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인사 | ||
대한민국 국군/장관급 장교 인사 | 미군/인사명령 | 방위성/인사발령 |
목차
1 개요
대한민국 국군/장관급 장교 항목을 갱신하게 하는 국방부에서 내는 인사명령과 그 특성 등을 정리하는 항목이다. 군 인사라는 특성상 국방부와 언론을 거쳐 나온 자료만을 정리한다.
통상적으로 대한민국 국군에서 장관급 장교의 인사는 4월(전반기)과 10월(후반기)에 이뤄진다. 이는 수시로 장관급 장교의 인사 이동이 발생할 경우 지휘권 공백이 생기며 혹한기 등 주요 훈련이 있는 겨울에는 인사이동을 줄이자는 취지이다. 정작 세계에서 가장 넓은 권역에서 큰 전쟁을 벌이는 미군의 경우 며칠 단위로 장성 인사명령이 이뤄지고 국회 청문회와 비준도 거쳐야 한다
2 연도별 특성
항목이 생긴 때가 2015년이므로 2015년의 장관급 장교 인사부터 기록한다. 인사 대상에서 전역자의 숫자는 빼고 진급만을 다룬다. 인사이동의 경우엔 보도자료에서 일일이 다루지 않기 때문에 설명이 있는 부분만을 다룬다.
2.1 2015년 2월
정기 인사가 아닌지라 인사 대상은 1명이었다.
해군참모총장인 황기철 제독(해사 32기)이 통영함 문제의 책임을 지고 전역했고 해군참모차장이었던 정호섭 제독(해사 34기)이 대장 진급하여 해참총장에 보임되었다.
2.2 2015년 4월
2015년 4월 7일에 발표되었다.
육군사관학교 39기(1983년 임관)인 김용우와 장경석이 중장으로 진급하여 각각 군단장과 특전사령관으로 보임되었다. 이들은 육사 39기에서 중장 1차인 장재환에 이어 중장 2차 진급자가 되었다.
합참 작전본부장이었던 신원식 중장(육사 37기)[1]이 합동참모차장으로 이동했다.
육사 42기(1986년 임관)인 구원근, 김정수, 김종문, 김혁수, 박주경, 신인호, 이종화, 정진경이 소장 진급해 각각 제36향토보병사단장, 제27보병사단장, 제2보병사단장, 제21보병사단장, 제11기계화보병사단장,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 제1보병사단장, 제5보병사단장이 되었다. 이번 42기는 소장 2차 진급자들이다. 1차는 2014년 10월에 있었다. 학군 23기(1985년 임관)인 남영신(동아대학교)이 소장 진급해 제3보병사단장이 되었다. 육군3사관학교 19기(1982년 임관) 이창효가 소장 진급해 제55향토보병사단장이 되었다.
해군사관학교 36기(1982년 임관)인 이범림이 중장 2차 진급해 해군참모차장이 되었고 해사 37기(1983년 임관)인 김판규가 잠수함 출신으론 처음 중장으로 진급해 해군사관학교장이 되었다. 김판규 중장의 경우 해사 37기에서 중장 1차이기도 하다. 해사 36기로 이범림과 동기인 이상훈 해병소장은 해병중장으로 진급해 해병대사령관이 되었다.
해사 39기(1985년 임관)인 김종일, 박헌수, 심승섭, 최창룡(해병)이 소장 진급해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제2함대사령관, 제1함대사령관 제1해병사단장이 되었다. 39기 해병의 경우엔 2차 진급이다. 1차는 2014년 10월에 진급한 전진구이다.
강구영(공사 30기, 1982년 임관)이 중장 2차 진급했다.[2] 공사 31기(1983년 임관)인 이왕근은 중장 1차 진급했다.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김정식(공사 29기, 1981년 임관)이 공군작전사령관으로 이동했다.
공사 33기(1985년 임관)인 조광제와 홍재기가 소장 진급했다. 홍재기는 임기제 진급이다.
2.3 2015년 9월
2015년 9월 14일에 발표되었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해외 출장 중에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대장급의 인사만 발표되었고 중장급 이하의 후속 인사는 다음 달인 2015년 10월에 발표한다.
3사 14기(77년 임관)인 이순진 2작전사령관이 합참의장으로 영전했다. 3사 출신으론 처음으로 합참의장에 취임했고 대장 보직을 2개 지내게 되었다.[3] 육사 36기(80년 임관)인 장준규 1야전군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으로 보임되었다. 동기인 김현집 3야전군사령관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보임되었다. 육사 34기(78년 임관)인 김요환 육군참모총장과 육사 35기(79년 임관)인 박선우 연합군부사령관은 전역이 예정되었다.
육사 37기(81년 임관)인 김영식 항작사령관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에, 박찬주 육군참모차장은 2작전사령관, 엄기학 합참 작전본부장은 3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중장 진급에서 김영식과 박찬주는 2차, 엄기학은 3차 진급자이지만 1차 진급자인 신원식, 양종수를 제치고 대장으로 진급했다.
공사 30기(82년 임관)인 정경두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이 대장으로 진급, 공군참모총장으로 내정되었다. 공사 28기(80년 임관)인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은 전역한다.
- 특기할 만한 점
3사 출신으로 첫 합참의장이 보임되었다. 육군 출신 합참의장의 경우 2개의 대장 보직을 거쳐 올라가는 경우가 많고 1개의 대장 보직만을 거쳐 올라가더라도 2작사령관에서 합참의장으로 올라간 경우는 드문 편인데 그런 사례가 하나 추가 되었다. 이순진 대장의 경쟁자였던 김요환 대장과 박선우 대장은 후임자가 정해짐에 따라 예편하였다. 이순진 대장이 인사 시점에서 유일한 TK 출신이라 TK 출신을 배려한 인사가 아니냔 지적도 있지만[4] 최윤희 제독에 이어 비육사 출신의 인물을 등용하려는 청와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육사 36기에선 대장 2차 진급자인 장준규 대장이 1차 진급자인 김현집 대장이 갈 것이라 예측됐던 육군참모총장으로 이동했다. 다음 합참의장 인선에서 78군번[5]과 79군번[6]이 대부분 전역한 관계[7]로 육사 36기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데 김현집 대장이 하나회 출신이라 가혹한 인사청문회가 예상돼 장준규 대장의 합참의장 진출 가능성이 유력하다.[8] 만일 장준규 대장이 후임 합참의장으로 진출하면 정말 대단한 관운이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육사 37기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동기란 이유로 관심을 많이 받았는데 박지만 씨와 친분이 있는 걸로 알려진 이재수, 신원식 중장, 야전보다 ‘미국통’ 이미지가 더 강했던 전인범 중장 등은 대장 진급에 밀려났고 중장 2, 3차 진급자 3명이 대장으로 진급했다. 중장 1차 진급자들은 모두 낙마했다.
공군은 타군 참모총장보다 후임 기수인 1982년 군번이 보임되었는데 야전군사령관들보다 기수가 낮다. 2015년 들어 공군이 겪은 군적 재난 등에 대한 일종의 과징금 성격이 있어서 공군 장교단 내에서 일부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는 모양. 관련기사 최차규 참모총장 임명 당시에도 기수가 빠른 편이어서 동기인 김영민 중장과 김형철 중장이 1년간 재임했는데 정경두 신임 공군참모총장의 경우엔 사정이 더욱 복잡하다. 그의 인사 발표 시기에 공군 중장의 숫자는 5명이다.
- 박재복(공사29기, 81년임관) 공군사관학교장
- 김정식(공사29기, 81년임관) 공군작전사령관
- 정경두(공사30기, 82년임관)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 강구영(공사30기, 82년임관) 공군참모차장
- 이왕근(공사31기, 83년임관) 공군교육사령관
정총장이 보임되고 동기나 선임자가 전역하면 공석이 4개가 발생해 공군중장의 80%가 전환된다. 동기인 강구영 중장을 유임해도 선임 2명과 정총장 자신의 공석이 나기에 중장 3자리를 새로 보임해야 한다.
2.4 2015년 10월
2015년 10월 27일에 중장급 이하 인사가 단행되었다.
육사 40기(1984년 임관)에서 처음으로 중장을 배출했다. 육사 40기 중장 1차 진급자는 구홍모, 김병주, 김해석, 김황록 4명이었다. 육사 39기(1983년 임관)에서 제갈용준, 김완태가 3차로 중장 진급했다. 학군 21기(1983년 임관, 서울시립대학교)인 박한기도 중장에 진급했다.
육사 43기(1987년 임관)에서 처음으로 소장을 배출했다. 육군에선 이번 인사에서 총 15명이 소장으로 진급했다.
58명은 준장으로 진급했다.
해사 37기인 정진섭 제독이 2차로 중장 진급했다.
해군에서 2명이 소장으로 진급했고 9명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해병대는 준장 3명 외에는 장성 진급자가 없었다.
공사 32기인 이건완과 원인철이 1차로 중장 진급하였다. 공군참모총장으로 30기가 오르면서 29기 명은 전역하고 참모총장이 맡던 전임 자리[9] 등 3자리의 중장 자리가 남았는데 32기만 중장을 3명 진급시킬 수는 없어서 공군교육사령관을 소장이 맡게 되었다.
공군에선 4명이 소장, 15명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2.5 2015년 11월
11월 30일 공사 32기 신익현·하성룡·이성우 준장이 전역했다.
2.6 2015년 12월
12월 22일 공사 31기 신재현 소장, 공사 32기 이문수 준장, 공사 33기 장석철·장경식·공평원 준장이 전역했다.
29일 이성용·김형호·노승환 준장이 소장으로 진급했고, 홍승호·신옥철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2.7 2016년 1월
26일, 공사 30기 황성돈·우정규 소장이 전역했다.
2.8 2016년 4월
2016년 4월 22일에 발표되었다.
육군사관학교 40기(1984년 임관)인 김운용와 이종섭이 중장으로 진급하여 각각 2군단장, 7군단장으로 보임되었다. 이들은 중장 2차 진급자가 되었다.
육사 43기(1987년 임관)인 김경수, 김정수, 김한태, 윤의철, 이상호, 인성환, 황대일, 이영철이 소장 진급했고 이번 43기는 소장 2차 진급자들이다. 육군3사관학교츨신으로는 19기(1982년 임관) 임영갑이 소장(임기제)으로 진급, 21기(1984년 임관) 장달수가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53향토보병사단장이 되었다.
이번 인사에 중장 진급자는 없었고, 해군사관학교 40기(1986년 임관)인 박기경이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이번 인사에 공군 진급자는 없었다. 28기 최차규 참모총장이 경질되고 30기인 정경두 참모총장이 임명되면서 다량의 공석이 발생, 진급 속도가 타군보다 빠르게 되어 형평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2.9 2016년 6월
- 4명의 장교가 준장 진급했다. 추가바람.
2.10 2016년 9월
대장급 인사가 2016년 9월 19일에 발표되었다.중장급 이하 후속인사는 10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육군사관학교 38기(1982년 임관)인 임호영 합참 전력기획본부장이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진급했다.
육사 38기에선 첫 대장 진급자이다.
해군사관학교 35기(1981년 임관)인 엄현성 합참차장이 해군참모총장으로 진급했다.
27일, 공사 33기 정영진 준장, 장경식 준장, 송택환 준장, 이광수 준장이 전역했다.
2.11 2016년 10월
후속 중장급 이하 장성 인사가 2016년 10월 17일에 발표되었다.
육군사관학교 41기(1985년 임관)인 조종설 3군사령부 참모장이 중장 진급하여 특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0] 그 외 서욱(육사 41기), 이정근(육사 41기), 김성진(학군 22기) 3명이 중장 진급하여 군단장과 군수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조현천 기무사령관은 군내 안정과 기무사 내부개혁에 대한 호평에 힘입어 유임되었고 1군단장 김용우는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이동했다.
한편 12명이 소장으로 진급했고 육사 44기에서 첫 사단장이 나왔으며 59명이 준장으로 진급해 육사 46기가 첫 별을 달았다.
중장 진급자는 없었고 2명이 소장으로, 11명이 준장으로 각각 진급했다.
현 참모차장 정진섭 중장이 작전사령관으로, 현 교육사령관 김판규 중장이 해군참모차장으로 보직 이동했다.
공중전투사령관 황성진 소장이 공사 33기에서 1차로 중장 진급해 공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중장급 보직 이동도 활발해 작전사령관 이왕근 중장이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으로, 참모차장 원인철 중장이 작전사령관으로, 공사교장 이건완 중장이 참모차장으로 이동했다. 지휘부 공백 사태로 정경두 총장과 동기임에도 1년 더 남았던 30기 강구영 중장은 전역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 6명이 소장 진급했고 14명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 양종수와 육사 37기 선두이다.
- ↑ 1차는 정경두.
- ↑ 이순진 장군 이전까지 3사는 2작전사령관(박영하), 1야전군사령관(박성규)만을 배출한 상태였고 두 사람 다 대장 1차 보직을 마치고 예편했다. 3사 출신은 합참의장, 3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부사령관까지는 진출하지 못 했었다.
- ↑ 김요환(전북)이나 박선우(광주) 대장은 호남 출신이다.
- ↑ 육사 34기, 3사 15기와 해사 32기, 공사 26기
- ↑ 육사 35기, 3사 16기와 해사 33기, 공사 27기
- ↑ 3사 16기인 나상웅 중장이 남아 있다.
- ↑ 동시기에 정호섭(해사 34기, 80년 임관) 제독이나 정경두(공사 30기, 82년 임관) 장군이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있긴 하다.
- ↑ 정경두의 동기인 강구영 중장은 전역하지 않고 대신 공군이 아닌 합참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중장까지 전역했으면 중장 자리가 4개가 남게 되어 공군은 헬게이트를 타게 됐을 것이다.
- ↑ 사제 장비 금지 논란을 일으켰던 장경석 중장이 임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