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크로네시아의 국가 및 지역 | ||
오가사와라 제도 (일본) | 북마리아나 제도 (미국) | 웨이크 섬 (미국) |
팔라우 | 괌(미국) | 마셜 제도 |
미크로네시아 연방 (미국) | 나우루 | 키리바시 |
국기 | |
공식명칭 | 나우루공화국(Republic of Nauru, Ripubrikit Naoero) |
면적 | 21㎢[1] |
인구 | 9,378명 (2011년 통계) |
수도 | 사실상 야렌[2] |
정치체제 | 의원내각제 가미 대통령제 |
대통령 | 바론 와카 (Baron Waqa) |
임기 | 2013년 6월 13일 ~ 2016년 7월 13일 2016년 7월 13일 ~ 2019년 6월 13일 (예정) |
의회 대변인 | 루드위크 스코티 (Ludwig Scotty) |
공용어 | 영어, 나우루어 |
국교 | 그리스도교 |
화폐단위 |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뉴질랜드 달러[3] |
1인당 GDP | PPP 2,500$(2006) |
국제연합(UN) 가입 | 1999년 |
대한수교현황 | 남·북한 동시수교 (남한 1979, 북한 1982) |
|
지구상에 실존했던 지상락원이자 자원만 믿고 가만히 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표본.
1 개요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나우루 섬에 있는 공화국. 섬 면적 21제곱킬로미터로 서울 용산구 정도 크기인, 매우 작은 나라다. 적도의 바로 아래, 남위 1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기가 그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노란 선이 적도, 별이 나우루. 별이 12갈래로 빛나는 것은 나우루 토착 12부족의 단결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구아노(동물의 똥)로 섬이 이루어졌고 그 똥이 인광석이라는 자원으로 변해서 한 때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가는 부자나라였다. 게다가 이 수치는 1980년대의 3만 달러이다! 당시에는 미국이나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달러 대였다. 지금으로 치면 카타르나 룩셈부르크급의 포지션이었다고 보면 된다.
2 역사
나우루에 관심이 있다면 이 나라의 역사를 정말 간단명료하게 써낸 책,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アホウドリの糞でできた国―ナウル共和国物語;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나우루 공화국 이야기)[4]"도 참고해 보자. 그러나,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의 Craig R. Glenn 교수에 의하면 나우루의 구아노는 해양 조류의 똥이 아니라고 한다.[5]
2.1 근대사
나우루의 존재는 1798년 발견되기 전까지 그저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오세아니아의 여느 섬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맨 처음 발견[6]한 존 피언(Johm Fearn)은 섬의 모든 것이 사람 살기에 쾌적하다고 생각해 섬에 이름을 기쁜 섬(Pleasant Island)이라고 지었다. 그 후 30~40년간 유럽인들이 이 섬을 지나쳤고, 무기와 술의 전래로 섬의 평화는 파괴되고 10년 동안 씨족간의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870년대에는 섬에 있던 독일 무역상들이 자신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독일 정부에 무기를 요청해 많은 무기들이 원주민들에게 대량으로 거래된다. 그후 전쟁과 질병으로 40년간 인구가 1/3로 감소했고, 독일에 점령당한 1888년 당시에는 여자 인구가 남자 인구보다 30%나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나우루는 1914년까지 독일의 식민지배하에 있었다.
1899년 영국의 한 회사가 나우루에서 인광석을 발견해 나우루섬은 자원적으로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호주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가장 먼저 독일로부터 배 한 척을 몰고 나우루를 빼앗는다. 별다른 공격도 없었다고. 나우루는 호주가 행정을 통치하는 영국령 특별지역[7]이 됐으나 1940년 독일이 식민지를 빼앗긴 보복을 가해 태풍으로 정박해 있던 호주와 영국의 선박을 크릭스마리네의 보조 순양함[8]을 동원, 격침시킨다. 그저 날로 먹은 거 같지만 그후 일본이 1942년에 점령했으며,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1,200명이 노무자로 끌려갔다. 거의 500명이 사망했으며 생존한 737명이 귀환할 때는 섬의 인구가 천명에도 못 미치게 된다. 또한 당시 일본군 기지에는 위안소가 있었는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故 황선순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갔던 곳이 바로 이곳 나우루다.
파일:LKNpXrt.jpg
미 육군 항공대가 일본군 비행장을 폭격하는 모습(1943).
2.2 현대사
- 관련항목 : 자원의 저주
독립, 풉머니. 황금의 땅.... 그리고 멸망.
이렇게 현대사가 파란만장한 국가도 드물다. 기껏해야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자 바로 처참한 전쟁을 겪고 최빈국까지 굴러떨어졌다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뒤 경제대국이자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현대사 정도가 이 나라의 현대사의 파란만장함과 비견될 정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우루는 호주에 귀속된다. 1951년에 지방 정부 회의가 나우루에 설립되고 섬에 일부 자치행정이 부여되었다. 나우루는 영연방과 합의하에 1968년 독립했다. 1970년에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갖고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나우루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우루의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광업 초기에 국영회사는 광산 지대에 땅을 소유한 나우루인들에게 선적된 인산 1톤에 대해 1/2 페니씩을 지불했으며, 연간 선적양은 백만 2천 톤에서 2백만 톤에 이르렀다. 20년 동안의 인광석을 채굴하는 신탁회사들의 로열티만 하더라도 2억 3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당연히 국민들은 부자가 되었고 워낙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13,000명) 부의 분배도 공평해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오일머니 저리가라 급으로 돈지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 국민이 모두 잘 살았다. 예를 들자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피지나 하와이, 싱가포르로 매일같이 쇼핑을 하러 가고, 도로가 나라에 딱 한 개 (그것도 길이 18㎞, 제한속도 40㎞/h) 있는 데도 너도나도 람보르기니, 포르쉐같은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그것도 두 대는 기본. 그 좁은 섬에 여객기만 9대, 주유소는 29개나 있고, 걸어다니기 귀찮아 얼마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으며, 마트에서 쇼핑하기도 귀찮아서 차를 몰고 마트앞에 가서 전화하면 종업원이 지정한 물건을 들고 나왔다.
물론 집에는 각종 가전제품, 심지어 그 당시에는 부자들만 가질 수 있던 컴퓨터나 게임기도 있을 정도다. 채굴산업엔 현지인들은 없고 외국자본가, 외국인 노동자만 있었는 데도 이 정도였다. 국민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들이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외국인 노동자로 때웠다. 심지어 공무원까지 외국인이였다. 세금도 없고 주택도 학비도 유학 경비도 병원도 모두 국가에서 대주었기 때문에 그냥 공짜였다.
어느 한국인이 나우루를 방문하여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러한 모습을 보이자 의아해하며 질문하였다.저 시대에 한국인이 왔다는게 좀 이상하다 [9][10]
" 만약에 당신들 나라에 자원이 다 떨어 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자 어느 나우루 현지 관료의 말이 가관인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뭐."
이 정도로 사람들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때가 왔다.
2.3 멸망과 그 이후
쉽게 말하자면 심시티 샌드박스모드 하는데 치트키가 막혔다
이보시오 미국양반! 내가 뭔 죄를 졌다고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 광산이 감소하면서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였다. 이때부터 몰락 전설이 시작된다. 이를 대비해 정부는 바닷가에 어항을 만들어 국민들을 일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고기잡이 같은 생활문화는 없어지고, 농사지을 땅도 인광석 채굴로 없어졌을 뿐더러 농사짓는 법도 심지어는 빨래와 집안가사도 옆나라에 가서 배워야 될 정도로 잊어버렸다. 당장 경작지도 닥치는 대로 채굴했기 때문에 국토의 80%가 남은 바위덩어리만 있는 황무지. 현재도 식료품을 수입된 가공식품만 구할 수가 있으며 생산되는 작물 자체가 없다.[11]
또 뚱뚱한 사람이 멋있다는 풍습으로[12] 나우루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국민으로서 남자의 97%, 여자의 93% 가 비만 혹은 과체중. 때문에 각종 성인병에 노출된 상태이며 당뇨병만 해도 국민의 40% 이상이 2형 당뇨병에 걸려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비율이다. 그러나 이 기사를 보면 나우루의 비만국가화는 단지 국민의식에만 탓을 돌릴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앞 문장에 링크한 기사는 나우루의 비참한 현주소를 자세히 보여 주고 있으니 관심이 간다면 읽어 보자.
2013년 새로 선출된 대통령인 바론 와카. 대통령부터 체형이 뚱뚱하다는것부터 비만 문제가 심각함을 알려준다. 어찌나 살이 심하게 쪘는지 턱살이 비대하게 늘어졌다. 구글 검색에 Baron Waqa라고 쳐 보면 이 사람의 사진들이 나오는데 심히 파오후의 기운이 느껴진다(...).
사태를 인식한 나우루 정부는 채굴량을 줄이고, 채굴해간 나라에 대금을 요구하고, 해외 유명 휴양지에 빌딩을 지어 임대업을 하는 등 힘을 썼으나 국내 소비를 감당할 수가 없고, 국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껴 일할 의지가 없었다.
그래도 자산운용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최빈국 수준까지는 안갔겠지만 국가 자산 운용도 개판이라서 엄청난 재산을 까먹었다. 정부 예산의 횡령도 자주 있었고 투자한 사업도 사업성 검토가 부실해 줄줄이 말아 먹었다. 게다가 부동산 구입도 바가지 쓰면서 적정가격의 몇배로 구입하는 병크가 번번했다. 국제 거래 및 투자에 대한 전문가가 없어 국가예산의 회계 및 감리할 담당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국가 예산 수천만 달러가 증발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냥 넘어갔다. 이래저래 상당히 막장이었는데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정부관리들이 국고의 돈을 개인자금과 동일시한 건 예삿일이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나우루 하우스라는 개인빌딩 꼭대기층에 대통령집무실이 있었으며, 나우루의 경제부 장관은 경제에 대해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93년도에는 한 개인적인 뮤지컬작품에 400만 호주달러를 투자하고, 초연이 공연되자 정부의 모든 각료들이 런던으로 당일치기로 공연을 관람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그리고 투자한 뮤지컬은 망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부동산에 투자한게 어디가지는 않았는지 인광석이 거의 바닥날 때 쯤에는 투자해두었던 부동산을 담보로 세계의 은행에서 돈을 융통하였다. 그리고 외국인 마피아들을 상대로 국적을 팔고, 스위스를 흉내내서 세계의 검은 돈을 보관해주는 은행업도 시작했다. 검은 돈 전략으로 국제기관으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지만 이 전략이 어느정도 먹혀들었기 때문에 90년대 중반에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도 한 동안 나우루는 부유한 국가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가 일어나자 상황은 급변하여 나우루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나우루 은행에서 예금이 대량인출되고 국제적으로 제재조치를 먹는 바람에 나우루의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으며 최빈국으로 굴러떨어지게 된다. 실상 나우루 국민들은 지금도 통장 장부상 가진 돈으로는 부자라고 한다. 하지만 나우루 은행은 지금 한 달에 딱 한번, 임금 지급 때만 업무를 본다. 예금된 돈은 당연히 마음대로 찾을 수도 없고, 허공에 떠 버린 상태라서 거지신세인 것. 돈이 많은데 왜 쓰지를 못해! 은행 하나 망했다고 이렇게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나우루 은행이 유일한 국립은행이었기 때문이다(굳이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의 한국은행이 무너졌다는 것). 미국이 나우루 은행을 파산시켰으니...
결국 금고가 바닥난 나우루 공화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난민을 수용해주는 조건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했다. 나우루 섬은 무시못할 정도의 난민들로 들끓었다. 덕분에 나우루 원주민보다 난민 숫자가 더 많아졌는데, 난민을 받을 여유도, 그럴 형편도 아니면서 받은 탓에 제대로 관리도 못했다. 당연히 난민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나우루에 온 건 아니라서 당연히 나우루 정부에게 일자리를 요구했는데 돈이 바닥난 나우루 정부에서 나몰라라[13]하니 섬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난민 입국이 불허된다. 이윽고 2003년 12월 경 난민들에 의해 시위가 벌어져 관광비자 발급이 갑자기 중지되고, 항공, 통신이 완전히 끊기는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 1월에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파견된 구조팀이 왔을 때는 대통령 청사가 불타고 있는 등 개막장 상태였다고...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급격한 사회구성원의 변화가 망해가는 경제상황과 합쳐져서 대규모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 주 원인으로 파악된다. 이 이후 단 두 명의 난민만 입국이 허용될 정도로 난민의 입국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2013년에는 호주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설치한 난민수용센터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7년 만에 은행이 다시 들어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민의 90퍼센트가 실업자인 상태이며 그나마 일자리를 얻은 근로자의 95퍼센트가 공무원이다.
3 경제
- 나우루/경제 항목 참조.
뭐 경제랄 것도 없다. 가장 큰 수입원이 해외 원조니까. 그 밖에 자국 영해 근처에서 참치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 참치를 잡아다가 팔면 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이것도 참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하도 많이 잡아서 서서히 수가 줄어든다고 하여 참치 어획 제한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그래도 제한적이 될지 몰라도 이거라도 일하는 게 없는 걸 보면 여전히 노동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어쨌든 결론은 자체적으로 생산해 내는 건 아직 조금씩 나오는 약간의 인광석 말고는 거의 없는 셈.
4 정치
현재 나우루는 2007년에 선출한 마커스 스티븐(Marcus Stephen) 대통령의 주도 하에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방치해버린 인광석 폐광. 사진출처: 미 에너지부(Courtesy: U.S. Department of Energy's Atmospheric Radiation Measurement Program.)
5 자연
파일:SKrGJtt.png
100여년간 인광석 채굴을 해왔기 때문에 고도가 낮아져 투발루 섬과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로 가라앉을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현재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마 나우루 주민 모두 오스트레일리아가 지정해준 곳으로 단체 이주하고 나우루라는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채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6 항공편
이 나라에 취항하는 항공편은 나우루의 국적사인 Our Airline이 유일하다. 이 항공사는 인광석 호경기 중이었던 1970년 2월 14일에 '에어 나우루'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것인데, 한때 괌, 키리바시, 누벨칼레도니, 일본, 피지, 홍콩, 대만, 싱가폴, 캐롤라인 제도, 마셜 제도, 하와이, 파푸아뉴기니, 미크로네시아, 솔로몬 제도, 바누아투, 사모아, 통가, 팔라우, 마리아나 제도, 왈리스 퓌튀나 제도,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오세아니아의 섬들을 이어 주는 엄청난 항공사였다. 이것은 나우루가 작지만 오세아니아를 이어 주는 나라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당연하지만 이렇게 수익성도 검토하지 않고 마구 취항하는 바람에 경영은 엉망이었다. 좌석 점유율은 20%를 넘지 못했고, 항공사 운영에만 년 국가 수입의 절반 가량을 탕진할 정도였다고 하니 어지간한 막장운영은 명함도 못 내밀 지경.
결국 인광석이 고갈된 이후로는 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전성기에 다섯 대에 달하던 보잉기도 하나 둘 팔아치우는 신세가 되었다. 마지막 남은 보잉기마저도 2005년 채권자에게 압류되어 외부와의 항공교통이 두절되는 등 곡절을 겪다가 현재는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름을 바꾸고 근근히 운항하고 있다.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나우루가 대만의 몇 안 되는 수교국이기 때문. 주 1회, 일요일 호주 브리즈번 국제공항에서 나우루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데, 수요가 적어서 항공료는 꽤 비싼 편.
다만, 나우루에 입국하려는 외국인들은 피지나 대만, 브리즈번 등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왕복 항공권 발권시 입국비자 가능.
7 대한관계
남북 동시수교국으로 대한민국과는 1979년에 수교하였다. 한국은 원래 주(駐) 뉴질랜드 대사관이 겸임하였다가 현재는 주(駐) 피지 대사관으로 이임하여 겸임한다.
- ↑ 얼마나 작은지 짐작이 가는가? 흑산도, 영흥도, 외나로도 등과 비슷한 면적이다(...).
- ↑ 수도 기능을 하는 곳이 야렌 지구이다. 나우루 법으로 정해진 수도는 없다.
흑산도 만한 섬에 수도를 두려면 어디 두려고? - ↑ 2013년 초부터 도입
- ↑ 후루타 야스시 저.
- ↑ 출처: Glenn, Craig, et al., eds. (2000). Marine Authigenesis: From Global to Microbial. Tulsa, OK.
- ↑ 다만 '발견'이라는 말은 지극히 유럽 식민주의 중심에서 나온 말이기는 하다
- ↑ 엄밀히 말하자면,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뉴질랜드,영국,오스트레일리아가 위임통치를 했다.
- ↑ 독일 해군이 상선으로 위장하고 통상 파괴를 위해 투입한 함정. 당시 독일 해군은 타 국적선박으로 위장한 무장 상선을 세계각지에서 운용하였다. 독일 해군이 태평양 한 가운데 갑툭튀하여 연합국을 공격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이유 때문. 그 이후 요코하마로 귀항하던중 미 해군 잠수함 타폰에 의해 격침당하며 이후로 독일 해군은 태평양에서의 무장 상선 운용을 중단한다.
- ↑ 한국과는 1979년에 수교한 데다가 나우루가 워낙에 잘 살았던 국가였기에 1980년대에 한국인이 나우루를 방문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는 1989년에서야 시작되었기에 이 시절에 외국에 간 사람은 돈벌러 해외로 간 노동자들이나 원양어선 선원, 유학생, 외교관, 비즈니스맨 정도였고, 여행 목적으로 가러온 사람은 좀체 드물었다. 외국으로 가는걸 왜 금지했냐고? 외화를 낭비한다거나 월북한다든지 간첩이 된다고 해서...
그냥, 그땐 그런 시기였다 - ↑ 다만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어떻게든 현지 관료를 만나서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논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아무래도 공적인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개 관광객이 관료를 만나서 저런 진지한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 ↑ 정확하게는 일부 과일이나 채소가 나우루에 재배되고 있고, 돼지를 키우는 가정도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텃밭에서 채소기르는 수준이어서 산업이라 말하기 민망할 수준이다.
- ↑ 엥? 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본래 비만은 먹을 것이 과도하게 남아돌기 시작한 현대 이후에나 문제로 인식되고 있을 뿐, 과거 음식이 풍요롭지 않은 곳의 가치관으로는 통통하다는 것은 인생에서 성공했다는 척도로 지역차는 있겠지만 수천년간 내려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 몸매관리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상류층일수록 철저한 관리로 늘씬한 몸매를 갖게 된 것은 90년대 이후의 일. 80년대만 해도 뚱뚱한 사람을 부잣집 사람이라고 하던 인식이 많았다. 2000년대에 에어 방글라데시 비행기를 타본 이들이 목격한 게 방글라데시 스튜어디스는 우리에게는 비만급으로 뚱뚱했는데 여기선 튼튼하기에 비만여성이 인식이 좋은 편이었다.
- ↑ 2006년 뉴스위크 지 보도에서 인터뷰한 난민은 "생활보조금은 고사하고 가끔 먹는 거 주는 수준이니 이대로 굶어죽을테니 일거리, 그래 물고기라도 잡겠다고 하니까 여기 나우루 공무원들이 뭐란지 아세요? 알아서 배 마련하랍니다.세상에,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이러니 난민들도 분노하여 폭동일으켰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