳아,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고.

이런 일도 있었지만 시집오자마자 금방 아기를 둘이나 낳았고, 종종 덴노 부부를 방문하여 어린 두 손녀의 재롱을 보여주면서 덴노 부부와 차남 부부는 친밀해졌다.

황실 학교[4]가쿠슈인을 졸업한 덕분에 시집오기 전부터 남편 후미히토 친왕 및 시누이 사야코 공주와 친밀했으며, 황실 일가와도 친하게 지냈다. 특히 사야코 공주와는 종종 만나서 함께 케이크쿠키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때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도 함께 어울리곤 했다고. 결혼 후에도 키코 비는 상냥하고, 순종적이며, 애교 있게 굴어서 시부모의 환심을 샀다고 한다.

또한 키코 비는 결혼 후 고민이나 문제거리를 친정 부모와 의논하는 게 아니라,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와 의논했다고 한다. 친정 부모와 가까이 살며 뭐든 친정 부모와 의논하는 마사코 황태자비와는 대조적이라고.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로서는 키코 비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처음 시집왔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보다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아키히토 덴노의 숙모 지치부노미야 세츠코(秩父宮勢津子) 비[5]는 자녀를 낳지 못하여 후미히토 친왕을 손자처럼 귀여워했는데, 훗날 후미히토 친왕의 아내가 된 키코 비 또한 귀여워했다. 세츠코 비는 자신이 오랫동안 맡고 있었던 결핵예방협회 총재의 자리를 키코 비에게 물려주기도 했는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귀국자녀[6]이며 친왕의 아내인 키코 비에게 많은 동질감과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츠코 비가 1995년 사망하자, 지치부노미야 부부가 살던 저택은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물려받아 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황실 생활과 시집살이고충이 아주 없을 수는 없는지, 차남 일가의 시종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간간이 흘러나온다. 키코 비가 대외적으로는 항상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하지만, 집안에서 시종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 참고로 키코 비의 미소는 일명 키코 짱(ちゃん) 스마일이라 불리며 유명한데, 사진들을 보면 젊은 시절 해맑고 순수하던 미소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억지스럽고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2 히사히토 친왕의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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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히토 친왕의 출산을 앞두고서 찍은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가족사진. 당시 큰딸 마코 공주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3학년, 작은딸 카코 공주는 가쿠슈인 초등과 6학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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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히토 친왕을 낳고 아이쿠(愛育) 병원[7]에서 퇴원하는 키코 비후미히토 친왕. 키코 비는 늙어가는데, 후미히토 친왕은 머리만 빼놓고 얼굴은 그대로다. 그도 그렇지만 갈수록 시할머니 고준황후(나가코)처럼 얼굴이 기괴하게 변해가는 건 기분 탓?

황태자 부부의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염두에 둔 여성 덴노 논의가 한창일 때 키코 비의 셋째 임신이 발표되었고, 2006년 9월 6일 오전 8시 27분, 아이쿠(!) 병원에서 히사히토 친왕을 낳았다. 1965년 후미히토 친왕이 태어난 이래로 41년 만의 왕자 탄생이었다. 후계자의 탄생에 일본은 열광했고, 여성 덴노에 대한 논의는 잠잠해졌다.

이는 일본 황실 사상 최고령 출산[8]으로 기록되었고, 전치태반[9] 때문에 일본 황실 최초로 제왕절개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키코 비에게는 여러 모로 힘들었던 출산이었다.[10] 그래서인지 일본 최고의 산부인과, 소아과, 마취과 의료진들이 동원되어 출산했다고.[11]

나이도 많고 몸도 아픈 마사코 황태자비에게서 더 이상 아들을 기대할 수 없자, 황실에서는 키코 비에게 아들 출산을 종용했다. 차남 부부에게도 야심이 있었던 듯하고.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남으로써 차남 일가는 엄청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황태자 부부와 아이코 공주는 소외되었다.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는 고대하던 손자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쿠 병원으로 달려왔고, 이후로도 하나뿐인 손자하고만 휴가를 함께 보내고 식사를 하는 등 유독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다. 또한 차남 부부는 2013년에 들어서는 히사히토 친왕을 데리고 이세신궁과 역대 덴노들의 무덤을 참배하였고, 오키나와 현의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여 전몰자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2010년 4월, 히사히토 친왕은 가쿠슈인 유치원이 아닌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유치원에 입학했다. 예상을 뒤엎은 진학에 대하여, 차남 부부는 "다양한 또래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12] 키코 비가 오차노미즈 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던 인연도 있고. 3년 후인 2013년 4월에는 역시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초등학교로 진학했다.[13]

3 조카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와의 경쟁

아이코 공주가쿠슈인 초등과 2학년 말기이던 2010년 3월[14]부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여 한동안 등교를 거부한 적이 있다. 남자아이들의 난폭한 행동이 두렵다면서 복통과 불안감 등을 호소하며, 아이코 공주는 조퇴결석을 반복했다. 이에 마사코 황태자비는 적응장애와 우울증으로 칩거하고 있던 와중에도, 딸과 등하교를 함께 하고 수업을 참관하는 등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궁내청과 가쿠슈인 초등과 측은 애써 별일 아닌 것처럼 표현했지만, 황태자 부부와 아이코 공주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15]

하지만 2013년 알려진 것에 따르면, 2013년 초등과 6학년이 된 아이코 공주는 학교에 잘 적응하여 매우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여러가지 면에서 키코 비에게 심적인 부담을 안겨 줄 가능성이 높다. 일단 히사히토의 성적이 아이코 공주보다 뒤쳐지면 황실 내에서 "차차기 황위 계승권자의 어머니가 되어 아들 교육을 어떻게 했느냐?!"라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고[16],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점점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는 아이코 공주의 인기가 히사히토 친왕을 추월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황위 계승에 위협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사에 따르면, 키코 비히사히토의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황태자 부부가 아이코 공주를 장래 도쿄대학에 진학시키려 하는 듯하기 때문에, 키코 비도 히사히토 친왕을 도쿄대학에 보내려 하리라는 것. 그런데 문제는 히사히토의 큰누나 마코 공주와 작은누나 카코 공주가 제 아비를 닮아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고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 교양학부 예술과학과에, 차녀 카코 공주에스컬레이터 식 진학으로 신설학과인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언니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로 새로 입학했다. 두 공주의 진학에 대해 학교와 궁내청에서는 "일반 수험생들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여 선발되었다. 경쟁률은 결코 낮지 않았다." "(하필 카코 공주가 입학하는 해에 교육학과가 신설된 것에 대해)예전부터 개설을 준비하던 학과인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ref>[17], 키코 비도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에 비해 학력과 경력에서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력 높은 부모의 아이가 부모를 따라 학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키코 비의 바람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반반이다.

2016년도 <유럽의 왕실> 다음 카페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올라왔다. 키코 비히사히토 친왕을 장래 도쿄대학에 진학시키려 하는데, 문제는 키코 비가 직장생활 경험도 없고 고전적인 비(妃)라는 이미지가 강한 반면,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교관으로 일한 희대의 수재이자 커리어우먼에 새로운 시대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것. 게다가 황태자 부부도 아이코 공주를 도쿄대학에 진학시키려 한다는 소문 및 아이코 공주의 우수한 성적을 찬양하는 주간지의 기사를 보고 들으며, 키코 비는 애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문에 대한 키코 비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지만, 일본 황족들 중 히사히토의 또래는 5살 위의 사촌누나 아이코 공주뿐이라, 세간에서도 일본 황족들 사이에서도 비교를 많이 당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래서 키코 비는 히사히토 친왕이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키코 비히사히토에게 게임을 금지시키며, 텔레비전은 뉴스와 다큐멘터리만 보게 하고, 그 외에는 다 금지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황실에 대해 다루는 주간지의 기사에 의하면, 히사히토 친왕을 너무 억압한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본인이 원하는 학과가 도쿄대학에 있다면 좋겠지만, 미래의 덴노라는 이유로 너무 억압하는 것이 아닐까?? 진로에 대해서는 히사히토 친왕이 좀 더 성장한 후에 논의해야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썼다. 주간지 기사가 이럴 정도면 키코 비의 억압이 엄청나긴 한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히사히토 친왕을 너무 오냐오냐 떠받들며 키운다고도 한다. 같은 잘못이라도 두 공주가 했을 때는 꾸짖지만 히사히토 친왕이 했을 때는 넘어가서 두 공주의 불만이 많은데, 특히 작은딸 카코 공주가 불만이 많다고 한다.

4 그 이후 결혼 생활

4.1 소문

4.1.1 히스테리?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키코 비의 히스테리가 심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2015년부터는 아예, 키코 비가 바깥에서는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하지만 집안에서는 소리를 지른다거나 성질을 부린다는 이야기가 일본에서 정설로 여겨진다. 그에 대해서는 동궁(황태자 일가)보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주어지는 생활비가 적어서라는 설과, 일부러 시위하려고 소문낸 것이라는 설이 있다.

히사히토 친왕이 암묵적으로는 황태손으로 여겨지긴 해도 공식적으로는 황태손의 지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18]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시종들 및 생활비는 황태자 일가보다 적다고 한다. 2015년에는 첫째 마코 공주영국 대학원 유학비와 생활비, 둘째 카코 공주의 대학 등록금, 초등학생인 막내 히사히토 친왕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만큼 돈이 많이 드는데,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만 있는 황태자 일가보다 생활비를 적게 받아서 먹고 살기 빠듯하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문 덕에 일본 국민들은 키코 비에게 더 우호적인 시선을 보낸다고. 적은 돈을 가지고, 바지를 입고 3남매의 육아를 직접 해낸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실제 궁내청 황실 관련 예산 사용 내역을 보면, 실제로는 후미히토 친왕 일가에 돌아가는 돈이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에게 돌아가는 돈보다 2배 이상 더 많다고 한다. 현재 후미히토 일가가 받는 돈이 1년 기준으로 약 7천만 엔이고, 나루히토 일가가 받는 돈이 3천만 엔이라고 한다. 후미히토 일가 등 각 미야케에 배당되는 돈을 제외하고 일본 황실에 배정되는 돈이 1년에 약 3억 3천만엔인데, 이중 제례비 등 황실 행사 용도로 사용되는 2억엔 가량을 제외하고 1억엔을 아키히토 부부, 나머지 3천만엔을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가 받는다.

참고로 현재 도쿄대학 학부 졸업생이 첫 직장에서 받는 초임이 평균적으로 월 24만엔 가량임을 고려하면 누가 봐도 후미히토 친왕 일가가 적게 받는다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가족이 늘 때마다 특별 예산 증액의 형태로 추가 비용을 더 받아온 후미히토 일가와 달리,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는 아무리 저기서 가족이 더 늘어나도 황태자 일가에게 주는 고정비용이라 더 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오히려 미야케를 연 차남이 황태자인 장남보다 더 많은 비용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매번 돈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19]

아무튼 2015년 당시에는 <유럽의 왕실> 다음 카페에서는, 키코 비가 성질을 부린다는 소문의 글이 자주 올라왔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시종들이 야반도주를 한다, 키코 비가 요리사를 물건처럼 부른다거나, 언제 불려갈지도 모르고 24시간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 요리사가 1명뿐이라 힘들다, 등.

그리고 이 소문은 2015년 7월의 한 주간지에 실린 기사의 폭로로 인해 기정사실로 확정되었다. (기사 원문 참고.) 이 주간지의 기사에 따르면, 아키시노노미야 궁저의 요리사였던 사람을 직접 인터뷰했는데 소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오히려 더 심한 취급을 받는다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요리사는 인터뷰 시작부터 중간에도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불안해 하더니, 인터뷰를 끝내기도 전에 자리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주간지를 체크하고 있는 키코 비에게 잘못 걸릴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는데, 어지간히 키코 비에게 시달리지 않고서야 이런 반응을 보이기 쉽지 않다. 이 정도면 흡사 일본조현아 수준이다.

덤으로 외무성에서 황족 수행원으로서 공무에 동행한 이력이 있는 외교관들 사이에서도, 키코 비에 대한 평이 매우 안 좋다고 한다. 일본 정부 소속의 공무원인 만큼 함부로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워 하지만, 실제로는 "언론보도와 실제로 옆에서 보고 들은 인상이 많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는 평이 지배적이라고 한다.[20] 키코 비는 공무에 동행하는 수행원이나 통역관에게도 (겉으로는 보이지 않게 뒤편에서)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전해진다.

2016년 1월 마코 공주가 귀국하여 박물관의 연구원이 되긴 했지만, 황족으로서의 공무가 우선이기 때문에 무급 비정규직이며, 카코 공주는 아직 대학생인 만큼,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생활비는 여전히 빠듯할 것으로 추정된다.

4.1.2 부부싸움

게다가 이제는 하다하다 2016년에 들어서는 후미히토 친왕이 키코 비를 폭행한다는 소문에, 쇼윈도 부부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다만 소문들이 진짜라기보다는, 후미히토 친왕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또는 이미지로 보는 게 맞는 듯하다. "후미히토 친왕이 정말 키코 비를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후미히토 친왕은 여자를 막 대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주된 이유는 자녀교육 문제라고 한다. 엄격한 교육을 하는 키코 비와는 달리, 후미히토는 자유방임형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후미히토의 스캔들 같은 문제는 신경도 안 쓰고 문을 쾅 닫아버리는 식으로 응수한다고.(…) 말만 들으면 진짜 쇼윈도 부부 같은데… 혹시?

다만 서로 사이가 어떻든 간에, 공무에서는 여전히 (2016년 기준) 키코 비마치 하녀처럼 후미히토우산을 들어주고 있다.
유럽 왕실 카페 : 후미히토 네가 우산 좀 들면 안 되겠니?

4.1.3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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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 태국 순방을 떠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후미히토의 생모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배우라는 소문이 있는데, 후미히토 역시 태국 여성뿐만 아니라 다카라즈카 가극단원과도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네티즌은 "친엄마나 내연녀나 다카라즈카 가극단원이냐?!"고 비꼰다. 이런 와중에도 후미히토 친왕은 낯 두껍게도 아내 키코 비와 함께 다카라즈카 가극단 공연을 관람하는 공무를 했다.

게다가 안마시술소(19금)의 단골에, 해외순방을 갈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키코 비가 같이 갈 때도 역시 해외 성매매를 한다는 소문이 일본에서 도는데, 일본인들은 거의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2003년에는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4명이 모두 함께 태국 순방을 갔는데, 당시 초등과 6학년과 3학년이던 어린 두 공주들에게는 첫 해외순방이었다. 그런데 후미히토 친왕은, 아내와 어린 두 딸이 함께 묵고 있는 숙소에서 태국 여성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이에 키코 비의 친정아버지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 교수가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으나, 후미히토 친왕은 좀처럼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듯하다. 후미히토의 평판이 바닥을 기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갈 정도네

4.1.4 열등감?

키코 비는 황실에 시집와서 공무와 육아를 하면서도 공부까지 하여 1995년 가쿠슈인 대학에서 석사학위(심리학)를, 2013년 오차노미즈 여대에서 박사학위(인문학)를 받았다. 그런데 이는 학구열 때문만이 아니라, 열등감 때문이기도 하다고.

황족들 중에는 해외 명문대학에 유학한 사람이 많고, 특히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전직 외교관이다. 키코 비가 졸업한 가쿠슈인 대학도 좋은 대학이긴 하지만, 해외 대학에 유학한 경험은 없고, 그래서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을 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키코 비박사학위 논문은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고, 오차노미즈 여대에서도 비공개(열람 금지)라서, 여기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보통 박사학위 논문쯤 되면 그 분야의 전문가의 견해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각 분야의 유명 저널 등에 실리기 마련이며, 특히 이공계의 경우 아예 해당 논문 투고가 성공해야 박사학위로서 인정된다. 그런데 키코 비의 박사학위 논문은 그런 이력도 아예 찾을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말이 많은 것이다.

이렇듯 키코 비부터가 박사학위를 받은 경위가 석연치 않은 탓에, 마코 공주의 박사학위 과정 진학에 관해서도, 스스로 노력해서 박사학위를 딴 친척 언니 아키코 공주[21]와 달리 어머니 키코 비와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4.2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아이코 공주의 방학이기 때문인지 황태자 일가의 세 가족이 7~8월에 자주 공무에 등장했다. 최근 들어 마사코 황태자비의 얼굴이 많이 밝아진데다, 아이코 공주는 성적뿐만 아니라 외모도 점점 성숙해져 가고 있다. 이에 대해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반응은 없지만…

한편 2016년 9월부터 맏딸 마코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 예술과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따겠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 여론은 표면적으로는 "공무가 줄어들어 아쉽지만, 직장과 공부에 충실하길 바란다"며 이해하는 반응이지만, 사실은 "직장뿐만 아니라 공무까지 해야 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생활하는 황족이 박사과정을 거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실제 일본의 여론이다. 덕분에(?) 키코 비가 돈이 없다느니 하는 소리도 거짓말이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대체 이 집은 소문이 몇 개야

여전히 키코 비는 돈이 없다고 불평하지만, 그에 대한 소문도 많다고 한다. 아키시노 가의 직원들은 정말 장난 아니게 인격모독을 당하고 있고, 키코 비가 언론이나 학교에 돈을 주는데, 그게 입학할 수 있게 뒷돈을 준다든지의 의미라서 돈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고 한다.

4.2.1 쇼윈도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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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대로, 후미히토키코 비를 폭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단순히 소문인 듯하지만, 후미히토는 매일 저녁마다 을 마실 정도로 알코올 중독[22], 자녀 교육에 방임형이라는 소문이 일본에서는 아예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에 대해 키코 비는 남편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히사히토가 공부하는데 방해되니, 나가서 맥주을 마시라!!"고 일갈한다고 한다. 밖에서는 순종적인 아내인 척하지만, 집 안에서는 드센 아내이자 강압적인 어머니인 듯. 그러나 후미히토키코 비의 말을 들을 린 없으니 진짜 쇼윈도 부부가 아닌가 싶다.

애초에 정말 금슬 좋은 부부라면, 배우자가 지나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데 말리지 않을 리도 없다. 더군다나 후미히토 친왕의 알코올 중독증 의혹을 보도했던 기사에 따르면, 키코 비는 기자들과 궁저의 고용인들 앞에서 그들이 보거나 말거나 "나가서 술을 마시라!!"고 소리를 지르고, 후미히토가 술을 마시며 앉아 있었단 이유로 "소파가 더러워졌으니 버리라"고 했다고 한다. 과연 그것이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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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만 둘을 낳아서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작은며느리라서, 큰며느리인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보다는 압력이 덜했지만.
  2. 그런데 키코 비부터가 출산 후 둘째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의사에게 던진 첫마디가 "아들을 낳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신생아의 상태를 확인하는 대신 아들 낳는 법을 물어볼 정도였으니, 이때의 일본 황실의 구박이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며, 작은며느리가 이 정도라면 큰며느리 마사코 황태자비는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
  3.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남동생인 故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아내. 노리히토 친왕은 생전에 황태자 부부와 친밀하게 지내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4. 가쿠슈인은 본래 황족과 화족을 위해 세워진 학교였다. 그래서 일본 황족들은 모두 가쿠슈인에서 공부했지만(해외유학 제외), 2008년 9월 쓰구코 공주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가쿠슈인이 아닌 다른 학교를 택하는 사례들이 많다.
  5. 다이쇼 덴노의 차남인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의 아내. 이방자 여사의 이종사촌 여동생이기도 하다. 아이즈 번의 마지막 다이묘를 지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손녀.
  6. 세츠코 비의 아버지 마츠다이라 츠네오(松平恒雄)는 외교관이었는데, 런던에 있을 때 세츠코 비를 낳았다. 이후로도 세츠코 비는 중국, 미국 등 여러 외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7. 도쿄에 있는 산부인과소아과 전문 병원. 아키히토 덴노의 막내 숙모 미카사노미야 유리코(三笠宮百合子) 비가 총재를 맡았던 사회복지법인 소속의 병원이다. 히사히토 친왕 외에도, 유리코 비의 막내 아들이자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남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세 딸 쓰구코 공주,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도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히사히토 친왕이 아이쿠 병원에서 태어난 후, 아이쿠 병원에서 출산하려는 부모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8. 키코 비는 1966년 9월 11일에 태어났다.
  9. 태반이 산도를 막는 증상. 제왕절개를 한 표면적인 이유는 전치태반 때문이지만, 사실은 사주팔자를 맞추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짜 맞춘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는 의견도 있다.
  10. 키코 비가 부인과 질환이 심한 상태였고, 일본에서 그녀를 거쳐가지 않은 산부인과 의사가 없다는 소문도 있다. 때문에 차남 부부의 낙태설이나 후미히토 친왕의 문란한 여성관계 이야기가 더욱 신빙성있게 비추어지는 듯.
  11. 그 때문에 결혼 전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가 낙태했다는 소문이 더 강해졌다.
  12. 항간에는, 조총련계 스파이가 가쿠슈인의 교직원이어서 차남 내외가 가쿠슈인을 피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13. 그런데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학교들은, 중학교까지만 남녀공학이고 고등학교는 여고이다. 때문에 히사히토 친왕이 입시를 치러 타 고등학교로 진학할지,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여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할지, 부속남고를 설립할지, 향후가 주목되고 있다. 다만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여고는 매우 전통 깊은 여학교라,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서는 여러 졸업생들이 대단히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14. 일본에서는 4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므로.
  15. 일각에서는 아이코 공주 이지메 사건의 배후에 숙모인 키코 비가 연루되어 있다는 카더라도 있다. 아이코 공주를 괴롭힌 남자아이들의 부모들과 키코 비가,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는 것.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히사히토 친왕이 장래의 황위 계승자로 각광을 받는 것과 반대로, 장래 여성 덴노가 될 것으로 주목받다가 히사히토의 탄생으로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아이코 공주의 처지를 나타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6. 일본에서는 친인척 간에 성적을 비교하는 것이 심하다고 한다. 더구나 키코 비의 두 딸 마코 공주카코 공주는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미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자녀들 중 아이코 공주와 성적 대결을 할 아이는 아들 히사히토밖에 없다.
  17. 하지만 마코 공주가 졸업한 국제기독교대학은 옛날부터 입학 후에도 수업 난이도(특히 영어)가 매우 높아, 신입생들이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피터져라 공부만 하기로 유명한 대학이다. 가쿠슈인 대학 or 가쿠슈인 여대에서의 보장된 편안한 대학생활을 내던지고 굳이 국제기독교대학을 택한 것을 보면, 정말로 공부에 흥미가 없고 머리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대학보다는 훨씬 쳐지지만 국제기독교대학은 편차치나 학교 평가 면에서도 가쿠슈인 대학보다 항상 높게 랭크되는 명문대이다.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은 듯 보이나, 일본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악명 높은 입학시험으로 유명하다.
  18. 히사히토는 덴노의 손자이지만 황태자의 아들이 아니라서, 황실경제법상 황족비를 받는 방계 황족이다. 덴노와 황태자 일가가 받는 내정비보다 황족비는 상대적으로 적게 책정되어 있다.
  19. 게다가 2016년 9월에 마코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 예술과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할 예정이라는 말에 돈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20. 이들이 공무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만 해도 얼마나 돌려서 말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1.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남동생인 토모히토 친왕의 큰딸. 일본 황실 최초의 여성 박사로,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해외유학을 떠나는 큰딸 아키코 공주에게, 토모히토 친왕은 "세금으로 공부하는 것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22. 잘 생각해보면 후미히토는 비교적 공무에 참여하는 편이니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만큼 후미히토에 대한 일본 여론이 아버지로서든, 남편으로서든, 한 개인으로서든, 최악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