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농촌 드라마
田園ㅂ記
1.1 개관
농촌 드라마의 전설
MBC에서 방송된 전설의 국민 농촌 드라마로 작가 김정수, 김인강, 최범석, 작가 조한순 등의 집필을 통해 1980년 10월 21일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22년 2개월 동안 1088회에 걸쳐 방영되었다. 저 기간이 감이 잘 안 오는가? 초기에는 화면은 흑백에 오프닝에선 젊은 최불암이 지게를 지고 다녔다. 초기에는 최불암이 마지막에 나레이션을 하기도 했지만 차차 없어졌다. 사실 농어촌의 훈훈한 정서를 소개하는 다큐성 드라마가 시작이었기 때문에 최불암의 나레이션이 필수적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농촌 현실에 대한 고발을 주로 했던 탓에 없어지게 된 것.[1] 첫방부터 방영시간을 줄곧 화요일 오후 시간대(80.10.21~12.9 9:50, 80.12.16 ~81.10.9 10:10, 81.12.16 ~ 83.3.22 7:40, 83.3.29 ~ 10.25 8:00, 83.11.1 ~84.4.3 7:55, 84.4.10 ~ 87.5.5 8:05, 87.5.12 ~ 8.11 9:50, 87.8.18 ~96.2.27 8:05)를 고수하다가 96년 3월 6일부터 수요일 저녁 7시 30분으로 바뀌었고 그 해 10월 27일부터 종영할 때까지는 일요일 오전에 방송되었다. 96년부터는 5년 가량 타임워프를 해서 주요 아역들이 성인역으로 등장하여 훈훈한 로맨스를 벌이기도 했고 중간에 사라졌던 임현식, 김자옥 부부가 잠시 출연하기도 했다.
2002년 12월 29일 방송으로 끝을 맺었는데 방송사들의 흔한 핑계인 소재고갈 때문이라고 한다. 진실은 출연료 부담. 방송 출연료라는게 배우들 경력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는데 전원일기는 워낙 장수 프로그램이다보니 지나가던 할아버지 1도 짬밥이 장난 아닌지라 "여어, 김영감!" 한마디만 하고 들어가도 출연료가 높았다고 한다. 레귤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다보니...
하지만, 말년이 좋지 않게 끝난 더 큰 이유는 시간대 변경에서 생긴 시청률 부진으로 풀이되는데 1996년 10월 27일부터 일요일 오전 11시에 방송되다가 2002년 4월 7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신설에 따라 오전 8시 50분으로 옮겼으나 2000년 10월 시작한 SBS 오락 프로그램 도전 1000곡의 아성을 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이와 함께, 금동 역으로 나온 임호는 2002년 4월 7일부터 9월 29일까지 <전원일기>와 같은 시간에 방영된 KBS 2TV 일요아침드라마 <언제나 두근두근>[2]에 겹치기 출연하고 있었으며 결국 따끔한 눈초리를 받았다.
이렇게 되자 <언제나 두근두근>은 29회 만에 단명하는 수모를 당했고 <전원일기>도 얼마 후 없어졌다. 공교롭게도 1회 제목이 '박수 칠 때 떠나라' 였는데 마지막회는 '박수 칠 때 떠나려 해도' 라서 뭔가 오묘한 의미를 자아낸다.
농촌 드라마인 만큼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촬영장을 여러 번 바꿨는데 첫 촬영지는 경기도 양주군(현 양주시)였고 이어 양평군->청원군(현 청주시)->남양주시로 옮겨갔다. 22년간 이어간 대작답게 대본작가와 감독이 10여 명이 교체된 진기록도 있다. 가장 유명한 대본작가인 김정수는 MBC의 전 드라마 민들레 가족을 집필했다.
드라마 주제가가 매우 인상적인데 농촌의 풍경을 잘 표현한 느낌이다. 96년에 타임워프를 계기로 약간 편곡이 되었으나 원곡이 거의 변하지 않고 끝까지 쓰였다. 또 이 BGM은 KBS 2TV의 개그 콘서트에서 방영했던 코너 어르신의 BGM으로 쓰이기도 했다.
최불암의 대표작이기에 최불암 시리즈의 단골 소재로 이용되었다. 2009년 경에 불교TV에서 방송한 적이 있었고, 2015년부터 KTV에서 방영중이다.[3]
1.2 내용
농촌마을의 이장(?)인 김회장네 집과 복길네로 대표되는 그 이웃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는 내용이다.
1.2.1 출연진과 배역
1.2.1.1 김회장댁
- 김민재(최불암) : 마을의 큰 어른. 왜 회장으로 호칭되는지는 확실치 않다.[4] 대가족을 이끌며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큰 어른이다. 최불암은 이 배역을 위해 정주영 회장에게 지게 지는 법 등을 배웠다고 하며[5] 극중 이미지 덕분에 '국민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었다. 주인공이기에 초반에는 나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총선 관계로 잠시 빠졌는데[6][7] 허리를 다쳐서 일본으로 요양 간 것으로 처리되었다가 최불암 본인이 선거에서 낙선하게 된 후 드라마로 복귀하면서 재설정되었다.
- 할머니(정애란) : 김회장의 어머니. 작중의 이름은 추가바람. 정애란은 1950년대부터 활동하신 원로 배우이다. 탤런트 한진희의 실제 장모였다. 실제 배우가 암에 걸려서 꽤 힘든 시간을 보냈고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하차를 위해서 치매에 걸려서 집에서 난리치는 에피소드를 한 달 정도 방영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온 딸(김회장 누이)가 치매 전문 요양원에 모시고 가는 걸로 하차하려고 했는데[10] 암 수술이 잘 되는 바람에 서울에서 치매가 완치되는 걸로 해서 복귀했다(...) 또 나중에 타임 워프 시점에서 하차할 예정이었으나 시청자들의 성원으로 계속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말기에는 건강이 안 좋으셔서 그야말로 병풍 수준의 비중으로 전락하셨다. 2005년에 타계.
- 용진(김용건) : 김회장의 큰아들. 군청에 다니는 공무원이다.
- 용진처(고두심) : 동서들과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다만 가끔씩 욱하는 성격이 보이기도 한다. 역시 대학 출신이라는 설정.
- 영남(아역, 96년 이후 남성진) : 용진의 아들. 나중에 순경으로 재직하게 되며 복길이와 러브라인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실제로도 남성진과 김지영은 부부인데 이때의 역할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용식처(박순천) : 약간 촐싹대며 사고를 많이 치는 인물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두심과 잘 지내게 되었다.[13] 배우의 출산 관계로 친정 아버지 병문안 가는 걸로 잠깐 하차했다.
- 금동(양진영[15], 97년 이후 임호) : 김회장의 양자. 원래 떠돌이 고아였다가 김회장의 배려로 양자가 되었다. 다시 가출을 했다가 97년 방영분부터 다시 등장해 정착하고 결혼도 하였다. 최불암 시리즈의 단골 등장인물 중 한 명.
- 금동처 이남영(조하나)
1.2.1.2 복길네
- 일용엄니(김수미) : 본명은 김소담[17]. 동네 오지랖 넓은 할머니. 수다쟁이에 귀가 얇고 삐지기도 잘하는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이다. 김회장부인 및 어머니와 매우 친하여 매회마다 놀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김수미는 처음 이 역할을 할 때 20대 후반이었으며 아들 역의 박은수보다 1살 연하인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목소리가 독특하여 개그맨들의 단골 성대모사 소재로 쓰인다.
암벽등반을 매우 잘하신다지금이라면 이런 역할은 배우 겸 성우인 1937년생 김영옥씨가 맡겠지만[18]
- 일용(박은수) : 동네청년. 원래는 원양어선을 타면서 금방 하차할 배역이었으나 그냥 눌러앉아 끝까지 갔다. 약간 개그스러운 이름으로 인해 개그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며 최불암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약간 욱하는 성질이 있어 화내거나 하는 장면이 많다. 금동이랑 가출하는 에피소드에서 고백하듯이 자신을 엄하게 야단치는 아버지가 한 사람 있는 게 소원인 인물[19].
- 일용처(김혜정) : 일용의 부인.
- 복길(96년 이전 아역 노영숙, 96년 이후 김지영) : 일용의 딸. 부동산 경리로 일하며 나중에 영남과 결혼한다. 김지영이 다른 역으로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애칭이 복길이일 정도로 이 역의 인상이 깊었다.
그 이미지는 결혼해주세요에서도 그대로 나왔다.
1.2.1.3 병태네
- 상태(임현식) : 귀농인. 도시에서 공장을 하다가 망하여 양촌리에 들어왔다. 99년에 다시 도시로 가면서 하차했다.
- 상태처(김자옥) : 상태의 부인
- 병태(최종환) : 상태의 동생. 상태가 다시 이사 간 후에도 양촌리에 남았다.
- 병태처(조현숙)
- 상태 딸(아역) : 순길이 좋아했다. 그래서 이사 가자 크게 아쉬워했다(...)
1.2.1.4 마을 사람들
- 부녀회장(이수나)
- 쌍봉댁(이숙) : 가게집 주인. 나중에 응삼과 결혼하여 그의 부인이 되었다.
- 응삼(박윤배) : 일용엄마가 웃마을 한의원에 갔다가 그집의 노처녀 딸과 중매를 서서 결혼했으나 1년쯤 나오고 안나오다가 하차하면서 이혼으로 처리되었다. .
- 창수(이창환) : 개똥아빠
- 명석(신명철)
- 귀동(이계인) : 초창기에 천하의 개쌍놈으로 용식에게 처맞고 개과천선하는 역으로 잠깐 나왔다. 나중에 서울로 갔다고 했는데 일용이와 용식의 서울 방문 에피소드에서 아들인 노마 데리고 알콜중독으로 사는 걸 일용이가 시골로 데리고 온 걸로 복귀했다. 이후 잠깐 리타이어했으나 도시로 간 뒤 사기에 휘말려 패가망신한 걸로 귀농했다.
- 노인들(홍민우, 정대홍[22], 정태섭[23]) : 양촌리에 사는 노인들. 이름이 없고 성씨만 있는데 '김노인', '박노인', '이노인' 이라고 한다. 참고로 김회장보다 나이가 연상으로 알려졌다.
- 아줌마들(김정, 김명희)
- 이장(신충식) : 부녀회장의 남편.
- 응삼엄마(유명숙, 김영옥)
1.2.1.5 기타 인물들
- 복길이 외할아버지(박인환) : 복길이의 외할아버지이자 일용의 장인어른, 일용처의 친정아버지. 복길이네 외가댁 편에서 단역으로 등장.
1.2.2 특이사항
- 남성진, 김지영 부부는 이 드라마를 계기로 결혼했다. 극중 연애관계가 실제로도 결실을 맺은 특이한 경우.
- 80년대 양파 파동이나 돼지 파동 때 2부작으로 농촌의 비참함을 보여주어서 화제가 되었다. 어른의 사정으로 깊은 이야기는 못 보여주었고 소드마스터 야마토식과 억지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했지만 당시 드라마에서 그런 소재를 다룬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26]
- 어느 에피소드에서 성우 박소현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본 시청자들에게 박소현의 마스크는 충격과 공포을 안겨주었다.
- 이노인 역을 맡았던 배우 정태섭은 드라마 종영 1년을 앞두고 2001년 직장암 병세 악화로 인해 결국 작고(作故)하게 되었다. 극중에서도 이노인은 와병(臥病)을 앓다가 사망한 것으로 처리하여 이후에는 김노인과 박노인만 출연하게 되었다.
- 매년 여름 휴가시즌의 방송분에는 서울에서 양촌리로 휴가 와서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
망나니들도시인들과의 갈등이 빠지지 않고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 공교롭게도 같은 방송사에서 1996년부터 방영하였던 사극인 미망에서는 김회장 역의 최불암과 일용엄니 역의 김수미가 부부로 출연하였다. 그 때문에 '김회장이 본처를 버리고 아예 일용엄니와 외도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냐' 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
- 1996년 8월에 방영되었던 MBC 제작 TV 드라마 독도수비대라는 작품에서는 김회장 역의 최불암과 김노인, 박노인 역의 정대홍, 홍민우가 한 작품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역이 각각 대통령 이승만 역과 독도를 무단으로 침범하여 독도수비대와 충돌하다가 붙잡혔던 일본인 깡패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접점이 없었다.
- 갑작스럽게 결정된 종영 때문인지 결말이...
- 여름에는 납량 특집으로 공포물을 방영하기도 했다. 공포의 강도를 따지면 당시 유행한 전설의 고향 버금갈 정도로 섬뜩하고 등골 서늘한 에피소도도 꽤있다.
- 일용이 역의 박은수는 전원일기 이후 단역이나 조연으로 가끔씩 활동했는데 2010년 사기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았다는 기사가 나와서 전원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 일용이 역의 박은수는 1947년 10월 10일 생이며 일용이의 어머니 역의 김수미는 1949년 9월 3일 생이다. 아들역을 맡은 배우가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보다 2살이나 많다. 전원일기를 처음 방송했을 때 김수미는 31살의 꽃다운 나이에 노인으로 분장해서 출연했다.
- 80년대 초 비디오의 성지와 같았던 세운상가에선 불법 복제, 수입으로 들어온 빨간 테이프를 청소년들이 불법 상인들로부터 암거래 후 방에 와서 몰래 틀어보니 뜬금없는 다른 영상과 BGM이 나와서 사기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뜬금없는 다른 영상의 대명사가 이 전원일기라는 소비자 고발담(?)이 있었다. 영화 품행제로에도 류승범과 봉태규가 어렵사리 구한 빨간 비디오를 돌려 보다가 전원일기가 나와 허탕치는 내용이 고스란히 나온다. 실제로 있었던 유명 에피소드였는지 이는 전원일기 종영 후에도 시트콤이나 개그코너 등에서 클리셰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 1:00부터.
-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열렬한 애청자였다고 한다.
- 무한도전 특별기획전 2에서 이 드라마를 토토드에서 재현할 예정이였으나 전원일기 출연진들이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한다는 이유로 고사를 하여 농촌을 배경으로 한 콩트로 대체될 예정이다.
2 마이너 갤러리
2016년 1월 14일부로 전원일기 마이너 갤러리가 생성되었다. 매니저도 왜 생성되었는지 이해가 안되겠단 반응. 자세한건 청주 마이너 갤러리의 전례를 보아 생략.
3 티아라 N4의 곡
K-POP과 한국 전통음악을 조합하고[27] 후렴구의 중독성으로 호평받고 있지만 문제는 '듣기 싫은 잔소리 이제 그만 해줄래요', '너나 잘하세요' 등의 가사 때문에 여러 논란이 일어났다.- ↑ 마지막회에서 재현했다.
- ↑ 2001년 11월 11일부터 채널을 옮기는 한편 시간대도 9시 30분으로 바뀐 학교 4 후속
- ↑ 2015년 기준으로 전체 방영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방송판 소스를 MBC가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초반부 상당수는 영원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관할 곳이 없다고 폐기했거나 녹음된 테이프를 재활용했기 때문.
- ↑ 노인회장이라는 설도 있고 마을 계를 이끌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도 있다.
- ↑ 공교롭게도 최불암은 훗날 동사의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정주영 회장을 모티브로 한 '천태산' 회장 역으로 출연한다!
- ↑ 당시 옛 신한국당 영등포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예명이 아닌 본명인 최영한으로 출마했으나 그 당시 민주당 김민석 후보에 밀려서 낙선했다. 참고로 배우 이덕화도 1996년 총선 때 신한국당 광명 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여 배우로 복귀했던 사례가 있다.
- ↑ 선거법상에서 연기 배우라도 본인이 선거 출마를 하였을 경우에는 무조건 배우직에서 물러나거나 출연작에서 하차해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는 선거중립상 및 정치적 활동 등을 배제하는 선거법 규정이다. 다만 92년에 전국구 의원이 되었을 때에는 하차하지 않았고,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는데, 이 당시 연예 활동과 의정 활동을 겸하던 의원들이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자 규제가 생긴 것.
- ↑ 2015년 12월 19일 무한도전에서 극 중 이름이 이은심이라는것이 밝혀졌다.
- ↑ 최불암의 실제 부인은 탤런트 김민자다. 최불암과 김혜자의 극중 인연은 의외로 오래되어 MBC 초기 드라마인 개구리 남편에서부터 부부로 출연했다.
- ↑ 사실 수술 자체가 너무 위험해서 하차 후 돌아가시면 서울에서 별세한 걸로 처리하려고 했다.
- ↑ 그래서 대학 졸업자인 형에게 개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 ↑ 촬영하다가 동네 어떤 치매 노인에게 걸려서 실제 유인촌이 얻어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성질이 뻗쳐서 그냥!지금과 비교하면 씁쓸한 에피소드. - ↑ 가끔 냇가에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 ↑ 그 해설가, CJ 엔투스 감독을 역임했던 강현종이 맞다
- ↑ 94년 군복무하던 그에게 선임병이 '금동이로 많이 떴냐' 고 묻자 '금동이 때문에 내 인생이 더 묻혀졌습니다' 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아역 때 그 이미지가 너무 컸던 데다가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 ↑ 전인택의 비중은 주로 농어촌 부채 문제가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인해 파탄에 이른 영농후계자로 쓰였다. 주로 절망하는 역 전문.
- ↑ 전원일기 증인 편에서 잠시 공개된 적이 있다.
- ↑ 김수미가 이 일용엄니 역할을 맡으며 성대가 엄청 상했다. 원래는 지금처럼 걸걸한 아니라고 한다.
- ↑ 결국 금동이랑 가출한 것 때문에 김회장에게 호되게 야단 맞아서 그 소원을 이뤘다. 김회장을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타입. 어머니와는 츤데레 관계.
- ↑ 80년대에도 일용의 아들이 한 번 출생한 적이 있는데 이런저런 문제로 아시발꿈(...)으로 처리했다(...)
- ↑ 역시 전인택과 같이 농어촌 부채 문제를 고발하는 캐릭터이다. 설정상 축산업하다가 파산해서 빚에 쪼들리며 사는 사람들.
- ↑ 인천 화평동 냉면골목에서 냉면집을 운영중이다. 김노인 역할 때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고 가끔씩 실물로 만날 수도 있다.
- ↑ 2001년 드라마 종영을 앞두고 직장암 병세 악화로 사망하였다. 향년 51세.
- ↑ 2001년 1집 앨범을 발표. 천정명 주연의 뮤직비디오도 나왔다. 대표곡은 '해요'.
- ↑ 현재 한의사가 되었다.
- ↑ 90년대 후반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배추값 폭락에 분노한 일용이가 트랙터를 몰고 그대로 배추밭을 다 갈아엎어버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 ↑ 다만 이런 시도는 90년대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2012년에 인피니트의 추격자 등 먼저 선보인 곡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