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공사 중이었던 영도대교[1] | 해체 후 교각 재가설중인 영도대교 | 재개통 후 현재의 영도대교[2] |
부산광역시의 다리 | |||||
영도대교(影島大橋) | |||||
영도연륙교(서→동) | 준공 : 1934년 11월 23일 | ||||
남항대교 | ← | 영도대교 | → | 부산대교 | |
구조형식 | 트러스교 | 특이사항 | 도개교(일엽식) |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 ↔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 |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이더나?
피눈물을 흘리면서 1.4이후 나 홀로 왔다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바꿔 살아간들
천지 간에 너와 난데 변함이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라 북진통일/남북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 보자 얼싸 안고 춤도 추어 보자
이번에 안되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
1 개요
1932년 3월 착공, 1934년 11월 완공. 일제강점기에 건설되어 지금껏 써먹은 부산 최초의 연륙교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도개식 가동교이다.
2 도개교
절대 다리를 절반으로 갈라서 양쪽에서 /\ 이렇게 들어올리는게 아니다
사람 좀 모이면 6만명이 한 번에 모였을 정도. 214m 가운데 육지 쪽 31m를 전동식으로 들어올려 그 밑으로 1천t급 선박이 드나들 수 있게 돼있었고, 당시 도개시간은 하루 7회로 각 20분씩이었으나 1935년 6월부터는 하루 15분으로 줄었고 횟수도 하루 2회로 줄었다. 그러나 1966년 9월 다리 밑으로 상수도관을 매달면서 '도개(跳開)'를 완전 중단했다.
그러나 47년만인 2013년 11월 27일로 확장 재개통하면서 도개기능을 하루 1회로 복귀한다.
26일 새벽 시험 가동모습.
국내 유일의 도개교인 만큼 관광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개시 1천톤급 선박이 운행가능하긴 하나 실제 이용될지는 미지수. 영도대교를 거치지 않고 태종대 앞 바다로 우회하려면 정말 멀기때문에 이용 가능성도 크다.그래야 멋지기도 하고
일제시대부터(1920년대) 영도는 인구가 6만에 이를 정도로 인구 밀집지역[4]인 터라 폭발하는 교통량을 나룻배로 때우기가 더 이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1934년 개설되게 되었다. 당시 부산의 도시철도 역할을 했던 부산전차 영도지선도 다리가 개통된 1934년부터 이 교량 위를 1968년 폐선시까지 달렸다.[5]
해상교통량도 꽤 많았기 때문에 개통당시에는 하루 7번씩 들어올리는 그야말로 랜드마크였다.
이후 한국전쟁에는 워낙 영도대교가 부산의 랜드마크로 전국에서 나름대로 유명했기 때문에 피난민들이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영도대교가 만남의 장소로 톡톡히 이용되었다. 이때 전국적인 랜드마크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1980년 이웃집 부산대교가 개통하기까진 영도의 유일한 연륙교로써 그 엄청난 교통량을 한몸에 받아내었다. 시내버스 및 대형 트럭은 물론이고 한때는 전차까지 다녔다...
일제시대에 놓은 다리를 아무 생각없이 무려 60년을 써먹다가 성수대교 붕괴사고이후 안전진단하니 철거 혹은 긴급보수필요크리. 부랴부랴 대대적 보수를 두어번 하게 되었지만 그래봤자 상시보수 필수인건 변함 없긴 했다. 물론 과적에 대한 단속도 강화되고 아예 대형트럭은 진입금지 대형차는 시내버스만 다니게 되었다.
현재도 영도대교는 영도의 시내버스 노선 대부분이 지나며 영도구민이 걸어서 넘어가는 주요 교량으로써도 애용되고 있다.
3 안녕, 영도대교
21세기 들어와 근대 문화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도대교의 문화재적 가치가 재조명되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부산은 역사가 오래된 항구도시인 걸 감안해도 제대로 보존된 문화재가 적기 때문이다. 부산역만 보아도 화재에 전소되어 없어졌다.
그리하여 영도대교도 2006년 11월 25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지만.. 넘쳐나는 교통량과 자본엔 자비란 없었다. 지금 우회도로처럼 새로 놓거나 2층으로 복층교량을 놓는 등의 갖은 연구에도 결국, 철거후 재가설이란 결정이 내려졌다. 그렇지만 영도대교를 아주 버리진 못하고 모양은 똑같이 복원(...)하기로 한다.[6]
2011년 5월, 영도대교 복원확장공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이를 위해 우회 임시교량이 가설되어 통행했으며, 롯데건설이 롯데타운을 건설하는 조건으로 공사비를 전액부담(기부채납)한다.[7] 기존 4차선인 교량을 6차선으로 확장하고 도개기능을 살려 기념일에 한정하여 도개 할 방침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최초였고 유일의 도개교로써 관광상품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근대 문화재인 영도대교를 확장공사로 인해 사실상 철거 하기 때문에 복원공사도중 나오는 철거된 부자재를 선별하여 영도대교 근처에 건립될 기념관에 보관하고 교량 일부를 남겨두는 선에서 문화재청과 합의 후 공사했다.
2013년 6월, 상당수의 상판은 설치가 완료되었고 도개교부분도 설치, 7월에 도개부 시험가동후 11월 23일 영도대교 생일에 맞춰 정식 재개통을 할 예정이다. 이후 개통일자가 27일로 확정되었다.
2013년 7월 26일, 47년만에 다리를 다시 들어올렸다!(시험가동)
2013년 10월 1일, 드디어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영도 진입방향은 차량통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임시교량 철거를 위해서인지 영도 진출방향은 임시교량을 이용하기 시작하였고 수일 후, 양방향 통행이 허용되었다.
4 억수로 보고싶었데이
드디어 2013년 11월 27일 공식 재개통한다. 리뉴얼 완료 무엇보다도 27일 이후부터 하루 1회 14시 (오후 2시)에 다리를 들어올린다! 구경가고픈 사람은 시간을 잘 외우도록 하자.
도개기능 가동시간은 원래 12시(정오)였으나 영도구 측 상권이 활성화하지 못하고 주민들이 통행 단절을 겪자 도개시간을 변경해달라는 요구를 부산시가 받아들여 2015년 9월부터 14시(오후 2시)로 조정되었다. 과거 12시에 다리를 들어올렸을 때 부산 시내버스 8번, 85번, 508번이 부산대교로 우회하였으나 2015년 9월에 모두 영도대교경유로 환원되었으며, 모든 버스들은 다리를 들어올릴 때 멈춰서 기다렸다가 내리면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여기에 부산대교를 경유하는 버스들이 적고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를 경유하는 버스가 부산 버스 1011로 2015년 11월에 개통되긴 했는데 배차간격이 상당히 길고 입석금지라 해운대, 명지 등지에서 만석으로 온다면 영도주민들은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불만이 크다.
이번 확장공사로 왕복 4차선에서 6차선으로 변경되었으며, 인도 폭도 예전보다 훨씬 넓어졌다.[8] 더불어 대형 화물차도 다닐 수 있게 되었긴 했는데, 훌륭한 대체재가 있는데다 보통 화물차들은 도시고속도로로 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 밀리는 남포동을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영도대교를 굳이 건너 갈 컨테이너 화물차들은 없다.
영도대교 재개장에 발맞춰 인접한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에서도 우리나라 유일의 도개교라는 점을 강조하는 쪽으로 안내방송이 바뀌었다.
5 이야깃거리
정식 명칭은 영도대교지만 부산에선 다들 영도다리라고 부르며 우스개 소리로 부산 출생 인원의 대부분은 영도다리에서 주워 온다는 말도 있다.[9] 사실 '엄마 다리 밑'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주워왔다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한국전쟁 당시 부산, 그중에서도 특히 영도에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부모가 죽거나 기타 등의 이유로 아이가 다리밑에 버려지는 일이 실제로 많아서 그런 말이 생겼다라는 설도 있다 카더라. 바리에이션으론 '넌 사실 영도다리 밑에 호떡집 아줌마 아들이다'가 있다.
영도대교는 자살의 장소로 애용(?)되었다 카더라는 이야기도 제법 돈다. 우리가 남이가의 사례만 봐도... 선거에서 지면 뛰어내리는 곳 지금이야 훨씬 좋은(?) 부산대교[10]나 남항대교, 광안대교[11]가 있으니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기는 하나, 지금도 가끔식 취객이 자살 소동을 부리기도 한다. 실제로 추락사고도 가끔씩 있다.
90년대 후반 철없던(?) 시절에 철거후 2층 현수교 재가설 드립도 있었다. 1층은 도로고 2층은 카페를 포함한 도보전용이라나... 얼마못가 철거가 백지화되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시 영도대교에 비교되어 많은 영도대교 이용자들은 역시 일제(日製)[12]가 최고냐?며 씁쓸해 했었다. 뭐.. 영도대교 안전도 막장이었지만.. 그래도 얘는 60년은 버텼잖아
애초부터 중앙동 롯데타운의 교통혼잡 유발로 인해 확장된거고 관광효과도 노리는 터라 롯데백화점에서도 나름 기대를 하는 것인지 재개통 기념(?)으로 순금 영도대교 모형을 경품으로 걸었다(...)
영도대교 도개로 인해 관광객들과 중구지역 상인들만 좋아하고 영도주민들은 싫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말이 15분이지 영도 주민들은 엄청 긴 시간이며[13], 영도대교 도개로 인해 길이 가로막힐 때에는 부산대교 정체가 심해진다. 차를 가진 사람들은 목적지에 따라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로 우회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대중교통 이용 시민들. 영도구 기점 대부분의 노선들이 영도대교를 경유하고 있고 부산대교를 경유하는 노선은 드물다. 이런 불편을 그나마 해소하기 위해 영도발 철도역, 버스터미널행 버스들을 부산대교로 우회시켰는데, 도개시간이 조정되는데다 다른 길로 다닌다는 영선동, 대교동 주민들의 항의로 원래 노선대로 환원되는 바람에 동삼동, 청학동 주민들도 꼼짝없이 갇히게 되어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다. 원래 부산대교로 다니는 노선을 타도 정체로 인한 소요시간 증가로 짜증이 나는건 덤.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로 가는 버스는 2015년 11월에 개통한 부산 버스 1011이 유일한데, 영도에서 대연동, 해운대 혹은 사하구 지역 등으로 가는 장거리 이용객들에게는 유용하겠지만 남포동, 부산역행 등 단거리 이용주민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게다가 이 노선은 좌석버스라 다른 버스에 비해 요금을 더 내야한다. 이마저도 입석금지 상태라면? 답이 없다.
남포역 도착 안내방송으로 약간 영도대교를 홍보한다. 남포역 6번, 8번출구로 나가서 직진하면 바로 영도대교이기 때문에 홍보가 더욱더 필요할듯 하다. 홍보안해도 어차피 사람많이 타고 내리는 역
- ↑ 윗쪽 교량이 임시교량, 아래쪽이 영도대교.
- ↑ 끝의 색이 다른 부분이 도개부분이다.
- ↑ 이 곡의 유래는 흥남 철수와 관련이 있다. 자세한 것은 관련 문서 참조.
- ↑ 당시 부산부 인구의 약1/4이었다.
- ↑ 지금은 부산 16개 자치구/군 중 유일하게 영도구만 도시철도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안습.
- ↑ 어느 정도 남겨두기엔 너무 낡은 탓도 있다.
- ↑ 영도대교 공사비만 부담이다. 계약을 대교에만 국한하여 정하는 바람에 영도대교 기념관과 본디 달려있던 송수관 이설비는 부산시가 부담하게 되었고, 전력선은 한전과 롯데간에 법정공방중에 있다.
- ↑ 그전엔 사람 2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다른 사람이 지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3~4사람은 지나갈수 있다.
- ↑ 부산 지하철 1호선 남포역 역사 내 어느 구역에서 '영도대교는 엄마아빠가 나를 주워온 곳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는(...) 것을 본 위키러가 있다 카더라.
- ↑ 자살방지 장치가 실제로 있다
- ↑ 여기는 이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중
- ↑ Made in Japan. 일본 제품이지, 일본 제국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 ↑ 그 15분은 차로 갈 경우 영도대교 기준 남해고속도로제2지선 감전IC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당연히 막하지 않을 경우에만.. 막히면 15분은 커녕 30분도 더 넘게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