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기계화보병사단

틀:군관련

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수도사단1사단2사단3사단5사단6사단
7사단8사단9사단11사단12사단15사단
17사단20사단21사단22사단23사단25사단
26사단27사단28사단30사단31사단32사단
35사단36사단37사단39사단50사단51사단
52사단53사단55사단56사단60사단61사단
65사단66사단72사단73사단75사단
기계화보병사단 보병사단 ■ 향토보병사단 ■ 동원보병사단
대한민국 육군 기계화보병사단
45px40px36px50px50px
수도사단8사단11사단20사단26사단30사단

1 개요

한국군 제8기계화보병사단. 일명 오뚝이 부대. 이름대로 상징은 오뚝이.

1949년 6월 20일 창설된 한국군의 초기 사단 중 하나. 창설 뒤 2009년까지 보병사단 이었으며 2010년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었다. 대한민국 육군에서 6번째로 기보사단으로 전환된 부대이자. 메이커 사단중에서는 두번째로 기보사단으로 바뀌었다[1]. 전방 예비사단으로 강력한 타격력을 자랑하는 9개의 메이커 사단 중 하나이다.

2 역사

1949년 6월 20일 창설된 한국군의 초기 사단 중 하나로 제10연대를 기반으로, 뒤이어 7월 5일 제21연대를 편입했다.

한국전쟁 발발 전까진 38선 경계임무를 맡으며 태백산 공비토벌작전 등에 투입되었다. 이후 전쟁 발발 초기 강릉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당시의 여타 사단들이 그렇듯이 역시 신통한 전공은 올리지 못하고 안동에서 16연대를 새로 배속받고, 영천까지 후퇴한다.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국방부 발간 6.25전쟁사에 의하면 8사단은 제6사단과 비견할만한 업적을 내었다. 전쟁 초기 대부분의 국군이 민간인 소개작전에 실패 하였지만 8사단은 이에 성공하였고, 특히 전쟁초기 국방부와 연락이 두절되고, 전 사단이 공비토벌을 위해 분산되어 있음에도 전쟁 개시 직후에 빠르게 부대를 통합하여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심지어 강릉시를 재탈환 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아군의 피해는 그야말로 미비했다. 또한 8사단은 전쟁 초기 대대적인 후퇴 시에 차량화를 통해 대부분의 중화기를 보존했는데, 개전당시에 보유하던 중화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2]

이후 한국군의 지연 작전에서 6사단과 함께 중핵의 역할을 담당했다. 동부전선의 북한군 목표는 동해안을 따라 남진하여 부산을 점령하는 것 이었는데, 김일성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8월 중순에[3] 부산을 접수하기로 되어있었다. 그 말인즉슨, 미군이 개입 하기도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8사단은 전쟁 초기에 동해안으로 진출한 북한군을 영천지구 전투에서 격퇴하여 그들의 진군속도를 늦추는데 기여하였고, 이후 7월부터 9월초 까지 약 60일 동안 동해안을 홀로 방어하였다. 이 시기에 138회의 대·소전투에 참가하여 적 27,500여명을 사살하고 적 7,943명을 생포하였는데 (8사단에서는 영천대첩으로 칭한다) 가히 8사단 최고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낙동강 전선자체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도 어찌보면 8사단이 효과적으로 인민군 제1경비여단, 제766부대, 제945육전대에 큰 피해를 입히고 이후 지속적으로 북한군의 침공을 저지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부산이 연합군의 상륙기지가 될 것이라 판단하여 이 지역을 빠르게 석권하기 위해 아에 2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이곳으로 배치시켰다.

그러니 이러한 다수의 적의 공격을 방어한 8사단의 전쟁 초기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8사단은 병력을 보전하여 후일의 전투에 대비했고, 또한 북한군을 적절이 저지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평가에 의하면 전쟁 초기 사단 중 "건실하게 운영된 사단"이다.[4]

전세가 역전된 뒤인 10월 8일 38선을 돌파 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 이후 중공군의 공세를 방어하다, 1951년 2월 횡성 전투에서 궤멸 수준의 패배를 당한 뒤 재편성을 위해 후방으로 돌려졌고, 잠시 빨치산 토벌도 맡았다. 7월에 다시 전방으로 이동해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를 벌였다. 이후 잠시 지리산에서 빨치산 토벌을 맡았다가 휴전 때까지 동부전선 금화지구에서 전투를 벌였다.

전후 제5군단 예하 부대로 편입되어 경기도 지역인 비교적 후방[5]에 주둔하고 있다. 대부분의 메이커 사단이 철책을 담당하는 것에 비교하면 조금은 이례적인 사례. [6]하지만 부대 배치를 보면 전차가 돌격해오기 쉬운 철원평야의 서울방향 출구에 이중으로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출구지점에서 6차선 43번 국도로 의정부, 서울까지 바로 연결된다. 이중으로 방어할 이유가 충분하다.

2010년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전환되었다.[7][8] 2010년 제16보병연대가 기계화보병여단으로 개편되는걸 기점으로 해서 2011년 12월 1일, 제8보병사단은 기계화 보병 사단으로 전환을 끝마쳤다. 대한민국 육군 6번째 기계화보병사단이다. 그로 인해 예하부대는 각각 기보여단급으로 승격되었다[9].

2015년 신설된 한미연합사단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사단장은 미 제2보병사단장이 겸직하고 부사단장은 제3야전군사령부의 한미연합사단협조단장 (육군 준장)이 겸직한다. 제8사단에서는 제16기보여단이 차출되어 운용될 예정.

장차 작전 개념에 의해서 기계화 사단들은 신속기동 여단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메이커 사단중의 하나인 8기보사가..
그떄에도 오뚜기 마크를 유지할지는 의문이다.

3 부대 마크의 해설

8의 형상을 오뚝이로 형상화한 것이다. 부대마크는 노란색의 오뚝이 모양을 붉은색 테두리로 감싸고 있다.


과거에 세워진 전공비들을 보면 빨간 테두리가 쳐져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중에 빨간 테두리가 추가 된것 같다. [10]
0128.jpg

이는 부대의 정신인 백절불굴 부전상립(百折不屈 不顚常立)를 상징한다. 과거에는 칠전팔기(七顚八起)였으나 한번이라도 넘어지면 안된다는 의미로 부전상립으로 변경.

절대로 3분요리로 유명한 오뚜기와는 관계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오뚜기 초대 회장이 8사단 출신이라 오뚜기 마크를 차용했다는 카더라...
ed2012012700173_0.jpg

행군과 포복을 하도 많이 해서 팔다리가 닳아없어지고 붉은색 테두리는 그로 인해 생긴 피멍이며, 노란색은 곪을 대로 곪아서 생긴 고름이라는 농담이 있다.
다른 의미로는 내부의 노란색 오뚜기는 발 모양의 형상화를, 붉은 테두리는 행군으로 인한 핏물이라고...
또 다른 의미로 위키러가 대기병으로 있을 때 당직사관에게 들은 얘기로 다리는 행군을, 팔은 삽질을 많이 해서 닳아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오뚜기라서 쓰러지지도 못한다고 한다...

군 부대 마크중 가장 귀엽다는 평가이다.

4 8사단가

1절/ 설악산 기슭에서 자라난 우리 / 열풍을 식혀버린 영천대회전
눈보라 몰아치는 만포선에서 / 피흘린 자욱마다 영광의 승리

2절/ 태양이 떠오른다 아침이 온다 / 진격의 북소리를 높이 울리고
우리들의 정열을 한데 뭉쳐서 / 전우의 핏자욱이 마르기 전에

3절/ 불멸의 돌격정신 오늘에 이어 / 조국의 생명선을 지키는 우리
빛나는 전통 속에 하나로 뭉쳐 / 호국의 선봉으로 우뚝 솟았네

4절/ 다시금 찾아가리 통한의 희천 / 압록강 줄기따리 백두산까지
백절불굴 정신으로 힘을 키워서 / 통일의 새역사를 창조하리라

후렴 - 나가자 싸우자 승리를 위해 / 우리들은 불사신 8사단 용사

5 예하부대

  • 육군 연대급 이하 부대는 고유명칭(예 ; 육군 제 1보병연대)을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통상명칭(예 : 육군 제3260부대)이나 애칭(예 : 한라산 부대)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 주둔지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 또한 작성할 수 없습니다. 내용 작성에 주의해 주세요.

예하부대로 횃불여단, 번개여단, 독수리여단, 포병여단 그리고 여러 직할대대들이 있다.

- 횃불여단 : 예하에 6925부대, 8581부대, 6983부대가 있다. 전군 최초로 K1E1이 배치된 여단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훈련이 많은 오뚝기 부대에서도 은근히 훈련을 많이 뛰는 여단인데, 13년 여름 군번의 경우 호국훈련을 두 번이나 뛰었다! 그리고 여단이 자리잡은 곳이 포천시 일동 터미널에서 상당히 가깝고 바로 근처에 3070부대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부대시설이나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다. 특히 근처에 지방 맛집이 많은 걸로 유명한데, 6925부대 인근의, 속칭 '매운 갈비찜'이나 6983부대 근처의 짬뽕집, 일동 터미널 주변의 다양한 맛집을 모두 다녀올 수 있다.손님들 중에 대대장, 여단장들이 돌아 다닌다는 사실 또한 5군단에서 운영하는 승진 시네마를 자주, 굉장히 자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15년 기준 6925부대에서는 매주 승진시네마 신청을 받았을 정도.

6925부대는 전 여단 중에서 가장 일동 터미널에 가까이 있으며, 15년 기준으로 최신식 시설을 갖춘 부대다. 15년 말과 16년 초에 횃불여단 본부가 신 막사를 지어 이사하면서 최신식 타이틀은 내줬지만, 여전히 여건이 나쁜 부대와 비교했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시설을 자랑한다. 대표적으로 모든 생활관마다 하나씩 달려 있는 냉난방 겸용 시스템 에어컨이라든가, 100% 비데가 장착된 변기라든가… 또한 부대 울타리 안에 잣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어쩌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곳에서 부대원이 삼겹살로 회식을 하기도 한다. 부대 내 전술도로에 약간 경사가 있는 점을 제외하면 전부 평지나 다름없고 연병장에 배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관계로(…) 종종 여단 체육대회를 이 부대에서 개최한다. 이 부대의 단점은 할 일이 많다는 것. 부대에서 해야 할 일도 적지 않은데 워낙에 좋은 목에 자리를 잡고 있어선지 외부에 지원을 나갈 일이 상당히 많다. '15년의 경우엔 연초부터 승진 과학화 훈련장 평가 지원, 유해발굴 지원 등으로 3/4분기가 될 때까지 부대에 전 중대가 집합했던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6983부대는 15년 중반까지 여단에서 가장 끔찍한 병영을 자랑했다. 부대가 산비탈에 있었던 탓에 어딜 가든 산을 타는 느낌이었고[11] 포장된 곳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비만 왔다 하면 진흙탕이 되었다. 부대 내부에 공용화기 사격장[12]이 있어서 각 대대 박격포반, 기갑차량이 자주 집체교육을 오곤 했는데, 다른 대대 사람들은 이 부대의 놀라운 시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대 진입로부터 끔찍했었다. 현재는 막사를 옮겨서 옛 막사의 악명은 그저 전설로만 전해지게 됐다.

8581부대는 8581부대(舊 직할전차대대)는 2012년 말부터 전 병력이 신축건물과 리모델링 건물을 신막사로 이용중이다. 14년에는 본부중대 뒤의 PX컨테이너를 들어내고 본부중대 사열대로 이용중이다. 위병소 근무를 서다보면 뱀이 나오니 초봄과 늦가을엔 졸지말고 조심하자. 또한 위병소 근처의 기동로는 장마철, 해빙기만 되면 지옥의 뻘밭이 된다. 이는 탄약고와 정비고 앞도 마찬가지. 14년 기준으로 보급이 빵빵하게 나왔다. 중대에 썩어나던 K-2의 개머리판, 공이, 수입도구등을 행보관이 갖다버릴정도. 군대썰에서 흔히 듣는 강중유, 윤활유가 없어서 총기 수입을 못 했다는 이야기는 이 부대와는 거리가 멀다. 사단 직할 전차대대이던 시절에 가지고 있던 중대별 지휘장갑차를 독수리여단 예하 부대로 넘기고 나중에 수기사에서 받아온 차로 바뀌어서 장갑차 상태가 좋지는 못하다.


- 번개여단 : 5096부대와 여단본부가 같은 주둔지를 사용한다. 둘다 신막사. 8162부대가 14년에 70년대부터 사용하던 구막사를 벗어나 신막사로 이동하였다. 8사단이 기보사로 개편되면서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전차대대가 번개여단 예하 부대로 편입 되었다.
5335부대가 바로 수방사 예하부대였던 전차대대로, 2011년 12월 1일 8사단이 기보사단으로 공식 개편되면서 편입됐다. 아직 막사가 완성되지 않은채로 편입된지라 수방사에서 건너온 병사들은 경기도 북부의 추위와 구막사의 향기(?)에 고생하기도. 또, 대대본부 화력지원 4.2인치 박격포소대는 구 10연대에서 넘어온 소대로서 순혈(?) 8사단 출신으로 갑자기 바뀐 부대분위기에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 독수리여단 : 사단본부와 꽤 멀리 떨어져있으며 일부 부대는 철원에 있다. 가수 세븐이 복무 했었던 2105대대의 경우 2015년 현재 컨테이너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13] 여단본부 및 나머지 부대는 모두 신막사를 사용하고 있다. 예하의 7888부대의 경우 사단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부대 중 하나로 손 꼽히며 바로 옆에 전차포 사격장을 끼고 있다. 외박, 외출, 휴가 나갈때 가장 편한 부대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진짜 사나이(MBC) 정찰대 편에서 나온 병영 부조리 퇴치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이 부대에서 만들었다.

-포병여단 : 사단 본부와 떨어진 철원에 주둔하며 13년에 여단 본부 마저도 6925부대 근처에서 예하 대대들 근처로 이동했다. 여단본부를 제외하고 전대대가 구막사 에서 생활한다. 전군 최초창설 6개 포병대대 최초 포병대대지만 현재는 간부든 병사든 긁히면 가는 쓰레기통이 되었다. 진짜임 중 한곳이 예하 부대로 있다. 간혹 철원에 있는 포병진지에서 기동훈련을 할적에 근처에서 훈련중인 백골부대 포병연대 예하 부대원들에게 부러음의 대상이 된다.

- 사단 예하 직할대

정찰대, 기갑수색대 : 거의 붙어 지내고 있는데 2014년 기준으로 사이가 안 좋다. 전방도 후방도 아니여서 고통받는 8사단이지만 그나마 최근에 보급되는 전술 장비들은 먼저 쓸 수 있다. 부대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병들 몸이 좋다.
사이가 안 좋은 이유로 8사단은 정찰대, 기갑수색대, 신병교육대가 붙어 있다. 정찰대와 기갑수색대는 거의 붙어 있었는데 정찰대는 구막사에 기갑수색대는 신막사 였었고, 정찰대는 기갑수색대대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해서 기갑수색대대에서는 '밥만 먹으러 오는 박쥐새퀴들'이라고 부르고 정찰대에서는 '하늘도 못 날아본 땅깨들'이라고 욕하고 다녔다.
하지만 정찰대가 구막사에서 새로 지은 신막사로 옮겨지고 진짜 사나이 통해서 방송에도 나오고 해피엔딩?
의무대, 헌병대, 본부대: 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곳에 붙어 있으며 3곳다 같은 식당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맛도 별로다.
정보통신대대: 운용/무선/본부로 나뉘어져있으며, 언제나 신속하게 전 부대의 통신기기를 고치기 위해서 뒷편에 각종 차량들과 정비소가 있으며, 뒷산에는 사단장 공관이 있어서 통신대대 경계병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 시설 자체는 13년도에 지어진 덕에 괜찮은 편이고, 휴가 나갈 때 5분만 걸어 나가도 버스정거장에 갈 수 있다.
공병대대 :
정비대대 : 일반지원중대와 직접지원1중대는 횃불여단에서 아주가까운 곳에 있다. 걸어서 30분이면 갈수있을정도. 신막사와 좋은 정비고를 보유하고있다.
보급수송대대 : 보급중대, 수송중대 양대 중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막사이기 때문에 상당히 시설이 쾌적한 편이다. 14년~16년 초 기준으로 밥은 타 부대에 비해서 맛있는 편이다 (Ex. 본부대, 기갑수색) 핵심 여가시설(PX, 사이버지식정보방, 목욕탕, 당구장, 탁구장 등)들이 한개 건물 안에 전부 들어가있어, 병사 입장에서는 동선이 적은 상당한 이점을 지닌다. 출타 시 콜택시 (일동 터미널까지 만원) 혹은, 배차간격 40분인 위병소 나가면 있는 편의점 앞 정류장 버스를 이용한다.
방공대대 :
추가바람.

6 훈련 성과

13회에 걸친 팀 스피리트 훈련과 4회의 호국훈련, 5회의 군단급 FTX 등 대규모 훈련에 주력부대로 참가 하였으며, 이러한 전공과 수훈을 인정받아 대통령 부대표창을 10번 수상하였다. 거기에 육군의 부대훈련 시범부대인 관계로 뭔가 새로운 훈련이나 새로운 운용체계가 있다면 이곳에서 시험 해본다.

이는 애매모호한 8사단의 위치도 한 몫 한다. 훈련 강도가 높다는 소위 메이커 사단 이지만 북한군과 맞닿아있는 사단이 아니어서 전방사단의 환경에서 예비사단이 대신 뭔가 시험해볼 수 있기 때문. 이는 8사단이 속해 있는 제5군단이 전술장비 시험군단이고 전방의 제6사단, 제3사단과 달리 8사단은 후방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급부대의 대우가 전방사단만큼 좋은 것도 아닌지라 간부들의 푸념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대규모 훈련이 많아 고위 영관급 장교의 경우 진급이 용이하다는 말이 있다.[14] 장성코스중 하나라는 별칭이 있다.

7 신병교육대

보통은 306보충대에서 훈련소를 8사단 훈련소로 배정받아 이쪽으로 가게 되는 케이스가 가장 많다. 306에서 자신의 번호와 8사단, 8사단이라는 말을 두번 듣는다면 묵념. 운이 억세게 없는 경우에는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일정 특기[15]를 받고 8사단에 배속되는 경우도 있다. 기계화학교에서 동기들이 저놈 오뚜기라고 놀릴것이다. 무시해라. 수기사와 20사가 더 지옥이다.

원래는 횃불연대 제1대대를 신병교육대로 활용 하였으나, 이후 직할대로 전환되었다.

샤워실 등의 편의시설은 일단 다 제대로 갖춰져 있다. 다만 겨울에 물이 나오지 않아 샤워를 제대로 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어서 포천 소방서에서 물을 공급받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훈련시설들이 훈련소 내부에 전부 갖춰져 있다는 건 장점 아닌 장점. 덕분에 비가 많이 오거나 해서 훈련시설이 무너지거나 하면 복구작업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

1중대 신병생활관은 소대별 침상생활관, 2,3중대 신병생활관은 분대별 침상생활관 으로 구성되어있다. 4중대(분교중대)는 아는사람이 추가바람.
4중대의 경우 2010년부로 개편되어 분대장 교육대막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과거 신병교육대 2중대 막사로 사용되던 가건물(슬레이트 건축물)을 활용하고있으며 분대별 생활관으로 운용되고있다.

분대장 교육을 받기위해 신교대를 다시 오게되면 분교대의 컨테이너 막사에 치를 떨게 될것이다
논산 출신들은 분교대에서 하루, 이틀정도를 자고 자대로 가는데 이때 분교대를 다시오면 감회가 새롭다.

신교대 밥은 대부분의 신교대와 마찬가지로 맛이 없으며 당연히 자대 밥보다 맛이 없다.

연병장은 제1중대 본부건물 근처, 1중대 아침점호하는곳, 제2,3,4,본부중대가 아침점호하는곳, 각개전투용 으로 쓰이는곳 으로 총 4곳이 있다. 이를 예전에는 A,B,C,D 로 구분 하였는데 이 부분은 정확히 아는경우 추가바람.

8사단 신교대는 내부에 사격장이 있어 사격훈련시 위병소를 벗어날 필요가 없어 많이 걸을 필요가 없다.

참고로 2010년 1-2월만 해도 신병들은 크레모아 격발을 멀리서 참관할수 있었다. 이때는 높으신 분들이 많이 오시니 혹여 지금도 시행중일경우 신병들은 특히 주의.

PX 이용의 경우는 중대, 기수마다 차이가 있으나 일부 기수의 경우 생활관에 취식물 보관된 것이 적발되어 얼차려만 받고 PX이용 자체를 통제 당한적이 있었다.
부식으로 받은것은 빨리 먹고 식당,종교행사에서 주는것은 가급적 생활관으로 가져오지 말고 가져 왔더라도 바로 먹어서 없애야한다.

8 The Best Army 운동

내무부조리, 구타, 폭언, 사적 제재, 사고 등을 없애버리기 위해 5가지 키워드를 제시하여 2011년 8월부터 시작한 운동이다.

  • 단결 - 내무부조리, 구타, 폭언, 사적 제재를 저지를 경우 무조건 14박 15일 영창과 함께 타 부대 전출을 해버린다. 덕분에 내무부조리, 구타, 폭언이 거의 없어지다 시피 했다.
  • 안전 - 사고 예방을 위해 교육을 철저히 하여 안전에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 멋 - 군인다운 복장을 하면 상점이 주어지며, 이를 모으면 포상휴가가 주어진다. [16]
  • 효도 - 휴가를 가서 효도를 하면 다음 휴가때 효도 포상 휴가가 주어진다.[17] 인사과같이 봉급 내역을 잘 보지 않으면 모르는 사항이긴 하지만 매 진급시 만원씩 효도휴가비로 더 지급이 된다.
  • 꿈 - VDA(Vision Dream Academy)를 통해 개인의 목표를 정하도록 하여 매일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 해주며, 목표를 달성하면 포상 휴가가 주어진다.[18]

사단장의 교체로 인해 TBA운동은 14년경에는 유명 무실 해졌다. 하지만 육군 전체의 선진 병영화와 맞물려 대부분의 부대가 흔히 말하는 '푸른병영'이 되었다. 내무 부조리가 발생하면 여전히 중징계와 전출을 보내고있으며 '그린카드 제도'도 운영중이긴하다.[19]
14년에는 가벼운 신체접촉[20]으로 영창을 가는 병사들이 있을 정도로 폭력에 대해서는 강한 처벌을 하고 있기에 집단구타는 거의 없다. 각 부대마다 환경과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미필장병들은 직접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지만 확실한건 대놓고 폭언, 욕설 및 구타를 할수있는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다는 것이다.
최근 군생활을 해봤으면 알것이다. 후임들이 찌를까봐라도 뒤에서도 폭언, 욕설, 구타는 할 수가 없다.
실제로 내무실에서 라면먹는 후임에게 욕 한마디 했다가 영창간 사례도 있다
14년부터 동기생활관을 퍼트리고 있어서 내무실에서 라면 먹는 다고 선임이 뭐라하지도 못한다.행보관이 뭐라하지

12년도 6월쯤 TV에서 뉴스로 나오기도 하였다. 당시 나온 곳은 영웅대대 1중대

9 그 외

제8사단 장병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수기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부대라는 의견이 있다. 일례로 기갑차량의 이력을 보면 수기사 모 부대에서 정비창을 거쳐서 창정비가 돼서 온 차량도 많고 알게 모르게 수기사는 상비사단 8사단은 예비사단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차이점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장병들이 많다.

과거 누군가가 이르길 육군에서 가장 행군을 많이 혹은 길게 하는 부대라고 하며 농담삼아 달에서 지구를 보면 만리장성과 함께 8사단이 행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현재는 후방의 제66사단, 제75사단 등의 창설로 관할 구역이 많이 좁아졌으며,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재편 되었기 때문에 행군은 옛날 얘기라고 하는데 실제로 행군 많은건 여전하다.[21] 그렇다고 훈련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어쨌든 육군에 간다하면 절대 피해야 할 부대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일단 속칭 얘기하는 메이커 부대라는 것을 잊지 말것).

다만 행군량은 8사단이 보병사단에서 기보사단으로 변경된지 얼마 안되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22] 실제로, 육군 훈련규정에 기보사단은 기본 행군 거리가 일반 보병사단의 절반이다. 거기다가 훈련을 갈때 걸어서 가는것과 기동해서 가는것과는 천지 차이니... 20사단의 경우 비공식 표어로 3보 이상 차량 탑승 이라는 농담도 있다. 실제로, 제7군단 소속의 기보사들의 경우 육군 훈련규범에 적힌 반드시 행군을 동반해야하는 두가지 훈련인 혹한기 훈련유격 훈련을 제외한 모든 훈련은 차량에 탑승하여 가는 기동훈련이다. 혹한기 훈련조차 혹한기 훈련 자체는 기동훈련을 하고 혹한기 행군을 따로 날 잡아서 행한다. 심지어 사격 훈련 조차도 배차를 낸뒤 차량을 탑승하고 간다(!!!)
일단 7군단 소속이 이렇다는 것이고, 이마저도 군단장, 사단장의 방침에 따라 다르다. 실제로 2012-2013년 20사단은 기계화 부대 임에도 매달 행군을 실시하였으며, 2010-2012년 까지는 거의 시행하지 않았다.

기보사로 변경된 이후에는 공식적으로는 혹한기와 유격시만 행군을 하는 일정으로 변경 되었지만 다른 기보부대와 비슷하게 혹한기는 출동과 복귀는 장갑차 기동으로 하고 차후에 따로 행군을 하며 유격은 예나 지금이나 행군을 한다.
다만 그 후 사단장[23]이 행군량을 늘리라는 지시를 해서 일반 기보부대 및 포병은 무박 2일 100km 행군을, 수색과 정찰은 천리행군을 1년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것으로 변경되어서 공식적으로는 혹한기, 유격, 100km 또는 천리행군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2013년 새로 부임한 사단장[24]이 횃불여단 예하의 한 전차대대 유격행군을 보고선 기갑이 무슨 행군을 하냐그자리에서 버스로 복귀 시켰다.

그 해 부터 100km행군은 사라졌고 행군은 전차,포병대대 기준으로 진지공사, 혹한기, 유격 위주로 한다. 단, 연간 필수행군거리인 200km을 채우기위한 별도의 행군(30km~40km)은 계속 실시하고 있으며 혹한기에는 기동위주의 훈련이기 때문에 훈련이 끝난후 날잡아서 따로 한다. 기계화 보병 대대들의 경우 연 최대 400km의 거리를 채워야한다는 소문이 있다.

90년대 중반 한참 훈련을 할때는 전방 철책인 제101보병여단 가까이까지 와서 훈련을 하곤 했다. 완전 위장을 한 상태로 당시 로서는 신형무기인 K3를 보급완료한 상태 였다. 제101여단 화기분대는 아직 M60 이었던 관계로 K3 분해 조립 과정을 시연해주고 덕담을 나누다가 돌아갔다. 기보 개편후 K3 대신 M60을 사용중.

다른 기보사단과 마찬가지로 훈련 시즌만 되면 부대 안이든 밖이든 전차 엔진소리가 하루 종일 들릴때도 있다, 사단 섹터 밖으로 기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가평이나 화천, 철원 GOP바로 아래까지 올라갈때도 있다. 도로 사정에 따라 수십대씩 줄 지어서 미친듯이 달려가는 일도 부지기수. 하물며 철원, 포천은 훈련 시즌이 되면 출퇴근 차량과 부대 복귀하는 전차, 장갑차로 인해 길이 막히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전차든 포대든 군 장비에 이동이 워낙 많다 보니 신경도 안쓰고 오히려 방어운전이라는 점을 악용해서 새치기를 하는 운전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터널이나 시야가 확보되기 어려운 장소가 있으면 차선을 무시하고 중앙으로 달린다. 새치기 하다가 박으면 너는 한방 나는 징계이니 새치기 하지 말자.

경북 영천에 영천대첩을 기리는 국립영천호국원이 있으며 여기에 영천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매해 9월 말에는 사단과 영천에서 영천대첩 기념행사를 가진다.

공지합동훈련을 치루는 제5군단이 보유한 승진훈련장을 관리하는 부대 이기도 하다. 지난 2008년에는 이곳에서 건군 60주년 기념 지상, 공중 합동화력시범이 치뤄 졌으며 덕분에 화력시범 그날까지 근처 예하 부대는 죽어라 훈련장 내,외부를 만들었으며[25] 화력시범 전 일주일 정도를 사격장 주변 산 등에서 경계태세를 취했다고 한다. 정작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포상은 높은신 분들 앞에서 시범을 보인 부대만 받는다는거다. 이게 정말 짜증 나게 만드는 사실이다. 급하게 보수를 해야되는 상황이면 유격훈련 중에도 보수작업을 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훈련 시즌만 되면 그 훈련이랑 상관 없는 장병들도 끌고와서 작전을 시킨다

이후 승진훈련장을 일반인에 개방하면서 더더욱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

15년에 승진훈련장에서 통합 화력시범을 선 보였으며 예하 기보대대, 전차대대와 포병대대가 참여하였다.

사단장이 특별히 호텔조리사를 섭외하여 취사병 교육을 별도로 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신교대 및 예하 연대까지 음식맛이 좋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13년 기준으로 다른 신교대들과 마찬가지로 신교대 밥은 헌병대 밥보다 맛이 없다. 신교대 밥은 군대 밥 치고도 평균 이하이며 논산훈련소와 306보충대의 밥이 더 맛있을 수준이다. 진짜로 기계화학교 식당이 더 맛있을 정도다. 애초에 군대 밥맛은 식재료가 충분히 보급 되었는지와 취사병 들의 수준과 성의에 달려있다. 사단장이 특별히 호텔조리사 경력이나 조리사 자격증을 많이 가진 취사병을 섭외하긴 하나, 이들은 사단장 관사로 차출된다. 13, 14년 기준으로 취사병 별도 교육은 없으며 사회에서 수준급 경력을 가진 취사병을 사단장 관사로 전출보내는 경우가 있다. 또한 밥맛은 각 부대마다 다르고 대대장이나 여단장이면 모를까, 사단장은 예하 부대 밥맛이 어떤지는 거의 신경 안쓴다.

경례구호는 '돌격'. 실제로 해보면 어감이 입에 착 붙는다. 말년엔 돌~만하는 놈도 있고 도겨~ 이러는 놈도 있고 다 다르다. 간부들은 말년이 그러든 말든 별 신경안쓴다. 간부의 경우 "달갹"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18년경 군 구조 개혁에 따라 해체되고 독립기갑여단으로 쪼개질 예정이다.

10 관련 인물

  • 사병 출신 장성최갑석 소장이 사단장을 역임 하였다. 사단장 보직 이후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내고 예편.
  • 노태우대통령은 과거 독수리연대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당시 연대가를 직접 작사,작곡한 적이 있다. 아직도 해당 연대가가 쓰이고 있으며, 연대관련 농담 삼아 이야기 하는 주제중 하나.
  • 축구선수 최태욱2002년 월드컵 참가로 병역혜택을 얻었고 이 곳 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당시 조교와 간부들은 그를 당연히 주말 축구시합에 끼워 넣었으며, 혼자서 모두를 가지고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28]
  • 방학테란 유인봉은 4.2인치 박격포 주특기병으로 지원해 입대했는데 하필이면 이곳에서 군생활을 했다. 당시 공군 ACE T.O가 안났다고. 빠른 89년생이지만 2007년 7월에 입대했기 때문에 이미 전역했다.
  • 가수 이진의 아버지가 이 부대 사단장을 역임했다.
  • 가수 강타(2008년 4월 입대)는 이 부대 수색대대 출신으로 일병 때는 뮤지컬 '마인' 공연을 위해 육군본부 뮤지컬중대에서 군생활을 보냈다. 이후에는 훈련은 훈련대로 받고 포천시나 부대에 무슨 행사만 있다하면 불려다니는 이중고를 겪다가 전역. 참고로 8사단 훈련소 내 위치한 교회 의자에는 "강타 XX 작다!" 라고 낙서가 돼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f0015322 496d61bd07263.jpg
  • 코미디언 윤진영은 이 부대 수색대대 출신(2009년 3월 입대)으로, 강타가 현역일 당시 MBC '시사매거진 2580'에 함께 찬조 출연한 경력이 있다.
  • 가수 세븐은 2013년 3월 19일에 입대하여 신교대에서 중대장 훈련병에 선발되었다. 하지만 첫주차부터 의무대에 입실하였다. 게다가 조교들 사이에서 세븐이 연예인이라는 신분을 이용, 조교들과 딜을 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당시 훈련소 동기였던 전역자의 증언에 의하면 신교대에서 모든 훈련을 쨌다. 그 후 사단 예하의 독수리여단 기보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으나, 전입 일주일 만에 국방홍보원 소속 연예병사로 전출하였다. 그리고 6월 21일 춘천에서의 위문공연 후 취침시간에 군무이탈하여 안마방을 드나들다 SBS 기자에게 적발되고 6월 25일 이 내용이 방송되어 평생까임권을 획득했다. 결국 입창 처분을 받아 영창에서 10일 머무른 후 마침내 2013년 8월 4일 육군 훈령에 따라 다시 이 부대로 돌아오게 되어서 소총수로 재배치 되었다. 대부분의 관심병사가 그렇듯 곧, PX병으로 빠졌으며 아무도 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 배우 조달환은 2008년 가을 군번으로 입대해 8사단 예하 번개연대 예하 영차대대(기보사로 개편되면서 되면서 현재는 해체됨)의 9중대에 자대배치를 받았으나, 부상을 핑계로 자대배치 얼마 후에 대대장 당번병으로 복무하다가 몇 달 후 사단본부에 상담병으로 전출을 갔다. 대대장 당번병으로 들어갔을 당시와 사단으로 전출 갈 당시 전 대대원들이 한심해 했으며, 부상을 핑계로 자잘한 훈련도 열외 하였다. 연예인 입대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예로 꼽을 수 있다.
  1. 첫번째는 수도기계화보병사단.
  2. 이것이 대단한 이유는 7월 이후 국군 사단 중에서 중화기를 온전히 보유한 사단은 제6, 8사단 밖에 없었다.
  3. 정확히는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서.
  4. 근데 8사단에 이런 것을 자세히 아는 간부가 없다. 안습.
  5. 일부 예하부대는 강원도에 자리잡고 있긴 하다. 뭐 306보충대 홍보물에 대놓고 사기(...)를 치는 6사단 보다는 낫지만.
  6. 메이커 부대 중 하나인 맹호부대도 후방쪽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수기사 같은 경우에는 전쟁 발발시 집결하여 20사단과 같이 북으로 올라가는 임무를 맡고 있기에 전방 후방이 상관 없는 부대이다.
  7. 제20기계화보병사단K200K21 보병전투차량으로 교체 하면서 기존에 쓰던 K200을 8사단에 배치하면서 기보사단으로 전환되었다.
  8. 수도기계화보병사단도 K21이 들어와서 잉여 K200을 8사단에 준다고 한다. 깨끗이 정비를 한뒤 8사단으로 간다고 한다.
  9. 기보여단장은 보병연대장과 같은 대령급 직위.
  10. 1958년 준공된 기념비이다.
  11. 특히 식당에서 밥을 먹고 PX에 갈 때가 가장 심했다. 식당은 부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고 PX는 가장 낮은 곳인 위병소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12. 과거 팬저파우스트3 오발 사고가 있던 곳이다.
  13. 정작 세븐이 전역한 곳은 여단 본부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2105부대로 잘못 찾아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14. 노태우가 대령으로 있을 때 예하 21연대 연대장으로 있었다.
  15. 주로 기갑
  16. 그린카드라는 제도가 있으며 일동 터미널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헌병대 순찰 간부나 사단 부사관단에게 경례를 잘하면 받을수있다. 휴가증과 함께 제출하면 1박이 추가된다. 14년 중반까지는 유지되고있었다.
  17. 13년에 사단장이 바뀌며 효도휴가 제도는 없어졌으며 효도휴가비가 추가된다.
  18. 13년 까지는 자격증을 따면 부대마다 다르지만 2박에서 3박정도의 포상휴가를 주었다. 하지만 위와 마찬가지로 13년에 사단장이 바뀌며 없어졌다. 따라서 일과 후에는 전부 개인정비시간이다.
  19. 그린카드를 받는 조건은 터미널 주변을 순찰 중인 사단 헌병대 간부나 부사관단 간부에게 경례를 크게 한다던가 쓰레기를 줍는 등의 선행을 보이면 지급해준다. 휴가에 1박을 붙여 나갈수있다.
  20. 흔히 말하는 억울한 케이스. 후임에게 장난으로 안마를 시킨다거나, 반항하는 후임의 가슴을 민다거다.
  21. 사실 많이들 하는 오해 인데, 기계화 부대라고 해서 행군을 딱히 적게 하는 건 아니다. 장갑 차량이 있다고 훈련 강도가 크게 약해지는 것도 아닌데 일일정비 등등의 할 일은 산더미처럼 늘어나니 졸병들은 그저 죽을 맛. 말단 입장에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22. 일단 장교야 그렇다 치고, 부사관들은 대부분 평생을 보병사단에서 일하신 분들이니...
  23. 국군기무사령관 조현천 중장
  24. 제5군단장 제갈용준 중장
  25.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일단 관람객을 위해 기존 관람석을 보수하는 건 기본이고, 사격을 위한 표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성공적인 화력시범을 위해 수 차례의 실사격연습(!)을 하기 때문에 표적을 계속 다시 만드는 작업을 계속 했다. 물론 화력시범이 끝나고 뒷정리까지. 거기다 봄 가을마다 훈련장뒤쪽으로 방화선 작업이라고 조금씩 자라나는 나무와 풀들을 제거한다. 그때 오분대기조라면 장구류 차고 삽들고 900고지정도 되는 명성산을 올라가야 된다. 900미터 고지라 낮아 보일지 모르지만 철원은 기본적으로 해발 200M 가량의 분지형 평야다. 즉 700 좀 넘는 높이를 올라가야 된다는 것.
  26. 여담으로, 필자의 아버지가 이휘재 근무 당시 취사병으로 일했는데, 계란 후라이를 하나 더 달라는 이휘재에게 국자를 휘두르며 욕했다고... 아이고 아버지... 물론 나중에 따로 부른 뒤 취사병의 특별식인 고추장볶음(?)을 해줬다고 한다.
  27. 다른 연예병들 중에도 해당되겠지만, 이휘재는 복무 당시 열외되는 훈련에도 열심히 참여했다고 한다.
  28. 그리고 퇴소 전날 밤 조교들이 근무 설 때마다 싸인해달라고 깨우는 통에 잠 한숨 못자고 퇴소 했다고 한다.