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판타지 멜로, SFX |
제작사 | 신씨네, 영화발전소[1] |
러닝 타임 | 1시간 30분 |
개봉일시 | 1996.02.17 |
감독 | 강제규 |
출연 |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 신현준 |
국내등급 | 연소자 관람불가 |
목차
1 개요
역대 최고의 한국 판타지 영화
한국에서 몇 없는 주인공보다 매력적인 악역이 성공시킨 영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네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천 년이라는 시공간을 두고 펼치는 영화. 악역이 한편의 영화를 성공시킨 몇 안되는 한국영화이기도 하다. 당시 미스터맘마, 결혼이야기 등등의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영화를 제작해 온 영화제작사 신씨네[2]가 구미호를 제작하여 한국적 SFX의 부흥을 꿈꾸었으나(제작비가 15억 원이라 한다.), 서울관객 20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는데에 그쳤고, 결혼이야기 속편인 결혼이야기2도 흥행에 참패하여 어마어마한 채무를 지게 되면서 절치부심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행에서 대박을 쳤어도 채무를 다 갚지 못했다. 1997년 제작한 편지가 흥행에 대 성공하면서 비로소 채무를 다 갚았다.
총 제작비는 마케팅비 포함하여 22억 원으로 제작 당시 최고의 제작비이며, 촬영횟수는 75회(평균 45회가 촬영횟수라 한다.)로 최다 제작필름 소비 영화...였으나 2001년 정우성 주연의 무사가 이 기록을 깨버렸다.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1995년 당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는 10억 원 안팎이었고, 2016년 현재 평균 제작비는 50억 원선이다. 게다가 연속으로 영화 흥행에 실패한 신씨네가 몇십억원 단위로 채무를 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2 흥행스코어와 영화의 파급력
1996년 설 연휴 바로 전날인 2월 17일에 개봉하여 무려 4개월간 장기상영된 영화이기도 하다.[3] 소도시마저 멀티플렉스 극장형태인 지금은 4개월간 개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나 지금이나 길어야 한두달도 상영하기 힘들다.[4]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상영된 극장수는 상영 초반 겨우 6개에 좌석수도 그다지 많지 않은 상영관에서 개봉하다가(당시 한국에서 판타지물 제작이 거의 없었고 흥행에도 죽쑤는 장르라 배급사나 극장측에서 많은 관객수의 상영관을 잡아줄리가 없었다.) 설연휴 이후부터 입소문이 급속도로 퍼진 덕분에 좌석수가 많은 상영관으로 옮겨 상영되거나 연장상영되었다.[5] 메인상영관인 명보극장[6]을 제외하면 거의 단관상영방식 이었다.
같은날에 개봉한 한재석과 섹시 여배우 7인이 주연으로 나선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는 한재석을 포함한 주연배우 전원의 발연기와(그나마 이 영화에서 건진것은 방은진의 연기력)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모여서 만든 옴니버스 영화치고 퀄리티가 저질급이고[7], 내용 또한 여성을 맥주에 비유하여 여성성을 우스갯거리로 여겼다는 점에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은행나무 침대에 완패.(게다가 박철수 감독이 연출한 부분은 삭제된 채 상영되었다.) 당시 여성 관객들은 은행나무 침대를, 남성관객들은 맥주가...를 많이 볼거라 예측했으나...개봉 초반에 성룡이 제작하고 주연한 폴리스 스토리 4와 함께 선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계에서는 큰 이슈였다. 이 무렵에 같이 상영된 영화는 니콜 키드먼의 '투 다이 포', 장 클로드 반담의 '서든 데쓰', 우디 앨런의 '브로드웨이를 쏴라', 이연걸과 금성무의 '모험왕', 올리버 스톤의 닉슨,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재킷, 로빈 윌리엄스의 쥬만지 등등 아주 쟁쟁한 작품들이어서 은행나무 침대가 흥행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을 뒤집고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설문 조사에서 '설 연휴 가장 기대되는 영화' 2위(1위는 폴리스 스토리 4)를 차지했었고, 개봉 전 2월 14일부터 실시한 일반 관객 시사회를 시작으로 개봉초반부터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덕분에 쟁쟁한 외화들을 제치고 설 연휴 3일간 서울에서만 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비수기인 3월 에도 서울시내 주요극장에서 상영된 유일한 한국영화일 정도로 평일 좌석점유율은 평균 75%, 주말에는 못해도 90%까지 차지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이야 한국영화도 외화 저리가라 할 정도로 흥행작이 우수수 쏟아지긴 하지만, 이 영화 개봉당시만 해도 잘만들었어도 흥행에 성공하기 아주 힘들었던 시기였었다.[8] 투캅스 2탄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그 해 최고의 흥행영화였었다.
기록에 남은 관객수는 서울관객 약 68만 5천여 명으로 추정되며 '투캅스2'에 이어 1996년 한국영화 흥행순위 2위를 차지했다.[9] 링크 전국관객 약 185만 정도 추정(최소 130만 명 최대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10]으로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또한 홍콩에 수출되어 그해 외화 부분 흥행순위 4위에 오르기도 했고, 1997년 중국에서도 상영되었다.일본에서는 2003년도에 개봉했으나 흥행스코어는 안습...이 외에도 영국, 독일 등 유럽 일부국가에도 수출되었다고 한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순위에서 이 영화보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 심지어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들 포함해 대부분 12세, 15세 관람가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의 파급력은 개봉 당시나 지금이나 엄청나다. 상영관 수가 많지 않았고, 18세 이상의 성인관객들만 관람이 가능한 이 영화가 서울에서 6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건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90년대는 물론이고 2000년대 들어서 같은 관람등급을 받은 친구나 아저씨외에는 청소년 관람불가로 흥행돌풍을 일으킨 영화를 찾아보기 아주 힘들다. 또한 같은해에 개봉했던 박중훈, 김보성 주연의 투캅스2가 똑같은 청소년 관람불가인 영화에 서울에서만 70만 명을 기록하여 그 해 한국영화 흥행성적 1위를 차지했다고 하지만 흥행스코어 이외에는 은행나무 침대에 완전히 가려졌으며, 그 해 여성관객들이 뽑은 최악의 영화 2위에 선정되었다(1위는 위에서 나왔던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 반대로 은행나무 침대는 최고의 영화 1위. 그리고 여성관객들이 선정한 최고의 배우로 이 영화에 출연한 신현준과 심혜진이 뽑혔다. 1996 좋은영화, 1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강제규), 촬영상(박희주), 음악상(이동준), 16회 영평상 촬영상, 32회 백상예술대상 기술상(박희주), 제34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심혜진)과 신인감독상, 1996년 제2회 씨네21 영화제 '올해의 영화',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이 영화는 34회 대종상이 애니깽 사태[11]라고 불리는 최악의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전태일, 꽃잎 등의 쟁쟁한 경쟁작이 있었지만, 은행나무 침대는 14개 부분에 수상 후보를 올리고 주요 부분을 석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종상은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아직 개봉하지 않은 애니깽에게 몰아줌으로써 한국영화팬과 영화매니아들을 충공깽 상태로 빠뜨렸다. 신인감독상과 남우조연상(이 두개는 확정이라는 결과도 나왔었단다.)을 포함한 주요수상부분에서 휩쓸거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결국 건진건 여우주연상, 신인감독상, 남자인기상(신현준)뿐. 남우조연상을 눈앞에서 강탈당한 신현준은 그로부터 19년후에...다시 재현된 막장사태에 진행자로 나와 씁쓸함을 자아냈다.
3 한국영화사에서 지닌 의미
이 영화가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첫번째는 초반에 나오는 장면들과 신체가 절단되는 장면들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작되기 힘들었던 SF 판타지 장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만 6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으며, '전생 신드롬'이 단순한 대중문화의 한 흐름에서 사회적 현상으로 퍼지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정우성, 고소영의 구미호가 제작되었지만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에, 강제규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 당시 은행나무 침대가 만약 흥행에 실패한다면 한국에서 판타지 장르의 영화가 제작되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두번째는 최초로 금융권의 투자를 받아 제작된 영화라는 점이다. 당시에는 영화 제작사에서 자체로 영화를 제작했던지라 흥행성패가 어떠냐에 따라 영화사가 흥하냐 망하냐가 달릴 정도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신씨네가 어마어마한 채무를 지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당시 한국영화에서 SF 장르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시기여서 많은 위험부담이 따랐기 때문에 감독이 신인감독이라도 쟁쟁한 주연진들만으로는 투자를 이끌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았었다. 그런데 일신창투[12]에서 17억 원을 지원함으로써 국내영화 최초로 금융권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영화가 되었으며, 흥행에 성공하여 수 많은 금융권 회사와 대기업에서 한국영화에 투자하게 된 계기가 된 영화가 이 영화이다.
세번째는 이 영화가 '한국형 블럭버스터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시발점이었다는 점이다. 흔히들 쉬리그 이전에 출연배우와 관객들에게 흑역사를 안겨준 퇴마록도 있었다.가 한국 최초의 블럭버스터 영화라고 하지만, 제작 당시에는 한국영화는 '방화'라고 불리워졌고, 헐리우드식 기술과 연출력이 최고라고 믿어왔던 영화관계자들과 관객들에게 제작초기만 하더라도 '이런게 흥행하겠어?', '돈이 남아도는건가?' 식의 힐난만 받았으나[13] 막상 개봉한 이후로는 '우리의 기술로도 헐리우드 부럽지 않은 영화 만들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것도 바로 이 영화였다. 실제로 한 평론가가 이 영화를 '이제 헐리우드도 부럽지 않다'로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호주및 미국 등등의 시스템에 발달된 나라에 직접 가서 후반작업을[14] 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만의 기술발달로 이제는 국내에서도 후반작업이 원할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도 했다.[15] 이 영화에서 특수효과 및 특수분장, 편집을 담당한 제작진들은 지금 한국영화가 기술적인 퀄리티가 높아지게 된 주역이자 '1세대 제작진'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윤예령, 정도안 씨가 있는데...특수분장을 담당한 윤예령 씨는 본래 배우로 활동하던 중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16], '특수분장'이라는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국에서 전문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현재 '유영분장'이라는 특수분장 전문 학원을 개업하였고 지금은 대학에 출강하여 수 많은 인력을 양성하는 중이다. 이 영화가 그녀의 첫 작품인 셈이고[17], 이후 퇴마록, 닥터K, 쉬리, 리베라 메, 각설탕, 화려한 휴가 등등의 영화에서 특수분장을 담당한다.[18] 또한 CG특수효과를 총담당한 정도안도 이 영화 이전에 우뢰매 같은 여러 아동영화의 특수효과을 담당하여 노하우를 쌓아 구미호에서 CG특수효과를 담당했었고, 그 뒤 '데몰리션'이라는 특수효과전문회사를 세워 현재도 활동중이다.정도안에 대한 기사1기사2
또한 감독이 단순한 감독역할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전반에 능력을 보여준 최초의 감독이 나오게 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부터 영화 개봉까지 제작사와 감독 반반이 부담하고 같이 책임지는 시스템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가 신씨네작품 뿐만 아니라 '강제규 감독 작품'이라는 점도 같이 부각 되기도 하였고, 실제로도 제작사에서 감독의 능력을 높게 쳐주기도 했다.
4 황장군 신드롬
주연이 아닌 조연이자 악역인 황장군이 영화를 하드캐리 했다는 점도 이 영화의 특징적인 부분이다. 황장군 내용 참조.
주연으로 출연한 한석규도 이 영화로 얻은 점이 꽤 있었다. 무수한 TV 탤런트들이 조금만 인기를 얻으면 바로 충무로로 진입을 시도했지만 흥행 및 작품성에서 모두 실패하여 추풍낙엽 신세(하락세 테크를 타거나 아예 인기가 떨어저 대중들의 뇌리에 잊혀지거나...)가 되었던 대다수 탤런트들 속에서 데뷔작 닥터봉으로 유일하게 충무로 입성에 성공한 탤런트라는 평가에서 이 영화의 성공으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떨쳐내고 비로소 영화배우가 됨과 동시에 충무로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출연료가 2억원까지 뛰게된다.[19]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주인공으로써의 역할' 수행에 실패함과 동시에 연기력에서도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제작과정을 담은 '은행나무 침대의 비밀'에서 말한바에 따르면 '관객의 반응까지 계산하다 보니 연기가 너무 계산적으로 나왔다'고...물론 연기력 자체만 보면 괜찮은 편이었지만, 전생의 자신을 알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전생의 연인을 그리워 하거나,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오죽하면 그가 울거나 그리워하는 연기를 보고 '술먹고 꼬장부리는 연기'라고 혹평할 정도였으니...더 안타까운 것은 영화 중반부 가야금 소리와 함께 전생장면이 나오는 부분에서 그가 고전의상을 입고나온 모습을 보고 많은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는 말도 많았다. 그 당시 닥터봉에서의 코믹연기를 선보여서 몰입이 안되었다는 평도 있었고[20], 사극 연기는 힘들겠다는 반응도 있었으나, 정확히 15년 후 뿌리깊은 나무로 반전에 성공했다. 어쨌든 두번째 영화도 흥행성공을 거두면서 당시 충무로 최고의 배우였던 안성기, 문성근, 최민수, 박중훈과 함께 최고의 30대 남자배우 반열에 오르는 등 본인의 영화인생에서 나름 업적을 쌓았긴 했지만, 대중들의 반응과 영화 자체에 대한 화제성 및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존재감등등의 주요 부분에서는 신현준에게 완전히 가리워지고야 말았다. 다행히 차기작 초록물고기로 작품성과 연기력에서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음으로써 그의 전성기가 비로소 시작되긴 하지만...한석규를 사랑하는 오랜 팬들은 이 영화를 피하고 싶어하려해도 이 영화를 빼놓으면 절대로 안된다. 폐쇄적이고 고지식한 충무로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최초의 영화이기 때문이다.[21]
5 능동적 여주인공 선영
이 영화에서 황장군 캐릭터가 큰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심혜진이 연기한 '선영' 캐릭터가 묻히기도 했다. 하지만, 개봉 당시에는 황장군과 더불어 이 캐릭터에 대한 평가도 많은 편이었다. 혼자힘으로 이룬 꿈이 미단 공주에 의해 철저하게 망가지고 박탈당할 위기를 맞이했어도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맞서는 성격이다.
위에서 말한 항목대로 황 장군이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방관자적 입장을 가진 수현 캐릭터와는 정 반대의 성격이라 많은 관객들이 열광한것처럼, 선영 캐릭터는 그간 남성 캐릭터 밑에서 눌려오고, 남성 캐릭터의 보조역할에만 머물렀던 기존 여성 캐릭터의 틀을 깬 캐릭터였다는 점에서 특히 평단의 좋은 평을 받았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전생의 사랑과 현세의 사랑에서 우유부단한 성격을 보여줄때, 용감하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억울함을 풀었다는것 자체가 기존의 페미니즘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였으며, 관객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도 하였다. 다만 같은 여주인공이었던 '미단 공주'는 수현(종문)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사랑 때문에 존재하는 캐릭터였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다.
1990년대 대표적인 여배우 심혜진은 이 시기에는 주로 능동적인 여성상을 많이 연기해왔다. 하지만 보통 이 항목만 보고 은행나무 침대로 첫 흥행을 거뒀다고 보면 안된다. 이 영화 이전에도 최민수랑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결혼이야기(1992)로 흥행(당시 서울관객 52만은 엄청난 대박으로 헐리웃 블럭버스터급 수준이다.)과 비평 모두 대박을 거둬들였으며 서울관객 27만을 거둔 세상 밖으로(1994)같은 여러 흥행작에 출연하였다. 은행나무 침대로 1996년 대종상 여우주연상, 여성관객영화상 최고의 여자배우상을 수상하였다.
6 데뷔작으로 한국영화판을 뒤집어 놓은 감독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강제규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장미의 나날> 등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었고, 시나리오 작가 이전에 '합동영화사'에서 연출부를 맡기도 하였으며 한동안 방송작가 및 방송 스텝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비디오 영화인 공포특급 중 한 에피소드를 맡은 바 있었으며, 이 영화는 정식 극장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도 감독 및 시나리오를 직접 썼으며, 시나리오 완성에 2년이나 소모되기도 하였다고...처음에는 충무로에서 난다긴다는 영화사에서 수 차례 차이다가 신씨네의 신철 사장이 시나리오를 보고 바로 하자고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감독의 연출 외에도 영화 제작단계에서 부터 참여를 했고, 당시 관객 및 사회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이 영화가 끼친 공은 어마어마 하다. 덕분에 그 해 각종 영화상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고, 씨네21 영화계 파워 인물에 바로 거론 될 정도로 한국영화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반면 '일개 신인감독이 너무 나댄다'고 견제하는 세력들도 많았다.
이 영화는 원래 정식으로 신씨네가 제작하였지만 기획은 그가 감독 데뷔 당시 몇몇 지인들과 함께 구성한 '영화발전소'라는 제작사가 담당했다.
강제규는 그 뒤로 1999년 쉬리로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수상했고 한국영화 역대 흥행을 뒤엎는 가공할 대흥행을 거둬들였으며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관객을 돌파하면서 단 3편으로 한국영화계를 점령해버린 '국민감독'급까지 올랐다. '영화발전소', '강제규 필름' 등등의 제작사와 'A-LINE', 'ZOO002'라는 극장 및 배급사를 만들면서 제작자로도 명성을 쌓았으나, 2011년 연말에 개봉한 마이웨이가 국내 및 해외에서 참패하면서 현재는 재기가 가능할지 여부가 보이지 않을만큼 침체기를 맞는 중이다. 연출작 세편 모두 '유사 헐리우드 스타일'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본 장면을 짜깁기한다는 평가도 받지만, 강제규 감독만큼 관객의 마음을 잘 아는 감독도 없다는 평도 만만치 않게 많다. 영화 상영내내 관객을 긴장시키다가 마지막에 감정선을 폭발시키는 능력은 이 영화를 기점으로 그의 연출작에 고스란히 나와있다.
7 줄거리
이야기는 수현(한석규)과 선영(심혜진)사이에 낳은 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연인 사이인 석판 화가 수현(한석규)과 외과 의사 선영(심혜진), 그런데 수현이 어느날 꿈에서 본 은행나무 침대를 사들이면서 기묘한 사건이 주변에 일어나기 시작한다.
천 년 전, 궁중악사 종문(역시 한석규)과 미단 공주(진희경)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미단공주를 사랑하는 황장군(신현준)의 방해로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황장군은 종문을 추방한 다음(웬만하면 그자리에서 한칼에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단공주의 방 앞에서 몸에 눈이 쌓이도록 기다리기도 하지만 미단공주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22] 그리하여 결국 미단 공주를 풀어주지만 종문과 미단 공주가 만나는 순간 황장군은 말을 타고 나타나 종문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후 종문과 미단 공주는 은행나무 한 쌍으로 환생하여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걸 질투한 황장군도 매로 환생하여 은행나무를 노려보자 종문의 은행나무에 번개가 떨어져서 불타버린다. 종문은 다시 환생을 통해 수현이 되었고, 미단이 환생한 은행나무는 어느 틈에 가공되어 침대가 되어 미단 공주의 혼령이 깃들게 된 것이다.
미단 공주는 수현에게 언뜻언뜻 나타나면서 재회하지만, 동시에 황 장군의 원혼도 그들을 쫓아오게 된다. 그는 사람의 정기를 흡수하여 R로 환생[23], 수현을 위협하고 미단 공주는 수현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수현의 애인인 선영의 환자의 몸을 잠시 빌린다. 선영은 환자가 죽은줄 알고 그의 유언대로 안구를 기증하지만 그는 다시 살아나고 선영은 돌팔이 의사로 매도되어 병원에서 쫓겨난다. 수현 역시 알수 없는 인물인 R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결국 미단 공주는 수현을 살리기위해 R에게 마지막 제의를 한다. 월식 기간동안 단 한번만 수현을 만나게 하는 것. R은 할 수 없이 이를 승낙하지만 담보로 선영의 목숨을 가져가고 선영은 이것이 자신의 오명을 씻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 여러 동료 의사 앞에 월식기간동안 숨을 멈춘다.
드디어 수현과 미단 공주는 짧은 재회를 하고 질투심에 휩싸인 R은 수현을 공격한다. 그러나 월식이 끝나고 다시 살아난 선영은 미단의 부탁으로 은행나무 침대를 불살라 버리고 R은 미단 공주를 부르며 침대에서 나오라고 애타게 절규하지만 미단 공주는 끝끝내 나오질 않았다. 결국 R은 넋이 나간 채 미단 공주를 쫓아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이후 수현은 침대를 만들었던 공방에서 어떤 소년이 건내준 거문고를 받아 전생을 생각하며 연주한다. 세월이 흘러 수현은 선영과 결혼하여 딸(이야기의 화자)을 낳게 되며, 딸이 거의 자랐을 무렵 운명의 이끌림인지 수현은 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8 OST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지상만가, 유령, 퇴마록,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 7번방의 선물을 비롯한 많은 영화 음악에 참여한 이동준이 OST를 맡았고, LG에서 내놓아 20만 장 가까이 팔리는 대박을 거둬들였다. LG가 IMF 이후인 1998년에 음반산업을 철수하면서 지금은 희귀음반이 되어버렸다. 웬만한 중고사이트에서도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다. 굳이 이 음반 말고도 이 시절 나온 영화음악 OST가 지금은 대부분이 희귀음반 신세가 많긴 하지만. 그만큼 OST가 대중적이지 않았고, 대기업에서 하기에는 수지타산도 안맞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럭저럭 팔리기라도 했다. OST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보디가드처럼 100만 장이 넘는 가공할 판매량을 보인 경우도 있고 그래도 90년대만 해도 종종 OST로도 수십만장이 팔리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 2000년대 들어서 영화 OST로 대박이라던 미녀는 괴로워가 고작 2만 5천여 장 팔리는 수준인걸 봐도.
OST 속지에 나온 강제규 감독이 쓴 글에 의하면 원래는 미국 영화음악가에게 맡기려했는데, 어느날 스텝들이 식사하던 중 이동준이 시험삼아 작곡한 음악을 듣곤 매료되어 이동준에게 계약했다고 한다. 이동준도 이 영화의 대박과 OST대박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 이전에도 바로 구미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한 영화음악을 맡았지만 영화들이 망하면서 별로 알려지지 못했었다. 다만 이 영화음악이 표절이란 주장도 일부 제기되기도 하였다. 기존 한국영화 속 OST들이 '병풍신세', '단순한 배경음악'으로 인식되던 시절 1992년 개봉한 서편제를 시작으로 OST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게 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 이후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영화 OST가 수십만 장이 팔려나가게 되고, 영화음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한국에서도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서편제 OST가 가야금, 대금 등 우리 고유악기가 중심이었다면, 은행나무 침대 OST는 우리악기 및 서양악기의 혼합과 국악의 구음 및 소프라노의 혼합사용이 잘어울러졌다는 평과 함께 영화 속 장면에도 잘 어울려져 많은 관객들의 인상에 남게 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영화 중반에 나오는 수현과 미단공주의 재회장면에 나오는 'Main title-재회'와, 후반부 불타는 침대장면에 나오는 '이별-불타는 침대', 그리고 전생으로 돌아가는 장면에 삽입된 '가야금 THEME'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가야금 THEME
9 포스터
일반적으로 영화 포스터 하면 주인공들이 클로즈업 되거나 어느 한 장면만 묘사되어 나오는 반면에 이 영화는 파격적으로 주인공들을 유화로 그렸고, 이들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나타냄으로써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지금도 영화포스터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손가락에 꼽힐정도로 퀄리티가 높다. '클림트'의 '키스'와 '에곤 실레'의 화풍(성적 이미지 주의)과 비슷하며, 빈 분리파 스타일에 영감을 얻은 듯하다.[24] 서울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이종혁씨가 '페인터'라는 프로그램으로 작업했다고 한다.기사
사진작가 조세현이 직접 만든 포스터도 있다.. 이 포스터는 출연배우 각각의 엽서로도 한동안 극장에서 배부되기도 하였다. 개봉날 사인회에서 해당 엽서가 쓰이기도...(다만 신현준 엽서컷은 다른 사진이었다. 링크 1은 사인 전 엽서컷, 링크 2는 사인된 것. 링크1, 링크2)
낱장이 아닌 6장으로 된 영화전단지도 있었다.
http://vod.koreafilm.or.kr/data/cs/poster/00
http://vod.koreafilm.or.kr/data/cs/poster/00\00\27\PK04818E1.jpg\PK04818E1.jpg
신문지상에서 이 포스터로 전면광고를 한 적도 있었다. 문구는...
천년동안 한 여자만을 사랑한 남자가 있었다.
홍콩에서 상영할 당시 메인 포스터
영화 상영당시 '황장군'이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제작사에서 관객들의 뇌리에 깊게 남았던 이 장면으로 포스터를 만들어 한동안 이 포스터가 극장에 걸리기도 했다. 주연도 아닌 조연, 악역 캐릭터가 단독으로 포스터로 만들어져 극장에 걸린 경우는 이 영화 이후론 없다. 물론 그 전에도 없었지만...
10 개봉당시의 반응들
PC통신 영화관련 동호회 및 각종 영화 사이트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기도 했는데, 혹평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라 신선함이 많이 떨어지는것 같다'였었다...'사랑과 영혼', '진용', '몽중인' 등등에서 차용한 것 같다는 게 중평. 즉, 독창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귀신'이 주인공들이고 '전생'과 '환생'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만큼 이러한 논란을 피할 수 없었지만, 너무 심오하고 진지하거나 혹은 말도 안되는 싸구려 코미디가 많이 제작되었던, 그래서 지금처럼 다양한 장르 및 소재에 도전하기 힘들었던 당시 한국영화 시장에서 용기있게 내놓은 영화였다는 평가도 많았다. 특히 특수효과[25] 부분은 지금 보면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몰라도 당시 헐리우드 영화의 전유물이었고 헐리우드 기술진들만 할 수 있었던 시도를 우리만의 기술로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도 있었다. 사실 CG는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신체절단 부분은 지금봐도 정말 리얼한게 함정. 특수효과에서 터미네이터의 영향을 받았는지 황 장군이 환생한 원혼이 벽을 뚫고 계속 쫓아오는 장면 등이 묘하게 T-1000을 연상케 한다. 또한 전생장면에서 '종문'과 '미단공주'가 사랑하게 된 과정과 '황장군'이 '미단 공주'를 사모하게 된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지적도 있었다.[26]
뭐 당연하지만 당시 YWCA 대중문화 보고서라든지 <낮은 울타리>같은 특정 종교 단체에선 비개신교적이라고 비난하면서 관람반대 운동을 벌였으나 되려 홍보를 해줘서 흥행에 더 기여했다는 비아냥만 듣었다. 심지어 월간 '말' 등의 진보성향 매체에서도 이 영화를 다소 부정적으로 봤었다.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로 인한 파급력이 어마어마 했었기에 그랬던 듯...위에서 언급했듯이 세기말의 혼란으로 사람들이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요소가 전무했었기에 '전생'과 '환생'이라는 소재에 열광했었고, 이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이라는 소설이 200만부를 돌파하면서 신드롬의 조짐이 보였었다. 룰라의 3집 곡 천상유애가 표절곡이었어도 이 소재의 곡이었으며, 이 영화의 대성공으로 신드롬이 사회적 현상으로 확대되면서 전생, 환생, 내세의 안녕을 소재로 한 노래와 드라마들이 연이어 제작되기도 했다.[27] 심지어 전생을 알아볼 수 있다는 구슬 및 영적인 능력을 보여준다는 도구들이 많이 팔려나갔었다.
11 기타
이 영화가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덕분에 영화제작과정이 담긴 메이킹 필름이 출시되기도 했다. 제목은 '은행나무 침대의 비밀'. 지금은 DVD로 출시되고, 본편 이외에 제작과정 및 스틸컷까지 한꺼번에 수록되지만 VTR이 대세였던 그 당시에는 비디오 테잎으로 두편이 차례대로 출시되었던 작품은 극히 드물었다. 전태일을 다룬 영화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전태일의 비밀'이라는 제작과정이 담긴 메이킹 필름을 출시한게 최초였다. 하지만 쉬리를 마지막으로 본편 이외의 별도로 제작과정이 담긴 VTR물은 더이상 출시되지 않았다. DVD와 블루레이에 부가 영상으로 담아두면 그만이니.
그리고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 박미선이 선생님으로 나올때 갈갈이 박준형이 황 장군 캐릭터를 가지고 개그를 했던 적도 있었다. 박미선을 '미단공주'로 부르면서. 그리고 딸이라고 해서 말하는 것이 '미달이'...그리고 박미선은 맞받아치며 '난 결혼한 몸이에요!'라고 하니 박준형은 그게 누구냐면서 따지면 박미선은 당연히 자신의 남편인 이봉원을 거론한다. 그러자 박준형은 단칼에 베어버리겠다[28]하며 칼을 빼내면 꼭 먹을 것이 나온다...소시지부터 강냉이까지...그 외에도 클론의 구준엽과 이휘재도 황 장군 캐릭터를 맡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코미디 연기를 했었다.
이 영화의 명장면을 패러디한 CF도 있었다. 술광고, 아이스크림 광고
비공식이지만 연극으로도 소개되었다. 링크
12 관련 항목
- ↑ 원래 기획은 강제규 감독이 했었고, 신씨네의 신철 사장이 제작하자고 합의가 된 것이다. 신씨네의 단독 기획이 아님을 밝힌다.
- ↑ '신철-영화제작자'이 대표직을 맡고 있고, 오정완 프로듀서가 한동안 이 제작사에서 근무하면서 편지, 약속 등의 흥행작을 제작하였고, 독립하여 '봄 영화사'이라는 제작사를 차렸다.
- ↑ 원래 1995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려고 했었지만, 특수효과 및 기타 촬영일정이 길어지면서 1995년 12월 22일에 모든 촬영을 끝마쳤다.
- ↑ 투갑스2는 2개월간 상영
- ↑ 90년대 서울시내에도 극장수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금이야 CGV나 메가박스 등등의 대기업에서 문어발식 체인점 형태의 극장이 많아지다보니 극장 수만 30여 곳이 넘지만 이 시기엔 겨우 10여 곳 남짓했다.
- ↑ 상영관이 5개였다. 메인 상영관은 1관이었는데, 당시 이 극장의 1관에서 개봉한다고 하면 그 영화의 가치가 높아보이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은행나무 침대는 바로 이 극장의 1관에서 상영했다. 처음 개봉할때는 객석수가 적었던 3관과 5관에서 상영하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객석수가 많은 1관과 4관에서 주로 상영하였다.
- ↑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7명이나 제작했다고 화제가 되었다.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 남부군,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 게임의 법칙의 장현수 감독, '영원한 제국'의 박종원 감독, 학생부군 신위의 故 박철수 감독, 신기전의 김유진 감독, 그리고 장길수 감독...이 점에서 은행나무 침대가 밀릴거라고 예상했었다고 한다.
- ↑ 참고로 1995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닥터봉이었는데, 서울관객수가 겨우 40만 명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1995년에 개봉한 한국영화들 중 흥행에 대성공한 영화들은 거의 없었다.(1995년 11월에 개봉한 당해 최고의 작품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서울에서만 25만 명을 동원하는데에 그쳤다.) 이 영화 개봉이후 '학생부군신위', '지독한 사랑', '나에게 오라', '축제', '코르셋', '꽃잎-(장선우 감독이 연출하고 당시 고교생이었던 이정현의 신들린 영화가 인상적인 영화. 1996년 한국영화 흥행순위 3위에 올랐지만, 서울에서 30만 명을 동원하는데에 그쳤다.)' 등등이 개봉했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 ↑ 서울관객 45만 명이라고 아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영진위에서 집계한 추정자료. 하지만 이 68만 서울관객도 자세한 게 아닌 배급사 주장인 추정관객수치이다. 이게 더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다. 2000년대 와서야 전국관객 집계가 이뤄진 상황에서도 공식적인 관객집계와 배급사 공식집계가 천차만별(영화 타짜만 봐도 양측 주장이 전국 100만 관객이나 차이가 난다!)이기 때문.
- ↑ 2002년 이후부터 전국관객 집계가 되었고 그 이전에는 서울 관객만 집계되었기에 추정치로만 남아있다. 보통 전국관객은 서울관객 3~4배 정도로 추정집계할 뿐이다.
- ↑ 이 사건 말고도 대종상은 여러 병크를 저지르면서 영화팬들에게 버림받은 영화제라는 평을 받고 있다.
- ↑ 후에 튜브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대작 영화를 제작하게 되는 투자회사이다. 신씨네와 함께 영화 제작 및 투자관계에서 파트너쉽을 유지해오기도 했다.
- ↑ 신현준이 드라마 '바람의 아들'을 촬영하면서 다른영화를 포기하고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할 적에 일부 충무로 관계자들이 '저딴 영화에 출연하다니...미쳤네'라며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다.
- ↑ 믹싱 및 사운드 삽입등등 및 편집.
- ↑ 이 영화도 후반작업을 호주에서 했다. 그래서 개봉시기가 1995년 크리스마스 시즌에서 1996년 설연휴로 미루어 진 것이다.
- ↑ 80년대 후반 '우담바라','구로아리랑'등의 영화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알려 화장품 광고출연을 하게되었는데 의무적으로 어르신들 자리에 참석해야하고, X상납을 해야한다는 조건이 걸렸다는걸 알게 되면서 분개하여 연기생활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유학했다는 일화가 있다.
- ↑ 그 전에는 CF모델들의 분장을 담당했다 한다.
- ↑ 이분은 후일 MBC 성공시대까지 출연하셨다. 이때 은행나무 침대 촬영중에 생긴 에피소드를 공개했는데 신현준이 분장한채 화장실 찾다가 신현준을 본 노인 한분이 놀라서 기절했다고.
- ↑ 당시 최고 개런티를 받는 배우가 강수연과 안성기였고..그나마 톱 배우들 중에서도 1억 5천만원을 받는 배우도 드물었을정도로 1억도 많았던 시대였다.
- ↑ LG유플러스 082 시외전화 CF 모델이어서 이 광고에서의 연기도 떠올랐다는 평도 있었다.
- ↑ 한석규 이전 안성기, 문성근, 박중훈 순으로 시나리오가 갔으나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영화라고 거절했다... 이 또한 잘한 일.
- ↑ 이 장면은 한국영화 명장면에 항상 손꼽히는 장면이자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어버렸다. 여성관객들이 왜 황장군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마지막 장면과 함께 이 장면에서 나온다. 또한 극장 상영당시 황장군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이 장면으로 만든 포스터도 한동안 극장에 걸렸었다.
- ↑ 영화 초반부 못된짓을 하던 남자의 심장을 그대로 꺼내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봐도 ㅎㄷㄷ.
그리고 이때 당한 그는 훗날의 주스아저씨 - ↑ 이전 서술에는 클림트만 적혀있었으나 관능적인 이미지나 화풍 자체는 확실히 에곤 실레의 스타일이 맞다. 다만 에곤실레가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작가이니 헷갈린만 하다(...).
- ↑ 시작부분 은행나무 침대와 매가 등장하는 장면, 초반부 옥상 추격전에서 황장군이 벽을 뚫고 나오는 장면 및 신체 절단 장면(심장, 머리) 등등.
- ↑ 이 때 제작비 부족 및 제작 기간이 너무 길어서 제대로 촬영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후문이 강제규 감독의 인터뷰에서 나왔다.
- ↑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 베이시스의 작별의식,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더 높은곳에 네가 있을뿐, 드라마 8월의 신부 등등...
- ↑ 이때 하는 대사가 처음에는 이봉원! 이놈을!
개그맨 패드립이었다가 나중에는 이 선배를!로 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