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스 사무소

ジャニーズ事務所 / Johnny & Associates


쟈니스 사무소 공식 사이트(쟈니스넷)
쟈니스 사무소 공식 사이트(쟈니스웹) (모바일 전용)

1 개요

일본 최대의 남성 아이돌 연예 기획사

일본의 남성 연예인 전문 연예 기획사. 까놓고 말하자면 꽃미남 아이돌 양성소. 1970년대에는 소수의 여성 연예인도 키우고 있었으나[1], 1980년대 이후에는 남성 연예인만 키우고 있다.

설립 초기인 1960년대부터 쭉 남성 댄스 아이돌 분야를 파고든 회사로, 일본에서는 춤을 추며 노래하는 그룹이라는 컨셉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선구자적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렇다보니 일본에서는 "남성 댄스 아이돌 = 쟈니스"라는 공식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 아이돌계에서도 실력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뛰어난 댄스 실력과 피지컬을 가진 소년대,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춤을 추는 히카루GENJI 등 획기적인 컨셉으로 인기를 모은 아이돌 그룹을 계속해서 데뷔시켰다. 하지만 현재는 실력보다는 그룹의 이미지나 캐릭터에 어울리는 멤버들을 주로 뽑아 데뷔시킨다는 느낌이 강하다.

한편 일본에서 꽃미남을 가리키는 표현 중 하나인 '쟈니스계(ジャニーズ系)' 역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는 "잘생기면서도 작고 귀여운 남자". 하지만 "꽃미남 = 쟈니즈계"는 아니며, '쟈니스계'는 꽃미남의 수많은 유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1.1 쟈니스? 쟈니즈?

사실 Johnny를 '자니(ジャニ)'라고 읽는 건 일본에선 상당히 이례적인 발음이다. 왜냐하면 일본에선 보통 이 단어를 '죠니(ジョニ)'로 표기하기 때문. 이는 단모음 o를 읽을 때 생기는 미국식과 영국식 발음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한국에선 미국식 발음을 따르는 편이라 /a/(ㅏ)가 더 익숙하겠지만, 일본에선 영국식 발음을 따른 /ɒ/(ㅗ) 쪽이 통용되는 편이다.(rock을 '락'으로 읽느냐 '록'으로 읽느냐와 같은 경우) 이런 문화적 특성을 감안했을 때 Johnny를 '죠니'가 아닌 '쟈니'란 이름으로 부르고 퍼뜨린건 확실히 독특한 케이스다. 쟈니 쟈스타 쟈쟈의 기묘한 모험

그리고 영어의 소유격을 나타내는 's는 무조건 '스'라고 읽는 게 아니라 앞에 무슨 음이 오느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데, Johnny's에서는 앞에 모음이 오기 때문에 유성음화 되어 '쟈니즈'라고 읽힌다. 그래서 일본어로도 '쟈니즈'라고 쓴다. 근데 왜 한국에선 '즈'가 아닌 '스'라고 쓰냐면,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단어 끝에 붙는 s는 실제 발음과 상관없이 '스'로 적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쟈니스'가 아닌 '자니스'로 표기돼야 맞다.

2 오너 일가 및 주요 간부

일본 연예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한 회사인 동시에 비상장 회사[2]이며, 족벌 기업이다.

현재 등기임원은 쟈니 사장과 메리, 쥬리, 코스기 이렇게 4명이다.

2.1 쟈니 키타가와(ジャニ―喜多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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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스 사무소의 사장으로, 본명은 키타가와 히로무(喜多川擴, John Hiromu Kitagawa). 1931. 10. 23 ~
2016년 현재 현지 나이로 84세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출신으로, 6·25 전쟁 때 미군을 따라 한국에 들어와 전쟁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0개월만에 한국어를 마스터했다고 한다.)

앙드레 김 선생 특유의 외국어 섞어쓰기 + 일본 영어발음이 하나의 클리셰화 되어 있어서 소속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종종 따라하는데, 대표적인 말투는 "You ~해버려!(You ~しちゃいなよ!)" 소속 연예인을 부를 때는 이름보다는 'You'를 많이 쓰는데,[3] 이건 쟈니 사장이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누구는 이름을 알아서 이름으로 부르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다면 특정 연예인을 편애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또 미국 문화의 영향도 있는지, 소속 연예인들이 자신을 부를 때 존대말을 쓰지 말고 반말을 하도록 하기도 한다.

스스로 무대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현재도 무대 연출에 간접적이나마 관여하고 있으며, 이때문에 쟈니스 소속 그룹의 모든 콘서트에는 '종합연출 쟈니 키타가와'라는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2011년에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콘서트를 프로듀스한 사람', '가장 많은 1위 싱글을 프로듀스한 사람'으로 등재되었으며, 2012년에는 '가장 많은 차트 1위 아티스트를 만들어낸 프로듀서'로 등재되었다. 기네스북에 게재된 위 사진이 현재 알려진 거의 유일한 쟈니 사장의 사진인데, 평소에 자신을 별로 드러내지 않는 성격으로 소속 연예인들은 그를 "대단하신 분이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평한다.

2.2 메리 키타가와(メリー喜多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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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이자 前 쟈니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1926. 12. 25 ~
쟈니 사장의 친누나이다. 2016년 현재 현지 나이로 무려 89세(...)

쟈니스 사무소 창립 이전에는 요쓰야에서 바를 경영했다고 한다. 창립 초부터 쟈니 사장이 연출이나 캐스팅, 매니지먼트에 전념하는 반면, 재정 관리나 교섭, 접대 등 실질적인 경영 활동은 메리 부사장이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계에 상당한 인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원로 여배우 모리 미츠코, 쿠로야나기 테츠코와 친분이 두터워서 이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4]

경영 활동 이외에도 각종 콘서트의 무대의상을 담당해 왔는데, 깃털, 반짝이, 바지 옆선의 3종 세트가 바로 그녀의 작품. 나이가 나이인 만큼 현재 의상을 직접 제작하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이러한 의상들이 양산되고 있어서 여전히 의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하다.

2.3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藤島ジュリー景子)

부사장제이스톰 대표. 1966. 7. 20 ~
쟈니 사장의 조카이자, 메리 부사장과 소설가 후지시마 타이스케(前 도쿄신문 기자)[5]의 딸이다.

쟈니스 사무소에서 몇 안되는 여성 탤런트로 활동하여 타노킨 트리오와 함께 드라마 「3학년 A반 킨파치 선생」 1기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나, 정식 데뷔하지는 못하고 미국 유학을 거쳐 스타일리스트로 전향하였다. 쟈니 사장의 기대 속에 아라시NEWS를 맡았으나 처음에는 크게 고전하다가,[6] 2007년을 전후해 아라시가 국민 아이돌로 성장하고, NEWS 역시 2012년 4인 체제로 재편한 뒤 안정된 활동을 보여주고 있어 회사 내 입지가 굳어졌다. 2016년에 이이지마 미치가 퇴사한 뒤에는 찌라시에서 심심찮게 차기 사장 취임설이 등장하고 있는 듯.

업계에서는 교섭 스타일이 어머니인 메리 부사장을 닮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2.4 코스기 류조(小杉理宇造)

고문 겸 스마일 컴퍼니[7] 사장, 쟈니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1947. 11. 10. ~

콘도 마사히코의 치프매니저 출신인데, RVC 레코드에 재직하던 시절 콘도를 맡고 쟈니 사장을 안 것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쟈니스와 관계를 맺고 있다. 1989년에 일어난 나카모리 아키나의 이른바 '사죄 기자회견(...)'은 그의 작품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동안 다른 간부들에 비해 팬과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으나, 2016년 SMAP 해체설 사건 때 주간지에서 입을 털면서 다시금 그 존재가 알려졌다.

2.5 이이지마 미치(飯島三智)

SMAP 치프매니저 겸 제이드림 이사. 1957. 2. 20. ~

원래는 사무직원으로 입사하였으나, 무명에 가까웠던 SMAP을 맡아 오늘날 일본 최고의 아이돌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8] 방송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지만, SMAP 멤버들은 이이지마를 쟈니 사장못지 않게 특별한 존재이며, 어려운 시절부터 동고동락하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SMAP 외에는 Kis-My-Ft2야마시타 토모히사의 매니지먼트를, Sexy ZoneA.B.C-Z의 미디어 출연 관리를 맡았다.

2000년대 초반에 SMAP이 국민 아이돌로 자리잡은 반면, 쥬리가 담당한 아라시의 성장이 늦자 항간에는 쟈니 사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이이지마를 낙점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 세대 교체로 아라시가 쟈니스 판매량 부동의 탑에 서게 되고 2015년 1월 메리 부사장이 《주간문춘》 인터뷰에서 차기 사장은 쥬리라고 대차게 밝혀버렸다. 동시에 이이지마를 급 호출하여[9] 자신과 대립할 생각이라면 SMAP을 데리고 나가버리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6년 1월 말에 정말로 이이지마가 쟈니스를 퇴사하면서 SMAP의 쟈니스 탈퇴 및 해체는 거의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였으나...생방송으로 대국민사과를 통해 재결합을 밝혔다.그러나 8월 13일 결국 SMAP은 해체가 확정되었다. 다만 SMAP의 멤버들의 소속사는 쟈니스로 유지한다.

메리 부사장이 이이지마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SMAP의 독자노선이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이지마가 SMAP을 처음 맡았을 때부터 쟈니 사장이 그녀에게 사실상 전권을 주어, 이이지마 퇴사 이전까지 SMAP에 대한 사항은 쟈니 사장에게만 직보하는 체제가 구축되고, 현장 매니저도 모두 그녀의 관할 하에 있었다.[10] 다른 간부들이 이에 위화감을 느끼면서 점차 이이지마 VS 쥬리(메리)의 구도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역사

모태는 사장 쟈니 키타가와가 코치했던 쟈니스 소년 야구팀으로, 당시 일본의 거대 기획사였던 와타나베 프로덕션의 의뢰로 1964년 쟈니스 소년 야구팀 중 4명을 뽑아만든 동명의 댄스 그룹[11]으로 데뷔했다. 회사 명칭은 사장의 미국식 이름에서 따온 것이긴 하나, 공식적으로는 "(댄스 그룹) 쟈니스의 소속사"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쟈니스는 70년대 포리브즈(フォ一リ一ブス)와 고 히로미를 히트시키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 히로미는 노구치 고로, 사이조 히데키와 함께 '신 고산케(新御三家)'로 불리며 1970년대 남성 아이돌의 탑쓰리로 군림했다. 후술하게 되는 쟈니스 연습생 육성 시스템인 '주니어' 제도도 이 시기에 정립되었다. 그러나 고 히로미는 쟈니스에서의 활동에 회의감을 느꼈고, 마침 바닝프로덕션으로부터 이적 제안이 들어오자 1975년에 주니어 멤버 6명을 데리고 이적해버렸다. 이후 쟈니스는 와타나베 프로덕션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연예 기획사로 독립, 이런저런 그룹과 솔로를 데뷔시키지만 큰 성과는 없었고 70년대 중후반 내내 암흑기를 맞는다.

1980년대 초반, 쟈니스는 타하라 토시히코, 콘도 마사히코, 노무라 요시오 등 소위 말하는 타노킨 트리오를 차례로 데뷔시키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콘도 마사히코는 데뷔 싱글이 창립 이래 최초의 밀리언에 연간 3위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등 쟈니스의 암흑기를 끝낸 일등공신으로 쟈니스 역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이때문에 메리 부사장이 매우 아끼는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다. 뒤이어 1985년에 소년대가 데뷔해서 히트하고, 1987년에 데뷔한 히카루GENJI는 사회현상으로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였다.

하지만 80년대 후반에 실력파를 자처하며 데뷔한 오토코구미, 닌자 등이 실패하고[12] 설상가상으로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인 TBS의 '더 베스트텐', NTV의 '노래의 톱텐', 후지 TV의 '밤의 히트스튜디오'가 1990년까지 모두 폐지되면서[13], '아이돌의 빙하기'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아이돌 자체의 설자리가 크게 좁아져 제 2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SMAP이 '친근함'을 내세워 버라이어티에서 활약하면서 점차 인기를 얻었으며 현재의 쟈니스에 이르게 되었다.[14] 그리고 SMAP을 기점으로 20대 초중반, 5~10년 전후에 불과했던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크게 길어졌다. 1993년에는 NHK-BS2에서 이제까지 선배 그룹의 백댄서 정도로만 알려졌던 쟈니스 주니어가 전면으로 나선 방송인 '아이돌 온 스테이지'[15]가 시작되었으며, 1995년에서 1999년 전후는 이른바 '주니어 황금기'로서 주니어의 인기가 웬만한 데뷔조를 능가하였다. 또한 1995년 V6를 시작으로 4년마다 배구 월드컵 이미지 캐릭터로 새 그룹을 데뷔시키는 체제도 만들어졌다.

2010년대 초반에는 Kis-My-Ft2가 SMAP과 계속적으로 1:1 바타로 엮이면서 속칭 '라인(파벌)' 문제가 불거졌다.[16] 1980년대에는 쟈니 사장이 모든 데뷔조를 직할할 수 있었지만, 쟈니 사장이 나이가 든 것도 있고 SMAP 이후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모든 데뷔조를 혼자서 관리하기 어려워지자 복수의 간부를 중심으로 업무를 분담한 것이 이 '라인'의 기원으로 보인다. 이 '라인'은 다음과 같이 나뉘었는데, 라인이 다른 그룹은 절대로 방송에 같이 출연하는 일이 없었다.

  • 이이지마 라인 : SMAP, Kis-My-Ft2, 야마시타 토모히사
  • 쟈니 라인(미디어에 한해 이이지마 라인 관할) : Sexy Zone, A.B.C-Z, 나카야마 유마
  • 중립 : KinKi Kids, 타키 앤 츠바사
  • 쥬리 라인 : 아라시, TOKIO, V6[17], NEWS, 칸쟈니∞, KAT-TUN, Hey! Say! JUMP[18], 쟈니즈WEST

이에 대해 2015년 1월 메리 부사장이 《주간문춘》 인터뷰에서 라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애꿎은 이이지마만 탓하였지만, 철저히 같은 라인끼리만 활동하는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2016년 1월에 이이지마가 쟈니스 사무소를 퇴사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위에서 라인을 4가지로 분류하였지만, 큰 틀에서 이이지마-쥬리 구도로 수렴되는 만큼 한쪽이 없어지면서 사실상 라인이 한 쪽으로 합쳐진 셈이기 때문.[19] 하지만 아직 '더 소년구락부'를 제외한 미디어 활동에서 라인의 틀이 깨진 사례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4 용어

쟈니스 사무소/용어 페이지를 참조.

5 방침

5.1 소속 연예인 관리

소속 연예인의 관리가 꽤 엄격한 편이다. 위법행위 외에 쟈니스 사무소의 공식적인 금지사항은 부업 금지. 쉽게 말해서 연예활동 외에 ○○○의 소머리국밥, ○○○의 간장게장 같은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뜻. 2013년에 KAT-TUN의 다나카 코키가 부업으로 바를 경영한 것이 적발되어 계약해지를 당한 사례가 있다.

이전에 미성년 멤버들의 음주, 흡연 문제가 몇 번 화제가 되었는데, 이로 이유로 소속 그룹에서 퇴출시키거나 심하면 사무소에서 방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로 NEWS의 멤버였던 우치 히로키와 쿠사노 히로노리는 미성년 나이에 음주소동을 일으켜 결국 그룹에서 퇴출당하고 주니어로 강등당한 바 있다.[20] 그리고 Hey! Say! JUMP의 멤버인 모리모토 류타로는 미성년 나이에 흡연이 발각되어 무기한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현재는 퇴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뷔하지 않은 쟈니스 주니어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1999년 1월에 '프라이데이 사건'이라 하여 주간지 《FRIDAY》에 인기 주니어 4명이 호화저택을 빌려 대차게 음주, 흡연파티를 연 사진이 실려 쟈니스 사무소에서 해고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4명은 물론 상당수의 주니어들이 잘려나갔으며, 애꿎은 이분은 주니어 대장이라는 이유로 뮤직 스테이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당시 해고 처분이 과도하다며 서명운동을 벌인 일부 빠순이팬들도 있었지만, 증거가 명백한데다 경찰 조사까지 거쳤으니 당연히 무시.

2013년에는 주니어 몇명이 콘서트장 화장실[21]에서 콜라로 장난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SNS를 크게 달군 일도 있었다. 동영상을 올린 건 이미 퇴소한 주니어였는데, 사무소 간부(쟈니 사장이라는 설도 있다)가 이걸 보고 "신성한 일터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대로했다고. 관련주니어들은 당연히 해고되었다. 이른바 주니어 대량해고 사건 중 하나. 이지메 가해 사실이 적발되어 해고된 주니어도 있었다.

이처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은 철저히 징계하고 있지만, 간혹 일웹에서 주간지에 기사가 떴음에도 멀쩡히 활동하는 연예인을 두고 소속사빨로 잘못을 덮는다는 안티성 글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주간지라는 것은 정확한 것이라곤 이름과 나이밖에 없고, 그것마저도 종종 틀린다고 할 정도로 신뢰성이 매우 떨어지는 황색언론인 데다, 사진이 없는 기사는 백이면 백 아무 근거도 없이 쓴 소설이므로 알아서 걸러봐야 한다. 비록 사진이 있다고 해도 그 사진이 문제행동과 직접 관계있는 사진인가는 또 다른 문제. 쟈니스뿐 아니라 일본, 아니 한국의 연예 기획사들도 그정도의 기사같지 않은 기사들은 철저히 무시한다.

물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가운데 과거에 사건사고를 저지른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은 그룹 연대책임을 포함하여 최소 몇개월에서 1년 이상 활동 정지를 거치고, 팬과 대중의 여론, 그리고 본인의 반성 여부를 철저히 따져 복귀시킨 것이다. 주니어의 경우 누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으나, 어디까지나 정식 데뷔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보도되지 않을 뿐, 조용히 계약해지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내쳐진다.

5.2 초상권 관리

아직도 20세기에 살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초상권 관리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른바 쟈니스 초상권. 쟈니스 소속 연예인의 사진이나 목소리는 원칙적으로 쟈니스 사무소의 허락 없이 절대로 인터넷에 올릴 수 없다. 즉 이들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접하고 싶다면 방송, 잡지, 음반 등 어디엔가는 돈을 바쳐야 한다는 것.

쟈니스 탤런트가 표지모델을 맡은 잡지의 경우 표지 사진은 실루엣 등으로 대체되거나 아예 생략되며(그림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쟈니스 소속 연예인이 출연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마저도 그 연예인의 사진은 사용될 수 없다. 가수 우타다 히카루아라시사쿠라이 쇼 본인에게서 선물받은 우치와(사쿠라이의 사진이 찍혀있었다)를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가 팬들의 지적으로 인해 사진을 그림으로 교체해야만 했다. 이밖에 지인들에 의해 쟈니스 탤런트와 찍은 사진이 실수로 SNS에 올라간 경우도 있었지만, 역시 곧 삭제되었다.

목소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쟈니스 탤런트가 출연하는 라디오는 팟캐스트 등의 다시듣기 서비스가 일절 제공되지 않는다. 쟈니스 탤런트가 성우를 맡은 애니메이션 작품 가운데 극장에서만 상영되고 DVD에서는 다른 성우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카토리 싱고가 출연한 TV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과 야마다 료스케, 치넨 유리가 출연한 극장판 「스머프」.

그런데 2010년 말부터 팬들을 위해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변화를 보이더니, 급기야 2011년 초에는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란에 사진이 뜨는 혁명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쟈니스 팬들은 눈을 의심할 정도. 물론 사이조[22]는 무시한다 하지만 사진이 뜨는 건 쟈니스와의 협의를 거친 공식 홈페이지 한정으로, 일본에서는 여전히 개인 사이트나 블로그에 쟈니스 탤런트의 사진과 목소리를 올릴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 쟈니스 초상권은 대부분 온라인상의 문제가 주를 이루지만, 오프라인에서도 초상권 관리는 매우 엄격하다. 쟈니스 탤런트가 방송에서 찾은 맛집이라도 방송 캡처는 금기시되며, "○월 ○일 방송 ★★ 출연"이라고 글씨로만 써서 붙이는 것도 매우 드물다.[23]

5.3 결혼에 관한 대응

아이돌 사무소다보니 소속 연예인의 결혼이나 연애에도 민감한데, 2015년 현재 쟈니스 탤런트 가운데 공식적인 유부남은 단 6명(…)이며, 이혼한 경우를 합쳐도 9명에 불과하다.[24] 이중 1980년대에 데뷔해 연차가 오래된 콘도 마사히코 등을 제외한다면 이 숫자는 훨씬 줄어든다.

소년대의 우에쿠사 카츠히데는 속도위반 결혼이라 결혼이 가능했다는 설이 있는데, 기자들의 따지는 듯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며 결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의 사과를 한 일은 유명하다. SMAP기무라 타쿠야는 2001년에 사무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콘서트 투어 중 기자회견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낳아서, 기자들에게 "너는 이제 끝이다." 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근데 안끝났다. 괜히 기무라 타쿠야겠냐? 기무라는 방송에서 결혼생활과 아이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전혀 없으며, 아내 쿠도 시즈카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남편 얘기는 없다. 2007년 V6이노하라 요시히코가 배우 세토 아사카와 사무소의 승인 아래 정상적으로 결혼하여, 쟈니스 최초 콘서트 도중 결혼 발표[25]쟈니스 최초 부부동석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으나 방송에서의 언급은 여전히 NG. 그나마 해금된 게 이 정도다!

이런 면모 탓에 독신 코스프레냐며 비웃음을 사지만, 사실 쟈니즈 소속으로 콘서트, 싱글 발매, 레귤러 방송으로 꾸준히 활동중인 연예인이라면 미모가 쇠락하고 나이가 40대 가까이 되어 완전히 아저씨 이미지가 되지 않는 이상 방송에서 결혼한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언급은 매우 드물다. 이는 비단 언급된 기무라나 이노하라 뿐만 아니라 쟈니스 사무소에서 데뷔력이 길어 사무소 내 영향력이 센 히가시야마 노리유키(2010년 배우 기무라 요시노와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출산 소식 정도는 팩스로 언론사에 보고하는 듯하다.

가장 최근에 결혼한 연예인은 TOKIO고쿠분 타이치로, 2015년 9월 11일 일반인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다. 이 결혼은 크게 두 가지로 화제가 되었는데, 하나는 언론 보도 이전에 팬클럽 회원들에게 자필 메시지를 발생해 최소한의 정성을 보였다는 점이며,[26] 다른 하나는 현역으로 활동중인 그룹에서 2번째로 결혼하면서(야마구치 타츠야가 2008년에 결혼) 1그룹 1결혼설이 깨졌음이 주목받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야마구치 타츠야가 2016년 이혼하면서 정설인걸로...[27] 쟈니 사장이 이전에 1그룹 1결혼설을 부정한 적이 있고,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돌이라도 적령기를 지나면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1년 1결혼설로 바뀌었다

5.4 연애에 관한 대응

결혼이 안 되면 연애는 어떻냐고 묻는다면,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여자 연예인들과의 연애는 대개 사무소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노 코멘트, 친한 선후배 사이라고 얼버무리는 것이 아이돌 사무소의 정통 방침. 유일한 예외는 가수 하마사키 아유미와 7년 간의 연애 끝에 2007년 결별한 나가세 토모야의 경우다. 이 경우는 하마사키와의 연애가 나가세와 그룹 TOKIO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인지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듯하다. TOKIO는 자니스 사무소에서는 유일한 록밴드형 아이돌이라 다른 그룹과는 달리 거칠고, 반항적이며, 아저씨스럽고(…) 사소한 일탈은 유머이자 그룹의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데뷔 20주년이 넘은 SMAP는 멤버들이 40을 바라보고 있는지라 결혼을 해금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아라시의 경우 이제 30살을 찍었기에 연애에 대한 제재는 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진작에 결혼 해금은 했지만, 결혼 해금과 동시에 쟈니스 소속 연예인들 커플이 재제와는 관계 없이 하나둘씩 깨져가면서 이런 얘기가 돈 듯. 이 밖에 최근 4~5년간 헤어진 커플은 V6오카다 준이치아오이 유우, 사카모토 마사유키모닝구 무스메나카자와 유코(연애 기간 10년), 모리타 고우에토 아야, SMAP이나가키 고로칸노 미호(역시 사무소 압력설이 우스울 만큼 장기간 연애), 나카이 마사히로코다 쿠미 등이 있다. 쟈니스 소속 연예인도 그렇지만 상대 여성 연예인도 거물인 경우 특히 결혼보다는 장기간 연애를 하게 되는 듯 하다.

그래도 현재 잘만 열애 중인 커플도 있고, 이젠 SMAP 멤버들이 레귤러 방송에서 결혼 얘기를 많이 하는 듯 하다. 오카다 준이치의 경우 결혼을 원했는데 아오이가 결혼하기 싫어서 오카다는 현재 다른 일반인과 반 동거 상태로 열애 중이라고 하며, 나가세 토모야는 아이부 사키와 상견례까지 나눴다는 소식도 있다.

5.5 사내 경쟁의 지양

데뷔한 그룹 사이에 경쟁을 부추기지 않도록 하는 회사 방침에 따라 겹치기 출연을 통제하고 있으며, 음악 관련 시상식에는 불참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

겹치기 출연 문제의 경우 최근 한국에서도 이를 지양하고 있으나, 쟈니스의 경우 그 단위가 연예인 개인이 아니라 사무소 전체라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에 SMAP의 레귤러 프로그램인 'SMAP×SMAP'이 방송되면, 그 시간대에는 SMAP 멤버는 물론 다른 그룹이 출연하는 방송도 편성되지 않는다. 다만 이건 TV 방송과 TV 방송, 라디오 방송과 라디오 방송 사이에서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는 것이며, TV 방송과 라디오 방송 사이 혹은 방송지역이 다른 경우라면 겹치는 시간대에 편성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음반이나 DVD 발매도 절대로 겹치지 않게 조정한다. 오리콘 차트의 경우 싱글, 앨범, DVD, 블루레이 등의 부문으로 나누어 집계하는데, 각 부문별로 1주일에 한 그룹씩만 발매하여 첫주 랭킹을 갖고 경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일례로 2015년 11월 25일에 발매된 NEWS의 싱글 '四銃士'가 CD 싱글이 아닌 DVD 싱글로 발매된 것이 발매 타이밍 문제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28]

시상식의 경우 노미네이트 형식(후보자를 미리 공표하고, 그 다음에 수상자를 발표하는 방식)의 시상식에는 불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음악 시상식에 콘도 마사히코히카루GENJI가 나와 수상했으나, 1990년대부터는 일본 레코드 대상이나 일본 아카데미상에 불참하는 방침이 굳어졌다. 그 원인으로 일본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꼽고 있는데, 하나는 1987년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콘도 마사히코가 유골을 도난당해 협박을 받은 사건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1990년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닌쟈가 가요곡 부문이 아닌 록 부문의 후보로 오른 것에 불복하여 시상식에 불참한 것.

그러나 오리콘 연간대상이나 베스트 지니스트처럼 수상자를 바로 발표하는 경우, 혹은 해외 시상식의 경우 이와는 무관하게 그대로 수상하도록 하고 있다. 2008년에 일본 레코드 대상이 수상자를 바로 발표하는 것으로 방식이 바뀌면서, 2010년에 콘도 마사히코가 최우수 가창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 아카데미상의 경우 노미네이트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 오카다 준이치가, 2016년에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는데, 오카다가 아이돌보다는 배우 활동의 비중이 훨씬 높은 만큼 수상을 받아들인 것으로 발표되었지만, 니노미야의 수상으로 2년 연속으로 아카데미상 수상이 이루어짐으로써 쟈니스측의 방침이 바뀐 것으로 추측할 개연성이 생겼다.

5.6 금기사항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조공으로 불리는 선물은 쟈니스에서 금지되어 있다. 이전에 아라시의 멤버 아이바 마사키의 본가가 있는 중화요리점에서 팬들이 보낸 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가, 사무소측이 아이바 본인을 통해 가게에서 선물을 치울 것을 요구한 적도 있다.

아래는 쟈니스 사무소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

팬 여러분께 선물에 대한 안내와 당부의 말씀

팬레터 등 팬 여러분의 편지는 탤런트를 대신하여 쟈니스 패밀리 클럽에서 수령한 후에 탤런트 본인에게 보내드립니다. 다만 선물(화환이나 금품을 포함)은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으므로, 우송분에 대해서는 그대로 되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극장이나 콘서트 회장으로의 발송분도 동일하게 반송 처리됩니다.

또한 편지가 익명으로 보내진 경우나, 부패나 손상될 것으로 예상되어 반송할 수 없는 물건(식품 등)에 대해서는 안전관리상 쟈니스 패밀리 클럽의 판단에 따라 소각 처분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현금이나 상품권 등의 금품이 익명으로 보내져 온 경우 등, 소각 처분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현재 J-FUND(재해 피해지역으로 기부)의 일부로서 힘든 상황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위 내용을 이해하여 주시고 협조 부탁드립니다.

저희들은 여러분의 응원 메시지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 2004년 12월, 탤런트 일동, 쟈니스 패밀리 클럽

원래 1980년대까지는 쟈니스 소속 연예인에게 선물을 줄 수 있었다. 히카루GENJI의 전성기엔 매년 발렌타인 데이마다 10톤 트럭으로 수십대나 되는 초콜렛이 사무소로 도착했는데, 이에 사무소측은 "본인들은 그렇게나 많이 먹을수 없다"고 밝혔다. 아마 이런 카오스를 보다못한 사무소측이 결국 조공 자체를 금지시킨 것으로 보인다.

팬이 쟈니스 탤런트를 만났을 때도 사진 촬영 금지사인 금지라는 금기가 있다. 사진 촬영 금지는 쟈니스 초상권과 관련된 금기이며, 하지만 신한돌은...[29] 사인은 기본적으로 콘서트에서 던져주는 사인볼이나 사인보드 외에는 요구할 수도 해줄 수도 없다. 악수는 연예인 재량에 따라 해줄 수도 있는 듯. 이밖에 공연장이나 방송국 입구에서 쟈니스 탤런트를 기다리는 데마치(出待ち)는 가능하긴 하나, 역이나 공항처럼 공간이 좁은 곳에서 기다리거나 일부러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6 쟈니스 주니어

쟈니스 사무소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지 않은 연예인을 쟈니스 주니어라고 하며, 흔히 한국 아이돌계의 연습생에 대응되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쟈니스 주니어는 크게 도쿄 본사에서 선발해 활동하는 '쟈니스 주니어'(도쿄 주니어)와, 칸사이 사무소에서 선발해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칸사이 쟈니스 주니어'(칸사이 주니어)로 나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콘서트나 방송 무대에서 선배 그룹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인기 주니어들은 버라이어티나 영화에서 활약하거나 독자적으로 유닛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쟈니스 사무소에서는 CD 음반을 내야 데뷔한 것으로 간주하였으나, 이쿠타 토마를 시작으로 음반을 내지 않고도 전업 연기자로서 쟈니스 주니어를 졸업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또 2012년에는 A.B.C-Z가 DVD 싱글로 발매하면서 그룹 데뷔의 의미가 확장되었는데, 이는 A.B.C-Z가 아크로바틱을 특기로 하는 그룹인 만큼 음반보다 영상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쟈니스 주니어 문서를 참고.

7 비판

자세한 내용은 쟈니스 사무소/비판 문서를 참고.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별도 문서로 분리하였다.

8 팬덤

팬이 많다. 굉장히 많다. 무지 많다. 게다가 여러 그룹이나 개인을 동시에 좋아하는 문어다리 팬질도 굉장히 흔한 편. 지나가는 쟈니스 팬을 붙잡고 물으면 "이치방"으로 꼽는 최고로 좋아하는 그룹 외에도 관심있는 다른 그룹이 분명히 있다(…).

이것을 통칭 "쟈니스 다단계"라고 부르는데, 쟈니스 소속 한 개인을 좋아하게 되면 대부분 그가 속한 그룹에 관심이 생기고, 그 그룹의 레귤러 프로그램이나 소속 멤버의 드라마를 보게되면 거기에 출연하는 또 다른 소속 탈렌트에 관심이 생기게 되는 식으로 무한 루프, 끝이 없다(…). 쟈니스 빠도 오덕의 일종이니 덕계와 공통점이 많은데, 이쪽은 그쪽보다도 더, 무지, 많이 좁긴 하지만 의외로 깊고, 빠졌다 싶으면 나가기가 힘들다. 그 외에는 성별이 반전된 거 의외엔 별 차이 없음(…).

여러모로 까기는 했지만 확실히 팬질하고 놀기 딱 좋은 시스템. 역사가 길다보니 각 그룹간 어필 포인트가 달라 쇼타부터 미중년까지 취향대로 골라잡아 매일매일 놀다보면 하루가 심하게 짧다. SMAP같은 경우엔 할머니와 손녀가 손을 잡고 콘서트를 구경하는 일도 있고, '치비 주니어'로 콩알 같던 초등학생 소년을 눈여겨보았는데 고놈이 자라 번듯한 청년이 되어 데뷔한다거나 할 때의 하지만 역변해 버리면... , 왠지 자식 기르는 듯한 쾌감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 하지만 요새 주니어가 CD데뷔까지 할 확률은 기대를 말자. 갈수록 CD데뷔가 어려워지는 사내 구조 때문에 주니어 내 인기 유닛이었던 Ya-Ya-yah 멤버 4명 중 데뷔를 못 한 2명이 다른 소속사로 옮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유카와 타이요는 유명 기획사인 프로덕션 오기로 이적해 2011년 우라카라 10화 출연을 시작으로 다시 연기 활동을 하게 되고, 야마시타 쇼온은 동생 레온을 데리고 Sky Corporation에서 활동하기 시작. 하지만 블로그를 시작한뒤 자니스측에서 뭐하냐고 고나리를 받은 후 잠시 내릴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Hey!Say!JUMP 때문에 깨진 Ya-Ya-yah 백댄서유닛 동생 그룹 J.J.Express에서도 아사카 코다이는 이적후 대중적인 인지도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Hey!Say!JUMP의 몇 멤버들보다 일이 많이 들어온다...

위와 같은 내한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 일본 가수 중에서 내한해 콘서트를 한다면 전 좌석을 매진시킬 수 있는 화력을 지닌 거의 독보적인 팬층(구매 능력이 뒷받침되는+여성팬)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캇툰을 보라

도호쿠 대지진의 피해 지역에 발전차 2대와 전문 스탭, 생수 등을 실은 트럭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TOKIO, 아라시, 캇툰, Hey! Say! JUMP의 음반 레이블인 제이스톰에서 1억엔을 적십자사를 통해 기부한 한편, 전지 9850개(내역: 단1전지 6630개, 단2전지 2160개, 단3전지 1060개), 회중 전등 608개, 방수 시트 120매를 센다이 지역에 지원하였다. 근데 배용준보다 적잖아!

백괴사전에서도 좋아하는 것 같다.

9 한국의 쟈니스

간혹 쟈니스는 일본에서만 그 영향력과 팬덤이 많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한국 연예계에도 쟈니스가 끼친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과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쟈니스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초반 콘도 마사히코의 '깅기라긴니사리게나꾸'가 암암리에 인기를 끌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히카루GENJI가 등장,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었으며 이들에 관련된 팬사이트가 히카루겐지가 사실상 해체하고도 훨씬 시간이 지난 200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을 정도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쟈니스의 전성기가 오면서 한국 연예 기획사들도 쟈니스 시스템을 모방해서 댄스 그룹들을 데뷔시켰다. 대표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 이수만이 쟈니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대성기획 소속이었던 젝스키스는 데뷔 때부터 멤버들의 나이를 기준으로 이미지를 달리한 블랙키스, 화이트키스로 나뉘었는데, 훗날 멤버 이재진이 밝힌 바로는 V6의 컨셉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관심이 비교적 높았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팬덤의 규모가 상당했으나 그 후 일본 대중문화가 침체기를 겪으면서 예전과 같은 팬덤 활동은 줄어든 편. 그나마 쟈니스 대표 아이돌인 아라시가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한국 내의 일본 대중문화 팬덤의 중심역할을 하는 중이다.

10 현재 소속 연예인

현재 쟈니스 사무소 공식 홈페이지에 단독 페이지가 있는 그룹을 정식 데뷔조로 친다. 원래 쟈니스는 CD 데뷔를 해야 데뷔로 취급한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위에서 언급했듯 연기자 데뷔나 DVD 데뷔 등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그룹에서의 멤버 배열 순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순서를 따른다.

10.1 그룹 (CD 데뷔 순)

  • 소년대 (1985)소녀시대의 조상이다 카더라 - 니시키오리 카즈키요,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우에쿠사 카츠히데
2015년 현재 명목상으로 쟈니스 최장수 그룹. 현재 쟈니스넷에서는 그룹으로 분류된 반면, 쟈니스웹(모바일 전용)에서는 솔로로 분류되어 있다. 현재는 그룹 활동이 거의 없고 솔로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룹이 공식적으로 해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룹으로 분류한다.
일본의 국민 아이돌이자, 아이돌의 패러다임을 바꿔 현재의 쟈니스에 큰 영향을 준 그룹이다. 모리 카츠유키는 모터레이서가 되기 위해 1996년에 탈퇴하고 사무소를 퇴소. 2016년 12월 31일 공식적으로 해산. 멤버들은 전원 사무소 잔류.
  • TOKIO (1994) - 죠시마 시게루, 야마구치 타츠야, 고쿠분 타이치, 마츠오카 마사히로, 나가세 토모야
현재 쟈니스 유일의 록 밴드 아이돌.
  • V6 (1995) - 사카모토 마사유키, 나가노 히로시, 이노하라 요시히코, 모리타 고, 미야케 켄, 오카다 준이치
배구 월드컵 이미지 캐릭터로 데뷔한 첫 그룹. 멤버 전원이 백턴을 할 수 있으나, 최근 들어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전처럼 자주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2015년 11월 베스트 아티스트에서 멤버 전원의 백턴이 생방송으로 방송되어 화제를 불렀다. 요리, 구루메, 사회,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중.
최초로 모든 멤버가 칸사이 출신으로 데뷔. 데뷔 싱글부터 35작 연속으로 오리콘차트 1위를 기록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음악성이라는 측면에서 쟈니스 소속 그룹들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다.
2016년 현재 가장 큰 규모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룹이다. 한국도 자주 방문했으며 그 덕분에 한국에서도 팬이 꽤 많다.
모리우치 타카히로는 흡연사진이 발각되어 2003년에 탈퇴해 현재 ONE OK ROCK에서 활동중이며, 우치 히로키와 쿠사노 히로노리는 미성년 음주 문제로 탈퇴하였는데, 쿠사노는 2008년에 퇴소하고 우치는 현재도 솔로로 활동중이다. 2011년에는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솔로 활동을 위해, 니시키도 료가 칸쟈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탈퇴하여 현재는 4인조로 활동.
최초의 칸사이 주니어 출신 그룹. 니시키도 료와 우치 히로키(전 멤버)는 NEWS와의 겸임 멤버였으나, 우치는 2005년 7월에 미성년 음주 사건으로 사실상 양 그룹에서 탈퇴 처리되고, 니시키도는 2011년 10월 7일에 NEWS를 탈퇴하고 칸쟈니∞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 KAT-TUN (2006) - 카메나시 카즈야(KA), 우에다 타츠야(TTU), 나카마루 유이치(N)
아카니시 진(A)은 2010년 7월에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활동한 뒤 2014년에 퇴소했으며, 다나카 코키(하이픈 뒤의 T)는 2013년 9월에 규정 위반으로 해고계약해지 되었다. 4인 체제로 정비된 뒤 활동을 잘 해가나 싶었더니... 2015년 11월 24일 '베스트 아티스트' 생방송에서 KY 다구치 준노스케(하이픈 앞의 T)가 탈퇴와 사무소 퇴소를 선언하고 2016년 4월에 정식 퇴소하였다.
모리모토 류타로는 2011년 6월에 미성년 흡연으로 무기한 근신 처분을 받았으며, 2014년 이후에 쟈니스 사무소를 퇴소해 미국 유학 후 친구들과 '제로'라는 댄스유닛을 결성했다.
히카루GENJI 이래의 롤러스케이트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얼굴이 못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이걸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키스마이 BUSAIKU!?'라는 방송까지 만들었다. (부사이쿠는 일본어로 추남이라는 뜻) 주니어 시절의 인기를 기반으로 예능 등을 통해 새로 유입된 팬들도 많아 현재 2000년대 후반 이후에 데뷔한 그룹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편.
  • Sexy Zone (2011) - 사토 쇼리, 나카지마 켄토, 키쿠치 후마, 마리우스 요, 마츠시마 소우
멤버차별 논란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견뎌내고 강해지고 단단해진 그룹. 팬들과의 가까운 거리를 중시하고 예능이 재밌다고 입소문을 타기도 하는 미친자...아니 남고생들 그룹이다. 실제 연령도 평균 19세로 쟈니스 최연소이며, 마리우스 요는 현재 나이 관계로 데뷔조 멤버 가운데 쟈니스 카운트다운 라이브에 생방송 출연이 불가능한 유일한 멤버이다.
  • A.B.C-Z (2012) - 하시모토 료스케, 토츠카 쇼타, 카와이 후미토, 고세키 코이치, 츠카다 료이치
아크로바틱을 특기로 하는 그룹으로, DVD 싱글로 데뷔하였다. 여담으로 하시모토를 제외한 멤버 4명이 1998~1999년에 입소하여 최장기간 주니어 활동을 갖고 있는 그룹.
칸쟈니∞ 이후 10년만에 데뷔한 칸사이 출신 그룹이다.

10.2 솔로 (데뷔 순)

데뷔 연도는 그룹으로 데뷔 → 솔로 데뷔 순으로 기재한다.

아들이 Hey! Say! JUMP오카모토 케이토로, 쟈니스 최초의 부자 데뷔.
2010년 8월 31일자로 쟈니스 최초 전업 연기자로서 주니어를 졸업하였다.
미성년 음주 문제로 근신한 뒤 2006년에 연수생으로 복귀하고, 2008년 1월 3일에 연수생을 졸업하고 주니어로 승격하였으며, 2013년 10월 21일자로 단독 페이지가 생성되어 데뷔조가 되었다.
원래 NYC라는 근본 없는 유닛으로 CD 데뷔(2009년에 기간한정 유닛, 2010년에 정식 유닛)하였으나, 2012년 10월에 솔로 CD를 내고 2014년 4월에 정식으로 솔로 데뷔하였다. NYC는 2015년 10월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삭제.
  • 사노 미즈키 (2015)
1991년 9월 26일에 입소해 무려 24년 동안 쟈니스 주니어(...)였다가, 2015년 10월 15일자로 단독 페이지가 생성되면서 주니어를 졸업했다.
  • 야라 토모유키 (2015)
  • 카자마 슌스케 (2015)
  • 하세가와 준 (2015)
이쿠타 토마, 카자마 슌스케, 하세가와 준은 4TOPS라는 주니어 유닛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야마시타만 NEWS로 데뷔하고 나머지는 낙동강 오리알여전히 주니어로 활동하였다. 2010년에 이쿠타의 단독 페이지가 생성되고, 2015년에 카자마와 하세가와도 단독 페이지가 생성되어 주니어를 졸업하였다.참 빨리도 해줬다

11 과거의 쟈니스 소속 연예인

여성 탤런트는 로 구별하며, 현재 솔로로 쟈니스 사무소에 소속된 연예인은 굵은 글씨로 쓴다.

11.1 그룹

  • 쟈니스 (1964~1967) - 마이에 히로미, 이이노 오사미, 나카타니 료, 아오이 테루히코
  • 포리브스 (1968~1978) - 키타 코지, 아오야마 타카시, 에기 토시오, 오리모 마사오, 나가타 에이지
  • 주크복스 (1970~1973) - 코타니 츠네요시, 카자마 타다요시
멤버 변동이 많아 제1기에서 제7기로 나뉜다. 해체 당시 남은 멤버는 2명.
  • 쟈니스 주니어 스페셜 (1974~1978) - 이타노 토시오, 하야시 마사아키, 하타케야마 마사히사
  • 리틀 갱 (1975~1976) - 마츠바라 히데키, 소가 야스히사
  • VIP (1978~1979) - 이타노 토시오, 하야시 마사아키, 하타케야마 타카히사, 카와무라 노부코, 요시모토 카즈코
쟈니스 주니어 스페셜(JJS) 멤버와 여성 멤버가 합쳐서 만든 혼성그룹.
  • 쓰리 양키스 (1978~1980) - 하시모토 미사코, 카와사키 시즈코, 마츠오 타카코
  • 시부가키대 (1982~1988) - 후카와 토시카즈, 모토키 마사히로, 야쿠마루 히로히데
모토키 마사히로는 현재 영화배우로 더 유명하다. 대표작은 2008년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굿바이」.
  • 이글스(1982~1985) - 나카무라 시게유키, 우지 마사타카, 우치우미 코지, 오오사와 미키오
  • THE GOOD-BYE (1983~1990) - 노무라 요시오, 소가 야스히사, 카가 하치로, 에토 코이치
  • 오렌지 시스터즈 (1984~1985) - 요시타케 카요코, 사카이 사에(현 아사이 유키노), 요시카와 마사미
쟈니스의 마지막 여성 아이돌.
  • 히카루GENJI (1987~1995) - 우치우미 코지, 오오사와 타카오, 모로호시 카즈미, 사토 히로유키, 야마모토 준이치, 아카사카 아키라, 사토 아츠히로
아카사카 아키라는 그룹 해체 뒤에도 쟈니스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2007년에 마약 복용으로 해고되었다.
  • 오토코구미 (1988~1993) - 나리타 쇼지, 타카하시 카즈야, 오카모토 켄이치, 마에다 코요
  • 닌자[30] (1990~1997) - 야나기사와 스스무, 엔도 나오토, 마사키 신야, 타카기 노부히데, 시가 야스노부, 후루카와 에이지

11.2 솔로

그룹으로 정식 데뷔한 적이 없는 솔로 연예인만 여기에 서술한다.

  • 이이노 야스요 (1968~1971)
활동 중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
  • 나가타 에이지 (1969~1977)
  • 우치다 에이지 (1970~1976)
  • 시마다 준 (1970~1977)
포리브스의 아오야마 타카시와 결혼하여 연예계 은퇴. (후에 이혼)
  • 고 히로미 (1972~1975)
  • 아오이 테루요시 (1973~1976)
  • 아오야마 노부히로
포리브스의 아오야마 타카시의 동생.
  • 이노우에 준이치 (1975~1984)
  • 토요카와 죠 (1975~1979)
  • 도노 유타카 (1975년 데뷔)
  • 모리타니 아키라 (1976년 데뷔)
  • 미토 유우 (1976년 데뷔)
  • 카와사키 마요 (1977~1989)
  • 아카기 사토시 (1979년 데뷔)
  • 타하라 토시히코 (1980~1994)
  • 히카루 잇페이 (1981~1982)

12 주요 계열사

  • 쟈니스 엔터테인먼트(Johnny's Entertainment)
1997년 KinKi Kids의 데뷔와 함께 최초의 자체 레이블로 설립되었으며, 현재 소년대, NEWS, 나카야마 유마, 쟈니즈WEST의 음반 및 DVD 발매를 맡고 있다. 여기에 소속된 그룹들은 이상하게도 음반 발매 주기가 긴 것으로 유명하다. 쟈엔이 월급루팡인 건 팬들은 다 아는 사실
쟈니 사장의 조카인 쥬리 부사장이 대표로, 이름 그대로 2001년 아라시의 전용 레이블로 설립되었다. 그 뒤 KAT-TUN, Hey! Say! JUMP, TOKIO, 칸쟈니∞(인피니티 레코드)의 음반 및 DVD 발매를 맡게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도쿄 글로브좌(The Globe Tokyo)
1988년에 지어진 공연장을 2002년에 파나소닉으로부터 인수하였다. 쟈니스 탤런트가 주연인 부타이 공연을 기획, 상연하고 있다.
  • 제이드림(J-dream)
사장은 쟈니 키타가와이며, 이사는 이이지마 미치. 영화 제작사로, SMAP, Kis-My-Ft2,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주연하는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 쟈니스 패밀리 클럽(Johnny's Family Club)
공식 팬클럽의 운영과 회원 관리를 담당.
  • 콘서트 사무국
공식 팬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콘서트, 공연의 티켓 신청과 추첨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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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쟈니 사장의 조카인 쥬리 부사장도 연습생 출신이다.
  2. 실제 일본 기획사들은 경영권 및 정보공개 문제로 인하여 비상장 기업이 많다. 호리프로와 에이벡스가 상장 기획사의 대표적 사례.
  3. 칸쟈니∞요코야마 유를 부를 때는 '요코'라고 부른다고.
  4. 그 뒤 모리 미츠코쿠로야나기 테츠코는 쟈니스 카운트다운 라이브를 비롯한 여러 공연에 게스트 출연하고 있으며, 2012년에 모리 미츠코가 사망했을 때 다수의 쟈니스 탤런트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쟈니스 팬들에게는 여러모로 애증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 듯.
  5. 후지시마 타이스케에게는 원래 아내가 있었으나, 요쓰야의 바에서 메리와 눈이 맞아 쥬리를 낳은 뒤 이혼하였다. 덧붙여 소설가 외에 보수우익 성향의 사회 평론가로도 활동하였는데, 1974년에 시인 김지하가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자 일본 펜클럽 대표로 내한해 "그의 사형 선고는 문학활동이 아니라, 정치활동 때문"이라고 발언하여 일본 펜클럽이 뒤집어진 적도 있었다고. 1997년에 암으로 사망.
  6. 2000년대 초반 아라시는 스캔들과 캐릭터 변화로 혼란을 겪었으며, NEWS는 사건사고와 멤버 탈퇴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뒤에 데뷔한 Hey! Say! JUMPSexy Zone 등은 쟈니 사장이 직할하였는데, 항간에는 이를 두고 쟈니 사장이 쥬리 부사장에게 실망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나오기도 하였다.
  7. 야마시타 타츠로타케우치 마리야의 소속사이다. 쟈니스 계열사는 아님.
  8. 쟈니스 사무소는 원래 여성을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로 쓰지 않는다. 여성 직원은 있지만 모두 사무직이며, 쟈니스 탤런트와 같이 일하는 여성 스타일리스트는 모두 외주직원.
  9. 이 사건으로 한때 "이이지마를 불러(飯島を呼んで)"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하기도 하였다.
  10. 그래서인지 SMAP은 쟈니스 내 타 그룹과 접점이 적은 편이다. 그나마 Kis-My-Ft2Sexy Zone이 데뷔하고 이이지마가 미디어 스케쥴을 맡으면서 같이 방송에 출연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
  11. 현재 '쟈니스'라는 명칭은 쟈니스 사무소의 약칭으로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 댄스 그룹을 지칭할 때에는 '초대 쟈니스'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12. 오토코구미는 아주 실패한건 아니었다. 데뷔 초기때는 오리콘 1위도 여러번 차지한데다 도쿄돔 공연까지 했을정도로 나름대로 인기가 좋았던 아이돌 그룹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히카루GENJI가 먼치킨급 인기를 얻는 바람에 전성기가 짧았을뿐 해체 이후에는 각자 뮤지션,배우의 길을 택했고 멤버 중 한명이었던 나리타 쇼지는 2009년에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된 사례가 있었다.
  13. 지금에야 일본에서 음악방송이라고 하면 '뮤직 스테이션'부터 떠올리겠지만, 1980년대에 음악방송이라고 하면 위의 세 방송을 가리켰으며 히카루GENJI 등을 비롯한 아이돌의 주 활동무대도 이쪽이었다. '뮤직 스테이션'은 1986년에 시작된 후발주자로 시청률 확보에 크게 고전하다가, 1988년부터 히카루GENJI가 매주 출연하면서 '가족 대상'에서 '청년 대상'으로 노선을 바꾸고 지금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14. 1992년에 SMAP후지 TV의 '꿈이 MORI MORI'로 첫 레귤러 버라이어티에 출연할 때, 쟈니 사장이 담당 프로듀서에게 "벗는 것만 빼고 뭐든지 해도 좋다"고 한 일화는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편이다.
  15. 이 방송은 1997년에 '뮤직 점프'를 거쳐, 2000년부터 '더 소년구락부'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16. 일본에서는 '파벌'로 불리며, 한국에서도 초기에는 '파벌'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쓰였으나 어감이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인지 점차 '라인'이라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한국에서 '파벌'이라는 말은 대개 사내정치라는 의미에서만 쓰는데, 쟈니스의 '파벌'은 사내정치보다는 매니지먼트 분담이라는 특성이 더 중요한 만큼 표현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17. V6는 애매한 편이었으나 2014~2015년을 전후해 쥬리 라인으로 분류되었다.
  18. Hey! Say! JUMP는 원래 쟈니 라인이었으나 2013~2014년을 전후해 쥬리 라인으로 분류되었다.
  19. 일본의 믿거나 말거나 연예전문 리포터 이노우에 코조는 2015년 가을 무렵에 Kis-My-Ft2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쥬리 라인측으로 넘어갔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20. 우치 히로키는 당시 NEWS칸쟈니∞ 겸임 멤버였으나, 당시 칸쟈니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던데다 음주 사건이 NEWS 스케쥴(배구대회 서포터) 중에 터진 것이라 기사에서는 주로 NEWS 멤버로 언급되었다.
  21. 당연히 선배 그룹의 콘서트에 백댄서로 서러 간 것이다! 정확히 어느 그룹이었지는 확실하지 않다.
  22. 연예뉴스 인터넷 매체로, 쟈니스 카테고리가 따로 올라온다.
  23. 이건 초상권보다는 방송후 장사에 방해가 될 정도로 쟈니스 팬들이 떼거리로 몰려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업주측에서 쟈니스 방송의 취재를 거부하는 경우도 꽤 많다.
  24. 콘도 마사히코(1994년 결혼), 기무라 타쿠야(2001년 결혼), 이노하라 요시히코(2007년 결혼), 야마구치 타츠야(2008년 결혼), 히가시야마 노리유키(2010년 결혼), 카자마 슌스케(2013년 결혼). 이혼남은 오카모토 켄이치(1992년 결혼, 2007년 결혼)와 우에쿠사 카츠히데(1994년 결혼, 2010년 이혼) 야마구치 타츠야(2008년 결혼, 2016년 이혼) 3명.
  25. 팬들에게 가장 먼저 보고하고 싶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26. 이전에 히가시야마 노리유키도 결혼하면서 자필 메시지를 보냈다.
  27. 사실 1그룹 1결혼설은 이미 소년대에서 깨졌다(1994년 우에쿠사 카츠히데, 2010년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하지만 소년대가 현재 그룹 활동보다는 솔로 활동을 메인으로 하는 만큼, 그룹 활동이 활발한 경우에는 여전히 1그룹 1결혼설이 존재한다는 설이 유력하게 이어졌던 것.
  28. 같은 주에 쟈니스에서 CD 싱글을 발매하지는 않았지만(2015년 12월 7일자 오리콘 차트 1위는 HKT48이었다), 그 전주에는 KinKi Kids가, 그 다음주에는 칸쟈니∞가 싱글을 발매하였다. 한편 쟈니스측에서 1위 가능성을 따져서 발매 시기를 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NEWS는 데뷔 싱글부터 계속 1위를 유지했던 그룹인 만큼, 한번 1위 기록을 놓칠 경우 타격이 크기 때문.
  29. 칸쟈니∞요코야마 유가 개인적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서울시내 신한은행 모 지점 앞에서 한 팬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라고 하자 "젠젠 이이요"라고 하면서 찍은 사진이 유출된 적이 있다.
  30. 대표곡으로는 '오마쯔리 닌자'가 있다. 참고로 이 곡은 90년대 중반에 크게 인기를 끌던 한국의 대표 혼성그룹 룰라에 의해 '천상유애'라는 이름으로 표절되어 룰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데 공헌을 해준 그 곡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