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선동열
역대 감독 전적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무 | 정규리그 | 한국시리즈 | |
2005 | 삼성 라이온즈 | 126 | 74 | 48 | 4 | 1위 | 우승 | |
2006 | 126 | 73 | 50 | 3 | 1위 | 우승 | ||
2007 | 126 | 62 | 60 | 4 | 4위 | 4위 | ||
2008 | 126 | 65 | 61 | 0 | 4위 | 4위[1] | ||
2009 | 133 | 64 | 69 | 0 | 5위 | - | ||
2010 | 133 | 79 | 52 | 2 | 2위 | 준우승 | ||
통산 | 770 | 417 | 340 | 13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무 | 정규리그 | 한국시리즈 | |
2012 | KIA 타이거즈 | 133 | 62 | 65 | 6 | 5위 | - | |
2013 | 128 | 51 | 74 | 3 | 8위 | - | ||
2014 | 128 | 54 | 74 | 0 | 8위 | - | ||
통산 | 384 | 167 | 213 | 9 | ||||
총계 | 1158 | 584 | 553 | 22 |
목차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걸 잘 보여주는 매우 대표적인 예
스포츠 세계에서 2등은 꼴지랑 같다고 생각합니다.
황신 부들부들
1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2003년 10월 수석코치 취임식에서. 멍게강점기 시작 응룡이도 있고, 동열이도 있고 종범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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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당시의 모습. 누군가에게서 많이 보던 포즈 같다면 그건 기분 탓[3]
삼성 라이온즈 No.82 | |
선동열(宣銅烈) |
수석코치 시절에 82번을 달았었다.
참고로 현재 금지어인 김태한도 82번을 달고있다.
파일:/image/001/2006/03/30/072006033004500 1.jpg
감독 승격 후.
삼성 라이온즈 No.90 | |
선동열(宣銅烈) |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90번으로 등번호를 바꾼다.
1.1 부임 성적
은퇴 후 KBO 홍보위원으로 활동했다가 2004년 삼성의 수석코치에 취임하고 그 다음해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사장으로 영전하자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05년, 2006년 2년 연속으로 정규시즌 1위를 기록하고 한국시리즈도 2연속 우승. 그러나 2007년, 2008년에는 4위에 그쳤고 2009년에는 5위에 그치면서 1996년 이후 처음으로 4강에서 탈락하였다. 2010년 SK에 이어 2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쳤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시즌 3위 두산에 3승 2패로 승리, 한국 시리즈에서 SK에게 4연패하여 2010 시즌 준우승꼴찌을 차지하였다.
6년 재임기간동안 우승 2회, 2위 1회, 4위 2회, 5위 1회.
일반적인 팀이었다면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삼성의 통산 성적과 비교해 본다면 4-4-5라는 성적은 결코 좋은 성적이라 평가받기 어렵다. 더욱이 2009년을 5위로 마쳐 1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좌절 시켜버렸다. (그 이후로 계속 진출중임을 생각하면, 2009년에 명맥이 끊겨버린게 더 아쉬운 상황) 허나 구단 역사상 첫 2회 연속 우승을 기록한 감독도 선동열 감독.[4]
팬들과의 관계에서 논란이 많았던 감독으로 대구 지역 골수팬들은 한국시리즈 2연패 당시에도 선동열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삼성 특유의 선굵은 공격야구 대신 투수 중심 스몰볼을 추구한데 화끈한 공격 야구를 20년 했던 팬들과의 상성도 맞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배영수를 시작으로 주축 투수들에게 과부하가 가는 등[5] 팀 전체의 잠재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더군다나 선동열에게 한국시리즈의 좌절을 맛본 기억이 대다수 있기 때문에 올드팬일수록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다만 2회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 역시 어쨌거나 의미 있는 기록이었기에, 지지하는 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또한, 해태의 전설적인 레전드 선수출신이다보니 2004년 이후 성적이 시원찮던 KIA를 뒤로하고 선동열을 따라서 삼성을 응원하던 감독의 개인팬들도 상당수 존재했다.[6] 하지만 이런 팬들도 팀이 좋은 성적을 뽑으며 잘 나갈 때에나 목소리가 컸고,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 치고 각종 프렌차이즈 스타에 대한 홀대가 불거지면서, 삼성 팬들의 다수는 선동열 감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돌아섰다.
우승 시기 이후 삼성은 선동열 감독을 놓고 수많은 논란이 양산 되었으며,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선수시절 선동열을 좋아하던 선동열 개인팬들이 삼성팬 위장전입해서 자기 레전드가 욕먹는걸 쉴드 치는 경우가 다수였다.[7] 이로 인해 당시 삼성은 논란이 벌어지기만 하면 겉보기에는 내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삼성팬 vs KIA팬 + 소수의 삼성팬의 싸움이 되기 일쑤였다고.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몇몇 선동열을 옹호하는 기아팬들이 가입하여 여론몰이를 하다가 관리자로부터 적발(?)되어 차단당하기도 하였으며, 모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선동열 경질과 기아 감독 부임 무렵 슬그머니 응원팀을 바꾸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5위로 가을 야구를 탈락하고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양준혁이 강제 은퇴 당한 이후에는 소수의 선동열 옹호파 삼성팬들도 등을 돌렸기 때문에, 선동열의 임기 말기에는 그를 옹호하는 이는 KIA팬, 혹은 선동열 개인 팬이 대부분이였던 정도였다.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스윕패를 앞두고 실실 쪼개는 선동열과 썩은개빡친 표정인 류중일 코치의 대비된 모습을 보여 준다. 웃음이 나오냐? 지금 팀이 지고있는데, 감독이라는 새끼가 쳐웃고 자빠졌네!!!
그 외에도 2010년 한국 시리즈에서 우리는 우승할 시기가 아니라는 드립과 함께 4-0으로 무기력하게 지는 운영을 펼쳐 큰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한국 시리즈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SK는 선발의 의미가 전혀 없는 팀 같다. 이렇게 되면 야구가 이상해지고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어떤 식의 야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식인지. 미국식인지, 일본식인지... 물론 졌으니 할 말은 없다"라고 말해 졸렬함을 드러냈다. 지금 한화 이글스의 상태를 보면 맞는 말이기는 하다. 정반대의 스타일인 로이스터라면 모를까 김성근 감독과 가장 스타일이 비슷한 불팬중심의 야구를 하는 선동열 감독이 할 소리는 아니다. 실제로 10시즌 한국시리즈 동안 SK와 삼성 양팀 선발 중 5이닝을 채운 선발은 2차전에 나와서 5.1이닝 3자책을 기록한 차우찬 밖에 없다. 정규시즌 기록을 봐도 선발 평균 이닝이 SK 5.01, 삼성이 5이닝으로 동일한 수준. 추가로 한국시리즈 동안 출장한 투수 숫자도 같다.
1.2 스타일
1.2.1 투수 기용
공식적으로는 수석코치로 입단 뒤 1년만에 감독으로 승격했기 때문에 코치경력이 짧아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2004년 수석코치 입단때 팀은 사실상 그를 투수코치로써 영입했고 투수코치로 활동한 뒤 감독으로 승격된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짧은 경력이지만 투수코치로서의 능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김시진 감독과 동급. 그래서 2006년 WBC에서도 투수코치로 활약했다.
대투수 출신 감독답게 투수를 중심으로 하는 지키는 야구를 한다. 그 결정판은 "KO펀치"라 불리던 권오준 - 오승환[8]의 필승 계투진. 그와 더불어 권오준 - 권혁의 "쌍권총" 라인 또한 유명하다. 외에도 정현욱, 안지만 등을 기용하여 계투진의 강력함을 유지했다. 이렇게 완성된 게 이른바 안정권KO 라인.
다만 윤성환, 차우찬 등의 투수들이 불분명한 보직에서 방황하다 뒤늦게 선발로 정착해서 성공하는 걸 보면 지나치게 조급증을 갖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또한, 선발에서 잘 던지거나 선발로 정착해야할 유망주들을 빼서 불펜에 넣었던 점에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권오준은 원래 선발이었지만[9] 2004년 시즌 중 혈행장애 드립[10]을 치면서 기어이 불펜으로 전향시키고, 굴린 결과 권오준은 인생의 토미존 서저리 3회 중 2회를 선 감독 아래서 받게 되었다. 권혁 또한 좌완 파이어볼러 선발 유망주였지만, 토미존 서저리에서 복귀한 직후인 2007년 불펜에서 마구 구른 결과[11] 결국 평범한 좌완 계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만 정현욱의 경우에는 선발로만 가면 난조에 시달리는 것을 봤고, 안지만 또한 선발로서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에 반대가 없다[12].
그리고 "투수가 자기 공을 제대로 뿌리려면 일단 많이 던져봐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어서인지[13],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들에게 많은 공을 던지는 훈련(소위 3000투구 훈련)을 요구하기도 한다. 다만 이에는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력을 탄탄히 해놓아야 한다는 선제조건이 있기 때문에[14], 초보 코치 시절에는 이 조건을 간과하고 그냥 무작정 많이 던지라는 식으로 주문했다가 몇몇 투수들이 이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드러눕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15] 본인이 3000투구로 부활했던 건 그냥 본인의 신체조건이 사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는 사실을 잊었던 듯. 이후로는 좀 나아져서 공을 던지기 전에 일단 몸을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투수 운용 능력도 수준급이어서 2010년에는 "5회 이후 리드시 승리"라는 무시무시한 진기록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이 기록은 9월 4일 롯데에게 패하면서 52연승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허나 이 투수 운용은 불펜에 무리를 많이 가해 후에 많은 부상선수들을 유발하게 된다. 게다가 사실 저 2010년엔 선동렬이 2이닝 이상 등판하면 3일 이상 쉬게 한다는 등 언론플레이 혹사를 안하는 감독으로 비추어 졌지만 실제로 2009년까지 선동렬의 투수 기용을 보면 이 때까지 투수들 다 혹사시켜서 말아먹다가 2009년에 단체 시즌 아웃을 겪고 나서야 정신차렸다라고 봐야 한다. 또한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시절부터 홈런을 뻥뻥 쳐대는 것에 익숙하던 삼성팬들은 매번 1점차, 2점차로 쥐어짜내 이기는 야구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것도 인기가 없던 요인 중 하나. 후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인 류중일이 선동열과 반대로 선발을 길게 가져가고 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은 선동열의 이러한 스타일을 더욱 비판하고 있다.
투수 출신 감독이어서 그런지 투수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르며 투수오타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신인선수가 오면 닥치고 투수부터 만들고 보려는 경향이 크다. 팀내 타자가 모자른 탓에 타자로 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라고 예상됐던 2008 지명 신인 최원제조차도 투수로 낙점지었다. 거기에 이상목, 구자운 등 타 팀에서 방출된 투수들을 1억씩 쥐어주고 컬렉션으로 만들었으니(…). 이 양반 투수오타쿠 맞다. 2008 시즌이 끝난후 스토브 리그에서는 히어로즈의 장원삼을 자기 콜렉션으로 만들려다가 타 구단과 KBO의 제재로 실패. 그러나 2009 시즌 이후 히어로즈 가입금 완납 이후 기어코 장원삼 영입에 성공. 이는 이미 작년부터 계속 진행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8 시즌 후 장원삼은 30억+박성훈의 조건으로 트레이드 되었었으나 이때 지불한 30억원을 2009 시즌 후까지도 히어로즈가 반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언론에 발표한 20억+김상수+박성훈의 딜은 김상수에게 10억의 가치를 인정해서가 아닌 단순히 김상수를 끼워준 명목상의 트레이드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투수오타쿠라기보다는 불펜오타쿠에 가깝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선발로 10승 투수가 된 권오준의 불펜 전향과 권혁의 불펜 강제 전향. 그나마 이 불펜 오타쿠 질 속에서도 윤성환과 차우찬을 선발투수로 키운 부분만큼은 훌륭한 업적이라 봐야 할 듯.
또한 투수혹사도 종종 논란에 오른다. 단적인 예로 주전투수 배영수, 권혁, 권오준, 오승환 등 수많은 투수가 혹사의 결과 재활해야 했다. 그나마 삼성 라이온즈의 돈빨로 선수들이 그럭저럭 복귀할 수 있던 것이 다행일까. 특히 배영수같은 경우는 종래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구위회복이 문제가 아니라 에이스가 완전 망한 선수가 된 판. 삼성 팬들은 배영수의 어깨를 우승과 바꿔왔으므로 못해도 아무도 안 깐다. 선동열이 배영수에게 영구 까임방지권을 줬다는 어두운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이러한 투수 혹사 문제는 선동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팀 간판 에이스와 초특급 불펜을 부상시켰으니 좋아할 리가 있나. 사실 선동열의 투수 운용은 투수가 넘쳐나지 않는 이상 불펜에 심하게 무리를 줘서 부상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1.2.2 타자 기용
그러나 타선은 몇 년간 발전이 더디게 가는 바람에 삼성은 삼점 라이온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무리 쉴드를 쳐준다 해도 2005 시즌 득점 2위이던 타선이 부임 3년만인 2007 시즌에 득점 8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낸 것은 선동열의 타자 발굴 능력이 아주 형편없다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16] 야구란 스포츠는 원래 투수가 제 아무리 퍼펙트로 막아준다 해도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질 수밖에 없는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10점 20점을 내도 투수들이 못 지키면 지는게 야구다. 최강 화력이라고 일컬어지는 2010 시즌 롯데가 고작 4위인 것을 생각하자. 이후로 박석민, 최형우 등이 타선의 주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좀 나아졌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가 이승엽, 배영섭, 정형식 외에는 선동열 시절과 딱히 달라진 부분이 없는 타자라인업으로 2년 만에 공격야구의 팀으로 바뀐 것을 볼 때 결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부분이다. 거기다 배영섭과 이승엽은 각각 2012년과 2013년에 커리어 로우를 찍었고 정형식은 2014년 음주운전 파문으로 아예 임의탈퇴 처리가 되었다.
1.2.3 사단 구축
선수 시절에는 야구계 내외적으로 호인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코치와 감독직을 수행하면서부터 많이 까칠해졌다고 한다. 삼성 내에 자기 라인을 구축하려 한다는 음모론도 나올 정도. 삼성의 주요 코치진이었던 선동열-한대화-조계현 라인은 모두 해태 출신이고, 이 라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삼성 출신인 양일환 투수코치가 내쳐졌다. 오히려 자신에 맞는 코치 라인을 이제야 완성시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여러모로 뒷말이 좋지 않았다. 2009 시즌이 끝난 이후 조계현을 내치고 한대화는 한화 감독으로 나갔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셈이 되었지만. 임기 중 김현욱, 전병호, 김한수, 김재걸 등을 코치로 임용하면서 코칭스태프는 선동열 시절 인선된 코치들로 구성되었다.
1.2.4 포스트시즌 운용
감독으로서의 그의 단기전 능력에 대해서도 논란거리가 많다. 코시 2연패를 달성한 감독[17] 중의 한 명이기에 단기전 능력이 나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그저 전력이 우세할 때만 이길 뿐 비등하거나 뒤질 때는 맥을 못추며, 특히 넘어간 흐름을 다시 잡아오는 능력이 형편없다는 평가 또한 있다. 이는 그의 장기전 능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기는 경기를 잡는 데는 능하지만 지고 있는 경기는 거의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2009 시즌, 2010 시즌. 삼성은 5회까지 리드시엔 압도적인 승률을 보였지만, 그 승률의 이면에는 반대로 5회까지 못 이기고 있을 시 매우 낮은 승률이라는 그늘이 존재한다. 심지어 10시즌은 포스트시즌에서도 경기를 리드하지 못하면 그 경기를 포기했을 정도니...한 경기 한 경기가 페넌트레이스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중요함에도 경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반면 삼성은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해도 준우승한 적이 부지기수니...단기전을 아예 못 한다고 보기도 뭐하다.[18] 애초에 "전력이 약한데 우승" "전력이 강한데 준우승"이란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전력이 곧 성적이고, 성적이 곧 전력이기 때문이다. 강한 녀석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녀석이 강한거다...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보유한 선수층의 뎁스라는건 존재한다. 2002년의 LG와 2006년의 현대가 아직도 용병술의 승리로 회자되는 이유는 명백히 얇은 선수층을 가지고도 파이팅과 적재적소에 터지는 작전으로 선두권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력이라는 개념은 이 용병술까지도 포괄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1.2.5 대졸 신인 선호
2009년 8월, 2010년 신인 지명을 불과 며칠 안 남겨둔 시점에서 언론에 대놓고 고졸 투수는 안 뽑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삼성 코치를 시작했을 때인 2004년 윤성환이나 삼성 감독이 된 2005년에는 오승환 등 주축 불펜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다 대졸인데다 주축 투수들의 부상으로 대신 기용한 투수들이 부진했고 이들 대다수가 고졸 투수였기 때문이었다. KIA 감독이 된 후 신인 지명에서 대졸 선수를 선호해 KIA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으나 선동열의 대졸 선호는 원래 삼성에 있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실제 삼성은 2010년 신인 지명에서 1, 2라운드 모두 대졸 투수를 지명하는 등, 지명한 투수 6명 중 4명이 대졸이었다. 삼성의 지명 결과에 대해 타팀 스카우트는 "삼성이 대졸 투수를 뽑으려고 어쩔 수 없이 (임진우와 김현우를) 상위라운드에서 지명한 느낌이 있다. 나머지 2명의 대졸 투수(김재우, 이규대)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라고 평가했다. 2010년 신인 지명을 앞두고 전면 드래프트로 방식이 바뀌면서 이로 인해 고졸 선수들이 미국으로 진출하며 예년에 비해 유망주 풀이 안 좋다고 평가받았지만, 실제 지명 결과 1, 2라운드 동안 삼성을 제외한 타팀에서 지명한 대졸 투수는 3명 뿐으로, 고졸 선수 풀이 안 좋아졌다고 그만큼 대졸 선수들이 고평가 받은 건 아니었다. 비록 프로야구 스카우트가 아닌 아마야구 팬들이 진행했다지만, 아마야구 사이트인 아마야구사랑의 모의 지명에서도 김현우는 3라운드였고 임진우는 4라운드였다.
삼성 스카우트는 지명 결과에 대한 자평에서 "감독의 인터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원래 뽑으려고 했던 선수들이었다."라든지 "우리 팀은 즉전감이나 완성형을 선호한다."고 인터뷰했지만, 이듬해 2011년 신인 지명에서는 3라운드까지 모두 고졸 투수를 지명하면서 결국 2010년 신인 지명은 감독 눈치를 본 결과였다는 게 증명됐다[19].
다만, 이런 대졸픽 선호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데, 실제로 00년대 이후 프로야구의 수준 향상으로 고졸을 뽑아도 기량 향상을 위해 몇년 간 2군에 묵혔다 쓰는 기간을 생각하면 고졸과 대졸이 그렇게까지 성장 가능성 등에서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고졸 1년차가 프로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것은 류현진, 김광현 세대 정도가 최근으로 근 10년은 다 되어가는 이야기. 오히려 연봉 줘가면서 키울 필요가 없는 대졸이 오히려 경제적 측면에선 싸게 먹힐 수도 있다.
더군다나 프로 1군의 로스터는 30명이 채 안 된다. 누구나가 프로야구선수로 성공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성공하는 한 줌의 선수보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선수가 수십 배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대졸은 그래도 대학 졸업장이라도 있으니 그걸로라도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지만 고졸이라면 불의의 부상 등으로 야구를 그만둬버리면 정말 학력도 뭣도 없는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선감독은 KIA 감독시절 대졸선호에는 이러한 이유도 크다는 논지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자칫 당장의 성적에 급급하기 쉬운 프로야구인으로서는 드물게 넓은 시야이지만, 고졸 유망주에 비해 성장가능성이 떨어지고[20]서비스타임이 짧아 팀 전력에 도움이 덜 된다는 단점 또한 분명하기에, 판단은 개인의 몫.
1.2.6 최종 평가
이러한 점들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선동열은 그가 이룬 두 번의 우승이라는 결과물에 비해 삼성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팬들 사이에서는 2번의 우승도 감독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전임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유산 내지 선수들이 잘해서 그랬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뭐, 잘하면 선수탓 못하면 감독탓은 이 바닥의 영원한 떡밥이긴 하지만. 근데 김응룡이 만들어 놓은 타선이 폭발하고[21] , 권오준-오승환으로 이어지는 KO펀치의 위력, 거기에 박진만, 심정수까지 빼와 주었는데[22] 우승 못하면 그게 감독인가? 더군다나 이 경우는 삼성의 전력만 강해진 것이 아니라 삼성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 팀의 전력약세도 포함되니 더더욱 우승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 때도 2위팀과의 승차가 별로 크지 않았는데, 2004년까지는 삼성과 대등한 전력을 갖춘 팀이 현대 유니콘스 밖에 없었다. 1999년과 2001년에 한화와 두산이 반짝 우승을 한걸 제외하고는 1998년부터 삼성과 현대가 우승과 준우승을 도맡아 했으며 2005년 시즌 전에도 다른팀에서 눈에 띄는 전력보강이나 신인수급이 없었는데도 가장 큰 라이벌인 현대의 주전력을 빼오고도 2등과 큰 차이가 없는 아슬아슬한 패넌트레이스 우승했다는 부분은 실드가 전혀 불가능하다. 거기에 덧붙히자면 키운 선수보다 부상시킨 선수가 더 많다. 4월 한 달 미친 듯이 굴려대다가 부상으로 커리어 아웃된 권오원, 토미존 3회에 빛나는 권오준, 마찬가지로 화려한 수술 경력을 자랑하는 권혁 등이 있다. 오승환도 신인시즌에 미친듯이 굴리다가 뒤늦게서야 마무리로 정착시키며 관리를 시작한거다. 이미 대학교때 팔꿈치 수술을 한 선수를 99이닝이나 굴려대며 망가뜨렸으니 뒤늦게 관리한다고 나아질리는 없었고 결국 이는 2009년 시즌 아웃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팬들마다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감독. 삼성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고 부르는 팬들도 많지만, 인간적인 평판은 둘째치고서라도 그 능력 자체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위장삼성팬들도 많았다. 다만 양준혁 은퇴 이후엔 거의 대부분의 삼성팬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고 팀 프랜차이즈 출신인 류중일 감독이 4년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아주 좋은 성적을 내면서 삼성 팬덤 내부에서는 선동열 감독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사실상 조롱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사실 욕먹는건 해태 출신인게 제일 클지도. 과연 해태출신이라 그런 걸까? 김응용이 욕 먹더냐?
다만 선동열감독이 재임 막판에 리빌딩을 진행한 덕에 2010년대 삼성왕조가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야구팬들도 있다. 굳이 류중일 숟가락론을 들이대지는 않더라도 이 시기에 안지만, 오승환, 권혁, 차우찬, 최형우, 채태인, 박석민 등 왕조시기 멤버들에게 꾸준히 기회를 준 것도 선 감독이라는 것이다. 물론 잘 던지는 투수들을 죄다 불펜으로 갈아넣었던 것과 권혁, 오승환, 정현욱, 권오준 혹사 건은 절대 쉴드 못 친다. 선동렬의 유산이 모두 팀을 떠난 후 삼성의 현재 상태는...
1.3 선수기용 논란
선동열의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어느 감독이나 총애하는 선수가 있고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는 선수가 있지만 선동열은 그 정도가 심하다는게 대부분.
대체로 그가 아끼는 선수와 아끼지 않는 선수는 크게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잘했던 팀 프랜차이즈 선수와 그가 부임한 뒤부터 잘했든가, 그전부터 잘하긴 했지만 원래 삼성 선수가 아닌 경우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좋은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후자는 총애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에는 박한이, 양준혁 등이 있으며, 후자에는 박진만, 신명철, 강봉규, 최형우, 박석민 등이 있다. 진갑용은 앞의 조건은 충족하지만 OB에서 건너온 이적생.
삼성 라이온즈의 대표 타자이자 국민타자인 이승엽 역시 "우리 팀 온다 해도 뛸 자리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당연히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클린업이 삽질을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욕을 먹는다. 그리고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 3명(채태인, 모상기, 조영훈) 세 명의 홈런개수를 모두 합한 것 = 2011 시즌 이승엽의 일본리그 홈런 개수라면서 선동렬은 미친듯이 까였다.이와중에 2011년 이승엽 타율은 안보냐고 반박하는 선빠들
다만 투수의 경우에는 그가 투수코치 시절부터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차별이 거의 없다. 다만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의 팔굼치가 이상 증세를 보임에도 팀의 우승을 위하여 재활의 나락에 빠질 때 까지 쓴걸로 봐서는 실제로 선수를 배려하는지는 의문이다. 또 대놓고 홀대한 선수가 한 명 있는데 바로 임창용. 해태시절 차기 마무리를 꼽는 과정에서 모두가 임창용을 골랐지만 선동열은 김정수를 지목하는 등, 해태 시절부터 사이가 안 좋았고, 그 이후 삼성에서 뛸 때야 뭐 성적이 시망. 악연은 임창용이 삼성을 떠난 뒤까지 이어져,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 당시 임창용의 스즈키 이치로에 대한 정면 승부건에 대해 김응용과 함께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선동열과 임창용을 엮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애초에 선동열의 재임기간 내내 임창용은 그야말로 망했어요였기 때문이다. 2005년 선동열이 부임할 당시 FA 계약을 체결했다가 갑자기 취소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팀 분위기를 박살내버렸고, 사장으로 막 취임한 임창용의 은사 김응용은 격분, 임창용이 당장 복귀하지 않으면 임의탈퇴시키겠다고 길길이 뛰었다. 결국 임창용이 백기투항하면서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이후 3년간 임창용의 성적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방어율이 2005년 6.50, 2006년 4.50, 2007년 4.90[23] 이 정도 성적이면 감독과 사이가 좋건 말건 써먹을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7년의 저 성적은 임창용의 태업이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뭐, 정말 태업했다면 그게 더 문제지만.
게다가 임창용은 고마웠던 사람 세 명으로 가족, 김성근, 선동열을 꼽았지만 선동열에 대해서는 은인이라는 뜻이 아닌, 자신의 야구 인생에 변화를 준 사람으로 말했다. 근데 링크한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질문 내용도 은인이 아니라 질문 내용도 "야구선수 임창용을 만든 세 사람"이며, 선동열 감독에게 뭔가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다기 보다는 그의 채찍질까댐이 재활에 도움됐다는 이야기다. 선감독은 임창용에게 제구와 변화구를 주문했지만, 그는 직구와 구위 회복에 더 매달렸다고.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파워 피처에서 피네스 피처로 변화를 강요하는 감독을 엿먹이기 위해 재활에 매달렸다고 볼 수 있겠다.
관련 이야기는 임창용이 삼성 복귀한 뒤 마해영과의 인터뷰에서 좀 더 명확하게 밝혀진다. 자신에게 자극을 준 사람으로 이야기하며 코치시절(2004)과 감독시절(2005 이후)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에 대해서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면 위에서 말한 별 의미가 없다는게 의미가 없는거 같진 않아 보인다. 단적으로 선동열이 여전히 삼성 감독이던 2010년 즈음에는 KIA 가고싶다고 했다가 선동열이 KIA 가고 난 이후에는 자신은 어쨌든 삼성선수라는 인터뷰만 봐도...
1.3.1 양준혁 은퇴 관련
2010년에 삼성의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양준혁의 기용문제 및 그의 은퇴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2009 시즌 부터 양준혁이 2008 시즌의 부진을 뛰어 넘는 활약을 보여주었음에도 무참히 플래툰으로 돌려버려 총 82경기에 밖에 못 나오게 하여 은퇴의 포석을 깔았다는 비판이 있다. 82경기에 나온 양준혁의 성적은 안타82, 타점48, 타율.329, 출루율.464 장타율 .526 이었다. 후반기에는 부상이 있었다고는 하나, 정말 잘 나가던 전반기에서조차 플래툰으로 돌려버렸다.
2010년 시즌 들어선 아예 대타요원으로 돌려버렸고 결국 한국 프로야구계의 타격관련 대다수의 통산 기록 보유자였던 양준혁은 은퇴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양준혁이나, 다른 팀 감독들, 동료 선수들의 인터뷰를 볼 때, 기량으로 봐서는 절대 은퇴할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1위팀인 SK 김성근 감독은 양준혁에게 왜 SK에 오지 않고 은퇴하느냐라고까지 하였다.
물론 2010년 시즌 초반에는 양준혁에게 얼마간의 기회가 간 것은 사실이고, 그 때 양준혁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땐 계속 선발로 보내더니, 타격 타이밍을 잡아가고 4월부터 맹타를 휘두르며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대타요원으로 돌려버린 것이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양준혁은 5월 말까지 주전으로 뛰었고, 아예 대타로 내려간 것은 6월부터다.[24]
양준혁이 2010년에 기록은 타율 .252/ 출루율 .387/ 장타율 .319로 그로서는 안 좋은 기록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장타율 .319은 심각했다. 허나 양준혁의 BABIP는 통산기록에 한참 뒤떨어진 수준이었으며(= 타구의 운이 없었으며)[25] 노장선수의 건재함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인 출루율은 3할8푼 이상으로 타율보다 1할3푼 가량이나 높았다. 당시 삼성 선수들 가운데 양준혁보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는 박한이, 박석민 둘 뿐. 한 마디로 장타력을 제외한 양준혁의 기량은 살아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특히나 전해 OPS 1.0에 가까운 타자는 리바운드만 한다면, 리그에서 5손가락 안에 드는 생산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지만 불과 2개월도 지켜보지 않고, 무엇보다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할 무렵에 주전에서 제외한 것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따라서 팀 승리를 추구하고 전력을 극대화 해야 하는 감독이 은퇴를 종용한 것은 비상식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특히 양준혁을 은퇴 시키고, 그자리에 고용한 강봉규의 2010년 기록을 보면.. 이게 무슨 미친짓이냐 싶다.) 89경기 안타55 타율.237 4홈런 8도루
마찬가지로 또다른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한이의 경우에도 2009 시즌 후반기부터 이어진 맹활약에도 FA 계약부터해서 2010 시즌 구상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팀의 주력으로 쓰지 않을 것 처럼 이야기하며 홀대하다가, 박한이가 2010 시즌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주전으로 계속 쓰는 모양새를 보여 삼성팬들에게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반면에 강봉규, 최형우와 같은 선수들은 부진할 때도 계속해서 많은 기회를 주었기에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최형우의 경우에는 차세대 4번타자를 육성한다는 의미라도 있었으나, 강봉규의 경우엔 젊은 나이도 아니었기에 특히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10년 7월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강제은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이른바 "선졸렬"이라 불리며 줄기차게 까이는 중. 올드팬들이 많은 엠엘비파크 등에서는 反선동열 움직임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엠엘비파크는 친 선동열 측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건이 터진 순간 선동열은 동네북이 되었으니 이 건의 파장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2010년 9월 19일 양준혁 은퇴 경기 후 감독의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이런 은퇴식(경기)은 복 받은 거다. 나도 일본에서 은퇴경기를 했지만 이렇게 화려하게 선수생활의 끝을 마무리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부럽다. 양준혁은 아주 열심히 했고 볼을 잘 맞혔던 선수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프로선수로서 자기 할 일을 다 했던 선수로 기억될 거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한국 프로야구의 타자 관련 대부분의 통산 기록을 갈아치운 그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영욕의 세월과 그에 대한 투쟁을 고작 방망이질이나 잘 했던 선수라고 뭉뚱그려버리는 만행이라 해석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코멘트의 뉘앙스에 대해선 각자 판단하길 바란다.
2007년에 양준혁이 2000안타 달성했을 때 응했던 감독 인터뷰와 비교하면 정말 애매한 답변이다. 게다가 당시 축하해주던 선동열의 표정도 2010년 올스타전에 비하면 정말 해맑다 [26]
2011년 시즌 초에 유행했던 류중일 감독의 부도수표 '나믿가믿' 발언 뒤에 양준혁은 "나도 믿어주는 감독님 밑에서 야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1.3.2 외국인 선수 기용 관련
2008년 5월, 제이콥 크루즈가 방출되면서 박동희가 올린 기사 중 선동열 감독 부임 후 외국인 선수들이 성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 불만이 심했다고 언급되었다. 팀 하리칼라는 삼성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했고, 제이미 브라운은 삼성 시절 하루하루가 악몽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둘 다 당시 팀내에서 1, 2선발을 맡아 하리칼라는 2006년 팀내 다승 1위였고 브라운은 2007년 팀내 다승 1위를 했음에도 선동열은 둘에게 더 뛰어난 성적을 요구했었다. 게다가 선동열은 하리칼라와 브라운을 5이닝에서 길게는 6이닝만 던지게 하고 교체시켰으면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선수 요청이나 선수 능력 부족 등으로 교체했다고 말하는 등, 외국인 선수들이 자신의 기대만큼 성적을 못 올린다고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이렇게 외국인 선수들에게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안기는 선동열의 방식은 에이전트들을 통해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게까지 퍼지면서 삼성은 한동안 외국인 선수들이 가장 기피하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삼성 외국인 선수들은 그야말로 최악을 달렸다. 부진한 제이콥 크루즈 대신 데려온 톰 션은 실제로는 메이저리그 등판 경력이 7경기 뿐인 만년 마이너리거였고, 웨스 오버뮬러와 톰 션을 방출하고 데려온 존 에니스는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강판되면서 그동안 기용법에 대해 쌓인 불만이 터져 중도 귀국했다#.
최악을 겪은 2008년 이후로는 삼성의 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고 선동열도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부드럽게 대하면서 외국인 선수들의 불만이 대외적으로 표출된 적은 없었다.
1.4 사임
2010년 12월 30일 갑작스럽게 감독직에서 용퇴, 후임으로 류중일 작전코치가 내정되었다.
삼성 단장은 본인이 용퇴를 말하고 후임으로 젊은 류중일 코치를 추천했다고 말했지만 이는 언플일 뿐이다. 왜냐면 선동열은 1963년 1월 10일생, 류중일은 1963년 4월 28일생. 류중일이 딱 108일 젊다. 또한 류중일 코치를 2군으로 쫓아 보낸 적도 있던게 선동열이였으니. 결국 5위를 하여 12년 연속 가을잔치가 끊어진 2009 시즌중에 5년 재계약을 했고, 얼마전까지 외국인 투수 선발에 참여했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해고다. 서울 삼성생명 본사에 호출해서 가봤더니 구단주-단장-사장이 참석해서 퇴진을 통보했다고 하니. 구단 운영위원이란 자리를 준다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리. 은사인 김응용 사장이 전격은퇴하고[27] 김응룡, 선동열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김재하 단장이 교체되는 등 그룹 인사 개편의 영향으로 보인다. 정작 자신은 짤릴 거란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용퇴 발표 하루 전날에 선수들에게 발표할 신년사를 작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보면 그런 듯하다.
소문으로는 삼성그룹 수뇌부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SK에게 4전 전패 광탈, 그것도 4차전을 보고서 격분했고 그것이 용퇴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한국시리즈 졸전이 감독 교체의 이유라면 한국시리즈 직후에 바꿨어야 하는데 거의 두달이 흐른뒤에 교체되었다. 실상은 그냥 경질.
한편으론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재용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올라온 것이 야구단에게까지 영향이 미쳤다는 견해도 있다. 이 무렵 삼성그룹에서는 오랫동안 이건희 회장 밑에서 2인자 역할을 하였던 이학수를 모두로 하는 친 이건희 그룹이 대거 은퇴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는데, 대체로 언론에선 후계자 이재용을 위해서 이건희 회장이 껄끄러운 인사들을 모두 정리하고 이재용 친위 체제를 구축해 준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언급한 인물들은 이 시기 다 물러났다고 보면 된다. 아무튼 이학수에게 김응용은 부산상고 선배, 선동열은 고려대 후배, 김재하는 제일모직에서 함께 일한 관계다. 김응용 영입을 추진했던 것도 이학수로 알려져 있으며, 김재하는 제일모직 경리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학수의 직계 후임이다.
향간에는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 발언으로 이승엽빠돌이인 이재용 부회장의 심기를 건드려서 짤린거라고 하지만 실상은 위의 이유 때문에 짤린 거지 이승엽하고는 상관없다.
1.5 평가
이러한 이유들로 삼성 팬들은 이 시기를 흑역사로 본다. 하지만 2회 우승의 성적이 무색하지는 않았는지, 선감독이 FA로 풀린 후 당장 다른 팀들에서도 선감독 영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일 기미가 보이기도 했다. 서울 팀들과 고향 팀이라고 할수 있는 KIA 타이거즈, 창원에 신설될 예정인 NC소프트의 제9구단 중 한 팀이 선감독이 커리어를 이어나갈 팀들로 거론되었다고 한다. 두산과 LG는 2011년 10월 기준으로 신임 감독을 정하였다.
야구계에서는 실적과 명망이 있었고, 4년의 임기가 남아있던 선동열 감독이 이렇게 잘려나간 것에 대해 경악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감독이 이렇게 잘릴 정도면 우승 감독인 김성근 감독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구단 맘대로 쳐낼 수 있다는 거라...라고 여겼으나 2011년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어 4년간 세번 우승시키고도 잘릴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짤린 건 재미없는 야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데자뷰
구단에서 경질한 것이 아니라 용퇴한 것이기 때문에 남은 계약기간의 금액도 받을 수 없다. 단, 관례상 챙겨주기는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감독 사퇴후에 선수단 운영위원이란 직함을 부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그냥 명예직으로 잔여연봉을 챙겨주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2011년말 기아 감독 선임시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연봉 3억 8천을 그동안 월급형식으로 지급해왔다고 한다. 기아 감독 선임으로 이제 운영위원 자리는 계약해지 예정.
왠지 2002년 LG 트윈스의 재림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2011 시즌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일단 그 의견은 틀렸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을 두둔하는 삼성 팬은 전혀 없다. 원래부터 선동열은 삼성 팬덤 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감독이었고, 양준혁 은퇴와 박한이 기용 문제로 그나마 남은 선감독 지지파도 온라인에서 잠수탔기 때문에[28] 선 감독 용퇴를 공개적으로 걱정하는 의견은 이대호 도루, 이대형 홈런만큼이나 보기 힘들 정도. 대충 "조금 불안하기는 한데 일단 부왘을 울려라" 정도의 분위기. 침소봉대하기로 유명한 한국 언론에서조차 선감독 퇴진에 팬들이 반발했다는 기사는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다. 선동렬 감독시절에 유입된 신규팬들은 반발했지만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오히려 현장 관계자, 기자, 타팀 팬들이 대동단결, 준우승 감독을 자르다니 미쳤나며 신나게 삼성을 까고 있는 중(...). 사실 현장 관계자들, 특히 감독들은 이런 반발이 나올 수 밖에 없는게 결국 자신들도 언제 퇴진을 강요당할지 모르는 선례가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아무리 잘나가는 한국 프로야구의 감독이라도 이런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위협의 유일한 예외로 평가받던 감독이 있었으나, 그 김성근이 2011년 8월 SK에서 짤리면서 만고불변의 법칙이 되어버렸다.(...) 사실 김성근은 이전에 이미 2002 트윈스에서 짤린 적이 있었기에 전부터 예외 따윈 없었다.
여담으로 2012년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이길 때마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선동열이 전 소속팀에게 승리를 헌납한다는 뜻에서 푸른 피의 멍게(줄여서 푸피멍)라는 드립을 친다. 덤으로 류중일 감독 체제에서 우승까지 하게 되면서 선동열 감독은 라이온즈의 흑역사라는 식으로 멍게강점기라고 부르는 중.
하지만 2016년 들어 제일삼성이 계속 추락하자 류중일의 밑천이 다 드러났다며 선동열을 재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29]
1.6 고향 팀으로
KIA 타이거즈 팬들이 선동열 전 삼성감독의 KIA 감독 영입을 가장 간절이 원하는 분위기였다. 지역주의 의식이라면 삼성 보다 못지않게 강한 광주 연고의 팀이라 대구 출신 조범현감독보다 프랜차이즈 스타 선동열이 더 매력적인 것이 당연하다. 2010 시즌 기록적인 연패와 부진으로 2011 시즌에 결과가 안 좋을경우 가장 경질될 가능성이 높은 감독 1순위로 조범현이 꼽힐 정도다. 그리고 KIA는 2011년 페넌트레이스를 4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 18일, KIA 팬들이 원하던 대로 선동열 감독은 KIA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일단 김성근 감독은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김경문 감독은 사퇴한 후 NC 다이노스로 직을 옮겼다. LG는 박종훈 감독이 사퇴하자 김기태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올렸고, 두산도 1군 투수코치 김진욱을 감독으로 올렸다. SK는 뻔한 계획대로 이만수를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선동열은 KIA에서의 임기 3년 동안 팬들의 기대를 완벽히 저버리고 임기 중 588을 찍으며 무능의 대명사로 유남호, 서정환에 필적하는 타이거즈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기록되어 본인과 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30]
2 KIA 타이거즈 각동님감독 시절
KIA 타이거즈 No.90 | |
선동열(宣銅烈) |
2.1 2011년
2011년 10월 18일, 조범현이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자진사퇴라고 쓰고 경질이라 읽는다함에 따라 후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팀에서는 당연하게도 선동열 감독이 선수 시절 달았지만 지금은 영구결번이 된 18번을 주려고 했으나, 그렇다면 영구 결번의 의미가 없다면서 90번을 달았다. 더불어 세트로 딸려온 수석코치는 이순철. 해태 전설들이 모여들고 있어! 그리고 이 기사도 성지가 되었다.
KIA의 약점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게 불펜이고, 선동열이 삼성 감독 시절 잘한 일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게 철벽불펜 구축인 만큼, 당연히 선동열이 불펜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다. 선동열 본인도 그걸 아는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투수진 전원이 마무리 훈련부터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발언을 했다. 불펜 한두명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리고 임명되기가 무섭게 한 기자의 개드립오타로 졸지에 부동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득한다. 광주 일대에 막대한 양의 실탄을 뿌리며 알박기 포탄을 투하하는 선동열 실제로는 광주 주위에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땅값이 내려가는 바람에 손해만 보고 그다지 재미를 못봤다고 한다. 그래서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받은 거금의 연봉도 대부분 날렸다고... 부동산왕의 몰락
10월 21일 취임식을 가졌고 바로 마무리 훈련 일정을 변경, 1.5군 위주로 들어가던 훈련을 개편, 10월 23일부터 1, 2군 선수 전원을 훈련시키겠다고 밝혔다. 윤석민, 이종범, 최희섭 등 예외는 전혀 없으며 훈련을 통해 바로 옥석가리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었다.
KIA 타이거즈의 감독이 되고 나서도 삼성 라이온즈가 전지훈련장으로 사용하는 일본 오키나와의 온나손 아카마 구장을 KIA 타이거즈의 전지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접촉하였다는, 소위 '멸치 두 박스 소문'[31]이 돌기도 하였으나 김평호 코치가 트위터를 통해서 전지훈련장은 아카마 구장이 아니라고 인증했다.* 그래서 멸치 두 박스는 거짓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아카마 구장을 며칠 이용할 권리를 얻어냈다는 기사가 떴다.* 삼성팬들에게는 그저 충격과 공포.
다만 선동열 감독의 취임으로 삼성 팬과 기아 팬은 시즌 초에 그야말로 개싸움 모드였다. 선동열 감독을 6년간 직접 경험한 삼성 팬들은 너네도 직접 경험해봐라라면서 비아냥댔고[32], 그에 대해서 KIA 팬들은 너네 팀이나 잘하세요라는 반응을 보였다.망했지. 멸치 사건은 그 와중에 나온 해프닝. 그리고 KIA 팬들은 삼성 팬들의 비아냥에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데
2.2 2012년
해당 문서 참조.
2.3 2013년
해당 문서참조.
2.4 2014년
해당 문서 참조.
2.5 KIA 감독 시절 특이사항
성적이 좋지 않았던 2012년, 이래저래 타이거즈 팬은 물론이요 타팀 팬들에게도 주목받는 것은 선동열의 감독으로서의 행보가 아니라 표정 변화(…)였다고 한다. 득점 여부에 관계없이 카메라가 비춰주는 선동열의 뚱한 모습이 그림자와 특유의 푸짐한 얼굴살이 겹쳐서 한껏 무서워 보이는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
KIA에 부임하고 부쩍 자극적인 인터뷰가 늘었다. 2012년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더 부각되었다. 이게 다 이선호 때문이다
KIA 감독에 취임한 뒤 유독 對 삼성 전적이 영 좋지 않다. 2012년 9월 26일, 27일 추가 일정으로 편성된 대구 2연전에서 김진우의 완투와 윤석민의 완봉으로 2연승을 한 것을 제외하고, 부임 이후 정규 3연전에서는 삼성에게서 위닝시리즈를 가져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푸른 피의 멍게 직구와 조크볼에서도 이 모습을 묘사하였다. 심지어 2013년에는 삼성전에서 트리플 스윕패를 당하고 시즌 상대전적 4승 12패를 기록중이며(...) 8월 11일 광주에서 이기기 전까지는 삼성전 11연패를 하고 있었다. 그 두 번 이긴 것 중 한 번은 선발 투수가 아네우리 로드리게스(...). 괜히 삼성 팬들이 선동열이 KIA 종신감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0선발 드립까지 나왔다. KIA 팬들은 이 정도면 선동열이 삼성에서 보낸 산업스파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2014 시즌에도 4승 12패로 전년도 성적을 똑같이 복사했다.~~
프랜차이즈 레전드 출신이라고 2012 시즌엔 욕은 덜 먹고 있었지만 2013-14 시즌 내내 욕을 흠씬 먹고 있다. 감독으로서의 밑천이 슬슬 드러나고 있다는 평. 투수조련 1인자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평이었지만 2013년 전반기 종료 현재 팀 평균자책 4.53(7위), 팀 WHIP 1.53(8위), 팀 피안타율 0.285(8위), 팀 피출루율 0.364(8위), 팀 피장타율 0.402(8위), 팀 피OPS 0.766(8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가장 높은 게 평균자책 7위일 정도. 투수 교체로 그렇게 욕먹었던 조범현도 4년간 팀 평균자책 4, 2, 3, 3위다. 사실 조원수박차를 지켜본 삼성 팬들이라면 투수조련 1인자라는 평에는 코웃음칠 수밖에 없다 안정권KO를 기대했는데 현실은 조원수박차
게다가 약한 불펜으로 역전패도 빈번하며, 선수들의 멘탈 문제와 잇단 실책성 병맛 플레이, 이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한 박자 늦은 투수교체 타이밍, 경기를 쉽게 포기한다는 점과 희생번트에 대한 집착 등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투수력을 강화하려면 수비를 강화해야 하거늘 수비에 소홀하다고 하여 언행불일치라고 까인다.
2013 시즌 하반기로 들어 갈수록 점입가경. 7월 23일 대패로 팀 평균자책도 8위가 되었다. 신생팀인 NC만도 못한 성적. 바로 밑이 팀이리고 부르기도 뭐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한화니 사실상 최하위.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 결국 그동안 인내했던 KIA 팬들도 결국 한계를 보이고 선동열을 가루가 되도록 깠다.
여기에 매년 즉전감, 인성 등을 운운하면서 대책없이 대졸몰빵 픽을 하면서 차기 감독이 군 문제로 골머리 썩게 만들었다는 점은 덤이다.지역 고졸픽을 비롯한 전국의 고졸픽은 안중에도 없으셨다. [33] 이렇게 지명한 대졸중에 즉시전력 주전으로 자리잡은 선수는 아무도 없어서진정한 폭격기 ㄷㄷㄷ 미래마저 폐허 ㄷㄷㄷ [34] 권윤민 스카우트 팀장과 함께 쌍으로 더 까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비판받는 건 자기 스타일을 너무 고집한다는 점. 스타 출신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신의 야구관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밀고나가며, 부진한 성적에 대해서 반성하거나 주변의 조언을 구해서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게 바뀌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야구계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데, 발전이 없이 자기 방식만 고집하다가는 이대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35] 일각에서는 삼성에서의 초보 감독 시절 2연속 우승을 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평도 있다.
우천연기를 너무 많이 시킨다고 타 팀빠들로부터 졸렬하다고 까인다. 사실 우천연기 자체는 KBO 리그 경기감독관이 결정하는 일이라 크게 까일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천연기와 별도로 계속되는 입놀림으로 스스로 비호감지수를 올리는 것은 사실이다. 자기 팀 상황이 개차반인데 한가롭게 국내선수들의 해외진출에 관련한 인터뷰나 하고 있으니, 야구팬들한테 오지랖도 넒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13게임 만에 모가지를 당한 김동엽 감독을 제외하고, 역대 타이거즈 감독 중에서 유일하게 팀을 4강 못보낸 감독이 되었다. 타이거즈의 최하위란 큰 굴욕을 안긴 두 감독인 유남호와 서정환은 적어도 각각 2004년과 2006년에 팀을 쥐어짜듯이 4강에 보낸 적이 있다. 둘 다 그 다음해에 거하게 말아먹어서 문제였지만.(...) 2013년엔 타어강이라는 현실이자 비아냥마저 들으며 신생팀 NC에게까지 밀려 8위로까지 추락해버렸다.
그리고 설령 그가 경질된다 하더라도 KIA 팬들은 이후 6668587667급의 암흑기가 올 것이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3 시즌 후에도 결국 살아남았다. 구단에서 계약기간은 채워주기로 했다는듯. 하지만 이순철 수석코치가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대신 경질당했다.뭔가 앞뒤가 바뀐듯...
그리고 2014년. 예상과 기대대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2014년을 마지막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 2016년까지 KIA맨…2년 10억 6천만원 재계약 10월 19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도중에 뜬금포로 연임발표!!!!!!! KIA 팬들 멘붕. 갸갤 멸망의 날 실제로 발표가 난 지 30분도 안 되어서 호랑이 사랑방이 터졌다(...). 묻어가려고 준플 경기 중에 발표했는데 준플을 묻어버렸다 카더라
KIA 팬들은 말그대로 충격과 공포에 빠졌고 타팀팬들은 축제분위기. 진짜로 종신각동님 되는건가 팬들 중 일부는 2년 재계약 소식이 혹시 오보가 아닐까 생각하며 희망고문 속에서 정정기사가 뜨기를 기다려 보았으나 역시나. 많은 KIA 팬들이 떠날 것이 예상되며... 3년동안 눌러참고 있던 광주아재들의 활약이 기대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계약 기간이나 연봉으로 봐서는 애초에 3+2 계약이 아니였나 하는 의견도 올라 오는 중 대체 +2의 조건이 뭐였길래 588을 찍었는데도 발동을???
다만 세간의 평과는 반대로 선수들과의 관계는 별다른 트러블이 없는 편. 비록 이종범 등 기존 노장들과의 마찰이 있었긴 했지만 타자들에게 방망이를 선물해주고 과감하게 장비를 제공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주니치에 뛰었던 연이 닿으면서 일본에서 물품을 공수해와서 선수들에게 선물해주기까지도 했다. 다만 이런 모습도 그냥 물품을 지원해 주는 정도에서 그칠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선 감독이 맘에 들어하는 선수들에게는 한없이 베푸는 성격이기는 하지만[36] 모든 사람에게 그랬다면 많은 선수들과의 트러블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됐으나...
2014년 10월 24일자 매일경제에서 23일자 광주일보 기사를 인용하여 군입대를 하겠다는 안치홍에게 임의탈퇴를 시킬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사실을 기사로 냈다.
매일경제 기사: 상처 투성이, `名家` KIA는 실종됐다
광주일보 기사: 선동열 “소통” … 선수들 “분통”
더구나 기아 타이거즈 홈페이지에 본인이 직접 소통드립친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기아팬들의 분노는 가히 하늘을 찌를만 했다. 가뜩이나 재계약으로 기아팬들이 들끓은 상태였는데, 이 사건은 그야말로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부어버리는 꼴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선동열이나 기아 구단은 이 일에 대해 사죄는 커녕 일언의 해명조차도 하지 않아 기아 팬들을 더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악화된 팬심으로 인해 자진사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 문서에 존재했던 소항목 선동열/2015년도 지워졌다 이번 재계약 직후 자진사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 관련기사 이종범과 함께 타이거즈 역대 최고 프렌차이즈로 꼽히는 그가 다른 무엇도 아닌 팬들의 반대로 물러났다는게 심히 씁쓸한 부분. 그러나 또 한명의 역대 최고 프렌차이즈는 선동렬 때문에 물러났지
# 이 기사에서는 '안치홍 임의탈퇴' 발언에 대해 이렇게 해명을 했는데, "너나 나나 프로들이고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소모품들이다. 최악의 경우 구단쪽에서 임의탈퇴까지 생각하면 안되지 않느냐. 생각을 바꿔보자"고 말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때늦은 해명같지도 않은 해명이라 대차게 까였다. 더구나 갸갤러들의 반응또한 매우 싸늘했다.
2.6 재평가?
후임인 기아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이 2015, 2016년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만큼 김성근과 김응룡처럼 재평가 이야기가 점점 나오고 있다. 즉, 김기태 감독은 LG에게 11년만에 가을야구를 하게해준 명감독일지 몰라도 현재의 기아 타이거즈에서는 답이없는 행보를 보인다는 이야기다. 근데 지금 눕동님 선동렬이 만든 그 거지같은 뎁스로 2년연속 4강 경쟁 중인데? 또한 삼성 라이온즈가 후임 류중일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선동열은 삼성 라이온즈를 2위 전력으로 리빌딩, 세대교체가 매우 잘 해놓고 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즉, 류중일의 첫 우승은 삼성 라이온즈가 2011년에 오승환이 복귀하고 최형우가 포텐 터지는 등 전체적으로 '선동열 키드' 선수들이 성장해서 우승했다는 소리이다. 또한 2016년 삼성 라이온즈는 선동열의 유산이 없어질수록 답이 없어진다는 말을 들을정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2016년 6월 10일 결국 류중일의 삼성라이온스는 사상 최초로 리그 꼴찌이자 10등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선동열의 삼성 감독시절 재평가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2009년 기아의 우승은 플루크 시즌이라고 할정도로 역대급 기적의 우승이라는 평가는 아직도 나오고 있고, 현재도 엘롯기라고 불리던 시절보단 낫지만 여전히 답이없는 구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선동열이 재평가 될 여지가 남아있게 됐다.한화이글스 우승이 빠를까요? 기아타이거즈 우승이 빠를까요? 쉽게말해 명장 김응룡도 답 없는 구단에서 무능의 아이콘 소리를 듣는다는 점에서 선동열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기아 타이거즈 감독으로 와도 선동열과 비슷한 성적을 낼 거라는 주장이다. 또한 기아 프런트 측에서도 이런 논리로 2015년 선동열과 재계약을 하였다.물론 안치홍 사건떄문에 본인이 자멸했지만
하지만 아직까지는 재평가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 대세. 이유는 성적 외에도 대표적으로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 + 양준혁, 이종범 등 베테랑 강제은퇴 + 안치홍 임의탈퇴 사건 등으로 안 좋은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런 실망스런 행보가 2011년 첫 부임할때 너무 많은 기대를 받은 것과 대비를 이루며 아직까지도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 세대의 젊은 야구팬 한테 선동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어본다면 1점대의 평자점이나 나고야의 태양보다는 각도기나 베테랑들의 옷을 벗기는 모습의 이미지가 더 먼저 생각이 나는게 그 증거이다.
더군다나 2016년 들어서 성적만 봐도 점점 재평가가 힘들어지는걸 알 수 있다. 김기태 감독의 첫 부임인 2015년은 사실상 리빌딩을 목적으로 했으므로 팬들도 성적은 넘어갔고, 2016년 역시 리빌딩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을 기대할 순 없었다. 그런데 2016년 9월 기준 기아 타이거즈는 치열한 중위권 싸움에서 4위를 확보하며 상위권으로 도약하였고 비록 LG 트윈스와의 맞대결에서 모조리 패해 5위로 내려가긴 했지만 결국 10월 5일 가을야구를 확정짓는다. 이러한 선전의 밑바탕엔 훌륭한 유망주들이 있다. 사실상 멍게감정기라고 할 정도로 꿈도 희망도 없던 선동열 감독 시절에 비하면 팀 자체에 희망이 보이는 모습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2016년 10월 5일부로 기아가 삼성을 꺾고 5위를 확정지음으로서 선동열은 역대 기아 감독 중 유일하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감독이 되었다. 그 점에서 재평가를 논하는건 아직 어불성설일 뿐이다.
3 이후 행보
프리미어 12에서 투수코치를 맡아 신들린 투수 운용으로 우승을 이끈 1등공신이 되었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명예회복을 하게 되었으며, 2016시즌의 결과에 따라 감독 복귀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KIA 시절 나타난 단점은 극복하고, 장점은 극대화하는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아예 감독의 자질이 없다는 다른 금지어급 감독들과는 달리 선동열은 감독으로도 비록 과정에는 논란이 있지만 2회 우승 커리어도 있고 투수코치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 인물이기에 재기의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다만 재기를 위해서는 언급했듯 자신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 보다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스타 선수 출신으로 감독 커리어에서도 조기에 성공을 맛본 것이 이를 가로막을 위험이 아주 높다.[37] 감동님계의 투 톱인 이만수 감독 또한 조기에 준우승을 맛보았고 장점도 보여주었지만 팀케미 관리에 심각한 난점을 보이는 면에서 꽤 공통점이 있는 편이다.- ↑ 페넌트레이스 3위팀 롯데를 꺾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배 하면서 준플레이오프 결과와 상관없이 페넌트레이스 순위가 적용되어 4위로 마감
- ↑ 류중일이 삼성감독이 된 이후 삼성팬들은 선동렬의 감독시절을 흑역사 취급한다.
- ↑ 그분(...)과 선동열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감독 생활 중에 처음 감독을 맡았던 팀에서 몇 차례의 포스트 시즌 진출과 우승을 거두었던 바 있다. 물론 둘 다 팀을 옮기고 나서는...그래도 현대 유니콘스 말년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력이 있는 김재박이 더 점수가 후하다.
- ↑ 하지만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한 류중일에게 완전히 묻혀버렸다... 게다가 선동열은 이 시기에 타어강 발동...
- ↑ 주축 투수들 중 한두명이 과부하로 전력 이탈->나머지 투수들의 부담 가중->다른 투수들 중 전력 이탈 혹은 기량이 대폭 하락하는 선수 속출로 이어졌고 그 결과 나온 것이 445
- ↑ 2015년 현재 한화 이글스의 유입팬들 중 상당수가 SK시절 김성근 감독 개인의 팬인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아무리 그래도 그 광신도들하고 비교하는건 좀 - ↑ 선동열 감독이 퇴임한 이후로도 꾸준히 선동열 쉴드글이 올라왔으나, 이종범 은퇴와 선동열호 기아의 부진으로 자팀팬에게도 외면 받으면서, 오히려 선동열호 삼성 시절에 대해서 태클을 거는 삼성팬(?)들은 거의 종적을 감추었다.
- ↑ 단, 오승환은 스카우트 당시 선동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카우트진의 판단으로 뽑았으며, 데뷔와 동시에 놀라운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선동열이 키웠다고 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 ↑ 그냥 자리잡지 못 한 그저그런 선발이 아니라 04년에는 시즌 중 불펜으로 내려갔지만 11승이나 거둔 뛰어난 선발자원이였다.
- ↑ 이는 아직도 사실로 믿는 사람이 많다. 권오준이 불펜으로 전향하기 전인 2003년에는 153⅓이닝을 소화했는데, 실제로 혈행장애가 있었다면 이만큼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가 없다.
- ↑ 2007년 권혁의 9이닝당 탈삼진 수는 11.64개로 엄청난 구위를 자랑했었다. 게다가 이때 권혁은 등판하면 거의 1이닝 이상씩 던졌는데, 결국 부상으로 8월달에 3주 가량을 쉬었다.
- ↑ 다만 안지만의 경우엔 2007년에 5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교체된 적이 있었다.
- ↑ 보통 일본 야구계나 이에 영향을 받은 지도자들이 동의하는 편이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논란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지론이 "투수의 어깨나 팔은 지우개같은 소모품이다".
후자는 지론이라기 보다,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증명한 정론으로 봄이 타당하다. - ↑ 일본이나 미국 투수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미리 몸을 만들어놓아 스프링캠프에서 많은 공을 던져도 무리가 없는 반면, 한국은 중-고교 야구시절부터 성적에 매달려 몸을 만들 시간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혹사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국내 투수들은 피지컬에 비해 근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많다.
- ↑ 실제로 2004년 삼성 스프링캠프에서 3000투구 훈련을 소화한 15명의 투수들은 이후 많은 후유증을 겪었는데, 아무래도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지 않고 무작정 공을 던지기만 하다보니 애초에 의도했던 근력 강화와 투구기술 제고는커녕 부상에 시달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거나 타팀으로 트레이드되었고, 결국 수술대에 오른 선수도 3명이나 된다.
- ↑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선동열이 밀어준 타자들은 1군에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실망스런 성적을 뒤로 한 채 쫓겨났다.
- ↑ 먼저 달성한 순서대로 김응룡, 김재박, 선동열, 김성근, 류중일.
- ↑ 허나 이것도 선동열이 삼성에 있었기에 이런 말이 나오지, 해태나 현대에 있었다면 단기전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훨씬 박해졌을 것이다.
- ↑ 좀 넓게 본다면 사장의 눈치를 본 거라 할 수 있는데, 대졸 투수 위주 지명 뿐만 아니라 당시 김응용 사장의 모교인 개성고 선수들(정민우, 길태곤)도 지명했는데 둘 다 김응용의 후원 하에 개성고로 진학했다. 이렇듯 2010년 신인 지명 때 과도하게 윗선이 개입한 탓에 신인 지명을 마친 후 삼성 스카우트진이 언론에서와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불만을 터뜨리며 윗선 개입이 줄었다는 후문이 있다.
- ↑ 현실적으로 상위픽으로 드래프트되지 못해 기량 향상을 목표로 대학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고졸 상위픽 유망주에 비해 재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이미 받은 셈이다. 물론 대학에서 뒤늦게 재능이 만개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 ↑ 다만 이승엽과 마해영, 브리또, 강동우가 동반으로 이탈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 ↑ 이때 김재박 감독은 "돈으로 선수 사모으면 우승 못할 팀이 어딨냐"며 비판했다.
- ↑ 게다가 2006년은 고작 2이닝 던졌다.
- ↑ 양준혁은 4월에 18경기 54타석, 5월에 18경기 58타석에 나섰다. 그리고 5월 기록은 타율 .217/ 출루율 0.379/ 장타율 0.239 /OPS 0.618.
라이언 가코의 2011년 타율과 OPS가 더 높다차라리 부진하기를 기다려 냉큼 뺐다고 하면 모를까 잘하니까 일부러 뺐다기에는 어폐가 있다. 관련글 링크 - ↑ 타자의 BABIP은 투수의 BABIP과는 달리 타자의 기량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편이다. 더군다나 양준혁과 같이 라인드라이브 히터의 경우에는 이러한 낙폭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편. 좀 더 정확히는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비율을 살펴봐야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타자의 라인드라이브 비율을 제공해주던 스탯티즈가 닫혔기 때문에...물론 간접적으로 추론하자면 장타율의 급감을 라인드라이브 비율의 급감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는 있다. 본 각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BABIP 문서 참조.
- ↑ 당시 인터뷰: 부상없이 자기 몸관리에 철두철미했기 때문에 이런 대기록을 세우지 않았나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프로야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뭔가 심플해보이긴 하지만 2010년과 비교한다면야 - ↑ 이것도 사실상 경질로 보는 시각이 많다.
- ↑ 양준혁 은퇴 당시에는 선동열을 까지 않으면 해태팬 취급당할 정도로 살기등등한 분위기였다. 아니 실제로도 이때 삼성팬을 위장한 해태-기아팬들이 가장 많이 까발려졌던 때이기도 했다. 조금 부연설명을 하자면, 사실 2010년은 어지간한 선까들도 어라?라는 반응을 보일만큼 이전의 운영과는 확연히 (긍정적인 방향으로)차별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때문에 삼성 팬덤도 점점 호의적인 반응으로 변해가던게 2010년이었다. 그러나 양준혁 은퇴 단 한방으로 이 모든것은 핫케익보다도 더 쉽게 뒤집혀버렸고,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경기를 포기하는 모습으로 선동열 지지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 ↑ 물론 반쯤 드립에 가까운 소리다. 당장 선동열이 와도 자리없다고 한 삼성 최고의 레전드를 누가 다시 데려왔는지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기아 팬들만큼은 삼성 팬의 심정을 이해한다 카더라 - ↑ 물론 이게 선동열 탓만은 아니다. KIA의 고질적인 트레이닝 문제. 1군 붙박이. 부상 등 온갖 골칫거리가 한꺼번에 폭발한 결과. 사실 조범현 시절의 전력이 아직 어느 정도 남아 있던 2012년에는 5위를 한 점에서 보듯이 프런트가 지원을 제대로 해줬으면 그래도 6위 정도는 할 만한 팀이 8위까지 추락한 건 선동열의 경기운영보다는 오히려 내부문제의 폭발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기태가 아예 바닥난 전력에 선동열 시절보다도 못하는 용병들로 7위를 한 걸 보면 선동열에게도 책임은 있으며, 이후 프리미어 12에서 투수코치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것을 보면 전술 판단력은 뛰어나지만 감독으로써의 장기적인 운용관리능력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삼성 시절에는 그래도 STC의 존재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KIA에서 문제가 된 것.
- ↑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한 누리꾼이 자신이 지금 오키나와에 있는데 지금 선동열이 촌장에게 멸치 두 박스를 주고 있다고 제보했다.
- ↑ 이 당시에 삼성 팬들 사이에서 나온 드립이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게 아니라, 삼성의 시스템이 선동열을 우승시켜준거다'
지금 와선 맞는 말인거 같아.... - ↑ 참고로 신인드래프트에서 즉시전력 운운하면서 (대수비급) 어정쩡한 대졸들만 몰빵지명하는 것은 한화 이글스가 암흑기로 접어들기 직전에 나타났던 모습이다. 어정쩡한 대졸몰빵 지명 => 원툴(혹은 무툴) 대졸로만 가득한 2군 => 군입대기한에 따른 병역문제 => 주전은 노쇠화 돼 가는데 올라오는 신인은 없고 => 종이장처럼 얆아지는 뎁스. 이게 한화 이글스가 암흑기에 접어드는 과정이었는데 KIA 타이거즈가 거의 똑같이 따라가고 있다.
- ↑ 박지훈이 입단 1년차에 맹활약했지만, 그 뒤론 개점휴업 상태이다. 입단동기인 홍성민도 첫 해에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하였으나 김주찬의 보상선수로 롯데로 가게 되었다.
- ↑ 스승인 김응용도 21세기에 20세기의 야구를 버리지 못해 결국 한화 이글스에서 또 다른 의미의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다. 한편 김성근은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의 코치 경험 등으로 자신의 야구관을 과감히 보완해나가면서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명감독으로 칭송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한화 이글스 갤러리의 모 갤러가 남긴 일침이 있는데, 바로 김응룡도 과거의 김응룡이 아니고 김성근도 과거의 김성근이 아니다다. 어찌 보면 두 감독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 같지만 전자는 그대로 멈춰 있었지만 후자는 진보했기 때문에 둘은 다르다. 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평가는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극적으로 반전되게 된다. 김성근의 한화에서의 막장 행보는 임기 내 꼴찌에 머무르면서 승부를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였던 김응룡조차 어떻게든 뎁스를 두껍게 만들고자 애썼고, 선수들의 폼과 선수생명을 존중했던 감독이었다는 평이 나오는 지경이다.
- ↑ 특히 조영훈의 경우에는 삼성-KIA 시절 선동열 감독이 기회를 많이 부여했던 경우이다.
- ↑ 가장 행보가 유사한 인물이 바로 김재박 전 감독인데, 야구팬들이 나름 재기가능성이 있어보인다고 평하면서도 2010년대 KBO 트렌드에 맞지 않는 스몰볼 성향으로 인해 정작 자기 팀 감독으로는 주저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근데 감독으로 한정하면 커리어 전반적으로 김재박 감독 쪽 평가가 좀 더 좋다(...) 현장공백이 더 긴 쪽이 김재박 감독이기는 하지만.
정수도 없고 종호도 없던 상황에서 2위 찍어본 김재박이 당연히 나을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